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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범죄다.'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된 근미래, 우리에게 행복의 여운만이 아니라 온갖 희로애락을 안겨주는 사랑이라는 감정, 행위가 대대적인 규탄대상이 되는 세상이 온다. 만 18세가 되면 모든 남녀는 심사를 거치고 치료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감정을 지워버린 후에 성인이 되면 자신의 성향에 알맞은 후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짝을 선택해 결혼하고 정해진 수의 자녀를 가진다. (배우자를 정해주는 건 『매치드』 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미 망각의 기억 속으로 지워져 버린 존재이기에 배우자와도 자식 간에도 가족의 끈끈한 유대 혹은 애틋한 감정은 없다. 그저 '의무'로 인한 관계만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랑을 규제대상으로 보는 이 미래사회에서는 18세 이전의 청소년들이 서로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다. 통금 시간은 물론 남녀의 철저한 격리가 이루어진다. 흡사 과거 우리나라 조선 시대를 보는듯하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여 7세 이후 한자리에 같이 앉지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그 시대. 외국에서야 낯선 풍경일지 모르나 고전 영화나 드라마로 흔하게 보아왔던 풍경인지라 큰 거부감은 없었지만, 사랑을 치명적인 '독'으로 간주해버리는 건, 입버릇처럼 '사랑은 하며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내게는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이다.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사랑으로 인한 의식혼탁 증상)- 인류 최대의 적.
"모두들 말했다. 우리 엄마가 병 때문에 미쳤고, 그래서 죽어버렸다고.
사랑이 질병이 되고 인류 최대의 적이 되고 그에 따른 치료 약까지 개발이 되다니? 사랑에 빠진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걸 우리는 안다. 예나 지금이나 힘겨운 사랑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고 광기에 휩싸인 이들의 이야기도 접해왔다. 그래서 인류는 사랑이 인간에게 해악한 감정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온갖 만병이 마음 즉, 심리상태에서 오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런 심리의 최대 근원이 사랑이기에 그 감정만은 인간에게서 영원히 앗아가 버리려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전 중의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작품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닌, 인간에게 아픔만 주는 지탄의 대상이자 교훈적인 의미로써 배워야 하는 불온로맨스가 된 세상이다. 나는 사랑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라져버린다면 과연 그게 진정 인간다움의 표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사랑이 해악이고 파멸의 근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면 구원의 손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다 사랑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가정하고 직시한 사랑 없는 세상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없어서는 안 될 감정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기에 기존의 판타지 소설들과는 차별화를 가진다. 흔히 SF 판타지에서의 기계화된 세상과 우주괴물 같은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판타지스럽지 않은 일반소설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이것만은 알아줘야 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여자애다. 5피트 2인치의 키에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다.-486p
이제 곧 18세 생일-치료일-이 다가오는 레나는 모친을 '자살'로 잃었다. 거듭되는 치료를 통해서도 레나의 엄마는 나아지지 않았고 또 한 번의 치료를 앞둔 상태에서 자살이라는 생의 끝으로 떠나가 버렸다. 그렇기에 레나는 이 '치료'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맹신과 불신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랑을 잃기 싫어서 떠나가버린 엄마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무책임했고, 무책임하다고만 바라보고 끝내기에는 엄마는 슬픈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미워하는 감정 속에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사랑이 함께 한다.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그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혼란스러움을 겪는 십 대의 불완전한 심리 상태가 여과 없이 보여진다. 이런 상태에서 레나는 델리아라고 일컬어지는 사랑이라는 질병의 치료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 두려움 가득한 나날을 보낸다. 그 속에서 단짝 친구인 헤나의 예기치 않았던 돌출행동으로 인해 레나의 불안은 더욱더 커지기만 하고, 이미 델리아의 치료를 받은 대학생 알렉스와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아직 치료를 받지 않은 레나에게 있어서 이성과의 갑작스러운 잦은 접촉은 그녀를 속절없이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치료를 받으면 감정적인 인간보다는 이성에 지배되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녀의 눈에 보이는 알렉스는 미치유자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기에 혼란은 더 가중될 수밖에. 18살이라는 나이에, 치료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에게 찾아온 이 만남은 급작스럽지만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떨림, 즉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초가 되고 당연한 수순처럼 '거부'와 '탈출' 같은 단어의 행동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랑만 사라진다면 모든 불행의 근원 역시 잠적한다고 보는 근미래 사회. 과연, 진정 그러할까? 사회악이 되는 정신적 불완전, 미숙상태에서 행해지는 범죄와 사고 같은 감정적 행위가 급격히 줄어들긴 했지만, 대신에 이들은 인간적인 면모는 잊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기계와 다름없는 사고를 한다면 그 삶에 무슨 재미와 활력이 있을까. 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감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된 채 생활이 이루어진다면 겉으로 보여지는 문제 같은 건 없는 완벽한 사회에 가까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파고든다면, 생활은 진보할지언정 삶의 감동은 퇴보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정'에 굶주려있는 삭막한 사람들로 가득한 회색 도시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기계나 다름없어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범죄와 사고가 횡횡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랑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의 배제로만 이런 사건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에 반감을 표하는 것이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애틋하고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 그 감정이 향하는 막다른 길목에서 그 어떤 선택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상황에서 강압적인 체제의 기로에 놓인 인간들의 모습은 한껏 일그러져있다. 어느 쪽도 자신을 편히 놓아주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 한 소녀의 탈출은 그래서 희망적이면서도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제한적 선택의 제한적인 체제 앞에서의 덧없는 부르짖음의 반복 같아서.
그.렇.기.에. 모든걸 앗아가더라도, 사랑만은 우리에게서 앗아가면 안 된다. 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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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위대함은 생명 生命 의 소중함인지도 모른다. 제한 된 죽음, 한정된 생이기 때문에 현재를 더욱 가치있게 살려는 노력이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더욱 강렬하기에 우리에게 제한되거나 금지된 이유로 더욱 강하게 욕망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우리가 삶에서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억압되면 우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는 모든 금지된 것에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좌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 미래에 자유도 평화도 아닌 사랑이 금지되었다.
"모두들 말했다. 우리 엄마가 병 때문에 미쳤고, 그래서 죽어버렸다고. 같은 병균이 내 혈관 속에서도 몸부림치고 있다고. 병명은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 극심한 혼돈과 식욕부진, 불면증을 동반하며 사람을 멍청하고 충동적으로 만드는 그 병을 옛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
전쟁과 폭격으로 페허가 된 도시, 새 정부는 사랑을 질병으로 규정하여 18세가 되면 치료라는 명목으로 감정을 제거한다. 감정을 제거한 후에 국가가 정해주는 배우자와 결혼하고 철저히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후 , 정해진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한마디로 철저한 통제국가이다. 그럼 왜 많은 문학작가들이 먼 미래를 디스토피아이며, 강력한 통제국가를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그린 소설은 영화화 한 소설도 많지만 가장 최근의 작품 중 <헝거게임><퓨어>를 꼽고 싶다. 바로 이러한 소설들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갖고 싶은가? 를 묻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아직도 평등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 한번쯤은 우리 사회에 강한 의문을 던져보라.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권력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불평등사회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극단적인 미래를 그린 '헝거 게임'에서의 미래는 우리의 현실사회가 모티브다. 조금 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미래 '퓨어'의 미래는 가진 자들의 아방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딜러리엄>에서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미래 또한 우리의 현실이 모티브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 누군가 물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랑은 존재한다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극한의 상상으로 금지된 것을 소망할 때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주인공 레나의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질병에 의해 감염된 병자로 자살로 죽었다. 어머니의 트라우마는 레나가 18세가 되면서 더욱 강렬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속에 어머니의 질병이 감염 되어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상상과 더불어 치료의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진짜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 아니 영화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이건 영화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같았다. (237쪽)
그렇다. 레나는 국가에서 금지된 감정을 갖고 있다. 달리기 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우연히 만난 한 남자 알렉스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엄마를 떠올리면 비록 국가에서 금지된 행위이지만 노래를 불러주며 안아주는, 신체접촉으로 인해 느껴지던 따스함이 떠오르는 레나는, 그래서 괴롭다. 왜 사랑하면 안 될까? 그래도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 국경선을 지나 평지라 하는 곳에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의 한 청년 알렉스를 만난 순간 레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전까지 평지에는 병자들만 사는 곳인 줄 알고 있었기에 레나는 알렉스를 멀리하지만, 작가는 주인공 레나를 통해 사회에 대한 혼란을 그대로 느끼고 보여준다. 자신이 보았던 세계가 알렉스를 본 순간 레나 안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태풍처럼 ,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고 그 단어가 마침내 내 안에 가득 차올라 혀를 차고 입 밖으로 탈출하려 하는 순간 그것이 단 한번 도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이라는 단어라는 것을......그리고 그 사랑은 질병이란 두려움에서 그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레나의 갈등을 통해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 솔직히 나는 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왜 위대한지를 깨닫게 해주며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끔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로렌 올리버의 작가의 전작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다면 『딜러리엄』은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게 해준다. 우리의 삶에 잔잔한 파문을 던져주는 매력적인 작가이다.
사랑, 치명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소유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당신을 죽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그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랑은 형을 선고하는 자인 동시에 형을 선고 받는 자였다. 사형집행인. 칼날. 마지막 순간의 구원. 헐떡이는 호흡과 머리 위를 빙빙 돌아가는 하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기도. 사랑, 그것은 당신을 죽게 하고 또 동시에 살게 한다. (4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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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통제의 사회! 퍼뜩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2002)의 그 무표정한 군상들이다. 3차 대전을 겪은 인류는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약물을 통해 인간의 감정(사랑, 증오, 분노 등)을 통제하게되는데, 이런 개인의 언어와 사고를 감시·말살하는 디스토피아는 조지오웰의 <1984>에 대한 오마주(homage)로 받아들여졌다. 이번에 읽은 로렌 올리버의 신작 <딜러리엄 DELIRIUM>도 이런 'Big Brother'에 의해 감정이 지배되는 사회속에서 인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스토리이다. 마치 이퀼리브리엄과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 2005)가 혼재된 듯한 영상미가 전해지는게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담고있는 메시지가 '1984'의 숨결처럼 무거우면서도 찬란하게 느껴진다.
226_ 중간 :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거라는 걸 점이었다. --> '걸' 빼야죠.
243_ 5 : 레나는 알렉스의 손을 깨물었는데 그 밑 12째줄에는 손을 빼내었고, 그제야 내가 그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깨문게 아니라 꽉 잡았다가 맞는거 아닐까요? 357_끝 : 따뜻하면서고 -->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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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는 세상이란, 있을 수 있을까.인간의 감정 중에서 '사랑'만 배제되고 나머지 감정만 허용이 된다면,아니 그런 세상이 있기나 할까. 하지만 그런 세상이 미래에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공습 이후 지구는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그후 새로 들어선 정부는 인간의 감정 중에서 '사랑'을 질병으로 취급하여 치료약을 만들기도 하고 평가를 통하여 진로및 함께 할 상대와 미래까지 결정해 준다. 사랑이는 감정이 배제된 가운데 결혼을 하고 직장을 얻어 함께 사는 사람들,진정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지만 지금 도시의 사람들은 그런 삶은 '안정'된 삶이라 여기고 완치자가 되길 원한다. 완치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몇 번에 걸쳐 다시금 치료를 받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다. 감시인이 따라 붙기도 하고 병자 취급을 받는 그야말로 완치자가 되어야 할텐데.
해나와 레나는 평가를 남겨 놓고 있는 17세 소녀들이다. 해나는 모든 것을 가진,부자인 부모님에 모자란게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레나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 못한다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다. 둘은 해변을 따라 달리기도 잘하고 몰래 해나의 집에서 만난 놀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들앞에 있는 '평가일' 은 정말 고민이고 걱정이다. 정말 평가가 끝나고 치료가 끝나면 남들처럼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행복일까.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만 해도 감염되었다고 하여 감시자가 따라 붙고 모두가 병자 취급을 하는 세상, 레나의 엄마는 레나가 여섯살 때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 레나가 2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엄마는 아버지의 유품과 같은 악세서리를 목걸이로 착용을 하고는 살다가 세번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가 되지 않아 자살을 하고 말았다. 뒤에 남겨진 레나와 언니인 레이첼은 이모에게 맡겨져 이모네와 함게 살게 되었다. 언니는 치료를 받고 결혼을 하여 잘살고 있지만 레나는 늘 걱정이다. 자신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속에서는 무언가 자꾸만 꾸물꾸물 일어나고 올라온다. 그것이 무얼까.
사람들은 도시와 평야를 국경선으로 막아 놓았다. 그곳엔 전기가 통하기도 한다. 치료되지 않은 병자들은 평야에서 살기에 도시인들은 평야를 병자들이 하는 곳으로 간주한다. 완치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병자들이 평야에게 살고 있을까.온전하지 못한 병자나 그외 생각으로 점철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평야에서 사는 것일까. 레나가 평가를 받던 날 연구소는 소떼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그고에서 뜻하지 않게 레나는 한남자를 만나게 되고 알렉스로 인해 레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알렉스,그는 완치자도 아닌 그렇다고 도시인도 아니다. 평야에서 온 모두가 병자 취급하는 병자인데 그런 그와 레나가 만나고 있고 질병으로 취급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들은 휩쓸리고 만다.해나 또한 금기시 하는 음악을 듣고 모두가 함께 하는 불법음악모임에 참여를 한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하다. 억제를 하면 더욱 더 하고 싶고 몰래 하고 싶은게 인간 본연의 모습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금지되고 음악 또한 맘대로 들을 수가 없다.거기에 통금이 있고 감시인이 따라 붙는 세상이라면 좋을까,아니 그 모든것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모든 것을 어기며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궤도를 이탈한 젊은이들, 레나와 해나 그리고 알렉스 그들은 이 세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자살을 했다는 레나의 엄마 또한 감옥과 같은 병동에서 그동안 갇혀 있다 탈출을 했다.그렇다면 그녀가 갈 수 있는 세상은 어디일까.엄마의 실존이야기를 듣고 레나는 더욱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음을,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 행동을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녀의 언니와 이모와 이모부들 모두가 그녀가 평가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지만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그레이스와 알렉스 해나의 도움으로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나 평야라는 병자들을 세상을 택하는 여전사가 되지만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알렉스는 그녀를 따라 평야로 돌아올 수 있을까.그렇다면 해나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다. 시리즈물이라는데 이 작가의 다른 책인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을 읽었는데 스토리텔링작가인가 책이 무척이나 두껍다. 이 책 또한 페이지가 있는데 읽다보면 금방 읽게 된다. 그리고 한번쯤 내가 사는 세상이,지금 현재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는 세상은 정말 있을수도 없지만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모두 평온하고 성숙하고, 마치 얇은 얼음에 둘러싸인 것처럼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치료자들에게서 느끼는 겉모습,그게 행복이고 안정감일까.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더 기대되면서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보면 조지 오웰의 <1984>와 비슷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감정까지 조절당하는 사회,그런 사회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그대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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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본드라마(만화 원작)의 주인공 호타루는 연애세포가 죽은 직장녀다. 퇴근 후 남자를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아무거나 대충 걸친 채 마루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키는 게 더 좋은 여자다.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감정소모도 귀찮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쁘게 차려 입는 데에도 취미가 없다. 혼자라도 세상은 살만하고 곁에 누가 있으면 신경 쓰이는 일 투성이라 끈적한 관계는 이쪽에서 먼저 사양이다. 세상은 이 여자를 건어물녀라 부른다. 비쩍 마른 거란 말이지.
17년하고도 11개월 동안 레나의 세계가 그랬다. 바짝 마른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혼자다. 밥을 주는 누군가는 있어도 정서적으로 먹이고 입히는 누군가는 없다. 남편이나 친구도 없다. 함께 살고 대화를 나누고 종종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함께 웃지만 그들은 동거인이나 직장 동료 혹은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세계가 그렇다. 부모는 아이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절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해리포터의 세계에서 ‘볼드모트’라는 이름이 가진 극한의 공포 -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는 레나의 세계에서 ‘사랑’이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세계의 사람들은 18살이 되면 반드시 ‘치료’를 거친다. 정부는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랑‘을 인간의 중추신경에서 거세해 버린다.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질병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의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삶의 모든 것이 통제되는 그 곳, 포틀랜드. 건어물녀 건어물남의 천국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 건조하고 삭막한 포틀랜드가 있다.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의 작가 로렌 올리버는 이미 사춘기 소녀의 애잔한 성장기 속에 사랑과 선택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적이 있다. 두 번째 작품인 [딜러리엄]에서는 그 고민의 폭이 보다 광활해졌다. ‘사랑은 무엇일까’ 단순히 호흡이 가빠지고 극심한 망상과 정체성 혼란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 및 식욕부진과 불면증을 동반해 결국 사람을 망치고 마는 어떤 것일까.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안정한가’, 사랑이라는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인류는 합리적이고 완전하고 안정한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진실 속에서 살고 있는가.’ 내가 믿는 모든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은 어디까지가 완전한 진실인가.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알 수 없는 공포와 고독함에 시달리는 나는, 나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이 겨우 17년하고도 11개월을 살았을 뿐인 외로운 여자아이 레나에게 쏟아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독자는 레나와 더불어 이 막막한 질문 세례 속을 바짝 긴장한 채 달려간다.
그러나 옹골찬 책 두께와 진지한 질문 폭격에 미리 질려 책의 첫 페이지를 열지 못할 정도로 겁먹는 이는 없어야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남들의 타박과 멸시에도 아랑곳없이 딸에게 전적인 애정을 쏟은 엄마의 사랑이야기이자,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절대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려는 청년의 사랑이야기다. 그 사랑이 결코 질병이 아님을, 오히려 또 다른 세계, 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완전한 세계로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여자(더 이상 여자아이가 아니다)의 사랑이야기다. 그러니 일단 책을 펴자. 레나가 알렉스를 만나는 장면부터는 아마 책을 놓으라고 옆에서 누가 사정해도 놓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병은 나를 죽일 거다. 이게 나를 죽일 거다. 나를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다. P255 한밤중에, 알렉스와 키스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온 레나의 독백 중에서
그렇다. 사랑은 우리를 죽인다. 20년을 살아온 사람은 20년의 시간이 죽고 30년을 살아온 사람은 30년의 시간이 죽는다. 내 머릿속의 이성이 죽고 상식이 죽는다. ‘사랑’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내게 소중했던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죽는다. 사랑은 끝내 우리를 다 죽일 것이다. 그리고 곧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무언가로, 생기 있게 빛나는 누군가로.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 없던 적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내가 모르는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이제 겨우 시리즈의 첫 권, 레나는 이 ‘사랑’을 발견하고 깨달았다.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의 길이 끝날 즈음, 레나는 그녀를 괴롭히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고 사랑 안에서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든, 단순히 스펙타클한 연애소설의 관점에서든 우리는 그녀의 세계를 그린 이 시리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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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선 ‘사랑’이란 감정을 경계한다. 왜? 사랑을 병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일까?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지구,,, 새로운 정부는 사랑이란 병(일명 델리아)이 걸리기 전, 18세 이전의 소년, 소녀들에게 수술을 통해 감정 자체를 통제하려한다. 그리고 정부가 지정한 상대와 결혼을 하고 정해진 직업에 종사를 해야하는 것,,, 레나 할로웨이 역시 18세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다. 델리아로 자살한 엄마, 델리아로 남자와 사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다 치료 후 결혼해 지금은 덤덤하게, 아무 느낌없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 레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정부의 치료를 받고 국가의 관리 보호 대상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치료일이 눈앞에 다가온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소년 ‘알렉스’ , 부정을 해도, 거부를 해도 그녀가 보고 또 믿어 왔던 세상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치료 후에 나는 행복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영원히. 과학자들도, 언니도, 캐럴 이모도 그렇게 말했다. 치료 후 나는 평가자들이 선정한 파트너와 짝 지워지게 될 것이다. 그러곤 수년 안으로 그 사람과 결혼하게 되겠지. 요즘 들어 결혼식 꿈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 나는 머리를 꽃으로 장식한 채 하얀 처마 아래 서 있다. 나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는데, 얼굴을 보려고만 하면 카메라가 초점을 잃어버린 것처럼 이내 뿌옇게 흐려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잡고 있는 손은 차갑고 건조하며, 내 심장은 차분히 뛰고 있다. 그렇게 꿈속에서 나는 확신하는 것이다. 내 심장은 영원히 이 박자를 유지할 거라는 사실을. 거세게 뛰거나 박자를 건너뛰지 않고, 소용돌이치거나 더 빨라지는 일도 없이, 지금처럼 이렇게 두근, 두근, 두근. 내가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절대로 고통 같은 것은 받지 않는 채. - 7쪽 두근두근두근,,, 극도로 억압된 통제사회에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소녀 레나,,, 그리고 어느 순간 다가온 알렉스, 레나는 알렉스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지만, 어느새 알렉스는 레나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알렉스가 자신이 속해 있는 도시가 아닌 도시 너머 평야에서 넘어 온 자유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더더욱 혼란에 빠져든다. 그리고 알렉스를 통해 듣게 된 엄마에 대한 진실,,, 레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느 시대든,,, 젊은이들에게 사랑이란 열병은 참으로 뜨겁디뜨거운 화력 센 불길 같다. 그래서 미래 사회 정부는 사랑을 열병으로 규정했을까? 생애 단 한 번의 선물 같은 사랑을 차단하면 사람들의 열정과 꿈을 차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미래 정부는 똑똑한 선택을 했을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열병을 지나치고 나면 냉철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했음이니 말이다. 하지만 똑똑한 선택이었을지언정, 그 사랑이란 놈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에게, 예고 없이 들이닥칠 수 있음을 간과했음이니 말이다. 레나, 알렉스, 레나의 엄마,,, 이어질 시리즈에선 어떤 일들이 펼쳐질 것인지,,, 음,,, 기다려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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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감정은 슬픔과 기쁨을 선해주고 있다. 특히, '사랑'의 감정은 행복만이 아닌 때론 시기와 질투 그리고 증오를 낳고 결국은 마음이 페허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홀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의 소재를 둔 한권의 책을 만났다. '사랑'을 하나의 질병으로 정해버리고 만 18세가 되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즉, 감정을 통제해버리는 치료를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18세 전 과 후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게 되어 또 다른 인생으로 살아간다.
오래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나온 <이퀄리브리엄: 2002년>가 떠올랐다. 약물로써 감정을 억제하고 음악이나 그림등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절대 접금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길시에는 화형에 처하는 끔찍한 형벌이 있다. 왜 그들은 인간의 감정을 억제해야만 했는가..그 이유는 '파괴'라는 이유이며, 이것은 인간의 또 다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는것이 옳은 것인가.
소설은 이제 18세가 되는 한 소녀의 등장함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엄마는 감정을 가진 즉, '델리아'의 질병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어, 딸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아니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전하며 떠났다. "너를 사랑한다. 이것만큼은 그들은 빼앗아 갈 수 없다".마지막 유언처럼 남은 이 말을 항상 되새기며 살아가는 소녀 레나..드디어 18세가 되던 해에 평가자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감정을 체크 받는다.
감정을 체크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평가를 받는 과정에 난동이 일어나고 그곳에 한 남자와 눈빛을 마주치게 된다. 그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처럼 움직이고 레나는 알 수 없는 이 마음에 결국 엄마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뇌리에서 맴돌게 된다. 사랑...감정 ...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억제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해져 버린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세계속에서 레나는 과연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부부이나 감정이 없는 모습들을 상상해보면 어색하면서 과연 이러한 모습들이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웃는 것 조차 허락이 되지 않는 세상 모든것을 통제해야만 온전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난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레나 였다면 말이다.
사람을 완성하게 만드는 마지막 과정은 육체가 아닌 감정이다. 그러나, 이 감정이야 말로 인류의 적이 되어버리고 파괴를 일삼는 것으로 되어버리니 양면성을 가진 존재..'감정' 그럼에도 왜 버릴 수 없는지 ... 완벽한 답은 없으나 태어남과 동시에 생겨나는 것 또 하나의 육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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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을 만큼 너를 깊고 넓고 높이 사랑해."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저보다 훨씬 이전에 아주 오래 전의 누군가가 그의 시에서 이 문장을 먼저 사용했을테지만, 그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토록 아름다운 표현들보다 더 아름답고 진실된 제 마음을 앞서 말한 시 한 구절을 인용해가면서까지 어떻게라도 그대에게 잘 전달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란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옛 시를 빌려서라도 그대를 향한 제 작은 몸부림을 고스라니 전달할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고, 그것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그 순간 이후의 세상은 그대와 나, 둘뿐이고, 나머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선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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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올리버의 『딜러리엄』은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세상을 그려놓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은 감정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분노와 질투, 복수에서 비롯된 파괴적 감정은 세상을 아프게 했던 전쟁의 씨앗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인간의 감정을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며 치료해야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며 18세가 되면 검사를 통해 아이들을 감별하고 치료를 거친 후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재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완벽한 행복이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을 말하며, 치료라는 것은 감정을 감지하는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말합니다. 가끔은 이런 소설이 보여주는 미래의 세상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설마하니 세상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말이 안되는 소설의 설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소설이 갖고 있는 치밀함에 놀라곤 합니다. 피어나는 새싹들에서 온기를 느끼고, 타오르는 태양의 열기에 몸을 내맡겨보기도 하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낭만주의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생활에 찌든 무미건조한 표정을 한 채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상의 밝은 면보단 어두운 면에 익숙해져 있고, 거대한 세상안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는 안될 것이라고 체념하며 자신을 닫아 버리곤 합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자연 치유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행하는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스스로 감정을 밀어내고, 건조한 일상을 행복이라고 단정하며, 세월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너 하나밖에 없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는 너와 결혼할 것이고, 천년 만년 살더라도 나는 너와 또 다른 평생을 살아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남녀가 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정말로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구구절절한 사랑을 노래했지만 세월이 흘러 그시절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의 남녀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혼기를 놓치고 시간이 많이 흘러버려서 운명인지 무언인지 모를 그런 힘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남녀도 있을 것입니다. 또 상대방에 대한 특정한 목적을 갖고 결혼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목적을 상대방에게서 구할 수 없게 되자 사랑도 함께 식어버린 남녀 역시 존재할 것입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이것이 사랑인지 생활인지 모르겠다고 여기는 남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남녀들은 서로를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놈의 정 때문에'라는 핑계로 시간을 죽이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혹시라도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며, 그런 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마저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 여러분께 하고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소설『딜러리엄』이 제게 했던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제가 말한 내용들을 소설이 겉으로 뻔히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이런 것은 아닐까 하며 저 혼자만 그렇게 느꼈고 혼자서 상상한 내용일지 모릅니다. 아무튼 소설은 굉장히 낭만적인 비극을 보이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고, 오! 로미오, 내 사랑 줄리엣!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가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아나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르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분명히 멋지고 괜찮았는데 영화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 남녀의 사랑을 영화에서 어설프게 그려놓고, 세세한 감정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개연성을 찾기 힘든 것이기도 할 뿐더러 십대의 감성은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딜러리엄』에서 표현하는 사랑의 감정은 꽤 진지한 설명과 충분히 납득할만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 쥐어진 땀의 느낌부터 미묘하게 떨리는 입술과 속눈썹, 그리고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까지 느껴졌다면 이 소설이 그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에 대한 제대로된 설명이 되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그런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감정이란 것은 텍스트로 설명하기 힘든 것일 뿐만아니라 텍스트가 아니면 또 설명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 것이기에, 어설픈 연기력으로 텍스트적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더더욱 어린 배우가 그것을 소화하려 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꽤 많은 영화들이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소설의 영화화가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눈에 보이는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소설들의 세상은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며 말 그대로 정말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해야하는 암울한 세상인데 반해, 『딜러리엄』이 보여주는 세상은 비교적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진 않기 때문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더군다나 사랑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아픔이 있어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낭만주의자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사랑 놀이가 하찮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남녀와 그 둘만의 세상에선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모든 장애물들이 그 무엇보다도 잔인한 적들이고, 사랑이 아니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으로 이보다 더한 위기는 없다고 말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반면 어떤이들은 아마도 이들의 갈등을 그저 젊은 시절, 2층 창문 너머에 있을 순이를 그리워하며 순이의 방에 몰래 드나들수 있게 했던 창문 옆의 커다란 나무가 잘려버린 정도의 위기라 볼 수 있겠고, 물래방앗간에서 철수와 몰래 만날 약속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버지로부터 외출금지령을 선고받은 정도의 위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딜러리엄』은 저같은 낭만주의자들이 재미있게 볼 소설이며 그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장르소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아!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이여. 그것은 너무나 멀리서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내려다보고 있기에 더욱 저를 슬픔에 빠져들게 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결국 사랑이 사람들을 죽게 한다는 점이다. (9쪽) 사람들은 자주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는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나 화학적 불균형이 남자애를 여자애에게 여자애를 남자애에게 이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충동도 물론 치료에 의해 해결 된다. (59쪽) 가끔 나는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세상이 내 눈앞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도록 받아들일 때, 한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그 각도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는 거다. (168쪽) 사진, 아니 영화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이건 영화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같았다. (237쪽)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생각을 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내 안에서 태풍처럼,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그 단어가 마침내 내 안에 가득 차올라 혀를 차고 입 밖으로 탈출하려 하는 것을 나는 두 입술을 꼭 붙인채 막아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아직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심지어 마음속으로 혼자서 생각해 보지도 않은 그 단어. (324쪽) 사랑. 단 한 마디의 단어. 속삭임을 닮은 소리이자 칼날보다 크지도 길지도 않은 그 단어. 바로 그것이었다. 단검 속은 면도칼. 그렇게 삶의 중앙을 갈라 버리고 모든것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 세상의 반대쪽은 영원히 다른 쪽으로 그렇게 떨어져 나간다. 이전과 이후……,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는 그 동안.. 칼날보다 크지도 길지도 않은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 (329쪽) 사랑. 끝없이 반복되는, 방의 구석까지 빠짐없이 조각해 넣은 글씨는 우아한 필기체와 딱딱한 활자체가 섞여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긁히고 상처 나고 구멍이 난 벽이 판 편의 시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404쪽) 사랑, 치명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소유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당신을 죽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그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랑은 형을 선고하는 자인 동시에 형을 선고 받는 자였다. 사형집행인. 칼날. 마지막 순간의 구원. 헐떡이는 호흡과 머리 위를 빙빙 돌아가는 하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기도. 사랑, 그것은 당신을 죽게 하고 또 동시에 살게 한다.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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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딜러리엄이라는 제목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섬망이라는 뜻이
라고 한다. 다시 섬망이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정신 질환의 하나로 사고 장애,
착각과 환상 등등을 가져오는 불안 증세라고 한다. 단순하게 이것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정신 질환의 다양한 증상을 말하는 것인듯 한다. 문득 이 책의 작가인 로렌 올리버가 이
책의 제목을 딜러리엄이라고 지은 그 의미도 알 것 같고, 또한 작가의 묘한 악취미도 느
낄 수 있었다. 이 어려운 제목의 의미를 아는 순간 어쩌면 독자들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책 딜러리엄은 넓게는 사랑 이야기다. 아니 좁게도 사랑 이야기다. 주인공인 레나라
는 18살을 앞 둔 작은 키의 평범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이 딜러리엄이다. 레나가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이런 저런 일로 마주치면서 어느새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가 바로 이 딜러리엄의 내용이다. 하지만 딜러리엄은 그 단순한 사랑 이야기
에 모든 것이 통제되는 세상, 18살이 되면 심사를 받아 미래의 직업이 결정이 되고 심지
어는 배우자도 결정이 되는 세상을 더해서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로 끌어간다. 하지만 철
저하게 주인공인 레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기에 그 세상은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의 가
장 선구적인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비해서는 조금 더 가
벼운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 레나가 아직 세상을 배워야 하는 십대이기
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레나가 속해있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그 유명한 빅 브
라더가 만들어낸 세상보다 훨씬 자유로운 척하면서 흘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런 것처럼 감추어진 통제가 더욱 무서운 법이고, 그래서 레나의 세계는 조지 오웰의 세계
보다 훨씬 감추어진 폭력에 의해서 통제가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거짓으로 포
장이 되어 모두들 자신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
고 그런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통제를 하는 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조지 오웰의 세계
보다 훨씬 영악하게도 사랑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감정을 제거하는 수술과 감정을 갖고 살
아가는 사람들을 병자라 부르면서 감정을 전염병으로 만드는 공포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고 자란 레나에게 그러한 감정의 절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세계에
뛰어든 알렉스에 의해서 그녀의 세상은 급변한다. 그녀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그녀의 세상은 요동치고 그 세상에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레나의 혼란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딜러리엄, 즉 섬망의 증상과 닮
아있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보내는 가장 큰 메시지 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통제하는 사회는 어쩌면 사람을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아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사랑으로 대표되는 감정을 제거하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
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저항하는 가장 큰 힘은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 더 나
아가서 그 사랑에서 시작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을
제거하는 것은 그러한 모든 변화에 대한 열망을 제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딜러
리엄의 주인공 레나의 마지막 결정은 바로 그러한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그녀가 어머니를
사랑했기에 그녀는 분노할 수 있었고, 그녀가 친구를 사랑했기에 그 가혹한 탄압의 현장을
보고 다시 한 번 분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밤 그녀가 목격한 옆집의 개의 죽음에
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너무나 가혹한 야만적인 통제의 세상에 분노하게 된다. 그녀가 평
원을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바로 그녀가 사랑에
서 시작한 분노를 갖고 있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이 책 딜러리엄은 세상을 변화시키
는 가장 약하지만 강한 힘, 바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고,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에 말하는 '나는 너를 사랑해, 기억해 그들
도 그것만은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어'라는 말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변화와 희생과 그리
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을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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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글로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았고,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 중고서점에 갔을 때 우연히 이 책이 있었다. 나온지 얼마 안된 신간이라 있기에는 조금 힘든 책이었는데, 오 ! 하며 바로 들고온 책이었다. 운명을 만나면 마치 이런느낌일까 - 내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답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또 어떤 답을 내려야하는지 까지 모든 것이 정해졌다. 이 책을 읽은 뒤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을 한마디 , 아니 한단어로 표현해보자면 바로 사랑이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난다. 이렇게 철저하게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의 배경은 바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더 나아가 감정자체를 과학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미국이다. 이 시대의 미국은, 성인이 됨과 동시에 수술을 받게 되는데, 바로 감정을 없애는 수술이다. 사랑했던 사람 ,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에 대한 애틋함 , 간절함 등의 긍정적이고 플러스적인 감정들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적인 감정들 조차 없어지게하는 수술 . 아니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치료라고 말한다. 바로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 쉽게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내가 지금껏 보았던 연애소설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연애소설이라고 하긴 했지만 과연 이 책을 연애소설이라고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 아니 존재해서는 안되는 공간에서 치열하게 그러나 마음 속 깊숙히 사랑을 외쳐버린 그런 소설이었다. 사실 나는 얼마전 행복과 슬픔, 기쁨과 아픔 등 몇년간 감추어져 있던 수많은 감정들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지나갔었다. 그런 감정소비를 겪고나니 진이 다 빠졌었고, 그랬던 나를 견디기가 또 받아들이는게 참으로 힘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뿐만아니라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그밖에 이런저런 감정들이 어찌나 귀찮게 느껴지던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배부른 생각을 했었던 건지 ,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었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키웠던 개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밖에 내놓는 것말곤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 감정이 없는 세계가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감사했다. 이렇게 많은 감정들 속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 것인지를 깨달았다. 주인공 레나가 알렉스를 만나 생전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고 그 사랑에 빠져버리는 전개를 통해 사랑이라는 그 감정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레나는 알렉스에게 사랑이 빠진 후 , 침대에 누워 알렉스를 그리워 하며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 이 병은 나를 죽일 것이다. 이게 나를 죽일 것이다. 나를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다. /255페이지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책을 말해주는 또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이 책은 해피엔딩도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뿐만 아니라 작가의 말 도 없이 전적으로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소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조차 딱 '사랑'이다.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사랑 - 그런 사랑 그 자체를 말하는 소설 . 바로 딜러리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