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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소녀는 시집 안 갈 것입니다. 시집 안 가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살 것입니다. 어엉, 엉!" 울던 계집아이는 부모의 품을 잃어버렸다. 금지옥엽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온갖 귀염을 받던 계집아이는 노비들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너른 감자밭에 감자를 캐는 신세가 되어있었다. 어린 슬안이 걱정스럽던 슬안의 아비는 죽마고우인 친우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맹세하지만 어린 슬안은 그날의 기억이 뜻하는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저 배곯고 아픈 시간들이 어서 지나가기를 견딜뿐이다.
그때 슬안의 정혼자 재림은 은밀히 소옥을 만나고 있었다. 어린날의 정혼이야 아버지들끼리의 약속이었고 굳이 그 약속에 재림이 끼어들 필요는 없다는 재림의 생각이었으나 인생살이가 재림의 뜻대로만 되는것은 아닌까닭에.. 어린 슬안이 부모를 잃고 혹시나 고생할까 걱정스럽던 이학로는 아들 재림에게 슬안의 동정을 살펴보라 이르고 재림은 이길이 끝나면 소옥과의 인연을 말씀드릴기회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찾아가서 지켜본 슬안의 행색은 목불인견이었다. 숙모라는 자의 몰염치와 뻔뻔함과 아내를 이기지못하는 숙부의 나약함은 슬안에게 공포만 안길뿐이었고 그런 슬안을 그 소굴에서 구해내기위해서라면 정혼자의 신분을 밝혀야만 했다.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박씨부인에게 슬안을 모든것을 내주마 약조를 하고서야 그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이학로의 집으로 향하게된다. 이제 슬안을 그곳에서 구해왔으니 이번에야말로 소옥과의 혼담을 넣으려던 재림은 새로이 간택된 중전이 소옥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기함을 하고.. 소옥이 중전이 된다. 처음으로 가진 연정이 가시가 되어 재림을 찌르고 반쯤 정신이 나간 재림은 중전의 가례일 소옥을 보고자 걸음을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일가가 사라질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였다. 정신을 놓고 앞으로 가는 재림을 규흠이 잡아채는데 간발의 차이로 위험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사랑에 속아버린 재림은 빗물을 핑계삼아 울 수 있었다.
어린 슬안이 재림과 혼인한지 벌써 일곱해가 지났다. 사랑에 깊이 상처입은 재림은 굳이 집안에 발을 두지않고 발길이 닿는대로 전국을 유랑하듯 다니며 어쩌다 한번씩 집에 들릴뿐이었고 슬안은 며느리라기보다는 딸로 김씨부인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재림이 돌아왔으나 슬안과는 여전히 오누이같은 사이일뿐 부부관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런 재림과 슬안을 보던 이학로는 드디어 벼르던 칼날을 뽑아든다. 재림이 끝까지 슬안에게서 후사를 보지않겠다면 슬안에게 소박을 놓겠다는 말에 슬안은 엎드려 빌어보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자상하던 이학로에게선 칼바람이 분다. 엎드려 울며 사정하는 슬안에게 차가운 부모에게서 더이상 버틸힘이 없던 재림은 슬안의 손목을 잡고 부부로 살겠다는 맹세를 하게된다. 시부모내외가 재림에게서 이런 답을 얻고자 그토록 냉담하게 굴었던것을 알지만 슬안은 며칠동안 자리보존을 하고 쉽사리 기운을 차리지못한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동안 슬안은 예전처럼 재림을 해바라기하지않을것을 결심하고 재림이 다가오는것을 밀어내려고 든다. 이대로 두면 슬안과 재림사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을 염려한 이학로내외는 재림과 슬안을 분가시키기로 하고...
방한칸짜리 초가집에 부리던 식솔들도 하나없이 단촐하게 살림을 나는 재림과 슬안 부엌일에 익숙하지않은 슬안이 한밥에서는 돌이 반 밥이 반... 새로하는 신접살림에 살림살이 서툰것은 그것대로 놓아두고 강아지에 고양이 병아리까지 새로운 식구들이며 재미를 붙여가는 슬안과 그런 슬안을 바라보는 재림의 눈에는 사랑이 들어가는데 불길한 어두운 그림자가 그들앞에 드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