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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보내는 시간, 축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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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지하철을 탔다. 살짝 갑갑함을 느낀다. 밀폐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찬 탓이다. 그래도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몸을 맞대고 있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오래 전 왕복 세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집과 학교를 오갔던 시절도 있다. 하필이면 출퇴근 시간대와 정확히 겹쳐서 뭇 사람들이 말하는 ‘지옥철’이 무언지를 체감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집과 회사가 가까워 더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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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지하철을 탔다. 살짝 갑갑함을 느낀다. 밀폐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찬 탓이다. 그래도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몸을 맞대고 있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오래 전 왕복 세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집과 학교를 오갔던 시절도 있다. 하필이면 출퇴근 시간대와 정확히 겹쳐서 뭇 사람들이 말하는 지옥철이 무언지를 체감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집과 회사가 가까워 더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두 시간 즈음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에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통근을 위한 시간은 근무 시간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르게는 새벽 다섯 시 혹은 그보다도 더 이른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더라도 집이 멀다면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일 정도로 여길 뿐이다. 통근의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스나 택시 등을 타기도 한다. 예전에 읽은 신문 기사에 따르면 천안 등지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오는 경우도 있다 했다. 하긴, 모 대학교의 광고 문구는 서울에서 가까운 충남 홍성에 있습니다였으니 말 다했다.

호주에서는 최근 들어 장거리 통근자들이 부쩍 증가한 모양새다. 저자는 비교적 먼 곳에서 직장으로의 출퇴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운명인데, 호주인들은 직장을 택한 대가로 긴 통근시간을 얻었다. 육체적인 피로야 당연한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저녁을 차리고,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이내 잠들어야 할 시각이 다가와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부모도 많았다. 수시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지만 밀려드는 죄책감을 떨쳐내기란 힘들었다. 고민 끝에 결국 직장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경우도 있었는데, 당장 끊긴 수입으로 인한 고충이 크게 느껴졌다.

운전을 하는 이들은 한 번 도로가 막히면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 끊임없이 시각을 확인하고, 자신이 과연 지각을 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다 보면 아침부터 머리가 아픈 게 당연했다. 너무 긴 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겪는 문제도 있었다. 밀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란 어찌나 어렵던지, 아찔한 교통사고를 겪은 후로 아예 통근의 방법을 바꾸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어플로 자신이 탑승할 버스가 어디 즈음 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호주에도 있었다. 하지만 버스는 참으로 성가신 존재여서, 이따금씩 탑승객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거나 엉뚱한 장소에 멈추어 서기도 했다. 이야기 중에는 시력에 약간의 문제를 지닌 이의 경험도 수록돼 있었다. 그는 구글 지도 등을 활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고, 옆 좌석 사람에게 자신이 내릴 곳이 다가오면 알려달라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걸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에겐 큰 스트레스인 걸로 느껴졌다.

지하철은 그럼 조금 사정이 나을까. 시간의 예측 부문에서만큼은 자가용이나 버스보다 나을지 모르겠지만, 만원 지하철을 한 번이라도 탑승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이러다가 누구 하나 압사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몰려올 정도로, 아침 시간의 지하철은 빈틈이 안 보인다.

모두가 바라지 않는 이와 같은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개인이 행할 수 있는 일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직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지만, 그게 가능한 이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고작 한두 푼의 비용으로는 집을 절대 못 구한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부모의 재력에 기대는 것은 기본이요, 금융권의 도움 또한 절실하다. 저자는 교통 기반시설의 건설을 언급했다. ‘여전히 기다림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내가 생각한 건 지역 경제 활성화였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이 전형적인 베드타운이 아니라면, 그래서 지역 사람들이 해당 지역 내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이는 특정 교통 수단을 확충하는 것보다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가능성을 묻는다면 꿀 먹는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가면서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는 정부지만, 아직까지는 그로부터 혜택을 보았다는 이들이, 적어도 내 주변엔 없는 걸 보면 그러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일을 하는 게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통근이 괴로움을 선사하는 무언가만은 아니었으면 싶다. 모두가 간절하게 취업을 희망했고, 통근할 수 있다는 건 취업에 성공했다는 걸 뜻하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저려온다. 난 비교적 직장까지의 거리도 가까운데 왜 이런 건지. 통근에 긴 시간이 걸리는 것만이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통근 자체가 축복이면서도 저주인 건 아닐까란 의심이 강하게 밀려오고 있다.

이달의 사락 q*****2 2019.10.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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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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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늦어도 7시 50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빠른 걸음이면 10분 안에 지하철역에 도착. 가능하면 8시 전에 지하철에 타야 한다. 출근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지만 다음 역은 환승역이니 그 때 한숨 돌릴 수 있다. 환승역에서 많은 이들이 하차하는 틈을 타 좌석을 차지하고 그 때부터 25분 정도 졸수 있다. 도착할 즈음이면 출구와 제일 가까운 끝량 쪽으로 이동한 후 문이 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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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늦어도 7시 50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빠른 걸음이면 10분 안에 지하철역에 도착. 가능하면 8시 전에 지하철에 타야 한다. 출근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지만 다음 역은 환승역이니 그 때 한숨 돌릴 수 있다. 환승역에서 많은 이들이 하차하는 틈을 타 좌석을 차지하고 그 때부터 25분 정도 졸수 있다. 도착할 즈음이면 출구와 제일 가까운 끝량 쪽으로 이동한 후 문이 열리면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직장까지 10분 정도의 막판 스퍼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이 좋아 5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아직도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내 머리를 깨울 아이스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이 가능하다.

 

   '통근하는 삶(데이비드 비셀 글, 박광형/전희진 옮김, 도서출판 앨피 펴냄)'을 읽다보니 내 통근 패턴이 떠올랐다. 작가는 호주의 지리학 교수로, 지리학자답게 통근이 어떻게 도시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다방면에 걸쳐 조사 연구했다. 책 속에서는 호주 인구의 1/4이 산다는 시드니의 통근 사례가 다수 등장한다.

통근은 어떻게 우리 정체성의 핵심을 관통하는 도시 생활의 사회적 조직 구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본문 p.20)

책 속에서 작가는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는 시간과 분, 모든 단어와 숫자, 기차역, 버스 노선, 택시 미터, 감시 카메라가 모두 얽혀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시간, 흐릿한 시간, 열등한 시간이고, 시계와 유사한 장치, 기타 알람을 확인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은 우리의 삶을 짜내고 있다. 도시는 시간을 측정하고, 자연으로부터 시간을 없애기 위해 세워졌다. 도시에는 끊임없는 카운트다운이 있다. (본문 p.139)

 

통근 공간은 그 공간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고 관리하려는 기관 및 행정 당국의 역할만큼이나 통근자 각자의 소용돌이와 흐름에 의해 형성된다. 통근 행위에 대한 수동적인 이해와는 다르게, 통근 공간은 통근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여정을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잠재력을 발휘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본문 p.223)

 

   잘 알지 못 하는 이국 도시의 낯선 풍경이 아닌, 매일 아침마다 서울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우리네 모습과 다른 게 없어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멀리 출퇴근하는 워킹맘에겐 이런 마음이 있구나, ‘강남 출퇴근 30분!’이라고 광고하는 신도시에 살지만 체감할 수 없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오랜 시간 교통수단에 갇혀있지만 다른 이들도 비슷할 테니 크게 억울해 하지 말자 등등.

 

   통근 시간이 인간 개개인과 유기적으로 얽혀있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마치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부분과 부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그 부분과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 따로 분할되어서는 존립이 불가능한 유기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통근 시간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자는 작가의 주장도 설득력 있어 뵌다. 흔히 통근 문제에 개입하는 역량은 지배 권력의 전유물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 권력의 처분 아래 수동적으로 있기보다는 매일매일 통근하는 삶 속에서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다양한 힘들의 분배에 우리 자신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이 거대 유기체의 작은 변화들이 새로운 가치의 창출로 이어질 날이 반드시 온다.

YES마니아 : 골드 t******s 2019.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