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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에블린은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로 볼 수 있다. 서사가 없이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이야기 전개가 무척 빠르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심리에 대한 묘사보다는 가벼운 연애감정처럼 가벼움이 느껴지는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이런 가벼움이 오히려 현실성 있게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 전, 시대의 무거움은 전혀 없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회와 일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문학적인 서사만 가득한 소설은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실생활과는 많이 동떨어져 거리감이 든다. 그러나, 현실에 직면한 먹고 사는 문제와 대화는 늘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들과 맞닿아있어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이 소설은 그 어떤 문학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독일문학을 보면 우리나라 문학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같은 공통점 , 분단의 아픔을 가져서인지 독일 문학은 동지적 연대감이 들 때가 많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통일 전으로 동독의 독재정치와 공산주의 체계에 반발하여 100만명이상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하였을 때이다. 이와같이 대규모 이탈자들의 증가는 동독 사회의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었다.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20대의 젊은층으로 서독에서 자유를 꿈꾸었다. 《아담과 에블린》은 겉으로는 연애소설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유를 찾아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
아담은 동독에서 ‘맞춤재단사’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푸라기처럼 현금이 넘쳐나는 이유는 그가 여자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지어주는 동시에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옷으로 아름다워진 여자와의 행위를 향유한다. ( 아담의 입장에서는 예술이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볼 때는 바람둥이에 한낱 카사노바에 불과해 보이지않지만) 이런 향락이 아담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에블린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아담은 자신이 재단하여 완성하는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이 많은 듯 하다. 자신을 때로는 하나님의 첫 창조물인 아담으로 착각하여 하와의 옷을 만들어준다는 착각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예술가의 천재성에 따라오는 괴팍함이 아담에게도 보여진다. 그런 탁월한 재단실력을 겸비한 탓인지 아담은 공산주의 체제라 해도 재단사라는 안정된 직업으로 인해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에블린은 백수인데다 동독의 관료주의적 통제에 갑갑함을 느껴 하루라도 빨리 서독으로 가서 대학에 다니는 것이 꿈이다. 떠나고 싶지 않은 아담은 늘 핑계를 대며 밍기적거리지만..........어느 날, 아담이 바람 피는 것을 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들과 서독으로 떠난 에블린을 뒤따라 자신의 애마 ‘하인리히’를 타고 따라가게 되는데, (아담은 자동차조차도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덩치와 안 어울리게 거북이 엘피를 키우는데 엘피조차도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아담은 낭만주의자에 낙천주의자인게 분명하다. 그리고 서독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여자 카탸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정도 많은 것 같다. 비자가 없는 카탸가 서독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댓가든 치르겠다고 하며 아담을 유혹하는 말을 하지만, 아담은 오히려 돈까지 빌려주며 사랑하는 에블린을 만나러 가는 중이라며 아무 조건 없이 카탸와 동행해준다. 카탸는 점잖고 엉뚱하고 자유로운 성격인 아담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이 친구와 떠난 에블린은 아담이 준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주는 미하엘과 사랑에 빠지고, 미하엘과 아담, 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아담이 보여주는 사랑에 마음이 움직이고, 에블린은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 결혼을 서두르게 되는데,
그러나, 동독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았던 아담에게 서독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다. 낭만주의, 낙천주의 성격의 아담에게는 자본주의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자동차 '하인리히'를 팔아야 할 정도로 생활의 곤궁함을 느낀다. 게다가, 그의 예술적 기질은 나태하고 무능함으로 치부되어 아담을 더욱 피폐케 한다. 에블린은 대학에 다니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이렇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는 삶에 대한 자세의 차이인 것 같다. 아담은 살아가는 것만 알았지, 자신에게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를 예상하지 못했고, 아담보다는 한참 어린 에블린은 살아내는 것만 알았지, 아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아담과 에블린의 동상이몽은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사랑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에블린이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아담인지 미하엘인지 모르겠다고 할 때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못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와 자유주의 체제속의 개인과 사회와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동독아담과 서독의 에블린의 동상이몽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 소설이다.
(첨하자면, 그의 목젖은 마치동물처럼 이리저리 도망을 가다가도 이내 다음 순간에는 언제나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모티브는 최초의 파라다이스인 에덴동산에서 뱀의 꾀임에 빠져 금지된 사과를 먹은 순간 하나님이 아담을 불러 사과가 목에 걸려 목젖이 튀어나오게 된 아담과 하와이다. 그럼 사탄은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고 에블린은 파라다이스(사회주의) 에서 추방당한 하와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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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책의 맨마지막 장을 열어보지 말걸 그랬다. 맨 마직막 표지에 이 소설의 줄거리가 다 적혀 있었다. 처음부터 본것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아담이 에블린을 뒤쫏아 가는 단계에서 도중에 책을 덥으며 보았던 마지막 표지....소설의 처음은 약간 이해하기가 힘들었을때 이 부분을 읽고는 아 그렇게 진행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읽으니 참으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독일이 통일된지도 20년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차이와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해 그리고 지구상에 남은 두개의 분단국가라는 이미지가 더 강렬했던 시대의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헝가리, 폴란드등을 거쳐 끝내 서독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루어지는 해피엔딩...... 공산국가라는 이념체계에서의 삶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삶과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는것은 힘들지 않을까? 사람의 행복이란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가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독이 비록 자유롭고 모든일에 기회가 많은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의 삶에 있어 모두가 행복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우리나라가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우리들의 인식과 삶이 달라질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독일도 통일 후 처음에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것이다. 특히나 북한의 경우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하면 이를 해제시키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지는 않을까?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아담과 에블린 두 사람의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면서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과 사랑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과 두 가지 국가에서의 서로의 삶에 대한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오히려 머리속에 남는 듯하다. 가끔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뭔가 할말이 굉장히 많은듯하다. 대화체의 내용을 읽다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역자도 이야기의 전개가 굉징히 빠르다는 언급을 하였는데 빠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디에 촛점을 두고 상황을 생각해야 할지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문학계의 거장 잉고 슐쳐와 만나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나라도 빨리 철의 장벽이 무너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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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does not consist on gazing at each other, but in looking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는 거야. -『어린 왕자』 中에서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서로 사랑해도 마찬가지다. 가봉하러 온 릴리가 속옷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도 에블린은 아담이 있는 집을 떠났을 것이다. 그곳은 아담의 파라다이스였지 에블린의 파라다이스는 아니었기에. 에블린은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훔쳤지만 문제 삼지 않자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스물한 살의 그녀는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났다. 그녀가 좀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떠나는 용기를 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잉고 슐체의 『아담과 에블린』은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에서 장벽이 무너지는 시간 동안 동독의 한 마을에서 서독으로 떠나는 에블린과 그녀를 뒤따라가는 연인 아담의 여정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성경에서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고 소설에서 재단사인 아담은 옷을 만들어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아담은 별명이고 본명은 루츠 프렌첼이었다. 에블린(evelyn)은 이브라는 이름에서 따온 인상이 짓다. ‘이브들’은 아담에게서 나왔지만 에블린은 아담의 곁을 떠났다. 아담은 거북이 엘피와 함께 자동차 하인리히를 타고 에블린 일행을 따라가지만, 그들은 아담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아담은 헝가리를 넘는 중 카탸를 만났고 그녀가 헝가리 국경을 넘도록 도와주었다. 카탸나 에블린이 국경을 넘으려는 것은 ‘진짜로 살’기 위해서지만 아담에겐 단순히 휴가일뿐이었다. 카탸와 에블린은 스물한 살이었고 아담은 만으로 서른세 살을 앞두고 있었다. 1989년 분단된 동독, 제대로 된 직장도 없는 스물한 살 여성과 서른세 살의 안정적인 재단사 남성이 경험한 세상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식당 종업원이었던 에블린은 때려치운 대학공부를 더하길 원했고 그러려면 국경을 넘어야 했지만, 아담에겐 자신과 릴리의 관계를 오해한 그녀가 탈출이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까 걱정이었다. 현재 삶에 희망을 보지 못한 에블린은 모호함에도 국경 너머의 삶으로 가고 싶었다. 아담을 남겨두고 떠난 것은 그의 사랑을 오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달리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그에게 낯선 삶을 살라고 강요할 수 없는 마음의 이중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블린이 아담에게 한 “가버리면 돼”라는 말의 속뜻은 “같이 가자고 말할 순 없지만 같이 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그 모든 일을 함께했을 거라고 생각해?”(265쪽) 아담이 집/동독을 떠날 생각이 없음에도 그녀를 따라간 것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너를 위해 헤어진다는 말은 나를 위해 헤어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에블린이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갖고 싶은 것들 때문에 난감함에도 그녀의 삶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아담의 모습은 눈물겨웠다. 에블린은 현재의 삶을 만끽했다. 아담의 삶은 이전의 삶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블린은 대학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아담은 여성복 손님과 눈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앞날을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독일은 통일되었고 그들은 지금 함께 있으므로. 만약 에블린 혼자 도착했더라면, 아담만 남았더라면 그들의 남은 생은 많이 불행했을 것이다. 사랑은 그럼에도 ‘너’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담과 에블린의 티격태격 대사들이 많아서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잉고 슐체는 귄터 그라스로부터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처음 읽은 잉고 슐체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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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여자가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남자는 이별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서 여자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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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코미디 혹은 로맨스 소설 정도로 읽혀졌다. 그렇게 웃음을 참으면서 아니, 남녀간에 참 웃긴 일들을 벌이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던 소설이 남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것. 즉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담과 하와를 연상하는 이야기로 전개 되더니 결국은 체제가 즉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변화되는 남과 여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가볍게 시작하였다가 웃으면서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가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 만들어진 틀 속에서 사람이 변화되는 모습을 찾아가며 그 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끝나 간다고나 할까? 가볍게 덤벼들었다가 통일이 요원한 우리의 환경을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다가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기 바로 전 상황이며 아담은 제단사로 남부럽지 않게 여성의 옷을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동독에서도 자신의 직업과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 연인인 에블린은 열두 살 연하이며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는 사회제도가 그를 따라오지 못하여 서독으로 밀입국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를 원하는 여성이다. 아담이 가게에 찾아온 손님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에블린은 아담을 떠나고 그를 무작정 따라가는 아담은 국경을 넘어가며 겪는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 그리고 국경을 넘기위한 사회적 상황을 말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동 서독이 통일된 이후의 아담의 무너진 삶과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에블린의 삶이 정말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의 소설에서 작가인 잉고슐체는 남녀의 의식의 차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 두 연인의 이야기 속에 동독과 서독의 사회상 그리고 그 시대의 국경의 풍경을 담아내며 남과 여 그리고 어떤 제도가 우리의 삶에 만족을 줄 수 있는 삶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다. 먼저 남 과 여의 부분에 있어서 아담의 당위성은 에블린의 감성과 상충되는 부분이 앞장의 주된 주제로 등장하며 아담은 에블린을 잊지 못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옆에 밀입국을 시도하는 여인을 도와주며 오해를 사기도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에블린은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매달리는 아담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아담과 에블린은 국경을 넘어 서독에 도착하지만 아담의 기술을 원하지 않는 서독의 사회 환경에 아담을 절망하고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하며 불우한 삶을 살지만 에블린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두 사람의 이별을 없지만 어떤 사회에서도 두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사회의 제도가 가져온 불합리는 어쩌면 모든 사람을 위한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현실의 우리 사회를 남녀의 극명한 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소설은 어쩌면 현실에 모두가 부적응 자일지 모르고 자신의 삶이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즉 행복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을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어쩌면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에는 어려운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는 일 그 것은 작가 자신도 쉽게 결말을 찾아내기 어려운 사회현상이 아닐까 한다.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을 읽을 것을 기대하였던 나에게 소설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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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잉고 슐체’는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작가였음에 확실했다. 약 2년 전 즈음, 『심플 스토리』를 통해 처음으로 만난 ‘잉고 슐체’는 당시에도 참으로 인상 깊은 작가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두 번째 작품인 『아담과 에블린』으로 재회하게 된 작가는 여전히 독자에게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이제 분명한 것은 ‘잉고 슐체’라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작품 선택에 주저함이 없는, 그의 작품이기에 읽어야 하는 작가로 손꼽을 수 있게 되었다.
동·서독의 통일 직전이라는 다소 무거운 배경 안에서 아담과 에블린의 이야기는 펼쳐진다. 현재 살고 있는 동독을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바람을 에블린은 가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이에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에 만족하는 아담은 탈출을 감행하고자 하는 사랑하는 에블린을 잡으러 그녀를 쫓는다. 정말이지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등장할만한 이야기 구조가 아닌가! 하지만 『아담과 에블린』을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그들이 살아 숨 쉬는 활동무대가 매우 무겁고 너무도 현실적이다.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보이지 않는 선 안(동독)에서 안주하려는 남자와 그 선 밖(서독)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여자의 관계는 상당한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하고 싶지만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공간을 선택하든 두 사람이 동시에 행복해지기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아담’이었다.
솔직히 『심플 스토리』와 『아담과 에블린』은 독자에게 그리 친절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데없이 시작되는 이야기와 희곡을 방불케 하는 간결한 대화의 향연들은 가끔씩 읽는 이를 오리무중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독특하고 힘 있는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와 독자를 야금야금 자신의 팬으로 사로잡는다. 진퇴양난에 빠진 ‘아담’의 선택은 당연히 예측가능하다. 하지만 예측가능 선택을 한 두 연인은 앞날은 여전히 예측불가능 현재진행형이다. 작가의 마지막 마침표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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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우리와 많이 비슷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독일이 먼저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독의 길을 가고 지금도 여전히 균형적인 경제와 정치의 맞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때론 경직된 게슈타포의 눈 밑에서 서로가 믿지 못하고 살던 시절과 비교해 볼 때 그야말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동독에서 안정된 일, 그의 손만 거치면 어떤 체형의 몸매라도 훌륭한 모델로 변신하는 재주를 갖게하는 아담은 재단사다.
33살이고, 그의 곁에는 그의 부모가 돌아가신 후 같이 살고있는 집에서 21살의 에블린이라고 하는 여친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의 고객인 릴리와 아담이 있던 현장에서 뜻하지 않는 오해를 살만한 옷차림을 보게 된 에블린은 둘 사이를 오해하게되고 이참에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자모네라는 직장동료와 그녀의 사촌인 서독에서 살고있는 미하엘과 함께 서독으로 같이 떠난다.
자신의 애차인 하인리히라 불리는 차를 타고 그들 뒤를 쫓아간 아담은 오해를 풀고 에블린과 같이 다시 동독으로 가길 원하지만 그들 뒤를 쫓아가는 여정 속에서 헝가리를 경유해 서독으로 망명하려는 여인과 동행하게되고 그녀의 시선을 외면한 채 여전히 에블린을 향해 여행을 한다.
헝가리의 친구 페피집에 같이 머물면서 그들 나름대로 오해를 풀려는 가운데 헝가리가 국경을 개방하고 뒤이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단 소식에 에블린은 서독으로 망명신청을 하게되고 뒤를이어 아담도 필요한 서류절차를 받는 가운데 서독에서의 일자리를 얻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서독에서의 생활방식은 전혀 다른 세계로 아담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그가 설 자리는 수선해주는 일자리 뿐. -
반면 에블린은 동독에서 대학의 전공과정 선택에서 거절당한 학과를 서독에선 다닐 수 있게되고, 점차 이 사회에 적응을 해 나가는 가운데 아담은 고향인 동독에 들러서 자신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의 충격적인 피폐해진 자신의 집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아담은 다시 서독으로 돌아오게 되고 여전히 식기세척기의 사용법을 모르고 실수연발을 저지르는 가운데 에블린은 아담에 대해 자신이 많이 생각하고 의지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배경은 다르지만 체제가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그 곳에서 익숙한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아담이란 사람과 나이도 어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가 살고있는 곳을 과감히 버릴 만큼의 아가씨 에블린의 사랑과 대화법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모태는 무엇인가를 묻고있다.
나라가 지정한 대로 교육받고 지정한 직업을 갖는다면 평생 걱정없이 오로지 그 곳에서 파묻혀 살아가도 무방할 나라인 동독에서의 안주된 삶을 박차고 사랑을 찾기위해 떠나는 아담은 서독에 정착하려는 과정에서 일대의 혼돈을 겪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재능이라면 그 어떤 옷감으로 만들더라도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있다는 것을 모르는 서방세계의 직업관의 이해도, 고작 수선이나 하자고 온 것은 아니라며 다시 간 고국(?)에서도 자신의 집은 이미 엉망진창이 된 모습으로 변한 모습으로 있는 현실 앞에서 아담은 내내 방황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에블린의 자신의 인생 찾기는 확실히 더 적극적이다. 나라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교육적인 면을 인정하지 못하고 탈락한 대학에 대한 미련이 일차적이었겠지만 뭣보다 동독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넓은 자유의 세계를 동경한 모습의 활기찬 젊은이의 모습이 투영이 된다.
소설의 흐름상 자세한 시대적인 변화를 나타내주는 정황이 아닌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만 그 주변에 일어난 변화의 모습을 독자가 이해를 하게끔 하고 있기에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볼 수있는 여러장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답답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아주 보수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거란 생각에는 뒷통수을 맞을 만큼 에블린은 개방적이다.
미하엘의 아기인지, 아담의 아기인지도 모른 채 아담에 대한 자신의 사랑확인과 아담이 자신에게 거는 사랑의 행태에 대해서 이해를 하면서 같이 살아갈 것을 의미하는 과정에선 여전히 동양적인 시선과 서구적인 시선의 차이는 있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세계의 체제하에서 살아온 두 연인이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고 그 안에서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좌충우돌의 사랑을 그리고있다.
소설 속에서의 아담과 에블린은 성경에서의 아담과 하와를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아담에겐 어쩌면 자신의 낙원이 동독일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새로운 정착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려는 서독이야말로 하와의 꼬임에 금단의 열매를 먹인 역할을 한 에블린이야말로 아담에겐 연인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180도로 변화시키게 한 화신은 아니었는지 비교를 해 보게한다.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는 긴박감 넘치는 국경을 넘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무거울 수도 있는 배경을 대화 속에 유연한 태연함, 유머의 일발성 대화로 인해서 소재의 무거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생동감 있는 대화체가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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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왠지 태초의 아담과 하와를 연상시키는 그런 제목이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책의 배경이 헝가리와 체코에요, 제가 바로 며칠전에 다녀온 그곳, 가끔 이런 우연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함을 느끼며 책을 읽게 되요, 사실 소설속의 배경이 된 곳을 막연하게 상상하기란 그리 쉬운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마침 그곳을 다녀왔는데 그곳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라니 그곳을 여행했을때의 그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구요,
하지만 배경속에서는 아직 국경을 맘대로 넘나들지 못했던 독일 통일 이전의 이야기네요, 동독에 남고 싶어하는 아담과 달리 서독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에블린, 아마 그들의 그런 생각의 차이가 이미 사이를 벌여놓은지도 몰라요, 그런데다 여자 옷을 가봉해서 입히고 사진을 찍는 일을 하는 아담이 어느 여자와의 들켜서는 안되는 모습을 에블린에게 들켜 에블린이 떠나 버린답니다.
항상 여자 옷을 만들어 가봉해서 입히고 그여자를 모델로 사진찍는것도 못마땅했지만 누구나 상상할 수있는 그런 상상을 떨치며 참고 지내오던 차였던 에블린에게 그만 딱 걸려 머뭇거리던 아담을 두고 떠날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해줘 버린거죠,ㅠㅠ 남자들이란,
하지만 사랑하는 에블린을 놓치 못해 그녀를 쫓아가다가 불벌체류자인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도무지 이야기가 제 취향은 아니네요, 그리고 번역하신 분의 문장을 쓰는 표현력이 좀 난해해요, 독일식 유머를 가끔 보여주는데 그게 잘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그래도 동독과 서독 통일 이전에 국경을 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시대소설이랄까요?
과연 아담과 에블린 그 둘은 그전의 관계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한번 깨어진 관계는 그리 쉽게 회복 되기 어려운법이죠, 남녀관계는 동서독 사이에 놓인 국경만큼 참으로 복잡하고 난해하고 그런거 같아요, 이제는 통일이 되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지만 독일사람들은 좀 냉소적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그만큼 그들의 통일은 분단되었을때 만큼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던듯해요, 그렇게 남녀의 사랑 또한 그런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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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에블린이란 남녀의 연애사로 시작된 이 책은 우리가 겪게 될 미래에 대한 예언서란 생각이 든다. 결코 쉽게 다가서지만, 알 수 없는 인간의 갈등과 감정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적 잇슈와 선택의 만족감등이 이 책은 독자에게 갈등으로 주어지고 도전한다.
무엇보다 아담의 직업인 재단사란 전문직이 동독에선 최고의 인정을 받고 삶의 윤택을 주었지만, 그가 사랑한 에블린을 통해 얻은 서독이란 삶을 통해 시대적 반향성과 이데올로기적 차이에서 오는 현실적 괴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무엇보다 [아담과 에블린]을 통해 아담과 에블린의 사랑이란 평범한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분단의 과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녀의 연애사로 부드럽게 다가온 [아담과 에블린]이 우리 삶에 현실적으로 주어진 행복의 질을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묘사한다. 우리의 남북 문제를 동서독의 실예로써 다가서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현실적, 이상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점을 아주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재단사란 직업을 통해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변하는 사회적 실상, 그리고 사랑이란 인간의 본질을 통해 삶의 질을 포기하지만 얻게 되는 현실적 괴리감, 그리고 "행복한가?" 물음에 이 이 책은 아주 세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다가서고 있다.
난 이책을 통해 실존철학의 본질에 다가서고 그것을 통해 현실과 우리 미래에 대한 삶에 대한 사회적 상황에 다가선다. [아담과 에블린]은 현실에 부적응자가 되버릴지 모를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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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베를린 장벽처럼 이 소설은 이분법적 형태라고 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진중함과 그 배경의 러브스토리의 가벼움, 생략이 많았던 그들의 대화의 빠른 속도감과 길고 긴 망명길 아니 아담이 에블린을 뒤쫓는(?) 서사적 여정, 아무런 정치적 입장이 없이 오로지 옷을 만드는 일이 빠진 아담과 정치적 이유로 꿈을 펼칠 수 없어 서독으로의 망명을 꿈꾸는 에블린. 복잡한 시대적 배경만큼이나 어려운 어담과 에블린의 사랑 이야기이다.
성경의 아담과 하와를 모티브로 한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이게 책 소개에 씌여진 문구이다. 모티브로 한 성경의 아담과 하와는 익히 알고 있다지만 어떤 식으로 연결을 지어야 할지를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딱히 코미디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없었다. 남녀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그린다는 다소 심플한 이야기이지만 상황묘사의 서술적 부분이 많이 생략되어서 처음엔 정말 적응하는데 힘들었다. 앞부분을 다시 읽어봐야 할 때가 많았고 도대체 누구와 누가 대화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부분도 많았다. 다소 복잡 미묘한 필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를 포함 분명 단점으로 다가올 부분이다.
자신이 만들어 주는 옷의 여자와 바람피는, 현제에 만족하며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아담이나 자유의 땅에서 온 친구의 사촌과 잠깐의 만남을 가지는, 자신의 꿈을 위해 망명도 서슴치 않는 에블린이나 어느 누가 잘못했고 잘한 사람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해피엔딩도 새드인딩도 아니다. 아담과 에블린이 어떻게 될 지는 독자가 상상하기 나름의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결론을 내기 애매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사랑을 해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적 갈등을 아담과 에블린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선택에 관한 이분법적 심리 묘사가 탁월했던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