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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환영받는 뉴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UFO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환영받는 뉴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내용보기
UFO와 거짓말     가뭄에 무더위에 모두가 힘든 초여름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집자 노트는 가볍게 가보겠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고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주제, 바로 UFO입니다. 언론에서는 UFO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주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결코 아래처럼 사이비과학을 흥미 위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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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와 거짓말

 

 

가뭄에 무더위에 모두가 힘든 초여름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집자 노트는 가볍게 가보겠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고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주제,

바로 UFO입니다. 언론에서는 UFO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주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결코 아래처럼 사이비과학을 흥미 위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화성에 문명이 인간 얼굴 닮은 조각 발견

정부의 UFO 존재 인정 문서최초공개

1950, 영국 공군의 목격담과 레이더망의 증거 인정 대통령, 외계인 3번이나 만나충격 증언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를 한창 편집하던 중 찾아본 기사 제목들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뉴스들입니다.

화성에 생명체는 물론 문명이 있었다고?

영국 정부가 UFO를 인정했다고?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외계인을 3번이나 만났다고?

 

그런데 이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과연 이걸 믿어야 하나 싶은 대목들이 보입니다.

 

사진을 공개한 스콧 워닝(42)은 수년 전부터 ‘UFO 사이팅스 데일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아마추어 UFO 연구가 및 작가로,

달이나 화성 등의 행성 탐사 조사도 겸하고 있다.

아마추어 UFO 연구가이자 블로그 운영자ㅜㅜ 행성 탐사 조사? 우주에는 나가봤니?

 

문서를 공개한 데이비드 클라크 박사는 휴스[전투기 조종사]가 무언가를 목격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솔직히 아직 그것이 뭔지 아무도 모르지만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뭘 보긴 봤는데 그게 뭔지 아무도 몰라. 근데 UFO 존재는 인정한대.ㅎㅎ

 

티모시는 영국의 BBC2 프로그램에 출연,

아이젠하워가 19542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휴가를 보낼 때 극비로 뉴멕시코주 인근 홀로먼 공군기지로 가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티모시의 주장을 따르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당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안내로 공군기지를 방문했으며 현장에는 많은 목격자가 있었다. ()

하지만 티모시는 아이젠하워의 외계인 면담과 관련된 구체적인 물증은 제시하지 않았다.

BBC! 근데 공군기지의 그 많던 목격자는 왜 같이 증언을 안 해.ㅜㅜ 면담과 관련된 물증도 없대.ㅋㅋ

 

하지만 댓글은 다음과 같이 달리지요.

 

저 소리가 사실인가는 의문이나,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못하겠어~

(물론 이런 댓글도 있습니다. 이젠 외계인과도 FTA를 하겠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댓글과 같은 생각을 많이 할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믿거나 말거나할 문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책 내용 중에는 이런 일도 있습니다.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자 동네에서 천국의 문이라는 UFO 컬트 조직 39명이 집단 자살했습니다.

혜성을 뒤쫓던 UFO가 자신들을 태워서 그 행성에 데려다준다고 믿었답니다. UFO를 믿는다고 이런 일이 꼭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런데 이런 사이비과학적인 일들이 세상에 흔합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또 다른 예를 보면,  

2004년 아프리카 어느 나라를 10년 넘게 통치하고 계신 대통령은 크림을 한 번 문지르고 얼굴에 어떤 약을 한 번 뿌리고 탁한 액체를 한 번 마시는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했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나는 사람들을 확신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으면 그만이니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대통령을 보니 요즘 가뭄처럼 가슴이 참 답답~합니다.

 

 

2012년 6월 26일

부키 기획편집부 고독이  씀

YES마니아 : 플래티넘 b******b 2012.06.27.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2-38] 과학과 非과학 사이에서
"[12-38] 과학과 非과학 사이에서" 내용보기
무엇이 과학인가?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도덕의 기초는… 도덕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믿는 체하거나 도덕에 관해 지식을 넘어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두는 데 있다.”1)고 했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학의 기초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무엇을 기준으로 사이비과학(非과학 포함)과 과학을 구분하는가의 문제이다.   <열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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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과학인가?

 

머스 헨리 헉슬리는 도덕의 기초는도덕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믿는 체하거나 도덕에 관해 지식을 넘어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두는 데 있다.”1)고 했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런데 과학의 기초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무엇을 기준으로 사이비과학(非과학 포함)과 과학을 구분하는가의 문제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는 그 유일하고 확실한 기준으로 반증(反證)가능성을 제시2)하였다. 분명 그의 기준도 유용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비교를 통해 과학의 범위/경계를 명확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과학의 경계 거의 과학

 

러한 구분에 있어서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이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중간지대에 해당하는, ‘거의 과학(almost science)’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다수 사람들이 보기에 과학의 여왕은 물리학이다.3)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손꼽히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심할 바 없이 옳은) 수학 이론과 (틀림없이 정확한)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하여는 일종의 해석을 구걸4)하고 있는 현실은 이 분야를 철학과 과학의 경계에 서 있게 만든다.

 

사회생물학에서 비롯된 가장 최근의 학문이라는 진화심리학의 경우에는 양자역학의 경우와 다르다. 진화심리학은 적응과 자연선택에 관한 가설을 검증할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진화생물학과 달리 인간이라는 제약5)이 많은 특이한 종()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기에, 실제 있을 법하지만 우리가 전혀 진실을 밝혀낼 수가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키기 곤란하다.

 

이처럼 체계적 관찰, 일반적 이론의 구성, 구체적 가설의 실증적 검증가능성6)이라는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하는, 과학과 사이비과학 사이의 다양한 중간지대가 존재한다.

 

 

사이비과학

 

학과 거의 과학(almost science)’을 제외하면 사이비과학의 영역을 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보인다.

하지만 점성술처럼 거듭된 검증을 통해 명백하게 사이비과학임을 밝혀진 경우에도 서양 국가에서 1만 명당 한 명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수백만 달러를 속임수로 날리면서도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쏟아 부어 그것에 매달리고 있다7)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장 먼저 우리의 발길을 잡는 것은 바로 음모론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타보 음베키(Thabo Mbeki) 대통령과 만토 차발랄라 음시망(Manto Tshabalala-Msimang) 보건장관은 항()레트로 바이러스 약물을 서구 제약회사들이 교묘하게 속여서 팔아먹는 독약이라고 본 것이다. (그들은) 거의 모든 의학 연구 전문가와 달리 에이즈바이러스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증거가 없으며 이 또한 거대 제약회사가 (당연히 미 정보국의 도움으로) 자기네 제품을 팔기 위해 퍼뜨린 거짓말8)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거대 제약회사가 어떤 신약이 실제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데이터를 제약업계가 법적인 위협을 동원해 발표를 여러 차례 저지9)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제약회사의 수익만을 좇는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실제로 여러 차례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음모론에 근거하여 항()레트로 바이러스 치료 약물이 가지는 부작용에 대해 널리 홍보하여 항()레트로 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않도록 유도한 결과 에이즈 감염으로 인한 매일 평균 사망자가 90010), “연간 에이즈 사망자가 35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11)

 

스라는 이유만으로 보도 내용을 그대로 믿고, 광고 문안에 혹해 제품을 구입하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과학에 관한 이해가 빈약하고 비판적 사고를 행하기 어려울 때 자신들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선다는 이유에서 샤머니즘, UFO, 텔레파시, 점성술 그리고 창조론을 믿어 버린다.12)

게다가 선정적 저널리즘에 물든 각종 미디어들은 온갖 종류의 엉터리 사이비과학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데는 기꺼이 가담13)한다.

때로는 과학에 무지한 톰 크루즈 같은 유명인을, 때로는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우리 이웃의 보통사람을 동원해서.

 

지만 이러한 행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앞에서 언급한 에이즈 부정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라, 미국의 정치 명문인 케네디 가문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1954~)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는데 정부는 이 비밀을 덮으려고 했다14)와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유포되어 대중들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을 때의 결과를.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왜 하는지 대중에게 알릴 윤리적 의무가 있다.15)이를 위해서는 기자들을 비롯한 미디어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칼 세이건(Carl E. Sagan; 1934 ~ 1996)이나 스티븐 굴드(Stephen J. Gould; 1941~2002) 같은 대중적 지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논의가 대중매체의 필요에 따라 왜곡된다면 헛수고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정치 과학자의 의무와 한계

 

구 온난화에 관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비록 이 책 표지에서 지구온난화를 반대하는 견해를 엉터리과학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불행하게도 이 연구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지구온난화를 지지하는 쪽은 녹색산업 쪽의 지원을, 반대하는 쪽은 석유화학산업 쪽의 지원을 각각 받아 연구를 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대하는 쪽은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IPCC 보고서에 부정적인 글을 쓰도록 여러 과학자와 경제학자에게 뇌물(1만 달러와 여행경비)을 주려 했다16)는 사실이, 지지하는 쪽에서는 IPCC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거대 금융회사와 녹색산업 관련업체들의 기후변화 예측 자문역으로 일하며 막대한 돈을 받아 왔(), (2007 IPCC 4차 보고서에서) 인간이 지구를 데우고 있다고 주장했던 필 존스 교수가 (2010) 2 13일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지난 15년간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통계적 근거는 없다.’는 발언을 했다.17)는 사실이 각각 폭로되었기에 아직까지는 저자의 주장과 달리 좀더 유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주법(州法) 1967년에 최종적으로 철회된 미국 못지 않는 근본주의적 경향이 강한 한국에 살고 있는 만큼, 칼 세이건의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어둠을 밝히는 촛불인 과학와 저자의이것은 과학이 아니다[Nonsense on stilts; “터무니없는 헛소리”]>같은 책을 통해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최소한 사이비과학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옥의 티

 

p. 46

그렇다면 탄탄한 견성과학이란 말인데 그렇다면 탄탄한 경성과학이란 말인데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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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노태복 옮김, (부키, 2012), p. 6에서 재인용

2)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9

3)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44

4)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49

5)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71을 보면 인간의 경우 적합한 환경에서 대상을 선별하거나 실험을 할 수 없고, 우리의 행동을 가까운 친척 종과 비교할 수 없으며, 화석 기록을 사용할 수도 없다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6)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85

7)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98

8)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94

9)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96

10)만델라 에이즈 대처 국제협력 절실’”, <연합뉴스> 2007 12 2

11)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에이즈, 남아공서만 연 35만 명 사망”, <경향신문> 2010 5 26. 같은 아프리카에 속하며 2009년 기준 1인당 GDP $964(141)에 불과한 세네갈의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률은 2%미만인데 반해, 1인당 GDP $7,101(68)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률이 약11%에 이른다는 사실은 단지 가난때문에 에이즈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변명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 수 있다.

12)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96

13)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131

14)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136

15)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157

16) 마시모 피글리우치, 앞의 책, p. 241

17)지구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매일경제신문>, 20102 20

w******f 2012.07.04. 신고 공감 5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무엇이, 왜 과학이 아니라 하시는지?
"무엇이, 왜 과학이 아니라 하시는지?" 내용보기
얼마전 블로그 친구분께서 “교과서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의 압력으로 우리나라의 일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이 삭제된다는 뉴스와 함께 이와 같은 소식이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에까지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주의자의 요구에 굴복하였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창피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http://blog.yes24.co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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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블로그 친구분께서 “교과서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의 압력으로 우리나라의 일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이 삭제된다는 뉴스와 함께 이와 같은 소식이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에까지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주의자의 요구에 굴복하였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창피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490274). 창조론에서 발전한 지적설계론을 교과과정에 넣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해온 미국사회에서도 진화론과 견줄 정도의 위치마저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지적설계론자들이 입김이 우리사회에서 진화론의 증거가 되는 사진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게 되면서 창조론의 입지는 축소되기 시작하였는데, 분자유전학적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그 부피를 더하면서 대안으로 내세웠던 창조과학마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자 지적설계론으로 변화를 모색하였지만,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하여 회의주의자들은 비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이 우리네 삶과 긴밀한 관련을 맺게 되면서 과학으로 포장한 비과학이 세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하여 태동한 회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표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의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yes24.com/document/5882295>를 비롯하여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2323650> 등을 읽으면서 회의주의적 사고를 키워야 할 필요에 공감해오던 터였습니다.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제목이 주는 묘한 뉘앙스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만, 저자인 마시모 피글리우치교수가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이한 것은 회의주의자들 가운데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왕에 나온 회의주의관련 서적들의 번역에서 사용한 용어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과학, 변경지대의 과학 등의 용어는 사이비과학과 거의 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소개된 회의주의적 관점의 서적들은 비과학 혹은 변경지대의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이론의 논리적 배경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에서는 비과학 혹은 변경지대의 과학의 사례를 먼저 소개하고 그와 같은 이론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을 붙이게 되는 이유를 살피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의 역할이나, 대중지식인들이 목적을 가지고 이와 같은 이론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왕의 회의주의관련 서적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사례들을 다시 읽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이클 셔머와 같은 경우는 과학, 변경지대의 과학 그리고 비과학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저자의 경우는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가 최근에 읽은 칼 포퍼교수가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였던 반증가능성[자연학과 철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담은

<추측과 논박2; http://blog.yes24.com/document/6561309>에서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대한 포퍼의 개념을 읽을 수 있습니다]은 과학의 본질이 복잡다단해진 현실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에 학문적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판단기준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http://blog.yes24.com/document/6579314>를 인용하여 비판하면서 역사의 일반이론이 적절한 분석으로 검증될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역사과학을 통한 검증가능한 예측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칼 포퍼교수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http://blog.yes24.com/document/6501974>에서 그 논리적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특성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여 해설을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를 충분히 개진하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국 펜실베니아 도버시의 법정에서 맞붙은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자들 사이의 대회전에 대하여 양측을 대표하는 입장을 각각 소개하고 결국은 정경분리를 규정한 미국수정헌법을 지켜 지적설계론자의 패배를 결정한 존스판사의 결정문을 인용하는 수준에서 글을 마무리한 점이라거나, 많은 회의주의자들이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주장이 과장되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편에 가까운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무리 부분에 적은 특정영역에서 누가 전문가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정 영역에서 누군가를 전문가로 볼 수 있으려면 다음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그 사람은 비전문가보다 해당 영역에 관해 옳은 믿음을 더 많이(그리고 틀린 믿음을 더 적게) 지닌다. (2) 그 사람은 해당 영역에서 ‘상당한 양의 진리’를 알고 있다.(436쪽)” 일견해서는 똑 떨어지는 기준같아 보입니다만, 참으로 애매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것이 아닌 앨빈 골드먼이 제안하는 전문가 구분법 다섯 가지 역시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책읽기에 몰입이 어려웠던 점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산만하다 싶은 서술과 특히 본문 중에 작은 글씨로 적어 넣고 있는 주석이 오히려 책읽는 흐름을 방해한 결정적인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문의 주석이 그렇게 중요하였다면 본문에 녹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y*****2 2012.07.14. 신고 공감 1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과학과 비과학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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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떤 신성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무엇을 논의하는 데 있어 ‘과학적’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해명하려 들 때, 과학의 혜택을 받은 현대 문명의 위대함을 얘기할 때 등등.그리고 그런 과학의 명성에 기대어 전혀 과학답지 않은 주장이 과학의 외피를 입고, 과학의 영역에 침범을 하고 어지럽힐 때가 있다. 과학은 신성한 것이 아니란 걸 보여줌과 동시에 신성하다고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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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떤 신성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무엇을 논의하는 데 있어 ‘과학적’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해명하려 들 때, 과학의 혜택을 받은 현대 문명의 위대함을 얘기할 때 등등.

그리고 그런 과학의 명성에 기대어 전혀 과학답지 않은 주장이 과학의 외피를 입고, 과학의 영역에 침범을 하고 어지럽힐 때가 있다. 과학은 신성한 것이 아니란 걸 보여줌과 동시에 신성하다고도 여기는 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과학과 사이비 과학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고 있는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전투적인 책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가차 없다는 의미와도 비슷하다. 상당히 엄격한 기준에서 과학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부분도 있다.

몇 가지의 내용으로 나눌 수가 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 즉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어떻게 나눌 수가 있는가에 관한 내용, ‘거의 과학(almost science)', 즉 ’유사과학‘에 대한 내용, 사이비 과학, 혹은 잘못된 과학이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내용 등등.

과학자, 혹은 과학철학자라면 ‘과학 활동’에 대한 논의가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사실 쉽지는 않은 부분이다. ‘자연주의’, ‘이론’, 실증주의‘가 과학과 과학이 아닌 다른 활동과 구분한다는 내용을 짧지 않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게 뭔데... 싶은 생각도 길지는 않지만 들기도 하니까. (물론 적지 않은 부분에 공감하며, 나의 과학 활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그래서 흥미로운 부분이자, 쉽게 읽히는 부분은 사이비 과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랄 수 있다. 피글리우치가 언급하고 있는 사이비 과학은 다음과 같다. 에이즈에 대한 부정, 점성술, UFO와 그와 관련한 유사종교. 그러나 이것들은 단 한 장(chapter)에서 뭉뚱그려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 그의 필치가 날카롭게 향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론,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대론, 우생학이 바로 그것이다. 포스트 모너니즘까지. 이것들이 왜 과학이 될 수 없으며, 데이터를 마음대로 해석하며, 정치적인 주장에 그치는지에 대해 ‘전투적’으로 대하고 있다. 특히 논쟁적이랄 수 밖에 없는 진화론과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처럼 맹렬하게 옹호하는 경우(특히 그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그러니까 과학의 본성의 측면에서 논의한다)는 어찌보면 속 시원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대부분의 과학자라면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논쟁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거의 과학’이라고 하는 분야를 설정하고, 그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다.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중간지대쯤으로 설정하고 이 ‘거의 과학’에 들어가는 분야를 보면, 갸웃하거나 분노를 표출할 이도 적지 않다. 물리학에서의 끈이론, 외계생명체탐사(SETI), 그리고 진화심리학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과학자가 아니라고 할까? 그리고, 또 그 주변 분야(물리학, 천문학 또는 우주학, 진화학)에서 그 분야를 과학이 아니라고 할까? 이런 생각이 들지만, 피글리우치는 단호하다. 그것들은 과학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는 것이다. 이 분야들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말이다. 위에서 밝힌 과학의 조건에서 ‘실증주의’를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분야를 과학의 한 분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과연 경계에 있다는 이 분야가 어느 쪽으로 이동하게 될 지 궁금하기도 하다(또 솔직하게는 이 책에 대한 그 분야 연구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연장선상으로 칼 세이건과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한 비판도 논쟁적이다. ‘대중분야의 대중 지성주의에 관한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과학자이다. 가장 대중적인 책을 쓴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직전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읽고, 또 그의 책을 또 한 권 품 안에 들고 있는 나로서는 역시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는 설정이긴 하다. 물론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한 비판은 그가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정도에 그치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무엇이 과학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사이비 과학에 대해서 냉정해지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해를 입히느냐는 반론에 저자가 내놓는 위험성의 증거를 보더라도 그렇다. 과학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으면서 그건 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곤란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더 문제이다.



(2012. 9) 

YES마니아 : 로얄 n*****m 2015.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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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은 과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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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은 과학일까요 아닐까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왜 그럴까요? 인간의 경우에, 그것은 적합한 환경에서 대상을 선별하거나 실험을 할 수 없고, 인간과 비교할 만한 가까운 친척 종도 없고, 화석 기록도 사용할 수가 없는 까닭이죠.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면 진화생물학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죠. 그건 과학과 철학의 차이점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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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은 과학일까요 아닐까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왜 그럴까요? 인간의 경우에, 그것은 적합한 환경에서 대상을 선별하거나 실험을 할 수 없고, 인간과 비교할 만한 가까운 친척 종도 없고, 화석 기록도 사용할 수가 없는 까닭이죠.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면 진화생물학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죠. 그건 과학과 철학의 차이점도 마찬가지죠. 진화심리학이 과학인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어떠한 데이터를 낼 수가 없죠. 과학이 철학과 다른 것은 명확한 이론 이외에 '실증적 검증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겠죠. 그런 기준에 비추어볼 때 진화생물학도 과학이라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학인 것 같지만 사이비과학들도 있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종교에도 사이비가 있듯이, 과학에도 그것들이 분명 있겠죠. 이를테면 '12궁도표'의 체계화를 신봉하는 점성술이 대표적이지 않을까요? 사실 황도상의 별자리는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고, 하늘의 별들도 실은 보이지 않는 별들이 훨씬 더 많잖습니까?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명확한 과학을 비롯하여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경계선에 있는 과학들까지 총망라하여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이비과학들이 이 세상에 판을 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죠. 이를테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과 정치적인 파급력 같은 것 말입니다.

진화생물학자는 적응과 자연선택에 관한 가설을 검증할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검상꼬리송사리의 경우, 야생에서 그 물고기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고 그 시스템을 조작하는 실험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적절한 화석 기록이 없더라도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도록 가까운 친척 종을 살펴볼 수도 있다.(71쪽)

진화생물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진화생물학이 '거의 과학'에 가깝다고 하죠.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이나 분자생물학처럼 그것을 '명확한 과학'이라고 말하기는 꺼려하죠. 왜냐하면 가설 이론이 실증적인 검증으로 뒷받침될 만한 사안이 아닌 까닭이겠죠. 다만 검상꼬리송사리의 경우처럼 특별한 방식의 검증 가능성 때문에 그나마 '거의 과학'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걸 인간에게 대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란 이야기겠죠.

'거의 과학'이란 말이 그렇다고 과학을 훼손하거나 폄하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이 책에서  알게 됐습니다. 더욱이 과학에는 '경성과학'도 있고, 또 '연성과학'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비역사적이면서도 단순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을 '경성'과학이라 하고, 역사적이면서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과학을 '연성'과학이라고 설명하죠. '거의 과학'으로 일컫는 진화생물학은 아마도 '연성과학' 쪽에 기울어 있겠죠.

고어의 책은 지구를 담은 화려한 인공위성 사진으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대체로 아름다운 사진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부분은 유익하고, 어떤 부분은 당면 주제에 적합하며, 또 어떤 부분은 고어 가족 앨범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가족사진은 반대자들을 화나게 했고 지지자들에게는 환호를 받았지만, 어쨌거나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225쪽)

이 책 제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둘러싼 '과학과 정치'에 관한 논의죠. 사실 대부분의 과학계 주장은 온실효과가 본질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그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정치인들을 끌어들인다고 하죠. 엘 고어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하고요. 더욱이 롬보르의 책들도 곧잘 인용한다는데, 사실 그는 기후과학자도 아니고 환경문제에 관한 전문가도 아니라고 하죠.

물론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은 온실효과가 아주 나쁜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고,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가 그나마 적절한 기후 속에 살아간다고 하죠. 그게 없으면 당장 혹한 속에 살지도 모를 것이고요.  

그런데도 그것을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책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던 유명한 '제임스 프레이(James Frey, <백만 개의 작은 조각들>의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도 실은 상당 부분 거짓이었다고 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론에 비친 모습 그대로를 믿는다고 하죠. 그건 심령술이나 점성술과 같은 사이비과학들도 예외이지는 않겠죠.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에 많이들 빠져 사는 것 같습니다. 사이비과학을 과학이라 속이면서, 언론과 정치권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예전에 황우석씨도 언론플레이를 즐겨했으니 그런 흐름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그때 분별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이른바 '실증적 검증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 말입니다. 그걸 일깨워주기 위해, 이 책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니 한 번쯤 탐독해보시길 바랍니다.

s*****e 2012.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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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고 생각되던것들에 대한 과감한 직구!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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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과학적 오류를 받아들이거나 이와 반대로 과학적 진리를 거부하는 일은 심리적, 경제적 측면과 삶의 질 측면에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이비과학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좋은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구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과학의 본성과 한계, 논리적 오류, 믿음의 심리 작용, 그리고 심지어 정치학과 사회학에 관한 이해까지도 필요하다.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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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과학적 오류를 받아들이거나 이와 반대로 과학적 진리를 거부하는 일은 심리적, 경제적 측면과 삶의 질 측면에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이비과학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좋은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구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과학의 본성과 한계, 논리적 오류, 믿음의 심리 작용, 그리고 심지어 정치학과 사회학에 관한 이해까지도 필요하다.

 

평소 과학에 대한 지식에이나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과학과 과학이 아닌것을 딱 집어 분류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어려운것 이전에 그 분야에 몸담고 있지않는 이들이 과학과 비 과학을 꼭 구분하려들까? 나만해도 그랬고 말이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많은가보다. 이 책에는 어떤 분야에서 비과학이 과학처럼 여거지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것인가를 보여준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나 UFO, 점성술등 의외의 것들을 '과학'으로 취급하는 이들은 어딜가나 있으며 그것은 최악의 경우 사람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UFO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과학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사이비과학들은 우리들에게 이로울것이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책의 저자는 하고 있는듯하다. 사실 이 책속 그 예들을 보면 내 속이 다 답답하고 깜깜해 지는것이 어설픈 과학에대한 신용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솔직히 책의 두께감도 상당하고 이 속의 모든 내용을 술술 이해할만큼의 지식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과학을 좋아하는 이들의 가슴을 마구 두근거리게 만들거리가 가득하다. 나도 한때 과학과목을 제일 좋아하던 학생으로서 두근거림이 있었으니...^^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활약하지 않는 곳은 없다. 언론, 정치, 법정, 경제...  우리는 알게모르게 과학의 혜택을 받고 이용한다. 그렇기에 한번 엇나가고 잘못 이해한 순간 걷잡을 수 없다.

그 진실과 과학과 비과학에 대한 책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추천!

q***********2 2012.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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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과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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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과학인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책이다.과학 활동이란 게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다 보니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과학인지 알 수 없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이비 과학에 속지 않을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오탈자와 비문이 몇 개 있는 게 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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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과학인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책이다.


과학 활동이란 게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다 보니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과학인지 알 수 없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이비 과학에 속지 않을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오탈자와 비문이 몇 개 있는 게 좀 아쉽긴 하다. 

YES마니아 : 로얄 o***2 2013.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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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주의적이지 않은 과학적 비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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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성장에 필요한 물질을 가진다. 처음의 토양이라면 지역과 계절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식물의 필요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유한 영양분이 고갈되며 결실을 위한 재배에선 당연히 부족한 양을 인위적으로 더해주는 것이 맞다. 인간들이 섭취하는 채소의 영양학적으로 균일한 결과물을 얻으려면 '비료'를 더해주는 것이 그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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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성장에 필요한 물질을 가진다. 처음의 토양이라면 지역과 계절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식물의 필요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유한 영양분이 고갈되며 결실을 위한 재배에선 당연히 부족한 양을 인위적으로 더해주는 것이 맞다. 인간들이 섭취하는 채소의 영양학적으로 균일한 결과물을 얻으려면 '비료'를 더해주는 것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대중매체와 편향된 환경, 사회서적(혹은 다른 모든 출판물)에서는 유기농이라는 단어에 마치 비료가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서술하곤 한다. 여기에선 비료의 개념이 화학적 비료를 제외한 비료를 가리키지만 ‘비료’와 ‘농약’과 ‘자연’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즉 미디어가 주도한 교양과학이 과학적 본질을 잃고 비과학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부족한 파편적 지식을 확대 생산하여 전체적 공포감을 불러 일으켜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증명된 과학이 아닌, 대중의 과학은 너무도 넓은 수용성을 가지고 있어 과학이 곧 상식적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과학적이란 말은 그 어떤 증명보다 강력한 믿음을 주는 대상으로 부상했고 그에 따라 정치, 경제, 학계, 대중의 매스미디어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야에서 객관적 판단의 기준이 되어왔기에 마치 별 의심조차 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이 책의 저자는 과학적 증명과정이 이제껏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계 중에서 매우 높은 확률의 진리도출 과정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비판과 반성을 멈춘다면 아직까지도 지구상에 자행되는 비과학의 불미스러운 인간학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 저자는 경계구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중립적 위치에서 많은 비유와 역사적 사실을 비교 분석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개념을 이해시키고자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은 현재에 이른 과학의 구분, 경계에 대한 원류로부터의 단어정의, 현 과학의 사회적 위치로의 발전역사, 큰 논쟁점의 의견개진, 사회 전반적인 적용 사례(정치, 법정, 미디어 등)등 다방면으로 비판하고 설명하고 있다.

 

 강박적으로 느낄 만큼 업적과 비중에 관계없이 과학사의 과학자들(혹은 동시에 철학가이며 정치가이기도 했던, 또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까지도)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비판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인지도가 높은 과학자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읽으면서 언젠가부터 굳어져 온 내 스스로의 헛소리 탐지기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독자라면 흥미를 가질 외계생명이나 점성술의 오류도 밝히고 있다.

 

 [ ...‘과학주의(scientism)’라는 용어에는 일부 과학자의 지적 교만이 압축되어 담겨 있는데, 이들은 시간과 자금 지원만 충분하다면 과학이 세상에서 제기되는 어떠한 의미 있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과학주의에 빠진 사람은 ‘과학주의적인’ 사람이지 과학자가 아니다. p351]

 

 [설령 좋은 과학이라도 보편적 진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은 제한된 인간이 수행하는 복잡한 사회적 행위다. ... 아무 의심 없이 과학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충분한 경고가 된다. p453]

 

 지은이의 목적은 분명하다.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것. 그것을 위해 대중들이 헛소리 탐지기를 켜놓는 것. 그래서 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자각하고 당면 문제에 수동적 정보만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관여하고 참여하길 바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해답을 바탕삼아 중립적인 입장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학을 무조건적 비판하라는 것이 아님을,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나치게 신뢰하는 ‘과학’을 의심하고 너무 적게 신뢰하는 ‘과학’의 객관성을 사회적 통용되는 지식에 함몰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과학 분야를 전공하면서 느끼는 내 개인적 소신이기도 하다. 언제나 수정 가능한, 절대적인 신의 관점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진리탐구의 방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에 과학전공인을 비롯한 교양과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오래 두고 볼 책이다.

 

 책을 읽으며 이다지도 많은 질문에 더 많은 가능성의 해답을 구한적은 오랜만이다. 비록 내가 예상한 분야가 조금 근본적이며 접근경로를 차별화 한 저자의 의도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에서 시작된 과학의 역사성을 놓치지도 않았고 정치와 대중매체로 새로 생산되는 과정도 소홀하지 않았다. 되려 500페이지 안에 담을 수 있었던 저자의 요점전달을 위한 가지치기에 경이로움이 들 정도다. 교양과학서라기엔 넘치는 전문단어들과 어쩔 수없는 영어의 한글화한 단어의 불편한 어감, 그리고 단조로운 텍스트 디자인이 아쉬워도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독자의 뇌와 눈동자의 반짝거림을 유도해내는데 어렵지 않다. 내용 충실도가 저자의 의지를 반영했다는 충분한 설득이 가능하며 ‘과학적’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사람이 품었던 근본의 시작과 발전경로, 그리고 현재에 이른 ‘경계’의 설정까지 대부분의 질문을 해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경로의 시작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a*******6 2012.07.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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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탐지기에 빨간 불을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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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던 몆주 사이에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많은 뉴스들이 쏟아졌다.뭉텅이 투표용지를 마른 풀이 다시 살아나 분리됐던 투표용지가 다시 붙을 수 있다고 했던'기적의 풀'이 부정투표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2차 진상조사위의 발표가 있었고,힉스 입자 발견으로 스티븐 호킹은 100달러 내기에서 졌고, 톰 크루즈는 사이언톨로지 때문에이혼의 위기에 처했다. KBS에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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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던 몆주 사이에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많은 뉴스들이 쏟아졌다.
뭉텅이 투표용지를 마른 풀이 다시 살아나 분리됐던 투표용지가 다시 붙을 수 있다고 했던
'기적의 풀'이 부정투표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2차 진상조사위의 발표가 있었고,
힉스 입자 발견으로 스티븐 호킹은 100달러 내기에서 졌고, 톰 크루즈는 사이언톨로지 때문에
이혼의 위기에 처했다. KBS에서 방송되는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에서는 인간은 절대로
공기보다 무거운 엔진을 달고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뉴컴 교수와
라이트 형제 이야기가 방송됐다. 모두 과학적 사고의 부족, 지적교만, 유명인의 영향력 등과
관계있다.


어릴 때 봤던 소년 잡지에는 항상 UFO나 외계인, 7대 불가사의나 네시, 빅풋 같은 미스터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공상과학 덕분에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공상과학으로
끝나야 한다. 실제 과학에서 다룰 때 발생되는 문제는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까.

 

카를 포퍼과가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기 위해 제기한 '경계 설정 문제'로 시작해서
경성과학(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과 연성과학(진화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으로 구분할 때
과학에 훌륭하고 덜 훌륭하고를 나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처음엔 이해가 안 갔다. 과학철학을
전공한 저자답달까, 과학은 어렵고 철학은 더 어려우니 과학철학은...  
견고한 학문 VS 무른 학문, 빠르고 인상적인 발전 VS 제자리걸음 또는 천천히 불확실한 발전,
어느 분야의 과학자가 더 똑똑한가, 연구비의 많고 적음, 인재나 실적의 많고 적음, 이론적 누적,
연구 결과의 반복 가능성, 현재와 미래의 관계 VS 현재와 과거의 관계 등으로 선을 긋기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리고 과학이 아니라고 의심해본 적 없는 분야도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거나 시나리오일
뿐이라서, 과학계의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거나 사이비과학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경계인
거의 과학(almost science)으로 분류된다.

p.85-유사과학 중 일부는 정통적인 과학 분야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진화생물학 내의 진화심리학, 천문학과 생물학 내의 SETI 프로그램이
그런 예이며 이론 물리학 내의 끈 이론은 더욱 명백한 사례다.

 

세번째 장은 소년잡지처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사이비과학 차례다.
거대 제약회사가 자기네 제품을 팔기 위해 퍼뜨린 거짓이라며 주술이나 기적 치료를 하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부정론, 단순한 투사 효과로 별들을 하나로 묶어 거리에 관계없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성술, 종교적 재앙이 된 UFO 신봉 이야기까지, 기이한 현상에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과학적 사고의 부족이 어떻게 재앙을 만들어내는지를
다루며 경계 설정이 왜 필요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p.67-존 캐스티가 자신의 책 [사라진 패러다임]에서 말한 사이비과학의 특징이다.
이 특징들로는 시대착오적 사고, 불가사의에 관한 찬미, 신화에 관한 애착,
증거에 무관심한 태도, 반박할 수 없는 가설에 호소하는 자세, 그럴듯한 유사성의 강조,
시나리오(스토리텔링)에 의한 설명, 사실을 실증적인 바탕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문학적으로' 포장하기,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는 것에 관한 극도의 저항, 증명의 부담을
회피하려는 경향, 그리고 새롭거나 대담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이론에 동조하기 등이 있다.

 

p.91-누구나 비합리적일 권리는 있지만, 사회에 비합리성이 만연하면 매우 낭비적이고
파괴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합리적인 것들을
쉽게 믿어버린다면, 글쎄, 아주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다.

 

p.96-사람들은 과학에 관한 이해가 빈약하고 비판적 사고를 행하기 어려울 때
자신들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선다는 이유에서 샤머니즘, UFO, 텔레파시, 점성술
그리고 창조론을 믿어 버린다.

 

p.125-정작 너무 적은 수를 다루다 보니 통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어떤 도구든
원래 의도한 목적이 아닌 곳에 사용될 때 늘 그렇듯이 말이다.(망치가 아니라 구두로
벽에 못을 박아보기 바란다. 가끔 제대로 될 때도 있겠지만, 결과가 번듯하기란 어려우며
구두도 그 과정에서 망가지고 만다.)

 

p.127-사이비 과학들이 열린 마음을 가져달라고 요청하지만 머리가 텅텅 빌 정도로
마음을 열 것까지는 없다.


유명인들이 과학적 사안에 대해 떠벌릴 때도 완판의 개념은 통한다. 따라하고 싶으니까
믿음이 가니까 불량품도 잘 나간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오락이 돼버린 지식은 싱크탱크처럼
이해당사자에게 보수를 받으며 상업화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속기 쉬운 대중이 만났을 때가
문제다.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쟁은 아무래도 석유사업과도
관계가 있고 교토의정서를 거부한 미국이기에 정치적이고 경제적 이익이 반영된 듯하다.
우리로 치면 광우병 사태 정도의 사안일듯. 경제학자가 쓴 트집잡기식 지구온난화 부정론에 대해
저자는 짜증 섞인 반박을 시작한다(대중매체를 통해 과학이 잘못 전달되는 문제를 꺼낼 때
자신의 인터뷰 왜곡에 대해 꽤나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말이다). 물론 반대 위치인 고어의
가치없는 지구온난화 정보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며 균형잡힌 시각을 보이려 하고 있긴 하다.

 

진화론 VS 창조론(지적설계론) 문제로 들어가면서 저자는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하다.

p.248-해변에 조약돌이 질서 있게 분포해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작은 조약돌은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 쪽에 있고 큰 조약돌은 물 근처에 있다. 왜 그럴까? 지적 설계자가 나타나
일일이 모든 조약돌을 그렇게 분류했을까? 아니다. 그 유형은 두 가지 원인의 결합으로 생긴
결과다. (무작위적인) 파도의 활동으로 모든 조약돌이 해변으로 몰려왔고 (무작위적이지 않은,
즉 선택적인) 중력의 효과로 인해 평균적으로 가벼운 조약돌이 해변 쪽에 남게 된 것이다.

 

판사의 판결문에 찬성하며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지만 창조론자 쪽 사람들의 인격적인 문제를
부각시키려한 점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옮긴이 주에 대해서도 불만인데 p.262 지도에 오르다는
표현이 유명해진다는 뜻이라는 설명은 하면서 정작 중요한 p.275 페일리와 눈에 대한 얘기에는
아무런 주도 달고 있지 않다. 애초에 저자가 괄호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인지 옮긴이의 주석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어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면 책의 난이도가 조금은 낮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넘어 과학이 철학에서 분리되는 과학사 부분은 이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어 보여 지루한 면이 있다. 철학 얘기라 어렵기도 하고. 이어서 저자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균형잡힌 시각의 일환으로 과학주의를 문제삼는다. 지적교만, 맹신,
우생학 같은 이데올로기, 싱크탱크 같은 지식의 상업화 등 모든 과학자가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며 한권의 과학 비평을 마무리 한다.

 

미국에 지구온난화 논쟁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광우병 사태가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는 점도 많고, 반대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예민했던 부분이지만, 여러가지 말들 중
과학적이지 못한 루머들이 일부 섞여있었던 건 확실하다. 일부 발뺌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던 것 같고.  
저자는 박사학위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열린 마음으로 의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증거를

요구하는 습관을 기르자고. 과학적 사고가 모자라도 넘쳐서도 안되는 경계에서 지적인 권리를

누려야 한다. 특히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이비과학에 대해서는 항상 헛소리 탐지기를

경고상태로 설정해 놓고 말이다.

x******6 2012.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_마시모 피글리우치/노태복//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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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감상이라고 쓴 글이 이제는 어제가 된 날 아침(약 17시간 전)에 블로그에 올라왔다. 아니 이미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그 감상은 감상이라기보다 급하게 지어붙인 단어들의 나열일 뿐 어떤 의미를 낳지도 이 책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 그 부끄러움에 씻김을 내리기위해 잠을 줄여 찬찬히 써보기로 한다.   먼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_마시모 피글리우치/노태복//부키" 내용보기

사실 이 책의 감상이라고 쓴 글이 이제는 어제가 된 날 아침(약 17시간 전)에 블로그에 올라왔다. 아니 이미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그 감상은 감상이라기보다 급하게 지어붙인 단어들의 나열일 뿐 어떤 의미를 낳지도 이 책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

그 부끄러움에 씻김을 내리기위해 잠을 줄여 찬찬히 써보기로 한다.

 

먼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살짝 이야기해야겠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되듯 책도 표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준 책으로 제법, 복잡하게 느껴졌다.

 

저자인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2년여에 걸쳐 이 책을 썼다.

그 동기란 '회의론자'로서 현재 미국 등 세계를 횡횡하고 있는 얼토당토 않은 사이비 과학과 우리가 진정 과학이라 기꺼이 인정하는 진짜 과학, 그리고 거의 과학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쓰인 과학들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다.

UFO와 외계 지적생명체와의 접촉, 점성술, 창조론자들이 최근 갈아탄 노선인 지적 설계론, 미신들과 신뢰할 수 없는 전문가들을 조목조목 예와 인용을 통해 '비판'하고 그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들이다.

 

열심히 책을 쓰고,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를 했을 저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일단 내 결론을 밝히자면, "그래서?"라는 시큰둥한 되물음으로 축약할 수 있다.

이유를 적기 전에 몇 구절, 단 몇 구절만 인용해 두기로 한다.

 

139쪽

이 책에서 거듭 제기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권위 있는 듯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쉽게 권위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어떤 견해를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 머리를 써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배경지식에 관해 조사하는 것 외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

 

- 이러한 저자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저자의 회의론적 입장에 따라 이 책을 읽어 나갔음을 밝힌다.

 

222쪽 이건 좀 재밌는 표현. 약 20초간 웃게해주었다.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애초에 지구 온난화와 전반적인 환경 악화가 생긴 이유는 경제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시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문제를 오직 경제적인 수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제안은 마치 알코올 중독자에게 해결책은 오직 올바른 종류의 술을 고르는 일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427쪽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용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독자들에게 일종의 불신감을 초래하여 내가 이야기를 꾸며 낸다는 인상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단지 꾸며 낸 이야기로는 이런 훌륭한 내용을 쓸 수 없다.

 

- 스스로의 저작에 '이런 훌륭한 내용'이라는 말을 붙이는 자신감을 보이는 이의 발언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소심하게 느껴지는데, 아마 그 전에 이런 식으로 지적을 당하거나 발목을 잡혀 논쟁을 벌였던 과거가 엿보이는 것 같아 이래저래 쓴 웃음을 짓게 했던 구절.

 

내가 "그래서?"라며 삐딱한 결론을 내린 이유는 책 내용이 어때서라기보다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논란이 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알력 다툼이 거의 주된 주제다보니 삐딱해지고 싶었던 것 뿐이다.

오히려 부수적으로 다룬 것이 우리나라 정세에 더 가까웠다.

 

예를 들면 438쪽의 "우선 대다수 정치인은 우리만큼이나 경제나 외교 문제에 관해 실제로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다. 즉 그들의 여러 주장은 우리가 신경을 써서 관련 내용을 숙지하면 직접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는 구절은 침통하게까지 다가왔다.

전문가의 탈을 쓴 비전문가들에게 농락당하고, 정치인은 기본적 지식조차 갖추지 못하고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쏟아내는 현실이 얼비쳐 보였다.

 

이쯤 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대략 파악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어떤 과학 이론을 두고 크게 이슈가 된다거나 논쟁이 벌어지는 일은 드문 것 같다.

미국처럼 종교와 정치가 밀접한 상관 관계를 맺고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의심해 볼 필요는 있다.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주는 것이고, 구태의연함과 사고의 관성으로부터 사회를 일깨우는 것이라고 믿고있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적인 의도가 있기는 했겠지만, 더 큰 의미를 두고 공을 들여 이야기를 풀어나간 흔적이 엿보인다.

단순히 이것은 과학이고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장황하게, 오랜 노력을 들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염려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혼란을 조장하고, 그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는 세력의 기세가 줄지 않음이 말이다.

 

이 책은 국내에 출판되기엔 너무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다.

첫 느낌은,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팔릴 수 있는 배경이 있는 걸까?

처음 UFO이야기에 혹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과학적 논쟁이 정치적, 종교적 논쟁으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끝까지 읽어나가기는 할까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발행인과 편집인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흥행을, 단발적인 흥행을 위해 출판된 책이 아닌 것만은 알겠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도 어떤 '염려'에서 모험이 되겠지만 이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곳에 생각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재미'가 아니라 '사고'를 위한 독서에 목말라 있었다던가.

 

과학이 품고 있는 권위의 후광에 휘둘리기 싫은 사람들, 휘둘리고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c*********p 2012.09.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