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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에 대해서 한중일 연구자들이 공동저술한 책이 나왔습니다. 최근에 보면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에 관련되어서 한중일 삼국이 주목해서 서서히 연구가 되고 관련서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임진왜란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관련 연구가 적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한국, 일본, 중국이 보인 전략등은 이후 청일, 중일 전쟁에서 반복되는 경향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대한 힘의 축이 아니었습니다. 왜구라는 존재로 격하되어 있다가 임진왜란을 통해서 강력한 주요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이라는 기나긴 관점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책에서는 한중일 연구자들이 역사적, 전략적, 군수적, 외교적, 재정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정유재란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아닌 정유재란에 집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중일이 공통적으로 얽혀든 측면에서는 임진년보다 정유년이 더 관심이 갈만하기는 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이 실려 있어서 장점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적은 분량에 많은 내용이 있어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당시 한중일은 전쟁의 재개를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유재란은 외교적 교섭등이 진행이 되고 있어서 갑작스런 전쟁의 시작이 아닌 외교적 실패가 다시 전쟁 재개로 간 경우인지라 기습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고 명의 참전을 끌어낸다고 대비책을 가지고 있었고 명군이 한반도 남부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산도의 수군이 적극적인 전투에 나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부산포를 공략해서 일본군의 이동을 방해해야 했지만 문제는 부산포 공격이 수륙으로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한 수군 단독작전은 어렵다는 것을 이순신 장군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요.
조정에서는 뻔히 일본의 대군이 건너오는 상황에서 이리 저지해야 될 부대가 서둘러 전투를 시작하라고 압박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섣부른 공격이 가져올 결과를 가장 잘 아는 지휘관이 멀리 떨어질 조정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반간계나 주변 인사의 모략만이 아닌 전략적 결심에 대한 충돌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요.
내용 중 명량해전의 평가도 있는데 이 부분은 진도등을 다녀온 다음에 하나의 추정이 생겼습니다.
전라도가 유린되는 상황에서 이순신장군은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직되어 잔존 함대를 인솔하여 무모한 결전을 추진합니다. 명량은 그 와중에 벌어진 전투였고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었다고는 하지만 조선 수군은 함평까지 철수했고 이후 전력을 재건하면서 다시 서서히 남해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 때보면 조선 수군은 13척 수준에서 50여척까지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 관해서는 열심히 배를 건조했고 모병을 했다는 설명이 붙지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다시 재건한 전력이 과연 새로이 건조된 전선들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무리할 정도로 앞장서서 싸운 탓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숨죽였던 조선 수군이 다시 모여든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그 이전과 달리 좀 호언 장담하면서 병사들을 강하게 질타한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기 관해서는 더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관련 연구와 책이 나왔야 된다고 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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