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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이 책은
이 소설은 『십우도』다. 언뜻 보고 읽으면 ‘심우도’인가 생각되는데, 제목이 ‘십우도’다.
저자는 백금남, 1985년 제15회 삼성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 책의 내용은? - 심우도(尋牛圖)와 십우도
이 소설 『십우도』는 ‘심우도’를 기반으로 하여 거기에 스토리를 붙여 만든 작품이니, 먼저 ‘심우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 ‘심우도’란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 사전에서 인용. 아래 내용은 이 책의 삽화 해설에서 따옴.)
곽암의 심우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열 단계로 구분된다.
① 심우(尋牛) ;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는다. ② 견적(見跡) : 소의 자취를 본다. ③ 견우(見牛) : 소를 발견한다. ④ 득우(得牛) : 소를 얻는다. ⑤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인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 ⑦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를 잊고 안심한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도 소도 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 있는 그대로의 전체 세계를 깨닫는다. ⑩ 입전수수(入廛垂手) : 중생 제도를 위해 길거리로 나간다.
이 소설은, 그러한 심우도의 단계를 그대로 옮겨 놓고, 각각의 단계에 스토리를 입혀 놓았다.
이에 대하여 해설자의 소개가 흥미로워 소개한다. <소설은 사람이 그냥 살아가듯이 작가가 삶과 현실에 대해 감응하는 것을 이야기로 술술 엮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447쪽)
그렇게 술술 엮어지는 게 이야기이고 삶이라지만, 그 때 그때의 고난과 신고는 어차피 우리 인간이 감당해야 하고, 각각의 몫은 다를 터인데, 주인공 정산우, 그는 소를 잡다가 놓친다. 거기로부터 이야기가, 그의 고난이 시작된다.
소를 도축하다가 놓친 것이다. 도망간 소를 찾아 나선 산우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실제 소를 찾아나선 그 여정이 불교에서 말하는 심우의 단계를 거치게 되고, 결국 십우도는 심우도가 되는 과정이 이 작품 안에 녹아 있다.
소를 찾아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의 가문 5대에 걸친 백정의 한 맺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정산우가 소를 찾아 산을 헤메고, 그 안에서 때로는 짐승들과 때로는 자연과 싸우며 결국 소를 찾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독자들은 각각 각자의 삶을 거기에 대입하여 공감하면서 그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누구에게나 방황은 필연적인 것, 회의를 걷어차고 내가 놓친 한 마리의 소를 찾아 나서 보도록 해라. 그것이 너를 찾는 길이니. (148쪽)
나는 당신을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서로를 설명하는 최소한도의 척도, 그 조건이 되고 있지 않소? (183쪽)
다시, 이 책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백정 신분인 정산우, 이름조차 산우(山牛)다. 산으로 소를 찾아 나선 그가 만난 한 사나이와 나누는 대화 중 일부다.
“당신 이름이 바로 그걸 말해주고 있질 않소.” “무얼 말이요?” “산의 소니까 찾아야 할 건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 말 아니오.” “그럼 내가 소란 말이오?” (165쪽)
이 소설은 정산우만 소를 찾으란 게 아니라, 그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 자기를 찾아 돌아오는 여정, 곧 인생길에 서 있음을 깨닫게 한다. 송창식의 노래 가사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처럼 우리는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소, 또 하나의 나를 찾아 이제 떠나야 한다. 저 산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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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백금남 님의 소설을 여러 편 읽었다.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를 비롯해 유마, 관상까지.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작품을 많이 쓰셨고 특히나 관상, 명당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천만 관객이 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 작품 십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 작품은 퇴고를 거듭하여 개정판을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이 작품에 대한 열의와 애정이 있기에 이렇게 개정판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백정가문의 칼잡이 흰고무래로 이어져온 백정일이 눈먼 풍정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자손들 역시 소를 잡는 백정의 일을 하게 되는데 정산우 대에 이르게 되었다. 백정이 된 정산우는 소를 잡다가 놓쳐버려 소를 찾아 나서게 된다. 스님이 되지 않으면 동리가 다 망한다는 무녀의 예언으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오세암으로 가게 되고 수행을 하였다. 쉽지만은 않은 수행 그러나 이미 수행은 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으리라. 삶 자체가 수행이자 고행임을 우리 역시도 알고 있지 않은가. 소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내다본다는 책표지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의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에 노닐고 있어야할 소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산다는 저자의 말씀이 그래서 더 와닿는 것 같다. 소설 십우도는 소를 찾는 과정, 자신을 찾는 과정을 백정의 삶을 통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속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지금이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직업과 가문을 따지던 옛날에 백정은 천대받고 외면당하는 존재였는데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 많은 준비를 하셨음을 짐작케한다. 도를 찾는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십우도의 그림 설명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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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를 찾아 나서다 원래 십우도에 관한 심오한 해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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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백정의 삶을 통해 도를 이야기한다고 하니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하였다. 양반과 평민의 계급 사회에서 평민들에게조차도 인간 취급받지 못하고 살던 최하위 천민 백정의 억울한 삶에 관한 이야기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이게 단순히 백정의 5대에 걸친 한 서린 굴곡진 인생사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뭔가 심오한 불교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도 이 책을 읽은 날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해서, 십우도가 있는 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탱화의 의미도 잘 모르고 유심히 살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참선의 과정을 소를 침에 비유한 십우도의 철학을 천천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경에 대해 1도 몰라서 십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백정 정산우가 놓친 소를 찾아나설 때 단순히 전통 도살방법을 따르려고 하는 백정과 아닌 사람들의 갈등을 그리는 소설인 줄 알았다. 소의 눈을 가리고 다리를 묶어 공포 속에서 죽게 하는 것은 도살이 아니라 살생일 뿐, 진정한 칼잡이가 아니며 위험하더라도 소를 신성시하는 법도에 따라 마지막 길을 돕는 칼잡이의 양심을 따라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정산우가 할아버지가 물려준 방법을 이어가려는 백정인 줄만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산의 소라는 그의 이름처럼 산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헤매면서 천대받던 조상들의 삶과, 자신의 과오를 되짚어보며 잃어버린 소는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불경같았다. 십우도가 뭔지 알고 읽었으면 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다. 불교란 완성된 하나의 인간을 만들이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산우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것은 숙명적 소산이고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견성하여 부처가 되는 것은 운명의 소치라는 말이 모든 걸 다 받아들여라는 말인 것 같아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으들이기가 힘들었다. 백정 부모 밑에서 태어나 백정이 되고 백정끼리 결혼해서 되물림되면서 말도 안 돼는 미신으로 저주받은 운명이 되고, 같은 백정들 사이에서도 질타받으며 마을의 평화를 위해 중이 되어야만 했던 산우에게 노승의 가르침은 다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명의 실체는 부재에 있고 운명의 실재는 현재에 있다는데, 현재에서 숙명은 떠나 버린 스님과 같고 운명은 앞날을 개조할 수 있는 주인과 같으니 마음이 아파도 숙명적인 것을 괴로워 말고 그것을 토대로 운명적인 것을 붙잡아 견성해야 하는 것이라니 감히 운명을 개척할 수 없던 그 시절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멸시받던 사람들이 이념의 이데올로기에 또 희생되며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며 서로를 향해 분노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하고, 자신들이 살던 세상의 불평등과 인민을 위한 평등한 세상이 실상은 다른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망하고 좌절했을 그 참담함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참담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백정들의 대를 이은 삶을 통해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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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땐 표지의 홍보문구에 혹해서 읽게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띠지에 '천만 관객 영화 관상, 명당 의 작가 백금남이 그려낸 거대한 한 폭의 구도화' 라는 문구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사극물을 좋아하는 관계로 관상, 명당, 궁합? 영화 3편을 모두 다 봤는데, 그 중 두 작품의 원작자가 쓴 다른 소설이라니 궁금했다. 책을 읽는데 분명 소설책인데 새책인데 2019년 초판1쇄라고 되어있는데, 이 낯선 느낌은 뭘까 싶어 읽던 도중 검색을 좀 해봤다. 이 책은 최근작품은 아니었다. 1989년 출간된 책인데, 출판사가 바뀌어 새로 나온듯 했다. 아무래도 흥행영화의 원작자 소설이다보니... 그래서인지 사용하는 용어가 익숙치 않았고, 종교소설인줄 모르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불교소설이었다. 그제야 대화내용이 아그랬구나 싶었다. 소설의 큰줄기는 백정집안 5대의 이야기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진 백정의 입장에서 살생이 아닌 보냄과 예의에 대한 생각들이 불교적 관념들로 표현되면서 결과적으로 개인의 구도적 삶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낯선 용어들은 백정과 심마니들이 사용하는 은어들이었다. 예를들어, 백정은 흰고무래 도살시 사용하는 도끼와 칼은 촛대와 신팽이 라고 부르고, 곰은 넙대 호랑이는 코짤맹이 로 부르는데 따로 설명이 없어서(소설에 용어설명이 있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검색해보고서야 뜻을 알수 있었다. 대화들은 백정이 이렇게 철학적인 직업이었나 싶을정도로 소를 잡는 행위 하나하나에 소를 놓치고 다시 찾는 시간 하나하나에 엄청난 관념들로 풀어내고 있어서 왠만한 스님들도 이렇게까진 생각 못하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6.25를 거쳐 분단직후까지인데 시대와 그 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건들은 사실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진 않았다. 일본인의 탄압은 백정을 무시하는 마을사람들의 눈총과 다를거 없이 폭력적이었고, 남북의 사상적 갈등은 가족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다를 거 없이 불통이었으며, 버려지고버려져도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은 개인의 내적자아를 향한 구도본능과 다를바 없었다. 처음 접하는 불교적 사고방식이 생소했지만 어렵거나 거북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까지?! 정도랄까 작품은 곧 작가의 분신 같은 것이기에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작가의 아버지께서 제주4.3항쟁때 태고종 스님이셨는데(태고종은 불교의 한 종파로 결혼이 가능한 불교교파 라고 한다. 성경을 믿는 종교계열에도 비혼의 신부님과 가족이 함께 하는 목사님이 계시듯이 불교도 그렇게 종류가 다양하게 있나보다) 학살당하셨을 당시 작가는 2살이었다고 한다. 그후 어렵게 장성하여 1989년 첫 작품을 낸것이 '십우도' 였고 이후 불교소설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셨다. 집안이 불교집안이었고 아버지가 스님이셨다하니 자라면서도 불교를 가까이 하며 지내셨을 것 같고,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 개인적 가족사를 보며 관념적 불교사상도 자연스레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책소개에 첫작품 십우도 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고 해서 이런 종교적 소설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도 같은해인 1989년 상영한 영화였고 당시 히트작이었던걸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었겠다 싶다. 아제아제바라아제 의 원작 소설은 한승원 작가였는데, 한강의 아버지 이기도 한 이분도 역사소설이나 불교적 작품을 꽤 쓰신것 같다. 종교소설가라고 따로 있다기 보다는 역사소설을 주로 다루는 작가분들이 전통사상에 대해 아무래도 자세히 알게되고 그래서 종교적 소설도 쓰시게 되고 하는 것 같다. 백금남 작가의 개인사를 찾아보고나니 갑자기 안소영 작가가 생각났다. 영화 동주 의 원작 소설인 '시인 동주' 의 작가인 안소영 작가는 책만보는 바보 이덕무 나 다산 정약용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글을 주로 썼는데, 아버지인 안재구 교수가 남로당사건관련 사상범으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집안이 어려었을 걸로 예상되고, 백금남 작가도 안소영 작가도 굴곡진 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아버지를 둔 자식으로써 글을 쓰는데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고 그나마 역사적 인물과 사건, 종교적 글은 쓸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하튼, 개인적인 총평은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의 백정버전 이라고나 할까. 낯설면서도 새로웠고, 신기하면서 난해했지만,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거기 라는 건 느껴지는 10폭 병풍 가득채운 탱화를 보는듯한 소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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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잡았으나 그 본체는 보지 못했다' 「십우도」 단순히 한 시대의 백정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주인공 산우가 소를 잡기위해 촛대를 내리치고 빗맞게 되면서 소가 도망을 치게 된다. 이것으로 소가 도망친게 두번째 일인듯 하다. 산우는 도망친 소의 행적을 쫓기 시작하고 그런 상황속 과거 이야기가 등장한다. 눈이먼 남자(풍정)와 등이 굽은 곱추인 여인(도화)이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 결혼을 하게되고 서로의 흠을 덮어주며 살거라 생각했던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도화는 자신의 삶을 한없이 원망하며 마을 남자들과 몸을 섞기 시작한다. 이를 참아내던 풍정은 이내 도화를 때리기 시작하고,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세상을 원망하던 도화는 풍정의 매질을 견뎌낸다. 풍정은 눈이 멀어 할 수 없다 생각했던 백정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소를 잡기위한 방법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십우도에는 불교적 의미가 담겨있는 듯 하다. 기독교 서적은 몇번 접했기에 어느정도 알 수 있지만 불교적 의미가 담긴 책은 이 책이 처음인 듯 하다. 그렇기에 낯설기도 하고 때론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의 시작마다 등장하는 소를 잃은 한 사람이 소를 쫓는듯한 그림과 설명이 적혀 있는데, 이 역시 다음장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관련된 불교와 관련한 의미를 담고있는 듯 하다. 낯서면서도 그림에 대한 의미가 궁금하다. 문득 이 책이 영상으로 제작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금남 선생님의 소설들 중 영화로 만들어진 관상이 떠올랐고,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빠져들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그것만큼이나 이 책역시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책보다는 좀 더 쉽게 담긴 의미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재미를 발견하게 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조금은 조급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기 보다는 드문 드문 책을 읽다보니 미처 그 재미를 다 느끼지 못했던 듯 하다. 앞으로 시간을 더 투자해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이 책의 진짜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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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 3부작 소설 《관상》 《궁합》 《명당》 의 작가 백금남. 특히 《관상》은 영화화 함께 .관상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작가 백금남. 나는 《십우도》로 백금남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의 모든 책들이 궁금해진다. 백정, 조선시대에 이렇게 슬프고 한이 서린 직업이 또 있을까? 《십우도》는 천한 일을 하는 직업인 백정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의 응어리와 벗어날 수없는 숙명같은 백정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백정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정산우는 백정이다. 조상 대대로 백정이었다. 소를 잡기전 종교의식처럼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정산우를 소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가 소를 잡는 방식은 다른 백정들의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 그 방법은 눈먼 증조부가 백정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고조부가 전수한 방법으로 그후 자손들은 그 방법으로 소를 도살하고 있었다. 그날 정산우는 그만 소를 죽이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백정이 잡으려던 소를 잡지 못하고 놓치면 그 동네는 망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놓친 소를 찾으러 정산우는 길을 떠난다. 소의 흔적을 발견하고 소를 잡고 다시 돌아 오기까지의 여정이다. 처음에는 단순 잃어 버린 소를 찾는 과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모든 여정은 잃어버린 소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잃어버린 소가 바로 정산우 자신이었다. 여정도중 눈물겹도록 한이 서린 조상들의 회상이 나온다. 조상들의 이야기로 자신의 뿌리와 자신의 본성을 알아간다. 특히 눈먼 백정 증조부 정풍정와 곱추 증조모 도화 이야기에서 백정의 한이 서린 삶과 그들의 인간성마저 상실해 가는 과정이 가슴아팠다. 이렇게 책 제목처럼 소를 찾아 가는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이 과정만 읽더라도 나를 찾아가는 도를 닦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소를 찾아 떠나는 백정이라는 한 인간의 여정이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인간 본성이라는 철학적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숙연해진다. 제1장 소를 찾아 나서다(심우) 제2장 소의 흔적을 발견하다 (견적) 제3장 소를 만나다(견우) 제4장 소를 잡다(득우) 제5장 소를 풀 먹이다(목우) 제6장 소를 몰고 돌아오다(기우귀가) 제7장 소를 잊다(망우존인) 제8장 소를 잊고 나도 잊는다(인우구망) 제9장 본래대로 돌아오다(반본환원) 제10장 다시 시작하다(입전수수)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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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는 불교에서 자신을 찾기위해
몸부림치는 자아를 수련하는 모습을 소설형식으로 꾸민 글이다.백정(흰고무래)이 되고 싶어서 된사람은
없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구분이 되고 그 중 제일 하급에 속하는 부류가 오늘 소설에 등장하는 소잡는
사람이다.도수장이
있는 천궁이란 동네에 모여 사는 그들은 다양한 사연으로 모여든다
우시장에서 거간과 도살을 업으로 살고있다
그들 중 산우의 고조부는 유명한 칼잡이중의 하나로 이곳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소설이다.여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를 찾아가는
십우도를 비교하며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있다 백정의 기술은 단 한번에 소를 잡아야 하는데 그 기술을 연마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산우는
할아버지에게서 흰고무래 기술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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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산우의 소잡는 순간부터 소설은
시작되고 소를 잡다 실수로 소를 놓치게 되고 그 소를 추격하면서 산우의 가족과 과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가 더해지면서 시대적
배경 주인공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하고 있다.그들은 소를 잡을때 어떤 감정으로일까?
촛대를 잡고 소의 정수리에 꽂는 순간
온갖 세상의 비난과 수치와 수모가 한곳에서 파괴되는 어쩌면 완전몰입의 무아지경이 아닐까! 천대받는 흰고무래의 삶을 좋아하는 이가 있겠는가 외모와
신분의 겉모습이 인간의 본 모습이 아닐진데 십우도는 신분을 앞장세운 그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비단 천궁골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냐마는 소설의 전개는 촛대와 신팽이를 든 산우를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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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소를 찾아헤매는
십우도의 첫번째 단계 심우를 시작으로 소의 자취를 보는 견적,소를 발견하는 견우단계를 거치면서 소를 얻게되는 득우에 이른다 비록 소설 형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으나 어쩌면 불교에서 자기수련을 통한 득도 완전한 자아를 발견하는 수련의 괴정을 펼치고 있다 십우도의 다섯단계인 소를 길들이는
목우,
자신을 다스리는 단계를 산우와 노승
야누끼를 통해 보여준다 소를 타고깨달음의 세계로 돌아오는 기우귀가,소를
잊고도 안심하는 망우존인 단계 사람도 소도 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인우구망을 보여준다.소설은 절정에 다다르고 천궁골로 돌아오는
산우를 보여준다 소를 잡던 흰고무래였던 그가 소를 몰고 천궁골로 본연의 세계를 깨닫는 반본환원의 모습을 본다
촛대를 잡고 소의 정수리를 치던 산우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삶의 엄청난 투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자신을 소처럼 내몰아 던져버린 자아는 아닌지 뒤돌아볼 수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대단한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영혼이 나쁜 사람은 없다 거친 세류에
부딪 치며 살다보면 산우도 될 수있고 골피도 되고 야누끼도 된다 불교에서 논하는 윤회적 삶의 인간구조를 십우도와 천궁골의 삶들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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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방식이란 가설을 세우고 관찰과 실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도출된 결론을 검증한다. 이러한 과학적인 발달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근거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본성이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참나를 찾아가는 것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참나를 찾아가는 길은 다른 것일까? 이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본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동안 많은 선사께서 본성을 찾는 과정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분석하여 본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의 본성을 찾아가는 십우도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장편소설 십우도는 정산우을 통해 백정 5대 집안에서 소를 죽이는 것과 소를 찾아가는 양면적인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산우가 소를 찾거나 죽이는 과정 중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소를 잡는 촛대는 상(相)이라는 환상을 한 칼에 자르고, 숲속에 살아있는 많은 동물은 번뇌를 나타내며, 일본인 마무리의 딸 야누끼는 인간이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소를 찾는 본성은 번뇌와 유혹을 촛대로 한칼에 내려쳐서 상(相)이라는 환상을 자르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소를 찾는 본성은 무엇일까? 본성이란 우리가 개체적으로 하나하나 존재하나 본성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이다. 너와 내가 없고 주관과 객관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산우의 아버지는 일본인 마무리의 소를 죽이지 못하자 산우 할아버지가 소를 죽인다고 했다. 그런데 백정이 소 하나를 대를 이어 잡는 것은 동리에서 금하고 있다. 동리가 깡그리 망하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에게는 생사가 갈리는 문제이다. 소 하나를 대를 이어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본성은 스승의 가르침이나 문자와 말로 깨달을 수 없고 오로지 본인만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 #십우도, #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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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영화 관상의 작가 백금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삶과 존재 민초들의 삶을 말해준다. 작가는 백정이라는 인간을 삼아 이야기들을 이어가는데 도살이라는 일 속에서 소를 통해 읽는 이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교적 색채로 문학적 요소를 잘 가미하여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우리네 인생살이를 말해준다.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시대적 배경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민족의 불운속에서 시작되어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까지 가진자들과 권력자들의 통치속에서 백성들의 인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삶은 치열하고 아픔과 수난의 나날이었다.
소설의 힘은 역시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모순과 환희, 그리고 읽는 이의 가슴을 초기화 시켜주어 인생에 대해 다시 해석함을 보여주는데 있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이야기, 자아, 정체성, 욕망, 가족,..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인간 군상들의 뒷이야기까지, 소설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한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소설속에서 위로를 받고, 분노하며, 세상을 잠시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지 않아도 내 기억들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순간이 오면 맞춤형 장치처럼 자동으로 나를 불러내어 추악함과 그리움, 그리고 누군가를 마주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그렇다. 종교적인 불교적 관점이 깊이 들어있어 인간의 본성과 함께 읽어갈 수 있는 보기드문 수작이라 말하고 싶다. 5대 백정 가계에서 응어리진 그 한의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은 주인공 산우가 일제 강점기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 한들을 승려로서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수작인 소설들이 많이 없는 요즘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소설들도 아쉬운점이 많다. 십우도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너머 사유와 불교적 시점의 해석들로 안내해주는 소설 다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역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