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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노래로 그 과거의 영화와 기백을 빚어내기도 했던 고대 정치 단위 "발해"는 아직도 역사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가 하면, 제법 많은 대목들이 생생한 유적과 함께 벌써 해명되기도 했습니다. 기록의 미비로 알 수 없는 사항을 아쉬워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후손된 도리로서 이미 규명된 역사적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발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고, 다양한 이민족들이나 정치 단위들과 대치했었기 때문에 각종 정치외교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교통 수단이 개발되어야만 했습니다. 5개의 큰 "길"은 발해가 처한 미묘한 외교적 스탠스를 잘 보여주는데요. 우선 학자들마다 설이 갈리기는 해도 동쪽의 일본으로 통하는 길은 첫째 동경용원부에서 출발하는 경로, 둘째 성진(지금 북한식 명칭으로는 김책시)을 기점으로 삼는 경로 등이 있었습니다. 동경용원부는 지금의 "훈춘"입니다. 이 책은 정확한 지도를 여럿 독자에게 제시하지만, 간혹 어떤 책을 보면 일본으로 떠나는 기점을 남경남해부로 잘못 표시하기도 합니다. 남경남해부는 오히려 통일신라로 향하는 외교 사절이 준비를 차리던 거점이었습니다. 남경남해부가 정확히 어디 위치했는지는 아직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함흥설과 북청설이 대립합니다.
신라도 통일 후에 5소경(小京)을 두었는데 영토가 넓고 원 수도가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발해는 처음 동모산 인근에 수도를 비정했으나 이후 중경 현덕부로 옮겼고, 가장 오랜 동안 수도로 기능했던 상경 용천부로 다시 옮깁니다(도중에 잠시 동경 용원부에 두기도 합니다). 서경 압록부는 당나라에의 조공 루트 기점이었다고 하는데, 발해가 당나라와 그토록 잦은 충돌을 빚었으면서도 많은 경우 외교적 타협을 이뤘던 흔적이기도 합니다. 조공은 오늘날 우리가 오해하는 개념과는 좀 달라서, 대국이 소국의 존중을 받을 만큼 국력이 넉넉지 않은 경우 이런 의례를 따라 주는 정성에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합니다. 외교 문서 속에는 당나라가 신라에 대해 이런 감사를 여러 번 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장령영주도의 경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고증이 이뤄진 대목이었습니다. 보통 5도의 이름을 간략하게만 표시하고 마는데, 이 책은 압록조공도, 장령영주도, 용원일본도, 부여거란도, 남해신라도 등으로 다섯 글자씩 맞춰 정확히 알려 줍니다. 용원일본도인 이유는 앞에 적었듯 동경용원부에서 출발하기에 그렇습니다. 부여거란도가 이름인 이유도 "부여부"라는 곳이 거란도의 출발기점이라서고요. 장령영주도는 보통 "영주도"라고 간략하게만 부르는데, 도착점인 영주는 오늘날의 "조양"입니다. 돈화(발해의 첫 도읍)을 출발하여 "장령부"에서 중요한 절차를 거치는 길이기에 이름이 저리 붙었습니다.
발해는 이름을 진(震)으로도 쓰는데 우리 나라의 별명 중 하나가 "진단"이며, 일제 때에도 "진단 학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때의 "진"과 한자가 같습니다. 이뿐 아니라 궁예가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마하진단"의 약칭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한편 고대 삼한 이전의 정치 단위 이름이 "진"이었는데, 이것과 진한이라고 할 때의 "진"은 辰으로 쓰기에 글자가 서로 다릅니다. 한편, 여진족이라든가 동진국이라고 할 때의 진은 글자가 眞입니다. 우리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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