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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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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라는 건 엄밀히 말하면 왜란이 종결되고 조선 정부에서 막부에 파견한 사신이지, 그 이전에 파견된 사신은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극에서는 버젓이 황윤길, 김성일 등을 일러 "통신사"라 일컫는데 실록에 부분적으로 그런 용례가 있다 하니 딱히 흠을 잡을 건 아니겠네요. 모두가 알다시피 풍신수길이 정권을 잡고나서 스스로를 "전하"로 호칭하고(이후에는 "태합"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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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라는 건 엄밀히 말하면 왜란이 종결되고 조선 정부에서 막부에 파견한 사신이지, 그 이전에 파견된 사신은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극에서는 버젓이 황윤길, 김성일 등을 일러 "통신사"라 일컫는데 실록에 부분적으로 그런 용례가 있다 하니 딱히 흠을 잡을 건 아니겠네요. 

모두가 알다시피 풍신수길이 정권을 잡고나서 스스로를 "전하"로 호칭하고(이후에는 "태합" 즉 타이코라는 호칭을 하나 더 붙이죠),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감히 "합하"로 불러 사신들이 격분하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우리가 그들에게 보낸 선물을 두고 "방물"이라 부르는데, 이는 마치 우리 조선을 지방 정부 정도로 치부하고 낮잡아 본 사고의 발로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이런 치욕적인 국서를 받아 챙길 수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런 도발을 하는 건 따지고 보면 꽤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등 정한론자들이 득세할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며, 우리가 이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면 놈들은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식이죠. 아마 당시 고종 정권이 바로 반발하지 않고 일단 강화도 조약으로 응답한 건 아마 현명한 처사였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로부터 38년 정도의 시간이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력을 키우지 못해 나라를 뺏겼다는 사실입니다. 

풍신수길은, 그때까지 꽤나 강하게 조선에 종속되어 있던 쓰시마를 확실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소 씨(宗氏) 등 지배 가문을 압박하여 조선 정벌에 유리한 정보를 모으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이 와중에서 "정명향도"가 "입명가도"로 고쳐지는 등 안타까운(?) 몸부림이 있었으나 그 본질이 침략인 점이야 변하는 게 아니겠죠. 일본인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봤으면 "향도(앞잡이)"를 자처하라고 저리도 오만불손한 언사를 일삼았겠습니까. 

통신사는 이후 양국 관계가 원만히 진행되는 데 지혜를 모은 양국 온건파들의 노력 결과이겠습니다만 이 역시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일본 측에서는 "너희들의 사신은 받지 않겠다"는 우리 측 요구를 일단 수용했고, 우리 측 통신사를 접대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비록 지방 다이묘들의 몫이었으나) 부담하는 등 일정 부분 양보를 한 게 사실이죠. 그러나 이런 억지 화해 분위기도 한계가 있었기에 18세기 들어 벌써 통신사의 왕래가 크게 주춤해졌고, 이어 다음 세기에는 우리가 아는 대로 크나큰 비극이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v*****7 2020.03.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