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종신교수직을 보장 받고, 레즈비언 동성애자로 페미니즘 운동과 각종 인권 활동에 참여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이며 불편한 시선으로 평생을 보냈던 저자(로자리아)는 보수적인 기독교를 비판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하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롭고도 험난한 인생에 직면한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기대 이상의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고, 동성애자가 회심한다는 사실의 커밍아웃이라는 측면에서는 각오 이상의 험난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어버린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녀는 하나님을 만난 사건, 그것을 내가 표현한 '직면'보다 '충돌', '충격'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나와 하나님과의 조우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충돌(impact)이라는 단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는 다중추돌의 충격. (14) 그녀는 학교에서 진정으로 존경받는 교수였고 학자였으며, 또 동성애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성자처럼 떠받들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학자로서의 욕심도 컸고, 성소수자의 대모 같은 명예도 좋았다. 그녀가 신문사에 컬럼을 기고하고 난 뒤, 찬성하는 편지와 반대하는 편지가 쇄도했는데, 그 중 하나의 편지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바로 시러큐스 개혁장로교회 담임목사였던 켄 스미스가 보낸 질의서였다. 그 편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기에 두 서류함에 들어가지 못했고, 일주일 간이나 자신의 책상에 답을 기다리는 물음처럼 놓여져 있었다. 어쩌면 이 편지 하나로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가 진정한 학자였기에 그 편지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편지는 매우 친절한 어투로 나 자신도 간절히 대답하고픈 그런 질문들을 묻고 있었다. 당신은 투고에 실린 결론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가? 당신은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가? 켄 목사는 내 글의 근거가 되는 전제들을 더 깊이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31) 그녀는 학자의 입장에서 켄 목사가 제시한 질문들에 대한 탐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성경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켄 스미스 목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뒤로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주장할 것이 많았고, 세상의 시선 역시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식사 초대를 받고 신경을 건드릴 질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내 피를 거꾸로 솟게 할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하나님은 죽은 존재이고,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빈곤, 인종차별, 성차별, 인간혐오, 전쟁 따위에 관심이 없는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5) 그러나 모든 것은 예상과 빗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학문적 탐구에 대해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고 배려가 깊은 켄 스미스 목사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켄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스스로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내 질문들에 대답을 했다. (54) 그 이후의 삶이 평탄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결국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레지비언을 버렸다. 그녀는 그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을 테지만 그녀의 그 길을 인도한 켄 스미스 목사는 그녀를 지치지 않도록 인도했다. 켄 목사님은 어느 때인가 내게 "정지해 있는 차의 방향을 돌릴 수는 없어요.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움직여야만 해요!"라고 충고를 했었다. (125) 내 회심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런 고백이 될 것이다. 나는 개 한 마리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133) 이 책은 한번 손에 잡으면 중간에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에는 하나님이 그녀를 이끌어가는 여정이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만큼이나 모험과 영적 전쟁이 가득하게 펼쳐져 있다. 책에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끝내 결혼하고 교회의 사모의 인생길을 걸어가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광야의 시련이 있었을까. 그건 책에서 밝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성경에서 '죄'라고 명시한 '동성애' 부분에 대한 회개가 우선되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동성애자인 자신을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과 부딪히면서 혼란과 슬픔, 상실, 애도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녀는 결국 그 길을 통과했다. 하지만 교회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편이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하는 상황 등이 생기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동성애적 과거 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성경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의 회개를 진실하게 하나님께 올렸다. 그녀는 하나님이 성적인 죄로 물들어 유황불 심판을 내렸던 소돔보다 더 진노하셨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성적인 존재인 내가 그리스도에게 응답을 하는(내 삶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은 과거 이성애자였던 내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77) 잊는다는 것은 고통스로운 과정이다. 과거의 자신을 잃는 것에는 일종의 상실감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은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이다. 죄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우리의 일부를 희생하는 것이다. (92) 그녀는 이제 결혼과 함께 보수적인 개혁장로교회의 사모로서 기독교 사역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주일성수를 지키면서 다양한 공동체 생활과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자녀를 입양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시련은 찾아온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시련 속에 있을 때 만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나는 네가 행복할 때 네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어. 하지만 지금 네가 고통 가운데 있다니 네게 질문을 하고 싶어. 하나님은 네게 어떤 분이지? 네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 가운데 그분은 네게 어떤 의미지?" (127)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상상의 현실체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성경 말씀과도 같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을 이 책을 통해 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저자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에도 놀라지만, 나를 통해서도 역사하실 하나님의 역사도 기다려지게 한다. |
|
유럽/서구에서는 한 때 동성애 경향은 타고나는 것이라서 바꿀 수 없다고 여겼는데 종종 성정체성을 바꾸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결국 이론?/논리를 바꾸어서 그냥 그날 그날 느낌에 따라서 정체성이 바뀐다는 논리까지 생겼습니다.
(당연히 현재의 성소수자 이론가들은 성정체성이란 고정되지 않은 것이고 수없이 많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상의학에서 태양인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수컷의 경향이 강하다고 했는데 뭐 사상의학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어도 저자는, 최소한, 딱 양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사상의학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저자는 자신이 왜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바뀌어(?) 졌는지에 대해 설명(?)이 길다.
물론! 설명이 재미가 없다.
앞의 절반은 그럭저럭 읽어 줄만 한데 뒤의 절반은 입양한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의 입양제도, 교육제도 이야기가 대부분이기에 별 3개가 좀 후하다고 느껴진다.
어쨌거나 미국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준 여성인데 사상의학을 아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대체가 충격을 받을 수가 없다. 누군가가 사상의학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