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같은 날씨에 가까운 동물원에 간만에 식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날씨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비단 우리식구만이 아닌지라 동물원에는 인파가 넘쳐났다. 간만의 외출에 즐거운 마음도 잠시 조금씩 보이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찍느라고 통로를 막고 놀이기구 앞에 서 있는 아버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다정한 연인들,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시작하는데도 앉지 않고 사진 찍는 모습, 어디에서도 남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 속에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 편으로는 도시사람들이 모두 저렇게 다 이기적인 모습일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신문에 나는 사회면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넘쳐나고 대선이다 뭐다해서 정치권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안에 어디에서 설 자리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인들이다. 경제는 불안하고 국가는 힘을 잃어가고 사회는 혼란한데 어느 한 곳 위로받을 곳이 없다. 시국탓인지는 모르나 ,<<철학하라>>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마음들이 위안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그나마 '나'를 찾게 되는 방법은 철학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인간의 존재와 사유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철학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재와 동시성을 가진다.
1부 동양편의 부제는 ' 나를 찾다' 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 곧 그 소박함을 떠나고 그 소질을 떠나게 마련이니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때문에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말했지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인 것이라기 보다 사회적인 것이므로 인간 본성의 원래 고유한 그 무엇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편향성이다 .하나의 가치에만 매몰되어 그 뒷면의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하는 편향성은 넓게 볼 수 없는 것이다.이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택한 정약용이 <목민심서>에 담으려 했던 괴로운 현실의 데자뷰, 순자의 성악설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한비자의 냉혹한 현실주의 , 삶 속에서 느낀 처절한 고통, 갈등과 방황 그리고 그 모두를 극복하여 고결한 목적으로 승화시키려는 피나는 노력, 이런 것들이 녹아있는 사마천의 <사기>를 두고 저자는 <<사기>>는 그냥 역사책이 아니라 인간을 탐구하는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동양사상은 '유기체적 자연관'이다. 유기체는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낳을 수 있고 , 전체의 변화가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데 동양철학은 모두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맹자부터 시작하여 순자, 공자, 노자, 이황, 원효 , 그외<중용>과 <주역><목민심서> <성학십도> 모두 바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주제로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논어>에서 "조용히 일을 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다." 고 했다. 이것은 이황의 경敬으로써 내몸을 닦는다.라는 것으로 성학십도에 반영했고 자신의 실천사상으로 삼았다. 경하면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스스로에 의지하며 스스로의 길을 간다. 이는 바로 자신의 주체를 찾음이다. 주체는 그렇지 않은 곳이 없고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 이렇게 동양의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여 결국은 자아를 찾는 것으로 귀결되는 사상이다. 최근 서양의 기계론적 자연관이 위기를 맞으며 동양의 유기체적 자연관에 주목을 하고 있는 것 또한 불확실한 시대에 자아를 찾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철학이 아닐까 한다.
2부 서양편'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다.' 동양사상과는 달리 서양의 사상은 신의 존재 증명이 중심이다. 인간은 존재한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을 존재하도록 해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다. 따라서 신은 최고의 존재이다. 신은 세계의 창조자이고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 제 1전제이다. 이렇게 서양철학은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진리 추구라는 명제를 가지고 있다 . 데카르트의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방법, 베이컨의 사상의 대혁신을 위해 주창한 우상의 타파,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에서는 영원한 지리,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사라졌으니 현실에 눈을 돌려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니체의 철학이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하나의 학풍을 만드는데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음을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가 된다는 것을 말하며 현실과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며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바로 삶 속에서, 그 삶을 알기 위해 자신을 초월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현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혜로 받아들여진다.
3부 정치와 과학편은 플라톤의 <국가>,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군주론>, 루소<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제공한 사상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통치와 사회적 약속을 거시적 안목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갈릴레오, 뉴턴, 다윈,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까지 과학이 세계를 전체로서 온전하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으며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딜레마를 이겨내게 해 줄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과학의 세분화는 오히려 세계 전체를 보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끝으로 동서양 인문고전40 을 실은 <<철학하라>>는 마친다.
고전을 읽고 나면 마음을 다 잡아 주는 그런 기분이 든다. 많이 접했던 책이지만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사실 고전이 주는 매력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공자를 알았지만 공자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때마다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는 한다. 여기 나와 있는 책중 사마천의 <<사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사기를 조금 접하고 나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 <철학콘서트>처럼 조금은 가벼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진 철학콘서트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사상가의 삶을 요약해놓은 tip장도 저자의 세심함이 느껴지고 각 고전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 이 책 한권으로 동서양철학에 관한 지식정도는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전은 지식으로 남아 있으면 고전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전을 읽을 때 머릿 속에 불꽃이 이는 경험을 한다면 고전이 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철학하게 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다 .ㅋㅋ 사회속에서 고독하다거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하다거나 한다면 한번쯤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때론 고전이 위로가 되어주기에 ^^
|
![]()
베스킨라빈스 31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맛있어 보이는 온갖 아이스크림이 밝은 진열장 조명아래 형형색색의 자태로 그 맛을 뽐내고 있었다. 요염한 핑크빛, 눈에 확 트이는 녹색, 현란한 무지개 색, 웨딩드레스 같은 순백색등 그 색과 자태도 현란했다. 눈이 희둥그래진다. 그중엔 이미 먹어본 아이스크림도 있고, 처음 본 아이스크림도 있다. 현란한 광고문구로 무장한 새로나온 신제품도 있다. 종업원에게 맛보기 스푼을 부탁했다. 호기심 가는 아이스크림의 맛을 본다. 음~~ 부드러운 맛, 감칠 맛, 강한 인공의 냄새가 나는 맛, 온갖 맛들이 혀 위에서 춤을 춘다. 낮 설은 맛, 익숙한 맛, 강한 페퍼민트 향의 맛,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 나는 맛, 향이 부담스러운 맛 등등 저자 황광우의『 철학하라』는 이처럼 철학에 관한 온갖 아이스크림이 전시되어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진열장을 보는 기분이다. 온갖 맛과 색으로 치장되어있는 아이스크림 같은 철학으로 말이다. 『철학하라』는 크게 동양 편과 서양 편으로 구성된다. 1부 동양 편은 자아와 관계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속의 나를 찾는’ 자아 편은 인간의 기본심성은 『맹자』와『순자』를, 사람의 도리를 생각게 하는 것은 『논어』와『도덕경』을, 성인과 인간의 길에 대한 사유를 제시하는 것은『성학십도』와『중용』을,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주역』을, 깨끗함과 더러움은 모두 내 마음에 의한 것임은 『대승기신론서』를 통해 내속의 나를 찾는 길을 제시한다. ‘삶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지혜’인 관계 편에서 변하지 않는 삶의 원칙에 대해서는 『목민섬서』와『한비자』를, 역사의식과 인간의 길에 대해서는 『사기』와『중론』을, 확고한 역사의식을 통해 우리를 아는 것은『조선상고사』와『삼국유사』를, 통해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인 ‘내 안의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나아가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명쾌한 질문과 답을 담고 있다. 2부와 3부 서양 편은 각 학문분야별로 구성하여 내가 아는 나, 나와 너의 관계를 벗어나 서양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철학과 심리 편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깃든 진리에 대해서는 『고백록』을, 생각하는 나는『방법서설』을, 인습과 권위의 의존에 대해서는『신논리학』을, 이성에 대해서는『순수이성비판』을,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꿈속에서 발견하는 인간정신은 『꿈의 해석』을, 언어와 철학의 구조적인 논쟁에 대하여는 『일반 언어학 강의』와 『철학적 탐구』를, 법과 경제 편에서 세계정신과 자유의 한계에 대해서는 『역사철학 강의』와 『자유론』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태동 및 투쟁에 대해서는 『자본론』과『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와『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통해 그 사유의 실마리와 해답을 전해주고 있다. 정치 편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에『국가』와『정치학』을, 통치자의 이상적인 리더십에 대해서는『군주론』을, 국가와 국민의 계약은 발전과정은 『리바이어던』,『통치론』,『사회계약론』을 통해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이상적인 통치체제와 사회적 약속에 대한 애기를 하고 있다. 과학 편에서는 지동성과 천동설에 대하여는『두 개의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만유인력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프린키피아』를, 과학과 신학이 결별하게 된 계기는『종의 기원』을, 물질의 파동과 양자역학에 대해서는『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과학은 부분인가, 전체인가는『부분과 전체』등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사고의 영역을 우주의 원천적인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와 유사한 책으로는 강신주 교수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강신주 교수는 생활 속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일상 속에서, 철학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의 실마리를 찾아 그에 맞는 철학자와 그들의 저서를 통해 철학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래서 강신주 교수의 글은 편하다. 하지만 황광우 교수의『철학하라』의 문체는 비장하다. 비장하다 못해 장엄하다. 스케일도 크다. 나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계 밖으로 태생적인 우주의 원리로 철학사고의 영역을 넓힌다. 그 사유의 조각들은 모두 동서양의 고전속에서 찾고 있다. 아마도 이런 차이는 강신주 교수는 철학을 전공으로 하신 분이고, 황광우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한 이단아라는 차이도 있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황광우 교수가 살아온 그 시절이 격변의 시기였고, 그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낸 그의 인생 여정도 이런 문체와 글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마치 그가 예로 든 사마천의 사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아픔이 스며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인 황광우는 그의 고백적인 서문을 통해 "나를 키워준 것 팔할이 고전이다“고 애기한다. 또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고전에서 길을 찾았단다. 고전은 반드시 사유를 필요로 하고, 사유는 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철학이란 어차피 인간의 사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 가까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철학을 등한시 하고 어려워한다. 이는 학창시절 잘못된 배움의 결과인 듯하다. 철학에 대한 제대로의 인지도 없이 선생님들에 의해 철학의 근본적인 사유보다는 그들의 계파나 파벌 등 이해되지 않는 문구들을 들입다 외우기만 했으니 어찌 철학이 쉬웠겠는가!!
그 어렵고 재미없는 철학을 아이스크림에 비유함에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웬지 모를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낀 철학이 한번 접하고 나면 아이스크림과 같은 달콤함을 준다는 것. 그건 철학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고 인생의 힘든길에 반려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쉽게 읽혔던것은 아니다. 최근에 접한 고전의 영향으로 동양편은 쉬이 읽혔지만, 접해보지 않은 서양편에서는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대목도 있었다. 한밤을 꼬박 한페이지와 씨름하다 끝내 넘기지 못하고 힘에 부쳐 제풀에 쓰러지기도 했다. 내가 보고있는 것은 활자이지만, 문장은 전혀 이해되지 않은 이국의 언어를 대하는 것 같은 이질감에 내 두뇌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의미 있는 삶은 힘든 삶이다. 늘 우리 앞에 놓은 길은 전인미답의 길, 어렵고도 힘든 길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가야 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다. 이 힘든 길을 가는 모든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고전은 좋은 반려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라는 저자의 글처럼 고전은 삶에 있어 힘든 결정의 시기에 위로를 줄수 있고, 나 또한 그러한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황광우는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한다. “철학하라”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그의 명령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철학 하자”고, 굳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는,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저술한 문구를 빌지 않더라도 말이다. 난 아직도 선택의 고민에 서있다. 아무리 맛이 좋다고 모든 아이스크림을 용기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난 이 책을 덮은 뒤에도 내가 선택할 아이스크림 맛을 고민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입맛을 사로잡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를 향한 강렬한 열정과 사유가 없었다면 공자도 플라톤도 위대한 고전을 완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사유하라’‘철학하라’고 주문한다. 사유와 철학의 힘은 불안한 개인이 생각과 실천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이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찬는 것이다. 사유와 철학의 힘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니까 모두 다 함께, 사유하라. 그리고 철학하라.”
|
|
황광우의 철학시리즈, 그 3번째 책으로 구매한책이다.
일단은 이 책을 읽기전에 읽었던, 저자를 처음접했던 책인 철학콘서트1은 살짝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워낙, 이슈와 책의 명성에 기대를 많이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철학콘서트2는 꽤나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처음접한, 철학콘서트1에서는
작가는 너무 얕은 깊이의 서술로, 몰입을 어렵게 했다.
타겟독자층이 아닌 예상독자층(정말 '일반인'들은 이런책을 사지않는다. 사상에 관심이있거나 인문학에대해 관심이 생긴사람들, 혹은 적어도 마지노선으로 고등학교때 윤리가 재밌었던 사람정도가 이런류의 책을 구입한다. 그외의 '일반인'들은 베스트셀러기 때문에, 책 표지가 예쁘기 때문에 따위의 이유로 구입은 할지 모르겠지만, 책을 사도 읽지않고 숙성시킴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을 만족시키기엔 너무나 얕은 호흡과 함께 사실의전달/교훈의전달 어느 하나도 그 전달이 확실히 매력적으론 다가오지 않았던 1권인데.
이는 (나중에 생각해 볼 때) 아직 내가 이전의 철학책들에 익숙해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철학콘서트1을 구매했기 때문에 얻은 생각이였다.
아직까지는 '황광우'가 '철학'을 왜 '콘서트'까지 해가며 전달하고자했는지 알지못했고 작가도 누구나 알만하게 뚜렷히 표현하지는 않았기때문에.
그것을 알기 시작한. 2권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이제 세상이 바라보는 사상가가 아닌 자신이 감명깊게봐 남들에게 보여주고싶은, 정말 일반적으로는 사상가(광의)이긴하나 사상가(협의)처럼 생각되지않는,
그런 사상가에도 주목하기 시작한다. 예를들지면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이다.
또한 기존서적에서 잘 다루지않는 무함마드에 대한 입문적 서술도 상당히 눈 여겨 볼만하다. 이는 작가가 크게 한중일문화권 과 서양(주로 그리스)에만 치우친 강독을 해온것이 아니라 다소 우리나라에선 마이너하게 여겨지는 세계적인 사상에 대한 관심과 글을 쓸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균형되고 근시안적이지 않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사상의 서술에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작가가 근시안적인 멍청이라면 사상가의 시간초월적이고 공간초월적인 어떤 생각의 핵심과 원류를 파악해,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느낄수있게 전달 하는것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멍청이들은 거의 철학책을 쓰는 모두에 해당하는데, 이들에게서 얻을것은 오로지 사실의 전달뿐이다.(심지어 그마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매우많다.)
이는 고전/사상에 대한 공부의 커다란 의미를 파괴하는데, 고전과 사상은 예전의 책/생각이라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유념해야할 책/생각이고, 또한 그 생각 이상의 것을 '나'를 대입해서 읽을때 얻어낼수 있는 것이 있다는것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의 역활이 중요한데, 작가는 그 유념해야할 것을 잘 짚어주고, 얻어낼수 있는것을- 내가 아직 얻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때조차 어느정도는 얻어내 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근시안적인 멍청이라면 그것의 가치, 말하자면 기체 같은 은은함과 유동성과 응용성 그리고 깊이를 지닌 그것을 전달하기는 커녕, 본인조차 그 자체로는 소화가 안되서 자신의 그릇에 맞게 훼손해 얼음한덩어리로 만들어 내놓기 때문에,
황광우가 천편일률적이고 단편적인 서술만을 모지란 세계관으로 내놓는 작가와 같은류의 작가가 아니라, 사견이 아닌 사실을 가지고도, 방향을 제시해줄수 있는, 어찌보면 정말 철학책에 맞는 '철학적'작가임을 확인했던것은 이런점에서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아무튼 1권이 준비운동이였다면 2권부터는 황광우는 자신의 주관을 많이 개입한다고 볼수 있겠다. 철학콘서트로 남의철학을 얘기하는것이 아니라 편재부터가 서서히 본인이 고전으로 얻은, 혹은 사상가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로 구성된 작가의 철학적 세계에 기초해 있다. 이미 올라온 사상가 목록만으로 주관적인 이 책은 상당한 독창성과 함께 수록된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사상에대한 근시안적인 편협성(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법한)을 제거해주며, 해석함에 따라 이가 전통적인 사상가들에 결코 뒤지지않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옴을 상기시켜준다.
아마도 1판의 대박 으로 작가는 자신의 날개를 조금은 더 보일 준비를 했나보다.
그리고 대망의 3판. 3판은 황광우의 이름을 보자 바로 구매했다. 이유는 단순히 철학과를 나와 배운데로 서술하는류의 '펴낸이'가 아니라 창조적인 '작가'임을 2편으로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고 2편도 괜찮은 호응을 얻은 그가 3편에서 얼마나 세계를 뽐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번째 접한 황광우의 책. [철학하라]는
철학콘서트와는 비교할수없는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적지않은 사상(책이 두껍기도 하지만 사실 책의 분량을 고려해도 매우 많은편이라고 할수있다.)에도 불구하고 깊이를 잃어버리지 않은 이책은
피상적인 철학의 이해. 예를들자면 프로이트를 겉으로만 들먹이며 가짢은 소리만 해대는 종이가 아까운 심리학책등에서 볼수있는 그런것들을 철저히 경계하면서도, (내용 서술에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다. 결코 '내용적'측면에서도 깊이가 얕지 않은 책이다.)
지식의 습득뿐아니라, 컨텐츠가 자체적으로 가지고있는것 이상의, 통일된 책의 맥과 테마를 짚을때 얻을수있는 교훈적이고 지시적인 무엇을 가지고 있다.
사상에대한 설명에서 당연히 지면과 수를 생각할때 아주 체계적이고 기초개념적인것부터, 사상가를 완전 이해하고자, 서술한 책은 분명히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사상에 대해 관심이있었고 조금이라도 지식이있었던 사람에게는(본인도 전공자 아니고 철학책을 그리 많이 읽은것도 아니나 충분히 독파할수 있었다.) 단비같은 책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사상에 대한 단순하고 일률적인 소개를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고전의 의미에 대해. 고전의 필요에 대해.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것에 대해. 단순히 고전 그 자체가 아니라 삶과 접목해 얻은 '선배' 고저니스트의(혹은 고전매니아라고 할수있겠다) 가르침을 함께 전달해주도록 목적된 책 임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인 서술과 정보의 전달이 주를 이루는듯해보이지만, 책을 천천히 탐독해 본 후에는 얼마나 작가의 주관성이 개입됬는지와 그 주관성이 얼마나 값진것인지를 알고 이해하게 된다.(어떤 텍스트(나무)로 그 이유를 강조하는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책을 다 읽었을때, 그 나무를 다 본후, 숲을 조망하게 되면 진정한 이 책의 주제가 보인다.)
이책은 강의와 가까워 보이지만 알고보면 강의보다는 가르침에 가까운 책이다.
그리고 나는 철학에 관심이있는 모든 사람들이 먼저 고전을 읽고 공부해온 이 '선배'의 얘기를 들었으면 한다.
이 책은 사상의, 고전의 그 내용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정주의 시중 한 구절을 변주해 시작한 이 책의 서문이야 말로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바다.
우리는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
아무리 두꺼운 책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이 당위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수있다.
역시 이는 작가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철학류 도서를 쓰는 작가가 단지 책을 펴낸다는것만으로 그것의 학습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있음이 꼭 담보되지는 않음을 유념해야한다. 이런사람들이 써낸 책들은 소위 '인문학적'인 소견으로 봤을때 모두, 영혼이 없는 거짓된 책이다.)
나는 공부를 깊게한 학생도아니고, 인생의 깊이를 아는 나이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커다란 감동이 (그 자체의 힘과 무관하게), 깊게 들어오기 힘든, 얕고 적은 24세의 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적지 않았다.
다소 제한된 분량에 최대한 풀어놓고자 하는 욕심인지 책 부분부분에 한면에 너무 많은 전문적 이론이 들어있어 다소 소화하기 힘겨운 파트가 있기도 하지만, 그런점들을 다 고려해 본다 해도, 사실의 전달과 작가의 주관 전달,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책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특히나 그 주관전달이 부분부분 은근한 강요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책 전체를 조감할때 나타난다는것이 이 책의 진수이자 미학적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 책의 제목이 왜 '철학 설명'이나 예전같이 '철학콘서트3'이 아니라 철학'하라' 인지 알수 있다는 말이다. 철학, 사상류의 서가에서,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을 어려운 말과 번역투로 적당히 버무려 그럴듯하게 출판하는 책들 혹은 단지 '인문학'이라는 말을 팔아먹으며 종이아까운 서술을 남발하는 책들만을 찾을 수 있는 이때에, 황광우의 이 책은 발군의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사람들은 참 가볍다. 나는 그 가벼운 문화를 선도하는 지금의 생각없는 대학생의 멍청한 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대학교 와서 학문을 하기전에 자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소견은 가지고 있다.
그 방법. 그 답은 많은 곳에서 찾을수 있다. 여행이나 영화에서도, 연극에서도, 하다못해 시험공부에서도 자신과의 싸움을하며 찾을수 있다.
하지만 찾아도 피상적인 이해만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 그것에 대해 항상 절대적인 답이였던것은 고전이다.
스티브잡스가 가진 혁신성과 창의성, 창조능력과 결단성, 추진력등을 부러워 하진않고. 그가 단지 죽었기때문에 뉴스에 많이나오기때문에 단지 베스트 셀러이기 때문에 단지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에(문제는 왜 성공했냐 그사람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으며 그로부터 그 사람은 뭘 얻었냐에는 관심이 없다. 성공의 비결은? 이따위의 요행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관심사다.) 단지 남들이 사기 때문에 단지 유명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단지 아이폰을 쓰기 때문에 심지어 단지 책이 예쁘기 때문에 사놓고 읽지도 않을 그의 비싼 자서전을 사는(사실 자서전도 아니다.) 멍청한 출판업계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왜 토익공부를 하는지 자신이 왜 학점을 잘 맞아야 되는지도 모른채 공부에 대한 열의없이 기계 처럼 그냥 남들이하니까, 남들에 뒤지기 않기 위해, 단지 그냥 먹고살기 위해(중요한것은, 왜 먹고 살아야하는지, 자신의 삶의 지속적 영위의 당위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다는것에 있다. 그러면서 평생 고생하면서 굳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죽으라는 소리는아니다. 살아갈 이유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 행복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목적지도 모르고 무작정 남을따라 달리기만 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등록금이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투자한 돈만큼의 지식을 습득하려는 열의는 커녕 (그렇게 없다는 돈으로) 6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한시간동안 남의 욕을 하거나, 공부를안하니까 도저히 할게 없어서 친목도모를 빙자하며 아무의미없이 술이나 퍼마시면서 그 동안 마저 자신의 이야기가 없어, 술자리에서도 할말이 없기에, 무의미하고 멍청한 게임없이는 술자리가 진행이 안되는, 학문을 하는 大학생이라고 부르기 아까운 중학생만도 못한 공부량을 가진 지금의 대한민국 90%의 대학생들에게(사실 진정한 의미의 대학생이 아닌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생은 심지어 학생도 아니다. 공부를 안하니까.)
이책은 정말 중요한 책이다.
많은 사상가에 대한 설명과 서술에, 정보습득이 목적인줄 알고 읽고 있을 많은 독자들에게
황광우가 말하고 싶었던것은 단지,
작가가, 이 많은 사상가를 가지고 와서, 이 두꺼운 책을 가지고와서,
한 말은, 하고싶었던 말은, 오직,
책의 제목처럼, '철학하라'
이 책을 읽었을때 이 소리가 당신의 가슴에 울리고 있다면
이 책이 곧 당신에게 고전이고 사상이다.
껍데기가 되지말자.
읽고 공부하고 느껴라.
그리고 너와 나, 이제 철학 하라.
|
|
철학 ! 이 학문은 그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골치아프고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좀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동안 철학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접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철학콘서트/ 황광우, 웅진지식하우스 ㅣ2006>이다. 이 책은 <철학콘서트 2>도 있지만, 나는 1권만을 읽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하듯이, "철학은 인생의 깊이만큼 이해가 된다 "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상당히 읽기 쉽게 씌여져 있다. <철학 콘서트>에는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동서양의 현인 10 명이 소개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석가, 공자, 예수, 이황, 토머스 모어,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노자.
<철학 콘서트>에서는 10명의 현인들의 사상을 깊이있게 들려주고, 해석해주고, 그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그들이 남긴 고전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접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노자의 <도덕경>에 까지도 저자 특유의 문체로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해 주었다. 그러니, <철학 콘서트>를 쓴 저자인 황광우의 <철학하라>도 철학에 관한 이야기, 고전에 관한 이야기가 뭐 그리 어렵겠느냐는 생각에 덥석 읽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600 페이지가 넘는 책 두께부터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 속에는 동서양 인문 고전 40 권과 그 책을 쓴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읽는데만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의외로 잘 읽힌다. '1부 : 나를 찾다 (동양편)까지만. 저자인 황광우는 항상 주문을 걸듯이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곧 "사유하라", " 철학하라"라고 한다. 동서양 인문 고전 40 권. 여기에서 고전 앞에 붙은 '인문'이란 단어가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책이라는 뜻처럼 생각된다. 책의 구성은 , 1부 : 나를 찾다 (동양편) 2부: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한다. (서양편) 3부: 세계밖으로 나아가다 (서양편)으로 되어 있다.
![]()
![]() 여기에서 내가 1부는 읽기가 수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학교 교육의 결과인 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도덕, 윤리, 한문 등을 통해서 동양의 인문고전인 <논어>,<맹자>, <도덕경>, <순자>, <대학>,<중용>, <목민심서>, <성학십도> 등에 나오는 구절들은 그래도 많이 접해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순자이다. 우린 그동안 공자와 맹자를 더 잘 알아고 있었다. 그것은, " <순자>에서 주장한 사상때문에 순자는 죽은 후 유가 사상사에서 '찬밥'신세가 된다. '성악설'을 주장하고 '인격자로서의 하늘을 부정'했기때문이다. 특히 송나라 주자가 성리학을 완성하면서 순자의 학문은 거의 이단시된다. 그러나 이제 성리학 관점에서 자유로워진 학자들은 순자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는 <순자>가 담고 있는 체계적이고 풍부한 사상을 재평가하는 것이다." (p. 44) 순자의 예가 공자, 맹자의 예와는 조금 다르며, 순자의 사상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다. 그래서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되데, 그것은 문제제기하는 방식과 논증하는 방법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순자의 <왕제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의 구절들이 비교되기도 한다고 한다.
제1부에서 어려운 부분은 나에게는 언제나 이황과 이이의 사상 비교이다. 학창시절부터 혼동을 하곤 하던 그 이기이원론. 여기까지 읽으면서 책 속의 한 구절, 한 구절이 구구절절 옳은 말들뿐이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깨달음이 있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같다. 특히, 저자는 인문고전들의 내용을 현실의 실생활과 연결지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tip>이란 공간을 이용하여 인문고전을 쓴 사상가들의 일생, 일화까지 들려주니,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 책을 읽으면 안다. 텔레비젼을 보고도 지식은 알 수 있다. 물론 아는 것은 중요하다. 모르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 (p. 58) 특히, 마음에 와닿던 노자의 도덕경과 현실과의 연관을 지어 생각해 본 구절이 있어서 적는다. " 어떻게 사느냐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중요하다. (...) 노자는 컵과 집이라는 형체의 형식에 집착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형체에 집착하면 그 쓰임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 (p. 70)
또한, 삶과 사상이 하나였던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내용은 현실의 데자뷰가 그 책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요즘의 정치계나 권력층에게 따끔한 질책을 던진다. " 백성이 궁핍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위정자의 커다란 임무다. 백성이 배부르도록 그 일을 마련하는 것도 위정자의 임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다. 사람들이 일할 수 있고, 교육받을 수 있고, 병을 고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지도자다. 어느 이익 집단에 휘줄리지 않고 국가와 지역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지도자다. " (p. 156) 마치 조선시대에 오늘날을 들여다 보고 그의 생각을 적은 것같은 이 문장이 왜 이리도 마음에 다가오는지.... 동양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마천의 <사기>. 그것은 바로 사마천의 처절한 고통, 갈등, 방황,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산물이 아닐까.
![]() 이렇게 제 1부는 재미있고,흥미롭게 다가온다. 그에 비하면 동양의 인문고전에 비하여 좀 낯설게 느껴지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서양의 인문고전들이다.
기라성같은 작품들. <고백록>,< 순수이성비판>,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꿈의 해석>,< 역사철학 강의>,<자유론>,< 자본론>,< <국가>,<정치학> <군주론>... 이런 인문고전을 남긴 사상가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니체, 밀, 마르크스, 베버, 홉스, 로크.... 책이름과 사상가의 이름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어려운 책들과 사상들이다. 그래서 동양편을 읽을 때보다는 서양편을 읽을 때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해도 힘들게 된다. 그나마 심리학에 공헌을 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쉽게 느껴진다. 인간이 꾸는 꿈을 가지고 그 뜻을 해석하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심리학에 일조를 하였으니. 그래도, 서양편의 마지막 6장인 세계밖으로 나아가다 <과학편>은 과학적 인문 고전들이어서 이해가 쉽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긴 갈릴레오. 그것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었을까? " 아니, 그것은 지나간 과학과 새로운 과학의 충돌이었고, 나아가 우주를 바라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 (p. 550) 그 유명한 명언마저 갈릴레오가 실제로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당시의 사회분위기와 한 과학자의 냉소를 잘 보여주는 한 문장이고, 역사 속의 한 장면인 것이다.
과학사의 한 획을 그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뉴턴의 3대법칙'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이 담겨 있는 <종의 기원>. 다윈은 인간의 오만에 경종을 울리고 생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룬 과학자가 아니던가. 물론, 아직까지도 진화론과 창조론은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처럼 책읽기는 때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놓아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하고, 아무리 쉽게 풀이해 주어도 가지고 있는 지적 수준이 모자라서 힘겹게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달콤하고 읽기 쉬운 책들에 길들여지기 보다는 세기를 넘어 공존하는 인문 고전들을 접하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인 황광우는 새로 출간된 또 다른 책 < 고전 혁명 : 리딩멘토 이지성과 인문학자 황광우의 생각경영 프로젝트 / 이지성, 황광우 공저 ㅣ 생각정원 ㅣ 2012>의 인터뷰 기사에서 " 천 권의 책보다 한 권의 고전을 읽어라" 라고 말한다. "그건 바로 고전을 읽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에 책을 20, 30권씩 주문해서 읽습니다. 밤새워 가며 읽어요. 그런데 서른 권 중에 ‘정말 이 책 잘 만났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한 권이라도 있으면 아주 행복한 독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은 천 권의 책을 구입해도 만나기 어려운 책이에요. 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고전 한 권을 읽으면 비용도 절약될뿐더러, 훨씬 더 위대한 효용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 선택인가요.” (채널예스 인터뷰 기사 중에서) 물론, 마음먹고 한 권의 고전을 샀다가 읽지도 못하고 책장 속의 장식품으로 남으면 안 되겠지만...
일반인들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책들인 인문고전들. 이 책들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은 그 책은 과거 속의 책들이지만,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고, 지금이 있게 한 책들이고, 앞으로 우리, 그리고 우리사회를 만드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콤한 책들이 아니라고 도외시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가가는 독서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문고전을 통해서 "사유하라", "철학하라"는 황광우의 말이 힘있게 다가온다.
|
|
세상은 점점 존재 자체가 가벼워지고 있다. 지식도, 정보도, 문화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하나로 가볍게 해결한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성경도 점점 더 스마트하게 읽힌다. 세상에 비난을 받을지언정 제 욕망에 따라 철새처럼 가볍게 날라 다닌다. 시대변화에 잘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얄팍함만 난무한다면 결국은 그 존재 자체를 가볍게 하고 만다. 세월이 흘러도 묵직한 고전이 빛나는 이유도 그것이다. 고전은 스스로 남다른 혜안을 제시하지만 모두가 보편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비록 동양과 서양고전이 다른 견해차를 보일지라도 그 근본은 인류의 역사와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도덕을 떠받치는 주춧돌과 같다. 그것이 버티고 서 있는 한 그 어떤 외투를 갈아입어도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경제가 암울한 때에도 고전은 귀한 버팀목이 된다. 작금의 경제는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 춤추듯 소인배들은 정권의 시녀역할을 자처하며 불나방 춤을 춘다. 하지만 진정으로 존경받는 인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군자의 모습이다. 난세에 난 영웅들과 혁명가들은 모두 그 속에서 배태된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고난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 디딤돌이었다. 황광우의 〈철학하라〉는 고전의 깊이를 통해 존재의 무거움을 다시금 생각토록 하는 책이다. 불확실성이 판을 치는 시대에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고 깊은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은 고전을 통해 스스로 사유하는 길 밖에 없다는 뜻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노리개 감으로 전락하는 소인배들이 들끓는 시대에 진정한 군자의 길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일깨워 준다. "사람들은 권위를 숭배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위대한 사상가들이 뱉어 놓은 말을 쉽게 믿어 버린다. 그런데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푸르른 것은 저 영원한 생명의 나무'라는 말처럼 현실은 끊임없이 이론의 변화를 요구한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길 싫어하는 사람은 훌륭한 신앙인은 될 수 있어도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주체적인 인간은 될 수 없다."(서문) 바로 이것이 그가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철학하고 사유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아무리 위대한 소크라테스와 공자와 석가모니가 한 말이라도 각 개인 스스로가 그 말을 되짚어보고 곱씹어 보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을 몸소 체득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말이 힘이 있는 이유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삶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까닭이다. 그걸 위해 독자들 스스로가 동서양 고전으로 철학하고 사유하길 원하는 것이다. 황광우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그는 우선 이 책을 통해 동서양 고전 40선을 선정하여, 동양편에서는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심연을 드러내고, 서양편에서는 정치·경제·철학·심리·법·과학 등 외부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다. 물론 초보자들도 각각의 고전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각 장마다 개괄적인 안내를 빠트리지 않고 있다. 나 같은 고전에 대한 초짜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부분이 그것이다. "어떤 나라도 영원히 강할 수 없고, 또 영원히 약할 수도 없다. 강함과 약함은 그 나라의 법을 받드는 자에게 달려 있다. 그가 강하고 곧으면 그 나라는 강해지지만 그 사람이 그렇지 못하여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못하면 그 나라는 약해진다. 《한비자》〈유도(有度〉"(168쪽) 이는 강력한 지도자가 강대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했던 한비자(韓非子)의 원문을 직접 인용한 글귀다. 한비자는 왕의 권력이 하늘에서 부여한 것도 아니고, 그가 군자라서 주어진 것도 아니라, 단지 '왕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왕권을 쥔 이라고 내다본 이였다고 한다. 그는 왕에게 필요한 것은 포괄적인 법치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 다시 말해 누가 봐도 명확하고 분명한 법 적용을 행사하는 지도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걸 요구한 한비자에게 진시황은 죄를 묻고 사약을 보내 자살케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대명천지 21세기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쓴 황광우도 실은 19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살이한 인물이었으니, 그 어찌 한비자의 원문을 읽으며 땅을 치고 하늘을 향해 분노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옥중에서 고전과 씨름하고 성경으로 사색한 고뇌의 편린(片鱗)들은 그의 존재감을 더 무겁게 드러내게 한 주춧돌이었을 것이다. |
|
대부분의 공대생처럼 인문 고전을 거의 읽지 않고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취업을 해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특별히 인문 고전을 읽지 않아도 손해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무언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전에 도전하기로 했지만 역시 고전은 어렵고 지루했다.
이 책은 총 40편의 인문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책은 고등학교 도덕 시간에 간략하게 저자의 이론과 같이 외웠던 한번은 들어보았던 것이다. 목차를 보면서 겁먹었던 것에 비하면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책 자체가 고전의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만으로도 ‘사유하라’, ‘철학하라’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최근 들어 인간이란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라는 생각이 깊게 들고 있었는데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순자의 주장이 새롭게 다가왔다. 순자는 단순히 성악설을 주장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주장의 무게중심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예를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책을 사서 읽다가 우리의 역사를 너무 과장되게 서술한 것 같아서 중간에 관두었다. 단재는 일제의 침탈에 맞선 독립의 방법으로 우리 역사의 위대함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가 임나일본부설을 근거로 우리나라 침략을 정당화했기에 그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조선상고사가 쓰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시절의 관점에서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읽어도 잘 이해하기가 어려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도 정당하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의 책에 관심이 갔다.
고전을 읽으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립할 수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고전에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고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당시의 시대 상황과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에 관심이 있지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
누군가는 나를 키운것은 팔할이 바람이라 하고 누군가는 나를 키운것은 팔할이 고전이라 하는데 아무리 돌이켜보고 되짚어봐도 나를 키운것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기만 하다. 고전에 탐닉해본적도 없고 바람에 나를 온전히 내맡긴적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흐르고 흐른 시간이 세월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철학이란 (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평소의 내생활과 철학을 연관지어 생각하기에는 더더욱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여기고만 있었다. 우연치않은 기회에 생각정원에서 나온 [철학하라]라는 책을 받아들고서도 일단은 책의 두께에 놀라고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문고전들의 이름에 놀라고 책을 펼쳐들기도 전에 겁부터 더럭 나는것이 사실이었다. 처음 산행을 한다고 했을때 목적지가 정해져있다면 주위의 경관을 둘러볼 여유는 없이 그저 목적지까지 가는데 의의를 두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황이다. 철학하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운일이라고 일단 인정을 해버리고 일단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을테니 이책을 온전히 끝까지 읽어나가는데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길을 찾아갈때는 어렵지만 같은 길을 두번째에 찾아갈때는 조금 더 수월할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앎'을 향한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모르고 있던 철학이란 세계를 알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것만으로 철학하라는 충분히 내게 의미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동양과 서양의 인문고전 40선을 다루고 있는데 서양편에서 다루고 있는 고전들보다는 동양편에서 다루고 있는 고전들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세계라는 가치관과 나를 연관지어 말하는 서양편에 비해 동양편에서는 주로 내속의 나를 찾는 자아성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한자의 영향권에 있었기때문에 공자나 맹자 순자등의 성인들의 사상이 알게모르게 흡수되어 있기때문이기도 한것 같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학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정반대의 것이라고 여겨지기쉽지만 사실 그들은 똑같은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았는데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을뿐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황폐화된 상황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찾으라는 희망을 던져준 것이고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니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전하려고 한것이다.다르지만 결국엔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하나는 좋은 것이고 하나는 나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름이 있어 옳음이 가치 있고 불행이 있어 행복이 소중하고 미움이 있어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p69중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두개가 붙어다니는 말들이 있다.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의 면만 보면서 뒤에 감춰진 다른면은 간과하기 쉽다.빛과 그림자, 유와 무 대비되는 하나의 짝이 있기에 다른 하나가 빛을 발하고 가치를 인정을 받는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그러니 드러나는 것에 집착할 이유 또한 없는것이다.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 '중'이며,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바른 것이 '용'이다. 그러므로 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올바른 도이고 용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켜야만 할 일정한 원리다...'p98중에서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나또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는 오역이며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고 한다. 과유불급은 중용의 중을 의미한다. 틀리게 알고 있던것들을 하나씩 배우며 고쳐나가는것 또한 '앎'을 대하는 태도인것 같다.
요즘 전혀 흥행하지않을것 같았던 영화 [부러진화살]의 반응이 심상치않다는 기사를 접한적이 있다. 아직 영화로는 보지못하고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대략의 내용을 보고 영화의 실제주인공인 교수의 인터뷰를 본것이 전부라서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한비자의 지켜지지 않는 원칙은 변칙일 뿐이다)편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영화가 떠올랐다.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냐라는것과 지켜지지않는 제도는 무용지물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시대는 변해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별로 변하지않았다는 생각이 함께 들어 씁쓸함을 자아냈다.
동서양인문고전 40선을 쉽게 설명한다고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 '앎'의 깊이가 너무도 얕아서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저 한권의 책을 읽어냈다는 뿌듯함이 먼저 앞선다. "삶은 열정으로 시작해서 철학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명심하고 이제 내삶의 완성도를 위해 철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볼 마음을 먹는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저자의 희망대로 분명 이책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
|
2012년은 총선, 대선 등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올해도 그렇겠지만 연봉은 안 오를 것 같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려울 것만 같다. 예전 철학콘서트를 읽고 황광우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여 고민끝(?)에 사서 읽었다.
읽은 전체적인 느낌은 지금 시점에 한 번쯤 읽어야 되지 않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편과 서양편으로 크게 나뉘어진 이 책은 동양사상들을 통해 나라는 자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서양사상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간단한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기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 바로 호연지기 가카의 호연지기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호연지기 구절을 인용하겠다.
용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이었다. 상대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당당한가다. 내가 당당하다면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당당하지 못하다면 어린아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없다. 용기는 당당함에서 오는 것이다.
문득 이 글을 남기면서 나꼼수의 김어준 총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쫄지마 시바! |
|
‘철학하라’는 저자 황광우의 동서양 인문고전 40선을 선정하여 수록한 것이다. |
|
이 책은 동서양 인문고전 40권을 선정하여 각 책에 대하여 알기쉽게 요약하고, 저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대개 철학책이라고 하면 그 높은 장벽에 선뜻 쥐어 들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덕목을 몇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40명에 달하는 철학자 및 과학자들의 생각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한곳에 편중되지 않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사실 이 책 안에는 서로 상반되는 사상과 주장들이 병치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공자의 [논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철학자의 원저를 바로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 책은 어려운 철학서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의 경우, 동양학을 전공하였으므로 앞쪽의 동양편에 나오는 책들은 접한 것들이 많았지만 서양철학에 관한 책들은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랑그' '파롤' '개표' '기의'등의 개념들이 소쉬르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저서 [일반 언어학 강의]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소쉬르는 '구조주의'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셋째,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철학'이라는 땟목에 의지하여 '고래힘줄'같은 삶을 이어온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는 서문에서 말하길 "불확실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찾는 것이다. 사유와 철학의 힘만이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적고 있다. 고교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가 구속 및 제적을 당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고, 또 다시 교정을 떠나 공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었던 저자가 붙들고 의지했던 것은 바로 '철학' 그것이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한 말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국민은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되고,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도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