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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번 산다. 누구도 두 번 살지 않는다.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다. 김인숙의 소설 『벚꽃의 우주』속 주인공 미라는 그걸 아는 인물이다. 1994년 열 네살에서 목도한 엄마의 죽음 앞에 미라는 이 세계가 우연으로 점철 되고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든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집에서 새롭게 맞이할 아버지와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누군가에겐 꿈을 꾸는 것도 허용 되지 않는 걸까. 미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천체 망원경을 보여 준다는 새 아버지가 될 '천문대'(그가 천문대에서 일한다고 하여 미라는 천문대로 불렀다)가 운전하는 차에 엄마와 보러 가는 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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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의 이름을 미라펜션이라고 지은 것은 욕망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망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엄마와 미라와 천문대 아저씨. 한 시절의 꿈, 행복하고 따듯했던, 벚꽃이 난분분하게 흩날리던 날의 꿈.' 책을 읽으면서 한 소녀가 엄마를 잃고 어떻게 성장하고 결혼과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데 그저 주인공 미라가 행복하기 바랐다. 행복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죽어버린 후 부터 인생은 처참했다. 살기 위해 몸부린 쳤던 나날을 읽으니 그저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그 집은 사람들이 간간히 낚시를 하러 왔던 곳이기에 낚시와 음식을 하면서 엄마와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다. 물론, 천문대를 관리하는 아저씨를 만나고서도 말이다. 하지만, 질투였을까? 셋이 천문대로 가던 중 사고가 일어났고 그 후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다 돌아가셨다. 성인이 되어 미라는 민혁을 만났다. 어쩌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거라고 그래서 민혁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한 그 시점에 자신이 받아 들일거라고 했지만 프로포즈 대신 다른 진실을 민혁이 말했다. 이일로 결혼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임신으로 결국 결혼을 하게 된 미라. 그렇다면 도대체 프로포즈 한 그날에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소설은 미라와 민혁의 이야기를 중간에 심어넣어 궁금중을 풀어놓았다. 민혁이 10대에 질이 좋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 중 한명이 죽었다. 하지만, 살해 되었는지 그냥 죽었는지는 모르고 친구들과 헌 집에서 본드를 마시다가 자신이 먼저 그 집을 나왔고 그 다음날 그 친구, 아니 친구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김주열'이 죽었고 나머지 친구들이 다 같이 땅에 묻었다. 시신도 찾지 못하게 말이다. 죽이지 않았다...하지만, 미라는 당시 민혁이 살았던 곳 그리고 민혁과 어울렸던 친구들을 찾아간다(물론, 이건 그냥 미라혼자서 그들을 보는 것 뿐이다). 소설 중간중간에 민혁이 미라에게 고백했던 그 날들의 감정이 나온다.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그리고 미라는 엄마와 살았던 그 집으로 향한다 이제는 다 허물어져 있는 집..그러나, 엄마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곳엔 벚나무가 언제나 흩날리고 있었다. 이제 미라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마을 이장이 이 집에 자신의 친척을 살게 해준 것, 미라를 걱정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는 것, 그리고 마을 곳곳에 일어나는 것을 경찰보다 더 빨리 아는 것... 하여튼, 그 집을 허물고 펜션을 지으면서 또 다른 일상이 미라를 향해 달려오는데 바로 민혁의 친구들이었다. 한 친구를 땅에 묻고 다들 고통스럽게(?) 살지만 민혁만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싫었다던 그들...민혁이 아니고 왜 미라였을까? 그리고 미라의 뜻밖의 행동들...여기에 엄마가 죽은 후 연락이 끊겼던 천문대 아저씨가 그동안 미라와 엄마가 살았던 그 집에 꽃을 심어놓고 있었다. 엄마를 향한 사랑과 미라에 대한 미안함이었지...재회한 두 사람 어쩌면 가족이 아니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친딸은 아니지만 친딸만큼 미라를 지켜주는 천문대 아저씨. 우주는 광활하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 발견하거나 찾거나 또는 알아낼 수 없는 존재다.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은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지 않고...인생 역시 그저 일어나려고 했기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만약 이렇다면 화가난다. 미라는 행복해 질 수 있었고, 천문대 아저씨 역시 그러했고, 민혁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다. 미라가 저지른 살인은(?) 어떻게 판단을 해야할까? 동정과 이해를 해서는 안되지만 미라의 선택이 그것밖에 없었을까? 그저 행복하고 또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그저 미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것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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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013, 벚꽃의 우주, 김인숙
재산을 숨겨온 일로 잠깐 시집 식구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것이 열네 살의 그녀, 열일곱 살의 그녀, 스물아홉의 그녀, 서른넷 이후의 그녀가 택한 생존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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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우주 / 김인숙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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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엄마는 구멍가게를 했다. 근방의 낚시터를 오며가는 낚시꾼들 말고는 손님이 없는 작고 구질구질한 가게였다. 점방에 붙어있는 방에서 미라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생긴 애인, 숫기없고 수줍은 아저씨를 미라는 천문대라 불렀다. 결혼식을 한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때에 천문대가 그가 일하는 천문대로 모녀를 초대했다. 미라의 마음이 벚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야말로 만개한 봄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미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천문대의 운전은 미숙했고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을 낭떠러지처럼 가팔랐다. 미라는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됐다.
성인이 된 미라. 한 때의 엄마와 천문대처럼 사랑에 빠졌다. 엄마의 사랑처럼 미라의 사랑도 소박했다. 잘난 남자, 잘생긴 남자, 부자에, 능력이 많은... 그런 남자를 미라는 한번도 꿈꾼 적이 없었다. 소박하고 사치를 모르고 특별한 순간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조차 멋쩍어 하는 그런 남자가 미라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폭풍처럼 쏟아붓는 사랑도 고백도 없었지만 미라는 민혁을 사랑했다. 29살, 결혼의 꿈이 만개한 밤에 그러나 민혁이 던진 것은 프로포즈가 아닌 고해였다. "나쁜 일이 있었어.", "그걸 털어놓지 않고는 너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하나가 죽었어..."
나쁜 새끼. 정말 나쁜 새끼. 아무 죄 없는 여자를, 제 자식 가진 여자를, 머나먼 과거의 공범으로 만든 정말정말 나쁜 새끼. 그리고 그 나쁜 새끼의 과거를 찢고 나와 미라의 주변을 맴도는 또다른 나쁜 새끼들. 미라 과거의 또다른 나쁜 새끼들. 때려 죽여 마땅한 새끼들. 그러다 진짜 맞아 죽는 새끼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소름이 끼쳐야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슬프기만 한지 모르겠다.
난분분, 벚꽃 지는 계절에 시작해 다시 난분분, 벚꽂이 다 지도록 계속되는 미라의 이야기 <벚꽃의 우주>. 꽂히는대로 순서 없이 모으고 순서 없이 읽는 중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손에 꼽게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살의를 꽃 피우고 살의를 열매 맺고 살의로 져버린 늙은 벚나무 같은 미라와 연인의 죽음 이후 비어버린 집에 피고 지는 꽃을 쉼없이 심고 가꾼 천문대를 생각한다. 살의를 꽃피운 연인의 딸조차 지키고 보호하려 한 어리석은 사내와 남편보다 더한 믿음으로 그 사내를 믿고 뒤를 맡긴 미라의 마음을 생각한다. 미라의 엄마가 이 두 번째 사내로 하여금 행복을 찾았던 것처럼 미라에게도 두 번째 삶이, 두 번째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것을 끝내버린 미라를 생각하면 한없이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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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후, 미라는 반복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때 자신에게는 혹시 다른 선택이 있지는 않았을지. 후회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어차피 죽게 되어 있었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말이다. 1994년. 미라가 열네 살,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날에 결혼식을 앞둔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미라는 평탄하지 못했던 성장 과정으로 인한 왜곡된 성격과 일부는 멈춰버리고 일부는 순식간에 성장해버린 내면을 안고 있다. 미라 스물아홉 살, 미래를 축복해주듯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고 청혼을 하기 직전인 민혁에게 걸려온 전화, 그리고 사색이 된 민혁으로부터 들은 뜻밖의 고백. 그러나 미라는 민혁을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다. 몇 년 간 방치해 두었던 엄마와 살던 시골집이 공폐가로 철거된다는 통지문을 받고 민혁과 시골에 내려온 미라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시골집에 다녀온 이후 그녀는 그곳에 펜션을 짓고자 마음먹고 20년 만에 엄마의 약혼자였던 '천문대'를 찾아간다. 그후 '천문대'는 펜션을 짓는 일을 비롯해 미라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펜션이 오픈하고 제 발로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이 호수에 몸을 던졌다. 손님의 이름은 정명주. 그녀는 민혁이 미라에게 고백했던 과거의 사건 안에 있었던 사람이다. 명주가 죽은 후 또 한명의 불청객, 송종호가 찾아오고 소심했던 그녀가 자살했을 리가 없다며 미라에게 폭행을 행사하던 중 실랑이 끝에 그가 사망하고 미라는 '천문대'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유기한다. 비로소 완벽한 삶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사람이 펜션에서 죽었다.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모두 1994년, 그 사건 때문이다. 김주열의 죽음에 관련 있는 세 명의 남자아이와 두 명의 여자아이. 그들은 모두 '자기'는, 김주열을 죽이지 않았다고,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고 말한다. 마치 말을 맞춘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진술들. 송중호는 절도범으로 교도소를 전전했고, 정명주는 그런 송종호에게 얻어 맞으면서 동거를 했다. 얼굴이 예뻤다는 황경선은 그 사건 이후로 10년도 못살고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최윤재는 여전히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했던, 김주열의 누나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알콜성 치매를 앓으며 해장국집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별볼일 없었던 민혁만이 번듯한 회시원으로 건실한 시민이 되었다. 열일곱 살 아이들은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날 줄 알았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으로 불안과 죄책감을 가슴에 묻은 채 지냈다. 그런데 아무도 김주열의 죽음에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미라는 자신의 행복을 침범해 오는 그들을 방치해 둘 수 없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비밀을 묻고 그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민혁과 미라는 서로에게 집착한다. 미라는 자신의 완벽한 가정의 한 요소로써 민혁에게 집착하고, 민혁은 과거 자신의 오래된 죄를 미라에게 고백하면서 구원해줄 대상으로 집착한다. 한 사람은 상처를, 한 사람은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그들은 자기의 아픔에 대한 해소를 상대에게 부여했다. 민혁의 과거 사건에 미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시에는 민혁을 알지조차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는 남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당사자 민혁이 원하지도 않는 해결사로 나선다. 그래서 그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된다. 미라와 민혁이 서로에게 부여하는 의미. "봄비처럼 왔다" 그들은 서로를 '봄비'라고 칭한다. 왜 봄비일까? 춥고 메마른 겨울의 끝에 내리는 봄비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반가움의 상징이다. 어둡고 우울했던 두 사람의 삶에 서로는 봄비같은 존재였다. 김주열의 죽음에 직접적인 살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행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친구의 시신을 유기했다. 열일곱 살 아이들이 20년 동안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야했던 그 시간들이 벌이라고 한다면 너무 안이한 생각일까? 그렇다면 그 다섯 명의 아이들을 유기한 죄의 벌은 누가 받을 것인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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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4.17. 인문책시렁 217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 김인숙 세계 1987.9.15.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김인숙, 세계, 1987)를 2022년에 곰곰이 읽으면서 ‘1980년대 운동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말을 썼는지 돌아보았습니다. 1963년에 태어나 1980년대 첫무렵에 서울에서 대학생으로 있으면서 글(소설)을 써서 이름을 날린 분이 잇달아 선보인 《'79―'80》인 터라, 그즈음 ‘살짝 지식인’ 말씨를 어림해 보기에 좋습니다.
글님은 “겨울에서 봄 사이”라는 이름을 덧달았는데, 1979년에서 1980년으로 넘어서는 즈음은 “겨울에서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서 겨울”이었다고 느껴요. 우두머리 하나가 고꾸라진들 봄이 찾아오지 않거든요. 벼슬아치가 고스란히 있고, 다른 힘꾼·돈꾼·이름꾼이 숱하게 있는데 어떻게 봄일까요.
1980년부터 2022년에 이르는 하루하루를 돌아보자면, 지난날 ‘살짝 지식인’이던 이들이 오늘날 ‘새 힘꾼·돈꾼·이름꾼’이 되어 우쭐거립니다. 예전에 ‘햇병아리 모델’이던 이들이 오늘날 ‘사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거들먹거리고요.
소설 《'79―'80》을 읽는 내내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는 목소리는 가득하구나 하고 느끼되, ‘서울 대학생이 서울에서 조금 맛보는 시대 상황’일 뿐, ‘서울에서 밑자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새’하고는 한참 멀고, ‘서울 둘레에 있는 크고작은 도시 살림결’하고는 아주 멀고, ‘지난날 시골이며 오늘날 시골 숲빛’하고는 끝없이 멀다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글을 쓰는 이들은 으레 서울·큰고장에 머뭅니다. 늘 그곳에서 서울살이를 서울사람 눈으로 옮깁니다. 이 나라가 ‘서울공화국’이니 서울 이야기가 가장 잘 먹히고 팔리긴 하겠습니다만, 또 글꾼 가운데 ‘대학생 아닌 고졸이나 중졸이나 국졸이나 무학’인 분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기도 하겠습니다만, 너무 판박이입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은 《민중자서전》이나 《한국구비문학대계》는 아예 안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 대학생 시대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바빠서 ‘그래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할 적에 서로 아름다우면서 새롭게 나아갈 삶길인가?’ 하는 이야기는 건드릴 틈이 없어 보이더군요.
ㅅㄴㄹ
대통령을 나랏님이라고 서슴없이 부를 수 있는 할매, 이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은 새삼스레 아픔이었다. (31쪽)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학술적 용어를 동원하여 일장연설을 한 바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자랑할 의도는 추호도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이들과 같은 건달들,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과 그 원인을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열띤 진심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녀석이 무슨 신기한 말을 하는가 하고 귀기울이던 이들은 윤익의 몇 마디 말이 진행되기도 전에 성냥개비로 귀를 후벼파고 하품을 하고 담배를 질근질근 씹어댔다. 그리고 윤익의 당혹감 앞에서 그들은 말했었다. 은자 다 했나? 오랫만에 꼰데 설교 듣자카이 눈 앞에서 별이 하나 둘 셋 막 떨어지네. (168쪽)
누군가의 강경한 선동이었고 그들은 총을 접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와락와락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묘한 흥분이었고 격한 감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고로 꼰데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 (174쪽)
“감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지금은 그런 식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199쪽)
회사CF 전속모델이 된 지 반 년 만에 그 애의 손을 처음 쥐어 주었었다. 그때 그 아이는 고개를 외로 꼰 채 마치 ‘기다렸어요, 사장님’ 하는 듯한 숨소리를 보내 왔었다. 햇병아리 모델 초년생의 당연한 순서였다. (2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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