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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크리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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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성장 소설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감명깊게 읽었던 날이 있다. 체로키 족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디언의 삶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연과 교감을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도 북미대륙의 크로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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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성장 소설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감명깊게 읽었던 날이 있다.

체로키 족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디언의 삶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연과 교감을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도 북미대륙의 크로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백인들이 들어 온 후에, 그곳은 백인들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백인들 중에도 인디언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생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위베르 망사옹'인데, 그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어느날  북퀘벡에 사는 인디언 '크리족'을 만난 후에  수 년간에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디언들로부터 그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책은 크리족의 생각을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오래전 백인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인 북미 대륙에 들어오자, 크리족은 소유라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백인들에게 주게 된다.  광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는 백인들에게 그곳을 가르쳐 주었고, 그 결과 백인들은 광물을 가져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켰던 것이다.

 

크리족은 무소유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시작과 끝이 없는 돌고 도는 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젖어온 우리들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들도 많기는 하지만, 그것이 크리족이 살아온 방식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크리족의 이야기를 백인과 비교하면서 예로 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생활 습관, 풍습, 종교관, 자연을 대하는 태도, 가정교육, 죽음, 의술, 영적인 것에 대한 것들을  다양하게 살펴 나가는 것이다.

 

" 관찰의 단계를 지나 관조의 단계로 들어서면 자연은 펼쳐진 책과 같다. 풍경은 책 속의 문장이고, 하늘은 목차이다. 물의 변화와 흐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체취, 공기의 맛 등, 에너지가 없는 종이책에서보다 인간의 조건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바람이 아니던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를 흔들고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고 오리의 깃털을 헝클어 뜨리는 바람은, 아이로 하여금 어른이 40년에 걸쳐 배운 것을 단숨에 깨닫도록 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그 진리를. (p.p. 61~62)

크리족은 이처럼 자연 속에서 책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 왔던 것이다. 

 

 

 

내가 이 책 속에서 가장 감명을 받았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저녁, 체로키족 노인이 손자에게 내면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얘야, 우리 안에 있는 두 마리 늑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그 중의 한 마리는 못 된 늑개지, 그것은 분노, 질투, 후회, 탐욕, 거만, 무시, 죄의식, 원한, 열등감, 거짓말, 불명예, 우월감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경건, 겸손, 친절, 공감, 너그러움, 진실, 동정, 믿음이지. "

손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 (p.p. 108~109) 

 

 

이처럼 인디언들의 자녀교육은 유태인의 탈무드의 내용만큼이나 큰 감동을 준다.

어떻게 생각하면, 별로 큰 가르침이 아닌 것같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야기만 들려주지 답은 아이들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크리족은 삶의 터전이 자연이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간다. 그래서 크리족은 자연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동물을 사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그들에게는 사냥이 신성한 일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또한 흥미로운 것은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고대 그리스의 신화, 기독교, 불교가 가르치는 지혜가 크리족의 지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는 세상이 다르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근간은 일치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이 책은 인문서적이기에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보다는 다소 읽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크리족에 대해서 인류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고찰해 본 책이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n******5 2012.07.02. 신고 공감 6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영혼이 마비된 이들에게 권한다고?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영혼이 마비된 이들에게 권한다고?" 내용보기
'오래된 정원'을 둘러본 듯한 느낌이다. 북미 최후의 인디언 크리족의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는 소유와 욕망을 벗어난 한 원시 부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한없이 느릿하면서도, 뭔가 신비스러운 크리족의 삶은, 자연에 순응하고 온 생명과 교감하며 진정한 행복과 평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프롤로그 '당신이 사는 세계를 의심해보라!'에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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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을 둘러본 듯한 느낌이다. 북미 최후의 인디언 크리족의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는 소유와 욕망을 벗어난 한 원시 부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한없이 느릿하면서도, 뭔가 신비스러운 크리족의 삶은, 자연에 순응하고 온 생명과 교감하며 진정한 행복과 평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프롤로그 '당신이 사는 세계를 의심해보라!'에서 저자는 '서구 사회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볼 때가 되었다. 잊고 있었던,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집필 의도를 덧붙이는데,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자는 것이 아닌,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이 책은 사위가 고요한 새벽시간에 읽길 권한다. 만만한 책 분량(P200 내외)에 출퇴근길에서 몇 번이나 펼쳤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온 존재와 교감하는 크리족의 삶을, 발 디딜 틈 없는 버스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과연 읽어낼 수 있겠는가?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님도 '쫓고 쫓기는 경쟁 속에서 영혼이 마비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엔 너무 밋밋하고, 손에 잡히는 게 없는(알맹이가 없는) 그저 그런 잠언집 정도로 읽혔다. 헌데 퇴근길이 아닌, 새벽녘 맑은 머리로 책을 넘기다보니 문장 하나 하나, 크리족의 삶 하나 하나에 기운이 느껴졌다. 이 책  자체가 크리족이 말하는 '마니투(정령)'가 깃든 듯 마음은 고요해지고, 머릿속은 시원한 바람이 일듯 청량해진

다. 

 

소유란 본래 어딘가에 앉는 것이다. 앉는 것이란 머무는 것이다. 움직임은 소유가 아니다. 떠돌아다니는 원주민들은 저축이 무엇인지, 부동산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소유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다. 상실의 두려움은 모든 두려움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P36~37

 

이 책의 집필 의도에서도 볼 수 있듯,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크리족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본래적 자아의 회복에 있다. 자연과 인간의 끝없는 불균형, 그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병들고, 신음하는 지구와 사람들. 결국 인간의 '소유'와 '욕망'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들인 셈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3차 산업혁명>에서 지적했듯, 이제 세계는 지정학이 아닌 생물권 정치학으로 재편될 것이다. '생물권이란 바닷속 밑바닥부터 성층권에 이르는 구역으로, 수많은 생물과 지구화학적 과정이 상호작용하면서 이 행성에 생명체를 존속시키는 조건을 형성하는 공간이다.'(<3차 산업혁명>, P270)

 

크리족의 모든 행위는 원 속에서 이루어진다. 세상의 모든 힘은 원운동을 하기 때문이란다. 모든 것이 둥글어지려는 속성, 그것은 바로 조화와 회복에 있다. '유죄냐, 무죄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였고, 정작 중요한 것은 단죄보다 조화를 회복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였다.(P075)' 생물권의 조화로운 상생,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어울림의 지혜가 크리족의 삶 속에 녹아있다.

 

한 편의 잔잔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듯한 느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볼륨에 비해 내지 용지의 평량이 너무 두껍다는 점. 물론 재생지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콘셉트를 환경친화적으로 간 것은 훌륭하나, 이 정도 볼륨이라면 차라리 판형을 줄이고, 평량도 낮췄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 하나, 크리족 관련 사진 활용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흑백톤으로 몇 컷 실려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상 굉장히 어색하고, 조화가 어렵다. 제작비나 저작권의 문제가 걸려 있긴 하지만, 사진 이미지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여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면 훨씬 입체적인 편집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 출간 자체를 하나의 의미있는 시도라 말하고 싶다. 가뜩이나 화석연료의 고갈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협이 커진 상황 속에서, 지엽적으로는 4대강 사업과 온갖 토건산업으로 피폐해져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크리족의 삶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닥만 쳐다보며, 파헤칠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이젠 고개를 들고 제대로 하늘을 바라봐야 할 때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후회하기엔 너무도 늦다.

 

***

 

우리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기술, 다시 말하면 타인으로 인한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기술을 잃어간다. 그 기술이 다시 부활한 곳은 '가상의 공동체' 혹은 '소셜 네트워크'이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금세 규범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속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절망으로 나아가는 고독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확신하는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낯선 타인'을 만나려 한다. -P91

 

그들은 아름다움에 본질적이고 영적인 기능을 부여한다. -P93

 

비극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뿐이다.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한 가닥의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아름다움을 통해 말한다. -P94

 

마니투(정령)는 물, 바위, 식물, 동물, 천체, 소리, 바람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도 깃들어 있다. -P104



t******2 2012.07.05.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인디언 '크리족' 이 주는 교훈 [윤성]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인디언 '크리족' 이 주는 교훈 [윤성]" 내용보기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인디언 '크리족' 이 주는 교훈 [윤성]         우리는 왜 죽을 때까지 일 해야 하는 걸까? 이 지구라는 땅에 언제부터 주인이 생기기 시작했을까? 그 주인이란 사람들은 거기에다 값을 매기고 누구는 사고 파는 것을 반복해 돈을 벌고 누구는 한 몸 뉘일 땅이 없이 가난을 벗어 날수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도시에 번식하는 고양이들이 그저 시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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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인디언 '크리족' 이 주는 교훈 [윤성]

 

 

 

 

우리는 왜 죽을 때까지 일 해야 하는 걸까? 이 지구라는 땅에 언제부터 주인이 생기기 시작했을까? 그 주인이란 사람들은 거기에다 값을 매기고 누구는 사고 파는 것을 반복해 돈을 벌고 누구는 한 몸 뉘일 땅이 없이 가난을 벗어 날수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도시에 번식하는 고양이들이 그저 시끄럽고 기분 나쁘단 이유 하나만으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걸까?

 


아마 이 책 속에 나오는 인디언 크리족이 본다면 그런 우리를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나오는 크리족의 삶을 들여다 보며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다' 고 한다면 참으로 뻔한 말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을 보며 느낀 것은 그런 뻔한 표현으로는 다 담아 낼수 없을 만큼의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예전에 '인디언의 복음'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며 그들이 가진 인생관, 철학, 생명을 대하는 태도, 시간의 개념, 소유, 가족의 개념등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은 후 내 삶이 조금은 변했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그런 신비로운 경험은 잊혀지고 나는 또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는 것을 이 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을 읽으며 상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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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미 최후의 인디언 '크리족'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인생관, 시간관념, 가족, 사냥, 사물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 종교 등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그들의 삶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가르침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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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우리의 상고사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 한민족과 인디언들이 한 가족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한 그런 주장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가진 금기와, 종교, 생활 습관이나 생명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등이 지금은 잊혀지고  우리의 정신세계와 아주 많이 닮아 있으며, 그들의 주름진 얼굴이나 인상, 절구, 북이나 소고, 우리의 무당과 비슷한 미타요(샤먼)의 역할 등을 보면 때론 소름끼치도록 비슷하단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의 시간개념과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은 우리의 불교, 즉 동양 사상과도 많이 닿아 있다. 그것은 서양의 기독교적인 정서나 가치관과는 참으로 다른 것이다.

 


이 책에서 느꼈던 그들의 삶과 우리의 잊혀진 유산들을 매치 시키며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득한 옛날 우리의 선조들과 그들은 한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계절에 따라 함께 이동하며 함께 사냥하고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을 하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니 이 책은 더 진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 같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이 책의 끝장을 넘기고 있었으니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그들의 '시간의 개념' 이었다. 현대인이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일직선 (단선적) 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전과 후가 있으며, 진보의 개념을 포함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개념에서 현재는 늘 미래보다 부족하단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 수밖에 없지만, 늘 미래를 꿈꾼다. 일직선인 시간 속에서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가 확실한데 규정할 수 없는 현재는 늘 불만 투성이 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직선의 세계, 미지의 세계, 즉 불안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족의 시간은 '주기적'이다. 그들은 시간을 돌고도는 원으로 인식한다. 의식(儀式)은 절기에 따라 반복되며, 삶 자체가 스스로 순환하며 돌고 돈다. 동물의 이동 또한 생식과 마찬가지고 주기적이며, 늘 제자리로 돌아가는 부동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연의 싸이클에 완벽하게 일치되는 삶을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을 떠올렸다. 계절이 반복되듯 삶의 모습도 반복이 되고 죽음 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그들의 무심한 삶에 그런 엄청한 의미가 담겨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불가의 가르침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현대인은 어떤 일이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초래한다고 보는 '인과적 사고'를 하고 있으나, 크리족은 '공시(共示)적 사고를 한다고 한다. 공시적 사고는 함께 일어나는 일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사고 방식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전체 환경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 역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생물에 국한 되지 않는 사고 방식이다. 죽었든 살았든 존중하여야 하며 모든것을 균형, 관계, 조화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이 또한 불가의 인연의 개념과 다르지 않고, 중국 고대 철학과도 연관이 되어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그들의 모든 삶이 이루어 진다. 부모는 아이들을 낳고 자연속에서 키우고, 그 부모는 늙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도 그의 자녀들이 삶을 이어가며, 그 부모가 죽은 곳에서 다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의 사냥은 동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육체적 행위로, 즐거움을 위해 사냥을 하지만, 그들은 살기위해 사냥을 하고 동물들은 그들을 경외하는 인간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

 


그들의 종교는 어떠한가? 그들에겐 일정한 양식의 '종교' 는 없을 지라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 있다고 믿고 순수하게 그 믿음을 지킨다. 그러기에 그들은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지금 소유를 바라지 않고, 미래를 위해 지금 비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철저히 현재를 살고 자신을 보살펴 주는 존재를 믿는다. '선교사' 들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흥청망청 산다고 비난하며, 미래를 위해 아끼고 비축하라는 가르침을 먼저 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디언들의 삶은 우리에게 던져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대의 삶을 모두 버리고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살아왔고 문명을 이루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며, 이 지구의 주인 이라는 생각만은 버려야만 하는 석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구성하는 존재이며, 다른 존재들과 함께 공생하여야 하는 존재 일 것이다. 지구 한쪽에선 모든 것이 남아 돌아 문제 이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너무나 부족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좀더 쉽게, 좀더 많이, 오직 나만이' 이런 탐욕의 시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태어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조차 모르게 살다가 죽을 땐 어김없이 한줌의 재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말이다.  

 


우울이 유행처럼 번진다. 우리는 가진것은 많을 지라도 진정한 행복을 가지지는 못한 것 같다. 매일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이혼률이 늘고,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노숙자는 늘어만 간다. 좀 더 뺏고, 좀더 가지고, 남들보다 좀더 높은 곳에 가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삶은 진정한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 주지 못한 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인디언의 삶을 파괴한 것은 우리가 가진 마지막 아름다움과 '인간적' 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닐런지. 그들의 교훈이라도 남아 우리를 이렇게 밝혀주니 정말로 다행이 아닌가 싶다.

 

 

 

r********a 2012.07.1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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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면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전제가 생긴 것일까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니면 자아 실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까요?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철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 것이지만 일이라는 것은 노동자를 가두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가 아니었을까요? 지금도 보자면 일 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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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면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전제가 생긴 것일까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니면 자아 실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까요?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철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 것이지만 일이라는 것은 노동자를 가두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가 아니었을까요? 지금도 보자면 일 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본다면 말이지요. 사람이 태어나면 일을 해야한다는 큰 틀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 일이 과연 어떤 식으로 와 닿는가에 대해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북미의 가난한 인디언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신은 존재하나 완벽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은 여러 종교를 한꺼번에 믿고 있는 대단히 희안한(?) 나라이기도 한데, 각 교리들 자체가 나쁜 것은 거의 없다고 보지만 '신은 완벽하다' 라는 전제하에 그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를 합니다. 정말 신은 완벽한 것일까요? 인디언들은 신을 믿지만 그 신이 완벽하다는 것은 부정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으니까요. 대단히 합리적이면서 현명한 판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교리를 '무조건 지키면 잘된다' 라는 전제가 되는데 그 또한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이 되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인디언들의 생각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디언 계열이 그렇듯 자연을 사랑합니다, 아니 자연을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개발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덕에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희생되어진 것들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을 훼손하기 전에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되었을 것을 자연 그대로를 숭상하는 인디언들에 비해 우리는 가진 것을 너무나 많이 파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가고 있고 자연에 대한 경각심에(물론 인간이 힘들어 지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겠지만...) 여러 대체 자원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책의 제목처럼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자 후회의 동물이라고 하지요. 많은 후회를 통해서 얻어가는 것이 많은 종족입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한 번씩 후회하고 돌려놓고 하면 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특별한 역병이 돌지 않고서는 먹이사슬의 맨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의학이 꼭 인간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이지요. 그러는 사이에 자연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도 인간은 자연에게 많은 것을 베풀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자연이 더 이상 줄 수 없을 때 인간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될까요?

 

책을 마치면서 잔잔한 여운이 감도는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성적인 책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렇게 단숨에 이러한 책을 읽어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잔잔한 여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이 '잘못된 것' 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것이 있다' 라는 결론을 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필요한 책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YES마니아 : 로얄 k****1 2012.06.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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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최후의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북미최후의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내용보기
사색을 하고 싶어서 인디언에 대한 책을 샀다. 한 권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예전 방송에서 시골야산을 보여주며 동네아줌마와 아저씨가 봅슬레이를 탄다 자막이나온다 강남아줌마 증권사간부 그들은 시골을 안식처로 택했다 지은이는 잘나가는 대형로펌의 변호사다 의식주 걱정할게 무엇인가 힘든것이야 도시생활하는 사람들이야 다 똑같고 그는 인디언추장과의 만남이후
"북미최후의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내용보기

사색을 하고 싶어서 인디언에 대한 책을 샀다.

한 권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예전 방송에서 시골야산을 보여주며 동네아줌마와 아저씨가 봅슬레이를 탄다 자막이나온다 강남아줌마 증권사간부 그들은 시골을 안식처로 택했다 지은이는 잘나가는 대형로펌의 변호사다 의식주 걱정할게 무엇인가 힘든것이야 도시생활하는 사람들이야 다 똑같고 그는 인디언추장과의 만남이후 삶의 좌표가 완전히 바뀌었다.  진리를 찾은것일까 그 방향을 본 것일까...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한다 - 좋은 말이다.

이세상엔 야만인은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 뿐.

페이지 198에서 미개 민족들의 풍습을 기술한 대부분의 보고서에서 선교사들조차도 충분히 알지못한채 그들의 문화를 성급하게 써내려갔다" - 결코 잊지못할 그들의 오류들.

나를 비우면 신이 들어온다는 것은 모든 가르침은 자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벗어나고 있을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희열에 빠지게 할 책이다. -95

다른 책을 잠시만 언급하면 페이지 127에서 선교사들이 크리족의 땅으로 진입하려고 모든 교통수단을 동원해 진입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못들어갔다 정령신앙 예전 브라질에 산불이 크게 났는데 큰비가 내렸고 뉴스에선 짧게 보도했다 비가 내리기전에 샤먼 두사람이 주술을 했다고..

일본에서도 정령신앙이 많이 존재한다 만화에서건 신사에서건 우리는 산에서 메아리를 외쳐부른다 일본에서는 나무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산에서 야호를 하면 나무도 대답한다고 생각하기에 메아리는 시작되었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사는 메아리 '''' 이건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연장선상인 것을 우리는 아직까지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페이지 131 우리 북방의 샤먼들은 거북등이 갈라지는걸 보고 미래를 점쳤는데 페이지131에서도 우리의 갑골신앙과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이 책을 보며 읽으며 인간의 순수성 생명의 가치 자연의 소중한 정령의 존재 형식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은 통하게 마련이란말 공감한다.

자연을 일주일동안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백인이 인디언추장에게 말한다 이 땅을 팔라고 그리고 그 인디언추장은 그백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한다 물론 정령신앙도 섞였겠지 그 말에 감동을 받은 그 백인들은 그 땅의 이름을 추장의 이름을 따 시애틀이라 명명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다. 나도 그 이야기속의 백인일까

관찰단계를지나 관조의 단계로 들어서면 자연은 펼쳐진 책과 같다 페이지 58 성인 베르나르의 말 이 책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지않는다. 빵이 없는 인간도 아름다움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영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원인의 세계와 관계맺는것눈에 보이는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에 본질적이고 영적인 기능을 부여한다 아름다움을 조화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의 아름다움이란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다.

맞다 나도 그렇다 이렇게 인디언들의 자아를 벗어난 삶을 동경하지만 세속이 찌든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 돈에 얽매이면서 사는 삶 돈이 허무하다는 걸 알면서도 돈 때문에 싸우는 삶을 계속이어나가는 삶 이 책은 그저 자조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내가 너무 황량하다.

좋은 구절이 둘 있어 108, 133인용하고 마치려한다.

 

108

 

   어느 날 저녁, 체로키족 노인이 손자에게 내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얘야 우리 안에 있는 두 마리 늑대가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그 중 한 마리는 못된 늑대지 그것은 분노, 질투, 후회,탐욕, 거만, 무시, 죄의식, 원한, 열등감, 거짓말, 불명예, 우월감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경건, 겸소느, 친절, 공감, 너그러움, 진실, 동정, 믿음이지,"

손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따.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133

 

과학은 오로라가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와 지구의 자기장이 상호작용을 일으킨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충분한 설명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과학은 오로라를 보고우리가 마음으로 느끼는 감탄과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과락의 설명은 참 간단하다.

 우리의 내면에 불을 지피는 그입자들은 과연 무엇인가?  그 입자들이 혹시 영혼은 아닐까?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존재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느낌을 어떻게 셜명할 수 있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4.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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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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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도시인인 나에게시골의 한가로움은 어쩌다 한번 먹는닭 백숙과도 같다.담백하지만 다음날 또 먹고 싶진 않은.나를 잘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사람들의틈바구니에 더 많이 섞여 살고그것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일일이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고내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따위 신경쓸 여력이 없기에.어쨌든 한마디로 도시가 편하다.치열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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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도시인인 나에게
시골의 한가로움은 어쩌다 한번 먹는
닭 백숙과도 같다.
담백하지만 다음날 또 먹고 싶진 않은.
나를 잘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더 많이 섞여 살고
그것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
일일이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고
내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따위
신경쓸 여력이 없기에.
어쨌든 한마디로 도시가 편하다.
치열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려면 없어선 안되는 것들을
손에 쥐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치열한 삶을 산다.

 

어쩌면 마지막에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그렇게 도시에서 치열하게 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도시인은 자연까지도 돈으로 매겨 팔아 넘긴다.
그들은 돈을 벌어서 자연을 살 생각으로 일을 한다.
문명화된 삶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신속함을 제공하지만
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그 물음은 몇십년 전부터 끊임없이 인류에게 던져졌고
많은 답들이-정답은 없다- 책으로 매스컴으로 쏟아졌다.

 

이 책 역시 그 답들 중 하나이다.
미국 대륙이 자본주의 대국으로 자리잡은 후
많은 부작용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국가에 찾아온
금융위기가 최고의 부작용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 전체가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이슈를 목격한 많은 이들은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희미해지고 끝을 알수없는 터널 가운데
있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에 눈을 돌리게 된다.
1위는 바누아투라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다.
원주민들이 자리잡고 사는 그 곳은
과거 미국의 토착인디언들이 살던 모습과 흡사하다.
이 책에 나와있는 인디언은
오래전 북미 제임스만에 살던 크리족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이 담긴 이 책은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 올바로 살아간다는 것이 뭔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모든 사물과 생물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바탕이 되는
그들의 삶을 우리가 똑같이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 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까 말한 것처럼 자연을 돈으로 사서
그것을 깎고 다듬고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러면서 물질적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 될 수도 있지만
자연그대로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우리도 하나의 자연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삶'의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얻는 감정의 풍족함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행복일지도.

a******9 2012.07.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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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by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by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 내용보기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 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를 만났다.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라는 부제를 보고, 인디언의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는 서로 경쟁하고 속도 전쟁을 벌이며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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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 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를 만났다.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라는 부제를 보고, 인디언의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는 서로 경쟁하고 속도 전쟁을 벌이며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위베르 망시옹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였는데, 크리족을 만난 후 삶의 방향 전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수년간 기록한 북미 최후의 인디언인 크리족에 관한 최초의 책이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 크리족 인디언 시애틀 추장


책을 펴니 프롤로그 앞에 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부족 추장의 이 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깊은 감동을 줬다고 한다.

간결하지만, 이 말에는 인디언들의 정신과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그렇다. 진정 소중한 것은 그것이 없어진 후에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인디언 '크리족'이 등장한다. 자연의 흐름을 삶의 방식으로 따르던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라고 한다. 인디언들의 삶을 파괴한 백인들의 이야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인디언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백인들에게 금광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백인들이 돈을 위해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헤칠 것이란 상상은 이들에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에는 크리족의 지혜가 현대의 언어로 알기 쉽게 담겨 있는데,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를 크게 '존중의 지혜, 만족의 지혜, 어울림의 지혜, 무소유의 지혜'로 나누어 들려주고 있다. 


뉴스에서 종종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들을 접하게 된다. 과연 물질과 돈이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 크리족의 지혜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얻고 싶은 것은 얻는다는 것이 과연 영원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인디언들의 지혜를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밑줄긋기)

 

 

돈으로 자유와 행복을 사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채우려 하지는 않는가.


“인간은 행하지 않은 선행에 책임이 있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자기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죽은 뿌리를 밟는 것, 자기 팔다리를 스스로 잘라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르침은 얼마나 많은가! 인생은 끝나지 않는 시련이라는 것, 인생이란 늘 물질과 대립한다는 것.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상을 소유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욕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욕망에 갇힌 우리는 공격에 나선 탱크 안에 갇힌 것과 같다. 탱크 안에서 우리는 목표물밖에 보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덜어낸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f*******9 2012.06.2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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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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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저자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출판 흐름출판/발매 2012.07.03.     P36~37 역사가들은 크리족이 메머드와 비버를 쫓아 이동안 아시아 사냥꾼의 후예였으며 적어도 5천 년 전에 북미 대륙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동 생활을 했기에 자연스레 속세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적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그들이 물질 자체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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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저자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출판 흐름출판/발매 2012.07.03.

 

 

P36~37

역사가들은 크리족이 메머드와 비버를 쫓아 이동안 아시아 사냥꾼의 후예였으며 적어도 5천 년 전에 북미 대륙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동 생활을 했기에 자연스레 속세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적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그들이 물질 자체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이 가진 물건에 대해 말을 걸어오면 "이게 마음에 듭니까? 그럼 가지세요. 이제 당신 것입니다." 흔히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1940년 초, 크리족을 방문했던 식물학자는 아이들이 사탕 한 알 구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물질에 초월한 크리족은 백인들의 물건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소유'는 지금의 천박한 의미와 사뭇 다르다. 소유란 본래 '머무는 것'이다. 따라서 잠시 곁에 머물 뿐 그것은 결코 가지려 하지 않았다. 죽은 동물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백인 사냥꾼의 행동은, 크리족에게는 그저 동물의 생명을 직접 빼앗고 그 사체에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들은 저축이 무엇인지 부동산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유한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이 이룬 부와 명예를 언제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경제 논리에 잠식당한 삶은 크리족에게 있어 기이한 광경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적어도 5천 년 이상 북미 대륙에 살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숲도 파괴하지 않고,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 속에 내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식량과 안식처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간소하고 행복한 삶을 오래도록 산 뒤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평온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연결된 영혼의 세계에 살아간다는 것은 원인의 세계화 관계 맺는 것이고, 자연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결과의 세계를 대면하는 것이다. 나를 비우면 신이 들어온다. 모든 가르침은 자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상을 소유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욕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욕망에 갇힌 우리는 공격에 나선 탱크 안에 갇힌 것과 같다 탱크 안에서 우리는 목표물밖에 보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덜어낸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삶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 인디언으로 숲속에서 사는 건 형편이 어렵긴 했어도 그렇게 쪼들리는 삶이 아니었다. 농작물을 심고 열매 나무에서 나는 재료들로 그들은 충분히 잘 먹으며 지냈고, 동물과 물고기를 사냥해 먹기도 했다. 그들은 먹지도 않을 동물들을 단순히 사냥을 목적으로 많이 잡지 않았다. 자연에게서 최소한의 것만, 꼭 필요한 만큼만 얻었고 나머지 것들은 다 풀어주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두 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또 다른 마음은 영혼의 마음이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은 매우 기초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에 반해, 영혼의 마음은 나의 양심이나 굳은 신념,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내 몸을 꾸려가는 몸의 마음이 영혼의 마음보다 더 커질수록, 이 영혼의 마음은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사라져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영혼의 마음을 잃으면 자신의 본능이나 욕구만을 따르는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어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져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 공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抄書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a 2021.09.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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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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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저자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출판 흐름출판/발매 2012.07.03.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화된 자연, 물질 중심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인간성 상실, 그리고 경쟁 위주의 삶이 야기한 영혼의 결핍 시대이다. 저축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을 추구하다.     P36 그들에게 있어 '소유'는 지금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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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저자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출판 흐름출판/발매 2012.07.03.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화된 자연, 물질 중심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인간성 상실, 그리고 경쟁 위주의 삶이 야기한 영혼의 결핍 시대이다. 저축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을 추구하다.

 

 

P36

그들에게 있어 '소유'는 지금의 천박한 의미와 사뭇 다르다. 소유란 본래 '머무는 것'이다. 따라서 잠시 곁에 머물 뿐 그것을 결코 가지려 하지 않았다. 죽은 동물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백인 사냥꾼의 행동은, 크리족에게는 그저 동물의 생명을 직접 빼앗고 그 사체에 발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들은 저축이 무엇인지 부동산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유한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P48

인디언들은 '인생은 끝나지 않는 시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행복에 집착하지도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우리처럼 단선적이지 않고, 늘 돌고 도는 원으로 보았다. 오늘도 있고 내일도 사라지지 않는 시간 개념 때문에 인디언의 언어에서는 과거나 미래를 나타내는 동사 변화가 없다. 오늘에 충실할 뿐 미래에 집착하지 않았다. 반면 현대인들은 현실에 살지 못하고 미래에 집착한다.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욕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욕망에 갇힌 우리는 공격에 나선 탱크 안에 갇힌 것과 같다. 탱크 안에서 우리는 목표물밖에 보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덜어낸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P59

모든 쾌락을 뒤로하고 오로지 자연과 함께 머물며 명상을 해보면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거미의 인내와 거위의 협동심을 배울 수 있다. 오리에게서는 여해의 참맛을, 고라니에게서는 고독을 배울 수 있다. 산처럼 자라하고 앉아 꽃처럼 명상에 빠지고, 흐르는 샘물이 되어 볼 수도 있다. 제대로 수행하기만 한다면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P93

우리의 문화는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를 잊고 있다. 아름다움을 상품화해서 부자들의 전유물로 만들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추악한 것만 남겨두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원주민들의 사고는 우리보다 훨씬 흥미롭다. 그들은 아름다움에 본질적이고 영적인 기능을 부여한다.

 

 

P108~109

어느 날 저역, 체로키족 노인이 손자에게 내면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얘야, 우리 안에 있는 두 마리 늑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그중 한 마리는 못된 늑대지. 그것은 분노, 질투, 후회, 탐욕, 거만, 무시, 죄의식, 원한, 열등감, 거짓말, 불명예, 우월감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경건, 겸손, 친절, 공감, 너그러움, 진실, 동정, 믿음이지."

 

손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벨랑제 공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a 2021.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나무는 과연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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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댈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크리족 인디언 추장   인디언에 관련된 서적을 유독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까.. 근 이년만에 구입한 책이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였습니다. 저는 인디언을 [자연의 시인] 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 또한 그렇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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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댈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크리족 인디언 추장

 

인디언에 관련된 서적을 유독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까.. 근 이년만에 구입한 책이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였습니다. 저는 인디언을 [자연의 시인] 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 또한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도 재미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장 한장 읽으며 나를 볼 뿐입니다.

그렇게 읽으며 나 또한 그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됩니다. 물론 결론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 뿐이지만..

 

책의 내용은 그저 그렇가도 볼 수도 있습니다. 아주 흔한 이야기들, [ 아!~ ..] 라는 짧막한 감탄사와 [에이 설마..] 라는 지나가는 의문과 나지막한 흐뭇함과 씁쓸함이 이 책의 내용일 뿐이죠. 하지만 다시 보게되고 다시 읽게 되리라 봅니다. 너무나도 정적으로 다가오는 책이기에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읽으면 다르게 느껴질테니까요..

 

마지막 나무가 과연 사라질까요..

 

 

 

 

b******b 2012.10.31.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