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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인 까닭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이다. 그 양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구원의 여부이다. 믿는 자는 구원 받는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차이 외에 양자 사이에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바로 죄에 대한 민감성이다. 믿는 자는 죄에 좀 더 민감하고, 믿지 않는 자는 죄에 덜 민감하다. 이것은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죄를 짓기 전에 하는 고민과 지은 후에 하는 후회와 회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에 대한 민감성은 곧 죄의 인식을 말한다. 믿는 자는 죄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믿는 자는 죄를 지었을 경우 단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지은 것으로 여긴다.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그저 자기 양심을 어기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 양자 간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는 죄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 심각성은 어느 정도로 인식하느냐의 차이이다.
'코람데오'
본서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기독교 경구를 시편 51편을 통해 살펴본다. 인간의 죄와 의에 대하여 루터의 '십자가 신학', '이신칭의'로 알아본다. 그의 시편 51편 강해를 죄와 회개, 그리고 참된 믿음을 가르친다. 본문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인간의 죄인됨과 의인됨, 그리고 정직성을 알아본다. 저자는 인간은 죄인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계시되어야 알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죄는 "아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하는 신앙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서면 의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인인 인간은 정직할 수 없기 때문에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을 때에만, 오직 은혜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다룬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고 징계하시는 의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임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루터에게 '코람데오'는 일차적으로 죄인인 인간을 뜻하고 그 코람데오 인간의 모습을 이신칭의의 진리로 해결하였다고 말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다룬다. 여기서, 죄의 뿌리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사죄를 약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으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죄와 의에 대하여 고민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인 인간은 자신이 짓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닫고, 죄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믿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죄를 짓고 아무리 후회하고 회개한들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인 까닭에 그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분께 회개해야만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십자가 달리심을 통한 인간의 죄 사함을 믿고 고백해야만 의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만 죄인됨에서 의인됨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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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유해무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이다. 우린 아주 쉽게 하나님 앞에서를 정직한 삶과 연결한다. 하지만 코람데오는 그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다. 저자는 하나님 앞에서를 세 가지로 구별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시편 51편의 고백처럼 태중에서부터 우린 죄인이다. 죄를 지을 생각조차 없었을 때부터 우린 죄인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과를 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을 말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다. 루터는 신자를 정의하기를,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나 ‘용서받은 죄인’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을 입은 의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말씀 앞에서’라는 말이다. 말씀이 우리의 발의 등이요, 우리 길의 빛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은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셔야한다. 동시에 우리는 의인으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선다. 다윗 기도처럼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할 때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건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이다. 말씀은 우리의 거울이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의 확인한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끝임 없이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믿음을 가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