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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가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생'의 충만함이었다. 결여되어 있는 각자 나름의 삶을 사랑으로 채우려 하는 그의 마음이 이 작품에서도 보인다. 생에 대한 배고픈 시선, 이는 배고픈 시선을 세상으로 던져본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 결핍을 아는 이들만이 그것을 채워나갈 때의 행복에 대한 감사함도 알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간한 네 번째 작품이자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인 책의 제목조차도 심오하다. 지혜의 왕으로 칭송받는 솔로몬 왕이 제목으로 등장하다니, 읽기 전부터 쉽지는 않을 내용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 로맹 가리의 풍자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날 작품도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가리가 항상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잖은가. '생은 무엇인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한층 더 노련하게 접근한 작품이 『솔로몬 왕의 고뇌』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에서는 탄생과 소멸(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같은 인생의 총체적인 갈림길 앞에서 시시각각 고민하고 고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니 어찌 보면 고민하고 고뇌하는 건 이 작품 속에는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들의 이야기는 뼈를 깎는 고통이고 숨을 끊을듯한 고뇌의 암흑이지만 내 눈에는 그들이 주어진 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이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으로는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지는 생의 덧없음을 잡고 싶고 멈추고 싶은 마음에 안절부절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즐김을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다.
소설의 내용은 수리공이면서 택시 운전기사이기도 한 25살의 '장'과 우연하게 그의 손님으로 만나게 된 성공한 기성복(바지)사업가 솔로몬 루빈스타인의 행적이 주를 이룸과 동시에 코란이라는 한때는 샹송 가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 감에 두려움을 가진 늙은 여성을 통해 역시 자연스러움 즉 늙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준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성공한 사업에 힘입어 84살의 나이에도 자선사업을 하며 생을 보내고 있는 솔로몬은 곧 85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바지 사업으로 성공했기에 기성복의 왕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를 '솔로몬 왕'이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 양자로 들어간 집에서 양부모의 사랑은 듬뿍 받았지만 그들의 기대에 자신이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음악가가 되길 바랐던 부모였지만 솔로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현재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건 인간이 끝없이 좇아가는 부라는 것, 육안으로 확인되는 종이뭉치 화폐가 전부다. 따뜻하게 다독여줄 손길도, 외로움에 어깨 기댈 이도 없는 노인에게 낙이란 건 잊힌 사람들-나이 든-을 돕는 것이다. 기성복이 무엇인가. 일정한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다수를 위한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옷이다. 로맹 가리는 이를 우리의 생으로 비유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너도나도 찾게 되지만 특정 시기가 지나버리면 시들해져 버리고 사람 또한 젊을 때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만 늙고 나이가 들어버리면 점점 잊히게 마련이라는 사실 아닌 사실 속에서, 솔로몬이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시선의 중심에서 한참 멀어져 가며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는 그들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런 잊혀 가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솔로몬 왕을 통해 다룬다. 앞서 그의 나이는 곧 85살의 생일을 맞이한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까 같은 날들 앞에서 태연해지려는 솔로몬 왕과 그에게 삶의 충만한 용기를 주는 장이 있다. 장은 2가지 직업 외에도 독학을 하는 학생의 신분이기도 하다. 매번 찾는 도서관에서 그의 관심은 오로지 사전에만 한정돼 있다. 그래서 사전 광이라고 불린다. 그가 사전을 찾는 이유는 뭐든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는 그 매력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정해진 기준이 있는 그것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명료한 답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찾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답이 없고 막연하기에 주변의 모든 소멸과 노쇠함을 바라보며 사전이라는 거대하면서 정의되어 있는 문자의 향연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가리는 장을 통해 획일적인 사회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 같다. 요즘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한, 모든 게 기성화 된 사회. 즉 너도 하면 나도 따라가는, 주체적인 꿈이 사라지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아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 이는 개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잣대에 얽매여 있는 가부장적인 행복에 찌들어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세상은 정해진 데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정해진 룰은 있다. 그 룰에서 한치라도 어긋나면 낙오자라는 올가미를 씌운다. 기계가 아닌 사고하고 꿈꾸는 뇌를 가진 인간인데 정해진 수순대로 밟아서 천편일률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돌아보게끔 하는 회초리의 역할을 가리는 기꺼이 수행하고 있다. 충격적인 내용의 전개가 아니라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고유의 메시지가 물 흐르듯이 잔잔히 드러나는 이런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 가슴을 때린다.
"장, 어째서 자네는 언제나 사전에서 정의를 찾는 건가?" "그러면 믿음이 생기니까요." "그거 좋군. 각자의 믿음을 흠 없이 간직해야 하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거든. 그러니까 로베르 사전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는 셈이지." -212p
젊은 장과 내일의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의 고뇌를 자선이라는 명목하에 충당하고 있는 솔로몬과 앞서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서의 샹탈과 닮아있는 코란이 있다. 세간의 주목에서 멀어진 나이 든 샹송 가수를 통해서 남녀 모두의 생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관조하는 유형과 시시때때로 늙어감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 하는 유형의 인간 앞에서 봉사정신이 투철한 한 청년이 그들에게 보편적인 애정을 발휘하는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을 향한 장의 사심없는 사랑 앞에서, 매일 나이 들어가고 있는 우리는 조금은 숙연해져도 되리라. 우리가 직면한 이 생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을 향한, 충만한 사랑과 애정으로 꽉꽉 채워도 모자라지 않다. 장이 인간을 바라보는 날것 그대로의 집착을 그래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 거대한 공기가 내 책을 여닫는다! 살아라, 내 말을 믿는다면 내일까지 기다리지 마라! 오늘 인생의 장미를 꺾어라! -230p(폴 발레리, 롱사르)
결국 내 앞에 주어진 생, 오늘 주어진 장미를 꺾을 용기, 생애 대한 애착을 두라고 이 한 권의 책에서 가리는 역설하고 있다. 품어라, 오늘의 장미를. 내게 주어진 오늘의 장미는 작열하는 붉은 태양처럼 무척이나 붉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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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와 관련해서 그의 늙음과 죽음에 대한,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말년에 대한 의식세계를 엿보게 하는 특별한 관심을 자극한다. 작중의 기성복 바지의 제왕인 여든 네 살 ‘솔로몬’의 늙음에 대한 들끓는 분노와 저항, 그리고 화자인 택시운전사이자 수리공인‘장(자노)’의 자선과 구원의 왕이 되고자 함은 결합하여 죽음에 대한 깨달음, 아니 삶에 대한 이해의 완결을 의미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두 인물의 혼합체가‘로맹가리’, 바로 작가 자신이었으리라고 믿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과거의 가수인‘마드무아젤 코라’의 말처럼 “젊음이 너무 일찍 왔다가는 것 같아, 그렇게 쉰 살이 되고 습관을 바꿔야 하는 거지...”에서 노년의 구체적인 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제아무리 마음의 변화 없음을 강변할지라도 시간의 흐름이 새겨진 온 몸의 변화를 인지하는 세상 사람들과 세상은 바뀌어야 함을 종용한다. 그래서 늙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가, 또한 다가온 죽음이라는 운명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는 고뇌이고 또 고뇌이다.
솔로몬은 이름 없는 사람들, “태어나면서 고통이라는 기성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종점에 이를 때까지 겸허히 입고 사는 사람들”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구호전화를 운영한다. 여든 네 살의 노인은 이 행위를‘명예로운 무엇’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청년 장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건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즉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고뇌를 피하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협받는 다른 종(種)을 생각하면 자신의 개인적 처지가 덜 불행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듯이, 점차 인간적인 경의의 의미가 교만에 자리를 내주는 연민을 나누고자 하는 사심 없는 구원의 행위이기도 하다.
솔로몬의 제안으로 장은 이처럼 잊혀져가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고 급박한 절망을 어루만져주는 구호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한 때 가수였던 예순 네 살의 여인‘코라 라므네르’를 방문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가수, 홀로 늙음을 온전히 마주해야하는 여자를 위해 장은 “위협적인 환경에 처한 종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그런 감정”으로 도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망각이라는 부당함에, “덧없음과 먼지, 바람과 같은” 삶의 고뇌를 위로하기위한 장의 방문은 코라에게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동물적인 자력(磁力)”을 발산하는 청년의 우호적 예의는 한낱 노인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억압되었던 불씨를 당기게 한다.
여기서 소설 속 인물들, 구호사업을 하는 솔로몬, 사회가 망각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장, 청년 장을 통해 삶의 매력과 의욕을 바라보는 코라 모두 자신 대신 타인을 통해 꿈꾸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산다는 것,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을까봐 너무나도 두려워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즉 고뇌를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장의 자기해석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들이 타인을 통해서 꿈꿀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자기 자신의 존중과 승인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의 물음이자 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에 대한 답변을 오만하게 몇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분노, 항변, 전면적인 반항에는 희생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처럼 삶과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잘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기 삶의 주장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지대하다면 너무 우울하지 아니한가? 그래서 인생에서는 타협해야 하고 부분적으로 수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장의 주장은 나이 들어 고집스러워진 삶의 시선을 바꾸어야 하는 용기와 자세를 일깨운다. 그리고 이것들을 지탱하는 가치로서 자신보다 상대방의 안녕을 원하고 그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것, 어떤 가치에 대한 사심 없고 깊은 집착이라는 사랑(Amour)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방향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포틀래치(Portlach), 즉 신성한 성격의 파괴나 증여라는 지고의 원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발견은 로맹가리의 죽음을 해석하는 단서처럼 보인다. 조르주 바타이유가 북미 인디언의 증여메커니즘인 포틀래치를 인용하면서 과잉의 신성한 소비, 즉 죽음의 신성성을 말하고, 그리고 두 개체의 하나로의 결합인 사랑의 행위가 곧 죽음의 다른 이면임을 보았듯이 죽음은 신의 세계로의 도달임이라 느꼈으리라는 것이다. 자연사라는 형편없는 삼 등급 죽음을 회피하려는 이 소설 솔로몬처럼, 최고의 죽음을 생각했으리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것은 인생에 대한 멋진 수리를 완료하고, 세상을 채우는 허접한 이론들과 끝나버린 이성을 넘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아래 인용문장과 같은 장의 포부와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자연에서 쓸모를 잃어버린 모든 구조 요청에 응답하고, 나의 전설적인 후의로 그들의 피해를 보상해주고 그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리라. 나는 솔로몬 왕이 되리라. 바지의 제왕. 기성복의 제왕도 아니고 아이를 두동강 내라는 고대의 왕도 아닌 명실상부한 진짜 솔로몬 왕이 되리라. 나는 사태를 장악하고 그들의 머리위에 자선과 구원의 비를 내리리라.”
이처럼 소설은 늙음, 그리고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 삶을 수리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진솔한 목소리를 지닌 청년을 매개로 순수하지만 사색적이고, 코믹스럽지만 지적인 문장으로 보통 사람들의 불안과 고뇌를 위무해준다. 평범치 않았던 작가의 면모 때문에 단어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읽게 하며, 이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어느 작품보다 따뜻하고 유쾌한 문장과 이야기가 일품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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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건 가을이 오고 있다는 나만의 시그널이다. 그러나 가을이란 감정으로 풍덩 들어가는 건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방송에서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 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진 세버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겠지만.로맹가리의 마지막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진 세버그의 개운치 않은 죽음.그리고 1 년후 로맹 가리의 (자살) 작가의 유언은 진 세버그의 죽음과 관련 없다고 말했지만,속인의 시선으로는 진 세버그가 죽음을 맞이한 1979년 이후의 책을 읽고 싶었다. 작품 속 어딘가에 진 세버그의 흔적이 그림자처럼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그 여자의 천진함과 서민적인 쉰 목소리,백치 같아 보이는 작은 얼굴을 사랑했소.그 여자는 줄곧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구해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을 자극했소.그 여자처럼 자기 삶을 망치는 걸 겁내지 않는 사람도 없소.하지만.........난 때때로 그 여자가 감탄스럽다오.연인을 위해 자기 삶을 망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오"/377쪽
로맹 가리는 원하지 않았겠지만..코라 인물에 진 세버그를 투영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스타영화배우인줄로만 알았던 배우 진 세버그는 흑인운동에 앞장섰고.결국 그것이 정부 눈에는 가시가 되었던 모양이다.정부가 만들어낸 수많은 음모론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그녀는,결국 나이차이를 무시하고 사랑했던 로맹 가리와도 이별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두 사람은 오랜 우정으로 계속 함께 했고..로맹가리..는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어내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소설의 처음은 무슨 환타지 이야기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느닷없이 택시기사인 장에게..조건없이 여러 은혜를 베푸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어서...소설은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그러나 더 은밀히..아니 적어도 진 세버그의 죽음과 로맹가리의 자살 사이에 씌어진 마지막 소설이란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면..그녀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로맹가리의 사랑..이야기는 아니였을까...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서로 사랑했으나 오해로 인해 40여년 가까이 소원 했던,코라와 솔로몬...이제 죽을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으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젊은 시절의 오해는 쉬이 화해가 되지 않았다.솔모몬의 생각은...장과 같은 중재자가 있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던 걸까? 그래서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는 봉사를 하게 된 걸까...단 한사람이라도 이야기 할 대상이 있다면 자살하지 않는다는 기사가..갑자기 또 생각났다. 세월의 경험도,엄청난 자산도...사랑하는 이와의 오해를 풀지 못해 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설정은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포괄적인 지혜의 이야기도 순간순간 가슴 속에 와 박혔지만...읽고 싶어진 이유가 분명(?) 했던 탓에...진 세버그를 향한 로맹가리의 마음으로 읽혀졌다."얼핏 보기에 멜로드라마 같은 이 작품에는 정교한 트롱프뢰유(눈속임)가 숨어 있다.독자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그 이면에는 진지함과 적절함 근원적인 절망이 자리한다"(카나르 앙세네) '솔로몬 왕의 고뇌'에 대한 카나르 앙세네에 실린 글이 가장 공감 간 이유는...이 소설에 대해 재미있다고..때론 이해할 수 없고..그러다 또 묵직한 무언가가 전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내 감정을 그대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한 모모가 장으로 성장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도 신기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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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보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왕 시대의 이야기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그와는 전혀 상관없을 수도 약간 상관있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솔로몬왕의 고뇌'라는 점에서 볼 때 최소한 현명한 사람을 솔로몬이라고 이야기할 듯 한데 책표지에 나온 사람이 바로 그 '솔로몬'이라는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은 바로 작가인데.
대부분 소설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구술을 한다. 그런 이유는 일단 내용전개하기가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이니 모든 것은 작가의 마음이고 묘사되는 시대나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작가 마음대로 얼만든지 변화시킬 수 있기에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구술하는 것이 가장 편안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나라는 화자가 등장하여 소설을 이끌어간다.
택시기사와 수리공인 주인공이 우연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우리나라로 치면 '사랑의 전화'와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온갖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들어주는 전화를 개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나이는 80대 중반이니 세상에 대해 지혜도 있을 것이고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정확하지 않지만 세계인구를 40억이라고 하는 걸 보면 30년 전 정도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1979년에 사망을 했다고 하니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소설의 제목은 솔로몬이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오로지 독학으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고 궁금한 단어는 늘 백과사전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한마디로 겉으로 볼때는 무식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누구와도 지식으로 떨어지지는 않는 인물이다.
우연히 솔로몬과 인연이 되어 그의 부탁으로 단체를 도와주면서 솔로몬과 관계있는 여인을 도와주게 된다. 한물간 샹송가수로 솔로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인물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하룻밤을 지내기도 하지만 따로 애인이 있다.
이런 점을 애인에게 설명하고도 애인이 받아들인다는 것에 우리와는 엄청나게 다른 문화를 보게된다. 분명히 지금보다 덜 개방된 예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실제로 솔로몬과 샹송가수는 서로 30년전부터 사랑해온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여러가지 얽힌 문제를 풀 생각없이 그렇게 세월만 보내왔다.
아이가 자라 다시 아이인 노인으로 된다고 하지만 다른 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노인이 되더라도 자신의 고집과 아집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은 싸우고 다시 금방 화해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놀지만 다시 아이가 된 노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감정의 실타래를 쉽게 풀지 못한다.
심지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의 감정을 알고 있고 상대방도 그럴것이라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남은 인생이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내일 당장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젊은이도 사랑을 하고 노인도 사랑을 한다. 육체가 늙는다는 것이 감정이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반응속도가 조금 느리고 조금 더 여유있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게 될 때가 많다.
이 책에서 말한 솔로몬왕의 고뇌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자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자기 혼자 누구를 짝사랑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있는 것이고 짝사랑은 얼마든지 진짜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 외사랑은 힘들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최소한 인간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우리는 살면서 사랑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에 대한 사랑도 우리를 살만하게 만들어준다. 타인에 대한 증오도 살아갈 동력은 되지만 사랑만큼 우리에게 큰 동력이 되지 못한다.
살아가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면 불행은 우리도 모르게 저멀리 도망간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렇게 믿고 살아갈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공간이 된다. 사랑도 고민과 번뇌를 가져다 준다. 그래도 사랑을 위한 고통만큼 좋은 고통도 없을 듯 하다. 책에 나온 솔로몬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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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환한 빛 아래로 거칠게 끌려나왔습니다."
『솔로몬 왕의 고뇌』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솔로몬 왕은 누구인가, 그는 무엇을 고뇌하는가, 얼마만큼 고뇌하는가. 더욱이 이 작가가 지어낸 혹은 발견해낸 고뇌라면 과연.
1. 솔로몬 왕은 누구인가 - 여든다섯의 나이, 고급차림, 꼿꼿한 자세. - 기성복의 왕. (이었어서 엄청 부자인) - ‘봉사의 구조회’라는 전화상담 봉사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뇌하는 새벽 2시경엔 직접 전화를 받는) - 4년간의 은신으로 게슈타포, 가스실, 인종 말살로부터 生 보전. - 이름 없는 사람들, 잊힌 사람들을 도와주며 그들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혐오. - 그럼에도 다시, 어쩔 수 없이 소멸해가는 여든다섯의 나이.
2. 무엇을 고뇌하는가 ‘1’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개괄식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면, ‘2’의 답은 가득 나열된 문장들에 귀를 기울여 ‘생각해’ 보아야 구할 수 있다. 솔로몬 왕께서 진작에 ‘난 이게 고민이라오.’ 털어놓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고뇌거리를 찾다보면 마담 코라의, 자노의, 알린의, 봉사의 구조회 직원들의 그것까지도 엿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의 모든 문장을 읽어 짐작하기에 이른 그의 고뇌는 - 한 때 유명했으나 잊힌 사람들 혹은 애초부터 유명하지 않았으며 잊히기까지한 사람들의 삶이 하찮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기성복의 삶, 그러니까 기성의 고통과 즐거움, 두려움, 근심을 성실히 살다 소멸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이 하찮은 것으로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 자신이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 아무리 고급스럽고 철저하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림새를 갖추어도, 아무리 무릎과 허리를 세워 땅으로부터 꼿꼿하고자 해도, 4년의 세월을 지하에 숨어 나치를 피해냈다 해도 결국 죽음은 무엇보다 분명하게 실재하는 기성의 절차임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
3. 얼마만큼 고뇌하는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작가의 모든 문장을 꼼꼼하게 읽는다 해서, 내 앞의 당신을 살뜰히 관찰한다 해서, 한겨울 벚나무의 거친 수피부터 대책 없는 봄, 바람에 흩어지는 벚꽃잎의 풍장까지 모든 순간을 빠트리지 않고 바라보았다 해서 얼마만큼 아파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 나는 포기하겠다. 설령 어떤 똘똘한 방정식이 존재하여 그것을 도출해낼 수 있다 해도 나는 그 값을 외면하겠다. 그것은 당신의 것, 내가 그저 짐작해야만 하는 것, 어쩌면 훗날 당신이 내 어깨에 머리 누이며 지나는 바람처럼 흘려버리고 말아야 할 것으로 두고 싶기 때문이다.
독서후담을 기록하기 위해 마음에 두었던 문장들을 다시,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다섯 가지의 꼭지로 나누어 정리했고 그것으로 후담을 쓰려했고 실패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을 받으면, 스물넷이요, 하는 얼토당토않은 대답이 튀어나간다. 알맞은 답을 도출해내기까지 다소의 시간 필요.’
적어두었던 첫 문단을 아래로 끌어내리며 마무리를 한다. 세월(아무래도 ‘시간’이라는 어휘는 ‘세월’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에 깊이에 무엇보다 속도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에 대해 고뇌한 적 아직 없지만 나이 질문에 대한 바른 정답을 놓친지 오래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고뇌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시간을 들여 그것을 고뇌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 고뇌까지 받아들고 지내기엔 시간이 너무 없고 어깨 위엔 이미 더 오랜 더미들이 잔뜩하다. 무엇보다 내 앞, 뒤, 옆에서 종으로 횡으로 나열해 있는 책들이 한보따리 아니던가. 그러니 내게는 솔로몬 왕의 고뇌를 인계받지 않을 수 있는 적절한 이유가 있다고 우겨보겠다. 훌륭한 청년 바틀비여, 나의 이 용맹함을 들으라.
“고뇌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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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에서 나온 로맹가리(혹은 에밀 아자르)의 책 중 세번째이다. 어째, 그의 후반기 책 위주로 읽다보니, 아무래도 노년 문학(?)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덮고 나니, 사실 조금 찜찜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회라는 설정은 너무 소설스러운 느낌이였고, 내 기대와 다르게 코라와 솔로몬의 뒤늦은 러브스토리도..그리고 화자겸 주인공인 쟝의 행동에 대해서도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았다. 이건 취향 탓일 수 밖에 없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 하여도, 생뚱맞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다. 그렇단말이다. 나.에.겐.
미안하게도 솔로몬이나 코라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나는 회사의 어느 나이든 부장님을 떠올렸다. 그 부장님은..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옆에 가면...묘하고 퀴퀴한 노인냄새 같은 것이 났는데..난 그게 참 싫었다. 그런데, 책속에서 여든이 넘은 솔로몬, 환갑이 지난 코라가 그려질 때에는 마치 그 냄새가 진동하는 듯 하였다. (써놓고 보니, 누가 보면 "넌 안 늙을 줄 알아? "하고 큰소리라도 할 것만 같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얼까? 2차세계대전, 샹젤리제 거리에서 4년동안 숨어있던 솔로몬과 딴 남자와 살면서 그를 사랑했던 여자의 35년간의 오해. 러브스토리 그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항상 사전의 단어로 용어를 정리해보며, 솔로몬을 따르고 코라를 사랑인지 애정인지 동정인지 모르는 감정으로 돌보는 쟝은 얼핏 주변인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괜히 뭔가가 더 있을 것만 같은 로맹가리의 글의 매력은 어찌해야할지...불어를 완전 잘 했다면, 그의 글들을 모두 원문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면...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법은 다르지만, 종종 폴 오스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를 막연하게 그리워하면서도...막상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귀찮음을 느끼는 내마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사람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싶은 이 모순 같은 마음을...깊이 어루만지는듯한. 나는 한동안 로맹가리에게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덧붙임. 표지가 예뻐서 일단 마음산책의 책부터 보고 있는데, 역시 초기작부터 봐야하지 않을까한다. 그의 글이, 생각이, 마음이..어떻게 변해왔는지..괜히 시간순서대로 알아보고 싶네.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지. 지금은 나 역시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하지만 사랑은 이해하는 게 아니야. 그냥 그런거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계산이 가능한 게 아닌 거야.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바보짓이였어. 하지만 난 단 한번도 계산을 해 본적이 없어. 인생을 샹송처럼 살았어. 사람들이 젊을 때에는,언젠가 늙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법이야. 너무 먼 미래의 얘기거든.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거야. 278쪽
내가 타인들로부터 안식처를 찾는 건 나 자신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 거야. 나한텐 스스로를 돌보는 데 필요한 정체성이 없어.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거야. 알겠어? 29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