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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묵자가 공자의 제자였으며 '유가'보다 '묵가'를 따르던 백성들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의아해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지금은 '묵자'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공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살던 살던 사람들은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침략 전쟁을 하지 말자"(非攻),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자"(兼愛)라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널리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자는 예(禮)를 너무 중시한 탓에 부모님이 돌아시면 '3년상'을 치뤄야 한다면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부모님이 자식을 낳아 길러준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하지만 '3년상'을 치르다보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지체 높은 분들이야 3년을 슬퍼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판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3년 동안 슬퍼하다가는 나머지 산 식구들이 굶어 죽을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자의 유학이 외면 받기 십상인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효도'를 했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상을 주지 않을 때엔 유교가 잘 퍼지지 않았지만, 성종 이후 효자, 열녀에게 나라에서 상을 주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확 퍼진 것이 그 증거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답게 사는 것'에 관심을 덜 주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유가'보다 현실적인 문제해결에 더 관심을 기울인 '묵가'에 관심을 주고 따라던 것이다. 앞서 말한 내용과 같이 '전쟁'에 지친 백성들에게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빼앗는다.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수시로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또한 그 와중도 '세금'이나 '공출'이라는 핑계로 재산을 빼앗아가니 삶이 더욱 팍팍해지기 일쑤다. 더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전장터라도 될라치면 그야말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전쟁이 매번 이어지는 까닭은 '높은 분'들의 결정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죽는 건 '백성들' 뿐이다. 그래서 묵자는 '침략전쟁'을 반대했다. 백성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침략전쟁'을 결사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반대를 한다고 전쟁을 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키는 전쟁', 다시 말해, '평화유지군' 성격의 군대를 양성하고, 군사지식을 널리 퍼뜨리는데 대단한 노력을 했다. 그래야 적들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묵자는 '겸애'를 주장하며 "다른 이의 부모라도 똑같이 사랑하자"라고 주장했다. 내 부모, 내 자식만 사랑하기는 쉽다. 또한 그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 곧 망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이기적인 사회는 반드시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고 하지만 그 당시 백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비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려 2000여년 전에 살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이웃과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장을 한 셈인데, 묵자의 사상을 잘 살펴보면 훗날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자를 위한 사상'과 일맥상통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시절에 '공산당'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빨갱이'는 더더군다나 논할 가치가 없지만, 오늘날의 '사회주의 사상', '복지정책'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시대를 앞서가는 주장' 때문에 묵자는 그 당시 지배계층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전쟁을 벌여 영토를 빼앗고, 백성들의 재물을 착복해 배를 채우던 지배계층에게 '사형선고'나 다를 바가 없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평화가 지속될수록 지배계층의 존재가치는 무의미해진다. 모두가 잘 살면 지배계층의 '특권'은 사라지고 마음껏 누리던 '권력의 맛'도 즐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자의 '겸애사상'은 묵자가 죽은 뒤에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지배계층'에게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고, 수많은 백성들도 지배계층의 '취향(?)'에 따라 묵가를 외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에 묵자의 사상이 낯설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묵자>에는 <손자병법>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병법'이 적혀 있으며,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한 '무기제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는 등 '아리스토텔레스' 뺨을 후려칠 정도로 '과학적인 지식'도 다양하게 적혀 있다. 이처럼 <묵자>는 철학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보물처럼 잠들어 있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갔던 '묵자'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묵자>를 오늘날에 다시 읽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