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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소재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해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상기된 표정은 크고 작은 걱정에 기인한 것이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많은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일들이 우려되는 모양이다. 반 편성을 하고 교실에 돌아와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향후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웃음 띤 얼굴로 마음 졸이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돌연한 일들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으나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게로 오는 것이라 여기며 자기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며 생활하길 바랐다. 아이들은 대학 진학이라는 과제를 안고 저마다 성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의를 다지지만 현실의 벽은 두꺼운 편이라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자신만의 끼를 발현하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가시적인 현상만으로 평가된 학생들의 내면은 상처로 가득 차 고등학교 선생님마저 성적인 처진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을까 두려워했다. 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선택 의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봐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탐색 중인 작은 소녀의 몸부림은 여느 갈매기와는 다른 목표를 향해 몰입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비상과 겹쳐졌다.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가 먹이를 입에 물고 돌아오는 방법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 갈매기들과는 달리 조나단은 더 멀리 날았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비행 기술을 익혔다.
기존의 질서를 따라 환경에 순응하며 살기보다는 틀을 부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계발해가는 일은 자신만의 색깔로 삶의 무늬를 놓으며 살아갈 때 전제되어야 할 요소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일이 고독하고, 많은 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헤맬 때도 있지만 갖은 시행착오 속에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있다. 갈매기 집단의 대열에서 이탈한 갈매기 조나단은 창공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갈매기 치앙을 만나 새로운 비행 기술을 배우며 도전을 거듭해 고난이도 비행 기술에 성공하여 또 다른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치앙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원리를 익히기 위해 배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당위성을 피력하며 정진하는 생활을 잇기를 바랐다.
남들은 무모한 일에 목숨을 거느냐고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고 유별나게 행동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때도 조나단은 의연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창공을 날아올랐을 때 마침내 자유로운 비행을 위한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었다.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마음을 다잡고 생각한 대로 움직이며 시도해 보았을 때 발전 가능성은 자리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나아질 자신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금 도전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때 깊숙이 자리하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해 소소한 일상에 깃든 특별한 의미를 찾아 자신의 가치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피었다가 지는 꽃들처럼 시절 인연 따라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소통하며 교감했던 제자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한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찾으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인생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이 중요함을 생각할 때마다 책은 내게 또 다른 스승으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물질적인 욕구가 채워주지 못하는 헛헛함을 상쇄해 줄 정신적 욕구의 충족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유연한 시선으로 드넓은 지평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에 투영된 인생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가보지 못한 길을 밟으며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발걸음은 인생의 궤적을 남기는 또 다른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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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모처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이틀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겐 긴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번의 휴가를 이용해 영화 '방황하는 칼날' 과 '한공주'를 보고 왔다. 두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책, 아주 오래전에 읽고 내용을 혹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안다고 밀쳐 두었던 책이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이었다. 왜 난 영화를 보는 동안 이 책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을까, 집으로 오는 길에 류시화 시인이 새로 번역한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어 보았다. 언뜻 답이 보이는 듯도 했지만, 쉽사리 그 답을 찾지는 못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저마다 간직하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꿈을 빼앗았다는 강한 자책감만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두 영화, 특히 '한공주' 의 여 주인공 공주를 향한 세상의 많은 어른들의 이기심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나는 과연 저러한 어른들 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았지만, 선뜻 "아니다" 라고 내뱉지 못할 것 같다. 영화의 울림이 주는 여운은 오래간다. 그래서 이 책이 주는 교훈(!!) 혹은 삶에 대한 지침을 흔들리는 나를 위한 이기심에서 되새겨보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성적만이 인생의 최고의 선이자 목표가 되어버린 오늘날에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기와 좋아함을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이해하며 응원해 줄 수 있을까? 말로는 책을 많이 읽고 꿈을 가져라고 하지만, 막상 그러한 시간마저 빼앗고 오로지 등급으로 그 아이를 평가하는 요즘 잣대에 두 영화가 가지는 의미와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한낱 책으로 혹은 영화로 끝이 나는 듯해 쓸쓸하기만 하다.
어제 오늘 매체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에 대한 좋지 못한 소식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많은 자책감을 갖게 한다. 분명 이러한 사태는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큰데, 그 책임을 져 줄 어른은 없고 책임을 묻고자 하는 공허한 메아리만 맴돌고 있다.
미미하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저마다 가슴 속에서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면 또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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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문구다. 고교시절 이래 굉장히 좋아해 온 문구인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오지는 못한 것 같다. 한 번 더 읽어 봐야지 하고 벼르다가 이번에 다시 읽어 보았는데, ‘난해하달까?’ 뭔가 다른 게 더 있는 것 같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새로운 비상 기법을 연마하다가 갈매기 사회에서 추방된다. 홀로 비행 연습을 계속하여 비행 높이, 속도, 기법 등이 드디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빛나는 갈매기 2마리가 나타나 그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새로운 세계는 마음으로 대화하고(텔레파시?), 새로운 비행 기법을 계속 연습하며, 심지어 생각한 곳으로의 순간 이동(텔레포트)까지 하는 판타지 세계 같았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완벽하게 비행기법을 연마하여 순간 이동까지 가능하게 되고 난 후, 자신을 추방한 갈매기의 세계로 돌아가 다른 갈매기들에게 비행을 가르쳐 주고 후임을 양성한 후 텅 빈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새로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마지막 장면에서 조나단은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이 책이 출간 직후 성직자들에게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의 죄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난받은 이유인 신의 영역이 이 새로운 세계인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생각을 접고 『신화가 된 여자, 오프라 윈프리』를 읽다가 ‘오프라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녀는 어떤 자리에서 더 이상 클 수 없을 때까지 성장하기를 원하고, 그러면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구절을 만났을 때,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나단, 넌 할 수 있어. 넌 배웠기 때문이야. 한 가지 과정이 끝났고, 이제 새로운 과정을 시작할 때가 온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그 순간 불현 듯 갈매기 조나단의 머릿속에서 이해의 밝은 빛이 빛났다. ... 그는 보다 높이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집으로 갈 시간이었다. ... “난 준비됐어!” 조나단이 현재의 삶에서 완벽에 가까운 비행을 완성했기에, 그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가 인간이 완성해야할 삶일까? 그래서 집이라고 표현했을까? 나는 아직 하나의 새로운 문도 열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완벽할 때까지 계속 노력하여, 빛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해 보아야겠다. 그러면 또 더 넓은 세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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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지음
같은 무리의 평범한 갈매기들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더 나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집단에 위협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는 일이 절대적이고 불변의 진리인양 떠받들고 있는 집단이었다.
그에 반해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갈매기였다.
다른 대다수의 갈매기들과 같이 단지 먹고 살아나가는 문제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아무도 그의 도전을 격려하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홀로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마침내 자신이 원했던 최소한의 결과물을 얻게 되지만 엉뚱하게도 이는 집단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빌미가 되고 만다.
그는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번뇌에 빠지게 된다.
똑같은 삶을 답습하여 힘들이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길이 험할지라도 그가 원하던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말이다.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의 실체가 자유로운 삶임을 그는 깨닫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움을 실천해 나가야함은 물론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아서는 안되는 무한한 자유의 관념임을 자각하게 되고 궁극의 목표인 완전함을 향하게 된다.
우선 그의 삶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 단지 1미터 남짓의 날개를 가진 한정된 육체속에 갇혀 있다는 관념과 자신의 한계를 규정지으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러한 관념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는 어느새 어떠한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는 완전함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완전함은 그에게 시간과 장소로 인한 제약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어떠한 한계도 앞을 가로막을 수 없게 만들어 주게 된다.
조나단은 외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어떤 존재로든 될 수 있다."
자유는 모든 존재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것이며
"단 하나의 진정한 법은 자유로 인도하는 법이다. 그 밖의 다른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하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어렸을 적에 이 책은 무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어린 나에게 날아가는 연습을 하는 갈매기의 모습은 수영연습을 하는 물고기를 상상하는 것과 마친가지로 별 의미없다 여겼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천부적으로 타고나면서 가지게 된 재능에 대해서 우리는 당연하다는 인식만 할 뿐, 그것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갈매기 조나단은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기존의 질서가 드리운 속박과 한계를 극복하는 용기를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도달한 완전함은 자유를 선사해주었으며, 그 자유로 인해 그는 비로소 완전함에 도달하게 된다.
자유, 그리고 완전함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하게 한 글이었다.
내용은 아주 깔끔하고 단순한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머릿속을 정말이지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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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사랑으로서의 자유.
바다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무리와 떨어져 선회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느리게, 바다와 수평을 이루어 간다. 그들 사이에서는 수치로 여겨지는, 공중에서 흔들리는 찰나도 겪는다. 그러나 다시금 도약하고, 느리게 선회하거나 혹은 다시 하늘로 빠르게 솟구쳤다 전속력으로 하강하는 날갯짓을 계속한다. 다른 갈매기 무리는 고깃배 주위를 빙빙 돌며 뱃속의 허기를 달래는 데 여념이 없다. [갈매기의 꿈]은 바다 갈매기 조나단이 공동체의 배척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갯짓의 자유를 꿈꾸는 이야기다. 공동체에서 배척당하고 홀로 연습하며 어둠을 헤치다 조나단은 다른 세계로 인도된다. 그곳에서 또 연습을 하며 셜리반과 치앙을 만나게 된다. 천국인 줄 알았던 곳에서 육체와 연습의 한계를 느낀 조나단은 묻는다. 이곳이 천국이 아니었냐고. 치앙의 대답이 인상 깊다. [...천국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도 아니다. 완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치앙의 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조나단의 생애가 저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몸의 자유, 활공의 자유, 다른 갈매기들이 먹이를 먹기 위한 날갯짓의 관성에 매몰될 때, 혼자만이 높이 오르고 멀리 보려는 노력의 날갯짓, 그것의 아름다운 자유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를 반추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몫이다. 밥벌이에 매몰되어 포기해버린 자유와 희망은 독자의 쓰라린 상처며 극복해야 할 과제다.
출판 당시, 갈매기의 꿈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오만의 죄로 가득한 작품, 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는 오만이 아니다. 궁극의 자유는 구속의 덫을 해체하는 데 있다. 오만이란 표현은 권위와 상징에서 기인한다. 오만이라 평가하는 자 스스로가 권위와 상징의 벽에 닫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의 본질은 권위를 해체하고 인습과 편견의 벽을 부수고, 자유롭게 높이 솟거나 내 멋대로 곤두박질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를 조나단은 자신을 배척한 공동체에 전하려 한다.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마라. 그대를 추방함으로써 다른 갈매기들은 단지 그들 자신을 상처입힐 뿐이다. 그들을 용서하라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라.]
사랑에 대해 계속 배워 나가거라. 라는 치앙의 메씨지가 가슴 깊이 울린다. 이 말을 조나단은 어떤 어려움에도 끝내 따르는 것이다. 방종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서의 자유를 [갈매기의 꿈]은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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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깨우침을 주는 책인 ‘갈매기의 꿈’을 꼭 한 번 읽어 보길 바란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인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비행하는 것을 무척 사랑하는 갈매기이다. 다른 갈매기들은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았지만, 조나단은 수평 비행을 하고 수직 낙하를 하는 등 자신이 목표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는 법을 꾸준히 연습했다. 하지만 이는 갈매기 사회의 오랜 관습에 저항하는 것으로 여겨져 다른 갈매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고 큰 깨달음을 주었다. 조나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추구하고,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좋지 못한 시선으로 인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포기하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했을 때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는지 등을 물어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각은 교사가 학생을 바라볼 때에도 꼭 필요한 것 같다. 만약 어떤 학생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다고 해보자. 그때 학생들은 “선생님, 이 친구가 이상한 그림을 그려요!“라고 그 학생을 비난한다면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내가 이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선은 학생들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원하는 것도 다르며,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음식, 노래 등을 물어보면서 모두가 다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고,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따로 다른 학생들에 의해 상처 받았을 학생에게 다가가 어떠한 표현을 그림에 사용한 것인지 관심을 갖고 물어본 뒤, 그 학생과 많은 대화를 해봄으로써 학생의 자유로운 표현 방법에 대해 격려해줄 것이다. 교사가 되어서 나도 조나단처럼 자유를 향해 높이 날아오르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실패해도 끝까지 도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내가 가르칠 학생들에게도 자유를 향해 힘껏 날아오를 수 있도록 옆에서 끝까지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정말 멋진 말이다. 낮게 날면 우리들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정된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높이 날아오르면 세상은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된다. 세상은 배움으로 넘쳐난다. 높이 날아오르다 떨어지는 날도 수없이 많겠지만,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그 짜릿함과 흘러넘치는 배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배움을 향해서, 그 끝을 향해서 나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조나단 시걸은 내가 본 갈매기들 중에서 가장 멋진 새이다. 가장 높이 날았고, 가장 멀리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방법들에 대해 다른 동료 갈매기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초월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깊은 마음을 가진 조나단 시걸을 잊지 않겠다. 많은 교훈을 주고, 여운을 남게 해주는 이 책을 모두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 중간에 그림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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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리처드 바크의 소설이였다. 마치 아이들의 동화 같은 전개지만 그 내용은 만만찬은 어른들 아니 세계로 향한 손길이 느껴졌다. 절대 간과해서는 이세상이 삶의의미가 상실된 삶을 살게 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겠다. 보편적인 그저 살기위해 사는 그런 삶에만 의미를 두는 그런 삶에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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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권장도서 목록에서 찾은 도서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전에부터 몇 번 들어보았던 제목 이었다. 갈매기의 꿈, 갈매기가 어떻게 꿈을 갖을까? 책이니까 갈매기가 이렇게 멋진거지... 라는 여러 생각들이 이책을 펼치게된 계기가 되었다.
평범한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외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에게는 먹는것이 아니라 나는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나는 것을 사랑하였다. 그는 다른 갈매기들과 생각부터 달랐는데 조나단은 자신이 무엇을 할수 있고,무엇을 할수 없는 가를 어렸을때부터 알고 싶어 하였다. 또, 그는 삶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삶에는 특별한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찮은 먹이를 얻기 위해 고기잡이 배와 해변사이를 오가는 그 시간을 매우 아깝게 생각하여 그 시간에 자신이 탁월하고 지성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임을 발견해야 하고 그래야 자유로워 지는것이라고 그는 항상 생각해왔다.
작가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라는 삶의 진리를 일깨우며 우리 인간들에게 눈 앞에 보이는 일만 매달리지 말고 먼 앞날을 내다 보며 저마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라고 전하고 있다.
나는 이책을 읽은 이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같은 갈매기 아니 그 같은 사람을 한명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멋진 새를 내 우상으로 삼아 나 말고도 다른 아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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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곧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리의 갈매기일 뿐이었다. 만일 나는 것에 대해 그토록 많은 걸 배우도록 태어났다면, 머릿속에 바다 지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고, 만일 더 빨리 날도록 태어났다면, 매의 짧은 날개를 갖고 있었을 것이고, 어둠 속을 날도록 창조되었다면, 올빼미의 눈을 가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몸뚱이가 수천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날 것을 알고도 더 빨리 더 높게 날기 위해 연습했다. 그에게 있어 속도는 힘이었고, 속도는 환희였으며, 속도는 순수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것은 크나큰 명예가 아니라 무책임하고도 무모한 행동으로 인한 추방이었다. 이후 조나단 시걸은 혼자서 외롭게 지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주저않지 않고 날마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갈매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각자에게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그 일에 있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새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날마다 나는 연습을 하고, 더 나은 비행술을 시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것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조나단은 자신이 떠나온 그곳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갈매기가 하나라도 있지 않을지, 자신과 같이 추방당한 갈매기가 있을지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갈매기 플레처 린드 시걸, 마틴 윌리엄 시걸, 찰스 롤랜드 시걸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친 후 함께 예전의 무리로 돌아 가지만 그곳의 갈매기들은 이미 갈매기의 경지를 뛰어 넘은 조나단 무리를 악마로 생각하며 갈매기 무리들을 파괴하러 온 자들로 여기고 또 다시 그들을 추방한다. 그것은 하나의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더 높이 날고, 더 멀리 보려는 꿈. 먹이를 얻기 위해 다툼을 벌이기보다는 더 완전하게 나는 법을 배우려는 꿈. 그리하여 진정한 자유를 얻고, 더 높은 차원에 어쩌면, <갈매기의 꿈>의 작가 리처드 바크는 인간으로써의 진정한 가치인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삶을 꿈꾸며, 안정된 삶을 위한 그저 그런 삶, 눈 뜨고 잠들어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통하여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꿈꾸고 바라보던 그런 가슴 뛰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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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음, 별로였음. 내가 예상한 내용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지만 별로……. 남는 것도 없고 되려 불쾌하기까지 한 책이었어요. 그야말로 이상 지상주의. 요즘 남발하는 행복, 꿈, 믿음에 대한 강요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보기 전까지는 그냥 뭐, 그런 책이겠지 하고 봤는데 놀랄 정도로 별로인 책이라서 정말 놀랐어요. 정말 별로었네요. 이북으로 대여해서 본 책이라 두 번을 읽었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감동과 교훈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도 아니고 말이야. 30년 전에 발간된 책이니 고전이라고 불려도 되겠죠. 현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크릿의 고전판? 덕분에 이번 감상은 좀…… 짧겠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한 내용은 뭐 그런 거였어요. 꼬맹이 갈매기인 조나단이 비상을 향한 꿈을 위해 결국 그 목표를 이루고 충족감에 가득차 부모 품을 떠나 날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내용을 예상했거든요. 근데, 에, 뭐 아주 틀린 내용은 아닌데 좀 그랬네요. 종교성도 짙고……. 이 책을 보다보면 생각이 곧 육체며, 뭐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정확히는 이해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다른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는 내용이 나와요. 아유. 좋은 내용이죠. 30년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요. 사실 30년 전은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그리 센세이션한 책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에 보기엔 놀랄만큼 낡고 정형화된 책이에요. 모르죠.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저학년 사이에는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음. 안 그래도 자기계발서며 그 놈의 힐링 서적들 혐오하는 제가 보기 좋을리가 없으니. 기성세대를 깔보는듯한 내용도 마음에 안 들어요. 신세대와 기성세대는 물론, 언제나 그래왔듯 서로 대립하기 마련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그랬듯 "요즘 젊은이들은 무례하여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 진리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언제나 문제고, 말썽쟁이고, 사회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한 마디씩 꼭 덧붙이죠.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하고. 순 뻥이에요. 뻥치고 있네. 니들도 그랬어요, 어른님들아. 다들 이런 질풍노도의 시대를 거치고 자라나는 게 사람입니다. 당신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요. 니들도 크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소리에요. 진보와 보수가 항상 대립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무시하고, 이미 삶에 찌들은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무시하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정작용과 반작용이 대립하며 역사를 이끌어갑니다. 헤겔이 말했듯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세대가 기성세대를 깔봐서는 안 되죠. 말 했죠? 그들도 다 거쳐왔다고. 기성세대를 아무 것도 모르고 현재 삶에 안주하기만 하는 바보 멍청이 한심한 패배자로 보면 안 된다고요. 비록 현재 386세대가 시간을 거치며 보수로 변했지만 그건 변절이 아니라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팩트가 옳기만 하다면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기성세대를 싸잡아 규칙에만 순종할 줄 아는 패배자들로 묘사해놓다니요. 주인공은 꿈밖에 모르는 현명한 이상주의자로 만들어놓다니. 그리고 무조건 꿈을 향해 달려가라니. 노력만, 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그걸 진리인마냥 포장해놓다니! 시크릿 수준의 강요야. 멋있는 시크릿, 고급스러운 긍정의 힘 아닌가요. 불쾌하네요. 더욱이 중간중간 보이는 종교성도 그렇고요. 3부에 들어서서 조나단은 8명의 제자를 만들고, 마지막에 조나단 자신이 아닌 자기 자신을 믿고 그 속에 내포된 사랑을 베풀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 부분에서 예수나 부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생각이 곧 육체라는 부분, 또 거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부분에서는 오만한 합리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요. 미국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아메리칸 드림도 떠올릴 수 있겠네요. ……. 배고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