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할까요? 대부분 서평을 쓰는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죠. 서평을 잘 쓰면 독자들도 그만큼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서평 덕에 그만큼의 책도 많이 팔릴 수도 있을 것이고요. 책을 쓰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요즘은 좋은 서평을 쓰는 '리뷰어'들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미화의 서평집 <독과 도>는 그에 따른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너 권의 책들을 한데 묶어서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구슬 서 말을 꿴 보배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염소를 키우며 산다는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이겠고요. 그녀의 리뷰는 단순한 서평이 아니라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황상은 육유 시의 대가였다. 육유는 남송 때 시인으로 만 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 황상은 한 땀 한 땀 꼼꼼한 수를 놓듯 빈틈없이 육유의 시를 초서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로써 조선후기 대가 반열에 올랐다. 황상의 시 공부 방식은 한 자 한 자 깨알같이 베껴 쓰는 초서 작업과 파뿌리 캐듯 근원까지 훑는 다산의 치밀한 공부 방식을 따른 것이다. 깐깐한 스승은 포기를 몰랐다.(53쪽)
그녀가 그와 같은 리뷰의 방식을 채택한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른바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나오는 초서(鈔書)에 있었던 것이지요. 초서란 흔히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리는 걸 뜻한다고 해요. 다산은 그걸 두 아들과 둘째 형님인 정약전과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쓴 서평집도 그와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세계화와 바이러스 섹스'라는 서평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세계화로 인한 공포는 단순히 경제적인 도미노 현상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질병이 확산되는 추세도 같다고 꼬집습니다. 그것을 추적하고 밝혀내기 위해 앤드류 니키포룩의 <대혼란>과 대니얼 맥스의 <살인단백질 이야기>란 책을 인용하여 리뷰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구제역과 대량 살처분도 실은 로마 교황청 산하의 장원과 농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새로운 정보라 할 수 있겠죠.
치킨 사업 번창은 A4 한 장 정도 공간에서 알만 낳다 죽는 닭 공장을 탄생시켰다. 육류 외식사업은 길이 2미터에 폭 60센티미터에서 새끼를 낳다 죽는 돼지공장을 만들었다. 소도 다르지 않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소는 더 이상 워낭을 목에 걸고 일하러 들로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태어난 축사에서 귀표를 달고 카길이 제공한 옥수수 사료를 먹다가 시장에 팔려나가거나 도축장으로 간다.(168쪽)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정확히 꼬집어 내는 리뷰라 할 수 있겠죠. '관계와 순환의 밥상'이란 제목의 리뷰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옛날의 소나 돼지가 낳은 똥과 오줌들은 밭에 진귀한 거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생산한 곡물과 과일과 채소는 시골 밥상에 곧잘 오르는 좋은 먹거리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들이 배설한 똥오줌은 모두 질병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그 모두가 공장식 축산과 관계된 일이라고 하죠.
그녀가 시골에 살고 있어서 대부분의 서평 목록이 농업이나 생태계와 연관돼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녀는 한미FTA와 대학교육, 경제성장, 삽질 한국 등 경제와 교육 분야를 비롯해, 문학과 영화도 넘나드는 리뷰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노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북한이 과연 노동권을 보장하는가? 부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나? 노동권과 인권을 묵살하고 당의 국가 경제권을 독점하고 전횡하는 체제가 북한이다. 따라서 노동권 회복을 주장하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권을 독점한 북한 체제는 대척점에 있다. 오히려 노조 탄압을 합법화한 기업과 정부 정책이야말로 노동 착취와 탄압을 일삼는 북한체제에 동조한다고 볼 수 있다.(24쪽)
어떻게 이토록 예리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다들 우리나라 노조를 북한의 빨갱이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현실인데 말이죠. 북한과 똑같은 주적 상대로 말이죠.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을 향해 명확한 선을 그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결코 종북 좌익 이념에 대입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오히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 착취와 탄압을 일삼고 있는 기업과 정부 정책이 실은 북한 체제와 다르지 않다고 일침을 놓죠.
'파란 여우'라는 닉네임으로 이미 온라인 서평계를 뒤흔들고 있는 윤미화씨. <깐깐한 독서본능>에서도 유감없는 리뷰집을 선보였던 그녀가, 이번의 <독과 도>를 통해서 다시금 실력발휘를 하고 있습니다. '초서 리뷰'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분들은 한번쯤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녀가 써 내려가는 서평은 단순한 리뷰를 넘어 작품 하나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시골서 염소를 키우는 일보다도 더 고된 일이겠죠.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세계를 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
|
# 다독으로 다져진 독서가의 글은 힘이 세다.
파란여우라는 닉으로 저자를 먼저 알았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5년간 천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때 쓴 아이디이다. 서평 중 86편을 모아 서평집 『깐깐한 독서본능』이 출간 되었다. 서평에서 독자를 가르치려는 부분이 없어 좋았다. 한가로운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듯 자연스러웠다. 소개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글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번에 나온 책, 『독과 도』에서는 서평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에세이의 느낌이 강했다. 『깐깐한 독서본능』에서는 책의 결을 살려, 책을 주목했다면, 『독과 도』에는 책을 매개로, 자이니치, 여성노동자, 자본주의, 스승, 멸종동물, 18세기의 시인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과 존재가 다시 보게 했다.
# 상처받은 이를 위한 '사랑과 응원의 열쇠'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와 기억과 관심이다. 영화 <두개의 문>을 통해 잊혀져갔던 용산 철거민과 경찰특공대 사이의 일들이 다시 사람들에게 기억되듯, 책을 읽다보면 경쟁과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뒤에 숨겨져있는 사회의 이면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억압과 차별과 편견과 서러움의 능선을 넘느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며 이 책을 썼다. ... 정말 우리가 한 때 오롯이 지녔던 꿈은 날 선 현실에 긁히고 찢어져서 영영 손쓸 수 없이 마모된 것일까. ... 누군가에게 이 책 속에 숨겨놓은 '사랑과 응원의 열쇠'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 숨겨진 책들의 재발견.
"13년 전 나는 전주를 지나고 있었고 내 앞에 나타난 풍경은 우연이었다. 처음 소 사진을 찍을 때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셔터를 눌렀다. 그 세월이 벌써 15년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 『소,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소를 찍던 저자에게 찍힌 소들은 일을 했고, 늙어서 죽은 소들이라고 한다. 논과 밭을 갈던 일하던 소에서, 스테이크와 소고기의 재료인 육우로 바뀌는 과정에서, 농촌의 풍경과 우리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했다. 외양간에 있는 쇠죽을 끓이는 모습을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는 일도, 기억하고 있는 이를 만나는 일도 어렵다.
늘 한결같아 보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든 일상의 풍경처럼, 많은 책들은 독자의 사람을 받지 못하면 절판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와 이별한다. 적지 않은 절판된 책들의 흔적을 읽으며,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먼저 읽은 저자의 글을 통해, 만나기 어려운 책의 모습을 떠올렸다.
쓸데없는 질문 같지만 독서는 질문과 답을 추출하는 행위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 없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한 책을 아무 질문 없이 덮는 일은 수동적 독서다. 따라서 독서행위가 능동적 태도로 바꿀 때 책은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서평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질문으로 지면을 채우지만 질문이 남긴 서평은 온전한 내 사유로 흡수할 수 있다.
질문이 많은 책이라 좋았다. 자꾸 저자의 글에서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고, 질문이 떠올랐다. 그 해답은 저자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함을 안다. 세상의 풍경들을 책을 통해 읽으며 질문한다. 스승은 사라졌고 멘토만 남은 시대, 세상을 변화시킬 마지막 남은 힘은 사람, 사람이 남긴 한 권의 책이라 믿는다. |
|
최근 읽은 두 권의 책에서 내가 확인한 사실은 서평 고수들도 적립금을 내건 인터넷 서점에 참여하면서 본격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에서 서윤영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500원의 적립금을 주는 인터넷 서점의 이벤트에 참여한 지 10년이 지났다는 말을 했고 이현우님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책값 좀 벌어보려고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나 역시 두 서평 고수와 비슷한 동기로 서평을 쓰기 시작해 이제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특정 주제에 따라 쓰는 글은 쉽게 쓸 수 없는 글임을 절감하고 있다.
서평은 특정 주제에 따라 쓰는 글과, 짧고 간단한 느낌을 위주로 쓰는 감상문의 중간 형태의 글이다. 오늘날 서평은 단순한 감상의 글이 아니다. 그것은 1960년대 이후 철학, 미학, 사회과학 등 인접 부문의 새로운 발전들을 흡수하면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학문으로 확대된 현대 문학 이론의 위상을 떠올리게 한다. 더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레이먼 셀던은 인접 영역의 이론들로 중무장한 문학비평을 보며 어떤 독자들은 순수성을 상실하는 것을 슬퍼할지 모르지만 진지한 독자라면 중요한 문학 이론가들이 제기한 보다 심오한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고 쓰는 2차 문서인 서평집에 대해 서평을 쓰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아니 서평집에 대해 서평을 쓸 때 동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감상문이 아닌 서평이라는 말에 이미 문학이나 사회과학 , 철학 이론들을 동원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로지르기식 독서에 근거한 서평을 쓰는 것이 순리라는 사실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현우님은 서평집에 대한 서평은 잘해야 군말이기 십상이라는 말을 했다.(‘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172 페이지) 이 말은 지난 달 있었던 조계종 스님들의 억대 도박 동영상 파문에 즈음해 근원으로 돌아가야 할 불교의 위상에 대한 글을 쓰려다 실패한 나에게는 아프게 들리기까지 한다.
물론 ‘독(毒)과 도(道)’는 제목부터 심상하지 않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엘리아데의 ‘성(聖)과 속(俗)’이 그런 것처럼. 저자 윤미화님은 파란 여우의 뻥 매거진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이기도 하다. 저자는 “억압과 차별과 편견과 서러움의 능선을 넘느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며” 책을 썼다는 말을 했다. 몽테스키외가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을 했지만 저자는 “소용돌이치는 만경창파 같은 세상에서 책 따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미화님은 그 치유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은 읽는 이의 공(功)이라는 말을 했다.
서평집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읽느라고 읽지만 출간되는 책의 극소수 밖에 읽지 못하는 현실에 유용한 간접 경험의 계기를 제공한다. 독과 도는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일까? 독(毒)은 팍팍하고 불의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말이고 도(道)는 삶의 깨우침 같은 진리를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독의 대표적인 사례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나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이고 도의 대표적인 사례는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과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리라. 그런데 저자는 치유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은 읽는 이의 공(功)이라는 말을 했지만 나는 나를 경책하는 글을 발견하는 것을 치유라고 생각한다.
가령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채록하며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53 페이지)는 구절이 그렇다. 앞으로는 서평이 아닌 쓰고 싶은 책을 쓰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는 이현우님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저자는 ‘김예슬 선언’을 이야기 하며 가난해도 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생활을 접은 후 통장에 몇 천원이 달그닥거리는 힘든 날을 보내기도 했고 어렵게 얻은 자유를 화폐의 구속과 바꿀 의향은 없었다는 말로 자신을 드러냈다. 개인사는 결국 재화의 마련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감이 없는 나는 대안 모색의 부담도 주지 않고 막막하게 하지도 않아 과학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고백을 대신하고 싶다.
나의 관점과 맥락이 다소 다르지만 저자는 대안 모색의 부담과 관련해 ”어느새 내가 아닌 타인의 희생은 슬프지만 금방 안도하고 조용히 발길을 돌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대신해서 희생할 야만인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나는 누구인가.“란 말을 했다.(99 페이지) 물론 나는 사회 불의에 분노하고 인간의 탐욕에 불편함을 느낀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보편적인 이웃이라고 말한 사람들과 거리가 멀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보편적인 이웃이란 불의를 보고 흥분하지만 공공의 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권력 행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저자의 독서 목록에 앤드류 니키포룩의 ‘대혼란’(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라는 부제를 가진)과 대니얼 맥스의 ‘살인단백질 이야기’ 등의 과학책이 주요하게 언급된 것을 보았다. 앤드류 니키포룩의 ‘대혼란’은 유전자 조작과 가축 전염병과 광우병이 지구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쓰러지게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특기할 것은 전통적 민간 요법으로 치료하던 구제역을 대량 살처분으로 처리하기 시작한 것은 교황의 주치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저자가 읽고 소개한 과학책들은 저자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들이다. 과학책들 뿐 아니라 생태나 환경, 자연을 다룬 책들 역시 그렇다.
반면 내가 과학적 안목과 사회성을 겸비해서 높이 살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 등의 책이다. 프리모 레비는 1940년대 초반 20대의 나이에 파시즘에 저항하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살아나온 인물이다. 주기율표에 숨겨진 정치와 역사, 과학 등의 진실을 밝힌 샘 킨의 ‘사라진 스푼’ 역시 주목할 만하다. 과학책은 그렇고 저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한 생태 및 환경, 자연 관련 책들은 나는 어떤 관련 책들을 읽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독과 도’에 소개된 저자들 중 가장 부럽고 존경스러운 분은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다. ”간소한 살림을 꾸리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농사를 짓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수영을 했다.“는 소로우는 드물게 영성과 비판의식을 겸비한 신비주의적 지성인이다. 소로우는 저자와 내가 공히 사표(師表)로 삼는 분이다. 그러나 차원이 다르다. 저자는 이미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고 나는 저자처럼 책을 좋아하고 시골에서 살지만 저자와 다르게 농사를 짓지 않는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옷을 꿰매 입고 양말을 기워 신는 저자의 삶이다. 나 역시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느라 애썼지만 저자가 그런 것처럼 생활에 밀착된 절약 습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물론 옷을 꿰매 입고 양말을 기워 신는 것이 목표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저자의 식습관이 궁금하다. 뇌와 위장의 연관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약하는 생활에는 당연히 절제하는 식사 습관도 포함되어야 옳다. 식사 절제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를 원활히 하기 위해 필요한 양식이다. 나는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쓰기도 어렵게 하는 과식을 애써 경계한다. ’독과 도‘를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저자의 몇몇 개인사가 이미지처럼 연결된다. 나에게 유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힘든 귀농을 결심한 저자의 소박함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저자가 시간과 돈이 남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저자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한다.. |
|
한마디로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복잡하다.
두 마디로 말하자면, 복잡하고 벅차다.
물론 위의 전제에는 '내게는'이라는 말이 당연히 들어 있다.
그러니까 <독과 도>는 내게는 복잡하고 벅찬 책이었던 셈이다.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외면했던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또렷하게 비춰주기 때문에 나는 읽는 내내 숨이 찼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있다면 저자가 그 내용들을 매우 쉽게 촤르르 풀어줬다는 것이지만 역시 주제 자체가 내겐 너무나도 벅찬 당신이었음은 변함 없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간 나의 독서행태가 얼마나 편협하고 얕았는지 반성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고, 그간 내가 얼마나 내 관심사 이외의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가....이대로 좋은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회 문제들을 정말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고 비교적 이해가 쉬운 책들을 인용하여 그 문제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 깎아놓은 밤처럼 반듯한 사람도 흐트러진 국수발이 될 때가 있다. 세태와 유행을 좇느라 본분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성배를 찾는 나침반처럼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일러주고 묻고 나아갈 때 외로움이 덜어진다. "
아마도 저것이 이 책에 대해 가장 잘 요약해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흐느적대는 우리에게 마냥 그렇게 가서만은 안 된다고, 바른 자세도 인생에 필요한 거라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독이는 책.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구부정했던 허리가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곧추 펴진 자세가 된 것을 보고 혼자 웃었다. 그래, 이런 자세 교정이 필요하지. 바른 자세가 건강한 척추를 유지시켜주니까. 인생이 흐느적거릴 때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고 싶은 책이 생겨서 반갑다. |
|
겉보기에는 서평집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
|
울자, 때로는 너와 나와 우리를 위해
비록 책 따위가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굴레를 끝내 어찌해주진 못할지라도 누군가에게 이 책 속에 숨겨놓은 '사랑과 응원의 열쇠'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꿈과 사랑이라는 게 아직 유효하다면 날개가 부러진 새들, 살면서 쓰러진 나무들, 살면서 넘어진 사람들, 살면서 허기진 영혼들에게 사랑의 안식일이 단 하루라도 허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SNS에서 화려한 수다로 하루를 연명하지만 공허함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책을 손에 들고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를 낚았음 좋겠다. (작가의 말, 중에서)
처음, <독과 도>를 만났을 때 평범한 인문 독서 감상기인 줄 알았다. 막상 펼쳐보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책을 오해할 뻔 했다.
독毒과 도道 '화폐지상주의'의 살고 있는 우리는 '꿈'이라는 단어 조차 잊고 지낸지 오래다. 모두에게 '꿈'을 꾸는 시절이 있었을텐데, 물질에 의해, 욕망에 의해, 사회에 만연한 '독'에 의해 우리는 판단력을 잃고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근간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걷다보면 희망이 찾아 올 것이라 이야기 하는, 그 '길'을 향해 안내하는 책이다
만삭의 임산부가 돈이 없어 성매매를 하고, 학업스트레스로 어머니를 죽이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작가님의 말처럼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모두가 누군가의 '상처'이다. <독과 도>에서는 취업, 환경, 예술, 사회 등 다양한 분야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고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성적에 목숨 거는 대학 "진리는 학생을 팔아 넘겼다.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겼다.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겼다. 나를 가슴 벅차게 했던 그 세 단어를 나 스스로 팔아 넘기면서, 그것들이 모두 침묵 속에 팔아 넘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_김예슬 선언
한국의 학생들은 모두 괴롭고, 바쁘다. 트랙의 경주마처럼 스펙을 쌓기위해 뛰고 또 뛴다. 경주마들은 반복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잘 걸린다고 한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5년을 공부하다 목숨을 끊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참 눈물나는 현실이다.
#낮은 태도, 작은 규모, 적은 소유
세상에 뒤쳐지는 것 같아 두려웠고 돈 없는 생활 역시 그랬다.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고독과 번민이 현실과 내면에서 동시에 분탕질을 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시골살이에서 얻을 것은 자연에의 경이와 자족이다. '낮은 태도와 작은 규모와 적은 소유'에 천천히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빈 저금 통장과 불투명한 미래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가득찬 통장과 보장된 미래는 어느새 우리의 도덕성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당신은 향기로운 꽃이에요.
사랑의 마음, 말이든 행동이든 바탕에 진심이 녹아 있지 않다면 상대방은 '마음의 생기'를 느끼기 어렵다. 즉,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향기 없는 조화처럼 불감증은 마음에 와닿지 못한다.
'마음의 생기'를 가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작은 진심하나에 감동하는 존재이거늘, 그 표현이 서툴렀던 것이다.
"여행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꿈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던 땅들이 마침내 눈과 코, 발바닥 앞에 벗겨질 때 그만큼의 감격과 함께 꼭 그만큼의 상실감이 따라온다. 꿈꾸던 고을 디딘 순간, 꿈이 하나 둘 가슴팍 어딘가에서 허무하게 빠져나간다. 처음부터 꿈 따위는 가고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일지도 모른다," _ 여행자의 독서
윤미화 작가님의 <독과 도>는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희망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서입니다. 소개된 책을 함께 읽는 즐거움과 '진정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스마트 폰을 꺼내든 당신, 오늘은 꼭 책을 읽어 보세요 :) 함께 울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