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가 둘로 갈리어 서로에게 상처를 준지도 이미 50여년 전의 일이다. 반세기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은 어쩌면 우리를 무덤덤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 가끔씩 방송을 통해 접하는 흑백 영상은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 마냥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앓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한다. 수많은 이들이 전쟁 속에서 잃은 자신의 혈육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듯한 이 질서가 어쩌면 기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휴전’ 중인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 아픔이 단절된 지난 날의 것으로 머무르지 않기에, 전쟁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김원일의 소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소설은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 이념 대립이 고스란히 남긴 상처들을 작가는 결코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 화두는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말하게 만든다. 그에게 민족의 비극은 해야만 하는 너무도 많은 말들을 남긴 듯 싶다.
이 책에는 모두 5개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지만 결국에는 같은 하나의 점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잠시 눕는="" 풀="">이라는 짧은 소설 안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권력 앞에서 작아지고, 자본 앞에서 ‘낑’ 소리 하나 할 수 없는, 시우와 그의 가족들은 결국 우리 자신이 아닌가 싶다. 어처구니 없게도 받은 돈으로 조금은 나은 생활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감옥 한 켠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평 역시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닐까? 단 하나의 길만이 허락된 속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철저히 지배 질서에 복종한 소수만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고, 대다수는 시우처럼 불행 앞에 웃음지을 수 밖에 없었다. 보다 나은 앞날을 꿈꾸며 지난 70-80년대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게 바로 현실인 것이다.
<파라암>은 일종의 운명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수는 방탕 기질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절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제어되지 않는 욕구만이 가득했다. 봉녀는 지난 날 점례가 그러했듯 자신의 아이를 잊음으로써 전혀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봉녀가 낳은 아이 역시 지수와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읽는 이는 생각하게 된다. 타고나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방탕끼’라는 소재는 우리로 하여금 ‘그 엄마에 그 자식이지’ 라는 식의 체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 소재를 조금만 변형시켜보면 어떨까. 끝없이 되풀이되는 가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는, 결코 우리로선 선택할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인 것이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 속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아픔을 맛볼 수 있다. 그들은 현 사회 속에서 결코 펼칠 수 없는 꿈을 ‘새’를 통해 실현하려 든다.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비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아들의 모습은 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한반도의 이념적 대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지만, 그 똑똑함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모든 꿈을 저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좌절 대신 선택한 것은 새였지만, 그 새를 잡는 것 역시 자신의 아들, 형제였다. 다른 이념 앞에서는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경직성, 그 비극성이 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했던 <환멸을 찾아서="">까지. 작가는 전쟁은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희망을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병들게 했음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병든 사회는 우리네 가슴 속에 하나의 작은 ‘감옥’을 형성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우리는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제재를 가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마음의 감옥="">을 통해 작가는 이 감옥을 깨뜨리고 있다. 금지된 빛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는 그 통로가 자유로 항한 출구처럼 환했다고 이야기한다. 금기에 대한 위배, 억압에 대항한 저항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불안, 초조가 아닌 벅찬 흥분일 수밖에 없었다.
김원일은 소설가이고, 그가 쓴 것은 분명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들에 담긴 비극성은 진실로 크기에, 우리는 그 비극성들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할 수가 없다. 읽는 내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언젠가 나는 이모로부터 전쟁 당시 동생을 엎고 가재도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피난 길에 올랐던 그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그 이야기들은 지독히도 먼 곳에 위치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못해, 결코 있을 수 없을 법한 허구로 느껴졌었다. 소설을 읽으며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고, 현실을 들으며 이건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하는, 어쩌면 이와 같은 내 태도 역시도 우리 사회이기에 가능한 하나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마음의>환멸을>도요새에>파라암>잠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