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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단어로 사적인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여 작성한 거라고 생각했다. 사전의 뜻풀이를 비교해가며 보았던 적이 없는 거 같다. 사사키 겐이치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직접 말을 모아 자신의 특색이 들어간 사전을 만든 두 사람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사전 편집자 적인 시선으로 화해의 시도를 하는 이야기를 르포 형식의 글로 표현했다. 일본의 TV에서 방영되었고 그 조사과정을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이 책이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야마다 다다오와 『산세이도 국어사전』를 만든 겐보 히데토시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꽤 많이 팔린 사전으로 처음엔 함께 사전 편찬을 했으나 어떤 이유로 갈라져 자신의 개성을 넣은 사전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저자도 밝힌 바와 같이 사전에 필자의 개성이 들어있다고 여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전 속 말의 뜻풀이를 보니 바로 드러났다.
야마다 다다오의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의 ‘연애’는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라고 나와 있다. 반면 겐보 히데토시의 『산세이도 국어사전』에서는 ’남녀 사이의 그리워하는 애정(남녀 사이에 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 사랑.‘ 이라고 나와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연애‘ 뜻을 볼까.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두 사전에 가리키는 연애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다. 반면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서로 사귀는 ’관계‘를 나타낸다.
야마다 다다오와 겐보 히데토시는 왜 결별했을까. 마치 추리형식의 소설처럼 여러 사람들의 말들을 종합해 그 이유를 찾아가는 형식의 글이었다.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와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이라는 소설을 읽어서인지 사전은 국어학을 전공한 사전 편집자가 출판사에 소속되어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국어학자들이 각자 말과 용례를 모아 만들고 있었다. 한 사람의 개성보다는 보편적인 시각이 필요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사전에 들어갈 말과 그 뜻을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말‘은 지금까지 흔히 광대한 ’바다‘로 비유되었다. 항해의 키잡이나 배가 ’사전‘이고 ’편찬자‘라고도 말해왔다. (중략) 그러나 취재를 통해 내게 떠오른 ’말‘의 이미지는 ’모래‘였다. “말은 소리도 없이 변한다.” 말은 항상 변화한다고 겐보 선생은 말했다.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바람에 의해 모래 표현에 생기는 모양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문‘. (190페이지)
말의 뜻은 자꾸 변한다. 쓰임새에 따라 새로운 단어가 들어가고 사양 단어는 빠지게 된다. 이 책에서는 야마다 보다는 겐보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할애한 것 같았다. 겐보 선생은 평생 말의 뜻을 찾고 그 용례를 찾은 사람이다. 말을 모으는 작업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족과 여행을 가서도 늘 신문과 잡지의 새로운 단어를 쓸 쪽지 카드를 가지고 다녔다. 새로운 단어를 찾아 동행을 잊어버리는 일도 다수였다. 다니던 국어연구소를 그만두고 새로운 단어 찾기에 매진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져 방영된다면 꽤 센세이션 할 것 같다. 언젠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말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말모이」도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찔할 뿐이다.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중요성을 잘 알지는 못하다. 필요에 따라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바로 그 뜻이 나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의 열정과 수고에 의해 우리가 편하게 단어의 뜻을 찾고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말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문서를 작성할 때,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어야 할 때 우리는 모르는 단어 혹은 헷갈리는 단어를 검색하여 그 뜻을 찾는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었던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겐보와 야마다 선생처럼 각자의 인격과 강한 개성이 드러난 사전을 만들었던 그들의 사연은 감동적이다. 시간이 흐른 뒤 사전 속 단어의 뜻풀이에 후회하는 마음 혹은 사과의 마음을 담아 쓴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전 편찬자만이 할 수 있는 화해의 방법이었다. 이처럼 격렬했던 마음을 담았던 단어의 뜻도 시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들이 후회의 마음을 담아 그 뜻을 적었던 것처럼.
어떤 단어를 쓰는가. 모르는 단어의 뜻이 궁금할 때 찾아보는 사전은 사전 편찬자의 깊은 노고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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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북클럽에서 소개하여 뒤늦게 차트를 씹어먹은 베스트셀러다. 사전을 편찬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부제가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야마다와 겐보가 펴낸 사전을 합치면 판매량이 4천 만부가 넘는다. 흥미로운 점은 원래는 둘이 함께 사전을 펴내다, 각각 다른 사전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야마다가 펴낸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독특한 뜻풀이에서 강점을, 겐보가 펴낸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이와 대비되게 담백하게 단어를 설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파격적인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이 새로운 단어를 더 많이 실었을 듯한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조어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강점이었다.
전후 고학력자이지만, 현실에서는 딱히 쓸모가 그다지 없었던 고문학 전공자 야마다를 받아들인 건 이미 산세이도 출판사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겐보였다. 두 사람의 뛰어난 실력이 합쳐진 『메이카이 사전』은 국어사전계를 평정하며 압도적인 판매를 올린다. 말은 계속 변하는 법. 개정판을 내야 하지만 어찌 계속 늦어진다. 서전 편찬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겐보가 용례 수집에 빠진 까닭이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답답해 하고, 야마다 역시 초조하다. 마침 주간 교대제를 겐보가 주장하기도 했고, 『신메이카이 사전』은 야마다의 주도로 만들어진다.
한편 야마다의 『신메이카이 사전』이나 겐보의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나오게 된 또다른 배경으로는 종전까지 업계에서 횡행하던 짜깁기 관행이 있었다. '생활수첩'의 의혹으로 시작되어 사실로 확인된 서점계 짜깁기 관행의 원흉으로 『메이카이 국어사전』이 지목되자 야마다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사전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여기에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던 사측의 야마다 자극하기도 새로운 사전의 탄생에 기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신메이카이 사전』.
둘의 관계는 사전의 서문에 쓰여진 "겐보에게 사고가 있어"라는 표현으로 파탄나고 만다. 겐보 입장에선, "내게 사고가 있었다고? 나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감히 야마다 네가 그 자리를?"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평소 화를 안 내던 겐보는 그날 대노했다. 그 뒤로 그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을 만든다. 용례 수집을 위해 자가용이 아니라 전철 출근을 고집하고, 가족과 밥 먹을 때조차 대화 없이 용례 수집에 몰두하는 겐보. 죽기 전까지 무려 145만 개의 용례를 수집한다.
이러니 겐보에게 야마다와 관계를 회복할 여유따윈 없었으리라. 이는 야마다도 마찬가지라, 굳이 겐보와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겐보와 야마다 둘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않고 저 세상으로 향한다. 겐보가 먼저 죽고, 야마다가 겐보 가족에게 편지를 쓰긴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표현과 달리 야마다가 겐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 사람의 남은 가족에게 굳이 편지를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이야기를 몹시 흥미진진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두 사람이 펴낸 서점의 뜻풀이를 기반으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파국을 맞게 됐는지 설명한다. 두 사전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나같은 독자라도 저자가 설명하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으음, 저런 사전이군' 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도, 취미도 포기하고 오롯이 용례 수집에만 몰두한 겐보나 고문학을 전공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세상에 없던 사전을 내놓은 야마다나 대단한 사람들이다. 둘이 처음에는 조수와 사제였고 나중에는 대등한 동료였다가, 업계에서 인정받는 라이벌이었다 끝내는 화해하지 못한 원수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압권은 결말인데, 저자에 따르면 야마다나 겐보나 말의 본성을 잘 꿰뚫은 사람이고, 말의 본성이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니, 둘은 결국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뭉클했다.
서로를 리스펙트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라이벌이 있는가. 동료가 있는가. 그런 게 딱히 없이 서로 고립되어 일하다, 이 직장 저 직장, 이 일 저 일을 옮겨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이 바라보기에 야마다와 겐보의 시대는 지금에는 없는 뭔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듯하다. 이제는 현실에서 잘 구하기 힘든 종이 사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하나에 몰입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도 올해는 아름다워져 보자. 무엇에 몰두를? 그건 모르겠고.
서점에는 '인문'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삶 전반에 관한 논픽션이다.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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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잘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편을 글로 읽는 느낌이었는데, 실제 두 명의 사전 편찬자에 대한 tv프로그램을 제작한 후,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었다. - 이 책을 읽으며 1. 겐보와 야마다 선생의 삶 자체에 감화를 받았고 2. 말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 1. 어떤 일 하나에 이렇게 까지 온마음을 다해서 몰두할 수 있다니. 사전편찬에 몰두해 온 두 사람의 삶 자체가 비범하다. (그리고 이를 끈질기게 추적해 글까지 쓰고, 스토리화 한 사사키겐이치도 대단하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깨닫지못했는데, 난 "사전"이라는 것은 그냥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마치 성경처럼. 겉모습과 실려있는 말투 등은 조금씩 바뀌어도, 원형이 존재하며 그걸 누가 만들었을지 궁금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 같은 곳에서 만들었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함.) 그래서 사전에도 작가주의가 대입될 수 있는 이 둘의 업적이 실로 놀라웠다. 그리고 한번의 완성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수용하며 더욱 완벽함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 2. 말은 소리도 없이 변하고 있다. 말에는 이면의 뜻이 있다. 말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협력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타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배척시키는 배타성도 가진다. - 나에게 사전이란, 영한사전이 전부였던 듯하다. 국어사전이 궁금해졌다. - 책 초반에 신메이카이 사전에 실린 "연애"의 뜻풀이를 보고, 초등학생때 읽었던 "#악마의사전 "을 떠올렸는데 책 중반부에서 실제로 언급되어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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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한 대부분의 독자가 그러하겠지만 김영하 북클럽을 통해 알게되었고 빠져들어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배를 접다 라는 일본 영화를 흥미롭게 보아서인지 사전편찬자에 대한 경외감 또는 직업에 대한 몰입도, 말에 대한 신념, 사상에 대한 이 책의 접근법은 어찌보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특유의 극적 구성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져서인지 두 인물과 그 사이의 사건, 역사에 대해 뭔가 커다란 역사적 사건, 발자취 하나를 알게 된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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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편찬하는 이들의 이야기. 라는 소재가 우선 신선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였고 소감을 공유하는 북클럽에서 소개된 책이라 어느정도는 취향이나 내용면에서 안심을 하고 구매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읽히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다 읽은게 아니라 평에 대해선 당장은 하지 않겠고, 추후 추가를 해볼게요. 기대됩니다. 평에 대해선 당장은 하지 않겠고, 추후 추가를 해볼게요. 기대됩니다. 평에 대해선 당장은 하지 않겠고, 추후 추가를 해볼게요.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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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쏟아지는 질문세례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엄마, 대통령은 뭐하는 사람이야?" "엄마, 일식은 왜 생기는 거야?"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말로 하기 어려우면 사과와 귤이라도 들고 와서 달그림자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고, 도움이 될 만한 학습 자료도 많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엄마, 사람은 어디에서 온 거야?" "엄마, 엄마아빠는 왜 나를 만든 거야?" "엄마, 사람은 죽으면 왜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아이의 궁금증에는 한계가 없고, 어른의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든 대답을 쥐어짜내보려 하지만, 설명하는 와중에도 아이가 던진 질문의 본질과 나의 말이 미묘하게 비껴가는 것이 느껴진다. 실체와 언어 사이의 교집합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단어를 둘러싼 복잡애매모호한 인간사회의 노이즈들. 이 모든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핵심을 건져올릴 수는 없을까? 비록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그 중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의 사전 편찬 작업도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같은 말인데도 이쪽이 생각하는 의미와 저쪽이 생각하는 의미가 어긋나거나 빗나가면 마음이나 생각이 서로 정확히 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좋은 사전이 필요하다." -'국어 사전을 테스트 하다', <생활수첩>, 1971년 2월 호 다만 두 사람이 생각 하는 '좋은 사전'의 의미는 달랐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주간이었던 야마다 선생은 기존의 사전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관행-바꿔 말하기나 빙빙 돌리기'-를 타파하기 위해 '글로 하는 뜻풀이'를 가능한 한 많이 담으려 했다. 예컨대 '사랑'을 단순히 '사모하는 것'이나 '연모하는 것'으로 풀이하는게 아니라, ??생활인?의 관점에서 말의 본질을 파악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연애'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뜻풀이가 실리게 되었다. [연애(戀愛):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한편, 겐보 선생이 이끈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이러하다. [연애(戀愛): 남녀 사이의 그리워한 애정(남녀사이에 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 사랑(戀).] 이렇게 보면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좀 평범하고 모범적인 사전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이 또한 '말은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겐보 선생의 강한 신념에 따라 완성된 개성 강한 사전이다. "'물'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대체로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도무지 단어의 이미지와는 무관한 추상적인 설명이다. '단어의 이미지'는 생활과 함께 한다. 일상의 경험 속에 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단어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145만 개의 용례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말'을 '말'로 스케치하여 알려주고자 했던 겐보 선생의 [산세이도 국어사전]. '말'의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적하고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주관과 의지를 반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야마다 선생의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일생의 대업으로 만들어낸 두 사전 덕분에, 오랜만에 '말'을 던지는 것에서 벗어나 '마음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야마다 선생의 말 대로, '말'은 '부자연스러운 전달 수단'이고 때로는 '말'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이 방해를 받기도 한다. '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며, 심지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말'없이 생활하기는 불가능한 이상, 최소한 어떤 '말'로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 실린 '세상'의 뜻풀이는 깊이 음미할 만 하다. [세상 (世の中): 동시대에 속하는 넓은 지역을, 복잡한 인간상이 엮는 것으로 파악한 말.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미워하는 사람, 구조상 성공한 사람과 실의에 빠지고 불우한 사람이 동거하고, 항상 모순에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