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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때 지구의 종말을 말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그저 한 점성가의 예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했고,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이러한 체제가 계속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아야 할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단 이야기다.
유토피아라는 게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 실험』은 문명이 붕괴된 종말 이후의 삶을 사는 실험을 실제로 했던 딜런 에번스의 고백이다. 직장과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 부지를 얻어 유토피아의 삶을 꿈꿨다. 자신의 계획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연구했던 학교와 연구 자료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게재했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혼자 가려고 했으나 아이가 있는 여자 친구를 알게 되어 그들이 살 지역과 가까운 곳에 기거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곳에 기거할 곳을 정했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상향을 꿈꾸는 애덤과 애그릭이 들어왔고 다르지만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들이 기거할 유르트를 짓고 식량을 자급자족하기로 했다. 딜런이 유토피아 실험 기간을 1년여로 정했지만, 점점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보다는 자신의 자리 직장과 집을 다 팔아버리고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실험이 끝나면 집도 없는 떠돌이가 될 운명이 불안했다.
몇 개월씩 다녀가는 참가자들과 어지러진 유르트 안,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실험은 저만치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우울증으로 이끌었다. 이 실험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공동체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으나 이 실험의 주체였던 딜런은 자꾸만 회의가 들었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은 소로처럼, 또는 몬태나주에 오두막을 지은 유나바머처럼 이 실험을 혼자 했다면 더 즐거웠을까? (중략) 예전에 코츠월드의 작은 시골집에 살 때 나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시간이, 몇 주씩이나 이어지기도 했던 그 나날이 그리워졌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독서를 하거나, 혼자 시골길을 오래오래 산책하곤 했다. 이제 나는 문명과 멀리 떨어져서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에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었다. (213~214페이지)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310~311페이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삶의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전히 진행중일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머니와 동생도 방문했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머니의 엄려스러운 눈빛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했던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험을 종료하기까지 많은 번민을 했지만, 종료를 결정하고 나서 그가 느꼈던 많은 생각들은 경험한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었으리라. 그가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했기에 이런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며 문명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자기 집의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꺼내놓았던 찻잔.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도 그가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거다. 그럼에도 딜런은 귀중한 것을 배웠다고 했다. 문명이 붕괴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봤기에 스스로 헤쳐갈 수 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유토피아의 현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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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인공지능 로봇을 연구하던 교수 딜린 에번스는 갑자기 문명의 붕괴 이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문명 붕괴 이후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실험을 하겠다며 교수직을 사직하고, 집을 팔아 버린다.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에서 감행한 이른바 ‘유토피아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그 처참한 실패의 기록이다.
사실, ‘유토피아 실험’이라는 이름부터가 잘못되었다. 그와 자원자들이 생각한 그 생활은 애당초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문명이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문명 이전으로 돌아갔을 때를 가정했다. 그런 상황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생활을 의미하며, 또한 모든 것이 없거나 부족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게 어떻게 유토피아가 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정신의 고양과 더불어 지금과 같이 악다구니 같은 문명이 아닌 새로운 문명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물론 착각이었다. 수천 년에 걸친 문명의 힘을 그들은 까마득히 무시했다. 그 실험을 하면서도 문명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거라 자위하기도 했다. 이유배반적인 실험이었던 셈이다.
거기에 이 실험의 기획자인 딜런 에번스의 개인적인 약점도 있었다. 이 실험 기획 자체의 무리한 점도 있었지만, 그는 유토피아 실험의 기획자일 뿐이지 실험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에 대해 정신적으로 가장 먼저 피폐해져 버린 인물이었다. 실패는 당연했다.
많은 유토피아 실험이 있어왔다. 가족 단위에서 공동체 실험,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이를테면,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 역시 유토피아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실험을 통해서 자족하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인류 전체로 확대시킬 만한 그런 성과를 낸 것은 정말로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런 실험에 집착한다. 현실의 누추함과 비정함, 인간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 언뜻 생각했을 때의 간단하고도 당연한 이상. 그 밖에도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위한 실험을 하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책은 그런 계획 중 하나의 실패의 기록이다. 가장 유명한 것도 아니고, 가장 큰 규모도 아니고, 오랫동안 지속했던 실험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실험을 수행했던 당사자의 기록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대부분 자신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자신에 대한 영향을 주로 얘기하고 있어 아쉽긴 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분석이 많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만일 모두가 글로벌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나 연필 한 자루라도 혼자 만드는 법에 골몰한다면 전체 시스템은 서서히 작동을 멈출 것이다. 우리 모두 생각만 많아져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상태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305쪽)
우리가 이 문명의 모든 것을 긍정하지 못하지만, 공동체의 일부만을 신경 쓰면서 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 공동체와 문명이 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이 문명의 위대한 점이다. 유토피아 실험은 그걸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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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모르는 체 일러주는 어떤 예고는 물론 직접적인 언질이나 귀띔도 없이 벌어지는 갑작스러운 일이야 말로 우리들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역사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삶이든 역사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예정된 것, 예상 가능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 통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금융분석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말하는 '블랙 스완'이 그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던 것들 대부분이 그처럼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았던,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던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딜런 에번스가 쓴 <유토피아 실험> 역시 자신의 내부에서 일었던 갑작스러운 생각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가늠케 한다. 영국의 한 대학 교수였던 저자는 2005년 멕시코에 갔다가 마야 문명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문득 마야의 붕괴와 현재 우리 지구가 봉착한 난관이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지금의 문명도 마야 문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저자는 현재의 문명이 파괴된 후의 삶을 준비하기에 앞서 준비 차원에서의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만에 하나 문명이 붕괴될 때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행동했다. 일종의 협업적 스토리텔링 내지 실생활 역할극을 펼친 셈이었다." (p.17)
딜런 에번스의 '유토피아 실험'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1년여의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도 파는 등 실험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실험에 동참할 지원자를 모집한다. 저자는 지원자들한테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모든 비용을 자신의 돈으로 감당한다.
"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돈으로 친구를 산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돈으로 친구를 산다니 상당히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괜찮은 거래도 아니었다. 자원자들은 내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실험실의 쥐, 그러니까 내 실험의 재료에 불과했다. 로봇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실험을 하는 나는 누구일까? 진정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갖고 노는 소시오패스일까? 더 깊이 생각할수록 혹시 후자일까봐 불안해졌다." (p.135)
저자는 런던 중심가에 사는 동생에게도 석유가 바닥났을 때를 대비하여 교통수단으로 쓸 말 한 마리를 사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농사라고는 '호기심으로 기른 대마초가 전부'였던 저자가 아마추어인 동료들과 함께 몽골식 이동주택인 유르트를 세우고 장작을 패고 밭을 갈고 물을 긷는 등 자급적 삶을 시작했으니 실패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철학박사이자 로봇공학자로 안정적인 삶을 살던 저자가 '지구 종말론'과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빠져 파국의 길로 들어섰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계획하고 실행한 엉뚱한 실험으로 인해 그는 결국 정신보건법에 의거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험이 끝나고도 내가 계속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실험이 진행되는 중에 정말로 문명이 붕괴될 테고, 그다음엔 그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일을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든 실험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2007년 봄이 되자 점점 줄어드는 자금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처음에는 약하게, 그다음부터는 점점 극심히 나를 괴롭혔다." (p.220)
'지구 종말론'은 잊을만하면 끝없이 우리 기억을 환기시키며 되살아나는 불사조의 음모론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수명이 있게 마련이고 지구 역시 예외일 리 없는 까닭에 가장 믿을 만한 신앙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시기는 특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지구 종말론'은 논리와 근거를 바꿔가며 우리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것이다.
"그거 아는가? 난 이 실험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깔보며 무시했던 귀중한 것들을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컨대 나는 결함 많은 사회 제도가 수백 년 동안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진화해온 산물임을 배웠다. 화장지부터 치약까지 우리의 삶을 조상들의 삶보다 훨씬 안락하게 만드는 사소한 기술적 진보들이 무수히 많음을 배웠다. 실험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스코틀랜드의 허허벌판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만도 아니다.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p.310)
삶이란 결국 경험의 총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에 건지는 건 경험에서 건져 올린 한 줌의 기억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쁘고 슬프고 힘들고 가볍고 하는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우리가 어떠한 일에 두려움 없이 뛰어든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를지라도 타고난 인내력으로 잘 견디기만 하면 된다는 걸 저자는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선택은 그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많이 배우거나 아니면 아무리 힘든 상황도 너끈히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을 키우거나.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자. 엉뚱한 일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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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꿈꿨다.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지금이 아닌 언제라도, 자신의 이상과 철학이 실현된 공간이 생기기를 바랐다(그리고 대부분 실패했다). <유토피아 실험>의 저자 딜런 에번스도 그중 하나다. 딜런 에번스는 1966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났다. 사우샘프턴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언어학을 공부한 뒤 2000년 런던 경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낸 뒤 바스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웨스트 잉글랜드 대학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구했다. 학자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던 그가 돌연 '유토피아 실험'에 뛰어든 건 2006년의 일이다. 경제 성장의 정체와 지구 온난화의 심각화, 다가오는 에너지 위기 등을 목도하던 딜런 에번스는 만에 하나 문명이 붕괴될 때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에번스는 실험을 위해 집을 내다 팔고 대학에서의 경력을 포기했다. 웹사이트에 '유토피아 실험 자원자 모집'이라는 제목의 공지를 올리고 사람들을 모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 수백 명이나 - 지원서를 보냈다. 연령은 18세에서 67세까지, 직업은 전직 영국 해병대원부터 퇴직 교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라피티 아티스트까지 다양했다. 마침내 시작된 유토피아 실험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인류 멸망 후를 가정한 실험인 만큼 인류 문명의 산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실험의 규칙이었다. 참가자들은 직접 농사를 짓고 동물을 도축해 먹을 것을 마련해야 했다. 화장지나 치약, 비누 같은 사소한 일상용품 또한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 했다. 병이 나거나 다치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참가자들은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문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자신들이 이미 익숙해진 문명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저자는 유토피아 실험을 끝내고 2008년 대학으로 돌아왔다. 저자의 실험을 보면서 <정글의 법칙>,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이런 TV 프로그램만 보아도 문명의 소중함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데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다니. 저자가 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저자가 용감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저자는 해봤고, 해봤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문제인지 누구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 수 있지 않았는가. 영국의 유력 언론 중 하나인 <가디언>은 저자를 "실험복을 입은 알랭 드 보통"이라고 평했다는데 그 평이 과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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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소설이었어?' 『유토피아 실험』은 첫 페이지부터 정신 병원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그것도 정신과에 입원한 환자 1인칭의 시점이 저자의 것이다. "이 책을 정신의학의 이름 없는 영웅인 전 세계의 정신과 간호사들에게 바친다"라는 헌정 문구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저자 딜런 에반스(Dylan Evans)가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구하며 닉 보스트롬과도 친구 사이인 과학자라는데 '왜 정신 병원에 있어?' 어찌 궁금하지 않으리. 어이없게도 소설이 아니었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고,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당했고, 아직도 회복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유토피아 실험"을 진행하며 깊어진 정신 질환과 이 실험으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자기 고백서였다. 저자는 강박증 환자의 읊조림처럼 수십 번이나 같은 자문을 한다. "내가 왜 멀쩡한 직장(대학교수)도 그만두고, 집도 팔아 버렸을까?" (책으로만 접하는 독자도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하는 저자의 한탄이 지겨워지는 데, 실로 그의 가까운 지인들은 넋두리를 들어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도 싶다). 실은 저자는 실험 초기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다 걷어 찰 수 있었다. 딜런 에반스는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붕괴 직전에 이르러 여러 생필품의 글로벌 공급망이 끊어지고 소수가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 온다고 확신했다. 고고학자 친구가 "네 유토피아 실험에 어떤 가설이 있어?"라고 묻자 딜런 에번스가 내민 쪽글은 그의 세계관을 요약한다.
사진출처: The Rotters 문명이 붕괴되어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자급자족 공동체를 미리 연습하자는 취지의 실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딜런 에반스를 포함 이 실험 지원자들은 문명의 혜택이 제로에 가까운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꿈꾸면서, 자급자족 채소가 부족하면 매주 대형 마트에서 사 오고 각종 이국적인 향신료를 선반에 늘어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특히 딜런 에반스는 공동체를 이끌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현격히 부족한 와중에 우울과 망상이라는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어 공동체의 구심은커녕 우울의 수렁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공동체에서 정기적으로 탈출함으로써 도리어 다시 이 공동체로 돌아갈 버틸 힘을 재충전한다. 예를 들어, 자급자족 공동체에서는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가 어려운데 딜런 에반스는 여자친구 핑계로 주말마다 온수, 전기 다 들어오는 오두막집에서 쉰다. 결과야 뻔하다. 실험의 창시자가 제 발로 정신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정도로 흔들리는데 18개월 예상한 프로젝트가 끝까지 순항할 리가 없다. 결국 딜런 에반스는 정신병원 입원을 핑계로 자연스레 이 실험에서 하차하였는데, 『유토피아 실험』 참가자 중 일부는 이후에도 남아 "피닉스(불사조) 실험"이라는 명칭으로 이 프로젝트를 더 지속했다고 한다.
"가디언(The Guardian)"지는 『유토피아 실험』을 두고 두 줄 평 하기를 "이 책의 진짜 줄거리는 망상과 우울이다. 에번스가 이 책으로 쓰는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동의한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 그동안 이 실험의 실패를 다른 참여자 탓으로 돌리던 자신을 성찰하며 고통스러워 보일 만큼 솔직히 자신의 자질 부족과 교만함을 인정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철학 박사 학위에 로봇 공학 전공에 제분야 학자들을 친구로 둔 딜런 에번스인 만큼 『유토피아 실험』을 읽다 보면, 고고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등에서 불러온 재미난 생각거리가 엮여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과연 망상이었을까? 망상 여부는 누가 규정할까? 규범적 공동체를 일탈해서 만드는 새로운 공동체는 또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다시 읽을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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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어려서부터 2천년이 지나면 엄청나게 문명이 발달해 하늘에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로봇이 우리 집에 상주하며 로봇으로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발달해 있을거라 생각했다. 차츰 무언가가 실현되나~? 싶은 이 시기에 본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했다는 <유토피아 실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책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까지 일었던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의 저자 딜런은 문명이 붕괴될 것이라 믿었고 문명 붕괴 이후의 삶에 대한 실험을 하겠다며 교수직을 내려놓고 집도 팔고 '유토피아 실험'을 강행하게 된다. 결과는 실패...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결과를 맞이한다. 완전한 문명 붕괴를 생각하고 시작한 유토피아 실험. 유토피아란 단어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완벽한 사회를 꿈꾸지만 그런 사회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함축하는데 딜런은 왜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넣어 실험을 시작했을까? 붕괴 후 자급자족 하는 생활이 유토피아와 무엇이 닮아 그렇게 타이틀을 정했을까 궁금했던 책이라 하겠다.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가지고 있다. 급속도로 성장한 후에 우리 인간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인간이 설 자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이 항상 존재하면서 문명의 발전은 인간들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문명이 하루아침에 붕괴될거라고 누가 예측하며 그에 대한 대비를 할까? 다시 '무'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이미 문명에 익숙한 이들이 붕괴 후 문명의 장점을 알아버린 상태라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가지 않았을까 한다. 본인이 만든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실험. 그래서 불러온 실패라는 결과... 이런 실험을 강행했다는 것 자체로도 대단하다 생각되는데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고 치료를 거친 저자가 실패를 담은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다니.. 그의 멘탈이 강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언젠가 이런 시기가 도래하겠지만.. 근 시일내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던 <유토피아 실험>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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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며 소설인 줄 알고 읽게 된 딜런 에번스 작가의 <유토피아 실험>이다. 어! 그런데 소설이 아니라 작가 딜런 에번스가 실제로 경험하고 실험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고?? 마치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이루어졌던 실험이라니 놀랍다. 그리고 조금은 무섭다. 딜런 에번스 교수는 2006년 문명 붕괴 이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실험하겠다며 유토피아 실험을 계획한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한 장소에서 실험자들을 모집해서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실험을 그들과 시작한다. 전기도 집도 옷도 식량도 없는 곳에서 그들은 스스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데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의 심리, 실험을 주최한 딜런 에번스 교수의 심리를 자세히 이야기 해 준다. 유토피아 실험을 통해 사람의 본성과 광기가 적나라가 드러나는 것을 보며 뭔가 씁슬하기도 무섭기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을 수 있을까? 결국 유토피아 실험은 딜런 에번스 교수의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중단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뭘까? 유토피아는 존재 할 수 있을까? 라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한 책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의 <유토피아 실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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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이책을 받아들고 난 그저 과학자가 실험실에 앉아서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주인공인 그런 책이라고 단정했다.그도 그럴것이 책 제목만으로 책표지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으리라...하지만 왜 그랬을까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묘하게 맞는것 같기도 한...그런 책이 나에게 왔다. 유토피아 실험!!이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것일까 읽기도전부터 궁금증을 증폭시킨다.유토피아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 유토피아에서 어떤 실험이 이루어질지....누구도 알수 없었던 희망고 절망이 교차되는 롤러코스터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책은 저자 딜런 에번스의 논픽션이다.우리가 실아가는 세상이 붕괴된 어느날 그 이후의 세상들을 가정하고 18개월동안 실제로 그 누구의 도움없이 자급자족이라는 네글자만이 존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보고자했던 저자에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릴적 한창 메스컴에서 아니..어느 장소 어느곳을 가더라도 지구멸망에 초점이 맞춰지는 시간들이 존재했었다.지금처럼 스마트폰도 핸드폰도 없는 그런 과거속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멸망에 열을 올리기도 미리 대처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책 또한 그런면에서 대단하리라.지금 지구는 어쩌면 책속 내용처럼 종교적으로도 다른 어떤 의미로서도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고통속에 불안과 함께 살고있다.예전에 존재하지 않던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였던 지진이 포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를 흔들어놓는가하면 남극과 북극에 얼음은 점점 녹아내려 곧 지구에 홍수가 일어나 물에 잠긴다는 말도 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곳곳 지구 어딘가에서 모두 느끼는 불안감이리라. 이런 불안감이 고조 되는 가운데 갖가지 대처 방안을 내어놓지만 그것이 타당한 이야기는 아직 완성 되지 않았으리라. 이런 상황속에 이책에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문맹이 붕괴된이후에 세상을 가정하고 지원자들을 모집했다.잘나가던 대학교수를 접고 집을 팔아서 경비를 마련한....모두가 반대하는 일들을 그는 하고자했다. 현대 기술이 전혀 없이도 수천년을 살았던 마야인처럼 자신에 생각들이 이루이질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그렇게 살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18개월이란 시간동안 스코틀랜드 북부 하일랜드의 허허벌판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의기양양했다.이루어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점은 하나하나 발견되기 시작하고 곧 무너지게 되는데... 이미 문맹에 물들어진그들이기에 습관처럼 살아온 편리함들이 그렇게 쉽게 벗어던질수 없는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둘씩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으로 결국에 그들은 실패를 하게된다
모든 일들은 직접접 부딪쳐보고 해봐얒야짐지만 알수 있는것일까 유토피아 실험을 시작할때만해도 저자는 자신만만했다.자신이 하고자하는 일들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직접 부딪치고 하기 시작한 실험에서 모든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것을 알게된다. 큰문제들부터 작은 문제들까지 그에 얽힌 복잡한 감정들을 이책에서는 가감없이 풀어내고자 하였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에 모든 연결과 단절...그리고 공동체에 지속한 가능성과 인간이 나타내고자하는 광기들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되묻는다.그리고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처럼 가능할것이라고 믿은 야심찬 일들이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며 깊은 골을 만들겓게되고 우울함이 쌓여가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내면을 소설보다 더 현실적이고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다 책속에서는 이런 파국과 실패를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와 파국만을 보여준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새로운 생각과 현실성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해야될 일들을 하고 만 저자에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현실들을 결과적으로 저자가 직접 해준것이 아닌가.개인적인 감정과 고립으로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속에 기발한 실험을 통한 새로운 시도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더 생각하고 이야기해야될 숙제를 남겨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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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북태기중에 접한 책이라 시작이 너무 늦었는데 세상에 시작부터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가 없다. 주제도 새롭다. 막연하게 #유토피아실험 이라 해서 이론적인 서술이 가득할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유토피아에 대한 실험을 감행하다니. 실험을 진행하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얘기다. 아니 그리고. #유토피아 가 #어디에도없는곳 이라는 뜻이라는거 나만 여직 몰랐던 것인가? #모르는게약이다 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맘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예측 가능한 이들의 삶은. 현재를 살기보다 미래를 걱정하면서 삶을 깎아먹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런 지식인들의 지식이 모여서 또 미래를 밝게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직 읽는 중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여타 다른 종류의 책들과 완전 새로운 주제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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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저자 : 딜런 에번스(나현영 역) 출판사 : 쌤앤파커스
"유토피아" 유토피아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제목만 놓고 봤을 때 유토피아에서 살고 싶어서 유토피아를 향해 주변 환경을 실험하는 책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어실험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한번 책을 손에 잡으니 쉽게 놓기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급자족 공동체 시험을 실패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현대 기술 없이 18개월 동안 실제로 자급자족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보려 했던, 그러나 결국에는 자기 파멸이라는 파국으로 끝나버렸던 조금은 씁쓸한 결말이 나오는 책이지만, 내용 자체는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책 내용을 읽다보면 굳이 지금 멸망이 닥친 것도 아닌데, 저자가 조금은 무리하면서까지 실험을 진행했는 지 의아함이 들기도 한다. 내가 지성과 철학을 갖춘 교수의 입장이라면 무리해서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겠지만..그래도 저자의 실험정신은 칭찬하고 싶다. 저자가 기획한 자급자족 공동체 실험은 실험 기간동안 생활하는 데 있어 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시켰고, 18개월이라고 정해놓은 시간을 채우기에도 벅차보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대리만족으로라도 행복했었을테지만 결말이 좋지 않다보니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 내용을 예상했을 때, 생각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었던 책이지만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각자가 생각했던 유토피아가 있을텐데, 이 책을 읽고나면 내가 생각했던 유토피아가 정말 유토피아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물질문명의 최첨단과 문명 붕괴 이후의 가상 세계 이후에 과연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을런지..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