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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을 읽고 내 자신은 아직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비신도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든지 마음을 열어놓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리스도교인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에 가까이 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하면서 보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대할 수 있는 종교는 역시 그리스도교이다. 역사에서 보면 원래는 하나의 종교로 출발하였다가 결국 신교라는 명분으로 기독교로 분리가 되었고, 현재의 모습을 보면 가까이에 많은 교파의 교회당 건물이 가장 많고, 요소요소마다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느 때 어디서든지 진지한 신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은 주변에서 열심히 믿는 종교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틈틈이 그리스도교에 관한 서적도 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성전으로 불리 우는 성경책을 비롯하여, 저명한 사람들이 쓴 여러 서적을 통해서 또한 많은 것을 공부하고 느끼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많은 진리들을 얻을 수가 있어 매우 유익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신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도 수박겉핥기 식이다. 정말 깊은 진리와 함께 오랜 선교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내 자신에게 이 책은 2천 년간 이어오는 하느님과 예수, 선지자들의 지혜를 알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정말 진심어린 저자의 지금까지의 연구 및 강의, 저술해 온 노력이 그대로 나타나면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큰 선물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책보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등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쉽게 마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자신 주변으로부터 가끔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권유를 받기도 한다. 언젠가는 꼭 필요하리라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결단은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선 아내에게 가까운 성당에 나가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니면서 생활에 활력과 화기와 윤기가 날 수 있다면 최고의 모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난생 처음 대한다. 신앙을 고백하고, 예비자 교리 때는 반드시 외워야 할 기도문이며, 묵주기도의 시작이며, 미사 때는 모두 한 마음으로 외우는 기도문이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나 초보자, 새로이 뜻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서 신앙의 중심을 잡도록 해주기에 손색이 없다. 사도신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한 희망교본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의 역사 출발에서부터 현재의 접목과 미래의 방향까지 진솔하게 언급하고 있어 나름대로 충족감과 함께 주님과의 행복함을 확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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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종교인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기독교인에 대해서 그리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당연히 소수겠지만 명동을 가면 확성기를 입에 대고 일방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고 지옥으로 왠지 협박하는 느낌도 들고 종교인들이 너무 머리를 잘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많겠지 싶다. 그렇지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보고 종교를 판단하기 이전에 종교 그 자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조금 어려워보인다. 그래도 얼마전 재미있게 읽었던 '무지개 원리'의 저자리니 친근한 느낌도 들고 진입장벽은 친밀도만큼 낮아졌다. 사도신경에 2천년의 지혜가 담겨있다니 궁금했다. 그렇지만 성경은 어렵고 번역체같은 문구도 헷갈리고 원서를 몇번에 걸쳐 재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역시 무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차동엽 신부님이 말하는 사도신경은 좀 더 이해하기 싶고 실체에 가까울 것 같은 마음에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맞다, 비신도가 읽기에는 그닥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독서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그것도 한번에 후루룩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조금씩 읽어 진도를(?) 뺐다. 그는 사도신경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기도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주변에 종교인이 제법 많은데 안타깝게도 신실한 성도도 있었지만 종교를 믿는 자신에게 빠진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리고 근거가 부족하면 신의 계시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회의가 들기도 했다. 나름 오래 믿어온 사람들이 저렇다면 과연 진리는 있을까? 신은 있을까? 차라리 믿지 않고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이 더 속편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평화방송에서 하는 강의를 모은 것이라고 했다. 강의는 듣지는 않았지만 책만 읽어도 막연했던 무언가가 실체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일부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인의 행동으로 인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고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빠졌을지도 모르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비종교인이라도 진지하게 말씀을 바라볼 기회를 주는 책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한 번 정독해 볼 생각이다. 아마 그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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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개신교의 예배나 가톨릭의 미사 때 고백하는 일종의 기도문이라 할 수 있죠.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기도문이 아니라 '신조'입니다. 하지만 그 신조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기에 '경전'만큼이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을 주문 외우듯 하는 수준으로 그칠 일은 아닙니다. 본래 사도신경을 가리키는 라틴어 '심볼룸 아포스톨로움'(Symbolum Apostolorum)에서 '심볼룸'이 '반쪽'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짝맞춤'이라 할 수 있죠. 그걸 확대하면 이 세상과 초월적 세상의 '짝맞춤', 나와 공동체의 '짝맞춤', 교회와 세상의 '짝맞춤'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만큼 사도신경은 단순한 주문이 아닌 신앙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실재입니다.
"우리는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차원에 계신 더 힘있고, 더 풍요로운 어떤 존재를 향해 우리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3차원의 언어로 '나는 당신을 믿나이다.'하고 위로 '짝' 해 드리면, 구님은 그 초월적인 은총을, 당신의 임재를 '요거'하고 밑으로 짝을 딱 맞춰 주셔서 하나가 된다. 주님의 기운이, 천상의 가치가, 천국이, 사도신경 반쪽을 통해서 마주 내려오는 것이다."(21쪽)
차동엽 신부의 새 책 <사도신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미 <잊혀진 질문>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차동엽 신부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짝맞춤 신앙'을 회복토록 초청하고 있는 셈이죠. 하나님과 인간, 교회와 세상에 참된 소통과 통섭의 길을 열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라틴어 원전에 대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으니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겠죠.
"Crdedo in Deum"(크레도 인 데움)
이는 라틴어 원어로 된 사도신경의 첫머리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 뜻은 '나는 믿는다, 하나님을'이고요. 이를 통해 깨닫도록 하는 바가 있겠죠. 궁극적인 믿음의 주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의미가 그것이겠죠.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도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죠.
물론 이 같은 원문의 뜻에 대해 희랍적인 사고를 지닌 분들은 그런 문제를 제기할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말이죠. 어떻게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냐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차동엽 신부는 성경에 기초한 사도신경의 고백이 본래 히브리적 사유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고통이 어떻게 발생했느냐보다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보다 왜 존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들 말이죠.
"우주의 기원이 하나님의 창조에 있다는 사실만 선언할 뿐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라는 과학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6일간의 창조에 대한 기록 역시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창조의 '질서' 곧 왜 인간이 창조계의 절정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73쪽)
"sanctam Ecclesiam catholicam"(상탐 에클레시암 카톨리캄)
이는 사도신경 후반부에 있는 '거룩한 공교회(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의미하는 라틴어 원문이다. 이를 두고 차동엽 신부는 교회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임을 밝히는 뜻으로 해석한다. 아울러 교회의 '거룩함', '보편성' 그리고 '사도성'에 대해서도 풀어나간다.
그런 흐름 속에서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의 논쟁거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합니다. 이른바 '연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그것이라고 하죠. 그에 대해 차동엽 신부는 논란이 많긴 하지만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다음에 딸린 세 번째 방이 아니라 '곁방'으로 풀어냅니다. 그런 구조로 보면 천주교나 개신교나 모두가 '하나'라는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는 차동엽 신부. 그 첫째를 '성경'으로, 둘째를 '주님의 기도'로, 마지막 셋째를 '사도신경'으로 그는 꼽습니다. 물론 그 순서에 맞춰 <맥으로 읽는 성경>과 <통하는 기도>로 이미 출간했다고 하니 그 또한 읽어볼 일이겠죠. 다만 하나님과 인간의 짝맞춤으로 사도신경을 풀어가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깊은 신앙의 젖줄을 퍼올렸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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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O (크레도) "나는 믿나이다." 가톨릭 신앙서적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쳐다보지 않을 책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 했을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아기 때 신자가 되었고, 자의식이 생긴 뒤로는 신앙적인 일탈을 했었다. 신앙에 대한 의심이 점점 무관심으로 변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믿음 없는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만큼 믿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원래의 신앙으로 돌아온 것이다. 차동엽 신부님의 『사도신경』은 신앙적으로 무지한 사람에게는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바로 나! 신자가 되면 당연히 기도문을 외우게 된다. 사도신경 역시 어릴 적에 외웠던 기도문이다. 그런데 막상 사도신경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아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도신경이 이토록 중요한 기도문인지 모르고 있었다. 신앙에 있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몸만 습관적으로 돌아온 것이지 온 마음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입으로만 믿는 신앙이었다. 라틴어 사도신경의 첫 문장은 "Credo in Deum"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믿나이다."라는 말이 가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교 보물로 꼽히는 7대 신앙 유산이 있다. 첫번째는 단연 '성경'이다. 그다음은 성경에서 추려진 '십계명'이다. 여기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참행복'(=진복팔단)과 '주님의 기도'가 추가된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인 '향주3덕'(믿음, 희망, 사랑)과 '복음3덕'(청빈, 순명, 정결)이 있다. 끝으로,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사도신경'이 있다. - 345p
다른 건 몰라도 미사 때마다 드리는 기도문 <사도신경>은 확실히 그 의미를 알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머리로 아는 단계지만 점점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까지 갈 거라고 믿는다. 믿다보면 저절로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겠나.
CHESED (헤세드) "자비" = "하느님은 약속에 충실하시다." 시련이 없었다면 신앙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든든한 힘이 되어준 것이 신앙이었다. 집나간 자식마냥 신앙을 외면했었는데도 결국에 돌아온 것은 '자비' 덕분이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내가 잊지 않으면 된다.
'임마누엘 아멘' =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기도문마다 마지막은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입으로 내뱉는 "아멘"은 감사와 희망의 메시지다. 기도문 외우기 힘들면 그냥 "아멘"이 최고다. <사도신경>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면 이 또한 "아멘"이다. 교리서적이면서 딱딱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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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도신경에 대해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너무나도 감명깊게 읽었던 <무지개원리>의 저자인 차동엽신부의 신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지만, 이번기회에 제대로 한번 알아보자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고나 할까?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을 뜻하는 사도신경안에 2천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그 자체를 통해 한사람의 삶이 얼만큼 달라질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비종교인이면서도,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 만나게 되는 기독교방송. 무심코 들었는데, 순간적으로 깨달음을 전해주는 내용이 있었기에 선뜻 채널을 돌리지 않고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읽겠다는 의지를 갖고 책을 접하게 되면 한권의 책에 담겨 있는 심오한 의미와 함께, 그리스도교가 뭘 향해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내용이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내가 이 책의 내용을 100%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지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뒤적이는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름없는 삶의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온갖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힘들고 절망할때가 있다는 문구앞에서는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낄수 있어 편안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평범한 나와 달랐던 부분은 결코 그러한 상황에 젖어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욕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고 하소연도 하며 절망하기는 하지만 그 시간을 딱 3일로 규정해놓았다. 개개인에 따라 그 시간이 더 단축될수도 있었다. 그런데 난 나에게 주어진 역경이나 상황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주저앉아 푸념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봤다. 그리고 화낼일을 만들지 말라는 문구 앞에 다시금 무릎을 치게 되었다. 화내는 것도 다 상황이 그리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닥뜨린 나의 대처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화낼일을 만드는 것도, 상처를 받는 것도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을수 있다면 상대가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자 덤벼들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내하고 이겨낼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명쾌한 진리가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매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갈수 있도록 이 책을 다시금 한번 꼼꼼하게 정독해보고자 한다. 그럼 이번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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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 「사도신경」을 통해 그리스도교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도신경’은 이전부터 알고 예배 때마다 형식적으로 암송해왔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 첫머리에 사도신경을 “그분과 나눈 약속의 정표(symbolum)"이라고 묘사한 것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사도신경은 주님과 우리가 서로 반씩 맞추어 보는 정표이며, 믿는 자끼리 같은 믿음을 가졌는지 맞추어 보는 정표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온 마음 다해 믿고 고백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인데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는지, 교회에 다니면서도 온통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나의 인생, 나의 성공, 나의 행복, 온통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G. K. 체스테턴(Chesterton)이 그의 책 「오소독시(Orthodoxy)」에서 광인(狂人)은 온통 자기 자신에게 함몰된 자라고 말했는데,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은 온통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자신만 믿는 광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온통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크게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가톨릭 사도신경이나 개신교 사도신경이나 모두 네 번의 ‘믿습니다’가 나오는 것은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이 책은 친절하게 책 앞부분에 사도신경의 라틴어 원문과 가톨릭 사도신경, 개신교 사도신경 번역본을 각각 실어 놓았습니다). 어쨌든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듯이 참된 신앙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차동엽 신부의 사도신경 해설을 따라가면서 나는 마음 다해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이제는 나의 이름과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이름과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어 감을 느낍니다. 사도신경을 배우면서 나의 존재와 삶의 이유도 시나브로 찾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는 자들은,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믿음의 본질을 찾고, 믿음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희망을 줄 2천년의 지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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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미사때 외우던 사도신경 매주 외우다보니 습관적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점점 멀어 지는듯 했습니다. 그러다 평화방송을 보고 사도신경이라는 책에 대해 알고 있던 차에 아는 지인께서 선물로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도신경이긴 하지만 책을 통해서 문장하나에 엄청난 뜻이 있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책에서 나온바와 같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반쪽을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반쪽을 주님이 채워주신다는,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기도 했더니 정말로 은총이 충만해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이책으로 주님의 은총 받으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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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평화방송에서 차신부님의 강의를 먼저 들었는데 강의내용은 좋은데 내용을 남기려고 필기를 하는게 너무 힘들 더라구요 그러다가 강의 교재로 이책이 쓰이는걸 알게 되어 책을 일고 다시 강의를 듣는데 정말 사도신경에 담긴 어마어마한 내용에 놀라고 또 그내용을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있단 것에 두번 놀라게되네요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인데 신부님의 강의르 들으면서 책을 보니깐 기도문을 외울때마다 그구정에 무슨 뜻이 담겨있었지 하는 정도에 이르렀어요 정말 앞으로 사도신경을 외울때 더욱 단어하나에 깊은 뜻을 생각하면서 외우게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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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사는게 힘들지만 매일 아침 꼬박꼬박 성당을 나가며 기도 드리는 신자 입니다. 기도 할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긴 하지만 그렇게 깊게 까지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평화방송을 보다 차신부님의 강의방송을 보고 아 사도신경에 관해 풀이해 주시는 구나 하고 방송을 봤더니 아! 그동안 잘못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돼단한 기도문인데 그냥 읊조리기만 했구나 하고 당장 서점으로 가서 이 책을 구매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방송을 보며 책에서 이해 안가는 부분을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강의해주셔서 깊은 은총을 받은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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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많은 예배의 시간에 고백하고, 수없이 많은 시간에 고백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사도신경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라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을 외우고, 고백하면서도 사실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경향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사도신경에 있는 내용들을 가만히 연구해 볼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에 대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가장 먼저 있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수없이 오랜 시간동안에 조직신학들에서 이야기되어 왔던 내용들을 명확하게 정리하면서 고백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것은 성경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고난의 내용, 그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을 고백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서 그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음을, 죽음이 예수님을 가두어둘 수 없음을 고백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흘만에 부활하신 모습들, 승천하신 모습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을 고백하는 것, 또한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심판의 왕으로서 재림하시게 될 것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는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마무리하게 된다. 그런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도신경 자체가 복음의 요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신앙고백,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신앙의 비밀들을 바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건성건성 사도신경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비밀을 알고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사도신경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필요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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