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가을,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은 아씨들'을 보고서부터였다. 아름답지만 척박한 매사추세츠 콩코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연주의, 초월주의 이런 것에 기반한 내 취향을 재발견하게 된 건. 이후 'Into the Wild', 'Walden' 등을 접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잭 런던이 알래스카에 일 년 동안 머물며 썼다는 'The Call of the Wild'를 접했다. 작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야성을 간직하고 있는 길들여진(교화된) 개, Buck에게 창의력을 부여하고, 역시 황야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 남자 사람 Thornton에게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모조리 투영해 자신이 원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John Thornton asked little of man or nature. He was unafraid of the wild. With a handful of salt and a rifle he could flunge into the wilderness and fare wherever he pleased and as long as he pleased.(p. 114) 금을 찾아 서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던 시절, 이름도 예쁘고 날씨마저 온화한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밸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귀염 받고 살던 벅은 도박빚에 시달리던 정원사의 꾐에 빠져 알래스카로 팔려가서 정부기관 우편물 배달 수레를 끄는 팀의 일원이 된다. 곤봉과 송곳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벅(Buck)은 서서히 자신의 야성을 회복하고, 창의력까지 발휘하여 불의에 찌들어 있던 팀 내 기득권 세력, 스피츠(Spitz)를 물리친 후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쉴 틈도 없이 어리바리 3인조 금 사냥꾼들에게 팔려간 벅은 천신만고 끝에 절체절명의 순간에 새로운 주인 쏜톤을 만나게 되고... 벅이 천 파운드의 짐을 끌 수 있다고 내기를 건 쏜톤, 내기에서 이겨 천육백 달러를 획득하자 그 돈으로 금을 찾아 황야로 떠난다. 벅과 함께... 예전과 달리 '금광 찾아 삼만 리 캠프'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던 벅은 숲속에서 야성의 부름을 받고, 며칠 동안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힘을 즐긴 후 캠프로 복귀하는 이중생활을 반복한다. 또 한 번의 숲속 생활에서 돌아온 벅은 자신의 주인 쏜톤이 인디언족 Yeehats에게 죽임을 당한 걸 발견하고 복수를 한 뒤 숲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소문에 의하면, 벅이 늑대들 무리의 맨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활보한다고도 하고, 여름이 되면 쏜톤이 죽음을 맞이했던 계곡을 찾아와 한동안 머물다 간다는 소식도 인디언들을 통해 전설처럼 들려온단다. In the summers there is an visiter, however, to that valley, of which the Yeehats do not know. It is a great, gloriously coated wolf, like, and yet unlike, all other wolves. He crosses alone from the smiling timber land and comes down into a open space among trees. ... and here he muses for a time, houling once, long and mournfully, ere he departs. (p. 138-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