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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매사 의욕이 없고, 늘 힘들다고 징징대는 젊은 친구들, 대접받기만 원하는 어르신들, 위아래 없이 이기적인 학생들, 공부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산으로 가고 있는 정치, 이익을 낼 수 있다면 어디든 공격(?)하는 대기업들.. 어디에서든 배려하고, 같이 잘 살겠다는 기본적인 마음 자체가 없다.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지금 현재 자신이 가진 범위 내에서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고, 얼마나 더 열심히 공부해야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부모이기에 아이들에게 내가 살았던 시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해 주고 싶고, 내가 살았던 시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내가 살던 어린 시절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할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어릴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나는 공부보다 놀기에 바빴고,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정성 어린 간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고, 친구와 싸우고 토라져도 왕따 시키는 일은 없었고,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형제자매가 많아 자유롭게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니 하루를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국수사과 학원을 다니지 않고, 숙제도 많지 않으며, 저녁 6시 이후엔 가능하면 자유 시간을 주기 때문에 아이 친구들에 비해 시간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아이의 친구들은 다르다. 하루의 스케줄이 보통 9시가 넘어야 끝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11시가 넘어야 집에 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한민국 부모. 다른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 대단하고, 그 교육열이 하나의 훈장 같은 나라.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부모는 그게 사랑이라 믿는다. 하지만 정말 사랑일까?
깨인 아빠인 줄 아는 완전 깨는 아빠, 아이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은 개방적인 아빠라 착각하는 아빠들, 아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밖으로만 맴도는 아빠들, 그런 아빠들을 더 밖으로 모는 엄마들, 더 많이 벌어오고 아이들과 잘 놀아 주라고 요구만 하는 엄마들. 그 부모들 틈에서 공부하는 기계로 전략해 버린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겠지?
책에는 가슴이 섬뜩하고 서늘한 말이 있다. 왜 <우리 아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은 없는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사람이 힘을 가진 권력자이거나 아니면 아무래도 달라질 가망이 없으니 아예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도 완벽할 수 없을 텐데 ‘아내가 달라졌어요’ 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분명하다. 감히 실질적인 권력자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달려져야 한다고? 남편이 달라져야 한다고? 선생님이 달려져야 한다고? 맞다. 하지만 ‘아내’도 달라져야 한다. 남편의 정서는 돌보려 하지 않는 아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아이들을 아바타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만회하려 하고, 남편을 가해자로 만들어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아내의 희생자 코스프레는 이제 막장 드라마만큼이나 지겹다. (183)
최근 나는 아이들 교육서나 감정 관련 된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부 관계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모든 삶이 아이들 위주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남편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빠의 위신(威信)을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남편을 돈 벌어 오는 기계정도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와 아빠의 입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무기력함을, 아이들의 버릇없음을,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모두 아이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가장 밑에 뿌리박힌 근본 적인 이유는 결국 부모다. 부모들이 갖지 못한 그것. 오까네(돈)과 빽(background). 그게 없기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아이들만큼은 돈과 빽이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부모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돈이 없고 빽이 없는 것일까? 아이들은 얘기 한다. “그렇게 노력해서 뭐 할 건데? 결국은 엄마 아빠처럼 그렇게 밖에 더 살아?”
교육은 비빌 언덕이 없는 부모들의 유일한 보험이었다. 그 보험에 보험료를 내느라 부모들은 허리가 휘지만 아이들은 고마운 줄 모른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 우리 아이들의 심리상태나 마음을 돌볼 수 없다. 늘 정답을 만들며 살았던 우리의 부모들에게 대안이란 없다.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꿈. 다른 곳에서의 인생을 만들 대안을 가지지 못했다. 나는 생각한다. 아니 나는 요즈음 노력한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 불빛 아래에서 수학문제를 풀 때 우리 아이들은 논어를 읽고 그 구절을 공책에 적는다. 나도 같이 읽고 같이 공책에 좋은 말을 쓰고 가능하면 외우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짓이라 손가락질 하지만 나는 나만이라도 그렇게 노력하고 싶다. 다른 곳에서는 가르치지도, 가르칠 수도 없는 그런 교육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 하고 싶다.
마지막에 바람직한 사회를 이야기 한 부분이 있어 메모해 본다. 모두 22가지를 이야기 했는데 몇 개만 적어 본다. 1. 먼저 자기만의 삶의 기준을 갖자. 그것이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 생각하고 살자, 공부다운 공부를 하자 3. 혼자만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 외롭게 무너지지 말고 함께 살길을 찾자 4. 정치가 우리의 삶이 되게 하자 5. 아이들의 살아 있음을 인정하자 6. 교육 본래의 의미를 복원하자 7. 누구나 본부장님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은 노동의 가치를 배워야 한다. 8. 학생의 학력평가 방법을 개혁하자 9. 엄마는 자식과 남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말자 10. 아내는 남편의 건강한 남성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지지하자 11. 아버지는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좀 더 당당해지자 12. 아버지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13.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문제가 아니다. 부부가 문제다. 14. 가족이 함께 책임을 나누고 일하는 시간을 갖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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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항상 잘 공감해주는 엄마라고 자부해왔고 주변에서도 이상적인 엄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늘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악다구니치는 엄마들을 가장 경멸했고, 아이가 시험을 못봤다며 시무룩할때도 (너무 자주 있는 일이지만), 한번도 혼낸적이 없으며 늘 "괜찮아, 다음에 잘보면되지. 시험보느라 애썼다. 이제 잊어버리고 당분간 실컷 놀아라."라고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었다.
항상 "꼭 공부만 해야 되는것 아냐.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면 그걸 하는게 가장 행복한거야." 라고 아이들에게 말했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려고 노력했으며,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서로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안달내는 것을 보며 속으로 난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부모'를 단숨에 읽으면서, 내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점잖은 방법'으로 아이를 삼키는 포식자 엄마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너무나 충격을 받고 엉엉 울고 싶어졌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솔직히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인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였었던것 같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아픈 아이나 엄마들의 사례를 통해 '거봐, 그러니까 나처럼 아이를 길러야 하는거라구.' 하는 자부심으로 뿌듯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정반대로 죄책감, 부끄러움과 후회로 가슴이 울컥해졌다.
우선 난 아이들에게 철저해 솔직하지 못했다. "꼭 공부만 해야 되는것 아니니, 너 좋은걸 찾아라."라는 말은 "그래, 네가 좋은것 찾아 명문대가면 돼."라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남편과 내가 이른바 명문대를 나왔으니, 아이들이 명문대를 못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말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죽도록해서 명문대가란 의미였다. 이렇게 내 모든 행동의 귀결은 명문대였고, 공부하라고 소리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우아하게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들이 아직 중학생인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맞아요, 나 그런 엄만데, 그럼 이제 어떡하라구요?"를 외쳤는데, 끝맺음을 하는 에필로그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구체적 조언을 해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 막연히 '좋은 부모가 되어야지'라고 하는 생각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건 아이로부터 내가 독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을 아이에게 말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행복을 아이나 남편에게 찾아달라고 징징대지 않고 내가 찾을 것이며, 부조리한 현실에 눈감지 않고 목이 터져라 외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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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끝에 간신히 걸쳐 있는 빨간 지붕의 집,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한 가족. 표지부터, 아슬아슬함이 보인다. 그들은 집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집 안에 들어간다 한들, 안전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열 두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 남동생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의 내가 기특할 정도로 (ㅎㅎ)온 마음을 다해 굉장히 아껴주었다. 직장생활 하느라 피곤한 엄마를 대신해서. 새벽이면 울어대는 동생을 위해 분유를 타고, 졸면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면 내가 마치 엄마라도 된 양,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 주고 내일 학교 갈 준비물을 챙겨주었다. 한창 놀고 싶었던 대학 시절이었고, 가끔은 동생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나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 아니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일지 미리부터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동생 사랑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됐다. 내 용돈 벌기도 힘들었지만 맛있는 게 보이면 동생에게 사다주었고, 옷이나 신발도 좋은 게 있으면 내 용돈을 모아서라도 사다줘야 직성이 풀렸다. 둘이서 시내로 영화를 보러 나가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면 청계천으로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시청의 루미나리에 구경... 참 이것 저것 많이도 했었다.
그런데 이 어린 놈이, (내가 보기엔 분명 어린데. 지금도 그렇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더니 조금씩 나랑 같이 다니는 걸 싫어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꾀고 재밌는 영화 보여준다고 꾀고 신기한 곳 데려가 준다고 꾀도, 이 놈의 자식이 친구들이랑 야구 해야 한다, 축구 해야 한다, 생일 잔치 가야 한간다, 등등의 빡빡한. 스케쥴을 대면서 나를 슬슬. 피하곤 했다.
허 . 참. 자식들이라는 게 이렇구나. 싶었다. 이래서 자식 낳아 봐야 소용없다, 고들 말씀하시는 구나. 내 쓸 거 아껴서라도 뭐든 다 퍼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쟤도 자기가 좋은 거 찾아 가는구나. 그렇게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도, 나로 인해 언젠가 이런 마음이 드신 적이 있으셨겠지. 죄송스럽기도 했고, 더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벌써 꽤 오래전이다.
그 이후부터 (물론 난 아직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안 낳아봤지만) 자녀교육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고, 책과 기사, 전문가 칼럼 등 교육과 심리서 등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실제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다른 집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자녀와 충돌이 생겼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했다.
동생의 사춘기 시절은 참 길고도 파란 만장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ㅠㅠ) 부모님께 반항하고, 친구들과 다투고 오고, 학교며 학원에서 선생님들께 집으로 전화가 오고...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은 사춘기 시절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로 무마시키기엔 늦둥이를 보신 탓에 연세도 있으신 부모님이 겪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위로 딸만 둘이 키워 자식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던(아닌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동생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 걱정마. 남들도 다 그래', 혹은 '그럴 땐 이렇게 해봐', 라고 어줍잖은 위로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자신있게 엄마에게 건네 줄 책이 없었다. 아, 그 책들이 별로. 였다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거나 상처받을까봐, 혹은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할까봐... 쉬 읽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부모>는 여느 자녀 교육서, 부모교육서, 심리서. 들과는 달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두 가지다.
우선 이 책에서 보여주는 초, 중, 고 학생들의 상담 사례, 부모님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 어떤 고민이 있고 자녀와 어떤 문제로 부딪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자녀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우리 집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약간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이 책은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해주는 해결서, 혹은 상황별 지침서가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아이가 비뚤어진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그렇게 생각하는 게 결코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합리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라는, 믿음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다. 자녀로 인해 힘들었던 그 시간들, 아이 성적이 좋지 않은 게 마치 내 탓인 거 같아 나를 자책했던 시간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어머님들이 있다면 분명,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결심, 비록 이 책에 '정답'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례들, 부모와의 갈등을 겪는 아이들이 마치 , 혼자만 간직하려고 쓴 비밀 일기장 같은 그 사례들을 많은 부모님들이읽고, 공감하고, 이것이 비단 이 아이의 문제, 그 엄마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알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이도, 지금. 이렇게 힘들어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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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법구경에 '자식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길손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인도의 한 바라문이 늦은 나이에 용모가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를 얻었다. 아이는 7살이 되어서 글쓰기를 배워 총명하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갑자기 중병에 걸려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다. 바라문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다 염라대왕을 찾아가 아이 목숨을 되돌려 받으려 한다. 염라대왕을 찾아가던 여정 중에 누군가 왜 염라대왕을 만나려 하는지 이유를 묻자 그 바라문은 '아들의 목숨을 돌려 줄 것을 빌고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잘 길러서 노후에 의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물론 모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이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대다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관심과 사랑은 어찌보면 바라문의 이런 집착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부모의 욕심대로 아이를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 믿고 행하는 것들이 정작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인지를 늘 고민 해야한다.
이 책《대한민국 부모》는 이 땅에 사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이 얼마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처음부터 얼마 전 고3 학생이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건으로 문을 열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의 한 단면을 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부모와 아이들이 놓인 상황을 설명하기엔 너무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르지만 책장을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그 생각은 심각한 우려로 바뀌어갔다. 공부라는 무한경쟁의 희생양으로 내몰려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 넘어 남의 집 이야기라 여겼지만, 이젠 내 아이 혹은 내 아이 친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요즘은 수능시험을 앞둔 고 3 수험생의 시험불안 증상을 초등학교 3학년생이 겪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실제 상담사례들을 통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느끼도록 해주는데 가장 무서운 일은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심각하게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더 이상 의지하고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적대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이에 따라 드러난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섬짓한 태도들을 보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떠나고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예 없애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없애야 이 거대한 학력생산공장이 멈추게 될지 몰라 화염병을 들고 그냥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이들을 계속 채찍질해서 강하고 독한 승자로 살아남도록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정말 부모들이 원하는 강하고 독한 아이가 되어 결국 망설이던 화염병을 부모에게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_(P.67)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아이가 있다. 성공하면 부모와 연을 끊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엄마는 날 죽일 거야'라며 엄마의 목을 조른 아이의 테러와 똑같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다. 어쩌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이토록 허물어졌는지 망연자실할 일이다. 아이가 병들어 힘들어 하는 동안에 부모라는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전혀 모르며 산 꼴이다. 결국 부모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내팽개친 부모들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어야 하는 부모가 따뜻하게 감싸안아주기는 커녕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도 모르는 생존 경쟁의 전쟁터에 어린 아이들을 내몰았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의 미래도 부모의 미래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더 늦기 전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마라는 빨간 경고등을 켜보인 책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존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의 교육문제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선택은 부모가 해야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부모가 우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꿈과 희망이어야 한다. 부모 자신의 욕심보다 아이의 미래를 우선 생각한다면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현실에서 남들을 따라 아이를 키우면 우리 아이의 미래가 어떨지는 이 책이 증명해주고 있다. 혹시라도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기 보다는 우리 아이들은 다를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고있는 부모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과 부모란 존재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이런 교육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야할지 고민이 앞선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인 나 역시도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하기 위해 학습하고 성장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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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다룬 책도 기사도 방송 프로그램도 참 많다. 이런 것들 모두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인데 난 사실 그렇다. 예를 들면, 독일의 숲 속 학교. 숲 속 유치원. 자연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좋은 교육 환경이기에 이를 우리나라에도 수용하고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많지만 인공적인 환경이기에 공급이 많지도 않고 그에 따른 문제점과 부작용이 또 따르기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숲 속 유치원을 만들고 운영, 유지 보수 차원인지 교육비도 꽤 비싸고 아이를 그런 환경의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부모의 희생이 또 발생될 수도 있고 말이다. 뭔가 개선되고 보완이 되는 듯하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몰려온다. EBS 방송 시청을 유도하지만 우리는 늘 제자리 걸음이고 더 악화가 되고 있으니 이 역시 답답. 이 책의 주요 골자가 대한민국의 교육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특히 십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고민을 누군에게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 가슴에 꽁꽁 담아둔채 병들어가는 대한민국의 부모들. 그리고 나도 살고 싶다고 외치는 십대들. 너무나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그런 고민들과 일화를 담아두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코 남의 일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주로 밤에 책을 읽었었는데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쉬웠다. 책에서 놓지 않고 쭉쭉 읽어내려가고 싶었는데 한편으론 그 다음에는 어떤 사건이 날 경악하게 만들까 싶어 두려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 정도일 줄이야. 책을 읽으면서 내가 딸 아이를 키우는 이유, 교육하는 이유. 왜? 왜? 라는 물음에 마음이 좀 복잡한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과의 관계가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저렇게 되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에 슬퍼진 것도 사실이다. 혼란과 슬픔에 잠기게 하는 책이지만 무책임하게 독자의 감정을 마냥 흐트려트리고 내빼는 그런 책은 아니었다. 어떤 조언과 충고보다 더 큰 자극이지 않을까 싶다. 미친 교육열로 부모와 자녀 관계가 많이 망가짐이 난 무엇보다 괴로웠다. 말 못하는 아기한테도 우린 존중감을 표현해주고 관찰자의 모습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천덕꾸러기가 되고 부모 역시 아이에게 큰 실망감과 더불어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조이려 들고. 왜 학교만 들어가면 엄마들은 아이 못잡아 먹어 안달인걸까.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온 엄마를 밀쳐내지는 못하니 적개심과 적대감을 보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부모를 위선이라고 욕하고 분개한다. 아빠 역시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에 동참되어야하는 존재였으나 아이가 커가면서 늘 엄마에게 밀리는 나약한 존재로, 아이들과 대화 좀 하려고 하면 공부할 시간 뺏는 그런 존재로, 그닥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찌질한 존재로 추락되고 있다. 아이들 눈에 비친 우리 부모 모습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관계가 악화된 것일까?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많을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자식이 살 길 바라는 마음, 내가 학창시절 어려웠던 일들을 이 아이만큼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 이 사회, 이 세상이 원하는 인재로 키우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에서 교육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정녕 그런 마음이 맞는지 내게 묻고 넘어가고 싶다. 또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보장하기 위해 현재의 내 아이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아이의 건강한 자존감은 건강한 부모의 자존감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병들고 아픈 부모 아래에서 진정 그 아이들이 부모를 신뢰하면서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이의 자존감과 성공을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 부모 자신의 자존감부터 회복하고 당당해져야 할 듯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부모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 아이의 성공은 결코 학교 성적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라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미친 사교육 사교육 하지만 우린 그 미친 사교육을 사장 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농락당하고 있다. 교육 본래의 의미를 복원하는 일 역시 교육감이? 교육청에서 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 부모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다 함께 변하지 않으면 우린 어쩜 10년이 흐른 뒤에도, 20년이 흐른 뒤에도 똑같은 문제를 두고 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꼬맹이 그녀가 엄마만큼 커버린 후에도 그녀의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랑스런 내 딸의 듬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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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희경 교수님 책이 출간 되었다.
2009년 어느 여름 날, 교수님을 처음 뵙던 때가 생각난다.
동생의 방황이 심해져서 그로인해 너무 힘들다는 전화가 어머니께 걸려 왔다. 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자기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버지께 상의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엄마에게 간 녀석이니, 그렇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잘 못시킨것도 다 네 엄마 탓이라며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끝으로 두 분다 네가 형이니 잘 타일러 보라고 말씀하셨다...
내 나이 스물 하나, 어른들도 못 하는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건가. 주위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로 밑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두기엔 두려움이 너무 컸다. 동생이 완전이 엇나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그리고 그걸 그냥 지켜본 형으로 남을까봐. 그게 더 두려웠다.
교수님께서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시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시간강사를 하시던 중이셨다. 수업 첫 시간에, 교육심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독일에서는 상담을 전공했으니 혹시 물어보고 싶은게 있으면 언제든 상담을 신청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교수님께서 인사말을 대신해서 하셨던 그 말씀이 몇 일 동안 내 귓가에 맴돌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교수님께 장문의 글을 남겼었다. 그리고 다음날 수업전까지 답장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두 빠져 나갈때 까지 기다리다 내 딴에는 용기를 내서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교수님... 어제 상담 메일 보냈던 학생인데요..."
교수님께서는 수업 시작 20분전에 답장을 보내서 미안하다며 수업이 끝나고 1시간넘게 상담을 해주셨다. 부모님께서 헤어지셨지만, 그래도 아직 애정이 있고,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시려는 의지가 있으니 크게 나쁜 상황이 아니라는것을 말씀과 무엇보다 동생을 믿어주는 마음이 중요하고, 그 마음을 전해주는 것 만으로 큰 이탈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위안을 삼았는지 모른다.
그 뒤로 크고 작은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상담을 받고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이 은혜는 죽을때 까지 다 못갚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수익금은 전액 청소년 사업으로 씌인다고 하니, 꼭 사서 읽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도 해야겠다.
난 언젠가 어른이 되면 교수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도움이지만 그로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나누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어른으로,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치열하게 그러면서 따뜻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그리고 너는 이미 그 길에 한걸음 다가온 것 같아 기쁘구나. 항상 기도하고, 응원할께!
언젠가. 언젠가 나도 어른이 되면, 이제 교수님께 상담을 받는게 아니라, 동등한 어른의로써 "교수님의 인생"을 듣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 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교수님의 인생을 들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훨씬 감동적인 책 이었던것 같다.
힘든시절 모든 것이 두렵고, 방황하던 내게 작은 빛이 되어주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이 책으로 말미암아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런 작은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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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요가도 쉬고, 문화 센터에서 듣는 일본어 프리토킹 수업도 째고(?범생에게 째는 일은 경미한 범죄!!),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집이며 부엌이며 손 놓았다. 약하게 태어난 기관지쪽이 이번 겨울 들어서는 매일매일 말썽이다. 병원약을 먹어봐도 시원찮고 생강차에 유자차에 심지어 탱자차까지 마셔봐도 깨끗하지 않은것이 필히 쉬라는 내 몸뚱아리의 뜻이겠지.... 모든 것을 오늘은 손놓았지만 이불속에서 손을 놓지 못한것은 요즘 읽고 있는 책 한 권이다.
[대한민국 부모]
어떤 문장부호, 이모티콘, 스티커를 붙여서라도 강조하고 싶어 죽겠는 책이다.
지난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서방님(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호칭이니 너무 오글거려하지 마시길)이 모처럼 평일에 쉬게 되었다. 손잡고 근처 극장으로 가서 간만에 문화생활 겸 데이트를 즐겼다. 서방님 추천으로 보게 된 [내부자들]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냥 한마디로 재미있었다!라는 말밖에 표현이 안되었다. 조승우,이병헌의 연기는 구순한 사투리며, 쌍욕이 자연스러웠다. 서방님 눈은 변태적인 성접대 장면에서 더욱 반짝거렸을테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부화가 치밀고 ㅆ발(드디어 터졌다...범생이 입에서....)이라는 단어가 절로 튀어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쌍욕을 너무 듣다보니 자연스레 습득이 되었나보다. 어쨌거나 우리 한국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였다. 그동안 우리 서민들, 지극히 평범하고 찌질하게 버둥거리며 살아온 서민들은 내 입에 풀칠하고 내 자식들만 잘 키워보려고 부단히 애써왔는데..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이며 그 몇몇 권력을 가진 주인들은 서민들을 개, 돼지, 소로만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썩어가고 있었는지 그걸 내가 느끼지 못한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분통해하고 갑작스레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고민에 빠지고 수렁에 빠지고 나락에 빠졌다. 유별난 호기심을 타고난 첫째 아들을 범생이 엄마인 내가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와 한바탕하고 나면 죄책감도 들고 그런데도 예뻐죽겠는데 어쩌나... 그런 아들을 쳐다보며 범생이 엄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책을 손에 들었다. 닥치는대로 육아서, 양육서를 읽어보며 여러가지 솔루션을 찾은듯 했지만 그 때 뿐이며 그래도 포기못하는 엄마는 끊임없이 육아서를 쏟아내는 출판 시장에 고마워하면서도 불안해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해답은 육아방법의 문제보다는 [심리전]이 문제라는데 결론이 났다. 엄마의 심리, 나의 심리, 인간의 심리......그러고도 뭔가 개운치 않은 이건 도대체 뭐지? 역시 아무리 배워도 소용 없나?나에게 문제가 있나? 그런 와중에도 한가지 얻은 것은 더이상 우리 아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특히나 호기심과 상상력이 무기인 올해 8살 아들의 멍때리기도 나는 문제 삼지 않는다. " 제발 밥은 좀 먹으면서 재미난 상상을 하렴~~" 밥을 입에 문 채로 씹지도 않고 한참을 먼 산 보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끔 말할 뿐.....
이런 고민을 하는 찰라에 우연히 이승욱 박사의 강연을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되었다.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을 쓴 저자이며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학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가 좋네~라며 설겆이를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강연을 듣는데 중간중간에 자주 설겆이를 중단해야했다. 물소리 때문에 박사님(강연을 조금 듣다보니 '~님'자가 절로 붙는다.) 목소리가 물소리에 묻혀 놓치게 되면 중단했다가 다시 듣곤 했다. 혹시나 박사님의 다른 강연은 없나 싶어 찾아서 죄다 시청해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동안 내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육아서에서는 절대, 절대, 절대 얻지 못한 답이 살짝 비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누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병들고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까지 병들게 만들었나? 그 각각의 개인들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어릴 적 풀지 못한 상처가 있어서? 배우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일부는 정말 그런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월드컵 때 보여준 똘똘 뭉치는 화합의 모습을 지금도 똑같이 똘똘 뭉쳐서 병들어 가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일부의 문제적 현상이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문제적 현상으로 드러난 것에는 분명 본질적인 원인이 있지 않나?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무지한 엄마다. 무지한 개인이고,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도 대학 나온 나름 지식인이랍시고 책 찾아 읽으며 노력한다고 한 것이 사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만 잘 살면 되고 우리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다고.... 인터넷 서점에서 [대한민국 부모]를 얼른 주문했다.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책이다.
서방님과 화요일 [내부자들]을 본 것은 이승욱 박사님의 [대한민국 부모] 책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책과 영화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가 보인다. [내부자들]을 보고 나서 분노가 치밀어 [장자연 리스트]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故노무현 대통령의 타살의혹]까지 다시 찾아보고, 지난 대선에서의 [박근혜 부정선거], [역사 교과서 국정화],[친일파, 뉴라이트 음모]까지... [대한민국 부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이런 개판보다 못한 정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사회의 복지와 제대로 된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의 교육정책 아래에서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우리가 배워온것처럼 경쟁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것이다. 배움의 즐거움? 우리는 콧방귀를 뀐다. 우정보다 중요한 것이 공부이고 성적이라고 가르친다. 어느 학원 광고 문구에서 새학기가 되었는데 친구와 놀기만 할거냐고, 그 친구가 너의 성적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적나라하게 적어놓았다. 너무 천박하기 그지없는 문구인데도 사람들 특히, 엄마들은 끝까지 그 밑에 적혀있는 문구들을 다 읽어본다. 순간적으로 이 광고지를 확!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내신제도가 이토록 무서운 형벌인지 내 나이 마흔을 바라볼 즈음에 아이 둘을 초등학생이 되도록 키우고 나서야 느낀다. 신도시에 잘 지어진 고등학교를 얼마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나쳤는데 학교앞에 자랑스럽게 걸린 현수막이 또 눈에 거슬린다. SKY대학에 한 명 이상씩 이름이 적혀있고 듣도 보도 못한 대학 이름과 학생들 본명이 박혀있다. 그걸 또 "와~"하면서 버스가 지나쳐 가는대도 한껏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아주머니(나도 이제 아주머니지만..)가 계신다. 그 학교는 참 자랑스러운가보다. 장사를 참~ 잘했으니...... 애들을 일류 대학에 집어넣고 광고하고 엄마들이 현수막 보고 소문 듣고 몰려들테니..... 교육이 장사가 된지 이미 오래전 일이 아닐까? 대졸자 주류 사회에 편승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믿음하에 너도 나도, 막말로 개나 소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는 의미없는 대학들의 잘 차려진 진열대 속에서 거액의 헛된 배움을 사서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부모들은 대학에 목숨을 걸고 성공과 부에 목숨을 거는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제도하에서 살아오면서 익히고 배운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알맹이가 빠지고 제도에 따라가기 참~바빴다. 그걸 우린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잖아~'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후손을 생각하지 않은 이기적이고 무지한 생각일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경쟁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이런 사회 제도하에서는 도대체가 불안해서 제대로 된 가치를 물려줄수가 없다. 그동안 이런 제도하에서 희생당해온 우리 대한민국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바로 잡는 공부도 필요하다. 생각 좀 하고 살자! 공부다운 공부 좀 하자! 라고 이승욱 박사님은 에필로그에서 소리친다. 그리고 그 공부는 나의 내면의 공부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더불어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가는 공부가 되어야한다.
아들은 이미 하교해서 간식 먹고 라바를 정신을 놓고 시청하고 있다. 아들은 이전에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대한민국 부모] 책 표지를 보고는 "어! 집이 떨어지겠다~~~"라며 유심히 쳐다본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책표지를 자세히 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슬아슬하게 벼랑끝에 걸쳐진 집이 있고 그 집으로 가족들이 들어가려한다. 이런 위험천만한 집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 그 집에 자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듯하다. 넓고 안전한 평원이 되어주어야 할 국가가 벼랑이 되어버렸다. 이런 대한민국의 제도와 시스템을 우리는 망연자실 이제껏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닐까? 항의와 투쟁이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어른들이 무기력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 지갑 불리기에는 급급한데 부조리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무기력해진 이기적인 사람들.... 사실은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부끄럽지만.....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 아니, 그보다 힘겹게 버텨온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우린 할 소리를 해야하고, 필요하면 항의도 해야하고 또 무엇보다 올바른 가치를 가지기 위해 배워야 한다.
라바가 끝나면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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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그것도 실업계 고등학교의 입학등록금을 은행 마감시간에 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이 그런 시대다. 누구나 가는 곳. 꼴찌도 생날라리도 다 가는 곳. 단 돈 없는 사람만 못가는 곳.
「대한민국 부모」를 충격 속에서 읽고 있다. 4부는 '대학을 늘리는 것은 교육의 기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정권의 비호 아래 자본에 예속되는 과정'이었음에 대해 써내려가고 있다. 세분의 저자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도 있다. 새로운 틀을 만들거나. 기존의 것을 저들의 손에서 되찾아오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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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례를 들어 문제들을 까발리는 듯했고 다독이고 풀어주는 느낌은 별로 였다. 너무 사회문제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당장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느낌. 최근에 교육서들을 많이 읽는 중인데 그래도 관심있게 읽은 책 중에 하나이다. 대치동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썼다는 <충분한 부모>란 책과 함께 육아에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 가끔씩 꺼내 읽으면 좋을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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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핫 이슈가 되는 말이 있다. 적어도 나에겐 여러번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한 표현.... 부모인가요? 학부모인가요? 이 물음 속에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란 땅에서의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떤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적절한 물음과 함께 진지한 대답이 필요할 아닌가싶다. 책 <대한민국부모>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생각 있고 배려하는 부모가 된다는 것과 자유분방하며 개성적이며 능동적인 아이가 된다는 것은 꼭 다른 나라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그만큼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상처로 얼룩진 관계가 아닌가싶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포식자인 엄마'란 부분이었다. 엄마는 어릴때부터 아이에게 자유를 허용하기보다 무조건 1등, 남보다 잘 하는 아이를 원했다. 아이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더이상 소통하지 못하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 결국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남기는 파국으로 치닫는 남보다 못한 관계인 채....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늦게서야 상담실을 찾는다. 우울하고 아픈 이 시대의 부모와 아이들이 나와있다. 교육이란 야만적인 정글에 갇힌 아이들, 무기력한 아이들, 똑똑하지만 마음의 병을 앓는 아이들, 가족 학교 사회 그 모두를 없애고 싶은 아이들, 속이 텅 빈 아이들...... 미래 없는 한국 교육과 시스템의 부재..... 전시 행정.... 이런 모든 아마츄어적이고 어눌한 부분들로 인해 아이들은 병 들어 가고 있었다. 반면 부모들도 힘겨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부모란 이름이 실종되고, 학부모만이 덩그러니 남은 상황 속에서.... 아이를 삼키고, 아비를 고독하게 만들고, 일만 하는 기계로 전략하게 만들고..... 여전히 참 어른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어리숙한 부모들... <대한민국부모>에겐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교육과 그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며 진단하고 대안까지 이끌어내는 지금 이 시대 부모들이 꼭 한번은 읽어봐야 될 책이 아닌가싶다. 희망은 있다. 바로 잠시 멈춤과 내려놓기와 돌아보기와 찾아보기를 잘 하면 될 것 같다. 내 아이를 소유하기보다 한 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의 생각에 대해서 기다려줄 줄 알아야하며, 어미의 욕심이 아닌지 생각하며 내려놓아야 하며, 날마다 부모인 내 모습을 돌아봐야한다. 정말 내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를............. 그리고........... 입시지옥으로 아이를 인도할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삶을 위해서 몸부림쳐야 한다. 교육다운 교육이 필요할 때...... 진정 엄마인 내가 우리가 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아이를 살리는 교육은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엄마와 함께 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싶다. 욕심을 버리고, 불안을 잠재우고, 다른 엄마들의 소리에 무신경해질 수 있도록..... 반면 아이의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귀 기울이며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엄마표 교육^^ 아울러 아버지란 자리와 아버지의 권위도 치켜 세워줄 수 있는 따뜻함이 살아있는 가정.... 진정 <대한민국부모>가 회복되어지는 첫 발걸음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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