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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거의 천재적인 그의 글솜씨에 반해버리고 말 것이다.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말이다. 나도 아는 작가분으로부터 로맹 가리의 책을 소개 받고 처음 읽은 책이 『새벽의 약속』이었다. 로맹 가리가 어머니를 추억하는 자전적 소설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너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외교관이 될 것이다 라고 간절한 염원을 했던 모성애가 그려졌던 작품이었다. 그후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 에밀 아자르 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써 공쿠르 상을 받았던 작품. 열네 살의 모모와 자신을 돌봐 주었던 로쟈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로 가슴속에 굉장한 울림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 뒤로 그의 책을 더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을 가진 비단뱀 그로칼랭을 키우는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인『그로칼랭』을 읽으며 도시인의 우울한 삶, 고독 등을 느낄수 있었다. 그의 글마다 다 다른 특색이 있었으며, 읽다 보면 내용에 쏙 빠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삶, 외교관이면서도 천재적인 소설가였던 이, 또 숱한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이 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진 세버그를 만났다. 아내 레슬리가 있는 상태로. 또한 진 세버그도 누군가와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서로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만다. 서로에게 매혹된 그들은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한다. 서로에게 달려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수근거림에도 그들은 함께 한다. 한 사람 만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유일한 사랑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헤어진 뒤 곁에서 지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입에 권총을 물고 자살한 로맹 가리와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자동차에서 죽은 채 발견된 진 세버그의 의문스러운 죽음에서도 그들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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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세버그의 사진들을 훑어 보았다. 사진에서처럼 짧은 커트 머리의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발랄하고 풋풋해 보이는 그녀. 스물한 살의 진 세버그와 마흔다섯 살의 로맹 가리.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고 말 진 세버그였다. 그런 그녀가 흑인 인권 운동에 뛰어 들어 점점 추락하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나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사랑 이야기를 세기의 사랑처럼 영화적인 면을 은근히 기대했었나 보다.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그들의 아들 알렉상드르 디에고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그런 로맨틱한 이야기들을. 내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이 서로에게 매혹된 상태에서부터 그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서로에게 맞물리는 시간들 까지를 말한다. 그런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달콤하지만은 않다. 저만치서 바라보는 듯, 약간은 차가운 감성으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열정적이고도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 그후의 애틋한 우정과 연민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마지막 작별에 이르기까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사랑과 삶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영화처럼 느껴졌다. 아름답고 슬픈 영화.
로맹 가리가 힘들때마다 마음을 풀어 놓았을 그의 소설들을 좀더 살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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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나타나면 흘러내려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 세버그는 후자에 속했고, 로맹 가리 역시 그랬다..
어떤 작가의 글을 읽게 되고, 그 작가의 글에 매료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특유의 문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법.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감성등,,, 하지만 이 작가만큼 그 작가 자체에 대한 관심과 그의 극적인 인생이 투영이 되어있을 법한 그의 작품들이 궁금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로맹가리.. 그의 이름앞에 붙는 수식어는 그야말로 화려하고 다양하다. 1914년 러시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많은 수훈을 세워 훈장까지 받는 전쟁의 영웅, 철저한 드골주의자로서 세계 각국에서 맹약을 떨치는 외교관. 많은 글들을 써 내려가는 위대한 작가..그리고 많은 염문들.. 24살 연하의 미모의 여배우인 진 세버그와의 사랑.. 그리고 자살... 어떤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그의 생과 그의 생에서 가장 굵은 획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진세버그와의 사랑은 그들의 전기라기보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였다.
로맹가리가 로스엔젤레스에 프랑스 총영사로 부임해 있을 때 초대한 진세버그 부부 (당시 그들은 각각 유부남, 유부녀였다..) 그렇게 첫 대면을 하게 된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일반적인 관습과 세속적인 것에 묶여 있던 모든 것을 풀어 놓아버리는 ,자석처럼 끌리는 극적인 만남이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24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시작된 그 둘의 삶을 하나씩 조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만남까지 그 교차점으로 점점 이야기의 간격을 줄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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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는 1914년 로맹 카체브라는 이름으로 유태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났다. 무명단역배우였던 어머니 니나는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프랑스인의 운명을 만들어 주겠다는 각오로 열네살이된 로맹가리와 그 신념만을 가지고 프랑스로 이주를 한다. 로맹가리는 자신의 생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니 알아서들 생각하라고 하고 세계적인 무성영화 배우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자기 죽음의 순간과 자기 가족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가리는 조소라도 하듯 두 가지 다 선택한다. (p 31) 그는 그의 어머니 니나의 바램은 이루어 진다. 그는 프랑스의 전쟁 영웅으로 훈장을 받고, 캘리포니아 주재 프랑스 총영사가 되어 외교관의 신분을 얻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작가가 될 뿐 아니라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게 된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 세련된 말솜씨는 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생에 있어서 위의 많은 수식어 중 한 가지를 얻기도 힘이 드는데 이 모든 것을 손에 거머쥐 그..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평생 가지고 살아야했고 촉망받은 작가였지만 문단의 시기와 편견도 함께 갖어야했고 철저한 드골신봉자였으나 68혁명당시에는 학생들의 편에서 시위에 가담을 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 진세버그와 8년만에 결별을 하지만 끝까지 그녀를 돌보고 그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12년의 세월을 함께 한다.. 진 세버그의 자살 이후 1년만에 권총을 입에 물어버린 그가 남긴 편지..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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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버그는 1938년 미국의 행복하고 엄격한 청교도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학창시절 한 교수의 눈에 띠어 당시 오토 프레밍거 감독이 준비하고 있던 <성녀 잔타르크>의 공개 오디션에 뽑히게 되면서 은막에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다만 진 세버그라는 배우를 프랑스에 각인시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후 누벨바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을 맡게된 그녀.. 짧은 머리의 보이쉬한 매력을 발산하던 그녀는 그녀만의 매력으로 각인이 되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명사로 남는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도 이렇듯 절정에 이르는 듯 하지만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진보적인 성향. 흑인인권운동의 참여 등으로 FBI의 감시와 함께 미국인들의 비난을 얻게 되고 그후로 우울증으로 인한 잦은 자살시도끝에 1979년 자신의 차에서 열흘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이 되면서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 이 책을 읽으며 일반적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 24살의 나이, 각자의 삶 만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한 그들의 삶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진 또 다른 숨은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그들의 사랑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달콤함과 뜨거움의 한 부분일 뿐 그들의 숨가쁜 사랑은 오히려 그들 생에 대한 숨가쁨이 아니었을까... 결코 평범함 삶, 사랑이 아니었다.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사랑을 일종의 극적인 스캔들로 여기며 더 주목을 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들의 숨가뻤던 삶, 생을 진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봐주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맹가리의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야겠다는 생각. 진세버그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속에 투영되어 있는 그들의 당시 삶과 생각들을 공유하며 그들의 사랑을 숨가쁨을 이해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빌노나 바르샤바 거리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이 어떤 증오를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 막연한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니나를 어머니로, 진 세버그를 아내로 두지 않은 사람은 새벽을 약속하는 세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거짓된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가리가 했듯이 포옹으로 몸을 . 키스로 입을 채워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진정으로 말하지 못한다. 사막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대양을 형제로 여겨보지 않은 사람은 어느 아침의 아름다움을, 여인의 빛을, 광대의 필사적인 웃음을 찾을 지평선 너머로 가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꺼져버리라고 말하지 못한다..(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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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그녀는 스물 하나, 그는 마흔다섯이었다. 나이로 보면 가리는 그녀의 아버지뻘이었다. 키 162센티미터의 가냘픈 그녀는 그의 어깨에도 닿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할 때면 그는 허리를 굽혔다. 도미니크 보나는 『로맹 가리』에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이렇게 서술했다. 이것은 로맹 가리의 첫 아내였던 레슬리 블랜치와의 첫 만남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어서 흥미롭다. “고골리를 닮으셨네요.” 그녀가 가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둘 모두에게 가장 멋진 칭찬이다. 작은 키, 호리호리한 몸매, 금발에 청록색 눈동자, 빨갛게 칠한 입술. 그녀는 도자기 인형을 연상시킨다. 값비싸고 깨지기 쉬운 영국 인형을. 두 만남 모두 매우 인상적이지만, 레슬리가 로맹 가리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가 좀더 강렬하다. 로맹을 만났을 당시 레슬리는 서른일곱 살이었다. 로맹보다 일곱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이미 잡지계에서 경력을 쌓아 명성을 얻은 뛰어난 기자였다. 유명한 예술가와 작가들의 친구로 런던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었다. 레슬리의 활동 무대는 언론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로맹은 아직 풋내기에 한낱 신인에 불과했다. 레슬리는 데뷔 시절의 로맹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탁월한 소설가’로 평가했다. 그에 비해 진은 가리의 천재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발적이고 열렬하게 가리에게 전적으로 헌신했다. 그녀는 그의 골수 팬이었다. 진 세버그는 로맹 가리의 생일인 5월 8일에 로맹의 작품인『새벽의 약속』중 두 장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 선물한다. 온 정성을 기울인, 마음을 담은 선물인 셈이다. 로맹에게 진 세버그라는 존재는, 그녀가 가진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가 남성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거울이 비춰주는 자기 모습에서 피그말리온 혹은 마왕의 이미지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모든 모순적인 불꽃으로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곧 나이 차이로 더욱 두드러진 둘 사이의 권력 관계가 지배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남자와 삶을 힘겨워하는 어린 스타 사이에 자리잡게 된다. 황소와 전갈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으로서. 땅과 불의 별자리인 황소좌에서 태어난 가리는, 깊게 보면 의지가 강한 인간, 운명을 이끌기를 좋아하는 인간인 동시에 꿈에 취한 인간이었던 데 반해 전갈자리의 모든 상징 중에서도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숙명을 타고난 진 세버그는 그녀 내부에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점들이 각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도 극복 불가능한 간극이 둘 사이에 존재했다. 이러한 점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 차이이다. ‘흰 개와 검은 표범’으로 상징되는. 로맹 가리는 스스로를 백인으로도 흑인으로도 느끼지 않았다. 어느 인종 편에도 서려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피, 동유럽의 혼혈도 그에게는 더 나은 ‘대의’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인간만이, 다시 말해 성이나 피부 색깔의 차이가 없는 인간 존재만이 투쟁해 보호할 만한 가치였다. 그런 그에게 흑인 인권 운동을 전면에 거창하게 내세우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인 척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은 서커스처럼 보였다. 그 모든 상황이 그를 화나게 했다. 가리는 차라리 폭력을 믿으라면 믿겠지만 자비의 정신은 결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검은 표범’으로 대표할 수 있는 단체들에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 그에 비해 진 세버그는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해 자기를 바쳤다. 이것은 로맹 가리의 욕구를 거스른 것이었다. 가리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차분하게 글을 쓰고 싶어한 반면 진은 그에게 폭풍을 강요했다. 진 세버그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에서처럼 아메리카의 잔 다르크가 되기로 한 것이다. 로맹 가리가 보기에 그것은 ‘진정성의 유혹’, 예술가라면 언젠가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더이상 연극 무대가 아니라 삶의 무대에 뛰어들고자 하는 욕망과 드잡이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로맹 가리는 초개처럼 그녀를 불태울 수도 있는 그 위험한 불구덩이 같은 욕망 속에서 진을 구해내고 싶어했지만 진의 열정은 진실에 대한 내적 욕구에 의해 한없이 증폭되었다. 앞선 세대는 곳곳에 죽음을 낳았고 인류에 치욕을 안긴 전쟁을 치렀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리화나 좀 피우고 사랑을 나누는 게 뭐가 나빠? 방식이 자유분방해도 사랑은 사랑이야. 어쨌든 스탈린그라드나 인도차이나, 베트남, 한국처럼 서로를 죽이는 것보는 낫잖아.” 젊은이들은 젊음을 원해서 케네디를 선출했고, 그를 암살했다. 젊은이들은 꿈을 원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내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부르짖을 때 그를 암살했다. 베레모를 쓰고 턱수염을 기른, 가슴에 정의를 품은 잘생긴 체 게바라도 암살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배를 움켜쥐고 웃었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미치광이처럼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부수었다. 진도 이 세대에 속했다. 완전히 패배하지도 완전히 승리하지도 않은, 그저 아무렇게나 휩쓸리도록 내팽개쳐졌을 뿐인 세대에. (pp.138-139)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로맹 가리의 작품인 『흰 개』에 잘 나타난다. 이 작품은 미국 역사의 한 에피소드에 대한 그의 증언일 뿐만 아니라, ‘검은 표범’과 진 세버그와의 개인적 청산이기도 하다. 보편적 관용의 윤리를 위해 흑백갈등 바깥으로 물러섬으로써, 그는 진을 단념하고 결국 그녀를 스스로 선택한 운명에 방치한다. 도울 수도, 변화시킬 수도, 결별할 수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로맹 가리는 언제라도 진이 돌아오면 사용할 수 있도록 방 몇 칸을 비워둔 채 조용한 바크 가에서 아들과 함께 사는 쪽을 택했다. 이혼 절차가 진행중이었지만, 가리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으로 그들이 갈라설 수는 없었다. ‘우린 이혼이 갈라놓기에는 너무 가깝습니다.’ 가리는 자유롭기를, 주변부에 머물러 있기를, 모든 분파주의, 심지어 진 세버그와 같은 극단적인 반인종차별주의에서도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를 사랑했던 진 세버그조차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도 그녀를 격랑의 회오리 속에서 구원할 수 없었다. ‘난 타고난 소수자다. 다수의 강한 자들에게 난 반대다.’ * 로맹 가리의 작품인『유로파』에서 단테스가 사랑하는 여인 에리카 폰 레이덴에게 묻는다. 개인적으로는 로맹과 진의 사랑에 대한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정열적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 어떤 기분이 들죠?” “당신 먼저……” 그녀가 속삭인다.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한 기분. 당신은?” 그가 말한다. “아직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요……” Side B 이 책의 책 소개에는 ‘신화적 사랑’으로 윤색된 그들 관계의 시작과 끝, 전기문학의 섬세한 매크로렌즈로 왜곡 없이 뒤좇다라고 되어 있다. 이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아름다워야 할 ‘사랑’은 시종일관 건조하다. 독자들이 원한 게 두 사람의 사랑을 신화적으로 윤색한 것도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무참히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게 둘의 인생을 교차하며 단순히 나열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야기 곳곳에 사족과 같은 작가의 평가가 너무 많이 끼어든다. 변사같이 쉽게 감탄하고 자조하면서. 무미건조한 글에 비해 노골적으로 잦은 감정 표현은 언발란스할 뿐만 아니라 글의 흐름을 종종 끊어 놓는다.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매우 산만해서 몰입을 방해한다. 이 책 전반에서 저자가 프레밍거를 평가한 부분을 그대로 저자에 대한 평가로 사용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 저자가 자국에서 얼마나 인정받는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아는 주제를 맛있게 잘 살리는 것은 오로지 저자의 재능에 달릴 것일텐데 그 맛을 잘 살리지 못해 아쉽다. 역사도 잔 다르크라는 인물도 누구나 아는 주제였다. 다만 이야기의 맛은 그것을 얘기하는 사람의 재능에 오롯이 달렸는데, 재능도 있고 성공과도 친근한 프레밍거가 그 맛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p. 63) 건조한 직역투 번역도 한 몫했다. 그동안 이 번역가가 작업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모든 걸 건조하고 재미없게 만드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원문에 충실했어요.’라는 건 이 경우 변명일 뿐이다. 더욱이 전공서적도 아닌 아름답게 읽혀야 하는 이런 책이라면 더욱 더. 여러모로 문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진이 떠난 후에도 끝나지 않고 가리 안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가『여인의 빛』에서 잘 상상한 것처럼. “한 여인을 온 눈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아침과 숲과 밭과 샘과 새들을 다 바쳐 사랑해도 그 여인을 충분히 사랑한 것이 아니며, 세상은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pp. 229-230) [덧붙임] Side A의 내용은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문학동네, 2006)의 내용 중 이 책의 내용에 부합할 만한 부분들만을 일일이 발췌한 후 내용에 맞게 새롭게 편집, 재작성한 것이다. 폴 세르주 카콩의 책을 좋게 읽은 독자든 그렇지 않은 독자든 일독을 권한다. 전자라면 그 감동이 배가되면서 로맹 가리의 모든 작품들을 읽고 싶어질테고 후자라면 이 책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게 될테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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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깊어가는 여름밤,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그치면 여름 숲은 더 깊어지고 더 짙어질 것이다. 오늘보다 더 빛나는 초록을 만나게 될 것이다. 2년 전 오랜 투병 생활을 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홀로 사셨던, 동생이지만 언니 같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로맹 가리는 앙드레 말로의 장례식에 참석해 “가장 위대한 사람들조차 죽는 게 삶이다”고 했지만,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엉뚱하게도 사인은 폐렴이었다. 사랑 역시 장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1938년생 당시 스물한 살, 이른 결혼을 한 진 세버그는 1914년생 아내가 있던 마흔다섯 살의 로맹 가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음을 느꼈다.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 한때 내게도 있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을 읽었다. 유대계 프랑스 작가로 다섯 개의 필명으로 활동했던, 나에겐 ‘에밀 아자르’로 기억되는 작가 로맹 가리와 영화 <슬픔이여 안녕>과 <네 멋대로 해라>의 주연이자 각종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그래서 정부 기관과 언론의 공세를 받았던 진 세버그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얽힌, 영화 같은 혹은 소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진 세버그에게 로맹 가리는 두렵지만 빠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만남 이전부터 그러했다. 로맹 가리는 그녀의 시선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눈에 흔들린 건 꿈과 광기를 주었던 유대인이자 무명의 단역 배우였던 어머니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로맹 가리가 프랑스인, 그것도 대표적인 인물이 되길 바랐다. 진 세버그의 집안은 루터 교리에 따르며 행복하지만 엄격한 삶을 살았던 집안이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약사와 타협한 아버지와 교사 교육을 받고 결혼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쳤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진 세버그에게 로맹 가리는 담 너머의 두렵지만 궁금한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계선 위에 남녀는 그렇게 만났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마흔한 살의 ‘신사’가 되지 못한 네 명의 ‘보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연의 시 중엔 <나쁜 소년이 서 있다>란 시가 있다. 나는 로맹 가리에게서 나쁜 소년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나와 한 시절을 함께 한 나쁜 소년들이 떠올랐다. 로맹 가리가 나쁜 소년이었다면 진도 나쁜 소녀였다. 매력과 열정으로 가득한 한여름의 태양을 닮은 두 사람이 살기에 세상은 너무 비좁았다. 시선과 관습은 그들의 자유를 원치 않았다. 아는가, 나를 사랑에 빠지게 그/녀의 그 점이 헤어짐의 이유라는 걸. 그들의 사랑도 끝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그녀는 그가 보내온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존재의 끝은 소멸이며 사랑도 다르지 않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에겐 사랑보다 깊은 무엇이 있었다. 사랑이 끝나도 그들은 헤어지지 못했다.
로맹 카체브는 로맹 가리였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였다. 로맹 가리는 그렇게 가면의 생을 살았다. 진 세버그는 영화 속에서 다른 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생은 현실의 삶과 일치했다. 그들에게 현실은 소설 같았고 영화는 현실 같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깊은 고통이었고 생의 비극이었다. 마흔하나, <신사의 품격>의 신사가 되지 못한 ‘보이’들과 같은 나이에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치지 않으면 삶의 끝에 선 느낌이 들지 않을까? 로맹 가리에게 진 세버그의 부재는 거울에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빗소리는 멎었다. 처음 그들의 사랑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웠지만 시간을 견디며 깊고 짙어졌다. 초록이 가득한 여름 숲처럼. “가장 위대한 사람들조차 죽는 게 삶”이지만 그들의 죽음은 아프고 슬펐다. 빗속에서 울고 싶은 밤이다.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분간 안 되게,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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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후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파란 많았던 이들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의 복잡다단한 사랑과 삶에 대해 다이제스트하듯 한권의 책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는 것이 어떻게 작품으로서 그윽한 향으로 승화되어 도출되는가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이 작품은 로맹가리라는 외교관이자 걸출한 작가와 여배우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진세버그의 태생에서 부터 성장, 그리고 각각의 분야, 작가와 배우로서의 활동과 그 둘의 만남, 사랑, 이별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요약본 형태의 교차서술로 이뤄진 세미 바이오그라피적인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생을 기술하는 저자 폴 세르주 카콩의 정서적이면서 감각적이고 예술철학적인 인생관들이 문장마다에 잘 스며들어 있어 사색의 여지들을 한아름 안겨준다. 누구에게, 누구긴 읽는 독자지.
개인적으로 로맹가리라는 작가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에밀 아자르란 저자명으로 국내 번역 발간된 [자기앞의 생]이란 작품을 통해서이다. 모모란 꼬마소년이 주는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에밀 아자르 앓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의 측면에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비롯한 몇몇 단편을 병행해서 읽었다. 그리하여 새삼 다시 작가 로맹가리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과 아울러 어떤 사상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한편, 여배우 진 세버그의 경우,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기수라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서 오래전 봤는데 기억을 못하다가 이 작품을 접하면서 아아 그 작품의 그 여배우... 하는 식으로 역추적하는 꼴이 되어 더 오래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 작가 사강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슬픔이여 안녕]에서 데이빗 니븐의 딸로 나왔던 그 여배우로 재확인 되었다. 어떤 작품이 연대기적으로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짧은 커트머리의 보이쉬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던 여배우였는데 그녀의 데뷔작인 영화 [성 잔다르크]의 영향이란 것도 이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으며 그녀의 굴곡많고 파란 많은 삶이 비극적으로 짧게 마감되는 안타까움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녀 역시 파란 많은 시대의 한복판에서 파란 많은 삶의 소용돌이에 의한 희생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들 두사람의 운명적 만남과 많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과 이별, 죽음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들 두 인물과 관계된 여러 주요한 사건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때론 드라마틱하게 또 때론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객관적 서술이 돋보일때도 있다.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 지난 세월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이들 두 인물은 다르면서도 같은 듯, 그들 삶의 이미지에서 공통으로 교차하는 지점이 의외로 넓고도 광대하게 읽힌다.
*사족- 출판의 경우, 대표 발행인 추구 지향점의 중요성을 감안할때 [마음산책]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독자로서 환영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 대중성에 기여하는 바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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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학작품을 만나고, 그러다 그 작가의 궤적을 쫓아가다보면...글 속에서 작가의 기쁨과 슬픔이 함께 보인다. 이런 것들이 글에 오롯이 담겨 있구나..뭐 그런 생각도 들면서.
그 첫 걸음이 웅진출판사에서 나왔던 '박완서의 문학앨범'이였다. 그 책을 보고, 현저동 언저리를 서성거려보기도 했고, 지금 신세계백화점 근처에서 이런 저런 작품들이 스여진 흔적들을 찾아보고자....소시적에는 조금 부지런을 떨었고 센치했었고..그만큼 작품 하나 하나에 집중하거나 몰입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로맹가리의 작품은 페루 어쩌구 하는 것과 자기앞의 생, 이렇게 두 작품을 읽었는데 어떻게 찾다보니, 마음산책에서 그의 책 여러가지를 출간했는지...무엇보다도 표지가 참 예뻐서 읽어볼까 말까 예의주시를 했는데...왜 하필 이 책을 골랐을까.
일단, 내 기대와는 달리...박완서의 문학앨범처럼 작가의 글이 없고, 그 주변인이 말하는 작가에 대한 글이 없고...무슨 파파라치가 쓴 글마냥...두서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영 와 닿지 않았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속내는 그들이나 알지...일면 일식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적어낸 글이 무슨 감흥을 줄 수 있을까. yes에는 요렇게 로맹가리가 썼다고 나왔는데...
글을 쓴 사람은 로맹가리가 아니라...폴 세르주 카콩,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곰곰히 뜯어보면...로맹 가리의 일대기, 필명을 여러개 가졌던 이유, 혹은 작품의 근간이 되는 사건, 진세버그의 이야기, 혹은 그녀와 그의 자살....나름 자극적이기도 하고,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을텐데...
사실 이렇게 재미없게 쓰기도 힘들 것이다.
번역 탓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이야기는 둥둥 뜨고, 공감도 되지 않고, 지루하기 그지 없다.
차라리, 책 서문 앞에 나오는 6컷 정도의 흑백 사진에서 느껴지는 바가 더 클 것 같다.
간만에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책을 만나서, 울분을 토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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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Pol-Serge Kakon)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출처: http://i12bent.tumblr.com/post/242749612/jean-seberg-nov-13-1938-1979-was-an 그러고 보면 이 책의 독자는 정해져 있었다. 로맹 가리Romain Gary, 혹은 에밀 아자르Emile Ajar의 팬이거나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의 여 주인공 진 세버그Jean Seberg를 잊지 못하는 이들로. 그러나 이 두 부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재미있지 않다. 로맹 가리의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글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장은 우아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 또한 이십 대의, 소년같았던 진 세버그를 잊지 누벨 바그La Nouvelle Vague 팬들에게 이 책은 진 세버그의 불행했던 정의감과 열정, 정처 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사랑의 감정을, 술과 약에 취해 있던 그녀를 지켜주던 로맹 가리의 마음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연이 어느 날 이 길이 아니라 저 길로 지나갔더라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누구나 의문을 품어본다. 생각 없이 극장 문이나 교회당 입구에 들어서는 일, 한 발짝의 걸음이 그렇듯이 한 번의 눈길이, 미소가 인생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81쪽) 책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인생, 그리고 그 둘의 만남과 사랑, 헤어짐, 자살로 이어지는 여러 장면들을 시간 순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때로는 무미건조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에밀 아자르를 제외하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사려고 노력했던 로맹 가리와, 그와는 확연히 다른, 격정적이며 혼란스럽고 정처 없는 삶을 살다 마흔 하나에 자살하는 진 세버그 사이에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서술하기란 저자인 폴 세르주 카콩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꽤 벅찬 일이였으리라. 그 만큼 둘의 인생은 확연한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엔 사랑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문제이고, 사랑은 거친 현실적 삶 속에서 잊히는 것이다. 진 세버그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잊고 싶었을 것이고, 우연히 만나는 낯선 사랑이 자기 삶의 해답이라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흑인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젊은 시절의 불합리를 고치고 싶었을 테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비현실적이었고 미 정부와 FBI는 그녀의 그런 활동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방해하고 압박했다(이 책에서 이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유대인으로 자라 2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였던 조종사 출신의, 소설가 로맹 가리에게 이러한 진 세버그의 열정은 한편으로는 아름다웠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 세버그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로맹 가리는 혼신을 다해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치 딸에게 여느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권총을 입에 물고 당기기 전 책상에 남긴 편지에 가리는 이렇게 썼다.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231쪽) 진 세버그가 그녀의 차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1년 후, 로맹 가리도 권총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프랑스 문단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에밀 아자르가 실은 로맹 가리 자신이었음이 밝혀지고, 로맹 가리를 비난하면서 에밀 아자르에겐 격찬을 보냈던 문학 평론가들은 입을 닫았다. 언젠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이 작가는 자살했을 것이라 여겼는데, ... 어쩌면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에 대한 사랑을 에밀 아자르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 대로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Au-dela de cette limite votre ticket n'est plus valable).’ 출처: http://www.purepeople.com/media/romain-gary-et-jean-seberg-en-1971_m573983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포기를 모르는 마음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랑에 대한 것이지만, 전적으로 로맹 가리(혹은 에밀 아자르), 그리고 진 세버그 팬에게만 권할 뿐, 나머지 독자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이 책은 그 가치를 발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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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연출 수업에서 였을 거다. 교수님은 누벨바그를 언급하며 '네 멋대로 해라'를 틀었다. 숏 컷트의 진 세버그가 나왔고 중절모를 쓴 장 폴 벨몽도가 나왔다. 네러티브는 제멋대로 질주했고 컷은 사정없이 튀었다. 숨가쁜 90분이 지나고 영화는 갑자기 '뜩' 하고 끝났다. 다른 모든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 학기 말 작품에서 나는 장 뤽 고다르의 화신이 되었다. 네러티브는 제멋대로 질주했고 컷은 사정없이 튀었다. 숨가쁜 28분이 지나고 영화는 갑자기 '뜩'하고 끝났다. 그것이 내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진 세버그. 누벨바그의 여신. 진 세버그는 관습과 기성질서를 타파해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키겠다는 누벨바그의 살아있는 상징이었다. 그녀의 짧게 깍은 머리는 여성을 새롭게 정의했으며 수 천년간 여성 위에 군림해왔던 수컷 사회를 대담히 도발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세상은 열광했고 숏 컷트한 여자들이 파리를 가득 채웠다. 가능성은 인정받았으나 결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이 미국 출신 여배우는, 저항과 변화의 상징이 되어, 지구 반대편인 프랑스에서 뜻 밖의 대성공을 거둔다. 1914년, 리투아니아의 젊은 단역 여배우가 로맹 가리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여배우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가난을 피해 프랑스의 니스에 도착했다. '들고 온 짐이라곤 열네 살 된 로맹과, 아들에게 프랑스인의 운명을 만들어 주겠다는 유대인 어머니의 각오 뿐이었다.'(p. 26).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넌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고 한다. 로맹은 캘리포니아 주재 프랑스 총영사가 된다. 로맹 가리는 외교관이 되기 전부터 소설을 썼고 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공군으로 참전했다. 전쟁으로는 훈장을 쓸어 담았고 소설로는 부와 명예와 인기를 얻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 속에 살아가는 법이다. 훈장과 명예와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외교 능력은 유대인이라는 최고급 양념과 버무려져 평생 핀치에 쳐박혔고 그는 소설이라는 주먹을 휘둘러 인간의 잔인함과 무지, 천박함과 편협을 고발했다. 로맹 가리의 화려한 인생은 에밀 아자르의 등장으로 정점을 맞게 된다. 에밀 아자르는 자신을 폄하하는 비평계를 묵사발 내버릴 최강의 무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소설이라도 프랑스 평론계는 유대인이자 드골주의자였던 로맹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맹수도 늙고 이빨이 빠진다. 소설가로서 로맹 가리의 경력이 끝나갈 기미가 보이자 비평가들은 그를 한물 간 소설가라고, 곰팡내 나는 다락방에 고장난 장난감을 쳐박듯 그를 몰아 붙였다. 로맹 가리는 어둠 속에서 에밀 아자르를 만들었다.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치를 떨던 비평가들이 에밀 아자르의 책에 열광했다. 에밀 아자르는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로맹 가리 또한 콩쿠르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동일한 작가에게 수상을 한 적이 없는 콩쿠르 상을 말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에서 성공했고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역시 프랑스에서 성공한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의 고향 미국에서 첫 만남을 갖는다. 진 세버그는 위트와 유머와 부와 명예와 권력과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로맹 가리에게 빠져 들었다. 다가올 불행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어리석은 남자 프랑스 모뢰이는(당시 진 세버그의 남편) 로맹 가리에게 자신의 아내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모뢰이가 돌아왔을 때 진 세버그는 이혼을 통보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박살나 버렸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시작이 박살난 사랑의 폐허에서 탄생했다. 진 세버그의 열정으로 로맹 가리 또한 이혼 했다. 두 남녀는 결혼했다. 24살의 나이차가 났다. 강이 나타나면 흘러내려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 세버그는 후자에 속했고, 로맹 가리 역시 그랬다. 두 사람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었고 황금을 찾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휴식도 구원도 전혀 없다.(p.82) 진 세버그는 사회에서 소외 받은 약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하지만 당시는 매카시즘과 인종차별의 악랄함이 박애 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짓밟던 시절이었다. 진 세버그는 '흑인들의 창녀'라고 불렸다. FBI는 그녀를 빨갱이로 간주해 사생활을 감시했고 그녀의 명예를 실추 시킬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언론에 공개했다. 악의적인 가십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괴했고 보수적이었던 진 세버그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진 세버그의 영화 경력은 쇠퇴 일로였다. 불만족이 자기 경멸로 바뀌기 시작할 때는 누구도 도울 수가 없다(p.86). 진 세버그는 알콜 중독에 걸렸고 변함없이 인종차별에 분노해 세상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로맹은 그녀의 혈기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로맹은 수 많은 이데올로기가 짧은 시간 발화했다 먼지처럼 사그라 드는 것을 경험했고, 무엇보다 세상의 비열함을 알고 있었다. 진실과 정의는 영원 불변한 가치처럼 빛나는 것 같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열광했던 사람들은 전혀 몰랐던 일인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으로 돌아간다. 로맹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엔 진이 너무 어렸다. 그녀는 언제나 유보적인 로맹 가리를, 불의와 차별에 저항하지 않는 로맹 가리를, 행동하지 않는 소설가라고 매도했다. 평생을 인종차별과 소외와 싸워온 로맹 가리에게 말이다. 로맹은 아버지 역할을 자진한게 아니었다. 24살의 나이차는 로맹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덧 씌웠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는 젊은 자식과 불화를 겪기 마련이다. 결혼 생활은 8년만에 끝났다. 로맹은 더더욱 글 쓰기에 몰두했고 그가 연기한 에밀 아자르는 콩쿠르상을 거머쥔다. 진 세버그는 물에 빠진 나비처럼 힘없이 침몰하고 있었다. 급기야 경제적 여유마저 상실한 그녀를 로맹은 위기 때 마다 건져주었다. 그녀는 로맹에게 감사했고 새로운 삶을 약속했지만 '추락하는 곳엔 날개가 없었다'. 그녀가 흑인 인권 운동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사람들은 '흑인들의 창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고 떠들어댔다. 진은 잠적해 아이를 낳았다. 로맹은 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밝혔다.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죽었다. 진 세버그는 아이를 유리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는데, 그 아이가 흑인인지 아닌지를 보기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몰려들었다. 남의 불행에서 흥미를 느끼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을 것이다. '1979년 9월 8일 토요일, 진 세버그의 시신이 그녀의 르노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었다'(p. 228). 그녀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로망 가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FBI가 그녀의 삶을 파괴했으며 진 세버그가 아기의 죽음 이후에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자살 기도를 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 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p.230~231) 이라는 메모를 남긴채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죽고 얼마 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재 작가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음이 드러났다. 세상은 충격에 빠졌고 프랑스 비평계는 침묵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인간의 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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