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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최근 읽은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의 역사》의 저자 로저 오스본이 " 민주주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인류 최고의 업적이다.“ 라는 것을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를 통해 방증하였듯이,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시련과 도전을 겪으며 발전해왔다.
며칠 전 각시탈에서 독립투쟁을 하는 목담사리에게 이강토가 “대일본을 상대로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 "바위는 세월이 가면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언젠가 그 모래를 밟고 계란 속에서 깨어날 병아리가 있을 걸세. 살인적인 압박과 일본제국주의의 폭력도 계란 하나를 이길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올 걸세.“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정착 또한 다르지 않음을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계란에 바위치기처럼 많은 이들의 희생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렇게 힘들게 이룩해놓은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역행하고 있다. 다행이도 민주주의의 역주행을 촛불시민의 헌신과 언론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막아내었지만, 역행의 여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2008년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하 미래연)의 탄생이후 함께 해온 민주주의 연구회 소속 회원들이다. 미래연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마음껏 진보정책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참모들과 함께 설립한 싱크테크이다(p9).그러나 민주주의 연구회가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노 대통령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연구회원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루어 낸 것은 무엇이고, 이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놀랍게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엄청난 진보를 하였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서, 국민과 시민사회가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동시에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위기에 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 VS. 실질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중요시되는 만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반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결과가 얼마나 민주적인지에 따라 평가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 민주주의는 결과가 얼마나 민주적인지에 따라 평가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면 평등을 강조한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회주의로서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적 차원에 집중된다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차원을 다룬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사회주의) 가 동시에 민주주의라 불리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야기시킨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남한이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북한이 국가 이름에 민주주의를 붙이는 건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주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주권에 있기 때문이다. 《리얼 유토피아》의 저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시민이 사회권력의 주체로서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것이야말로 리얼 유토피아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시민’이라는 단어는 ‘깨어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시민에 의한 정치를 한다면 국민을 위한 정치는 자동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의 무관심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이미 민주주의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변화하는 가운데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017년이 민주주의 30년 되는 해이다. 그 30년 사이에 놀라운 변화를 겪으며 발전하여 왔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의 적(파시즘,공산주의,독재권력)이 사라지자, 국민들은 안심과 무관심으로 더 이상 민주주의를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시장의 지배, 정권의 언론지배 등 새로운 지배구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그 위험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지만, 반대로 시민의식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치학자들은 위협이론으로 설명한다. 민주주의의 적이 사라지면 국민이 민주주의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등장하면 시민들은 다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탈물질주의는 고도의 산업화를 경험한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에서 물질적 가치보다는 인권, 자유,자아실현,환경,생태,삶의 질 등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고학력,중산층, 젊은 세대 성향이 지니는 핵심 사상을 일컫는다. -P35 21세기는 탈근대의 시기로서 서구 민주 각국에서는 탈물질주의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탈근대는 근대적 합리성을 부정한다. 따라서 탈물질주의 운동의 특징은 권위와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시민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이다. 탈물질주의 운동은 탈권위주의적이라 부당한 권위에 도전하고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문화운동’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만이 아닌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는 개념이나 대통령제의 특성과 역대 대통령에 대한 비교 평가, 한국 정당의 발전과 정당개혁의 한계와 대안, 선거제도와 형식, 검찰개혁의 필요성 아울러 선진국가 건설의 새로운 방향과 모색, 시민주권론, 한국민주주의의 전개와 평가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것을 각 분야의 참모격인 교수진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모두 하나같이 글을 간결하고도 핵심적으로 써서 지루하지 않으며, 무척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현재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민주적 문화의 혁명을 이루는 것이고, 또 하나의 도전은 신좌파와 구좌파의 분열을 어떻게 극복하고 보수-진보 양 세력 간에 균형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보수 일변도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보의 연대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에릭 류(클린턴 전 미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 은 “진보주의자들이 '우리나라는 비판할 것이 너무 많아 애국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한다면, 보수주의자들은 ‘조국을 사랑한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해서는 안된다’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양쪽 다 문제다. 참다운 애국주의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월간중앙 7월호 인터뷰中에서->
나는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나 애국주의자는 맞는 것 같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에 쓰여져 있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처럼 앞으로 치러질 대선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라는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민주주의 교양서로 이 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한 과거와 현재, 미래 나아갈 방향까지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이 책이 민주주의의 밑거름으로 뿌려져 계란 하나가 바위를 이길 수 있다는 저력으로 성숙된 민주주의가 이 땅에 심어지길 고대하며, 저자들의 노고에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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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쭉 민주주의 국가이었다. 그렇지만 시기별로 우리나라에 적용된 민주주의는 달랐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뭐길래 시기별로 다를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느냐고 물으면, 먼저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지, 민주주의의 어떤 면을 말하는지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흔히 지구상에서 현재까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체계이며 정치체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 중, 무엇이 그런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서로 합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조기숙교수는 민주주의를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구분하여 살펴보자고 말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란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를 준수하여 결과가 산출되었는지를 평가하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정치적 차원을 다룬다고 한다. 그에 반해 실질적 민주주의란 결과가 얼마나 민주적인지에 따라 평가하며, 이는 경제적 차원을 다루기에 경제적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 경제질서와 만날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즉, 경제적 민주주의가 담보될 때, 자유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이 책은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소속 회원들이다. 미래연은 노무현대통령이 재임 중, 마음껏 진보정책들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참모들과 함께 설립한 싱크탱크이다. 노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많은 진보를 이루었기 때문에,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룬 시스템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과거 민주정권 10년간 이루어 놓은 것을 너무나 쉽게 허물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얻은 성과는 무엇이고,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무엇인지를 세 부문으로 나누어 알아보고 있다. 먼저 제1부인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한국의 국회, 대통령제의 특성 및 역대 대통령에 대한 비교평가, 한국의 정당발전 그리고 선거제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저자들은 각 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시기별로 파악해보고 있으며, 87년 민주화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또 2부 법치주의 에서는 정부형태 및 사법기관들, 즉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해서, 그리고 3부 자치와 시민사회에서는 지방자치, 시민주권론, 한국 민족주의의 변화와 북한에 대해서 쓰고 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12명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천착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은 맞지만, 질적으로 성숙한 민주주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 발달된 시민사회, 민주주의적 문화, 관행 및 전통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주권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며 문화이다. 그렇기에 시민혁명을 겪지 않은 우리로서는 문화를 바꾸는데 매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민주적 문화가 없이는 엘리트 민주주의는 가능할지 몰라도, 성숙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는 일반적으로 87년 체제라 불린다. 1987년 민주화 당시 결정된 제도와 법에 의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87년 체제는 두축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고 조기숙교수는 말한다. 하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역주의를 통해 공생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와 구좌파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한것 이었다. 겉으로는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문화적 보수주의란 측면에서는 이들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 수준의 국민소득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나라 중에서, 이와 같이 보수성향의 기득권 세력이 정치권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들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여론의 정치이기도 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담론형성이 민주주의 성공의 열쇠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마저도 보수권력에 취해 있음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지금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도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시민개입주의로의 이행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시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한 가운데, 국가의 약화된 권력 틈새를 언론, 재벌, 검찰 등 특권세력이 비집고 들어온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네트워크와 문화가 우리가 가장 역점을 기울여야 할 분야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하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쉽게 말하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고 하는 민주주의, 그런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우리에게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용수 연대교수의 역대 대통령의 비교평가에 나온 대목 중 한마디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대통령무한책임제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금 정권에 와서는 대통령이 사회 헤게모니와 유착한 결과, 대통령무책임제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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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질문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박정희와 노무현으로 대별되는 보수와 진보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이념적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부분 그냥 생활에 맞게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기에 이런 구분도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대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자기 경험에 기인하여 변화를 모르는 이념의 고착화가 된 느낌도 받기도 한다. 정치화보다는 경제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우리의 이념인 것 같다. 그러나 보수층으로 대별되는 사회기득권 세력은 점점 뭉치고 대형화되는 느낌인데, 소위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은 점점 분열하여 소그룹화 되어 보수와 진보간의 균형이 유지되지 못하는 것 같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쫓기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적정한 균형이 그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중요 원동력이 일 것이다. 우리도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그 제도나 배움은 알지도, 실천하지도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 민주시민으로써의 양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변화하면 정치와 문화는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우리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도 취약하다. 한국민주주의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나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질적인 성장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한 허상일지 모르겠다. 발달되지 못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적 문화와 관행 및 전통의 부족과 민주주의 문화와 규범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결여되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는 최고의 가치이며 정치체제이다. 전체주의적 의사결정을 하는 공산주의 국가들도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경제질서의 결합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능동적, 자발적 개념)에 의해 운영될 때 성취된다. 3대 시민권은 참정권, 복지권, 자치권이나, 투표참여율은 낮고, 조직가입률 또한 낮다. 아직까지 자력으로 시민후보가 집권한 적 없다. 물론 최근에 2008 촛불집회 등 시민주도운동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권위와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시민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대통령이 정치를 지배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참여정부, 노무현대통령의 탈권위주의는 잠시 반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제왕적 대통령을 욕을 하면서도 바라는 것이 국민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과 지역주의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대통령만 초과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적이었을 뿐 사회 곳곳에 권위주위 잔재와 문화,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한국민주주의는 국민 민주의적 문화가 없어서 언제라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최고가치는 투표가 아니라 합의이다. 모든 것을 투표의 표의 수로만 해결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인 문제는 많이 발전하였으나 성장주의 유산의 영향(국민생각 변화 없음), 대안부족, 국민적 합의 없음, 기득권 연합 등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 복지냐, 발전이냐? 로 양분된 경향이 있다. 좌파들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대중을 가르치려 들고, 대중은 민주화운동을 하고 원하지만, 엘리트운동권은 민중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보수 일변도 사회이기에 균형사회로의 도달이 힘들다. 우리모두의 실패. 시민 사회의 미발달은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는 주요 원인이다. 사회논객들은 한국정치를 망치는 주범으로 서구에서 발전한 이념적 잣대로 좌우의 논평만이 존재한다. 일부 교수들은 전문성도 없이 마구잡이 논평하여 국민을 현혹하기도 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타협 등 갈등해소하고 제도권 내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제도적 발전은 이루었으나, 국민의 신뢰는 감소하였다. 각 정파간 갈등조정에서 합의적 대의기관 모습이 사라지면서 정당들의 정쟁의 장으로 비치고 있다. 의회는 전문성보다 사회적 대표성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의회의 활동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인력과 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파행적 운영으로 쟁점 법안 처리문제에서 폭력적이고, 비제도적인 수단까지 동원하기에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정당에 의한 국회의원의 자율성 제약과 합의된 의사규칙 마련 없음(쟁점법안)으로 민주적 운영을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 성과나 결과보다 절차와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율성을 제고할 방안 모색과 기록표결 폐지 등이 필요할 것 같다.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독자적인 정당성에 기반하나 권한 행사에 따른 국민전체와 지지자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도적 권한은 포괄적이고 강력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에 의존하거나 제약 받을 수밖에 없는 의원내각제요소를 가지고, 여야간 의석비율이 대통령 국정운영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과 브라질 대통령에 비해 권력이 강하다고 보기 힘들다. 과연 우리의 정당은? 정당발전을 위한 국회선진화방안이 필요하다. 정당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사당운영에서 공당운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정당개혁을 무엇보다 지구당 활성화, 공정, 진성당원제의 확대, 당원공천제, 국민참여경선제, 집단지도체제와 거버넌스(협치)문제, 지구당 폐지, 모바일투표 등이 필요할 것 같다. 정치과정의 합법화(법에 의한 지배)와 네트워크정당 그리고 중립적인 선거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선거는 민심표출하고 집약하는 가장 좋은 제도로 정당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 정치불신과 무관심으로 민심을 잘 모으지 못한다. 선거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엄격한 정치자금법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 또 지역구도의 혁파, 현재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는 경쟁 없이 낮아 경쟁력 있는 정치인 별로 나오지 않는다. 선거관리와 선거비용 등을 관리하는 선관위의 정파성으로 인한 행정지도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와 사전선거운동의 기준의 모호함을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정부형태는 입법권과 행정권 사이 관계로 잘 나타난다.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권력의 분산과 효율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방분권과 헙법원리, 권력분립을 통한 독재의 방지와 공화적 국가운영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선택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에 내각제 등의 개혁은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정치제제 안정성이 취약하여 다당적 성격이 강하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정착이 안되었고, 규제 중심적 선거법으로 인한 대결과 배제에 의한 결정이 지배하고 관료와 이익집단의 역할과 연줄문화와 과도한 지역주의가 우리의 현실이다. 현 제도는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내각제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혼재된 상태이다. 국회의원선거는 국정심판론과 맞물려 있기에 정당에 대한 심판체제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내각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과 국민적 기반 약한 정당제도로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개헌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가능하다.
검찰개혁. 법관에게 법에 따른 재판 즉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검찰작용은 행정작용의 일종으로 형사소송의 일방 당사자로서 활동, 검찰권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였기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구속수사 기준확립 그리고 공판중심주의의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검,경수사권 조정과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검찰이나 고위공직자 등을 관리하는 공직부패수사처가 필요하다. 우리 검찰은 보수 편향적으로, 보수성향의 기득권세력이 권력독점을 독점하고 있기에 도덕성이 떨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주민직선을 통한 지방검찰청장 선거 도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법원개혁이 필요.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권리구제형 법원, 폭주하는 상고를 담당하기 위해 고등법원 상고부와 대법관 증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 도입된 국민 참여 배심(원)제는 배심원단이 사실인정 판단만 하나, 점차 참심제 양형판단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큰 인사(승진)문제에서는 경력법관제를 통한 법조 일원화, 양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국회, 청와대, 정부, 사법부 같이하는 사법개혁과 법원 내 인사시스템 개혁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고, 대법관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로 인한 헌법재판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관 선출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자치와 시민사회. 지방분권과 사무의 지방이양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자치경찰, 교육자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까지 지역이기주의와 균형발전의 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민네크워크의 정치는 시민참여로 거대정당(정당 관료의 지배)의 정당개혁운동, 제도권 정치과정 내 논쟁, 토의 대 텔레비전 등 매체를 통한 시민에 호소(미디어 엘리트)하여 그림자 대화, 청중민주주의, 시민친화적인 정당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결망이 오프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소셜선거 문제는 세대 자체가 계급이라는 새로운 구분이 생긴 것이 아닐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의식을 가진 시민의 등장과 이들의 능동적 정치개입은 중요하나, 중산층이상을 과잉 대표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소셜정당은 시민 정치가의 정당은 유권자 반응성과 전문성의 균형을 추구하고 집단지성형 정당으로 소셜네트워크 모니터링으로 민의를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끼리끼리 당파적 토의만 활성화와 인터넷, 트위터 등 매체의 표피성 수반하기에 시민교육과 다층적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우리는 1민족 1국가주의로 민족이 개인에게 최고의 충성대상이 되어야 했고, 민족주의가 곧 민족정체성으로 단일민족 관념이 지배하고, 민족의 우수성 부각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최근 한민족인 조선족과 고려인 그리고 새터민을 받아들이는문제에서 조선족과 고려인은 무시와 동정을 새터민은 차별과 배제가 보인다. 이주, 결혼 등 다문화로 나아가지만, 외국인은 손님이라는 생각과 외국인노동자에게는 배타적이나 결혼이주자에 대해서는 비교적 수용적이다. 재일교포의 일본국적 취득 한민족정체성 포기한 것이고, 재미교포가 미국국적 취득해도 계속 한국인으로 여기는 이중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남북교류(김대중, 노무현) 확산으로 점점 통일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었다. 너무나 다른 현실에 점점 이질적인 집단이란 인식이 강화된 것 같다. 통일에 대한 인식변화와 대북인식변화로 우월적 반공의식으로 전환되었고, 친미 의식 약화되었지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중요하다. 한국민주주의는 한국전쟁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5.16 군사쿠테타로 전두환 군사정권의 급진주의 와 6월 항쟁과 6.29선언 그리고 3당합당과 문민정부 민주주의의 출발기, IMF국민의 정부 양극화 참여정부로. 경제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 던져진 ‘어떤 삶이 잘 사는 것이냐 ” 분배정책을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분배구조 개선은 실패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또 이명박 정부는 권위주의 정권으로 회귀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역행하는 것이 아닌지? 무엇보다 민주시민 양성과 생활 속의 민주주의와 제도적 지배를 통한 높은 수준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도덕적 성찰 없는 발전은 공허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끝나지 않는 여행이다. 국회, 검찰과 법원 그리고 정부의 개혁은 국민들의 수준이 향상되고, 민주화에 대한 의식이 명확하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여러 학자들의 한국민주주의 진단, 깨어있는 시민들을 위한 글 어쩌면 너무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라는 관념과 관련제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적으면서도 비난을 쉽게 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함께 한다.
*민주적인 제도와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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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는 그렇다치고,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는데 마침 이 책이 나와 반갑기 그지없다. 헌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만, 앞으로 갈 길이 구만 리라는 느낌 뿐이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있어도 '민주주의'는 보수도, 진보도 모두 한 목소리여야 할 텐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조차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애국'과 '빨갱이'로 나뉘어 '있는 놈'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되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가 하면, '없는 분'이 쫌 불평불만을 토로하면 세상이 너무 좋아졌네라면서 '빨갱이' 짓거리 하려거든 북녘으로 가라는 둥 얼토당토 않는 대답이 들려오는지라 민주화에 이르기엔 <일모도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4·19 혁명을 이루어내고, 5·18 민주화 운동을 치르며 수많은 배우미(학생)들을 앞세워 피를 흘렸고, 넥타이 부대가 거리를 행진하며 6·10 민주 항쟁을 통해 이 땅에 독재의 그늘을 떨쳐낸 듯 싶었다. 또 김영삼 문민정부는 그렇다치고서라도,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 정부, 10년 동안 이루어낸 '민주주의 성과'를 보면서 드디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되었구나 싶었었다. 그런데 웬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4·19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들 뿐이다.
대선을 치룬 2007년만 해도 이 땅에 민주주의는 단단히 뿌리를 내렸으니 이제 먹고 살 일(경제)만 해결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여론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덕은 좀 땅에 떨어져도 돈만 벌게 할 수 있다면, 또 몇몇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이제는 깨어난 국민들이 무서워서 다시는 '독재'와 같은 허튼 짓을 하지 못하고, 나라 살림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고 <낙관론>이 넘쳐났었다. 그러면서 '도덕이 밥 먹여주냐? 경제를 먼저 살려야 한다'면서 부자감세를 외치고, 낙수효과(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걷고 투자를 유도하면 자연스레 서민들에게로 그 혜택(내수성장, 일자리 창출 등등)이 돌아갈 것이라고 한 거짓부렁)를 맹신하라고 했었다.
헌데 그 결과는 부자들의 배신이었다. 부자감세를 한 만큼 투자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비만 부추겼다. 그나마 그 소비라는 것이 내수성장을 위해 국산품 애용하고, 서민들에게 보탬이 되는 소비였으면 참 좋으련만, 고급수입외제품만 불티나게 팔려 외화낭비한 것으로도 모자라, 투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자리 창출 또한 지지부분한 덕분에 '중산층'이 완전히 사라지고 부자와 서민으로 갈라지는 양극화 현상만 가중시킨 꼴이 되었다.
거기에 정치인들의 비리는 날로 가관이어서 이명박 정권 말기가 되자 그 뻔뻔한 명박이도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서 또다시 말뿐인 사과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긴 정권 초기에 일어났던 '촛불집회' 때에도 말뿐이었는데 그 버릇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젠 정말 꼴도 보기 싫을 뿐이다. 진짜로 마음 같아서는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루지 못하고,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모자라, 가족들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어째 더럽기로는 역대 최고인 명박이는 그리도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 것인지, 그 뇌구조가 궁금할 뿐이다.
헌데 그것보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명박이 정권'이 잘 한다고 평가내린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정권이 경제를 못 살렸으니 욕 먹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도 칭찬하는 부류가 있다. '빨갱이들' 솎아낸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빨갱이? 친북세력? 아직도 반공타령이나 하고 있을 땐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왜 남과 북은 흥정은 멈추고 싸움을 붙이려고만 할까? 설령 빨갱이가 있다손치더라도 깨어 있는 국민들이라면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정도의 역량을 충분히 키웠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빨갱이 타령이 끊이지 않는 것은 엉뚱하게도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복지>와 공산사회주의에서 말하는 <배급>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데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무상 시리즈>로 발단된 빨갱이 타령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진보쪽에선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면서도 예산 마련이 쉽지 않은 형국이고, 보수쪽에선 선별적 복지를 내세우며 부족한 예산을 빌미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정작 서민들에게도, 또 부자들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복지>는 민감한 현안이며,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매우 심각한 현상이지만, 우리 나라처럼 엉뚱하게 '이념논쟁'으로 불똥이 튀지는 않고, 오직 예산안 마련을 위해 부자감세 등 여러 방안을 논의하는 수준이다. 헌데도 왜 우리는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아직 우리 나라에 '민주주의'의 토대인 토론문화, 담론문화가 꽃 피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와 타협에 서툰 모습에서 여전히 탈피 못하고 있는 대표격이 바로 <국회> 아닌가? <정부>는 또 어떻고.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어서 행정각부 스스로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책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통령만 바라보고 처후를 기다리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니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디 행정각부 구성원들 뿐이겠는가. 국민들도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그저 대통령의 처분만 기다리는 판인데 말이다.
우리는 분명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나름 성과라면 그럴 것이다. 허나 앞으로 풀어야만 할 과제가 더 크다고 본다.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토론문화와 담론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촛불집회와 같은 국민의 목소리에 물대포로 화답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는 것인지 근원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도 촛불집회에 나온 이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그 많은 초는 누가 산 것인가?"란다.
분명 배후세력이 있다고 확정하고서 아예 작정하고 국민의 목소리 따위는 듣지 않겠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권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이다.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제왕적 대통령? 아예 독재자를 맞이 한다고 해라. 명박이 정권이 공정한 선거로 선출되었기에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다고 하는 대학교수들도 있다던데, 그럼 히틀러는?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던 대표더란 말이냐?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고문하고 학살한 장본인이란 말이다. 그래도 박정희는 경제를 살렸으니 구국의 영웅이라고? 그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산 대한민국 국민들이 박정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왜 공과를 분명히 따지면 안 되는가? 공이 크면 과는 덮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서민은 감옥행이지만, 공직자는 면죄를 주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란 말인가? 그래놓고도 대한민국 헌번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호라~ 그건 '선거철'에만 한시적으로 인정되는 한정품인가?
그래서 나는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 피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담론문화'가 꽃 피워야 겠지만, 둘째로는 부패공직자들을 국민 손으로 직접 솎아낼 수 있는 <국민소환>이 제도적으로 정착해야 한다고 본다. 파렴치한 정치인이 국민을 물로 보는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권력을 국민들 손에 쥐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러기에 앞서 감정적인 정치를 배제한 '담론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더욱 활짜 꽃피우기 위해서는 말이다. 워째, 쓰다보니 책 소개가 아니라 독후감이 되었네(")a긁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