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언니 해언이 살해되었다. 사인은 외부 충격으로 인한 두부 손상. 권여선 작가의 소설 「레몬」은 그 언니 해언의 죽음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 한만우를 경찰이 취조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언니 해언의 죽음에 대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이 사건에 연루된 다섯 인물들의 이야기가 「레몬」에서 펼쳐진다. 아름다운 미모인 언니 해언과 다르게 평범한 외모의 똑똑한 동생 다언,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자 별명이 하안만우우우 로 불리우며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만우, 해언이 죽기 전 해언을 차에 태웠던 부유한 회계사 집안의 아들 신정준, 한만우가 또 다른 증인으로 지목한 해언의 친구 윤태림. 해언의 같은 반 친구이자 동생 다언과 함께 문예반 활동을 했던 상희 이 다섯 명은 해언의 죽음 이후 각자 방향을 잃고 살아간다. 도피 유학을 떠나듯 도망친 정준, 그리고 떠난 언니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다언과 엄마 등 어느 누구 하나 이 죽음 이후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난 다언을 통해 그들 모두가 뭔가를 잃어버렸음을 자각한다. 다언만이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쪽은 나일 수 있었다. 다언은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한만우의 증언을 믿어주지 않았고 오빠 한만우를 변호하는 동생 선우의 증언이 무시되었고 그 무서운 후폭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다섯 명 중 가장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행하면 불행한대로, 살아가면 살아지는 대로 순간 순간의 삶을 살아가는 이 가정을 통해 다언은 자신을 찾아간다. 어느 누가 봐도 박복한 인생이라고 불릴 만한 한만우. 하지만 그러함에도 끝까지 살아가는 한만우와 유학 생활 후 돌아와 사업상 거래처럼 결혼한 강준과 태림의 모습, 그리고 해언의 죽음과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현재 모습이 교차되며 저자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어떤 반전도 없이 운도 지지리도 없었던 한만우의 죽음을 통해 해언의 동생 다언은 언니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지지리 운도 없는 인생이건, 젊고 꽃다운 나이에 죽은 인생이건 생 그 자체로 의미를 찾아가는 이 소설의 여정은 아주 묵직한 울림을 준다. 어느 인생이건 의미 없는 인생은 없음을 이야기하며 이 순간을 살아낼 것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에 나는 울고 말았다. 때때로 친정 엄마가 내게 말하곤 한다. 시댁의 도움과 다정다감한 제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생에 비해 너무 힘들게만 살아가는 나를 보시며 너는 참 복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한없이 불쌍해지곤 했다. 하지만 내 인생도 내가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해준다. 살아 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라고 권한다. 결국 우리가 잃어버린 건,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우리의 삶이였다. 해언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살아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만우의 가족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우한 인생일지라도 그들은 살아있고 살아가야 함을. 그러하기에 그들의 방식대로 따스하고 향기롭게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강준과 태림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살아지니까 살아간다는 것처럼 방향을 잃고 서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한 가운데에서 더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그밖의 것은 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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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초반에는 시들했다. 책 표지는 튼튼했으나 크기는 작은 쪽이었고, 책장을 펼치자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활자판에 약간 속았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내용도 이제까지 이 작가에 대해 알고 있던 인상과는 다르게 시작하는 듯하여 이번에는 아닌가 하는 의아심도 들면서.
소설은 잘 읽힌다. 금방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금방 잊혀질 것 같지는 않다. 수월하게 읽히는 글들은 내 머릿속에서 이쪽저쪽으로 쌓여 모이며 층을 이뤄 나간다. 절반을 넘어 '신 2015'에 이르러 드디어 내가 작가에게 갖고 있던 매력을 되찾아냈다. 그래, 여기까지 오려고 앞쪽이 널널했구나. 이러려고 각자 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소설의 중심 소재 하나가 '죽음'이므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군가의 죽음은 그의 죽음 자체보다 남은 이들의 삶을 더 고민하게 만든다. 살고 죽는 게 자연의 이치라고 해도, 살아 남은 사람은 결국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도,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경우마다 다를 것이다. 강도도 시간도 영향까지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내가 큰 혼란을 겪은 적은 없다. 안타깝고 슬프기는 했으나 모두 예상된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었고, 일상이 흔들릴 만큼 타격을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내게는 훨씬 충격적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넋을 놓는 시간을 거쳐야 했을 만큼.
그렇다면 죽음에도 종류가 있고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일까.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어찌하여 어떤 죽음은 삶 자체를 뒤집어 놓는 것일까. 잘 살자고, 행복하게 살자고, 즐기면서 살자고, 죽음 앞에서 겸손해지자고, 이런 모든 말들은 허상인 것일까?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가는 바람이나 구름 같은 것일까? 보이는 듯 해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소설은 추리소설처럼 살짝 반짝이기도 한다. 나도 그 반짝이는 결을 따라 답을 좀 찾아 보려고 했으나 그만두었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이미 죽었다면,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들키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홀로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사람이 원래 그런 존재인 것이다. 잘난 척해도 살아야 하는 존재, 살아서 죽음 앞에 언젠가는 마주서야 하는 존재, 비겁하고 용기가 없어서 정신줄을 놓더라도 그것마저 감당해야 하는 존재. 나는 작가가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은 결말이 퍽 마음에 들었다.
분명하지 않은 결말에 만족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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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 고난이란 지위여하,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삶의 진통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 다언의 그것에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진통은 유난히 뜨거웠던 그 해 여름, “대 . 한 . 민 . 국”이라는 구호 외침과 다섯 번의 박수소리가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던 2002년 도심 공원의 둔치에서 싸늘히 식어버린 채 발견된 언니 해언의 시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둔기로 인한 두부 손상’ 열아홉 해언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문장은 국과수에서 보고한 사인이었다. 문예창작반 활동을 하며 유난히 시를 좋아했던 다언에겐 어쩐지 낯선 문장이었다. 빼어난 미모로 학교 안팎에서 관심받던 해언의 죽음은 주변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해언과 마지막으로 동행했다고 추정되는 학우 신정준은 세력가의 자제로 학교 내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인물이다. 그와 반대로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한쪽 다리는 저는 것도 같고, 어눌한 말투보다 더 어눌한 얼굴 때문일지 학교 내 왕따 자리를 맡아논 한만우는 해언이 죽기 직전 신정준의 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끈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용의선상에 올랐던 신정준과 한만우는 그럭저럭한 알리바이로 풀려나고 해언의 사건은 미해결로 종결된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상희는 우연히 다언을 마주친다. 물론 다언이 ‘상희 언니!’라고 알은 채를 하기 전까지 상희는 그 이름을 잊고 살았고, 오랜만에 마주친 다언을 어색해 했던 이유가 단지 해언의 사건 이후 다언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거나 혹은 그 이후로도 세월이란 단어를 붙일 만큼 긴 시간 동안 소식 한 번 듣지 못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변한 그녀는 그 옛날 문예창작반에서 시를 좋아하던 단짝 다언이 아니었다. 눈빛이, 말투가, 몸짓이, 하물며 성형으로 가능할까 싶을 만큼 죽은 해언과 닮아있는 그 외모마저도 상희를 당황케 했다. 권여선 작가의 신작 『레몬』은 죽은 자나 죽인 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죄와 징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 권여선은 삶의 진통도 죄에 대한 징벌도 각자의 몫으로 남겼다.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난이 없고, 진통도 없었다. 때문에 남은 자들의 진통은 배가 된지도 모른다. 상희와 만난 다언은 학창시절 상희가 쓴 시 <레몬과자를 파는 베티 번 씨>를 떠올린다. 언니 해언이 죽던 날 입었던, 마치 레몬 같았던 노란색 원피스, 다언이 끝끝내 복수를 다짐하며 발을 들였던 한만수의 집에서 먹던 반숙 달걀의 노란빛, 그리고 상희의 시에서 떠올렸던 레몬의 노란빛. 그러니까 복수에도 색이 있다면, 다언에게 그것은 레몬 빛 노랑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목적 없는 삶을 살았던 건 언니 해언을 잃은 다언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었던 상희가 그랬고, 뼈에도 암이 생긴다며 다리를 잘라야 했던 한만우가 그랬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득달같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신정준은 물론이고 목격 당시 한만우의 배달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해언을 목격한 이제는 신정준의 아내가 된 윤태림이 그랬다. 그들 모두가 길 잃은 양이었고 작가가 만든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신, 그들은 스스로의 몫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소설의 중간쯤 다언이 범인도 모른 채 복수를 결심하고 한만우의 집에 발을 들이는 장면이 있다. 그곳에서 다언은 한만우 그리고 그의 여동생과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 짓눌린 분위기, 습한 공기, 무겁지만 그 나름 뭉클했던 당시의 상황 묘사는 권여선의 신작 『레몬』에서뿐만 아니라 최근 읽었던 많은 소설들을 포함해서도 최고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한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의 삶이 아주 조금씩, 알게 모르게 파괴되어 가는 이야기는 결국 피해자와 피의자를 나누는 대신 먼저 떠나버린 그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프레임을 확장한다. 또한 개개인의 이야기로 프레임을 축소하기를 반복하는 한편, 작가 권여선은 최악의 상황이 자아낸 현실의 실체를 끄집어내며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덜 아프기를, 조금 더 견딜 만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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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님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많은 이유를 생각해서 써볼 수 있겠지만, 최초의 이유는 그저 담백하고 날카로운 문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 건조하여 바삭거리는 느낌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런 문체들이 마지막이거나 주요한 부분에서 서걱거리며 충격을 주는데 그 쾌감이 너무 좋다. 그런 느낌을 많이 선사해주는게 권여선 작가님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레몬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중에 그런 류에 속하기에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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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돼 있던 권여선 작가의 첫 단편을 읽었을 때의 강렬한 인상이 그후로 몇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종종 단편의 강자들은 장편에선 왠지 힘이 빠진달까, 뭔가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 소설 역시;; 세상 어디엔가는 복수(?)하기 위해 자기 삶을 통째로 내던지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흔히들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막장인 게 현실의 삶이라지만,,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하기 어려워서 소설 자체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일수도... 그래도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읽게 될 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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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누군가 봄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다." p92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고 한국팀의 계속된 선전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날, 폐막식인 6월 30일이 지난 7월 1일 오후 학교 인근 공원 화단에서 여고생 해언이 둔기로 머리를 가격 당해 살해된 채 발견었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월드컵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여고생 해언의 사망시각은 6월 30일 밤 10시에서 7월 1일 새벽 2시 사이로 추정되었다. 용의자는 신정준, 한만우로 떠올랐고, 이에 아이들은 범인이 신정준이나, 한만우이냐를 두고 두편으로 나뉜다. 이 사건으로 누군가는 유학을 가고, 누군가는 자퇴를 한다. 스스로 내린 결정인지, 학교 측의 종용인지 모르겠지만, 한편 해언의 동생 다언도 전학을 간다. 이제 학교에 그 사건과 관련있던 아이는 단 한명 뿐이었다. 윤태림.
과연 해언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왜 해언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이 소설은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로 205페이지 분량이다. 2002년 처음 연재된 <반바지> 부터 2019년 <사양>에 이르기까지 8편의 이야기를 별다른 설명없이 하나로 그려낸다. 8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그려내다 보니 장마다 화자가 바뀌지만 책은 다언과 한만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것에 중점을 두는 듯 하다.
▶ 소설 내용
소설은 다언이 만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의 한 부분을 상상하는것으로 시작된다. 2002년 만우는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에 관련하여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받는다. 조서실에 들어 온 형사는 맞은편에 앉아 상냥하지 않은 목소리로 진술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짚어가며 확인한다.
첫 진술에서 만우는 아르바이트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신정준의 차 조수석에 김해언이 타고 있는걸 봤다고 진술했다. 당시 만우는 김해언은 머리를 풀렀으며 옷은 나시에 반바지를 입었다고 했었다. 다시 확인하던 형사는 이 진술 내용에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두 장의 사진을 만우에게 보여준다. 사진 속 신정준의 차는 렉서스 RX300, 즉 suv차량이었다.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신정준의 차는 차체가 높아 배달용 스쿠터로는 절대 조수석에 앉아 있는 김해언이 반바지를 입었는지 긴바지를 입었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신정준의 차에 탄 김해언이를 본 게 아니고 차에 안탄 김해언이를 본 거야. 그러니까 반바지 입었다는 걸 아는거지. 신정준이 김해언이를 내려주는 걸 봤거나 아니면 그 후에 혼자 걸어가는 김해언이를 봤거나, 어쨌든 너는 차에 안 탄 김해언이를 봤어. 얘기가 그렇게 되면 김해언이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신정준이 아니라 바로 너. 한만우가 되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P19
형사의 말은 만우가 목격자에서 용의자가 되는 순간 이었다. 형사의 말에 망설이던 만우는 조서실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끄집어낸다. 그 이름은 윤태림, 태림은 해언과 같은 반 아이였다. "배달을 끝내고 돌아가던 중 태림이 손을 흔들어 급하다며 태워달라 말했고, 둘이 스쿠터를 타고 가던 중 태림이 정준이가 몰고다니는 (정준이)누나 차라며, 차 앞에 가서 서라고해서 차 앞에 세웠어요. 그러니까 태림이도 봤을지 모른다고요."p26
만우의 말에 형사는 왜 첫 진술에서 태림에 대한 말은 안했는지 묻는다. 만우는 태림이가 스쿠터를 탔었다는 것을 싫어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았었다고 답한다. 용의 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였지만 태림을 언급함으로써 만우는 조서실에서 나오고, 사건은 미제로 남게된다.
"확신은 금물이지만, 시작은 무조건 그로부터 해야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오랜 상상 속 어둠에서 튀어나오는 첫 번째 범인의 손은 언제나 그의 손이었다.… 그는 왜 거짓 증언에 목숨을 걸었는가, 그것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는 커녕 유죄의 은폐를 증명하는 결과가 되는데도.." p96
시간이 흐른 뒤, 다언은 노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만우를 찾아간다. 만우는 첫눈에 다언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다언이 "김해언" 이름을 언급하니 그제서야 알아본다. 만우는 무릎암으로 수술을 받아 왼쪽 무릎을 절단한 상태였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만우와 다언, 다언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만우의 거짓 증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분이었다. 이후로도 다언은 만우의 집으로 향했다.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음에도 찾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우의 여동생 선우와도 만나게 된다.
"그때 그날 말이에요. 밤에 내가 자고 있긴 했는데요. 오빠가 열한시 반쯤 들어온 거 진짜 맞거든요. 꽈배기 사가지고요. (p137) … 그 동네 살 때요. 시장 모퉁이에 꽈배기 파는 집이 있었는데요. …내가 그 꽈배기를 디따 좋아하는데 그 집 꽈배기가 진짜 맛있거든요. 근데 거기가 열한시 반이 넘으면 문을 닫아요. 그래서 오빠가 그거 사려고 꼭 열한시에 치킨집에서 나와요. 사장 아저씨도 그거 알아서 오빠가 일하고 있으면 꽈배기 사러가야지, 그러고 그랬거든요. 그때 그 다음날 아침에 꽈배기가 여기 이렇게 딱 있었거든요. … 근데 형사 아저씨는 그 말 안믿었어요. 그런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대요." p138
만우가 약을 먹고 잠에 들자, 다언을 자신의 방으로 이끈 선우가 병맥주를 건네며 한 말이었다. 선우와 다언이 그 날을 이야기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 던 그해 봄, 유학갔던 신정준은 한국으로 돌아와 윤태림과 결혼하여 딸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곧 그 딸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유괴되고, 만우는 육종이 폐 까지 전이되어 서른 살에 죽음을 맞이한다.
▶ 책에 대해서
1. 상희란 인물을 왜 등장하였을까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다. 처음 상희가 등장했을 때 언떤 키를 가지고 있나? 생각하며 상희란 인물도 빼놓지 않고 보려 집중했다. 그러나 상희란 인물의 등장 인물을 좀 처럼 알 수가 없었다. 태림과 연락하는지 묻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림의 연락처를 묻진 않는다. 태림에 관한 질문은 그 뿐이었다. 다언에게 있어 상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다언은 왜 만우를 만나기 전 상희를 찾아 태림을 물었던 걸까? 2 다언은 의미 없이 중얼 거렸다고 하지만, 복수의 주문은 왜 하필 레몬이었을까? 책은 제목 레몬처럼 노란 원피스, 계란 노른자 , 레몬 과자 등.. 노란색과 관련된 것들이 언급된다. 하지만 레몬은 특유의 상큼함을 지닌 반면 책은 상큼하게 해소될 만한 확신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확신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
3. 태림이 상담 전화 하는 부분은 왜 구태여 넣었을까? 너무 산만하고 시끄럽게 읽혔다. 다만 그 속에 해언의 죽음이 언급된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4. 표현에 있어 문제가 있어 보인 부분이다.
위 문장에서 보이는 '틀려요' 가 문제있어 보였다. 여기서는 '틀려요' 아니고 '달라요'가 맞는표현 같은데, 내가 틀린것인지,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 마무리
책은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주변인들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해언의 모는 혜은이란 이름에 집착하고 다언은 해언의 얼굴에 집착한다. 다언의 집착이 엄마로 인해 나온 것인지 다언 자신 안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우는 또 어떠한가. 열아홉에 살인 누명을 쓰고 경찰에겐 매를 맞고 이웃에겐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로 인해 학교로 부터 자퇴를 종용받는다.
"어떤 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 모르고 살아간다." p145
만우를 언급하니, 그의 별명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별명은 「한오백년」이다. 가요를 생각한다면 가요「한오백년」이 맞다. 만우는 군대에 가서 육종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다. 의병 전역을 한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난쟁이 엄마와 여동생을 위해 세탁 공장에 취직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서른 살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르이트를 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동생의 꽈배기를 잊지 않을 만큼 착한고 성실한 아이가 바로 만우다.
다언은 상희에게 묻는다. "언니는 신을 믿어요?"
때때로 신은 인간이 만든 허상은 아닐가 생각한 적이 있다. 정준과 만우 같은 사람들을 볼때면 때때로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확신을 내릴때도 있다. 누군가의 삶은 평온하고 누군가의 삶은 왜이리도 가혹한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삶을 결정 지어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태어나보니 삶은 결정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 레몬은 시원한 답이 내려지지 않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보게끔 하는 소설이다. 장마다 화자가 바뀌어 다소 연결이 매끄럽지 않게 읽히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벗어나지 않으니 누구나 읽기에 어렵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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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나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대강의 내용만알고 주문했는데 나같은 사람은 다소 실망할수있다 다언의 언니 해언이 도대체 왜? 어떻게 살해 당했는 지에 대한 초점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의 집중이 높다 그럼에도 다행히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복수 하는지도 나오긴한다 조사를 받던 한만우와 신정준 이라는 소설속 두 인물의 교차되는 환경 소위 있는집 자식인 신정준보다 없는집 자식 한만우가 더 의심받는 상황을 보며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럴수 있으리란 씁쓸함이 들었다 |
|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해 주셔서 읽게 된 작품입니다.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한 만큼 흡입력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여고생이 살해당하면서 시작되는데, 보통의 추리 소설처럼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서 용의자를 찾아가는 내용은 아닙니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다른 작품보다는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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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자식의 얼굴인데도 그날의 첫 대면에서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찬찬히 훑어보듯이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들을 어루만졌다. 첫 문단에 이 소설 전체를 요약한 문장이 있었음을 뒤늦게 캐치했다. 나는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이라 불렸던 그 사건에 얽힌 세부, 장면, 정황 들을 십육년 넘게 꼼꼼히 생각하고 쓰다듬고 세공해왔다. 그러다보니 머릿속에 각인된 그 상황들을 내가 직접 보거나 겪었던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착각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다. 상상도 실제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아니,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것에는 한계도 기한도 없다. p9 작가의 말을 보면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은 적이 있는' 삶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게 태어나서, 평화롭지 않게 살다가, 평온하지 않게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삼은 것일까.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다음날 미모의 여고생 해언은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날 이후로 동생 다언이 언니를 닮기 위해, 언니의 죽음을 알기 위해, 그리고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16년간의 과정들이 담겨있다.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시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들이 책을 읽는 쾌감을 더 증폭시켜 주어서 좋았다. 대전에서 야구 경기를 직관하고 4시간만 자고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 책상에서 김밥을 먹으며 이 책을 읽었고, 수원에 있는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탔던 버스에서 맺힌 땀을 연신 바지에 닦으며 이 책을 읽었다. <레몬>이라는 책의 표지를 보면 이 책을 읽었던 당시의 더위와 야구장의 모습이 기억에 같이 떠오를 것이다. 한 사람, 한 작가의 힘은 이처럼 특별한 기억을 창조해낸다. 내가 작가의 영향을 받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이렇게 또 한 명의 소설가 이름이 내 심장에 와서 박혔다. 기쁨이 보증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배송받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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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이 좋은 책 그리 길지 않기도 했지만 흡입력이 좋아서 잘 읽혔다. 처음에는 추리소설인가? 해서 더 집중해서 읽었다. 읽을 수록 아리송하긴 했지만 재미었다. 범인이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범인을 찾으려는 내용은 아닌 듯 했고 나도 궁금해하진 않았다. 물론 정확하게 알면 좋았겠지만 ㅎㅎㅎ 이 책은 삶과 죽음, 특히 죽음에 치중하여 쓴 책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결국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 같다. 선을 긋고 선 안과 밖 이런 의미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처럼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불가능한 생이다. 그러나 단 한번이라도 그 불가능한 삶이 존재했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라는게... 참 공감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