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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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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아이스크림 사이, 아시나요가 갑자기 먹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적 이동을 몸이 알고 반응하는 요구인 듯하다. 그렇다면 부름에 응해야겠지. ㅎㅎ   소설가 김형경을 아주 오래 전 교보문고에서 뵈었더랬다. 강단에 선 모습이 조금 쓸쓸해보였고 강연은 <오늘의 남자>와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동생이 사주는 화장품을 쓰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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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아이스크림 사이, 아시나요가 갑자기 먹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적 이동을 몸이 알고 반응하는 요구인 듯하다. 그렇다면 부름에 응해야겠지. ㅎㅎ

 

  소설가 김형경을 아주 오래 전 교보문고에서 뵈었더랬다. 강단에 선 모습이 조금 쓸쓸해보였고 강연은 오늘의 남자와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동생이 사주는 화장품을 쓰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나는, 성 정체성이 가끔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고 자유롭게 살면서 여성의 고충을 내 입으로 말해도 되는가 싶고, 여자 지인들이 성토하는 남자들의 별로인 생활 태도와 언어 습관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조용히 입을 다물곤 한다.

 

  그런 혼미한 위치와 상태에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건 한쪽 깜빡이등을 켜두고 언제라도 옆길로 빠질 준비를 하고 임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이성과의 연애와 결혼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느닷없이 남자를 공부해야했다. 내가 인생 파트너로 정한 상대와 무관하게, 살수록 남자에 대한 이해 없는 삶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애인과 남편이 아니더라도 남자 형제와 남자 친인척, 남자 상사와 지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기에 할 수 있는 한 배워야 한다.

 

  남자는 분명 여자와 다른 종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영역과 앎의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남자는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영영 모를 수밖에 없는 미지의 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형경 소설가는 프로이트에 대해,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융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전문가 수준으로 인간에 대해 두 심리학자의 이론을 토대로 풀어나간다. 그럴 때 솔직히 속 시원한 감보다는 일반 공식과 이론의 틀 밖으로 삐져나오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에 미심쩍은 염려가 싹트는 것도 사실이다. 안도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모른 채 덮어두는 것보다야 어떻게든 만져보고 관찰하며 오류를 다잡고 탐구하는 손길이 분명 의미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김형경의 정신 분석과 현상 풀이 작업을 특히 높이 평가하는 배후에는 이 같은 책이 미투 운동이 번지기 전에 이미 있었다는 점이다. 상냥한 감 없이 무뚝뚝하긴 하지만 선구적인 의식과 재빠른 대응을 글에서 맥 짚어볼 수 있다. 남자에 대한 합리화와 정설의 체계화가 아닌, 남자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이 빚은 허점과 무지를 현상학적 실체로 드러내며 같이 사는 세상의 균형을 살핀다.

 

  남자들의 경쟁 심리와 오이디푸스기의 애착관계, 원천적인 분노와 불안 심리, 나르시시즘과 합리화 그리고 정체성과 성의 밀접한 관련성, 중년의 위기와 외도 심리, 더 나아가 노년과 전체 삶을 조망할 때 대체로 동의하고 또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격하며 내 안의 생각과 가치를 마주하고 점검할 수 있었다. 단호하고 지면 관계상 싹둑 잘리거나 줄인 말이 불러일으키는 찝찝함이 없지 않지만 우리 삶 속으로 들어가, 한국사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증후와 현상을 해석하고 자기 말로 옮기는 용기와 명징한 목소리에 감사한 마음이 실은 더 크다.

 

  고백하건대 마흔에 근접하자 생식과 재생산력이 이전과 다른 강도로 삶을 조여 왔다. 생식기의 쓸모와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따르지 않는 어긋난 몸과 삶에 그만 삐끗했던 것이다. 가능성과 기회가 완전 소멸되기 전에 우선적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다급함이 몰려들었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농도의 허전함과 빈자리도 생겼었다.

 

  그리고 마흔 중반, 친밀함에 대한 생경한 굶주림이 돌연 생의 틈새를 파고들자 생의 에너지를 어디서 제대로 충전해야 할지 다시 골몰하게 된다. 예전과 사뭇 다른 체력과 몸의 후퇴, 생각의 기류 전환 앞에 멈춰 서 돌아보거나 멀리 내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생각보다 긴 중년의 위기를 치르며 나는 관대하고 유연한 어른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나의 고민이 사실은 당연하고, 개인 너머 사회의 문제와도 맞물려있어 혼돈스럽지만 나란히 걷는 동반자로 느껴져 좀 더 힘을 내게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   *   *

 

토론의 장에 뛰어들 때 남자들은 나르시시즘과 합리화의 갑옷을 입은 듯했다... 남자들은 여자의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언어를 질색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친밀한 관계 안에서 논리와 합리화를 전개할 때 귀를 막는다. (22-23)

 

가끔 우리 사회는 구강기 단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키스신에 대한 관심, 술과 음식에 대한 추구, ‘입으로 터는문화 등 구강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집중된다. 분노를 잘 다스릴 줄 모르고, 서로 불신하며 은밀한 비밀 문화를 만드는 일까지. (27)

 

우리 현대사에서 식민지, 전쟁, 가난 등 불행한 경험이 사회 구성원에게 떠안긴 격분, 박해감, 결핍감 등이 제대로 인식되고 보살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아픈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지 않도록 개인의 인식과 사회시스템이 함께 변화해야 할 것이다. (58-59)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면서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를 원한다... 부부나 연인들이 상대에게 원하는 것 중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대신 소화해달라는 요구가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를 원하는 여자도, 섹스가 잘 통하는 여자를 원하는 남자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편한 감정들을 상대방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상대가 자신의 스트레스나 불안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존재가 의미있다는 메시지를 주기를 원한다. (87)

 

가족은 무성화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딸에게 집착하는 아버지는 대체로 아내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딸을 아내의 대체물로 삼는 행위는, 비록 그것이 신체적 행위를 동반하지 않더라도, 정신적 근친상간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93)

 

심리학자들은 중년의 위기란 곧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장기에 만들어 가진 후 점검 없이 사용해온 생존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온다. 나이에 적합한 삶의 도구와 비전을 새롭게 확보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한다. (199)

 

인간은 생애기간 동안 네 번의 전환기를 맞으며, 그때마다 불안과 무력감 같은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그러한 위기의 순간마다 자기 정체성을 점검하고 삶의 방향을 모색하여 다음 단계 삶에 필요한 심리 기능을 확보한다. 그렇게 나이에 적합한 성인 발달단계를 잘 이행하면 마지막에 다음 세대를 지도하는 원숙함과 따뜻함의 시기에 도달한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206)

 

역경에서 수행한다.”

  어떤 이가 저 불가의 관용구를 삶의 비밀병기로 사용한다면서 내게 비전처럼 말해주었다. 그는 살다가 어려운 시기를 만나면 새로운 지혜와 역량이 필요하다는 뜻이라 여기면서 한동안 그릇을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고 했다.

  똑같은 논리가 사회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공동체 조직은 주기적으로 번영과 위기의 시기를 번갈아가며 맞이한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지혜와 근력을 키워 이전보다 안정되고 성숙한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207)

이달의 사락 s********d 2019.11.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