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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생식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처럼 피임과 낙태, 인공수정이라는 기술에 지배받는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의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서 끊임없이 비인간화되고 있을 뿐, 진정한 여성 해방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여성 해방과 기술 중립성이란 이름으로 여성의 몸에 가해진 기술적 지배와 폭력성을 고발하며, 진정한 여성 해방은 모성을 지닌 여성의 몸을 존중하는 의식의 변화와 체제를 만들어갈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임신 기간 동안 의사의 폭력성을 경험한 저자는 우리 시대가 얼마나 여성의 몸을 경시하는지 실감했다. 임신부로서 아기를 낳을 모성이 아니라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하는 잠재적 환자로 다루어지며 불쾌한 경험들을 했다. 또 주변에서는 이른 나이에 임신한 어리석은 여자로 경멸의 시선을 받아야 했고, 그러한 경험은 임신 초기부터 겪는 몸의 변화와 함께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 이 책은 임신을 겪으면서 그동안 감내한 모든 수동적 경험을 떠올린 저자가 여성의 몸이 지닌 생식력으로 인해 굴욕을 당한 경험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한다.
선도적인 여성으로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푸코의 책에 빠져 열심히 공부한 철학도이면서도 저자는 그동안 남성의 욕망이 지배하는 질서에 따랐다. 분위기를 깰까봐 상대 남성에게 콘돔을 사용하라고 권하지 못했다. 매일 피임약을 먹었고 항상 혼자 임신을 걱정했다. 그리고 스므 살에 이미 세 번이나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저자의 이러한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여성을 단지 성적 쾌락의 대상이 아니라 임신할 수 있는 여성으로 대하는 미래의 남편을 만나면서다. 저자는 비로소 그동안 정신분열을 겪듯 분리해온 몸과 정신을 통합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바로 나의 자궁과 머리를 연결 짓고자 함이다. 나는 육체를 생각하고 경험하기 시작했다.... 나의 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저자는 "'성의 자유화'는 '기술 중립성'이라는 신화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기술 지상주의는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체제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면서 기술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로 돌아보지 못하게" 하며 "출산과 피임은 여성의 몸을 전례없는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려 여성이 피임을 하든, 중절수술을 하든, 인공수정을 하든 홀로 결정해야 하며 기술 때문에 변형된 세상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중심 체제에서 생식력의 통제를 몸소 경험해야 하는 여성은 첫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은 피임약을 상업화하는 제약회사뿐 아니라 유통사와 이를 허가하는 정부, 그리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에게 의존한다. 여성의 호르몬 피임(피임약, 피임 패치, 삽입관 또는 피임링)은 육체가 이미 임신한 상태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배란을 방해하는 기술이다. "합성 호르몬에는 다른 상품에서는 금지되기까지 한 해로운 물질이 포함되어 내분비샘을 강력하게 교란시킨다." 또 "루프의 효과는 자궁의 지속적인 염증을 기초로 한다."
"루프와 같은 화학적 피임은 성욕 감소, 질 출혈, 두통, 유방통, 골반통, 정맥류와 같은 부작용의 영향으로 아프지도 않은 여성의 몸을 (아픈 몸으로) 바꾸어 버린다. 특히 심근경색과 뇌졸증의 위험이 상승하고, 심부정맥 혈전증과 폐색전, 유방암, 자궁경부암, 간암의 위험을 높이며 지방질과 혈당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피임은 점점 더 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 혹은 노예화와 같은 소비주의적 방식이라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다."
합성 호르몬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위험과 함께 인공수정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야기한다는 점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인공 수정은 여성 본인이 불임이 아니더라도 여성을 환자, 시술 대상자로 만드는 기술적 논리에 따르게 한다. "인공수정은 한 번 시도할 때 성공률이 10~15%밖에 되지 않으며, 시험관 수정은 20~24%,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은 26%밖에 되지 않는다. 임신에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다."
또 불임 부부에게 제공되는 난모세포의 '기증자'가 이상한 사람일 경우, 인공 수정 때문에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난모세포 '기증'은 여성에게 부담이 너무 큰 시술이다. 여성은 10~12일 동안 어쩔 수 없이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한 피하 주사를 맞아야 하고 시술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4번 채혈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24시간 입원하는 동안 국소마취를 하고 질을 통해 난자를 채취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한정된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만큼 더욱 괴로운 과정이다. 따라서 난자 불법 거래의 상징적이고 신체적인 부담은 정자 '기증'의 부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데 법은 자꾸 이 둘을 혼합한다. 여성의 몸의 특수성을 개의치 않고 여기서 또 한번 남성의 몸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난자 기증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쉽게 초과한다. 여론은 난자 거래에 호의적이며 그 흐름이 '대리모 출산'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저자는 대리모 출산이 이타적인 행위가 아니라 아이를 사고 팔며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더러운 착취와 희생의 행위라며 비판한다. "기증이라는 단어는 여성의 몸을 마치 공유할 수 있는 재산이나 여성이 주인으로 있는 자원 양성소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것이 '나의 몸은 나의 것이다'라는 슬로건의 논리적인 이면이다. 기증에 호소하는 것은 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라고 암시할 뿐만 아니라 생식력을 우리의 이기주의가 타인을 갈취할 수 있는 권리라는 뜻을 내포한다. ... 모든 '사적인' 소유가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몰수한다고 주장하는 사유화의 논리가 몸에 적용된다."
저자는 "혁신과 기술적 진보의 숭배 뒤에는 여성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해가 숨어있다"고 한다. 플라톤으로부터 서양철학의 모든 전통에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 왔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발생 연구에서 여성을 불완전하고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남성으로 이해했고, 프로이트는 여성을 남근이 거세당한 존재로서 남근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 사회의 모든 곳에서 중립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 "단지 여성에게만 몸을 길들이라고 강요하는 사이비 중립성을 위해 성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타고난 남성다움에 대한 프로이트적 가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파렴치한 부정과 모성의 원시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은 모든 생태학의 토대"라고 역설한다. 여성 스스로가 생식력을 통제하고 자율성을 가지며 몸에 대한 기술적 관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기술과 합세한 남성우월주의가 여성의 몸을 여성에게서 소외시키는 기술적 대상으로 다루며 파편화시키는 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멀었다는 데 공감한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가져온 난자 기증과 대리모 출산 등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의학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태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운동과 함께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하는 삶의 형태라 생각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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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은 모든 생태학의 토대다. 왜냐하면 여성의 몸은 우리 자신의 자연성을 나타내며,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 것, 즉 살아 있는 자들을 의미하는 세대의 연속성 안에 우리를 새겨 넣기 때문이다. 생태학은 여성의 몸을 존중하는 조건을 통해서만 생명의 모든 측면을 통합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외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면서 우리의 체화에 대한 표한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 몸과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우리의 정치, 윤리, 세계관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274쪽)
여성의 몸은 무척 신비롭다. 어린 소녀에서 2차 성징을 지나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성장하는 건 무척 당혹스럽다. 사전에 충분한 교육을 받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임에도 그렇다.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신체인데도 누군가는 그저 자궁을 지닌 몸으로 국한하여 바라본다.
마리안느 뒤라노의 『당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사이에』는 그런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로 두 아이의 엄마다. 철학을 공부했고 공립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워킹맘이라 할 수 있다. 책은 그녀의 솔직한 임신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진 그녀가 진료를 받으면서 의료현장에서 겪는 감정, 그리고 그곳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읽은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불편한 부분도 있었고 프랑스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생명을 잉태한 몸,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기쁨을 누려야 하는 시기에 의사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 지금 임신 6개월에 유산될 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아니에요.” 의사의 인간미는 지속 시간이 아주 짧았다. 유산 가능성이 ‘별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 행복해야 했던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진료실을 나섰다. 의사에게 나는 이미 유산이나 고통스러운 낙태 수술을 겪은 사람이든, 아무 일도 겪어 보지 않은 개인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결국 자궁일 뿐이었고 증상들의 집합소, 꽃병이었다. (37쪽)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여성들의 솔직한 절망은 이런 부분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거기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임신의 부담과 고통도 모두 여성에게 전가시키는 현실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여성에게 임신은 곧 상실이며, 상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노동과 피임, 낙태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믿음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방해하는 남녀 관계 유지의 어려움, 정규직 일자리 감소, 너무 비싼 집값과 같은 장애물은 무시해 버리는 게 더 쉽다. (137~138쪽)
피임 기술과 인공 수정을 통한 생식은 여성이 육체가 처한 현실과 강압을 더욱 무관하게 만든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싶을 때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임신을 현실적인 차별로 고려하지 않으며 단지 여성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선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142쪽)
불임부부에게 제공되는 난모세포의 이야기도 놀라웠다. 난모세포의 기증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사실 난모세포 ‘기증’은 여성에게 부담이 너무 큰 시술이다. 여성은 10~12일 동안 어쩔 수 없이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한 피하 주사를 맞아야 하고 시술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4번 채혈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24시간 입원하는 동안 국소마취를 하고 질을 통해 난자를 채취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한정된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만큼 더욱 괴로운 과정이다. 따라서 난자 불법 거래의 상징적이고 신체적인 부담은 정자 ‘기증’의 부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10쪽)
여성의 몸은 무엇일까?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시선,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 뒤에 여성의 몸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무섭고 두렵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여성에 대한 혐오는 일상이 되었다. 성에 대한 개념을 더 정확하게 알고 스스로를 지켜야 할까. 여성의 몸을 안다는 건 이해를 하려는 노력과 여성의 몸 그 자체를 온전히 존중하는 건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필요한 것, 바로 그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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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소장한 책 중 표지 디자인과 색감이 가장 세련되고 예뻤다. 여성의 몸과 모성을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어떻게 상품화하고 소비하며 통제하고 있는지, 기술체제가 여성의 몸을 다루는 데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소외시켜왔는지 서술한 통찰력 있고 날카로운 글이었다. 산부인과의 폭력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에 깊이 공감했고, 대리모와 난자 기증 문제 앞에선 참 어렵고 심란한 기분이었다.
피임약과 피임도구의 상용화로 ‘누가’ 이익을 선점하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여성들을 통제하는 방식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여성의 선택권을 넓혀준 진보적인 기술이라는 후광 뒤에 어떤 착취구조가 숨어있는지, 오히려 여성의 몸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여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배제하고 자율권을 거세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피임의 상용화를 통해 궁극적인 이익을 보는 집단은 남성과 자유시장경제였다. 피임의 상용화로 남성에게 부성의 책임을 면제하고 아예 박탈해 버리는 방식을 통해 성관계에 대한 모든 책임은 여성에게 돌리며,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 넣는다.
프랑스는 피임 시행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여성은 감염 우려가 있는 검진,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예방 조치, 호르몬 주기를 변경시키는 피임법, 여성의 리듬을 무시하고 벗어나기가 어려운 남성의 욕망, 계속되는 임신 중절 수술 등 모든 면에서 패배자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모든 방법을 다 쓰면서도 낙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대안도 없이 기술적으로 통제되고, 감시당하고, 촉진당하고, 비워지는 상황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이제 누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자꾸 어린 여성들과 섹스를 하려고 할까? 매력 없는 콘돔과 거추장스러운 사랑의 충성 그리고 위협적인 부성애로부터 벗어났다고 여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남자다. p.99 여러분이 생식력이 있을 때는 불임을 도와주는 약을 팔고, 이후 여러분이 불임이 되면 또 생식력을 활발하게 하는 약을 판다. 이를 시장 사회라고 한다. 여성들은 고용 시장에 몸을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동시에 광활한 생식 시장을 먹여 살린다. p.134
여성에게 임신은 곧 상실이며, 상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노동과 피임, 낙태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믿음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방해하는 남녀 관계 유지의 어려움, 정규직 일자리 감소, 너무 비싼 집값과 같은 장애물은 무시해 버리는 게 더 쉽다. p.138
일자리 성 평등을 다룬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일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생식력 제재를 묵과한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경력이지만 여성이 모성을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일자리라면, 본능적으로 조금은 주저한다는 사실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놀란 척 한다. p.140
이 외에도 자유 시장과 남성우위사회가 여성을 착취하는 메커니즘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내용이 줄을 잇는다. 속이 시원하다가도 그동안 겪어 왔던 변하지 않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주류 남성 사회는 여성의 고용 차별 앞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남자들은 까라면 까지만 여자들은 꾀를 부린다, 여자들은 애낳으면 일을 제대로 안 한다 등등. 시장에 착취당하는 을로서의 정체성만을 내세우며 여성들을 착취하는 남성 사회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고 여성들을 비난하거나 방관한다. 여성들은 자유시장과 남성주류사회에 이중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으나, 내 손가락에 피가 나니 네 손목이 잘린 것은 알 바가 아니라는 논리다. 전형적인 을과 병의 관계이나 을로서의 고단함이 병이 겪는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20대 중반만 들어서도 채용 면접에서 남자친구 유무, 결혼 계획 등의 사적인 질문을 받는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그들만의 네트워크에 여성들이 낄 자리는 없다. ‘큰일’은 여성에게 맡기지 않으며 발전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한편 발전하려는 노오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다시 한번 차별하고 혐오한다. 기회를 독점한 채로 발전 가능성이 없다며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들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학업성취도는 여성이 항상 남성을 앞지르지만 고용 시장에만 나서면 여성들은 사라진다. 그나마 공정하다는 공기업에도 30대 직원의 경우 여남성비가 2:8이다. 이래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노력 부족이 문제인가? 이런 현실 앞에서 낙태와 피임이 과연 여성이 가진 자유로운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다못해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 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해왔다. 저자는 프랑스 여성 인권의 참담함을 임신 후 휴가 기간을 근거로 지하와 같다고 비유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70년대에 낙태죄가 폐지되어 임신 중단이 합법화된 국가이다. 우리 나라보다 약 50년정도 빠른 시기이다.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참담함의 바닥이 끝이 없었다.
피임의 대중화로 인해 얻는 남성들의 편리함과 이익에 대한 이야기엔 크게 공감이 갔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여자친구를 걱정해 남자친구가 피임약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병원에 가는 커플의 비율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성들이 정말 여성을 성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면 그럴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는데, 역시나 아니었구나 싶었다. 성관계를 통한 친밀감과 즐거움은 함께 나누되 부담은 여성 혼자 감당하는 관계라니.
남성은 여성을 대하는 자신의 행동 방식을 변경하지 않기 위해, 성생활의 잠재적 위험들을 기술적인 방법에 맡기고 싶어 한다. 교제 중인 여성의 몸과 리듬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피임약을 처방하고 임신 중절을 계획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p.98
피임약과 낙태는 비겁한 남성에게 최고의 변명이 되어 준다. 참 지독히도 아름다운 해방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은 의사와 화학의 지배 아래서 자신의 육체를 기술에 맡기고 사람들이 소위 선택이라고 부르는 강요에 갇힌 자신을 발견한다. p.101
남성 피임약이 개발된 지 꽤 되었지만 상용화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술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왜일까? 남성 피임이 확산되려면 진짜 혁명이 필요하겠지만, 혁명이란 대부분 신뢰하기 힘든 투자인 경우가 많다. 반면 여성의 피임은 남성 지배라는 습관을 연장시키기만 하면 된다.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호르몬 균형은 지키면서 섹스 파트너에게 해로운 화학적 피임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피임을 적용하라고 하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 테스토스테론과 프로게스테론 주입에 대한 연구는 기분 장애와 과도한 성욕과 같은 부작용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바람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p.102
여성이 겪는 피임약의 부작용만 해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조용하고 은밀하게 처리되는 상황이 슬프고 또 슬펐다.
이 책을 통해 여성의 몸을 둘러싼 기술, 시장, 남성연대의 착취와 통제구조가 보이지 않게 얼마나 공고한지 느낄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두가 한번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글들을 읽고 그래서 어쩌라는거냐 과거보다 낫지 않냐, 배부른 소리를 한다. 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을 위해 아래 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내가 감히 산부인과의 폭력을 고발할 때면 사람들이 날에게 주로 반박하는 내용이 있다. 기술을 비판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이며 응석부리는 아이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반론은 사유 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과거가 흉악한 어둠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무미건조한 삶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지나간 불행을 회상하면서 지금 이곳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지적으로 태만하다는 징후일 뿐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사실상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한 보수주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p.5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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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임신하여 출산한 젊은 엄마인 저자가 들려주는 페미니즘 이야기. 확실히 처녀(미혼)들이 들려주는 페미니즘 이야기보다 더욱 공감 가고, 배울 점이 많았다.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해보지도 않은 이들이 매일 그로 인한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를 경험해본 사람들의 한마디가 더 크게 와닿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어떠한 페미니즘 도서에서도.. 이렇게 임신과 출산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풀어내는 도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지만, 저자가 맹렬하게 지적하는 부당함 들을 애써 외면해왔었다.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외면해왔던 진실들을 마주하고 변화해야 할 때가 왔다. 특히 피임과 인공수정 문제와 대리모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나의 인생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출산 후에 바로 자신의 몸매를 회복하는 산모들은 정말 .. 비현실적이다. 극단적으로 마른 경우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처녀시절의 몸매로 돌아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출산 후 100일 전후로 '앉았다 일어나기'도 못 했었다. 앉는 것도 힘들지만 일어나려고 할 때 전신이 덜덜 떨렸었다. 평소 내가 약한 척하는 성향도 아닌데, 진심으로 힘들었다. 이렇게 전신에 입은 대미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갓 출산한 산모들에게 비임신 시절의 컨디션(=몸매)으로 돌아가기를 강요하고, 이미지를 씌우는 것은 폭력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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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인 몸에 발목 잡힌 페미니즘은 매우 선정적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나누기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몸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여성의 몸, 특히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거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불합리와 불친절함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한다. 프랑스의 의료시스템이 우리와 다를것이고 사회문화적인 환경도 다르니 일반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공감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페미니즘 운동으로 여성의 몸을 해방하자라는 문구가 많이 보이는데 이 책은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도 될듯 싶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여자가 감내해야 할 많은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산부인과의 경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부분은 아쉽다. 몸의 변화가 갖는 어려움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제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또한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되는지도 같이 살펴보아야 이 책이 좀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낼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이 책의 결론에서 오늘날의 여성들이 자기 몸을 관리 통제할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갖자고 하면서 그 해답이 가정이라고 한 것은 글 전체를 봤을때 다소 쌩뚱맞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관습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만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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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자유로워졌다고믿는사이에 #마리안느뒤라노 #책밥 .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옛 광고문구가 생각난다. 그 여자는 뭐가 그리 행복했을까? 옛 동화속 공주들은 왜 항상 멋진 왕자님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설정으로 끝이 날까? 그 결혼생활은 영화처럼, 아침햇살처럼 찬란했을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여자들의 지위는 언제부터 이렇게 위치되었을까? 아담과 이브 때 먹은 사과 때문인가? 아님 여자는 태초부터 아담의 갈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자의 부속품처럼 살아왔어야 했던 걸까? 여자들의 해방의 역사는 오래지 않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생긴 이래, 사회에서의 유리천정은 날로 깨져가고 있다지만, 사회의 불평등은 여전하다. 얼마전 축제를 치르고 있는 이대를 다녀왔다. 이대. 한국 최고의 여자대학. 이대하면 타짜의 김혜수가 가장 먼저 생각날만큼 존재감 있는 여자대학. 하지만 여자대학. 여자대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차별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남자대학이라 명명한 곳은 없다. 사회의 뿌리깊은 남녀차별은 우리도 모르게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성에 가장 자유롭다고 알려져있는 프랑스 사람임에도 여자가 겪고 있는 많은 편견과 차별을 토로한다. 이땅의 여자들이여! 더 자유로워져라! 그리고 더 당당해져라! 우리는 그저 다른 종일 뿐! 우리의 종족을 더욱 번성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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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사이에>는 피임, 낙태, 인공수정, 대리모 등 여성의 몸(생식력)에 대한 현대사회의 기술적 통제들을 고발한다. 그리고 생식력에 대한 기술적 통제가 여성의 생산력을 효과적으로 착취하려는 자본의 통제와 협잡하고 있음을, 그리고 국가 시스템은 이를 방조 혹은 동조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저자인 마리안느 뒤라노는 여성(주체)이 자신의 신체(대상)에 대한 기술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여성해방이라 말한다. 남성과 차별화되는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경이로운 특징인 생식력에 대한 여성과 남성 그리고 사회 전체의 존중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성'의 회복을 강조하고, 이를 위하여 여성과 남성이 생식에 대하여 함께 책임지는 '결혼' 제도를 옹호한다. 화학적 피임이 여성의 신체를 해하는 폭력을 밝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피임법을 이야기한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기술권력, 자본권력에 스스로 넘긴 것은 심각한 오류임으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이러한 주장과 논거 하에서 기술적 도움에 힘입어 여성이 독립적, 개별적 주체로 자유로워졌(진)다는 기존 페미니즘 이론을 반박, 기각한다. 페미니즘을 매우 얕은 층위에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리안느 뒤라노의 <당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사이에>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수준의) 주류 페미니즘 입장에서 반동적이라고 비난 받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당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사이에>는 논쟁적이다. 여성들, 특히 여권 운동을 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이 책에 대한 견해와 평가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