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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이성 중심의 학문이 자아를 소외시키고, 억압된 것들이 무의식에 누적되면서 오히려 혼란과 정신질환을 야기했다는 반성이 일면서 이성과 의식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면서 의식보다 무의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써진 이 책에서는 무의식을 새로운 생명의 지배자로 보고 있다. 문명사회 속에서 자아가 주체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현상과 잘 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 명의 정신분석학자(프로이트, 라깡, 윤정)들의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자신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뉴스에 정신분열증(조현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멀쩡한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 의심이 일 정도로 조현병을 앓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조현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끔찍한 범죄자가 되어 주변 사람들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조현병이 더 많이 발현되는 것은 어떤 원인에 연유한 것인가 프로이트 분석사례에서 정신분열증(조현병) 사례를 보자. 정신분열증은 억압의 억압이 대물림되면서 자아가 초자아에게 구속당하는 것이 원인이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명령과 금지에 억눌려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아기로 퇴행하여 환상적이고 환청적인 내면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다. 내면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억압의 갈등을 반복하면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는 인격장애가 초래된다. 정신분열증은 초자아에게 사로잡힌 무기력한 자아에 억압의 충동성을 지닌 무의식이 개입하여 일어나는 실재적 증상이다. 의태적 표현으로는 분노로 찌푸린 얼굴, 슬픔에 넋을 놓은 표정, 멍청하게 히죽거리는 표정, 경악하면서 공포에 질린 표정 등이 있다. 그것으로 억압된 이미지를 분석하기도 한다. 결국 무의식이 주인인 셈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다양한 기억의 이미지가 주인이 되어 나타나면 환상, 환청, 이상행동을 보이게 되는데 흔히들 ‘귀신들렸다’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것들은 삶을 살아내면서 형성된 자아가 아니라 이미 억압된 대상의 이미지를 향한 것이기에 생명적인 가치가 없다. 문명사회와 정신분열증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의식에 억압된 다양한 이미지를 외부의 대상물에 동일시하고 투사하면서 다양한 정신분열 현상을 드러낸다. 생존전쟁이 치열한 현대 문명사회의 억압적 구조에서는 중신분열증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성취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삶의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프로이트의 분석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극심한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어쩌면 조현병은 당연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프로이트 분석의 마지막 문장인 성취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자리매김한 삶의 환경이 시급한 시점이라 여겨진다. 조현병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문제도 심각수준에 이르렀다. 그럼 도대체 왜 우울증은 발현되는 것인가? 이 또한 프로이트의 분석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모든 인간은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고자 한다. 우울증은 만족할 만한 자아성취가 없어서 슬픈 감정이 지속되는 경우로 현대인에게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하나다. 우울증이 지속되는 기간이 2개월을 넘으면 수면장애가 오고, 점점 자기 비하와 죄책감이 깊어지면서 스스로를 무능력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울증은 상실된 감정을 느끼는 자아에 무의식이 개입하여 자기를 공격한다. 결국 초자아의 끝없는 비난을 받으면서 자아는 설자리가 없어지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파괴하게 된다. 무의식은 옳고 그름의 분별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로 자아를 몰고간다. 결국은 죽음의 두려운 감정마저도 뛰어넘는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도록 충동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프로이트의 분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점이 결국에는 자살을 선택하도록 충동한다는 점이다. 아이들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우리 아이가 ADHD가 아닐까 걱정해볼 것이다. 그만큼 ADHE는 부모에게는 두려우면서도 불편한 존재이다. ADHE에 대한 라깡의 분석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충동적인 행위는 상상계의 2자관계에서 상징계의 3자관계의 넘어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감정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누적된 감정들의 흔적이 집중력을 방해한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구조 속에서는 이러한 증상을 가진 아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적 공간 자체의 놀이 환경이 여럿이 즐기는 것보다는 온라인상에서 혼자 멋대로 할 수 있는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녀를 낳아 기를 부모들 역시 그러한 자기중심적인 만족의 환경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면서 성장하여 왔기에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유전적 정서로 깃들 수 있다. 그것이 자녀에게도 격세 유전되기에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과학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이런 부작용에 대한 대책마련 연구도 꼭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핫이슈로 떠오른 연예인 마약스캔들은 정말 파도파도 끝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라깡의 중독에 대한 분석을 보자. 중독은 상대에 대한 의존적 성향이 강한 경우에 나타난다. 그러한 의존적 만족의 대상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다른 대체물(술, 도박, 섹스, 게임)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억압된 불만을 해소하려고 한다. 중독의 경우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머문 유아기적 자아에로 정체된 가운데 나타난다. 오이디푸스시기에 아이와 어머니는 강한 유대감을 가진다. 이 시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고, 어머니는 자신의 결여를 아이가 채워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상대를 절대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 시기의 아이는 늘 어머니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자아이다. 어머니를 통해 성취되는 만족과 단절될 경우 상실당할까 봐 불안해서 불만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에 아버지의 금지와 명령이 있더라도 저항하지 못하고 불만을 숨기는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성향은 자라서도 지속되어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힘들어하면서 내면으로 불만을 누적시키게 된다. 그러면서 술, 도박 등의 대상을 통해 욕구를 채우려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부모와 자녀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시기의 갈등과 고통을 서로 고백하고 수용하는 분석상담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조우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주어야 현재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증상들을 분석한 것을 본 결과 무의식의 세계는 결국 유아기 때의 기억에 많이 기인하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가 건강한 육아를 함으로써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어른이 다시 출산을 하여 건강한 육아를 함으로써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 질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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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뇌의 일부 ? 일부에서는 15% 정도를 이야기한다 - 만을 사용하고 있다고들 한다. 만약 뇌 전체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될지에 대해서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이나 심지어는 일반인들조차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그리는 문학이나 영화를 보면 어떤 장치나 약물을 통해 인간 뇌의 감춰진 부분을 사용하여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있다. 이것은 먼 우주의 아직 알지 못하는 별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만큼이나 인간 뇌에 대한 관심과 상상이 넘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다위로 드러난 부분이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바닷속에 감춘 채로 존재하는 극지방의 빙산과 같은 것이 인간의 뇌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 미지영역 탐사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 불완전하기에 생명의 질서를 욕망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을 상실시키면서 무의식 속에서 의미를 욕망하는 존재가 된다. 소외와 결여가 있기에 주체는 영원할 수 있다. 완전하다는 것은 멈춘 것이기에 생명이 아니다. 현상의 무의식은 불완전한 역동성을 갖게 되면서 영원할 수 있다.” - P. 257.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 누가 당신을 지배하여 왔는가?>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최면의학자인 저자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정신분석학의 시작점인 프로이트와 이를 승계하여 더욱 발전시킨 라깡, 그리고 이를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과학 -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미생물학 등 - 과 연결하여 새로운 설명을 더한 저자의 이론을 차례대로 설명, 비교하고 있다. 세명 각각의 이론과 함께 그 이론에 따른 사례와 처방을 담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길지 않은 내용의 책이기에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라 본다. 단어 하나하나에 어려움과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나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읽어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동양적인 사상과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성적 에너지의 충동으로 보고, 라깡이 언어적 의미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소외와 결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면, 윤정은 이들의 사유체계를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미생물학 등과 결부시켜 생명적이고 현상적인 관점에서 성찰한다.” - P. 195.
“일반적으로 질병을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신분석과 최면의학에서는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거주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세포를 질병의 시작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은 숙주의 삶의 태도와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 279~280.
우리는 인간 또는 나를 아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특히나 나의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 솔직히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솔직히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렵다. 그렇지만 나의 깊은 곳에서 현재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이 책에서는 무의식을 새로운 생명의 지배자로 보고 있다. 문명사회 속에서 자아가 주체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현상과 잘 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 명의 정신분석학자들의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자신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P.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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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나도 모르는 또다른 내가 있다는 것은 섬뜩하기도 하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학교 가는 날은 어김없이 배가 아프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것도 회피하고 싶어서 꿀꿀 눌러 놓앗던 무의식의 표출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무의식의 신비한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다. 성적 충동이라는 리비도 개념을 도입해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그 무의식 때문에 생겨나는 대표적 현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꿈이나 거짓말, 말 실수 같은 이성의 질서체계에서 벗어난 곳에서 억압당했던 공간이 무의식이 표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기 본성에 충실한 이기적 존재이고, 이 존재의 지배를 받는 심급이 이드라고도 했다. 이드의 작용이 너무 강해지면 강박증, 정신분열증, 우울증 같은 다양한 정신질환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무의식이 긍정적으로 표출되면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기고 자아에 의해 배제되었던 삶의 다양한 측면이 드러나면서 삶 자체를 풍요롭게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긍정적인 강도만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쌍은 이성적인 산물인 언어의 세계와 그 세계에서 배제되어 억압된 무의식이라는 언어와 관련된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냇다. 라깡은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를 성적 충동이라는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지나치게 축소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상식적인 보통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철학과 언어학이 인간의 이성에 기대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식 체계를 탐구한다면 라깡은 언어의 세계에서 배제되고 질서에 어긋난다고 억압된 언어체계 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래서 라깡은 인문학과 심리학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사람이라고 하나보다. 언어학이 어렵듯이 라깡의 무의식의 세계를 읽어가는 것도 참 어려웠다. 그래도 핵심을 얘기해보자면 문명이 발달하면서 언어체계를 통한 삶의 질서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그 결과 문명 질서와 맞지 않는, 언어로 표현되기 힘들고 질서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점점 더 소외된다. 이 소외가 커지면 인간은 이 소외된 것들을 결여로 느끼고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무의식이 주체가 되어 자아에 개입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춰진 상상의 내 자아가 욕망하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맺음 속에 대상화되어 있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욕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그래서 무의식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로 남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무의식이 주체가 되는 욕망 역시 삶을 피폐하게도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되면 삶을 업그레이드시키고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핵심인 현상의 무의식이다. 저자 윤정이 주장하는 현상이란 생명현상을 말한다. 원시 지구의 뜨거운 바다에서 무기물과 유기물이 생기고, 산소를 활용할줄 아는 호기성 미생물이 생기면서 생명의 근원인 세포를 만들수 있게 되었다.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이든 인간 같은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든 생명체는 세포 속에 생명 정보인 DNA를 가지고 있는데 이 DNA 속에는 자아에 해당하는 정보를 저장하는 엑손과 염색되지 않은 정보가 없는 쓰레기 같은 인트론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인트론은 다시 염색된 엑손과 결합하기도 하며 자리를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부분과 고정되어 있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정은 심리학은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자의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운동의 성질에서부터 협기성과 호기성 미생물의 결합, DNA의 출연 같은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생명탄생의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무의식도 DNA의 구조에서 비롯된 뉴런과 신경 물질들의 작용이라고 한다. 염색된 엑손 부분을 자아, 엑손과 결합하여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염색되지 않은 인트론의 자리바꿈이 가능한 부분을 초자아로 규정하고, 마음대로 자리를 바꿀수 없어 평소에는 잠잠하다 미세한 떨림과 자극에도 심하게 요동치는 고정되어 있는 인트론 부분을 무의식이라고 보았다. 정보를 담은 엑손이 DNA의 겨우 1%밖에 안 되고, 인트론 부분이 99%를 차지한다는 점은 우리 삶에 자아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영역이 훨씬 크고, 그 세계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점을 반영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유전자 속에 내재된 현상의 무의식은 의학계에서도 다양한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밝혀져 가고 있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마음의 병 뿐만 아니라 염증과 암 같은 것들도 현상 무의식의 작용일 수 있다고 본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우리 유전자 속에 ㅇ미 내재되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런 무의식의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무조건 억압할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수용하면서 사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의 병은 내가 문제가 있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태생의 상실과 결핍 유전 현상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수용하기가 좀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뇌과학과 심리학의 접목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 연구 성과도 다양한 매체와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윤정의 현상 무의식도 생명과학, 뇌과학과 심리학의 접목인 샘이다. 그러나 너무 간략히 소개되어 있는데다 생물학적 내용도, 심리학적 내용도 쉽지 않은 분야로 둘의 접목과정에서 일어나는 논리적 해석이 명쾌하게 와닿지 않는다. 위대한 고전을 다이제스트판으로 읽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상 무의식에 대한 좀더 자세한 책, 사례가 듬뿍 담겨 일반인들도 조금 더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을 기대해 본다. 어디서 현상 무의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에 대한 과정 설명이 담겨 있으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받아들이기도 쉬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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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저의 『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를 읽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식이 없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를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이성적인 생각이 멈춰지면서 엉뚱한 모습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행동 자체가 흩트려지면 평상시와는 완전 다르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험악한 총기사건도 조현병 치료 중단으로 발생한 사건이라 한다. 허나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쌓이는 고민과 스트레스 등으로 만나는 각종 질병이나 고통, 그리고 죽음을 새롭게 관통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질서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제시하는 무의식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아름다운 고민을 이야기한다. 이런 고민들을 저자는 프로이트와 라깡, 윤정 정신분석가 논리를 통해서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문명 속에서 이기적인 인간은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위해 성공과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상실의 아픈 존재를 죽음 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그 상실은 새로운 상실의 주체로 가지고 능동적인 삶을 고민하는 미학의 생명으로 무의식을 성찰한다. 책 1부에는 프로이트의 충동의 무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성 중심의 근대적 패러다임을 깨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문명 속에서 억압받아 발생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증상들의 원인을 무의식에서 찾아내면서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임상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2부에서는 라깡의 상징의 무의식으로 인간을 대타자인 언어의 의미를 가지고 표현하는 욕망의 주체로 보고 있으며, 언어로 상징화된 무의식의 반복적인 출현을 욕망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3부에서는 윤정의 현상의 무의식은 자아와 초자아를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역동적인 지배자이며, 생명의 질서를 창조하는 주체로 설정하고 있다. 그 동안 의식 중심 속에서 자아는 질서 있는 이성중심의 진리를 욕망하여 왔지만, 혼란스러운 인위적 자아의 문명 속에서 자아는 상실 당하며 살아왔다고 분석한다. 무의식의 현상은 새로운 생명 질서를 가지고 몸의 증상과 자아의 고통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지닌 생명의 주체를 성찰하길 원하고 있다. 각 말미에는 5가지 사례를 직접 제시하고 분석하고 있어 매우 실용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의 종이 진실한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는 내면세계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딛길 바라는 바램에서 저자가 25년 동안 연구해온 임상의 결과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의미들은 저자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는 변함없는 생명 질서의 현상이다. 많은 부분은 학자들이 고민해온 삶의 고백들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새롭게 의미를 끌어낸 기표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소홀히 해왔더라고 했더라면 정신분석학은 진정 소중한 것이며, 앞으로 새로운 삶의 길을 성찰하는데 하나의 지표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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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내용은 인간발달과 관련된 공부를 해본 사람들은 익히 공부를 해왔고, 익숙한 내용들이라고 생각된다. 객관식이나 주관식 시험에서 내용의 의미는 뒤로 한채 자격증 취득이나 학점 취득에만 몰두하며 암기에만 전념했던 추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은 무의식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다. 3인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충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 보고 있다. 라깡의 무의식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마지막에서는 저자의 시각에서 보는 현상의 무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의 충동으로 본다. 라깡은 언어적 의미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소외와 결여에서 무의식이 발생한다고 보았고, 윤정이라는 저자는 이들의 사유체계를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미생물학 등과 결부시켜 생명과 현상의 관점에서 무의식을 본다. 저자의 시각에서 본 무의식이 가장 넓은 측면에서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이 있으며, 리비도의 흐름에 따라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 성기기로 나누어서 보았다. 그리고 이드, 자아, 초자아로 구분하였으며 쾌락 원리를 넘어서 라는 책에서는 삶의 충동인 에로스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의 대립에 의하여 삶과 죽음을 조망하였다. 프로이트 분석사례에서는 살인, 자살, 정신분열증(조현병), 자폐, 우울증을 다루고 있다. 라깡은 프로이트를 계승하면서도 생리학에 바탕을 둔 프로이트가 리비도에 근거한 무의식을 주장한 것과 달리 철학과 언어학적 사유를 토대로 언어와 지식에 근거한 무의식을 제시하였다. 특히 라깡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3단계로 나누어 주체를 드러낸다고 한다. 라깡 분석 사례에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불면증, 중독증, 강박증, 자기애성(나르시시즘) 성격장애를 담고 있다. 저자인 윤정의 무의식은 현상 속에서 무의식을 바라본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한계의 관점에서 무의식을 들여다 보는데, 유한한 크기를 가진 모든 물질과 생명체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무의식의 원자의 세계로부터 분자의 세계, 세포의 세계, 다양한 세포의 생명체로부터 역동적인 현상인 무의식이 확장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원핵세포, 진핵세포, 세포의 생명질서, 질병, 미생물 등을 중심으로 무의식을 고찰하고 있다. 윤정 분석 사례에서는 염증, 치매, 자가면역질환, 비만과 당뇨, 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유한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지만, 생명의 반복을 이해한다면 생명 그 자체가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의 세포들도 400번 살고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번식만 하는 강한 내성을 가졌다고 한다. 암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해묵은 분노와 죄의식 때문에 늘 타자들보다 강하거나 우월하다는 자의식에 머물렀던 결과의 증상이라고 한다. 암은 절실하게 진실한 사랑을 원하고 그 사랑을 타자와 공유할 때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책의 표지를 보면 질병, 죽음, 고통 속에서 생명의 질서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진실을 고백할 수 있도록 현상의 무의식이 단신의 존재에 답을 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충동의 무의식에서 라깡의 상징의 무의식으로, 마지막에는 저자인 윤정의 현상의 무의식으로 귀결되는 논리를 갖고 있다. 무의식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정신 분석은 아직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글을 읽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등에 대한 고민은 인류가 시작된 이후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을 좀더 성찰해보는 시각을 넓히는데 이 책도 좋은 시각을 넓혀주리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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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자기에서 이번에도 '윤정' 교수님의 책이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이라는 제목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심오한 책이어서 더 반갑고 또 설렘을 가지고 '윤정' 교수님 책을 매번 기다리고 기대하는데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라는 제목에서도 어필하듯이, '무의식의 세계' 그리고 그것의 생명력에 대한 연관됨까지 모두 의식을 연결하고 맥락을 기억하면서 읽고 음미하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것에도 충분한 독서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가 던져주는 주제들에 음미하는 시간까지도 점점 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포, 생명, 무의식의 지배 등과 관련된 내용과 그 키워드들에 호감과 호기심을 느끼면서 나아가게 되어서 기쁘기 그지 없었고요~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에서 전반적으로 '누가 당신을 지배하여 왔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음미하고 또 그에 응답하게 됩니다. 무의식에 의해 나도 모르게 잠식 당하는 나의 의식에 대한 고찰이 가능하도록 해주어서 더욱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요. 무의식과 의식에 대한 의미와 해석들부터 시작하니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리고 충실하게 음미하게 되는 마음은 한없이 커지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21세기 정신분석학을 표방하고 있으며, 정신분석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답니다. 그 속에서 세포의 생명 질서와 그 현상이 무의식으로 일어나기에 생며의 지배자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도록 분석하는 것, 더불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더욱 인생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발굴해내고 미래에 대해 밝게 예견하고 조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인간 존재의 사유적 존재로서의 의미까지 묻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결국 우리는 이 책의 제목처럼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에 당당하게 맞서고 수용할 수 있음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의 정신분석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책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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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중심의 학문이 낳은 폐단과 부작용에 대한 회의와 반성은 이성과 의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고민하며 무의식의로의 관심으로 전환된다. 이드와 자아와 초자아. 프로이트의 분석으로 보면 인간은 세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세가지 모습들이 싸우며 드러나고 반응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은 너무나 흥미롭다. 정신분석학이 이리도 재미있는 것이던가? 초자아에 지배당한 자아가 충동적 억압의 무의식에 개입당하면 그 실제적증상은 정신분열증으로 표출된다는.. 이드속 무의식은 인격내부의 분열성을 죽음의 충동으로 완성하려 밀어붙이는 역동적인 것으로 분석했다. 자아를 상실하고 무의식의 지배에 빠지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도피로서의 죽음이라 흔히 말하는 그것은 결국?무의식이 조정하는 충동적 쾌락의 결말이라고 보고 있다. 언어를 통한 욕구의 표현으로 구조주의를 주장한 라깡을 처음 읽었을때의 신선한 충격이 떠오른다. 욕구와 요구와 욕망. 언어로서 표현되는 자아의 분출. 라깡은 그 언어의 주체가 무의식이라 주장했다. 물질로 자아를 채우려는 현대인은 오히려 그로 인해 자아는 점점 소외를 느낀다. 무의식을 리비도의 충동으로 본 프로이트, 언어와 기호에서 무의식의 주체를 찾은 라깡과는 달리 저자 윤정은 현상들에서 무의식을 찾는다. 절대진리같은 초자아의 비난과 억압에 자아가 굴복하면 그것은 자살,정신분열,자폐등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을 지배한다고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그 사례들의 배경에는 모두 무의식이 있다. 프로이트와 라깡 그리고 저자 윤정은? 책 제목대로 무의식은 자아와 초자아를 모두 지배하는, 생명지배의 근원이자 배경에는 무의식이 존재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참으로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이런 정신분석분야는 쉽지가 않다. 이해하기 어려운, 알것같은데 책을 덮고나면 알수 없는.. 책 한두권 읽는다고 어찌 알수 있을까? 그럼에도 너무나 재미있다. 참고문헌을 보면 100여권의 책이 나온다. 융과 아들러는 기본이고 하이데거,니체,홉스,들뢰즈 등등 그 책들을 다 읽은 후라면 이해 비슷한걸 조금은 할수 있지 않을까? 두고두고 꺼내어 보고 생각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간은 타자하고의 관계속에서 살아야하는 '더불어존재(자아)' 이다. - 하이데거 사라지지 않는 존재는 영원히 알수 없어서 영원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윤 정 (마지막 장의 고백이라는 시도 참 인상적이다.) #리딩메이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북큐레이션 #독서는삶을바꾼다 #소소한행복? #읽고실천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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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프로이트, 라깡, 윤정. 필자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압도적인 이름을 가진 두분과 함께 자신을 넣은 걸 보면...
이 책은 프로이트, 라깡의 정신분석학과 윤정의 정신분석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1부는 프로이트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다루고 프로이트의 분석사례를 보여줍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쾌락과 무의식에 기반한 성에 연계하여 해석하였다는 데 의미와 비판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신경증을 겪는 이유를 문명이라고 한답니다. 본능은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사회와 문명은 본능을 죽이고 사회화라는 것을 강요하는데 자연스럽지 않음에 의하여 억압이 생기고 이것은 고통과 갈등으로 내제됩니다. 밖으로 표현하면 차라리 나을 수 있죠. 억누르고 있다가 이것이 무의식에 충등하면 신경증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평생 크고 작게 몇 차례의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몇몇 특정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정신의 감기라고 칭하나 봅니다.
저만해도 우울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뭔가 억압을 받는.. 그런 느낌이 있을 때 계속 피곤하거나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그렇거든요. 춘곤증 같기도 하지만... 보름정도 그랬던거 같습니다.
무의식 중에서도 충동적인 무의식을 다루었습니다.
다음은 라깡입니다. 프로이트 이후 학파가 양분되는 데 프로이트의 딸이 주축이 된 자아 심리학과 함께 기호학적인 개념을 도입한 정신분석학으로 언어가 무의식을 만들어낸다는 이론을 전개하였습니다. 프로이트에 대해선 여러 책으로 겉핥기로 나마 알았지만 라깡에 대해선 처음 알았습니다. 라깡의 정신분석학은 주장대로 기호학적인 내용들이 많아 보입니다. 나무와 tree.. 글자가 상징하는.. 표현하는 것들이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말한다는 내용은 흥미로웠습니다.
다음은 윤정입니다. 윤정은 모호합니다.... 뭐지 정신분석학적인 내용이라기보단 생물학적인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세포의 세계와의 접촉. 이라는 생명 근원적인 부분과 정신의학적인 부분을 접목하는 그런 느낌 난해합니다.
세 사람의 정신분석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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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무의식은 성적업압을 말하고, 라깡은 언어와 상징에서 출발하고, 윤정은 생명과 현상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무의식은 말그대로 의식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의식세계에 삽니다. 모든것을 의식속에서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참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고대에는 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신은 찾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것을 커버해주는 큰 힘이고 지배자입니다. 그런데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는 우리의 목숨을 쥐고 있는것이 무의식이라고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질병과 죽음 고통을 가로지르는 질서가 바로 무의식을 들어내려고 합니다. 인간의 생예 80년간 세포는 태어나고 죽고를 400번 반복하면서 몸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태어남이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소멸합니다. 의식은 무의식으로 빨려들어가버립니다. 얼마전 발견되었다는 블랙홀처럼요. 우리에게 존재하는관계의 현상을 인정하며 자기동일성에 붙들려있지말고 그것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기보다 항상 현재임으로 의식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페이지를 넘김이 쌓여갈수록 그 울림이 커집니다. 저자 윤정은 자기소통상담가라는 타이틀로 소개됩니다. 시인이며, 정신분석상담가이며, 월간 기독 편집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NLP마스터이고 태교, 죽음, 최면 등을 연구하고 교육한다고 합니다. 문득 저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유튜브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멋진 육성으로 노래하는 영상이 있군요. 책의 기운이 저자의 인상에 잘나타난 느낌이었습니다. 책은 프로이드와 라깡, 그리고 저자 윤정의 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3부로 모아두었습니다. 프로이드가 추구하는 무의식은 바로 문명속에서 인간의 어려움입니다. 인간이 문명의 속박에 묶기가 된것은 얼마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문명에 속박당한 인간은 본능을 표현못하도록 억압당합니다. 무의식이 억압당하면서 사람은 다양한 고통속에 살게 됩니다. 그 억압으로 부터 끌어내는 것이 무의식을 들어내는 작업일겁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오이디프스 컴푸렉스이고 타나토스의 죽음충동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열증도 문명이 가져온 사회화에 정착하지못한 자아가 자유로운 무의식 초자아에 붙들려서 타인이 보기에 제정신없는 반사회적 인간으로 폄하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초자아 무의식의 성취를 열어주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무의식의 숨통을 열어주자는 겁니다. 라깡은 프로이드의 계승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들고 나온것은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언어의 감옥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더욱 난해해지는 면이 큽니다. 프로이드의 딸은 자가의 각성을 통해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려고 했다면 라캉은 문명자체가 무의식 덩어리이므로 그 자체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인해가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소외와 결핍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세상은 소외와 결핍으로 꽉차 욕망합니다. 결국 남을 갈망하는 것은 문명을 갈망하는 것은 나를 갈망하는 것이 되어버려서 문명과 타자에 대한 무의미가 커져버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욕구를 줄이려는 노력과 남을 사랑하려는 노력이 바로 결핍으로 꽉찬 나의 어려움을 줄여버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마지막 장은 윤정의 무의식입니다. 프로이드와 라깡과는 달리 과학적 발견에 기반을 해서 무의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충동, 소외, 결핍은 우주의 기본 원자에 스며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다 알다시피 원자는 안정된 구조가 아닙니다. 전자 중성자등의 불완전한 상태의 충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에 같이 스며있는 충동 소외 결핍도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상호소통하게 되는 겁니다. 만약 원자가 불완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주체는 불안속에서 영원하다는겁니다. 현상의 무의식 그곳은 생명의 본향이라 합니다. 불완전한 충동, 소외, 결핍의 요람일겁니다. 이 불안정함을 안정화시키려는 무의식의 확장을 막으려는 것이 윤정의 정신분석이란 노력일겁니다. 무의식이 그럴수밖에 없다는 현상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불안하지 않나요. 불만이지 않나요. 모두 무의식의 장난입니다. 아니 무의식의 본질입니다. 그것을 사랑하는 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현재의 어려움에서 자유로워 지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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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인간 존재의 정신에 대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이야기 하지만 무의식에 이 책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는 시인이자 정신분석 상담가인 윤정 저자와 무의식의 세계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인간의 욕망이며 쾌락적 수단이라고 말하는데 문명에 억압받은 존재의 저자 윤정이 말하는 생명의 질서는 자아와 초자아의 연결이며 이러한 연결로 나아가는것이 정신분석가 3인, 프로이트, 라깡, 윤정의 인간 존재의 탐구와 정신분석으로의 무의식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