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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이현우 오월의봄/2015.12.28.
세계문학이라고 하면 서양의 고전문학을 떠올리는 것이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문학만이 세계문학인지 의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옛날 작품부터 현재 생존한 작가의 작품까지 그 범위가 너무 넓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문학의 정의부터 그 범위까지 생각해보는 내용으로 된 책이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 등 다수가 있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책은 세계 문학에 대한 생각과 몇몇 세계문학 고전들에 대한 다시 읽기로 구성돼 있다. 1부 ‘세계문학 다시 읽기’에는 13가지 주제의 글과 ‘겹쳐 읽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세계명작’에 대한 다시 읽기와 그와 겹쳐서 읽을 만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 성격의 짧은 글이다. 2부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세계문학을 읽고 생각해보는 데 참고가 될 만한 글들로 엮었다. 세계문학의 배경과 세계문학론에 대한 소개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특징은 주제별로 대표적인 작품을 설명하고 겹쳐 읽기로 주제가 비슷한 다른 책의 내용을 소개하여 주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문학의 정의가 궁금하거나 대표적인 작가나 작품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셰익스피어의 영국은 왕위 찬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자주 다루는데, 명확하게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그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한편 경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봉건적 공동사회에서 상업적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다. 상업적 이익사회는 상품 거래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자본주의의 융성과 맞물려 생성되며, 이 상업 자본주의는 ‘지리상 발견’의 결과로 촉진되었다.(p.19)”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서 빼앗긴 자신의 섬을 되찾으려는 칼리반의 시도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값하지만, 그는 이것이 스테파노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김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그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을 탐욕과 환상이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으로 줄곧 그려왔고, <폭풍우>에서 칼리반의 반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용서하는 5막은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식 대단원으로, 그의 용서를 받은 칼리반은 다시금 ‘길들여진 노예’상태로 돌아가 자발적으로 순종을 맹세한다고 설명한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여느 전기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흔히 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어릿광대’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창작은 고치고 또 고친 육필원고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도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실의 쓰라림보다는 견딜만한 것이었다.(p.84)”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은 스물두 살의 구두수선공이었고, 어머니 안네 마리는 서른 살의 세탁부였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재능이 넘치며 순수한 시적 정서를 간직한 남자”로, 어머니를 “사랑으로 가득한 분”으로 묘사했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성냥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녀가 성냥 불빛에 의지해 잠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으려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에서 안데르센은 하층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평민들의 운명을 경멸한다. <인어 공주>에서는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높은 분들’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윌리엄 포크너 조차도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치켜세운 작품이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일찍부터 ‘금서’로 낙인찍힌 소설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학교마다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 성적 또한 부진하여 낙제당하기 일쑤인 주인공 홀든의 모습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전혀 모범적이지 않다는 게 일부 교사와 어른들의 판단이었다. ---흡연과 음주, 매춘 장면의 묘사와 동성애, 성도착(변태) 등에 대한 언급 역시 자녀를 둔 어른들의 이맛살을 찌프리게 했을 것이다. (p.108)” 아이들이 놀다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낙제생 홀든의 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작품에서 ‘벼랑’에 직면해 있는 인물은 그 자신이며, 파수꾼이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보호해줘야 할 인물도 바로 홀든 이라고 한다.
“소수 언어들이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국가어마저도 존립을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어적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러한 다양성이 ‘세계’ 자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p.255)” 바벨탑의 신화를 다시 상기하자면, 인류가 하나의 무리를 지어 살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언어적 혼잡성, 다양성 이라는 신의 징벌 이후다. 곧 세계는 그러한 혼잡성,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결국 그것의 산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를 때 ‘세계문학’은 적어도 세 가지의 서로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첫째, 세계 각국의 문학을 한국문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즉 이때 세계문학은 ‘해외문학’ ‘외국문학’ 등의 동의어이며 가장 넓은 범주의 문학을 지칭하겠다. 한국문학 바깥의 모든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둘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읽히는 문학, 흔히 이에 대한 예시로 단테나 셰익스피어를 드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계 명작 혹은 고전(클래식)을 뜻하는 것이겠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세계문학’이란 말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개별 국가의 국민문학(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 곧 괴테가 정의한 ‘세계문학’이다. 말하자면 국민문학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세계문학에 관한 가장 문제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P.280)” 그런데 이러한 정의들만으로는 불충분해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세계문학’도 오늘날의 지구시대(지구화시대)에는 등장하고 있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나 파울로 코엘료 같이 현재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문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을 가리키는 ‘세계문학’이 그것이다. 이것을 달리 ‘지구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최소한 네 가지의 ‘세계문학’을 식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라타니의 세계종교론을 민족이란 우상에 적용해보자면, 한쪽에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을 섬기는 야훼의 민족문학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 쪽에는 특정한 공동체를 부정하고 세계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세의 민족문학이 있을법하다.(P.293)” 물론 여기서 우리가 촉진하고 앞당겨야 할 세계문학이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민족문학이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통 공간으로서의 더 많은 사막, 더 많은 번역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 바로 ‘세계문학을 위한 초국적인 운동’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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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이현우 오월의봄/2015.12.28. sanbaram
세계문학이라고 하면 서양의 고전문학을 떠올리는 것이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문학만이 세계문학인지 의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옛날 작품부터 현재 생존한 작가의 작품까지 그 범위가 너무 넓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문학의 정의부터 그 범위까지 생각해보는 내용으로 된 책이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 등 다수가 있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책은 세계 문학에 대한 생각과 몇몇 세계문학 고전들에 대한 다시 읽기로 구성돼 있다. 1부 ‘세계문학 다시 읽기’에는 13가지 주제의 글과 ‘겹쳐 읽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세계명작’에 대한 다시 읽기와 그와 겹쳐서 읽을 만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 성격의 짧은 글이다. 2부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세계문학을 읽고 생각해보는 데 참고가 될 만한 글들로 엮었다. 세계문학의 배경과 세계문학론에 대한 소개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특징은 주제별로 대표적인 작품을 설명하고 겹쳐 읽기로 주제가 비슷한 다른 책의 내용을 소개하여 주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문학의 정의가 궁금하거나 대표적인 작가나 작품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셰익스피어의 영국은 왕위 찬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자주 다루는데, 명확하게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그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한편 경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봉건적 공동사회에서 상업적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다. 상업적 이익사회는 상품 거래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자본주의의 융성과 맞물려 생성되며, 이 상업 자본주의는 ‘지리상 발견’의 결과로 촉진되었다.(p.19)”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서 빼앗긴 자신의 섬을 되찾으려는 칼리반의 시도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값하지만, 그는 이것이 스테파노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김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그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을 탐욕과 환상이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으로 줄곧 그려왔고, <폭풍우>에서 칼리반의 반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용서하는 5막은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식 대단원으로, 그의 용서를 받은 칼리반은 다시금 ‘길들여진 노예’상태로 돌아가 자발적으로 순종을 맹세한다고 설명한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여느 전기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흔히 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어릿광대’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창작은 고치고 또 고친 육필원고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도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실의 쓰라림보다는 견딜만한 것이었다.(p.84)”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은 스물두 살의 구두수선공이었고, 어머니 안네 마리는 서른 살의 세탁부였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재능이 넘치며 순수한 시적 정서를 간직한 남자”로, 어머니를 “사랑으로 가득한 분”으로 묘사했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성냥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녀가 성냥 불빛에 의지해 잠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으려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에서 안데르센은 하층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평민들의 운명을 경멸한다. <인어 공주>에서는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높은 분들’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윌리엄 포크너 조차도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치켜세운 작품이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일찍부터 ‘금서’로 낙인찍힌 소설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학교마다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 성적 또한 부진하여 낙제당하기 일쑤인 주인공 홀든의 모습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전혀 모범적이지 않다는 게 일부 교사와 어른들의 판단이었다. ---흡연과 음주, 매춘 장면의 묘사와 동성애, 성도착(변태) 등에 대한 언급 역시 자녀를 둔 어른들의 이맛살을 찌프리게 했을 것이다. (p.108)” 아이들이 놀다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낙제생 홀든의 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작품에서 ‘벼랑’에 직면해 있는 인물은 그 자신이며, 파수꾼이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보호해줘야 할 인물도 바로 홀든 이라고 한다.
“소수 언어들이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국가어마저도 존립을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어적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러한 다양성이 ‘세계’ 자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p.255)” 바벨탑의 신화를 다시 상기하자면, 인류가 하나의 무리를 지어 살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언어적 혼잡성, 다양성 이라는 신의 징벌 이후다. 곧 세계는 그러한 혼잡성,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결국 그것의 산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를 때 ‘세계문학’은 적어도 세 가지의 서로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첫째, 세계 각국의 문학을 한국문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즉 이때 세계문학은 ‘해외문학’ ‘외국문학’ 등의 동의어이며 가장 넓은 범주의 문학을 지칭하겠다. 한국문학 바깥의 모든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둘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읽히는 문학, 흔히 이에 대한 예시로 단테나 셰익스피어를 드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계 명작 혹은 고전(클래식)을 뜻하는 것이겠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세계문학’이란 말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개별 국가의 국민문학(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 곧 괴테가 정의한 ‘세계문학’이다. 말하자면 국민문학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세계문학에 관한 가장 문제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P.280)” 그런데 이러한 정의들만으로는 불충분해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세계문학’도 오늘날의 지구시대(지구화시대)에는 등장하고 있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나 파울로 코엘료 같이 현재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문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을 가리키는 ‘세계문학’이 그것이다. 이것을 달리 ‘지구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최소한 네 가지의 ‘세계문학’을 식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라타니의 세계종교론을 민족이란 우상에 적용해보자면, 한쪽에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을 섬기는 야훼의 민족문학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 쪽에는 특정한 공동체를 부정하고 세계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세의 민족문학이 있을법하다.(P.293)” 물론 여기서 우리가 촉진하고 앞당겨야 할 세계문학이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민족문학이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통 공간으로서의 더 많은 사막, 더 많은 번역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 바로 ‘세계문학을 위한 초국적인 운동’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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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의 <외투> 다시 읽기 고골은 욕망을 가진 인물들, 곧 자신의 신분과 직분을 벗어나서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숭고한 가치를 갈망했던 인물들이 파멸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이러한 욕망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그 주체를 떠나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도 욕망은 죽지 않는다고나 할까. <외투>는 죽은 아카키의 유령이 자신의 외투를 찾기 위해 배회하다가 고위층 인사의 외투를 강탈해간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그런ㄴ 점에서 <외투>는 욕망의 섬뜩한 고포까지도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이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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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과 동화작가의 진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여느 전기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흔히 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어릿광대’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창작은 고치고 또 고친 육필원고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도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실의 쓰라림보다는 견딜만한 것이었다. p.84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은 스물두 살의 구두수선공이었고, 어머니 안네 마리는 서른 살의 세탁부였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재능이 넘치며 순수한 시적 정서를 간직한 남자”로, 어머니를 “사랑으로 가득한 분”으로 묘사했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성냥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녀가 성냥 불빛에 의지해 잠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으려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p.84 <미운 오리 새끼>에서 안데르센은 하층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평민들의 운명을 경멸한다. p.88 <인어 공주>에서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높은 분들’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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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돈 후안의 운명 “돈 후안은 무법자가 아니며,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이지도 않다. 단지 자신의 경우에는 그 법칙이 유예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라고 와트는 정리한다. 곧 돈 후안주의의 핵심은 현재의 젊음을 근거로 미래의 죽음과 심판을 간과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무분별한 여성 편력은 그러한 태도의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p.35 티르소 데 몰리나 판 <돈 후안>의 매력은 돈 후안에 대한 단호한 응징에 잇다. 시간과 내기에서 아주 오만했던 돈 후안에겐 참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점이 후대 작가 호세 소리야 이 모랄의 <돈 후안 테노리오>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p.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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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제국주의 셰익스피어의 영국은 왕위 찬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자주 다루는데, 명확하게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그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한편 경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봉건적 공동사회에서 상업적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다. 상업적 이익사회는 상품 거래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자본주의의 융성과 맞물려 생성되며, 이 상업 자본주의는 ‘지리상 발견’의 결과로 촉진되었다. p.19 빼앗긴 자신의 섬을 되찾으려는 칼리반의 시도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값하지만, 그는 이것이 스테파노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김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그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을 탐욕과 환상이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으로 줄곧 그려왔고, <폭풍우>에서 칼리반의 반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용서하는 5막은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식 대단원으로, 그의 용서를 받은 칼리반은 다시금 ‘길들여진 노예’상태로 돌아가 자발적으로 순종을 맹세한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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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교와 민족문학 기라타니의 세계종교론을 민족이란 우상에 적용해보자면, 한쪽에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을 섬기는 야훼의 민족문학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 쪽에는 특정한 공동체를 부정하고 세계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세의 민족문학이 있을법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촉진하고 앞당겨야 할 세계문학이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민족문학이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통 공간으로서의 더 많은 사막, 더 많은 번역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 바로 ‘세계문학을 위한 초국적인 운동’ 아닐까.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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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수용 사전적 정의에 따를 때 ‘세계문학’은 적어도 세 가지의 서로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첫째, 세계 각국의 문학을 한국문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즉 이때 세계문학은 ‘해외문학’ ‘외국문학’ 등의 동의어이며 가장 넓은 범주의 문학을 지칭하겠다. 한국문학 바깥의 모든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둘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읽히는 문학, 흔히 이에 대한 예시로 단테나 셰익스피어를 드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계 명작 혹은 고전(클래식)을 뜻하는 것이겠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세계문학’이란 말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개별 국가의 국민문학(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 곧 괴테가 정의한 ‘세계문학’이다. 말하자면 국민문학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세계문학에 관한 가장 문제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들만으로는 불충분해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세계문학’도 오늘날의 지구시대(지구화시대)에는 등장하고 있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나 파울로 코엘료 같이 현재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문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을 가리키는 ‘세계문학’이 그것이다. 이것을 달리 ‘지구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최소한 네 가지의 ‘세계문학’을 식별할 수 있다. P.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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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전쟁이 시작됐다! 작품 해설만으로 평점을 주자면 가장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전집이 ‘펭귄 클래식’시리즈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펭귄북스와 합작하여 출범한 이 전집은 2008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로 첫걸음 내딛은 이후 2010년 12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단기간에 100권을 돌파했다. p.274 또 다른 특징으로 다양한 독자층에 대한 배려를 들 수 있는데, 어린이와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작품에서부터 성인 독자를 위한 작품까지 다양한 몰록의 작품들이 망라돼 있으며, 영화와 뮤지컬의 원작들도 다수 포함돼 잇다. <군주론>과 <자유론>, <논어> 등 인문고전들도 시리즈 목록을 채우고 있는 것 또한 펭귄클래식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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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다시 읽기 카뮈의 아버지는 카뮈가 1살 때 죽었다. 어머니는 하녀노릇을 하는 문맹인 이었다. 카뮈는 <이방인>의 주인공과는 달리 어머니를 평생 지극히 사랑했다. 게다가 그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바다의 자식이기도 했다. 가난은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지만 축구와 독서, 연극과 사랑에 모든 젊음을 불살랐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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