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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힘
현대 중국을 이해할때 저우언라이를 놓고서는 근본을 알기 힘들 정도이다. 한자표기로 주은래 (周恩來)의 저우언라이는 27년간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총리를 지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만큼, 2인자로서의 초장기 집권이다. 더욱이 저우언라이가 1976년 1월 8일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국무원총리로서 존재했으니, 그의 숨은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다.
엄연히 말해서 그는 여러모로 최고의 외교 지략가였으며, 정치 혁명가 였다. 하지만 그는 번번히 으뜸의 자리에 맘을 두지 않았다. 사후의 순간에도 어떠한 정치적 유언도 남기지 않았으며, 슬하에 자식을 두지도 않았다. 많은 정치가들처럼 휘양찬란한 금은보화를 축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박함 자체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 흡사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떠올리게 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글로벌한 조직체계를 아우르는 모습이 저절로 존경심을 아우른다. 그에겐 사랑하는 조국이 있었으며, 굶주린 중국인들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평생엔 인민을 걱정하는 연민이 따랐고, 중국인들은 그 인간미를 떠올리는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의 실체는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에서 비롯되는데, 메스를 잡아야 할 쑨원이 썩은 청왕조를 뜯어 고치기 위한 칼을 잡은 것이다. '황제'라는 이름으로 2천년간 군림하던 반봉건적 왕조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몰락한 청왕조의 세력들은 북양군벌로 불리며, 만주라 일컫는 동북부일대를 비롯한 중국대륙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너졌지만, 여전히 군벌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중국은 90%가 넘는 대다수가 한족으로 이뤄져있고, 나머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뤄져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오랑캐라 일컫는 다양한 부족들에 의해 지배된 역사가 많다. 그래서 유독 중화사상이라 일컫는 배타적인 사상이 지배적이기도 하며, 동북공정과 같은 다른 국가에 대한 정통성 부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바로 이 현대판 춘추전국시대의 정치혁명가이다. 오늘날의 타이완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나눠지기전까지 중국은 국공합작과 4년의 내전이 이어진다. 장제스의 국민혁명군과 공산군의 합작으로 북양군벌을 향한 북벌전이 이뤄진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장제스는 공산당을 탄압한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다시 국공합작이 이뤄졌다가 일본의 패망이후 내전이 이어진 것이다.
이 중심에는 저우언라이가 있다. 그의 이름을 해석해보면, 은혜가 두루 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중국은 마우쩌둥( 毛澤東 )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져 있는데, 그의 정치적 멘토가 저우언라이이다. 그런데 중국은 공산당이 전부라고 할만큼, 세계최대의 단일 정당정치가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중국의 1인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갸름하기 힘들 정도로 국가주석 - 국무원 총리의 2원화된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 바탕에는 저우언라이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결코 1인자를 넘보지 않는 품격있는 2인자 인것이다. G2로서 군림하는 중국의 위상은 국가주석 - 국무원의 2톱 시스템으로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다. 즉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를 주관하는 역할에 국한한 국무총리와는 다른 위상이다. 중국은 전방위로 대외 외교를 펼친다. 중국 대륙의 사정을 자세히 알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거시적인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상당한 무게감을 준다.

매번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외교센터와는 다른 이면이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건국초기에는 상당한 진통을 안는다. 저우언라이가 초대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의 10년은 '문화대혁명'의 기간이다. 중국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오명을 남긴 기간이기도 하다. 2천만명의 기아를 발생시킨 참상등 그의 대약진 정책은 실패했고 ,이로 인해 중국은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마오쩌둥에 이어 국가주석에 오른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실정을 비판했다. 정치적 위태로움을 느낀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의 파괴,비판, 규탄, 투쟁, 숙청운동으로 반대파들을 우파로 내몰며 제거한 것이다.

왜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을 평생의 1인자로 받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반대파인 류사오치나 덩샤오핑과 사이가 안좋은것도 아니었다. 마오쩌둥은 지략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우직한 존재였다. 물과 불의 조화랄까? 그런데 책을 살펴보면, 어느정도의 실마리가 풀리는 면이다. 그는 마오쩌둥 이라는 상징적인 산과 덩샤오핑이라는 미래의 길을 이어주는 물 이었던 것이다. 즉 그가 생애에 펼쳤던 합리적인 외교전략은 이후 '개방정책'을 일컫는 덩샤오핑에게 바톤 터치 되는 면이다.

문화대혁명은 정치혼란기를 평정하고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수정자본주의를 이끄는 필요악으로 작용한 것이다. 더불어 장기간 집권에서 오는 마오쩌둥의 독단력을 부드럽게 아우르며, 덩샤오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것이다. 미래를 위한 어쩔수없는 희생이 따른 것이다. 중국이 가진 잠재력은 거대한 인구에서 비롯된다. 이를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덩 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이어져 경제발전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최근에 실험용 우주정거장 텐궁1호를 발사했고, 선저우 9호를 발사해 최첨단 기술강국으로 급부상했다. 쓰러지지 않을 초강대국 미국을 위협할 유일한 국가로 군림한것이다. 중국의 우주개발의 역사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강점은 풍부한 인적자원에 있다. 이 본바탕에는 1950년대부터 이뤄진 국가주도의 기술영재 유학프로그램에서 시작한다. 미국, 러시아등의 과학 선진국에 대거 유학보낸 인재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역동적인 기술개발을 이끄는 것이다.
경제특구가 주축된 중국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서도 세계의 공장들을 저렴한 입지제공으로 유치하고, 자국과의 합작투자를 통해 기술을 빠르게 중국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저우언라이와 마우쩌둥이 확립한 초기 정치체제의 확립의 결과이며, 국가주도의 막대한 인적 인프라 구축에 있는 것이다. 기술로 만든 강국의 이미지는 거대한 경제대국의 위상을 만들어 투자를 받는 국가에서 투자를 하는 국가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매번 막대한 예산을 집권기의 인프라구축에 집중시키는 우리가 배워가야 할 스마트한 전략인 것이다. 중국은 농촌과 도시의 소득격차가 3.2: 1정도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한 국가이다. 1980년대까지도 도시화율이 20%에 미치지 못했으며, 현재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치이다. 과거의 농촌지역이 고소득의 경쟁력 넘치는 도시로 변모하는 모습이다.
오늘날의 모태가 되는 경제발전계획의 혜택으로 편리해진 인프라를 누리고 있다. 이때 저우언라이나 덩샤오핑처럼 인적 자원 투자의 중요성을 실감한 이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국가경쟁력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과가 탁월한 외교전략가인 저우언라이의 머릿속에 나왔다는 점을 상기시키자면, 유연한 외교가 우리의 과제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오래된 사상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지배한다. 이는 결집했을때, 풍부한 인적자원과 함께 응집력을 발휘한다. 저우언라이는 '문화대혁명'의 기간을 어쩔수없는 단결력 결속의 기간으로 묵묵히 컨트롤해왔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오랜 인상은 '공안'이라 불리는 엄격한 사회통제 시스템에 있다. 인권국가를 자처하며 나약한 사회시스템을 가진체, 불안한 우리와는 다른 면모이다.
또한 정치체제에 있어서도 견제와 균형의 짜임새가 매끄럽다. 이는 1인자의 자리를 탐하지 않는 저우언
라이의 오래간 근간이기도 하다. 그가 서거한 지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정치철학은 중국인의 가슴속에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우리에겐 없는 사회전반의 컨트롤 마인드가 중국을 떠받치고 있으니, 중국인의 역량은 세계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제 위치를 차지할 여력을 주는 것이다. 외교정책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원칙은 '자국민의 보호'에 있는데, 한중간의 어업분쟁등을 보아도, 중국은 한목소리로 억치에 가깝다 할만큼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저우언라이의 청년시절의 중국은 열강에 굴복하는 나약한 모습의 중국이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모습의 저우언라이는 굴복하지 않아도 될 강력한 중국을 꿈꿨다. 외세에 짓밟히지 않는 강대국 중국에 대한 꿈의 실현은 이미 이뤄졌다. 그가 중국인의 '뿌리깊은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허우대좋은 중국이 이제는 우리의 광대한 역사까지 정복하려 하고 있다. 저우언라이처럼 '외유내강'으로 대한민국을 키워낼 멘토가 절실한 까닭이다.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의 일면을 다룬 『근대를 말하다』를 접하기도 전에 중국의 근현대사부터 살펴본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적으로 저변이 확대되어야 하고...그 출발점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아침에서 편찬하는 일련의 역사관련 저서들은 우리의 의식자체를 새롭고 뜨겁게 달궈줄 것이다. 풍전등화의 암울한 현실에서 타오르던 횃불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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