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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가 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멋진 척 읽어보고 싶어서 들었고, 가만히 내려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내게 하루키 트라우마가 되었다. 지루한 하루키라고.. 책이 공부에 방해되니 대학가서 읽으라는 훈계가 당연하던 학창시절을 보냈더니, 막상 시간이 많아졌음에도 책과 친해지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겉멋으로 집어든 책이 읽혔을리 만무한 일.. 그 후 주변에 늘 포진해 있던 하루키 찬양자들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었다. 하루키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데, 얼마 전 하루키의 새 책이 나왔다. 하도 요란하게 마케팅을 하니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전에 비하면 지금은 책 스토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책에 집착하고 있는지라.. 우연히 지인을 만나러 서점에 갔다가 그의 신작을 발견하고는 스윽~ 읽어보았다. 생각보다 그의 글맛은 괜찮았다. <상실의 시대>가 궁금해질만큼.. 그러다 우연히 좋아하는 황경신 작가의 책 속에서 하루키의 이름을 만났다. 파리로 떠나는 짐 속에 챙겨갔다는 유일한 책..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만나는 내 생애 첫 하루키 책!! 생각보다 그의 문체가 눈에 들어왔다. 스토리의 탄탄함 보다 문체나 사물을 마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에 끌리는 편인 내게 딱인 책. 초반부터 하루키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서 묻는다면, 주인공 하지메를 통해서 엿보는 하루키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때문에 밤을 새웠노라고.. 중반 이후, 다 성장해서 결혼까지 한 주인공 앞에, 그가 늘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던 유년시절 여자친구 시마모토가 등장한 후부터는 하루키의 문체나 시선보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궁금해서 온 신경이 곤두섰었다고.. 그리고 결말.. 하루키는 나를 제대로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해주겠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이렇게 끝이라니..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결말에 고민을 하다보니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만약 그가 대단한 반전으로 우와~하게 만들었다면 간과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무엇!! 그 무엇을 건져낼수 있었다. 이것이 하루키만의 방식이었을까? 이제 <상실의 시대>를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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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는 점심을 먹은 직후에 의무적으로 운동장에 모여 반별로 포크댄스를 추어야 했었다. 다른 스포츠나 놀이도 많았을 텐데 왜 잘 알지도 못하는 포크댄스를 어린 학생들에게 강요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그랬다. 산간벽지의 작은 학교에 다녔던 나로서는 다른 학교도 그랬는지, 또는 그것이 국가적 시책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포크댄스라 하면 으레 남학생과 여학생이 손을 맞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마련이었다. 요즘의 학생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과 손을 잡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물론 여학생과 손을 잡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여학생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대화의 내용은 불문하고 온 학교에 아무개와 아무개가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곤 했었다. 그랬던 시절이었으니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놀림은 곧 남자로서의 불명예요 수치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심하고 숫기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양호실을 찾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에서 반별로 모여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좌우로, 혹은 빙빙 도는 춤동작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작은 나뭇가지나 다 먹은 하드 막대기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그 익숙치 않은 동작을 따라하곤 했었다.
그때 매번 나의 짝이 되었던 여학생이 생각날 때가 있다. 간신히 이름만 떠올릴 뿐 얼굴의 윤곽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말이다. 키가 작달막했던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몹시 궁금해지곤 한다. 국민학교 동창을 만나도 6학년 때 전학을 갔던 그 여학생의 소식을 아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의 생각을 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었다. 서른일곱 살의 주인공 하지메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다. 두 개의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가정과 삶이 안정될수록 자신은 무언가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 친구였던 시마모토를 우연히 재회하면서 하지메는 시마모토에게 급격히 빠져든다. 나는 시마모토가 하지메에게 했던 이 말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잘 들으세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내게는 중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내 안에 중간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중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중간 또한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전부를 취하든지, 아니면 취하지 않든지, 그 어느 쪽 길밖에 없어요. 그것이 기본적인 원칙이에요." (p.215)
하루키의 소설치고는 그리 길지 않았던 이 책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인간은 삶이 지속되는 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혼재되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시마모토는 그 시간의 혼재, 시간의 중첩을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과거와 혼재된 현재의 삶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과 의지를 신뢰했던 현재의 삶을 파괴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믿음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기 때문이다.
시마모토는 결국 하지메를 떠난다. 주인공 하지메도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무런 기약도 없이 떠난 시마모토는 결국 하지메의 미래를 장악할 것이다. 현재를 온전히 현재로서 살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주인공 하지메처럼 어느 순간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했어야 했다. 시마모토와 같이 들었던 냇 킹 콜의 '국경의 남쪽'은, 하지메와 시마모토에게 국경의 남쪽은 결국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이었음을,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이었음을,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태양의 서쪽은 누군가의 미래였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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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클럽'을 통해 이해하게 된 再讀이란 개념은, 정말 매혹적이다.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은 생각과 기억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 책을 산 날 바로 읽고 그대로 꽂아 두었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97년에 출판된 책이니 아마 그쯤에 읽었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얄팍한 것이어서,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이 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잠 못 자던 새벽에 펼쳐든 책을 그 날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아직도 하루키를 짝사랑하고 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 하루키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때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키가 나의 이십대. 막 시작하는 이십대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서부터 (한때의, 혹은 아직도) 나의 문체에까지.
다시 책으로 돌아와.
그래도, 그 얄팍한 기억의 갈피에 진하게 새겨져 잊혀지지 않았던 한 장면은, 이즈미의 얼굴.
표정이라고 이름붙일만한 것이 단 한 조각도 없었다는 그 얼굴에 대한 묘사였다.
그녀의 얼굴로부터는, 표정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릴 법한 것이 하나도 남김 없이 박탈되어 있었다, 라고. 그 얼굴은 내게 가구라고 하는 가구는 하나도 남김 없이 꺼내 버린 후의 방을 생각게 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다감했던 한 소녀가 서른 일곱이 되어 아파트의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그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대한 그 어떤 우화들보다도 소름끼쳤다.
본 적도 없는 그 이즈미의 얼굴을 나는 97년 즈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때로는 그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대한 충격과 함께.
때때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의 경험과 기억에 기대서 내 속의 이해를 끌어내고 각인시키는 어떤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는 하지메와 같은 경험도, 영혼을 온통 흔들어 놓을 만한 사랑의 기억도 없지만 읽다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냥 온 마음으로 하지메가 되고, 이즈미가 된다. 하루키를 사랑하는 또하나의 이유.
어쩌면 정말로. '시마모토'의 존재는 하지메의 환상이나 이상향, 소설속에서 하지메의 입을 통해 몇 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는 '공중정원'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하지메에게는 시마모토라는 강렬한 기억과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에 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즈미는 지독한 현실이었고, 시마모토는 지극한 신화였다.
시마모토를 잃은 하지메는 훗날, 그 속에서 무언가 뚜욱. 하고 끊어져 끝없이 태양의 서쪽을 향해 걸어가는 농부처럼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인상깊은구절] "옛날 어느 책에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이든가. 무슨 책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아무튼 그것은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에요. 있잖아요, 상상해 봐요. 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그 매일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에요." "그런 생활은 아오야마 부근에서 바를 경영하고 있는 것과 몹시 다른 종류의 인생일 듯이 들리는데." "그렇겠죠." 하고 그녀는 말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몹시 다르겠죠.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계속돼요." "하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겨울에는 밭을 갈 수 없을 텐데." "겨울에는 쉬어요. 물론." 하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겨울에는 집안에 있으면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죠. 그리고서 봄이 오면, 바깥으로 나가 밭일을 해요. 당신은 그런 농부인 거예요. 상상해 봐요." "해보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 버리고 말아요." "죽다니, 어떤 것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무언가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높은 하늘을 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거듭해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서는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지면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거예요.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 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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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들을 아껴가며 하나씩 읽고 있다. 오래 전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로 천천히 생각나면 한 권 골라 읽는 식으로. '해변의 카프카'가 나와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그 다음으로 읽은 장편이 이 책이다.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데가 있다. 다른 작품들을 읽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인물의 내면을 읽으면서 느꼈다. 놀랍도록 나와 비슷하잖은가, 언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년을 넘어섰을 일본의 남성 작가인데도, 하루키란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이 완전히 같은 데가 있었다. 어떤 일이 닥칠 때 대응하는 방법대로 사람을 분류할 때, 어떤 종류의 일에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에 항상 같이 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가 좋았다. 시마모토라는 여성을 그려내는 부분은 어디든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파랑색의 이미지. 그녀를 좋아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드러낸 부분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좋았다. 전체 내용이 머릿속에 그대로 담기기도 했지만 대사 하나하나도 앙금처럼 남아 마음 속에 맴돈다. ['당분간' 이라고 하는것은 기다리는 쪽에서는 그 길이를 잴 수 없는 언어라오, '아마도'라는 것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언어요. ] 이상하게도 하지메가 '아마도란 말 따위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당분간이라는 말도.' 했던 것이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듯한 감정을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잘 잡아내는 걸까. 그의 절실함이 이 말로 다른 어떤 말보다도 더 잘 드러난다. 하루키가 문장을 쓰는 방식을 너무 좋아한다. 그는 대신할 말이 없을 것 같은 표현을 찾아낸다. 자주 볼 수 있는 그를 흉내내는 듯한 문장에서는 어떤 어색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단순한 문장력이라기보다 어떤 종류의 솔직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즘, 이란 것처럼. 잘 어울리는 문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을 다른 소설에서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불륜이나, 첫사랑, 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새가 없었다. 그런 사랑의 분류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하게 만든다. 뛰어난 포장일 뿐 통속적인 이야기, 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런 상황 설정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으로 하지메와 시마모토 사이에 흐르는 감정만을 남기고 모두 투명해져 버린다. 그럼으로써 하루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를 위한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증폭된다. 나만을 위한 것,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알 수 있는 것, [그 흡인력]. 최근 해변의 카프카에서 그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면 서글픈 느낌이 된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은 '일반론'이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는 이 작품에서 당신 자신의 얘기를 하고자 한게 아닌지? 당신의 사랑과 환상, 당신의 내면, 을 철저히 정직하게 드러내고자 한 건 아닌지.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내게 있어선 어떤 다른 소설보다도 매혹적인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마도'란 말 따위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당분간'이라는 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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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을 읽을 때면 문장력, 문장에 담긴 재치와 표현력에 감탄한다. 그의 소설은 아무리 지루하고 평범한 이야기일지라도 물흐르듯 유유히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순식간에 책장을 몇페이지씩 넘겨나가면서도 가슴속에는 기이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게 뭔가, 이게 뭔가"하고. 평범한 이야기들을 아무리 재미있게 서술하더라도, 그래서 막힘없이 책을 읽게 하더라도 그의 소설에서는 "감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다가 혹여 밑줄이라도 긋노라면, 대개 그 글이 "감동적"이고 "교훈"을 주어서가 아니라, 단지 "멋"있고 "재치"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의 이면에는 "허무"가 담겨있다. 그의 소설은 마치... "솜사탕"과 비슷하다. 맛과 향기가 그럴듯하지만 먹고나서 "배부르다"는 느낌은 없다. 아무리 향기를 들이마셔도 공허할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나 사이에 미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느낀다. 무라까미 하루끼 문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별 다섯을 줄 수 있는 이유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구성 속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결여되었다고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주인공들에 대한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채울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법한 "아마도(Something)"에 대한 동경과 상실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국경의 남쪽에는 '아마도'가 있고, 태양의 서쪽에는 '아마도'가 없다"는 말은 삶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표현인 것 같다. '국경의 남쪽'에 존재하는 이상(꼭 고귀할 필요도 없는, 각자의 삶에 큰 가치를 갖는 어떤 것)과 태양의 서쪽에 존재하는 허무는 삶의 이중적인 양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똑같은 "어떤 것"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경의 남쪽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라가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것은 태양의 서쪽에 불과하리라는 것... 이 소설이 주는 궁극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지메의 예처럼 세상에는 "나를 위한 단 한사람"이 분명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시마모토와 같이 환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를 위한 단 한사람"의 존재가 국경의 남쪽에 있을 때는 감미로움을 줄 수 있을 지 몰라도 어떻게 보면 태양의 서쪽처럼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혹은 그 사람)때문에 일생을 똑같은 일만 하며 사는 "시베리아의 농부"가 단조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리라. [인상깊은구절] "…무언가를 약속한다는 따위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예요. " |
| 제게는 정말 특별한 책입니다. 하루키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게 사실이죠. 어떠냐고 물어보면, '밋밋하다' '하루키 답지 않다'심지어 '그것만큼은 읽지 않았다' 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니. 수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은 뒤 저는 회사 책꽂이에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꽂아놓고 틈만 나면 꺼내 읽고 또 읽고 곱씹어 읽곤 했습니다. 딱히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도 않았어요. 그냥 아무 쪽이나 펼쳐서 몇 장이 되건, 되는 대로 읽는 방식을 택하여. 이유 같은것도 없었고요. 하지메가, 이즈미가, 시마모토가 그저 좋았을 뿐... 지금도 제 책꽂이에는 세가지 버전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꽂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왔던 하늘색 초판, 저 위의 품절된 빨간색, 일본어 문고판 원서 이렇게 셋 - 품절인지, 절판까지 된건지 모르겠지만 빨리 다시 또 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선물하고 싶은 사람도, 권하고 싶은 사람도 아직 많거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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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던 때가 있었다 하루키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그렇듯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들에 이끌리던. 하루키의 소설중 가장 제목이 묘한 느낌으 주는 이책. 어려서 읽었던 북유럽 동화책의 한대목과 닮아있던 이 제목에 왠지 이끌렸는데 내용은 전혀 동화스럽지 않은.... 어찌보면 공감가기도 하는 감정적인 부분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추잡한 행동들. 감당하기 힘든 정말 일본인만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에 조금 놀랍기도 하다.
주인공 - 하지메, 시마모토(하지메의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여자) 부인, 이즈미(불륜대상) , 이즈미의 언니(불륜대상)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집안 좋고 똑똑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구 자신의 재즈바를 운영하는 그런 위치에 있지만 어린시절에 좋아했던 여인 시마모토를 늘 가슴속에 담구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날 시마모토가 나타나고 그여자와 다시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깊숙히 빠져들게 되죠.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이해되지 않은 행동을 하는 하지메와 시마모토 그리고 이즈미 자매 그들은 동 작가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이 느끼는 공허함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신과 감정 모든 상태에 깃드는 공허함과 상실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만다.
내용의 구성이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고 또 상식적이지 않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구성상의 소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찾아낸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책 읽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린시절 읽었던 북유럽 동화의 제목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곳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을꺼라고 믿는 신기루나 이상향 마음이 안식을 찾을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지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안착하고 싶은 곳... 그곳이 사람이든 장소이든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이 소설은 좀 더 자극적으로 그 핵심을 찾아내기 위해 격한 소재들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 똑같은 허세뿐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패배자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가장 소중한 곁에 있는 것을 놓치고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독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학교에서, 그리 다수는 아니지만, 몇 명인가 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 학교라고 하는 것을 좋아해 본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짓뭉개 버리려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나는 그것에 대하여 늘 경계 태세를 취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그런 친구가 주변에 없었다면, 나는 십대라는 불안정한 세월을 지나쳐 가는 동안에, 한층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내가 움켜 안고 있었던 못먹는 음식의 리스트도, 옛날에 비하면 꽤 짧게 되었고, 여자아이와 얘기를 나누어도, 의미도 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일도 줄어들었다. |
| 체질적으로 소설을 별루 좋아하지 않은 나로서 두번째로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을 읽었다. 하루키의 단편과 에세이는 거의 모든 걸 읽었다. 하루키를 읽고있으면 이상하리만치 시야가 넓어지면서 여유가 절로 생겨난다. 홀로 홀짝이는 그의 술마시는 풍경이 그대로 나에게 전염이라도되듯이 ...인생에 무진장한 널널한 여백이 생겨난다. 이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그렇다. 한 남자(하지메)의 사랑 그리고 추억....혹은 미련같은 것이 긴 세월의 흐름을 타고 그려진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 남자 하지메의 외도행각이지만 그 마저도 완벽하게 이해되는 충분히 가치있어보이는 하루키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스럽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대사에 끝없이 음악이 결부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상이 그려지는 모처럼 온전히 하루를 바쳐 읽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그곳엔 긴 여운이 있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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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매우 체념적인 소설이다. 이러한 '체념'이야말로 하루키가 뜻하는 리얼리즘인가? 그는 "노르웨이의 숲"을 자신이 '생각하는 리얼리즘으로 쓴 소설'이라고 했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역시 비슷하다.
하지메는 12세와 37세 사이의 거대한 시간의 상실-그것은 시마모토라는 여인에 대한 것이다-을 메우길 원하지만 (그리하여 완전한 자아를 성취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한 영구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인가 또는 인간에 대한 물음인가? 신화적인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소설이다. 누구나 한 가지 인생의 길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능했지만 선택되지 않은 채 그리고 경험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길은 언제나 가슴에 남아 있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어느덧 자신에게 신화와 같은 무엇이 되어서 자신의 현실보다도 더욱 더 큰 힘으로 압도해 오곤 한다.
하지메에게 시마모토라는 여인은 그런 잃어버린,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이었다. 유키코와 이즈미(현실과 일상)가 하지메에게 완벽함을 가져다 줄 수 없었듯이 시마모토(이상과 신화) 역시 홀로 그에게 완벽함을 줄 수 없다. 아직 현실과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은 하지메에게 시마모토는 그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역시나 하지메는 낙천적인 인물이다.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굉장히 간략하고 몽환적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째째하지 않다. 왜냐면 그들은 현실의 일상에서 일하고 돈을 벌고 현실적인 욕구를 채우며 지리멸렬하게 그리고 산만하게 살아가기보다는, 꿈과 신화 속에서 사는 비현실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메는 시마모토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자신, 현재의 자신보다 더욱 자신과 가까운 듯 보이는 자신에게 도달하려고 한다. 이처럼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은, 또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가능성은 곧잘 대단한 것이 되어서 우리의 삶을 압도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바로 그런 것에 대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체념과 불가능이다. 시마모토의 대답처럼.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종류의 일들은 뒷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예요. 그것은 한 번 앞으로 가버리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자리로는 되돌아가지 않죠. (만약 그때에 무언가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비틀어진다면, 그것은 비틀어진 채 거기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아요.)"
하루키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구체적인 일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말할 뿐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한 번 세척된(?) 그들의 삶을 우리는 듣게 된다. 마치 우리가 10년쯤 전의 일을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간략하게 말해주듯 하다. 소설은 일인칭 시점이고 그들은 대개 현재에 과거를 되돌아본다.
"-나는 마치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유리창 너머로 보고 있는 양 멀거니 느끼고 있었다." [인상깊은구절]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종류의 일들은 뒷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예요. 그것은 한 번 앞으로 가버리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자리로는 되돌아가지 않죠. (만약 그때에 무언가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비틀어진다면, 그것은 비틀어진 채 거기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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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첫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바로 그 잊지 못한 첫사랑의 환상과도 같은 사건들에 흔들리는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첫사랑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중년의 남자가 그 첫사랑과 바람을 피운다는 줄거리만으로는 사실 전혀 아름다운 내용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현실이라면 그것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소재조차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가 바로 하루키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적인 문체와 사실인지 환상인지 구별할 수 없을 듯한 여러가지 기제들을 삽입함으로써 약간은 추할 수도 있는 내용을 너무도 아름답게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에 와닿을 진리들과 함께.. 사랑이란 누군가가 말했듯이 타인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렸던 천상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범인이라면 그 천상의 것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단지 우리의 착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종종 중년의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한다. 실낙원에서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