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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료의향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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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하는 종교철학적 이슈에서부터 심장사(心臟死)와 뇌사(腦死) 가운데 어느 것을 죽음으로 보아야 하는가, 연명치료와 안락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자살은 정당한가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관련한 이슈는 하나 둘이 아니다. 궁금한 것은 죽음 논의의 하위 범주들 가운데 어느 것이 죽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가, 이다. 나는 그것은 자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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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하는 종교철학적 이슈에서부터 심장사(心臟死)와 뇌사(腦死) 가운데 어느 것을 죽음으로 보아야 하는가, 연명치료와 안락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자살은 정당한가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관련한 이슈는 하나 둘이 아니다. 궁금한 것은 죽음 논의의 하위 범주들 가운데 어느 것이 죽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가, 이다. 나는 그것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신과 인간의 관계, 생의 의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두루 논하게 하는 철학적 주제이다.

 

자살과 관련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 니체이다. 죽음은 정신력이 약한 인간에게는 가장 두려운 사건이지만 강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을 충분히 강화하고 고양할 수 있는 기회로 본 니체는 인생에 대한 절망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이 보통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자살을 인생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자 최고의 힘의 표현으로 보았다. 자살 대신 자유죽음이라는 용어를 쓴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장 아메리와 함께 니체는 자살과 관련해 하나의 시사점을 준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인본주의적 종교에서 인간 삶의 목적을 자신의 힘을 최대한 달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미덕은 (신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다. 그런데 프롬은 인본주의적 종교의 가장 좋은 본보기로 초기불교와 기독교 신비주의를 들었다.(‘죽음, 삶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262 페이지) 기독교가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은 반인본주의적 조치인데 기독교가 기독교 신비주의와 자살을 금하는 것에 하나의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죽음과 관련한 이슈 중 최근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전의료의향서란 것이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어떤 연명시술과 통증관리 서비스를 받을 것인지 간단하게 양식으로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의 한 특징은 전통 사회에 비해 갑작스런 죽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이나 뇌사 상태에 빠지는 것도 흔하고 알츠하이머 등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사례도 흔하다.

 

사전의료의향서에 기록되는 것의 하나인 연명치료 서비스의 종류에 안락사도 포함되는지 궁금하다. 아니 나는 안락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락사가 배제되면 환자나 가족에게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무의미한 연명 서비스는 환자와 가족에게 고통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함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헌법상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지만 안락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일을 실행한 의사들이 재판에 회부된 예는 한 건도 없다고 한다.(셔윈 눌랜드 지음‘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232 페이지)

 

물론 안락사 서비스는 일정한 원칙과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집행된다. 나는“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모든 쟁점이 그렇듯 안락사나 자살 문제 역시 하나의 답이 나올 수 없다.”는 눌랜드의 견해에 공감한다. 죽음의 의사(Dr Death)로 불리는 잭 케보키언이 지난 해 타계했다. 적어도 130명의 환자의 자살을 도운 의사인 그에게 가해진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 130명 중 60%에 이르는 환자들이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아니며 적어도 13명이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안락사에는 그 자체가 옳으냐 아니냐 말고도 케보키언의 예에서 보듯 논란 거리가 더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케보키언과 같은 행동을 예상해 반대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들의 반대가 자살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는 더 나은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맞이해야 한다는 댄 모하임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 시대가 웰빙을 넘어(?) 웰 다잉을 이야기하는 시대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죽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절실하고 삶의 질이 열악한 세상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

 

외과 의사 폴린 첸은 의사들이 임종 환자를 보살피는 방식이 바뀔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가망 없는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모든 시도가 비참하게 실패한 원인을 이렇게 제시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차마 비관적인 말을 하지 못하고 가급적 희망을 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고, 현재 의료계에 전문 분야가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 가망 없는 환자들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서로 미루어지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치료의 지속이 일부 의사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주기 때문이지만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망 없는 연명치료를 한다는 지적이다.(‘나도 이별이 서툴다’96 페이지) 2007년에 나온 책에서 거론된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나는 잘 모른다.

 

‘더 나은 죽음’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왜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health care directive)를 준비하지 않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사전의료의향서에는 유산(遺産) 문제, 장기기증 여부, 장례방식, 임종 장소, 최후의 메시지 등이 기재된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쓰는 것은 유종지미 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준비에 있어서의 대칭의 의미가 있다. 응급의학과와 내과학 전문의인 저자 댄 모하임은 19년째 보건정책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메릴랜드 주 하원 다수당의 원내 부대표이다. 그가 사전의료의향서 논의를 끌어내 유용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보건정책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주(洲) 하원의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달의 사락 m******1 2012.09.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