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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1] 유홍준의 실크로드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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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 대한 로망 ‘버려진 곳’ 혹은 ‘돌아올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타를라마칸’ 사막. 하지만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 타림 분지에서는 한때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번성했었다. 하지만 ‘실크로드 문명’의 몰락과 이후 생겨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하나의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전설 1)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여러 이야기꾼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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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 대한 로망

 

버려진 곳’ 혹은 돌아올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타를라마칸’ 사막하지만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 타림 분지에서는 한때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번성했었다하지만 실크로드 문명의 몰락과 이후 생겨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하나의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전설 1)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여러 이야기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불의 검>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혜린(1962~ )이 그녀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1996)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누란(樓蘭)2)이 소멸되는 것처럼 묘사했던 것처럼.

 

한편, ‘’, “꽃을 위한 序詩’, ‘부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김춘수(金春洙, 1922~2004)도 누란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누란(樓蘭)

 

                                   김춘수

 

과벽탄(戈壁灘).

고비는 오천리(五千里사방(四方)이 돌밭이다월씨(月氏)3)가 망()할 때,

바람 기둥이 어디선가 돌들을 하늘로 날렸다.

돌들은 천년(千年)만에 하늘에서 모래가 되어 내리더니산 하나를 만들고

백년(百年)에 한 번씩 그들의 울음을 울었다.

옥문(玉門)을 벗어나면서 멀리멀리 삼장법사(三藏法師현장(玄奬)도 들었으리

 

명사산(鳴沙山).


그 명사산(鳴沙山저쪽에는 십년(十年)에 한 번 비가 오고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봄을 모르는 꽃삭운(朔雲백초련(白草連).

서기(西紀기원전(紀元前백이십년(百二十年). ()의 한 부족(部族)

그 곳에 호(천 오백 칠십(千五百七十), (만 사천백(萬四千百),

승병(勝兵이천 구백 이십갑(二千九百二十甲)의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웠다.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樓蘭).

 

 

실크로드의 답사

 

실크로드의 시작은 섬서성(陝西省서안(西安)의 북서쪽 시가지 외곽에 있는()나라 때의 장안(長安)이다이곳을 포함해서 진령산맥(秦嶺山脈북쪽에 서쪽으로는 대산관(大散關),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으로는 무관(武關), 북쪽으로는 소관(蕭關)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있는데이를 4개의 관문[]의 가운데[]라는 의미로 관중평원(關中平原)이라고 한다관중평원은 관중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 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고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렇기에 중국답사기가 서안함양공항아니 관중평원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물론권두의 중국답사기를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나의 중국 답사기 첫 번째 대상은 역대 왕조의 수도이다한 나라의 문화유산은 뭐니 뭐니 해도 옛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 법이다따라서 나의 중국 답사기는 고도순례(古都巡禮)가 대종을 이루게 될 것” [p. 7] 이라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다구체적으로 중국 8대 고도[북경(北京), 서안(西安), 낙양(洛陽), 남경(南京), 개봉(開封), 안양(安陽), 항주(杭州), 정주(鄭州)]를 열거하며, “나의 중국 답사가 여기에 머물리 만무하다내 전공이 미술사인지라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있는 미술사적 명소를 즐겨 찾아 다녔지만 실제로 답사의 감동은 오히려 사상사문화사의 고향에서 받은 것이 더 크고 진했다” [p. 10]고 말했다하지만돈황(敦煌)으로 가는 답사여행의 출발지는 서안이 아니라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이었으니까따라서 서안을 본격적인 답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기에 다소 아쉽지만단지 그뿐이다.

지난 2000, 2억 위안[ 340억원]을 투입해 영화 세트장 형태로 만화 같은 건물을 짓고 동상 조각을 배치” [p. 39]해서 아방궁 테마파크를 세웠다고 하는데나는 2001년 서안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진시황릉의 진시황 동상이 떠올랐다.

 

아방궁 테마파크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 p. 38

 

진시황릉 앞 진시황 동상



 

대륙을 연결하는 회랑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협곡이 마치 ‘달리는 회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 오초령(烏?嶺)에서 시작해 서쪽 옥문관(玉門關)에 이르며남으로는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 북으로는 마종산( ), 합려산(合黎山및 용수산(龍首山)) 사이 길이 약 900km의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이다이곳은 한나라 무제가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 사군[河西四郡무위(武威凉州), 장액(張掖甘州), 주천(酒泉肅州), 돈황(敦煌沙洲)]을 설치한 곳이다고구려의 유민인 고선지(高仙芝, ? ~ 756)가 정벌했던 서역(西域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맥적산(麥積山석굴 답사를 끝내고 왜 우리나라는 이런 석굴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문화란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구현되는 법” [p. 136]이라고 대답한다그리고 어떤 형태의 유무에 우열을 두지 않고굴착이 용이한 사암(砂岩절벽이 많은 인도와 중국에는 석굴 사원이화강암(花崗岩)이 많은 한국에서는 마애불(磨崖佛)과 산사(山寺)일본의 독자적인 정원 예술이 반영된 사찰정원을 공평하게 감상할 것을 주문한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 )은 명()나라 초기에 몽골의 후예를 자처하는 티무르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관문으로 명나라의 쇄국정책을 암시하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가욕관을 나와 고비 사막을 질러가면 드디어 돈황(敦煌)에 도착한다.

타임슬립이라는 작품의 형식과 실크로드라는 배경이 유사한 김혜린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저자가 소개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1907~1991] <돈황>(1959)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진다.

 

하나 덧붙이자면,

처음 이 책을 구입했을 때명사산(鳴沙山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놀랐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사자성어가 귀에 박혀 있어편집과정에서의 오류로 이름 명[]’이 아닌 울 명[]’이 들어간 줄 알았기 때문이다다행히 책을 펼쳐보니 월아천(月牙泉 3층 누각인 월천각(月泉閣)에 걸린 현판에 그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그리고 명사산의 명성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다”[p. 332]가 아닌 명사산의 울림은 헛되이 울리는 것이 아니다” [p. 332]에서 오는 울림이 더 컸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이유로 소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모래바람으로 순식간에 소멸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다이들은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간신히 생존했다누란의 경우에도 국가가 소멸된 후 도시로서의 기능은 유지했으나 유목민들의 침탈 속에서 인구가 감소하여 소멸했다고 한다.


2) 누란(樓蘭혹은 크로라이나(Kroraina):  누란이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가 전한(前漢)의 문제(文帝)에게 월지[月氏]에게 이겨 누란 등 26국을 평정했다는 선언이 담긴 편지[B.C. 176]에 의한다이후 누란은 생존을 위해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다그 과정에서 B.C. 77년 한나라가 보낸 사신에 의해 누란의 왕인 안귀(安歸)가 암살당하고 나라 이름이 선선( )으로 개명당했다. 448년에 이르면 독립된 왕국으로서 누란 혹은 선선은 사라진다.


3) 월지(月氏):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고대 인도유럽어계 토하라인(Tocharians)의 일파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가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를 정복한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타림 분지에 남아 누란(樓蘭), 쿠차[龜玆國등의 도시국가를 이루고 살던 세력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w******f 2020.12.20. 신고 공감 2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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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 막고굴(莫高窟) 답사와 돈황문서 수난기
"[21-12] 막고굴(莫高窟) 답사와 돈황문서 수난기" 내용보기
막고굴 답사   돈황(敦煌) 명사산(鳴沙山)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莫高窟)에는 4세기경부터 시작해서 14세기까지 약 1천 년간에 걸쳐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은 492개인데, 이 중 수(隋)나라 때 97기, 당(唐)나라 때 225기가 만들어졌다니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막고굴 석굴의 관람은 보존을 위해 하루 6천 명으로 관람인원을
"[21-12] 막고굴(莫高窟) 답사와 돈황문서 수난기" 내용보기

막고굴 답사

 

돈황(敦煌) 명사산(鳴沙山)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莫高窟)에는 4세기경부터 시작해서 14세기까지 약 1천 년간에 걸쳐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은 492개인데, 이 중 수(隋)나라 때 97기, 당(唐)나라 때 225기가 만들어졌다니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막고굴 석굴의 관람은 보존을 위해 하루 6천 명으로 관람인원을 제한하고 예약된 관광객만 15분 단위로 입장시키는 등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막고굴 석굴을 관람하려면 먼저 막고굴 디지털 전시 센터로 가서 돈황과 막고굴에 대한 영상을 본 후 막고굴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막고굴 부근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막고굴 입구의 솟슬대문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가이드를 만나 석굴을 구경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관람자 별로 2시간 동안 8개의 석굴을 볼 수 있으며, “막고굴 석굴 중 가장 큰 불상인 북대불(北大佛)이 있는 제96굴과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제17굴)이 있는 제16굴은 공통으로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람객들이 겹치지 않게 가이드가 조절하여 안내” [pp. 23~24]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 1부 ‘막고굴’에서 두 차례에 걸쳐 11개의 석굴을 관람하고 막고굴에 있는 불상과 벽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5굴의 모형(돈황박물관)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13

 

박공식의 제254굴 천장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38

 

북두형 천장의 제285굴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39

 

제275굴 교각미륵상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93

 

돈황문서 수난기

 

막고굴은 한동안 잊혔다가 20세기에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00년 도사(道士)를 자처한 왕원록(王圓?, 1851~1931)에 의해 제16실 안에 있는 감실, 지금은 제17굴로 불리는 장경동(藏經洞)에서 돈황문서 3만 점이 발견된 것이다. 이들 문서 가운데 연도를 알 수 있는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인 353년의 필사본이고,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것은 북송(北宋) 때인 1030년에 작성된 필사본이다.” [p. 112]

비록 이곳에서 발견된 불경의 “대부분이 잔권(殘卷) 단편들이고 가짜 경전으로 의심되는 위경(僞經)도 적지 않다. 심지어 잘못 베껴 버려진 두루마리와 먹을 덕지덕지 칠한 잡다한 글씨의 문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응당 있어야 할 <대장경>에 수록된 주요 경전이나 <대반야경> 등 고급 불경이 없다”[p. 113]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황문서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불행히도 이후 중국에서 ‘도보자(盜寶者)’라고 부르는 영국의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 1862~1943), 프랑스의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 미국의 랭던 워너(langdon Warner, 1881~1955) 등이 돈황문서와 유물을 가져가 전세계로 흩어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05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오브루체프(Vladimir A. Obruchev, 1863~1956)가 왕원록에게 승려의복용 직물, 향, 등잔용 기름, 구리 주발 등이 든 6꾸러미를 주고 고문서 2상자를 가져간 것을 시작으로, “1907년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어리숙한 왕원록에게 소액의 기부금을 주고 약1만 점을 유출하여 영국박물관에 가져갔고,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다시 5천 점의 유물을 프랑스로 가져갔는데 그 중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필사본도 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청나라 정부가 북경으로 옮겨갔다. 뒤이어 일본의 오타니[大谷] 탐험대가 흩어져 있던 (약 600종의) 문서와 불상을 유출해갔고, 미국의 랭덤 워너는 (돈황문서가 아니라) 불상과 벽화를 뜯어갔다.” [p. 49]

 

돈황문서는 이렇게 흩어졌지만 남아있는 돈황벽화라도 수호한 이들도 있었다. 제백석(齊白石)과 함께 현대 중국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대천(張大千, 1899~1983)은 1941년부터 막고굴 벽화를 모사하는 동시에 석굴마다 번호를 매기며 조사했다. 파리에서 활동한 전도유망한 화가였지만 귀국해 40여 년을 막고굴 보호와 연구에 헌신한 만주족 화가 상서홍(常書鴻, 1904~1994)도 있다. 조선족 화가 한락연(韓樂然, 1898~1947)은 3.1 운동에 참가했으며, 상해임시정부를 불신임하고 새로운 주체를 설립하려는 창조파에 속했다. 이후 그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서 중국 국민당 고급장교를 상대로 하는 통일전선사업에 종사했고, 이로 인해 국공합작의 와해 이후 체포되었다. 다행히 각계의 구명활동으로 “활동 지역을 서북지역[감숙성과 신강성]으로 한정할 것과 작품에 노동 인민을 그리지 않을 것을 조건” [pp. 234~235]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돈황 벽화를 모사하며 발굴조사에 몰두하면서 더 이상 막고굴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호하였다. 오늘날에는 돈황연구원이 그들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에 일어난 막고굴 약탈, 즉 돈황문서의 수난사는 어떻게 보면 답사기와는 다소 핀트가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막고굴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기에 수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일제 강점기에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아 감정 이입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돈황에는 막고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황 인근에는 막고굴 외에도 가볼 만한 답사처가 많다. 과주(瓜州) 혹은 안서(安西)에 있는 유림굴(楡林窟)은 막고굴의 자매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제2굴과 제3굴에서 탕구트계의 나라 서하(西夏)가 남긴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제2굴 서쪽 벽의 남측과 북측의 수월관음도는 고려의 불화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떠올리게 한다.

 

제2굴의 수월관음도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p. 284~285

 

돈황 시내에서 각각 서남쪽, 서북쪽에 위치한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은 예부터 서역으로 열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실크로드라고 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은 아니다.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사막답게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하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실크로드의 두 관문인 양관과 옥문관을 따라 서역남로와 서역북로가 형성된 것이다. “양관을 통해 나아가는 서역남로는 곤륜산맥의 오아시스 도시인 누란(樓蘭)과 호탄[Khotan, 和田]을 거쳐 카스[喀什]에 이르는 길이다. 옥문관을 통해 나아가는 서역북로는 천산산맥을 따라가는 길로 투르판[Turfan, 吐魯蕃]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천산남로는 쿠얼러[Korla, 庫爾勒]와 쿠차([Kucha, 庫車]를 지나 카슈가르[Kashgar, 喀什, 카스]에 이르고, 북쪽으로 나아가는 천산북로는 우루무치[Urumqi, 烏魯木齊]를 지나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로 나아가는 초원의 길이다. 강인욱 교수의 지적대로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점을 말한다.” [p. 304]

 

다음 권에서는 <서유기(西遊記)>의 모델이 된 현장법사(玄?法師)가 불경을 찾기 위해 떠났던 길을 따라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w******f 2021.04.15. 신고 공감 1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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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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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권인 중국편 답사기 1권에서 관중평원, 하서주랑 그리고 돈황의 명사산을 다룬 저자는 2권에서는 돈황의 막고굴에 대한 답사를 이어간다. 돈황 답사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막고굴은 4세기경부터 굴착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원나라때까지 1천년간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총 492개의 석굴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수나라시대에 97기, 당나라시대에 225기가 조영되어 전체 석굴의 4분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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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권인 중국편 답사기 1권에서 관중평원, 하서주랑 그리고 돈황의 명사산을 다룬 저자는 2권에서는 돈황의 막고굴에 대한 답사를 이어간다. 돈황 답사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막고굴은 4세기경부터 굴착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원나라때까지 1천년간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총 492개의 석굴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수나라시대에 97, 당나라시대에 225기가 조영되어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의 석굴이라고 한다. 석굴의 관람은 관람자별로 8개의 석굴을 보여주는데, 가장 큰 불상인 북대불이 있는 제96굴과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이 있는 제16굴은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람객이 겹치지 않도록 가이드가 조절하여 보여준다고 한다. 저자는 두차례에 걸쳐 돈황의 막고굴을 관람하고 막고굴에 있는 불상과 벽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은 막고굴 제16실 안에 있는 감실로 지금은 제17굴로 불린다. 문서는1890년 자칭 도사라고 자처하는 왕원록이라는 사람이 발견했다고 한다. 3만여 점에 달하는 장경동에서 나온 문서 중 기년이 쓰여 있는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오호십육국시대인 353년의 필사본,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것은 북송 때인 1030년에 작성된 필사본이라고 하니 현재에서 그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문서들이 왜 장경동에 들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피난설, 폐기설, 서고개조설 등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진정한 원인은 아직 모르고 있다 한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19세기 말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찾아 동양에 오던 시기로 각종 탐험대와 선교사들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장경동에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제국주의의 탐험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1905년 러시아의 오브루체프가 고문서 2상자를 직물, 향 등과 맞바꾸어 가져간 것을 시작으로, 1907년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1만점이 넘는 돈황문서를 130파운드에 사서 가져갔고, 1908년 프랑스의 폴 펠리오는 장경동에 직접 들어가 돈황문서를 일일이 펼쳐보고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5000여점을 따로 골라서 약 90파운드를 주고서 가져 갔다고 한다. 이때서야 돈황문서의 가치를 깨달은 청나라 정부는 문서들을 북경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왕원록은 많은 문서들을 은닉했고, 또 호송도중 빼돌리기도 했다. 1912년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는 왕원록이 빼돌려 두었던 돈황문서 600점과 3차에 걸쳐 실크로드 여러 곳을 탐사하면서 6천점에 달하는 유물을 수집해갔고, 1924년 미국의 랭덤 워너는 돈황문서가 아니라 석굴에 있는 벽화 12점을 뜯어 가기도 했다고 한다. 오타니가 수집한 유물 중 약 1700점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해방 후 그대로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수했다고 한다.

 

저자는 장경동의 문서들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으로 흩어지는 서세동점의 시절,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문화재 수집과 약탈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동병상련의 염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일본인이 가져온 돈황과 실크로드의 유물 1700여점이 있어 자유롭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돈황문서와 막고굴 벽화의 수탈 부분을 읽으면서 그 시절 우리에게 일어난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혜초대사의 [왕오천축국전] 필사본이 그렇게 해서 지금 프랑스가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실크로드의 관문인 옥문관과 양관을 답사한다. 이 두 관문을 통해 중국과 서역의 문물이 교류되었다. 실크로드는 양관을 통하는 서역남로, 옥문관을 통하는 서역북로가 있는데 어느 길로 가더라도 관문 밖을 나서면 펼쳐지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해야만 했다. 그러기에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를 잇는 점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답사기 3권에서 이들 점들을 다룬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때면 언제나 나도 그곳을 답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저 마음일 뿐이다. 특히 하서주랑 서쪽에 살았던 유목민족들의 삶은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저자의 답사기로나마 그 호기심을 채울 수밖에.. 저자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기다리며 읽어온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음에도, 이래저래 또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는 것 같다.

k*****1 2019.04.30. 신고 공감 1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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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산(鳴沙山) 명불허전(鳴不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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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기 시작한지 참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책장에 꽃여 있는 1,2,3권을 보면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듯, 오래된 티가 팍팍 난다. 저자가 우리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일본과 중국에 있는 문화유산도 답사해보고 싶다 했을 때, 과연 언제쯤 그것들을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중국편마저 출간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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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기 시작한지 참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책장에 꽃여 있는 1,2,3권을 보면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듯, 오래된 티가 팍팍 난다. 저자가 우리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일본과 중국에 있는 문화유산도 답사해보고 싶다 했을 때, 과연 언제쯤 그것들을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중국편마저 출간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 같다. 중국은 젊어서 많이 가 본 나라중의 하나이다.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간 것이지만 곳곳을 돌아다녔다. 방문 성격상 이곳 저곳 구경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방문한 지역의 대표적인 곳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문화에 대한 짧은 지식 때문에 가본 곳은 언제나 유명한 관광지 혹은 박물관 등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중국편에서 다루는 서북지역, 특히 실크로드가 시작된다는 서안에서부터 서쪽지역은 일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었던지라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위안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답사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중국문화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그것이 대결이 되었든 혹은 사대가 되었든 중국과 떼어놓고서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는 과거 2천여 년간 끊임없이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화적 영향이란 수용자의 선택과 소화능력이 작용하기에 이런 차이를 문화적 역량으로 생각하고 불필요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 선택이란 자연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예전에 북경의 자금성을 처음 보았을 때 중국과 우리의 문화유산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금성을 보고서 그 스케일의 방대함에 놀란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은 그것을 환경에 따른 중국문화의 특성으로 이해하면 되지 우리의 궁궐과 비교하면서 문화적 역량의 차이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 일 게다.

 

저자는 중국편 답사기 1권에서 실크로드의 동쪽부분을 다루고 있다. 서안에서 출발하여 돈황의 명사산에 이르는 구간으로, 이 사이에 관중평원과 하서주랑이 있다. 관중평원은 섬서성 서안을 중심으로 험준한 산맥과 네 개의 관문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으로 넓고 비옥하여 일찍부터 사람이 많이 살았다. , , 한나라 등 많은 왕조가 이 지역에 도읍을 정한 만큼 문화유산도 풍부한 곳이라고 한다. 저자는 주나라가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가져가지 못하고 땅속으로 묻고 간 주원의 청동기유물, 진령산맥 서쪽 끝자락에 있는 천수의 맥적산 석굴의 유적 등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벼랑에 선반을 매 듯 인공 오솔길을 만들어 굴을 뚫었다고 한다. 그리고 암벽에는 마애불을 새기고, 석굴에는 불상을 봉안하였다. 4세기경 진한시대부터 1천 년을 두고 굴착 된 이 석굴사원은 중국 역대왕조 불상조각 전시장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 지역에 석굴사원이 유행한 것은 토양이 연질이면서 견고한 사암지역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화강암지대라 석굴사원대신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자연환경에 맞게 불교신앙형태를 구현한 것이 산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서주랑은 남쪽의 티베트고원과 북쪽의 몽골 고비사막 틈새에 끼어 있다고 한다. 기련산맥을 따라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협곡이 마치 대륙을 연결하는 달리는 회랑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에서 무위, 장액, 주천을 거쳐 돈황에 이르기까지 90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쉽게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또한 하서주랑이 끝나는 돈황 서쪽은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 타림분지라고 한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사막과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던 유목민이 농산물과 같은 정주문화의 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루트였고, 이 길이 동서교역의 길목이 되면서 유목민족과 중국간의 결전이 벌어지던 곳 이였다. 한무제는 이곳을 지배하던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사군을 설치하여, 요동지방의 한사군, 베트남지역의 한구군과 함께 한나라의 국방체계를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한다. 마치 역사 공부하듯 답사기를 읽어 나간다. 한사군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것과 하서사군이나 한구군을 함께 아는 것은 고조선을 이해하는 것과 고대 동아시아 전체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게끔 해준다. 그래서인지 중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는 언제나 우리 역사와의 연관속에서만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진정한 학인이라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그 나라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에 우리와의 연관에서 탐구하고 기술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르는 황하의 모습과 황하석림 속에 자리잡은 난주의 병령사 석굴,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인 가욕관관성, 그리고 조각상과 잔편으로만 남아있는 흉노의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돈황은 유목민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한무제가 흉노를 물리치고 하서사군의 하나인 돈황군을 설치하면서 중국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후 중국과 유목민족의 영토에 편입되기를 반복하다가 청나라때부터 중국영토에 재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돈황에는 한나라가 멸망하고 오호십육국시대가 열리면서 막고굴에 석굴사원이 증축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원나라때까지 1천년간 조성되었다고 한다. 돈황 서남쪽에는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명사산이 있다. 모래와 암반만으로 이루어진 명사산의 크기는 동서 40킬로미터, 남북 20킬로미터, 해발 높이는 평균 1600미터라고 하니 산이라기 보다는 고원에 있는 모래사막 같다. 명사라는 이름은 발 밑으로 모래가 미끄러지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모래가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鳴沙, 즉 모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명사산 동쪽에는 초승달 모양의 못이라는 뜻을 가진 월아천이 있다. 월아천은 돈황 시내로 흐르는 당하에서 한 갈래 뻗어 나와 샘으로 솟아난 것으로, 길이가 150미터, 폭이 50미터 정도로 사막한가운데 있는 전형적인 오아시스라고 한다. 돈황의 유물에 대해서는 2권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의 답사기를 읽을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알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들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그 옛날 그들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중국과 우리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하서주랑과 돈황에 살던 유목민족들, 흉노, 돌궐, 위구르, 서하 등 중국 변경지방을 살아가던 그들의 채취를 느껴보고 싶다. 이래저래 저자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항상 다음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그렇게 기다리며 읽어온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전작인 [산사순례]부터 책의 크기가 달라졌다. [산사순례]는 특별판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중국편]의 크기도 달라져 의아하다. 앞으로 계속 이 판형으로 나올 건지, 중국편만 그럴 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국내편인 [서울편]의 경우 총4권으로 쓰겠다고 했고 그 중 2권이 나왔다. 3,4권의 판형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k*****1 2019.04.29. 신고 공감 1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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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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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기대하게 된다. 사막에 피어난 문화유산의 숨겨진 이야기는 마치 독자를 실크로드 한가운데로 초대한 듯 생생하고 재미있으며 또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중국편 2권에서는 돈황의 도보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막고굴 석굴마다 벽화와 불상이 가득하다. 특히 제16굴 안에 있는 감실로 제17굴인 장경동에는 사실 고문서 3만 점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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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기대하게 된다. 사막에 피어난 문화유산의 숨겨진 이야기는 마치 독자를 실크로드 한가운데로 초대한 듯 생생하고 재미있으며 또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중국편 2권에서는 돈황의 도보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막고굴 석굴마다 벽화와 불상이 가득하다. 특히 제16굴 안에 있는 감실로 제17굴인 장경동에는 사실 고문서 3만 점이 있었다고 한다. 1900년 6월 왕원록이 발견을 했고 이는 너무 일찍 발견된 셈이었다. 중국은 이를 지킬 힘이 없었고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이 가져가버렸다. 남은 1만여 점의 문서는 청나라 정부가 옮기면서 중간에 흩어져버렸다고 한다. 만약 현시대에 발견되었다면 중국 정부는 고문서를 고스란히 지키고 잘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인데 지나간 역사에 만약 이랬더라면 하고 가정할 수 없다는 불문률이 있으니 안타깝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겠다. 도보자들 중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델이 된 랭던 워너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델이 될 고고학자일지는 모르나 막고굴에 저지른 일은 참담하다 할 수 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뜯어낼 생각을 하다니 도적질도 참으로 창의적이다. 지켜낼 힘이 없으니 도보자들의 행태는 미화되고 합리화된다. 무엇이 훼손이고 무엇이 보존인지 시간이 지난 지금 슬픈 마음이 들 뿐이다. 저자는 도보자들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끊임없이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걸고 막고굴을 지켰던 돈황의 수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는 조선족 화가인 한락연도 있다.

3부에서는 현장법사와 안사의 유림굴에 대해 전하고 서역으로 가는 두 관문인 옥문관과 양관에 대한 이야기와 사라진 나라 누란에 대해 언급하면서 2권을 마친다.

1권에서는 중국의 4대 미인 왕소군이 시집간 흉노의 멸망을 다뤘다면 2권에서는 징기스칸에게 멸망된 서하를 다루고 있다. 척박한 땅 한가운 데서 찬란하게 문화를 빛내다가 바람에 사라져버리는 모래언덕처럼 사라진 기구한 운명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한 민족이 사라져버리는 사막의 세월 속에, 남겨진 문화유산이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은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o********o 2021.10.2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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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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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아웃은 설면과 공간의 경계 구분이 어려워 행동 장애를 초래해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네이버)이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공포증을 느끼듯, 사막이라는 곳은 생각만해도 공포감이 엄습한다. 밤하늘에 별이 가리키는 방향에 의지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힐 듯하고 화이트 아웃이 올 것만 같다. 유홍준 저자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전부 구입해서 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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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아웃은 설면과 공간의 경계 구분이 어려워 행동 장애를 초래해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네이버)이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공포증을 느끼듯, 사막이라는 곳은 생각만해도 공포감이 엄습한다. 밤하늘에 별이 가리키는 방향에 의지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힐 듯하고 화이트 아웃이 올 것만 같다.

유홍준 저자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전부 구입해서 읽었지만 일본편은 놓치고 말았다. 중국편도 어물대다가 놓치게 될 수도 있었을텐데 실크로드 답사라는 것에 구입을 결심했다. 사막은 싫지만 실크로드에 대한 호기심은 크다. 그것은 어릴적 본 다큐멘터리의 기억이 한 몫한 것일게다. 장편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은데 내용은 다 잊었다. 사막과 낙타만이 기억난다. 다큐멘터리의 잔상은 그들의 지난하고 고된 삶이다. 비단길은 끝없는 사막을 걷는 일었다. 실크로드는 고행의 길이었다.

저자는 이 길을 전용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신기루도 버스 안에서 본다. 서안공항에서 돈황에 이르기까지 버스로도 3일이 걸리고 서안, 하서주랑, 돈황, 투르판, 우루쿠치까지 8박9일간의 답사는 3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버스로도 쉬운 길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자는 볼거리가 있는 곳, 의미있는 곳에서 쉬어가고 묵어가며 여로의 고단함을 달래며 즐겼다고 말한다. 고행의 여행길이나 과거의 길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로 보인다.

중국 답사기 1권의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나는 일본 답사기를 쓸 때 '일본의 고대문화는 죄다 우리가 영향을 준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그들 문화의 정체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과 달리 중국의 영향에 거의 짓눌릴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본다."(14쪽 ~ 15쪽)라고 말한다. 타문화를 대하며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1984년 KBS에서 방영한 일본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30부작을 보며 돈황과 실크로드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25일간의 대장정을 기획했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고, 2018년 6월, 서안에서 하서주랑을 거쳐 돈황, 돈황에서 투루판, 우루무치까지 가는 8박 9일의 코스, 2018년 8월 우루무치에서 비행기로 쿠차로 가서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질러 호탄, 야르칸드, 카슈가르를 거쳐 파미르고원에 이르는 8박 9일의 코스, 그리고 2019년 1월 가욕관에서 안서 유림굴을 거쳐 돈황으로 가 막고굴을 답사하고 양관과 옥문관을 다녀오는 4박 5일 코스, 이렇게 3번의 답사를 하였다고 한다. 저장의 로망을 이룬 돈황, 실크로드 답사는 명불허전이라고 소감을 말한다.

1권 돈황과 하서주랑을 읽은 나의 소감은 저자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와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가 재밌다.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저자의 루트를 밟아보고 싶으냐 하면 과거의 낙타를 타고 하는 여행이 아님에도 고단함이 느껴지는 현재의 여행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사막이란 곳은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런 곳에 길을 만들고 오아시스 마을을 만들고 삶을 이어가고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느낀 명사산의 울림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o********o 2021.10.0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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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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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라는 사람 참 부지런해, 욕심이 과한것인지, 아니지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헌신 하는 이로도 볼 수 있지. 그런 사명감이 어느 정도는 그래도 되기에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자신의 지평을  넓혀 가는 것이 아닐까? 이번 책을 구입하고 사인회및 강연도 참관하였다. 글과 말이 동체된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제 나의 책장에도 유홍준 컬렉션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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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라는 사람 참 부지런해, 욕심이 과한것인지, 아니지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헌신 하는 이로도 볼 수 있지. 그런 사명감이 어느 정도는 그래도 되기에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자신의 지평을  넓혀 가는 것이 아닐까? 이번 책을 구입하고 사인회및 강연도 참관하였다. 글과 말이 동체된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제 나의 책장에도 유홍준 컬렉션이 한 장을 차지한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9.06.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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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찾는 저자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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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명사산 명불허전  1993년 1권 <남도 답사 일번지>가 나오고는 100만 권이 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2권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3권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도 연이어 대박이 났다. 이 책 세 권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에 답사 붐이 일 정도였고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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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

명사산 명불허전

 

1993년 1권 <남도 답사 일번지>가 나오고는 100만 권이 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2권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3권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도 연이어 대박이 났다. 이 책 세 권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에 답사 붐이 일 정도였고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정도의 인기였다

 

1993년 이 책의 시리즈 중 첫 권이 나왔을 때 온 나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는 현상이 일어났었다.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나라에 대한, 구토 구서구석에 대한 애정-바로알기-으로 뒤덮여 졌던 것이다.

이제 26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북한과 일본을 거쳐 이젠 저 넓은 중국의 문화유산까지도 그리고 있다.

 

참으로 즐겁고 반갑고,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 저자의 글로 세게문화유산과 그에 함축된 우리조상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m******1 2019.04.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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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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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은 1부 막고굴, 2부 돈황의 도보자와 수호자, 3부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는 큰 주제 아래 관련 내용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적극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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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2025.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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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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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은 유홍준 교수가 중국의 여러 지역 중 돈황과 하서주랑과 관련된 문화 유산 답사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진 책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 적극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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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은 유홍준 교수가 중국의 여러 지역 중 돈황과 하서주랑과 관련된 문화 유산 답사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진 책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돈황과 하서주랑 적극 추천해 봅니다.

g******9 2025.06.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