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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워드 제어의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25주년 개정판이다. 지은이는 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주장한다. 그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현실을 구성하는 방법에 기초하며, 이 구성물은 바뀔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구성물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뿌리깊은 관점을 도움되는 관점으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발상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보는 분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즉, 시좌를 달리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충분히 볼 수 있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를 이 책에서는 '렌즈'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스스로 불편한 자리로 내려가 배우고 성장하며, 궁극적으로 자신과 다른 경험을 해 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회복적 정의란
일반적으로 어떤 갈등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당사자가 한자리에 모여 갈등의 영향과 대응방법을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존중함으로써 사과와 용서를 통해 화해할 수 있도록 하고, 가해자가 진정한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피해자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갈등해결 절차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더욱 공정하면서 견고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이상향이다.
40여년 전부터 제기된 이 개념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 해결, 직장 내 갈등(괴롭힘, 폭력, 따돌림) 해결과 같은 교육 및 사회생활 영역으로, 더 나아가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전쟁이나 정치적 갈등관계 이후의 사회통합과정의 지도이념에 이르기까지 확대돼간다.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 응보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응보적 렌즈 vs 회복적정의 렌즈
이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그가 말하는 카메라 렌즈다. 렌즈를 바꾸면 예컨대 광각렌즈를 끼우면 마치 물고기 눈처럼 넓게 보인다. 찍을 수 있는 각도가 달라진다. 각도와 배율 등 모든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렌즈와 같은 의미로 회복적정의 렌즈라는 말로 대처한다면... 이 렌즈의 정당성은 근거는 회복적 정의의 역사성과 성경이다. 근대적 법치주의는 성경을 들먹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응보적 렌즈와 대척에 서는 회복적 정의 렌즈,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법칙을 종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응보로 봤지만, 지은이는 이를 회복을 의미한 것으로 재해석한다. 바로 이점이 이 책의 핵심논지다.
형법의 구조물인 형사법이론은 '국가가 진정한 피해자'
지은이는 '사람이 진정한 피해자'로 바꿔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죄형법정주의, 응보적인 것들을 벌하는 구조는 그 전제가 1) 범죄는 본질적으로 법위반이다. 2) 사법이란 법 위반이 발생했을 때 규칙과 의도가 결과보다 우선시 되는 갈등과정을 통해, 3) 고통을 부과함으로써, 4) 정당한 응보가 이뤄질 수 있도록, 5) 유죄를 확정하는 것이다. 6) 국가가 진정한 피해자다 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이런 응보적 렌즈는 이론적으로 형법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를 보호하는 것이다. 법제도의 수호자는 국가여서 결국 진정한 피해자는 국가라는 것이 된다. 지은이가 말하는 회복적 정의 렌즈의 주장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 이외에는 존립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진정한 피해자로 구성된 이상, 가해자인 사람을 엄벌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인 사람을 보호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흘러가버린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관해 형법학자들은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회복주의를 주장하는 이들 마저,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이 책에서 살피는 내용은 사법적 패러다임(응보적 사법)과 정의의 뿌리와 표지(공동체사법, 언약법-성서적 대안, 피해자-가해자 화해 프로그램, 그리고 회복적 렌즈를 논거와 주장이다. 형법이론은 국가대신 사람이 진정한 피해자라는 사고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아주 흥미롭다.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도소가 범죄를 더 세련되기 만드는 학교란 말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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