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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 미스터리 퍼즐이 영상에 펼쳐졌을 때 어쩌면 책보다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맞추지 않아도 저대로 맞춰지는 수동적 퍼즐놀이가 될 수도 있고, 책과는 분명히 다를 테지만, 감동이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여느 액션영화보다도 가장 생동감 넘치는 드라마가 되리라 확신했다. 원작의 감동이 그랬고, 휴머니즘과 미스터리 구성을 가진 탄탄한 스토리가 그랬고, 무엇보다 극이 안고 있는 보편적 주제가 워낙 뛰어나서 두 배의 기대라면 몰라도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오스카 또래의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고스란히 치유의 시간을 선사해줄 거라 생각했다. 내밀한 밀도와 질량으로 촘촘한 감정선까지 뒤흔들 게 분명한 이 영화의 힘이라면 두 번도 괜찮고 세 번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현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손꼽힐 9.11 테러를 아빠 잃은 아홉 살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것도 기발하지만, 이 영화가 단지 재난 후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는 여느 가족의 후일담을 그리는 거였다면 이토록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감동과 동시에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스토리선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슬픔과 사랑이 맞닿아있으며, 아빠 없이는 나도 없다는 명제를 가동하는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어른들의 따스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들어 더욱 빛난다.
아빠의 마지막 전화에 장난으로 수화기를 들지 않고 있었다는 죄책감에 몸서리치는 아홉 살 오스카의 마음을 스폰지처럼 흡수해서 한 방울의 고농축 밀도로 승화시킨 그레이의 색이 주는 복잡다단함은 말로 하기 어려운 빛깔이다. 아빠를 잃은 뒤 1년. 그리움과 후회는 어린 오스카의 마음 안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그리고, 평소 아빠의 목소리에 이끌려 탐험의 세계로 걸어들어가게 한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누군가를 모두 알고자 하는 마음과 제대로 보내주기 위한 결심과 아픔에 맞서 제대로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한 번에 응축된 기회 말이다.
오스카에게는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둔 노란봉투 속 열쇠가 하나 있다. 아빠의 유품 안에서 발견한 열쇠에는 정체모를 'BLACK'이란 단어가 씌어있다. 블랙이라는 사람의 열쇠이며, 이 열쇠가 아빠와 연관이 있는 어떤 사람의 것임을 오스카는 확신한다. 영리한 꼬마는 마치 동아줄처럼, 거머쥔 열쇠의 사연을 추적하기 위해 아빠가 늘 말해오던 탐험을 시작하기로 한다.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 8분. 오스카에게 이 8분은 영원히 연장하고 싶은 시간이다. 아이답지 않은 성숙함 속에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미묘한 지점에서의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오스카는 아무도 몰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열쇠의 비밀을 밝히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아빠가 없는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에게 아빠가 가르쳐준 지도읽기와 모험법, 읽어주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등에 업고 살라는 건 슬픔 속에 영원히 매몰되라는 말과도 같을 뿐이다. 이제 오스카에게는 둘 뿐이다. 열쇠의 비밀을 따라가면 아빠의 마지막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믿음 하나.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보더라도 절대 울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
열쇠의 비밀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비밀이기도 하면서 잔잔히 흘러가던 물살을 세차게 바꾸어버리는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에서 아빠로, 아빠에서 오스카로 흐르는 연대기. 이 열쇠가 할아버지와 오스카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힘껏 돌아간 열쇠는 다시는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꼬마 곁에는 좋은 어른들이 대단히도 많다. 마음이 전해지자 아픔은 공유된다. 슬픔을 치유하는 건 진실과 진실의 힘을 믿는 이들의 마음 뿐. 'BLACK'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 열쇠와 관련있는 이들을 찾아나선 오스카의 발걸음은 호기심과 대담함으로 점점 더 빨라진다. 아빠와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의 집에서 오스카는 되려 위로를 얻는다. 각기 다른 저마다의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만남. 오스카가 그들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치유와 소통, 위안의 힘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희미한 형상 속에서 아빠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기 직전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스카에게 아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두려움이자 죄책감이자 추억이다. 아빠의 마지막을 찾기 전까지, 아빠와 이어진 끈을 다시 붙잡기 전까지 오스카에게는 다른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꼬마에게 포기란 없다. 엄마가 듣지 못하도록 아빠 목소리가 담긴 테잎을 꽁꽁 숨겨둔 채 다시 집을 나서고 또 나선다. 오스카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이야기는 공유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오스카는 알고 있다. 절망과 포기가 찾아올 때마다 아빠 목소리가 담긴 테잎을 다시 듣는다. 할머니 댁 세입자라는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지금껏 숨겨온 비밀의 테잎과 오스카가 아는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유일한 사람이 생겨서 좋기만 하다. 함께 아빠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할아버지가 곧 떠나버리기 직전까지 오스카에게 할아버지는 진정하면서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들은 핏줄이었다. 우리는 알게 된다. 오스카가 아빠의 흔적을 끝끝내 찾아낼 거란 걸. 어디에도 없는 아빠의 흔적을 비로소 마음 안에서 스스로 만날 거란 걸. 아빠의 끈에 매달려 살아왔듯, 아빠에게도 할아버지라는 끈이 존재했었다는 걸. 누구에게도 끈이 있다는 것과 처음부터 끈이 없었던 사람은 없다는 걸. 아빠는 세상에 없지만 할아버지와 오스카가 아빠로 인해 만나게 됐듯, 인연과 치유의 힘은 굉장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데 실패가 먼저 올 수는 없다. 작지만 강단있는 오스카의 저력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상실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기가 어렵다는 걸 고요하게 들끓는 이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지금, 곁에 있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곧 시간이 정지될 수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진실을 알면서도 그게 정말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