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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국가가 겪는 가장 큰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기본 중에 기본적인 역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데다, 여차하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위기 시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그만큼 전시에는 리더의 역할이 막중해질 수 밖에 없고,이순신 장군을 떠올려보면 리더가 위기를 극복하느냐 위기에 굴복하느냐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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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건국 2백년 된 조선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였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한 전쟁이라는 점에서나 전쟁을 수행해야 할 지도층의 안이함이나 비겁함을 생각하면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만큼 당시의 조선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특히나 왕인 선조는 자신과 왕족들 살궁리만 했지, 백성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던 왕으로서나 리더로서나 최악이었다. 이 리뷰에서 만큼은 선조 욕을 자제하려고 했건만 임진왜란때 행동을 생각하면 선조와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조건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왕이 저모양이니..
풍전등화 신세였던 조선이 망국의 위기를 넘기게 된데에는 유성룡의 공이 컸다. 전시에는 전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략을 세우고, 군기를 다잡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것 등 후방 또한 전선 못지 않게 준비하고 해결할 일이 많은데, 당시 군무와 행정 모두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던 유성룡은 전시의 리더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워낙 커, 상대적으로 다른 리더들의 존재감이 이순신에 가려진 측면이 있는데 유성룡은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을 천거한 것은 물론이고 권율 또한 유성룡의 천거로 전쟁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니, 인재를 보는 그의 안목만 해도 대단했다. 유성룡은 그 빼어난 안목으로 단지 사람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상황을 전후방 가리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했고,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한 것에서부터 무엇보다 사대부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위기를 풀어가는 해법을 마련했던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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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유성룡은 명분에 집착하는 성리학주의자가 아니라 사고가 유연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놓은 국방, 민생 관련 정책은 당장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조선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완화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국방력강화를 위해 제승방략이 아닌 진관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했고,양반과 서얼과 천인을 속오군에 편입하게 하는 즉 신분을 따지지 않고 군역을 지게 하고, 또 천민과 서얼을 면천하는 정책 또한 내놓았다. 대동법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방납을 쌀로 통일해서 납부하는 방법도 유성룡이 실시한 정책이었다. 그는 국방과 민생을 함께 고민했다. 전쟁의 고통과 조세나 군역 등 불합리한 정책의 이중고에서 시달리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리더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책들은 순조롭게 실시되지 못했다. 사대부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었고, 선조의 총애 가 오락가락하면서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도 했다. 조선사대부들은 전시에도 지배층으로서의 책임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왜군의 침략 앞에서 사대부들의 무능함과 비겁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당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유성룡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전시에도 저정도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지배층인데 조선왕조가 어떻게 5백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에 고개가 갸우뚱 거려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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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혁신 리더 유성룡'은 아무래도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내용이다보니 유성룡의 활약 위주로 구성돼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선조와 사대부들때문에 유성룡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힘들었을지 내 속이 다 터질 정도였다. 고군분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는데, 그가 전시에 주장하거나 실시했던 정책들은 전쟁의 종료과 함께 도로아미타불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 역시 북인들의 공격세례 속에서 실각하고 말았고. 조선은 전쟁으로 폭발 직전에 이른 민심을 달래고 그들의 삶을 어루만져줄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되돌아 갈 수 없는 전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복고적인 정책으로 선회하려 들었다.
하지만 유성룡이 세상을 떠났을 때 보여준 민심은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발적으로 하루 더 시장을 철시할 정도로 진심으로 애도해주었던 것이다. 유성룡이 처음 실시했던 대동법은 100여년 뒤 전국적으로 실시될 수 있었고,그가 전시에 보여준 국방과 민생을 생각했던 정신과 리더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어떤 리더여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 리더여야 하는지. 임진왜란을 통해 보여준 유성룡의 리더십, 이제는 우리 후손들이 그를 평가하고, 기억해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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