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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9] 일상복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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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낭비는 군것질처럼 인간의 본성이고, 지나치지만 않아면 팍팍한 현대사회를 버틸 수 있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전작 (패션vs패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을 기대하고 샀는데 그런 부분은 10%도 안되고 나머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이야기 (일상복을 어떤 식으로 입고 관리해야 하나)인데 깊이도 방향성도 논지도 엉망이다. 그냥 저자의 블로그에 가서 읽으면 그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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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낭비는 군것질처럼 인간의 본성이고, 지나치지만 않아면 팍팍한 현대사회를 버틸 수 있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전작 (패션vs패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을 기대하고 샀는데 그런 부분은 10%도 안되고 나머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이야기 (일상복을 어떤 식으로 입고 관리해야 하나)인데 깊이도 방향성도 논지도 엉망이다. 그냥 저자의 블로그에 가서 읽으면 그만인 내용들 밖에 없다. 그래도 책을 내서 파는건데 좀 더 글의 방향성과 내용을 다듬었어야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출판사 역시 편집(레이아웃) 좀 그딴 식으로 했어야만 했나?







h*****p 2020.02.0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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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복 탐구, 그 소소한 단상과 깊숙한 사색 속으로 발들여가며
"일상복 탐구, 그 소소한 단상과 깊숙한 사색 속으로 발들여가며" 내용보기
흡사 평소 전혀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커피 한 잔 어떠신가요'라는 제안으로서 만남을 요청하는 나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옷과 더불어 서적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취향, 그 중에서도 주로 에세이나 산문집에 그 근거를 두고있는 까닭은 '상대방이 가진 생각과 태도'를 몹시나 궁금해하는 나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나는 주로 '내가 하지 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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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평소 전혀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커피 한 잔 어떠신가요'라는 제안으로서 만남을 요청하는 나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옷과 더불어 서적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취향, 그 중에서도 주로 에세이나 산문집에 그 근거를 두고있는 까닭은 '상대방이 가진 생각과 태도'를 몹시나 궁금해하는 나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나는 주로 '내가 하지 못했던, 혹은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깊은 관심을 두며, 그들이 써내려간 서적들을 주로 구입하고 또 읽어보는 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패션 평론',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며 패션에 대한 다양한 단상과 사색을 패션붑(fashionboop)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쏟아내곤 하는 박 세진이라는 이름의 평론가이자 작가, 지난 번 패션 vs 패션에 이어 일상복 탐구, 그렇게 나는 박 세진 평론가의 '일상복과 최근 패션에 대한 생각'을 육성이 결여된 대화를 통해 한 수 배워보기 위해, 혹은 그가가진 생각을 훔치어 거기에 나만의 생각을 더한 '잡종과 혼종'을 잉태시켜보기 위해 다시금 지갑을 열고,

그렇게 그의 신간을 서둘러 나의 두 손을로 받아 들어올려본다.

이전의 세대라고 한다면 주로 '직업'이 그 분류 대상이라고 하겠지만, 이제는 직업보다는 '일상'이 주된 분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에 따라 확연히 나뉘던 복장들, 더군다나 그 직업의 기간이 일요일을 제외한 6일이 기본이었으며, 그 분류 기준이 블루와 블랙, 화이트와 같이 명확히 나뉘던 시절,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기준으로 패션(Fashion)을 구가해왔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시절로서 연상되는 아버지의 복장, 직장인 시절에는 언제나 '샤쓰에 마이'라고 하셨던 셔츠에 넥타이를 매치하고, 단정하게 수트를 입으신 채로 막내 아들이 닦아놓은 구두를 신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의 일상을 보내시던 시절과, 사업인 시절에는 '단정한 차림'으로서 옷깃이 달린 티셔츠 혹은 넥타이가 생략된 셔츠, 여기에 수트가 아니한 단품 재킷과 블레이저(Blazer) 차림으로 집문을 나서시거나 종종 '바바리' 차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시절들.

하지만 그러한 시절들이 이제는 '역사 속 뒤안길'이라고 할만큼 무색하진 지금, 어린 시절 아버지와 동일하게 '직장인의 굴레'를 거듭하고 있는 나의 경우, 더 이상의 수트 차림은 온데간데 없고 티셔츠와 셔츠, 그 것도 다양한 프린트나 자수 디테일이 들어간, 아버지의 시절이라고 한다면 '되먹지 못한 상놈'에 가까운 차림으로 나는 사무실을 드나들고, 구두의 경우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차치해두고, 그나마 단정하다고 할 수 있는 스니커즈(Sneakers), 이 또한 주 중에 두 세 차례 정도를 신을 뿐, 그 외에는 나이키(Nike)로 대표되는 운동화 차림으로서, 나와 나의 세대는 그렇게 '더 이상 색상으로 대표되지 아니한 직장인의 옷차림'으로서 업무와 일상을 반복해오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기억 속 '일상과 패션'을 다시 한 번 정의해보고 그 기억을 떠올려보며, 어디까지나 '노동자'로 정의되었던 이전 세월의 일상과 그 속의 패션들, 그리고 그 시절 노동자들의 복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청바지와 워크웨어(Workwear)에 대한 정보를 나는 박 세진 평론가의 보다 깊은 정보를 통하여 인식해보고, 또 현재의 패션 - 더 이상 노동자의 복장이 아니하며, 주로 SPA 브랜드와 하이패션(High-Fashion)의 양립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일상과 패션을 생각해보며, 그 속에서 보다 하이패션에 가까운 나의 입장과 옷차림을,

그렇게 나는 다시금 정의해보며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던, '옷차림은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해야한다'는 귀에 못이 박히고 딱지가 쌓이도록 들어왔던 방식이자 태도를 새삼스럽게 떠올려본다.

 

굳이 대학 시절 전공하였던 '경영학과 경제학의 입장'을 도입해보자면, 빠른 산업의 성장과 고도화로 인한 국민들의 소득의 증가, 이에 따라 국내 경제가 극도로 활성화 된 결과이자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이라고 한다면 그저 '주말 나들이 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던, 그렇게 함께 보낼 수 있는 주말이면 어머니께 '바바리와 라이방좀 내오시오'라는 말씀으로서 버버리(Burberry)의 트렌치 코트(Trench Coat)와 레이밴(Ray-Ban)의 선글라스를 소화하셨던 아버지의 특별한 주말의 일상, 어찌보면 지금의 내가 패션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고,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패션 비즈니스(Fashion Buseiness)에 빠져들게 된 까닭은 부모님, 특히 '남성적인 멋'을 주로 추구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오렌지족'으로서 압구정을 누볐던 친척 형을 통해 전이되었던 당시만 하더라도 높은 감도의 국내 브랜드들, 그렇게 나는 닉스(Nix)와 스톰(Storm)의 옷가지들을 걸치며, 한 편으로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Marith+Franois Girbaud)와 리바이스(Levis), 캘빈클라인(Calvin Klein)과 게스(Guess)의 청바지들을 두루 겪으며 나도 모르게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세상은 다시금 급변하였고, 그렇게 '주말 하루만 허락된 자유'라 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주말 나들이복에서 '일주일 내내 허락된 자유'라 할 수 있는 아들의 주중 출근복+주말 평상복으로 확장된 패션, 그리고 그렇게 일상화가 되어버린 패션이라는 멀고도 크게만 느껴졌던 명제이자 주제,

나아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만 하더라도, 아버지와 같이 '외국을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한정적으로 공유되던 정보와 특산품의 개념으로서 소구되던 패션, 그렇게 '밀수품'에 가깝게 미제의 패션들 - 랄프 로렌(Ralph Lauren)의 수트와 폴로(Polo)의 티셔츠, 노티카(Nautica)의 점퍼와 캘빈 클라인, 게스의 청바지들, 이제는 인터넷으로 가장 손쉽게, 조금 더 이전의 세월이라고 한다면 백화점과 압구정 일대 길목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아버지 시절의 특권이자 특산물은, 이제는 아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용되고 통용되는 '필수품이자 일상품'이 되어버렸다.


호기심이 많은 반대 급부로서 '많은 것들에 쉽게 지루해지고 싫증을 느끼는 성향'이 무관하게, 생애에 걸쳐 패션이라는 명제에 빠지어들고 또 변함없이 집착을 더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패션이 가진 매력,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자 '자신을 소중하게 만드는 마술'을 변함없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180의 키에 깡마른 체구, 학창 시절 '젓가락'과 같은 별명을 가지기도 했던 나는 패션이라는 이름의 마술 덕분에 - 특히 20대에 접어들며 에디 슬리먼(Hedi Slimane)과 그의 디올 옴므(Dior Homme)가 불러일으켰던 스키니(Skinny) 열풍 덕분에 나는 더 이상의 젓가락이 아니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남성상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지금에 있어서도 그 시절의 디올 옴므를 비롯해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발렌시아가(Balenciaga) 덕분에, 나는 여전히 '아재향이 폴폴나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아니한, 굳이 나이를 발설하지 않으면 쉽게 눈치챌 수 없는 '패션에 많은 관심을 가진듯한 남성'으로서 일상을 보내오고 있다.

친한 관계에 있다면 종종 '커피와 밥값만 제공하면 된다'는 드립성 제안으로서 주변인들에게 가져다주는 호의, 나는 그렇게 그들이 되고픈 이상향을 듣고, 또 그들이 처한 재정적 상태를 고려한채로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를 자처하며,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패션을 통해 조금 더 특별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해오고 있다.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일상의 보상'과도 같은 굴레, 그렇게 나는 여전히 주제 넘고 분에 넘치게 하이패션과 럭셔리(Luxury)를 넘나들며, 전 세계 4개 도시 - 미국 뉴욕(New York)과 영국 런던(London), 프랑스 파리(Paris)와 이탈리아 밀란(Milan)에서 열리는 패션위크(Fashion Week) 속 디자이너들의 결과물을 하나하나 살피어보고, 또 여건이 된다면 주머니를 열고 또 카드를 꺼내어들어, 그들의 결과물을 - 주로 파리 패션위크(Paris Fashion Week) 속 디자이너들의 컬렉션(Collection)을 소구해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퍼스널 쇼퍼의 하루'를 보낼때면 늘상 하는 행위, 사실 상 평소 알고있는 상대방의 취향과 성향을 고려하여 단칼에 취향 저격을 해도 무방하지만, 굳이 상대방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가며 백화점을 오르내리고, 때에 따라서는 길거리의 편집 매장과 인터넷 속 쇼핑몰(Shoppingmall)을 오가는 까닭은, 여전히 '어디까지나 성과는 들인 노력에 대비하여 빛을 발하게 되어있다'는 나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학이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나만의 시각으로 '넌 이게 어울려'라는 무심한 말로서 툭-툭 건져낸 옷들은 생각보다 큰 빛을 발하지 못한채 그들의 옷장에서 숨을 죽이는 경우가 대다수고, 나아가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아'라는 말로서 환불이 되는 경우도 허다한 편이다보니, 나는 비록 결과는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시간과 한도 내에서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고, 예정된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며, 그렇게 '드디어 네게 맞는 옷을 찾아냈다'는 즐거움을 상대방에게 안겨주는 편이다.

그러한 나의 퍼스널 쇼퍼의 굴레와는 조금은 다른 나만의 일상, 어디까지나 나는 나의 옷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나의 일상의 비중을 차지할 옷을 고를때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에서 한 발 나아간, '같은 값이면 더 잘 만들어진 다홍치마'는 선험적 겪언으로서 쇼핑을 거듭하곤 한다.

우선적으로 전 세계의 컬렉션 - 특히 파리 패션위크를 살펴보며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가장 발빠르게 소개하는 파페치(Farfetch)를 비롯한 매치스(Matchesfashion), 브라운즈(Browns)와 센스(Ssense) 들을 살펴보며 '실제로는 이런 느낌이겠구나'를 나는 가늠한 후,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어떤 소재를 사용하였으며 어떤 디테일을 가했는지, 제조국은 어디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면 봉제처는 어디인지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어가며, 나는 그렇게 '굳이 까다로운 자세와 태도'로서 나만의 일상복, 나만의 패션을 차츰차츰 완성해오고 있다.

어디까지나 쉽게 다가온 사람은 쉽게 잊혀지고, 또 쉽게 쟁취한 사랑은 쉽게 떠나가는 법, 비단 패션 또한 예외가 아닌 관계로, 나는 '나만의 일상과 패션'을 보다 진중하게 추구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베풀며 조심스레 쌓아가는 나의 주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찾아온다면 나의 전부를 내어줘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상상과 유사한 맥락으로, 나는 그렇게 내가 가진 자원들 - 나의 주머니와 나의 시간을 허락하며, 그렇게 '조금 더 깊은 풍미의 패션'을 구가하고 그 행위를 이 곳에 기록해오고 있다.

나의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평소 좋은 생각들 - 보다 나은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서적과 음악들을 꾸준히 접하고, 또 보다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영화와 문구들을 꾸준히 되뇌이며, 나아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신있는 것'으로서 패션에 대한 좋은 생각들을 꾸준히 다듬어오고 있는 나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나는 나 자신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또 나의 주변 사람들을 더욱 건강하게 만둘어주기 위해 '더 나은 패션'을 구사할 수 있도록 변하지 않고, 또 지치지 않고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더하며 경주를 이어오고 있다.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것은 쉽게 지치고 작위적인 것은 쉽게 질리는 법, 흡사 '포르노(Porno)'에 가까웠던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발렌시아가(Balenciaga)에 앞서 그의 베트멍(Vetements)이 불과 몇 년 만에 성공에서 정체의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하였고, 호기롭게 헬무트 랭(Helmut Lang)의 부활을 도모하였던 후드 바이에어(Hood By Air)의 셰인 올리버(Shayne Oliver) 또한 불명예 퇴진에 가깝게 하우스를 떠나게 되었던 최근의 사례들을 생각해보고, 여전히 '현재 패션의 중심'으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이어나간다고는 하지만, 주관적으로 '과연 몇 년이나 그의 옷을 입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만들며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그의 오프화이트(OFF-WHITE)와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행보를 바라보며 나는,

보다 '질리지 않고 보다 깊은 풍미를 음미할 수 있는 패션'을 생각해보고, 그렇게 다시금 10년의 터울을 두고 마틴 마르지엘라에 빠지어들고 -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시절부터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로 이어지며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레플리카(Replica), 그 중심이라 할 수 있는 14번 라인 위주의 소비를 거듭하며, 디올 옴므를 시작으로 생 로랑(Saint Laurent), 이제는 셀린느(Celine)로서 변하지 않고 소구되고 있는 에디 슬리먼의 세계 또한 부분적으로 곁들이고, 아쉽게도 벨루티(Berluti)로 떠나간 디올 옴므의 마지막 생존자,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e)의 행보를 뒤늦게 주목하며 그의 디올 옴므를 약간씩 첨가해가며,

그렇게 나는 나의 주관으로서 '좋은 패션과 건강한 패션'을 곱씹어보고, 그 다음으로서 상대방의 취향과 성향을 고려하여, 적어도 나는 나의 주변인들에게 '그들을 고려한, 그들의 건강을 위한 패션'을 이야기하고 또 제안해오고 있다.

나아가 신체적으로서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이지 아니한 것, 어디까지나 보형물을 넣은 가슴을 가진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멋이 날 수 없는 사이즈와 옷가지들, 뿐만 아니라 그 위치만 다를 뿐, 엉덩이에 보형물을 가진 남성들에게도 알맞는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 사이즈로서 '자연스러운 핏(Fit)'이 형성될 수 없는 바지와 사이즈들을 나는 주관적인 경험으로서 체득하며, 나는 여전히 '부족해 보일지라도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선호와 취향'을 은은하게 드러내며, 굳이 인위적인 보완을 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오고, 나아가 굳이 수선을 가하지 않은 '제작자에 대한 일련의 존경'을 담아내며, 롤업(Roll-Up) 정도로서 그 변형을 최소화한 패션, 그 자연스러운 옷차림을 고수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46, 신장에 비해 조금은 작은 사이즈를 고수해오고 있는 나만의 성향, 그렇게 나는 '조금 더 건강한 음식과 생각'을 뒤늦게나마 거듭해오며, 지난 2018년의 죽음에 이를 뻔 했던 일상들을 다시금 괴롭지만 떠올려보고 또 가슴 속에 깊게 새기어가며, 그렇게 나는 나의 주관에 한해서 '건강한 패션'을 나 자신에게, 또 나의 주변에게 변함없이 주고 또 받아오는 듯 하다.

흡사 물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과 정반대의 20대라면 상상할 수 있는,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어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 있어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상대방에게 떠들기 바빴던, 그렇게 듣기 전에 말을 하고, 생각하기 전에 말을했던 '떠벌이'에 가까웠던 시절을 나는 뒤늦게 부끄러워 하고 또 그 시절의 부족함을 이제는 묵묵하게 고치고 또 개선해나가며, 그러한 개선책이자 미봉책의 일환으로서 나는 지금과도 같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사람들의 글을 읽고, 여건이 된다면 그들의 결과물들 - 새로운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옷, 혹은 지금과도 같이 서적들을 꾸준히 소비하고 또 소구해오고 있다.

이제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우선시되는, 그렇게 우선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건네어주고, 또 상대방과 생각이 충돌한다면 언제나 우선적으로 그 생각의 주체인 상대방을 존중하고, '네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로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거듭해오고 있다.

예전과도 같이 '이런 패션이 정말 좋은거야'라고 굳이 상대방을 불편하거나 부담스럽게 하지는 아니한, 그저 그러한 것들이 있다면 나는 우선적으로 이 공간에 나만의 취향과 성향을 조금 더 면밀하게 생각하고 또 기록해보고, 그 다음으로서 나는 '어울릴 누군가'에게 나만의 생각, 한결 정리된 논리정연한 생각과 태도로서 그러한 패션을 살며시 보여주고, 관심이 있다면 그 것을 건네어주거나 또 함께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더 이상 정해진 규칙이나 확고한 명제가 있지는 아니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 하나만을 명심한 채로, 나는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때면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서 그들의 패션, 하이패션에서부터 럭셔리, 혹은 스트릿(Street)과 클래식(Classic)을 이야기하고, 어디까지나 나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에 지식을 얹어내며 '이건 내 생각이니 네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대화와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일상복에 대한 단상'으로서 나는 박 세진 평론가의 생각을 흡수하고, 또 여기에 나의 경험 속에서 우려낸 일상의 패션화, 혹은 패션의 일상화를 지금과도 정리해보며 나는 다시금 새로운 이야깃거리 - 일상과 패션이라는 정리되지 않은 주제를 정립해보고, 다가오는 일상 속의 선후배, 혹은 동생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최근 이러한 서적을 읽고 이러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네'라는 가볍고도 심심한 논조로서, 나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나만의 패션을 그저 묵묵히, 하지만 꾸준히 형성하고 또 완성해나간다.

h****c 2019.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