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의 광기를 증언하다 - 왕의 목을 친 남자 _ 스토리매니악 18세기 프랑스는 큰 변동의 시기를 겪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당통 등이 단두대에서 생을 마치고, 절대왕정이 무너지며 혁명정부가 들어 섰다. 혁명 정부는 1년이 안 되는 공포정치의 기간 동안 1만 7000여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살육을 자행했고, 그 살육을 이끈 로베스피에로 또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 혼란의 시기에 나라의 최고봉 왕과 왕비는 물론 종교 지도자, 혁명 수뇌들의 목을 단두대로 떨어뜨린 사람이 바로 사형집행인 '샤를 앙리 상송'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다는 이 사형집행인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사형집행인 가문을 통해 전해진 실제 기록과 발자크의 저작 등을 통해, 프랑스 혁명 시대의 이야기와 사형집행인 가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극에 보면 망나니라 하여 죄 지은 자의 목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망나니에 해당하는 자를 프랑스에서는 사형집행인이라 하였고, '상송' 가문은 대대로 이 사형집행인 가문이었다. 그 천한 신분은 프랑스도 다르지 않은지, 모든 이들이 사형집행인과는 말도 섞으려 하지 않을 정도로 천대 받던 직업이었다. 이 사형집행인의 신분은 대대로 세습되어 자식들 또한 똑같은 굴레를 써야 했다.
이 책은 사형집행인으로서의 상송 가문의 시작과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기의 '샤를 앙리 상송'의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 혁명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달리 천한 사형집행인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역사서라기 보다는 사형집행인 가문의 운명을 중심으로 한 역사 드라마 같기도 하다. 이야기 자체도 딱딱한 서술 보다는 사형집행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는 등의 전개로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사형집행인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의 격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인물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했을 터이다. 그러나, 작가는 사형집행인의 눈과 가슴을 선택했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가 왜 사형집행인의 눈을 빌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바로 그 혁명의 한 가운데서 프랑스의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이가 바로 사형집행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눈으로 표현되는 혁명의 소용돌이는 놀랍도록 사실적이고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프랑스 혁명의 광기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혁명의 한 장면을 재현하고자 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형집행인의 시각을 통해 고문과 처형의 잔혹한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찰 또한 해내고 있다. 갖가지 고문과 함께 자행되는 처형의 잔혹함에 이어 혁명으로 수많은 이들이 사형에 처해지는 광경을 자신의 손으로 연출했던 샤를 앙리 상송은 죽는 날까지 사형제 폐지를 꿈꾸었다. 사형의 최종 집행인으로서 한 사람이 느꼈을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그 제도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고민했을 그의 고뇌가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 편으로는 역사의 한 장면을, 또 한 편으로는 한 인간의 사형에 대한 고뇌를, 이 두 가지의 핵심 줄기를 아주 적절히 어우러지게 하여 장대한 한 편의 논픽션 드라마를 완성해 냈다.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역사서와는 다른 관점의 접근도 신선했지만, 이처럼 드라마틱한 읽는 재미도 이 책의 장점이다.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을 해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왜 이리 유명했는지, 이 책을 통해 샤를 앙리 상송이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새삼 알 수 있었다.그 인물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렇고, 프랑스 혁명의 내밀한 장면들을 들여다 본 것 같아 흡족하다. 혁명의 광기와 그 광기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형집행인의 고뇌를 들여다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다.
|
|
시민혁명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에 대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무혈혁명이 아닌 피를 불러오는 혁명에 대해서 끔찍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역사에 대해 정의에 대해 잘 모르는 소리라 나무란다 해도 어떤 이유로든 인명을 앗아가는 자리에 세워진 권력은 얼마나 정의로울 것이며 그 뒤를 잇는 이들은 그 참신하다는 정신을 언제까지 그대로 이어갈까 하는 회의가 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당시 사형 집행인을 맡았던 샤를 앙리 상송에 대한 이야기며 6대에 걸쳐 파리의 사형 집행인이었던 상송 가문의 내력, 프랑스 혁명 당시에 대한 이야기다.
텁수룩한 수염에 험상궂은 얼굴, 더럽고 낡은 옷차림, 이가 몇 개 빠진 야비하고 냉정한 얼굴의 음흉한 웃음, 드라마 속에서 봐온 사형집행인인 망나니는 이런 모습이었다. 사형집행인은 유년이나 늙음이 없이 원래의 그 모습으로 보여지는 그저 해괴한 모습에 피나 눈물이 없는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사실 사형집행인보다 사형수의 불쌍함에 마음이 더 동했기에 사형집행인은 어떤 연민도 내게 불러일으키지 않은 존재였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소설들에 등장하는 사형집행인 또한 우리나라의 희광이나 망나니와 다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왕의 목을 친 남자' 사형집행인의 딸을 사랑해서 사형집행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샤를 상송 드 롱발로부터 시작된 상송가의 이야기는 2대, 3대를 거치며 프랑스 혁명시 사형집행인이었던 4대 샤를 앙리 상송으로 이어지는데 아버지 장 바티스트에 의해 훌륭한 교육을 받은, 지적이고 수려한 외모와 양심적 신앙인이었던 4대 샤를 앙리가 단지 사형집행인 가문에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서 사형집행인으로서의 일을 수행하며 존경하던 왕 루이 16세를 처형하면서 겪게되는 고뇌와 두려움이 그려져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새로이 알게 된 것은 무능하고 무절제한 사람으로 알고 있던 루이 16세에 대한 것이다. 루이 16세가 내가 알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명석한 지식인이자 관대하며 바른 통치자로서의 면모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왕가에서 태어나 모든 이 위에 군림하던 자와 사형집행인 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이의 무시와 외면을 받던 자, 이 책에 그려진 왕과 샤를 앙리의 세 번의 만남, 왕과 사형집행인, 처형자와 처형하는 자, 그 둘 사이에 놓인 혁명의 물살 안에서 피를 묻히며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반대에 선 이들, 이들의 공처럼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이야기는 '사람'에 대해 '나'에 대해 '자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고 역사라는 굴렁쇠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하나하나의 생각들이 모여 급물살을 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송가의 회고록을 토대로 아다치 마사카쓰라는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대대로 사형집행인을 가업으로 삼은 집에서 태어나 프랑스 혁명과 조우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경애하는 국왕까지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던 한 인간의 드라마를 쓰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었다."고 맺음말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듯 사형집행인 또한 피가 흐르고 따뜻한 마음이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형 당하는 이와 사형집행인,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
|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급을 타파하고,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이룬 이 역사적인 사건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나라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루어진 프랑스 대혁명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는데, <왕의 목을 친 남자>역시 사형집행인 상송 가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재조명하고 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요틴으로 상징되는 로베시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떠올릴 수 있는데, 그러한 점을 놓고 본다면 왠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사형집행인 상송 가문과도 연관성이 있으리라 추측을 할 수 있다. 과연 저자인 아다치 마사카쓰는 프랑스 대혁명을 상송 가문을 통하여 어떻게 재조명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에 올리퍼 푀치의 <사형집행인의 딸>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중세 시기에서 근대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형집행인의 사회적인 위치와 대우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형장에서 큰 칼을 휘두르며 참수형을 집행하는 망나니라는 계층을 떠올린다면 사형집행인은 타인에게 멸시를 받는 지위라고 쉽게 추측하게 된다. 저자는 상송 드 롱발(1635~1707)로부터 시작되어 6대인 앙리 클레망 상송(1799~1899)에 이르기까지 사형집행인 역할을 한 상송 가문을 등장시키는데, 이 책에서는 4대인 샤를 앙리 상송(1739~1806)의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저술하였다. 먼저 책의 첫 부분에서는 상송 가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당시 사형집행인에 대한 사회적인 위치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록 법에 의하여 형을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사형집행인에 대하여 멸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사형집행인은 자식이 일을 물려받아 계속 사형집행인이라는 신분을 유지해야 하며, 결혼도 그들끼리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모습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의 망나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상송이라는 사형집행인의 가문의 초대 당주인 상송 드 롱발의 활동 시기를 본다면 루이 13세에서 루이 14세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사형 집행인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 시작 시기가 상당히 뒤쳐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상송 드 롱발은 원래 사형집행인이 아닌 지방의 하급 귀족 출신이었으며,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사랑에 빠진 여자가 사형집행인의 외동딸이었기에 그녀와의 결혼을 통하여 사형집행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본다면 사형집행인의 신분은 하나의 직업이자 신분으로서 대물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상송 가문은 파리로 이동하여 무슈 드 파리라 불리우는 파리 지역의 사형집행인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름 굳건한 지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비록 천대받고 멸시받는 직업이긴 하였지만, 당주였던 상송 드 롱발은 의학에 정진하여 사형집행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의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3만~6만 리브르라는 사형 집행인의 연봉(보통 공장작업자의 연봉이 400리브르였으니 엄청난 소득임을 알 수 있다.)에 더하여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받는 부수입으로 인하여 우리가 상상하던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 저택과 막대한 토지를 지닌 가문으로 성장하게 된다. 경제적인 부와 함께 비록 사형집행인이었지만, 의술은 물론이거니와 가정 교사까지 구하면서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던 상송 가문의 가풍이 아마도 저자의 눈길을 끌었으리라 추측된다. 여기에 더하여 상송 가문이 바로 무슈 드 파리라 불리우는 파리의 사형집행인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4대인 샤를 앙리 상송의 회고록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생존한 시기가 바로 1789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전 샤를 앙리 상송이 겪게되는 몇가지 경험은 역사적 측면에서 눈길을 끌게 된다. 귀족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받았을 때와 그가 루이 16세에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사형집행인이 천대받는 시기에 샤를 앙리 상송은 재판정에서 자신이 비록 사형집행이긴 하지만, 자신도 엄연히 법에 의하여 결정된 일을 수행하는 공인이라는 입장과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것 역시 단순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적군을 죽이는 군인의 고결한 임무와 동일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변호를 하게 된다. 가정 교사에 의하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그의 능력과 신분에 대한 논리적인 변호는 당시 앙시앵 레짐이라 불리우는 구제도의 모순을 다른 측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루이 16세에 대하여 느끼는 샤를 앙리의 감정도 특기할 부분이다. 사형집행인에게 주어지던 상인에 대하여 세금을 거둬들이는 특혜가 폐지되고, 국가로부터 직접 1만 5천 리브르의 연봉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재정이 악화되어 샤를 앙리는 당시 국왕인 루이 16세에게 알현을 청하게 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실제 이러한 알현은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루이 16세는 샤를 앙리가 처한 경제적인 위기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국왕을 바라보는 샤를 앙리의 시선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불만을 국왕에게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왕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보여준다. 즉, 프랑스 대혁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샤를 앙리는 재판정에서 보여준 신분에 대한 불만과 루이 16세에게서 느끼는 경외감을 동시에 지닌 세력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면서 그도 사형집행인이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받는 차별과 멸시가 점차 사라진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루이 16세의 처지에 대한 동정심이 뒤섞이게 된다. 여전히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지니고 있던 샤를 앙리는 입헌 군주제를 내심 기대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공화정이 성립되고, 이 과정에서 루이 16세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된다. 이 사형을 집행하는 역할은 샤를 앙리 상송이 맡게 되는데, 그의 회고록을 들여다보면 사형 집행일에 그는 왕당파가 루이 16세를 탈출시키기를 기원기도 하지만, 정작 그러한 탈출 계획은 실행되지 않게 된다. 신분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는 것은 반길만한 상황이었으나, 그가 존경하던 루이 16세를 자신이 직접 형을 집행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되는 샤를 앙리 상송. 이후 샤를 앙리는 목숨을 걸고 남몰래 루이 16세에 대한 미사를 진행하면서 국왕의 넋을 기리게 된다. 상송 집안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이 회고록에 쓰여진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당시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들에서 차용을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 앙리 상송이라는 사형집행인의 시선으로 인류의 대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프랑스 대혁명을 바라보는 시도는 참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음을 집행하는 사람이면서 실제로 루이 16세의 사형을 집행한 인물이 오히려 국왕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처형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요틴이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게 만드는 점에 대한 혐오감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역사의 모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왕의 목을 친 남자>는 이처럼 사형집행인이지만, 사형 제도의 폐지를 바라는 샤를 앙리 상송을 통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두 얼굴로 대변되는 각종 모순된 모습을 색다른 시선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틀에 박혀 프랑스 대혁명을 배워왔던 우리에게 이 책은 좀더 다른 관점에서 그 역사적인 현장을 바라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
|
"국왕이라는 존재는 도덕적으로는 자연계에 있는 괴물과 같은 것이다. 또한 궁정이란 범죄의 공장, 부패의 온상, 폭도의 소굴이다. 모든 국왕의 역사는 모든 국민의 순교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p.215)
프랑스의 절대왕정에서 혁명정부로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사형집행인 집안인 상송일가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리의 공식 사형집행관인 상송 가문의 사람들 눈으로 본 당시 프랑스 역사, 역사에 나약하고 문능했던 왕으로 알려진 루이16세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샤를 앙리 상송의 일기를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 외에 다른 여자를 곁에 두지않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 초대 상송 샤를 드 롱발을 시작으로 6대에 걸쳐 파리 사형집행인을 역임해온 그의 가문은 전국에 분포된 사형집행인들을 대표하는 가문이라 할만하다.
사형수의 무익한 고통을 줄이고 확실한 처형을 위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설계된 것이 기요틴이다. 루이 16세는 기요탱, 앙투안 루이, 샤를 앙리 상송과 함께 한 비밀 회합에서 비스듬한 칼날을 제안했고 그것을 완성해 내었지만 후에 그가 기요틴에 의에 처형당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는 것이 역사가 안겨주는 아이러니함이다. 처형인(사형집행인)인의 딸 마르그리트와 사랑에 빠져 스스로 그길로 걸어들어간 초대 상송 샤를 드 롱발, 일명 저주받은 일가로 일컬어지는 처형인의 길로 들어간 그 덕분에 그의 후손들은 사형집행인 이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할수 없게 되버렸다.
당시 프랑스 왕정에서 주로 사용되던 사형제도는 다음과 같다. 능지처참형, 수레바퀴형, 참수형, 교수형, 태형, 인두형 등. 프랑스 사형집행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난 것은 조선시대의 사형집행인인 망나니였다. 화척(禾尺) ·재인(才人) ·백정(白丁) ·광대(廣大) ·사당(社堂) ·무격(巫覡) ·창기(娼妓) ·악공(樂工) 등이 천민에 포함된다. 프랑스의 사형집행인이 후손이 대를 이어가는 세습이라면 조선의 망나니는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망나니는 천인이나 중죄인 가운데서 뽑아 강제로 시켰다는 것, 어디선가 백정이 망나니 역활도 같이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겠지?
루이 16세는 공교롭게도 국가가 '왕가의 소유'에서 '국민의 소유'로 바뀌는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왕의 자리에 있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p.223)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사형집행인으로 저주받은 일가로 취급되던 상송 일가는 그토록 바라던 일반인으로 신분이 상승되었으나 존경하는 인물인 루이16세를 자신의 손으로 처형해야 하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루이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당통,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등은 역사에 이름 한자락을 남기고 간 인물들이다. 역사는 루이16세를 지나고 사연많은 공화정 시대를 지나쳐 황제 나폴레옹1세를 비춰주고 있다. 루이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 의 사형을 책임졌던 샤를 앙리 또한 아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은퇴를 했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있다. 이것이 사형집행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내가 갈 길이다.'
샤를 앙리가 사형제도의 폐지를 소원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사형제가 없어진다면 사형집행관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293) 직업을 선택할수 있었다면 그들은 절대 사형집행인이라는 자리를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으나 할수밖에 없었던 사형집행인 일, 가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그들처럼 조선에서 망나니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샤를 앙리가 그토록 바라던 사형제도의 폐지는 그가 죽은지 175년이 지난 1981년에 이루어졌다. 그럼 우리나라의 사형제도 폐지는 언제? |
|
왕의 목을 친 남자. 제목만으로는 혁명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멋진 말 같지만, 말 그대로 왕의 목을 친 사형집행인을 말한다. 우리에게도 사형을 집행하던 이들이 있었다. 사극에서 종종 등장하는 망나니가 그들이다. 머리를 풀어해치고 술에 취한 채 긴 칼을 휘두르며 죄인의 목을 베던 살수. 이들은 그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은 계급이었다. 또한 책을 통해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에 맞춰 사형제도에 대한 인식이 어떤식으로 변화했는지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하에 공개처형을 원칙으로 하지만 같은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받아도 귀족이면 참수, 서민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신분에 따라 죽음을 당하는 방법도 각기 달랐다. 이런 사형제도가 인간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 의사 기요탱은 모두에게 동일한 사형법을 제안하는 데 이것이 그 유명한 기로틴의 탄생 근간이 된다. "같은 종류의 범죄는 죄인의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같은 종류의 형으로 처벌한다, (p154)"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모든 사형은 기로틴에서 참수형으로 집행된다. 비로서 모두에게 평등한 법이 실행된 것이다. <왕의 목을 친 남자>는 한 가문의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처형인이라는 직업세계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모르던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역사서다.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흐음이 딱딱하지 않아 읽는 데 어려움이 없고 독자들의 흥미를 계속 자극한다. 다미앵이나 랑발 공비의 고문과 사형장면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다소 거북한 부분이긴 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
그들은 신성한 법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천한 사형집행자였다. 사랑에 의해 초대 상송은 사형집행자가 되었고 가문은 기피하는 직업을 대를 이은 만큼 엄청난 봉급과 권리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무시와 천대는 여전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정의를 위한 신성한 법을 집행한다는 자긍심으로 인간본연의 죄책감을 부던히 이겨내며 그들은 쌓여진 부와 시간, 그리고 다양한 사형방법을 통해 얻은 인간의 육체에 관한 지식으로 의업을 동시에 짊어졌다.
비록 위대하고 신성한 법에 의한다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그들은 괴로움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의업을 택했다. 자식에게 사형집행인의 업을 물려줌과 동시에 해부학과 의료봉사를 위해 공부를 시키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던것 역시 아비가 고난의 업을 물려주는 대신 택한 다른 지혜였다.
그리고 그들은 4대 앙리 샤를 상송이 무슈드파리(파리의 사형집행인)이 노련해졌을 무렵 프랑스 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앙리 샤를 상송은 다른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루이16세를 존경하였고 자랑스러워했다. 애첩이 없는 왕비만을 사랑한 왕. 과학지식이 뛰어난 왕. 신분의 철폐를 동의하고 자신의 권리를 내 놓아 입헌군주제 역시 찬성한 왕. 그는 죽을만한 죄 없이 백성을 위해 자신이 고안한 단두대의 칼 위에 목을 맡겼다.
단두대. 기요틴은 고통없는 죽음을 위한 "인권"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사지를 찢거나 상처를 내어 밀랍을 부어 고통을 주고 죽이는 대신 죽임을 당하는 이가 최소한의 고통으로 세상과 이별할 수 있도록.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요틴을 만들때 과학적 소양을 뽐낸이가 바로 루이16세였다. 우발적 살인의 죄로 형장의 이슬이 될뻔한 청년의 사형집행을 취소할만큼 루이 16세는 우리에게 알려진 우매한 왕이 아닌 인정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기요틴의 발명에 꽤 적극적이었고 둥근 칼날보다는 대각선의 직선의 칼날이 더 빨리 최소한의 고통으로 사형집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한 사람이다.
기요틴이 만들어지고 앙리 샤를 상송은 죽음의 공포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어렵게 죽이는 대신 기요틴을 조립할 수 있고 작동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기요틴 발명 이전에는 상송가문의 남자들이 시간이 남아 공부를 할만큼 기요틴 발명 이전에는 하루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적었다. 정의의 칼은 매우 비쌌고 한명의 목을 베고나면 칼날을 갈아야할만큼 까다로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요틴이 발명되자 사람은 하루에 50명이 죽어나갈만큼 즉결심판이 시행되었다.
혁명의 방향이 잘 못 흘러 혁명을 지지한 일반 시민들은 폭동이 되었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여나갔다. 국가가 잔인하게 사형을 집행해 백성들에게 경고한 것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혁명의 흐름속에 집권층에게 경고하는 사태까지 간것이다.
존경하는 루이 16세의 목을 거둔 앙리샤를상송은 남몰래 루이16세의 진혼제를 지냈다. 혁명때문에 그 역시 손가락질로부터 자유로워졌건만.. 그가 원한것은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는 그런 혁명을 원한것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으로 왕이 죽고 나폴리옹이라는 황제가 나타났다. 역설의 시대였다.
사형집행인. 망나니처럼 혹은 검은 거죽을 뒤집어쓰고 사람을 죽이는 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사실 꽤 잘 차려입고 좋은 칼을 찬 매너도 머리도 좋은 사람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익숙해졌지만 그만큼 괴로워진.. 사람들. 대를 이어야만 했던 그들은 스스로를 지탱하는 튼튼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기세좋던 혁명가 청년이 기요틴의 줄을 놓아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 사람을 죽인다는 충격에 그 자리에서 뇌혈관이 터져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을 무려 대를 잇고 이어간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형제 폐지를 원했다. 사형집행인은 진작에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돌아가신 조상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사형제가 폐지되는것. 의업으로 떳떳이 괴롭지 않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최근에 사형제 폐지가 논의 되는 것도 다른 그 어떤 이유를 떠나서 "누가 정의로운 법대로 사형을 집행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생각한다. 죽여도 시원찮을 나쁜놈을 죽인다고해서 정의로움에 괴롭지 않을 수 있을것인가. 죽여도 시원찮을 놈의 인권보다도 정의아래 누군가에게 죽음의 공포속에 던져줘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망나니라고해서 봉건시대의 명령과 신성한 법에 의한다고해서 괴롭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철학가, 역사가의 냉정한 이성으로 쓰여진 논리적인 사형제 찬반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애처로움. 흔들리는 마음. 그것을 담아낸 꽤 인간적인 시선의 "사형집행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너무 자세한 사형방법이 꽤 거북하기도하지만 사형제와 관련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
|
왕의 목을 친 남자- 프랑스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특히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직업은 더 세밀해진다. 어떤 직업은 직업명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꼭 부연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는 것도 있다.
사형집행인 사형집행인은 어떤가?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 현대의 사형제도는 그 존재의 의미를 의심 받고 이미 사형이 중지된 나라들도 많다. 또 현대의 사형집행은 일반인이 알 수도 없는 곳에서 집행되기 때문에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이다.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망나니’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하다. 이는 조선시대의 참수 형을 집행하던 칼잡이를 말하는데 근대 이전의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대를 이어 세습이 되던 것으로 인간백정이라 별칭에서 알 듯 있듯이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
근대 프랑스에도 세습되는 사형집행인 제도가 있었다. 이들은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받거나 법원에서 봉급을 받고 귀족들과 같이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등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망나니’들 처럼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다른 직업 군들과의 결혼은 물론이고 생필품 구입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프랑스의 사형집행인들 모두가 이런 천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 ‘상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습 사형집행인 집안이 있다. 앙리 상송 사형집행인 앙리 상송은 ‘무슈 드 파리’로 불리었다. 파리의 선생님 정도로 해석이 될만한 이 별칭은 찬양 수준은 아닐지라도 천대와는 거리가 먼 별칭이다. 앙리 상송은 4대 세습 사형집행인이다. 그가 단순히 사형집행인이었다면 이런 별칭으로 불릴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형집행인들은 일정 지역내의 상인들에게 세금을 받아서 사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 들은 이미 상당히 부를 축척하고 있었고 귀족이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직업의 특성상 사체를 보관하고 매장하는 일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연고 사체를 해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익히 의학적 지식은 병이나 부상을 치유하고 약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여 이 들은 대대로 병 의원과 약국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또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회개(?)와 반성(신앙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에 애를 썼다. 그리고 천대 받던 다른 사형집행인들의 지원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상송 집안은 1대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신실한 삶을 살았다. 죄를 짓고 죽어야 하는 사형수이지만 집행을 하는 순간까지 사형수의 권리를 지키고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 이런 이유로 사형집행인이라는 천대받는 일을 했지만 오히려 존경 받았던 것이다. ‘상송’이 주목 받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프랑스 혁명과 맞불려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이 16세를 처형에 참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최초로 상송 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소개한 작가인 ‘뒤마’가 ‘상송’ 집안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뒤마는 프랑스 혁명, 단두대(기요틴)과 관련한 저서에서 상송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상송의 회고록 ‘사형 집행인이 본 프랑스혁명’ 이라는 주제의 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송가에 전해지는 회고록 덕분이었다.상송 가는 사형집행에 대한 기록과 의술에 대한 정보를 후대의 전하기 위해 대를 이어 회고록을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었다.이 회고록은 그 진위나 가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기는 했지만 후대 작가들과 학자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기에 이제는 그 가치에 대해 부정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사형인의 기록으로 본 프랑스 혁명 이 책, ‘왕의 목을 친 남자’은 상송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팩션이다. 책의 전체 흐름은 앙리상송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며 세부적인 상황과 책의 서두와 결론 부분의 내용들을 저자가 재 구성하였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믿을 필요는 없다. 특히 루이 16세에 대한 보통과는 다른 긍정적인 평가는 앙리 상송의 개인적인 평가에 기반한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들었던 부분은 프랑스혁명 전후의 사건들을 별 부담 없이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워야 할 것들을 교과서 보다는 훨씬 깊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고 재미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라는 사건 가운데에 던져진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면서 역사 속의 프랑스혁명이 아니 나도 겪을 수 있는 좀더 생생한 프랑스 혁명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의 기록은 승리자를 위해 씌어지지만 삶의 역사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
|
'왕의 목을 친 남자'는 프랑스 혁명기와 사형집행인의 삶을 다룬 비문학이다.
당시 프랑스의 국제정세, 계몽사상으로 인한 신민들의 의식 변화, 사형집행인 집안에서 태어나는 남자는 사형집행인이 되어야 했던 시대적인 숙명, 범죄자를 사형할 누군가가 필요함에도 정작 사형집행인을 불길한 존재로 보는 시각 등이 잘 녹아있다.
사형집행인의 삶이나 프랑스 혁명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참고해서 실제 역사를 각색한 '이노센트'라는 만화와 함께 추천한다. |
|
프랑스혁명의 현장에서 3천명의 목을 떨어뜨린 사형집행관의 이야기 [왕의 목을 친 남자] 프랑스혁명에 대해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그 주역들과 희생자들의 이야기이다.이책은 그 역사의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직업인 사형집행이라는 일을 통해 혁명에 대해 생각해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세시대 사형집행인이 된다는 것은 저주받은 집안의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일종의 불가촉천민의 신분이 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악인을 처벌하다보니 그 악인의 영혼이 집행인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생각이지만 신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너무나 당여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이 낫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하층민의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중세시대에는 그들에게 급여는 지불되지 않았지만 일부 세금징수권을 허락하여 일반적인 길드들보다 거의 10배나 많은 소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업으로 의업도 허락되어 꽤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책의 주인공인 샤를 앙리 상송의 집안은 6대에 걸쳐 이일을 하였으며 꽤 부유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샤를 앙리 상송은 처음부터 사형집행인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군인으로 복무하였으며 프로이센전쟁에도 참여했었다. 그러던 그가 여행 도중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었고 그를 극진히 간호한 집안이 사형집행을 하던 상송집안이었다. 그 집안의 딸 마르그리트의 미모에 반해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형집행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는 말 때문에 사형집행인이 되기로 선책을 한 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6년만에 부인이 죽으면서 그는 그곳을 떠나 파리로 들어오게 된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는 마침 파리의 사형집행관이 공석이 된 상황으로 인해 그 자리를 얻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프랑스혁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공포정치의 상징 중 하나인 기요틴이라고 부르는 단두대의 설계에도 관여를 하게 되고 혁명의 과정에서 변화되는 사람들의 신분과 상황에 대한 묘사도 아주 사실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왕정의 폐지로 인해 그의 신분이 실질적인 시민의 신분으로 승격되는 감격이나 한때는 존경해마지 않았던 루이16세의 처형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갈등의 상황, 시민폭동으로 인해 벌어진 폭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혁명의 의미에 대한 회의 등을 진솔하게 정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직접 처리하면서 그의 회고집에 남긴 결론은 사형제의 폐지였다. 이를 그의 손자 가 정리하여 글로 남겼지만 정작 프랑스에서 사형제가 폐지된 것은 그 후로 175년이 지난 1981년이었다.
이책의 결론은 결국 사람의 처벌로 사형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가능성마져 없애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대문에 그 죄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끊임없지만 죄라는 문제가 결국 사회적이라는 것이라면 사회의 포용성의 문제는 그 사회의 유연성과 연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사회의 유연성과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야사를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
우리나라로 치자면 조선시대 망나니쯤 되겠다. 고상한 용어로 사형집행인. 프랑스에서 6대에 걸쳐 사형집행을 담당했던 '상송'가문의 네번째 당주 샤를 앙리 상송(1739~1806)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서다. 재판부의 명령을 받고 형을 집행하는 일종의 공무원이면서도 사람들로부터 편견과 멸시를 받아 천민 취급을 받던 사형집행인 가문의 애환과 수난을 그리고 있는 본연의 취지 이외에도 이 책이 더 눈길을 끄는건 바로 4대 당주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집행인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격동의 프랑스 혁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잔인함의 상징인 단두대 '기요틴'이 처음 선을 보였고, 그 기요틴의 칼날로 수천명의 무고한 프랑스 시민들을 처형시킨 역사가 고스라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속에서 망나니가 그러했듯이 사형집행인은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음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참 가혹했다. 어떻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태연하게 할수있는가! 피도 눈물도 없고, 잔인한 사람이다,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으로 오랜세월 이웃들과 섞이지 못하고 따로 자기들끼리만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프랑스에서는 준공무원 대우를 받아 금전적으로는 부유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이들과 말도 섞지 않았고, 심지어 가게에서는 물건도 팔지않았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격인 상송 집안은 6대를 거쳐오는 사형집행인 가문이다. 부모의 신분이 자식들에게 세습되던 프랑스 왕정시절, 왕의 아들은 왕이되고, 귀족의 아들들은 여전히 귀족이 되며, 사형집행인의 아들들은 또다시 사형집행인의 일을 물려받아 하게된다. 1635년 중산층의 군인 출신이던 샤를 상송 드 롱발은 사형집행인의 딸을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고, 결국 장인의 일을 물려받아 처음 사형집행인이 된다. 그 이후 아들 샤를 상송(1681~1726), 또 그 아들 장 바티스트 상송(1719~1778), 다시 그의 아들 샤를 앙리 상송(1739~1806), 그 아들 앙리 상송(1767~1840), 그 아들 앙리 클레망 상송(1799~1889)까지 6대에 걸쳐 상송집안의 사형집행인 가문이 이어지게 된다. 이중 4대 당주인 샤를 앙리 상송은 루이15세와 루이16세 두 왕을 거치면서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의 처형을 담당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도구로 알려진 기요틴이 사실은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인권을 위해 인도주의 관점에서 개발됐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기요틴의 개발 전까지만 해도 당시 프랑스의 사형방법은 신분에 따라, 죄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교수형, 참수형, 능지처참형, 수레바퀴형등으로 매우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게끔 되어있었다. 목을 자르는 참수형은 그래도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죄수들에게 명예로운 사형방식이었고, 서민들이나 천민들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이 행해졌다. 반란되 같은 중죄는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졌던 능지처참형이 시행됐는데 이 모든 사형의 집행은 사형집행인의 책임하에 이뤄졌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을 앞세워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직후 사형수의 인권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최대한 죽음의 순간에 고통을 줄여주고자 단숨에 숨이 끊어지는 영국의 단두대를 개량해서 기요틴을 개발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머리를 자르는 참수형이 가장 비인도적인 방식이라고 여겨지고, 손쉽게 머리를 잘라버리는 기요틴이 비윤리적으로 보여지지만 당시 천민들은 교수형, 귀족들은 참수형에 처해지던 관례에 비쳐 기요틴은 최대한 죄수들의 명예를 살려주면서 고통없이 형을 집행하는 인권적인 사형기구였다. 이 기구를 개발한 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본따 기요틴이라 명명했고, 한때는 개발자 기요탱도 기요틴에서 처형당했다는 말이 전해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게 정설이다. 기요탱 박사는 자연사 했다고 한다. 또 상송의 회상록에 의하면 기요탱 박사와 함께 루이16세와 파리의 사형집행인이었던 샤를 앙리 상송도 기요틴 개발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런 기요틴도 개발의 취지와 다르게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로 변질되면서 죄없이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을 처형하는 비극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너무나 쉽고 빠른 시간에 처형이 가능해지면서 예전에는 하루 서너건 집행되던 사형이 수십건, 수백건씩 사람들을 죽이게 된것이다. 또한 광기에 휩싸인 자코뱅당은 왕당파, 친가톨릭계, 같은 의회의 지롱드파 당원들을 모조리 몰살하기 시작하는데 기요틴이 활용됐다. 그 기간 40일동안 상송은 2,700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기요틴에서의 처형장면 상송이 가장 멘붕을 겪었던 때는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흠모해오던 루이16세를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던 때였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루이16세는 품위를 잃지않았다고 한다. 죽기직전 그가 남긴 말은 "국민들이여! 당신들의 국왕이 지금 이순간 당신들을 위해 죽으려 한다. 나의 피가 당신들의 행복을 확고히 할수 있도록 나는 죄없이 죽노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게 루이16세의 일대기였다. 과연 상송의 눈에 비친대로 루이16세는 국민을 위해 힘써오다 그들에게 배신당해 죽는 비운의 왕이었는지, 혹은 어떤 역사서에 기록된것처럼 무능한 왕이었는지. 바로 할아버지였던 루이14세때만 해도 "짐이 곧 국가다" 라면서 태양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던 절대왕권이었는데 손자대에 이르러서는 혁명으로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당했으니...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너무나 무관심했던 프랑스혁명에 대해 궁금증이 밀려든다. 세계 최초로 왕정을 뒤엎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했던 프랑스혁명. 그리고 혁명 초기 이들의 취지에 공감해서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가 나중에 이들에 의해 목이 잘린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또 이 혼란한 시기를 수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나폴레옹. 이 책을 읽으면서 언급됐거나 시대적 배경이 됐던 시기는 어림잡아 영화 서너편은 나왔을법한 배경이다. 나중에 프랑스혁명과 루이16세, 나폴레옹에 대한 공부를 꼭 해봐야겠다. 참, 이 책은 어떻게 끝났을까. 아까 6대에 걸친 상송가는 회상록을 남겼고, <왕의 목을 친 남자> 이 책은 그 회상록을 근거로 씌여졌다. 회상록에서 상송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있는 사형집행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기록해놨다. 특히 마지막 6대째인 앙리 클레망 상송은 <상송가 회고록>에서 사형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대에 따라 경미한 죄를 지어도 사형을 받는 경우가 있고,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죽음을 당해야 마땅한 범죄가 시대가 바뀌면서 칭송받기도 한다. 재판에서는 항상 오심이 생길 위험이 있으며, 처형된 후 무죄가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사형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다해도 그가 스스로 회개하고 죗값을 치룰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장이 사형집행인 상송가 사람들의 주장이다. 프랑스는 1981년 사형제를 폐지했다. 사형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