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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출판사에서 나온, 믿고 읽는 저자의 책이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문학 연구자는 더더욱 아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없지 않았지만,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와 조선희의 <세 여자>처럼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나 역시 흥미롭게 읽은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은 수월하게 읽혔고, 여성 서사와 퀴어 서사 등 현재 한국 문학계에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에 관한 글이 많아서 어려워도 읽을 만했다.
누군가를 착취해야만 성장 가능한 이 시대에 '자아실현'이라는 신화에 스스로를 기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최은영의 인물들이 앓는 "우울증"의 정체다. 최은영의 소설은 '성별, 학력, 나이, 지역, 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실력만 있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진 '알파 걸'의 시대에 '성장'을 일종의 '외상(trauma)'로 경험해야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268쪽)
누가 봐도 엄연히 동성애서사를 써놨는데 그게 동성애서사로 읽히지 않아서 좋다니, 그게 무슨 미덕이고 칭찬이겠는가. (4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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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문학에서 ‘보편성’을 추출해내는 과정이 소수자를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즉 정상성을 벗어나려는 행위에 대한 배타적인 해석과 정상성에 편입되는 행위에서 추출하는 ‘범인류적’ 해석은 소수자 문학에 이중잣대를 들이 밀며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정론이라 여겨지는 남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문학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현대 사회에서 취향은 가벼움과 유희적인 행위의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고 이는 취향으로 문학을 논하는 것에 사람들이 반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문학계가 고수하는 엄중한 무거움이 다각도의 사유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여성주의 해석이 가볍다거나 개인적 취향에 한정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엉킨 실타래처럼 뭉쳐 개인화, 특정화 할 수 없던 다양한 주체와 소재들을 기존의 문법으로 답습하지 않고 무거움과 가벼움의 공존, 나아가 문학비평에서 정론과 지역적인 것으로 분리하려고 자 하는 시류를 없애고자 하는 의지 등 , 결론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행위를, 이것을 문학적 취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여성 작가들의 글을 논하며 계속 주지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전형화된 젠더표지없이 글을 쓰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소수자 문학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소수자 문학을 피해자화 순결화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문학을 게토화하며 비정치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급한 비유와 표상들이 의식적으로 매개하거나 유도할 수 있는 사유의 지체나 보수주의적 효과를 두려워하면서, 그럼에도 이 언어의 실험을 지속, 감행함으로써 점차 정교해지는, 이 ‘점진적 나아감’이야말로 이제 도래할 4.16 텍스트를 독해하는데 가장 의미있는 경험으로서 고려되야한다.“ 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한국문학을 독해하는데 계속 실험을 감행해야한다. |
| 평소 비평집을 읽기는커녕 소위 평론가라는 이들의 영화 별점조차 참고하지 않는 편이다. 그들만의 취향으로 이루어진 리그에는 내가 갖는 소외감 따위는 일절 반영되어 있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으며 실제로 일정 부분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해서 갈증이 저절로 해소될 리가 없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아니 적어도 주류 남성의 시선을 안이하게 답습하지 않는 관점에서 우리네 문학과 문화를 읽어내는 비평이 내게는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오혜진 평론가의 글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았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 이 책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