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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쪽일까『서쪽 숲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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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글을 몇 작품 접하진 못했지만 달착지근하면서 끈적한 그녀의 글에 매료되었다. 유쾌 또는 명쾌함과는 대척점에 있는 스타일인데 내가 관념적인 글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가다. 그녀의 신간 소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결말은 선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기대한 결말, 혹은 대부분의 독자가 기대했을 분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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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글을 몇 작품 접하진 못했지만 달착지근하면서 끈적한 그녀의 글에 매료되었다. 유쾌 또는 명쾌함과는 대척점에 있는 스타일인데 내가 관념적인 글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가다. 그녀의 신간 소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결말은 선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기대한 결말, 혹은 대부분의 독자가 기대했을 분명한 결말이 아니었단 얘기다. 이미 적응한 줄 알았던 그녀의 글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문학이 간접적으로 의미를 담고 있다지만 이렇게 난해한 경우는 어쩔 줄 모르겠다. 편혜영이라는 작가 이름과 단촐하고 산뜻한 표지, 그리고 단순 명료한 제목만으로는 이런 내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숲이 주는 넉넉함과 생명력을 바탕으로 쓰여 진 글이 아닐까 기대했건만 숲은 어둠이었고 무언가를 집어 삼키는 기묘하고도 비상식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명쾌한 답은 들을 수 없고 독자 스스로 상상하라고 맡겨버린다. 수학처럼 수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답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 은근한 짜증을 선사한다. ‘어쩌라고?’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이야기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사의 맥락은 실종된 형을 찾아 나선 변호사의 행적과 거대한 숲이 있는 마을에서의 기괴한 일들에 대한 줄거리다. 등장인물 모두 양지에 내놓을 수 없는 어떤 비밀을 한 움큼 쥐고 서로를 의심하고 예측하고 분노하고 미쳐버리게 하는 이상한 구조다. 추리물처럼 흘러가던 1부가 갑자기 한풀 꺾여 지루한 2부로 전개되다가 다시 독자 마음 졸이게 하는 미스터리로 3부를 진행한다. 독자의 멱살을 잡았다 놓았다 하니 질질 끄는 2부에서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3부까지 읽게 만들어버린다. 어쨌거나 편혜영에게 마치 속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어쩌라고?’를 외치며 술 한 잔 해버리고 싶어진다.

 

나같이 평범한 독자들이 자칫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리 무지할까’ 라며 자괴감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긴 평론 한 자락 심어놓긴 했다. 평론이라도 읽으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의심만 더 한다. 평론가에게 ‘진짜 편혜영이 그런 의도로 소설을 썼을까요?’ 라고 되묻고 싶어진다. 아직은 부족하고 해석 능력이 떨어지는 독자다. 희한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혜영이 여전히 좋고 앞으로 나올 글들에 기대를 건다. 따끈한 신간 나온 지 두어 달인데 벌써 새로운 그녀의 소설을 기다리고 앉았다. 난해하든 복잡하든 그녀의 문체에 이미 중독되었나 보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2.08.07. 신고 공감 12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서쪽 숲에 갔다』불안한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서쪽 숲.
"『서쪽 숲에 갔다』불안한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서쪽 숲." 내용보기
아무도 없는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다지 우거진 숲도 아니었지만 사람의 발길도 뜸한 이른 아침의 숲은 왠지 두려움이 일게 했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들리는 숲의 자잘한 소리들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가 들릴라치면 가슴부터 뛰었다. 누군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도 무섭지만 갑자기 동물들이 뛰쳐 나올것
"『서쪽 숲에 갔다』불안한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서쪽 숲." 내용보기

아무도 없는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다지 우거진 숲도 아니었지만 사람의 발길도 뜸한 이른 아침의 숲은 왠지 두려움이 일게 했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들리는 숲의 자잘한 소리들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가 들릴라치면 가슴부터 뛰었다. 누군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도 무섭지만 갑자기 동물들이 뛰쳐 나올것도 같았다. 아는 길이었지만 인적이 없는 숲은 지금도 두렵다. 가다가 사람들을 발견했을때의 그 안도감이 생각난다.

만약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우거진 숲에 들어섰다가 방향을 잃어 길을 헤맨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도무지 나가는 일이 보이지 않을때의 그 두려움.  숲의 이야기,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숲의 두려움을 알게 해주는 소설이다.

 

 

1부는 실종된 형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간 이하인의 이야기이다.

치통때문에 자신을 매일 패기만 했던 형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형이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서쪽 숲으로 갔다. 새로운 관리인 박인수는 전 근무자를 알지도 못하고, 벌목꾼을 관리하는 진선생을 소개시켜 준다. 마을 사람들에게 형 이경인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형의 소재를 알고 싶어하는 변호사 이하인은 진선생을 만난 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2부에서는 숲의 관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루종일 할 일이 없이 일지를 기록하는 일만이 전부인 그의 숲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와 그의 과거, 현재의 기억들이 춤을 춘다. 꿈을 꾸었던 것처럼, 자신이 한 일들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이기도 하다. 3부는 마을 사람들인 숲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들 같은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가 말하는 숲의 이야기이다. 

 

 

이하인이 형 이경인을 찾으로 숲에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인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를 차례대로 만나며 형의 실종을 파헤쳐나가는 중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우리의 주인공이 갑자기 죽어버린 그런 허무함을 느꼈다. 형을 찾으러 온 이하인이 죽어버리면 형 이경인은 누가 찾는단 말인가. 사실 밤에 1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두려워 한밤중에 책을 조용히 덮기도 했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기에. 2부에서 또한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술에 취한 박인수의 행태를 보며 실종된 이경인을 유추할 뿐이다. 3부 또한 마찬가지. 관리인 박인수와 숲에서의 비밀을 쥐고 있는 최창기나 이안남, 한성수가 벌목꾼으로 있었을때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독자들을 후련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모호한 결말로 인해 계속 서쪽 숲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숲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경인이 실종되었으며, 또한 새로운 관리인 박인수가 보여주는 행태를 보며 박인수의 모습에서 이경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거울처럼 그들의 모습이 비슷하다. 박인수의 행동이 과거의 이경인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부엉이 소리 또한 마찬가지.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엉이가 이 책의 어떤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애매모호하다. 사방을 둘러보는 부엉이의 눈, 무언가를 했을텐데. 무슨 일인가를 했을텐데 그것 또한 모호하다. 우리의 상상에 맡기는 것인가. 많은 장치를 숨겨놓고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마치 불안한 우리의 삶처럼.

 

『서쪽 숲에 갔다』로 편혜영 작가를 처음 만났는데 글이 참 마음에 든다.

미스테리 소설인가 싶으면 아닌 것 같고, 우리를 글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글발도 마음에 든다. 고요히 서 있는 나무들로 뒤덮인 숲속에 가면 이 서쪽 숲이 떠오를 것 같다. 덩굴 때문에 발이 감기고 교교한 소리를 내는 검은 숲. 그 숲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 들도 떠오를것 같다. 기억속에 숨겨 놓은 숲에서의 일들을, 숲속으로 간 사람들을. 숲속에서 들리는 모호한 소리들에 귀 기울일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7.06. 신고 공감 8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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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식 지도와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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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상화하기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이 있은 직후 바로 다음 해에 질 들뢰즈는 미술계에서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들을 가지고 종종 헤겔의 미학개념에서 빌려오고나 틈틈이 니체의 니힐리즘을 흉내 내며, 과거에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시대와의 불화) 지식인들 사이에서 숨기기 급급하여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으며(은닉의 기술)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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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상화하기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이 있은 직후 바로 다음 해에 질 들뢰즈는 미술계에서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들을 가지고 종종 헤겔의 미학개념에서 빌려오고나 틈틈이 니체의 니힐리즘을 흉내 내며, 과거에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시대와의 불화) 지식인들 사이에서 숨기기 급급하여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으며(은닉의 기술) 동시에 검은 장막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으며(백스테이지의 활용) 결단코 함부로 내세우지 않았던 컬트적인 원칙과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최신식 경향을 세우고 다소 과감할 정도로 부드러운 미학적인 방식이 아닌 과격한 철학적으로 신랄하게 분석하는 <감각의 논리 Logique du sens>를 썼다. 


들뢰즈는 회화라는 그 특유의 보편적 특수성 때문에 보면서 세상을 다시 새롭게 구현하는 것과 특수한 보편성이라는 이라고 여기는 감각, 그 그려지고 있는 캔버스에 보내는 응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로 규정하게 만드는 프리즘 같은 역할을 하는 것, 동질적이지 않은 서로 다른 계열들이 만나 그 신체적 접촉과정이 발생하는 개념이 같은 목적의 방향으로 한데 묶이며 매듭짓고 인과율이 세워지는 관계 속에서 들뢰즈가 회화와 감각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구상화하기를 추월하는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추상적인 형태로 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상으로 향하는 것”


이라며 추상과 형상에 대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을 때, 여기서의 추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개별의 사물이나 표상(表象)의 공통된 속성이나 관계 따위를 뽑아내는 것”


을 긍정하는 말 속에 “두뇌의 중개에 의하여 움직임” 이라는 한 가지가 더 첨언되는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여기에는 앙리 베르그송이 지적한 것처럼 “눈은 자기가 보는 것을 보는 대신 자기가 학습 받은 뇌의 관습에 따라서 대상을 본다.”라는 문구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상적인 작업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자 고유의 속성을 지닌 ‘뇌’의 활발한 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지의 대상에 대한 실재계에 관한 정보에 대한 외부적인 개입(invention)과 주체적인 추동력을 불러일으키는 상상계에 대한 애티튜드(attitude)에 대한 내부적인 틈입(intrusion)에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항상 기본이 되는 뼈대를 세워는 것이 이 자리에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것을 제쳐 두고서 라도 우선의 법칙이었다. 


정반대로 형상은 신경 시스템의 직접적인 감각과 그 외에 간접적인 감각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도록 서로 끌어 붙여 연관되도록 하는 것이다. 감각은 


“쉬운 것, 이미 된 것, 상투적인 것의 반대일 뿐만 아니라, ‘피상적으로 감각적인 것’이나 자발적인 것과도 반대이다.” 


라고 들뢰즈는 단언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보충설명이 주석처럼 따라 붙어야 하는데 들뢰즈는 쉽고도 친절하게 우리들이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하도록 서술하고 있지 않고 있는 불편한 설명방식을 따르고 때문이다. 여기서 쉽다. 존재, 상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우리들은 즉각적으로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말해주는 ‘아비투스(Habitus)’ 나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나타내는 ‘컨벤션(Convention)'을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어느 시간과 장소이던 간에 어느 누구한테도 그러한 의미부여를 결단코 허락하지 않았다. 쉽다는 것은 어려움의 반대나 존재의 다른 편의 말의 부재나 상투를 정반대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진화라는 측면에서의 단순한 도식적인 관계의 성립이 아니라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하며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카테고리라고 불리는 범주들과 겹쳐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분리되거나 하는 층들, 정확한 좌표를 알려주는 영역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였다. 


여기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해석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자는 그 주체적인 구상과 다소 종속적인 개념인 형상 만들기를 멈추지 않고 끈기 있게 전혀 다른 질감이 존재하는 세상의 밀도 혹은 부피들을 자연스럽게 혹은 균질성 있게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편혜영이다.


2. 감각의 층위들, 여러 가지들


편혜영이 반복해서 재현하는 세계에는 이런 구상과 형상이 하나의 질서를 세우며 그 순서에 편입된 순응한 알레고리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예를 들면 자주 등장하는 설치류들 레밍, 하수구쥐, 들쥐, 그리고 애완동물들 개, 고양이, 새들이라는 추상적인 고유명사에서 저수지, 하치장, 습지, 도시, 숲, 공장, 무덤이라는 정형화된 장소에 나타남으로 인해 형상화되는 대명사로 변모한다. 그러니깐 그 고유명사들이 일정하게 안정된 장소에서 출현하게 되면 그저 간단하게 하나의 특질을 가진 형태로 마무리가 되는 반면에 이렇게 신비롭고 불가사의하며, 으스스한(uncanny) 장소에서 부유하고 있는 고요명사들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된 다음에는 다른 뉘앙스의 제스처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만의 고유한 패러독스(paradox)이며 도그마(dogma)이며 아포리즘(aphorism)이다.


이 과정에는 편혜영과 지금-여기와 문학 사이에서의 엷은 괄호를 치고 그 안에 자극되어 밀어 붙여진 강한 모티브를 채워나가는 증명에 논증의 설득방식이 필요하다. 2000년대 한국문학은 원근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자마자 사각형틀 닫힌 캔버스에다 열려진 세상의 한 단면을 잡어 뜯어 붙이며 그려내며 자연의 빛과 색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묘하고 세세한 뉘앙스를 잡아내는 인상주의자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고전주의 회화의 테마는 항상 신화, 구/신약성서, 전쟁터 아니면 왕실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은 그들의 토픽의 목적을 갑작스럽게 전통적인 바로크/ 로코코적 토대에서 벗어나며 좀 더 미시적이며 개별적인 세계로, 즉 평면적인 차원에서 밀도 있고 심도 깊은 시선에 딥포커스적 차원으로 야심차게 접근했다. 지금에 한국의 문학도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개인이 자꾸만 사람들 간에 친밀을 기피하고 그들의 방안으로 숨어버리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80년대의 민중문학과 90년대의 참여문학 이후의 문학은 개인의 일상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이 사유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버렸다. 이념은 자본으로, 광장보다는 집안에 침실과 거실로, 남성의 가부장적 체계는 여성의 페미니즘으로, 대학가의 대자보와 선전물은 침실의 벽면의 브로마이드와 책상의 일기장으로 바뀌는 전환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편혜영은 동승해 재현된 대상, 구체적인 사물에 대해서 ‘단순히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려고, 다시 말해서 결렬한 감각을 유발 시키는 것에 대한 맹렬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일은 간단했다. 그가 있던 도시에서 온 문서를 정리하고 그 도시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여 간결한 형태의 서식으로 만들어 담당자에게 넘겨주면 되었다. 서식을 작성할 때면 그는 자신이 교무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는 학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반복하는, 자료를 검색하는 일이나 서식을 작성하는 일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똑같은 말을 종이 가득 적으면서 사과를 하는 기분이었다.「토끼의 묘」(14쪽)” 


에서의 하루에도 수천 번씩 명멸하는 불빛의 도시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그’는 일상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물로 출연한다. 여기에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간단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일들, 규제되지 않은 정책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신음 속에 몰락하는 도시의 풍경 안에 정주하는 집, 과도할 정도로 홍수처럼 넘쳐나는 데이터 량이 정처 없는 부유 속에서 정보의 초과 혹은 과잉의 이미지는 이미 지금 체험하고 있는 삶의 스튜디오들에 층위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각이 ‘그’를 반성하게 함으로써 의식을 충동하게 만든다.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정언적 명령과 해야만 하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금지된 질서 안에서 ‘그’의 갈등은 리얼리즘의 도시를 벗어난 생사와 죽음의 경계가 만나는 초월적인 공간 무덤에서 발견한 뜻하지 않는 감각의 대리인 사물 ‘토끼’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토끼의 상징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토끼처럼 매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것이다. 


‘그’의 영혼은 원치 않는 일의 반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의 육신은 메말라 가는 이때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로 통념(通念)되는 토끼의 등장은 사실 '그'에게 있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편혜영은 그런 틀에 박힌 고전주의 프레임으로 현재의 시간 논리로 재구성하지 않았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토끼의 안내를 받아 환상적인 공간으로 갑자기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셋P에서 동조하여 그 정반대의 방식으로 그가 토끼에게 이끌리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토끼에게 그가 필요한 존재로서 사육당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는 ‘그’는 감각을 다시 재편성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여기서 변별점이 생기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토끼라는 감각의 매개체가 등장하는 이전과 이후의 시간들은 각기 따로 구분하여 이전에 ‘그의 모습과 이후의’그의 변하는 모습에 대한 진행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결국에는 시간의 진행방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기에 조그마한 다른 선택도 원래의 모습을 변형 시킬 수 있기에 망설여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 다른 사건이 전개된다.


“진심과 상관없이, 여자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는 두려움이 점지해준 고백 때문에 곧 부끄러워질 것이며 어떤 말도 돌이킬 수 없어 화가 날 것이고 그 말이 불러온 상황과 감정을 얼버무리려고 애를 쓸 것이며 그럼에도 당시 마음에 인 감정의 윤곽이 무엇인지 헤아릴 것이었다. 그 생각에 김은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트럭은 여전히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김은 땅에 박힌 듯 멈춰 서서 조등처럼 환히 빛나는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_「저녁의 구애」(62쪽)


에서 윤곽은 들뢰즈의 어법을 빌리자면 회화의 세 개의 구조, 형상, 윤곽이라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이 문맥에서 정지의 찰나 혹은 단절의 뉘앙스를 읽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그 사물들의 진행방향을 바꿀 수 없는 형상으로 세워지고 나면 비로소 그 감정의 ‘윤곽’이 나사게 되는 것이다. 그 윤곽, 구조와 형상을 가르는 공통의 경계에 의해 그 윤곽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끈에 묶인 두 사람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1년 동안 친구들이 중재하지 않으면 손 쓸 수 없는 적대적인 사이로 전락해버렸다. 그들이 끈에 묶여 나누는 대화라고는 끈을 끊어버리고 싶다거나 평생 서로를 저주하겠다는 악담이었다. 그는 책을 덮었다. 결국 타인과의 완벽한 친밀감이란 동경에 불과하며 인간이란 타인과 최소한 2미터 이상의 거리를 가져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몰랐다. 그는 복사실의 카운터와 쉴 새 없이 학생이나 강사 들이 지나다니는 복도까지의 거리가 대략 2미터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 거리는 복사실을 찾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놓인 카운터의 가로 길이와도 같았다. 누구도 카운터 너머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_「동일한 점심」(73~74쪽)


“인공이란 걸 의식할 수 없었으므로 그에게는 자연이나 다름없었다. 매연이 섞인 공기,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수종이 같은 가로수, 빌딩 숲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 따위가 그가 자라면서 경험한 자연의 대부분이었다. 푸른 하늘과 청명한 공기, 광활하고 너른 평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따위는 애당초 그의 삶과 관계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껏 검은 하수가 흐르는 단단한 아스팔트, 밤이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흥건한 건물의 도시 골목, 매연을 뿜으며 날쌔게 달리는 택시의 불빛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무겁게 침묵하고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나무로 가득 찬 숲과 그 숲을 품은 소도시가 싫어졌다. 모든 길을 감추는 숲에 비하면 한눈에 모든 길이 훤하게 들어오는 도시는 그야말로 천국에 가까웠다.” _「산책」(146~47쪽)


여기에 편혜영의 증후가 엿보인다.


3. 증후의 세계


편혜영은 각기 다른 인식으로 세계의 윤곽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서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독해의 가능성으로 읽혀진다. “현대 문학이 역사적 리얼리즘 혹은 일상적 리얼리티의 이름으로 배제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재발견을 의미”(이광호)하는 것으로의 미학적 모더니티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거나, 


“문학은 현재를 향하는 것이고, 안에서 바깥을 지향하는 것이며 2000년대적인 어떤 것”(신형철)의 욕망으로서의 시대적 공기의 분위기를 포착하거나, 


“전염병 유행과 쓰레기 파동이라는 이 소설의 표층적인 서사아래에는, 생명의 위기에 봉착한 현대사회의 지반이 가로놓여 있었다.”(차미령)의 불안의 표면들이 부유하는 자본주의를 상징하거나, 


“동일하고 동일하고 다시 동일한 공간과 시간 속의 저 군상들, 그들이 사는 곳은 바로 그 이유로 미로이고 저수지이다.”(김형중)라며 포스트 모더니즘적 뫼비우스의 띠의 알레고리를, 


“체험이나 무의미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공포가 아니라 그 위에 어떤 주체가 위태롭게 일으켜 세워지는 순간이다.”(권희철)의 주체적 상태로서의 그 위기감이라는 상황 이렇게 편혜영은 이렇게 해석된다.


2012년 현실적인 장소는 <서쪽 숲에 갔다>는 이미 그녀가 보여준 2005년에 이미 만들어진 환상/실재적 공간 <서쪽 숲>이후의 에필로그 처럼 읽히거나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인물들이 시치미 뚝 떼고 벌이는 스핀 오프처럼 보인다.


도시 외곽에는 감옥이 있다. 방이 많은 감옥이었다. (170쪽)


도시 외곽 공간에는 거대한 공장 지대가 있다. 그런데 그 공장까지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공장의 생산품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도시의 중앙에는 거대한 무덤이 있고, 이곳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도시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 도시의 끝에는 숲이 있지만, 그곳은 실체가 없는 풍문의 장소이다. 그곳은 오래전


“현제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라진 숲”


이다. 약국에서 미라처럼 앓고 있는 노인을 돌보며 일하는 여자는 관리소장의 의뢰인한테 서류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 불법적인 서류의 내용과 루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여자를 찾아와 불면과 환각을 호소하며 약을 사러 오던 사내는 무덤 입구에서 매표소를 지키는 사내였다. 여자는 결국 스스로 의뢰인이 되어 소장에게 서류를 준비해 달라고 요구한다. 서류의 내용과 루트를 알기 위해 사내를 뒤쫓던 여자가 숲속에서 발견한 것은 거재한 건물이다. 그 건물의 방들의 기이한 이미지들 속에서 노인과 사내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결국‘ 서쪽 숲’의 공간은 도시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추방된 자리, 혹은 ‘서류’를 통해 전달되는 그들의 은밀하고도 어두운 충동과 죄의식이 만들어낸 괴담의 공간이다.


 <서쪽 숲>


“이 숲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합니다. 성경에 새겨진 글자처럼 촘촘하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요. 어디를 봐도 나무뿐이죠” (144쪽)


“숲에 부엉이가 산다....그 당연한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나가는 동안 박인수는 참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자신이 검은 나무숲에 숨죽여 앉은 부엉이같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무거운 날개를 쳐올려야 하는 부엉이가 된 것 같았다. 사방을 감시하며 머리통을 돌려 눈을 굴리는 부엉이 같았다. 가까운 곳에는 없는, 먼 곳에 있어 간혹 눈에 띄는 먹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엉이 같았다.”(184쪽)


편혜영의 확정적 공간의 서사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서울에서 400여 킬로미터,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 있다.


편혜영은 다른 소설가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은 먼저 알레고리적 공간을 무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자고 있던 우연성을 가정한 것처럼 보이게 교란시킨 다음 의식적이거나 의도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맹핍을 설정하고 브레히트적 소외효과가 가능한 인물들을 재빠르게 내세운 다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의 지속을 비논리적이며 비정형적인 불연속시간대로 의식적으로 구성하거나 배치한다.


 <서쪽 숲에 갔다>의 전체적인 서사와 부분적인 이미지 혹은 몽환적이며 불균질성의 실재적 형상을 이러한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를 고찰하게 만들어 버린다. 공포감, 역겨움, 불쾌감, 불편함이란 원초적안 본능에 충실하도록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아이콘과 동일하도록 만든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침의 감각으로 맞닥뜨릴 수가 있다.


“나무에 가려 온전히 보이지 않는 숲 입구”(9쪽)


로 소설의 첫 시퀀스부터 묘사된 거대한 숲은 일종의 기호로 읽을 수 있는 단절 혹은 고립 또는 폐쇄의 알레고리적 공간으로 변주하는데, 계속해서 등장하는 숲은 


“그러고 보니 계속 무슨 소리가 들리네요....형도 하루 종일 여기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겠군요.”(28쪽) 라고 말하는 이하인의 실종된 형 이경인에 사이렌의 노래로 작용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즉 매혹 당해서 이끌려 그 “입산금지를 알리는”(10쪽)


"숲을 침범했거나 혹은 “서늘하고 음습한 느낌”(12쪽)


의 공포를 느껴서 소리가 들리지 않은 장소로 탈주했거나 하여 앞으로 실종되기 전 이하인에게 들이닥칠 미지의 위험이 발생할 행동을 피하기 위한 준칙준거로서 세웠으며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리자면 


“다시 말해 이것은 한번 귀에 들어오면 모든 말 속에서 심연을 열고, 사람을 사라지게 만드는 그곳으로 강렬하게 꾀어가는 심연의 노래인 것이다.”


라는 어두움의 입구이다. 여기에는 원초적인 소리의 발생과 자연 상태의 인간에 본연의 심성이 만났을 때의 대한 순간적이면서 재현의 의도가 엿보인다. 형상으로부터 구상을 잡아 뜯어 내는 것, 여기에는 논리적인 서술전개보다는 이미지가 과잉적으로 표현되는 회화적인 서사형태 속에 공간화하는 물질적 구조인 보이지 않는 '비 기시적인 힘'들이 움직이는 기운 아플라(aplat)의 윤곽이 뚜렷하게 포착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숲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그의 피로를 부추겼다. 무슨 소리일까 귀를 기울여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지 싶으면 다시 소리가 시작되었다. 소리는 희미하고 숲은 넓어서 어느 지점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130쪽)


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기한 사운드의 근원지로 변환하여 현재 이곳 숲 관리사무실의 관리인은 박인수의 심상을 괴롭힌다. 이 대목에서 전 관리인 이하인과 현재 관리인 박인수의 모습이 겹쳐지게 된다.


산림학 연구소를 끼고 있는 외딴 마을에 이방인이 등장한다. 일 년 중 대부분이 입산이 금지된 이 숲은 이 마을을 외부로터 격리하고 있고, 숲은 그 자체로 역시 단단히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말끔한 사무원 차림의 이방인은 이하인으로 도시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하인은 실종된 형 이경인이 관리인으로 일했다는 가건물 형태의 관리사무실을 찾아온다. 형 이경인은 금치산자 수준의 사회 부적응자로 가족과도 오랫동안 소식을 끊은 상태다. 이하인은 6개월 전 한밤중의 전화로 


“부엉이가 울고 나무들이 달려든다”


고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형의 목소리와 오래전에 남겨진 결혼식 단체 사진 한 장을 들고 형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인적이 드물고 면적도 빤한 이곳에서 이경인의 행적은커녕 존재 사실조차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만난 최창기, 한성수, 이안남 이 세 명의 마을 주민들은 무기력하고 무심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경인의 행적을 묻는 이하인에게 냉담하다. 그들 모두 은퇴한 벌목꾼으로 마을의 상점가에서 각각 세탁소와 서점,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산림학연구소 관재과에 소속된 ‘진 선생’과 채무 관계 이상으로 30년 넘게 얽혀 있는 사이다. 현재 이곳 숲 관리사무실의 관리인은 박인수가 맡고 있다. 공무원 수험 학원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고 어느 날 김 대령이라는 사람을 면담하고 바로 이곳에 채용되어 2주 전부터 아내 모유진, 아들 세오와 함께 사택에 입주해 있다. 그 역시 이렇다 할 하는 일 없이 숲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하루의 대부분은 관리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지를 만지작대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에게 익숙한 건 가족이 두려워하는 그의 음주와 늘 어둑하고 괴이한 짐승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만 가득한 숲, 그것뿐이다. 이하인 형제와 묘하게 폭력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있는 박인수에게서는 외로움과 두려움, 낯선 이에 대한 과도한 방어, 그리고 열패감에 가득 찬 눈빛이 새어나온다. 변호사 사무소 사무장의 계속된 독촉과 빠듯한 일정으로, 별다른 소득 없이 마을 도서관 자료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던 어느 날 밤, 이안남의 술집을 나서던 이하인은 뺑소니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이 사고는 마을 신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껏 별다른 의심이나 의욕을 품어보지 못하고 있던 박인수는 이하인의 사고와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의 잇단 방문에 조금씩 오래전 이 숲을 둘러싼 마을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게 된다. 


다시 재발한 알코올중독과 함께.


이곳의 문명이 쳐들어온다. 서쪽 숲으로 찾아온다. 어떠한 지형에서 움직이게 되는 현실은 더욱 복잡해진다. 어떠한 도 필요 없다. 최후의 방어선만이 부여잡을 뿐이다.


여기서 박인수의 성격은 이렇다 


“ 입산객을 돌려보내는 일은 하나도 번거롭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누군가 허탕을 치고 발걸음을 돌리는 걸 보는 일은, 굉장했다.”(10쪽) 


는 공무원 수험 학원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가 어느 날 김대령이라는 사람을 면담하고 바로 이곳에 채용되어 2주 전부터 아내 모유진, 아들 세오와 함께 사택에 입주해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잘 나타나지 않았던 알레고리로 브리꼴라주로 나타난다. 다소 여기서는 세세하고 미세한 생활밀착형 그로테스크는 줄어들었지만 거대한 심연이 다가왔다.


“만약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재빨리 거대한 빛 무리를 피해 길을 마저 건너거자 아예 뒤로 물러섰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난데없이 술을 마시고 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형을 제사 지내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마을 사내들의 조용한 흥취에 홀려 과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아예 마을 사내들과 어울려 늦게 술집에서 나왔다면, 달라졌을까.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들어온 말 중에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게 있었다. 어머니는 형의 편을 들기 위해 그 말을 편의적으로 사용했지만, 그는 어떤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의 연쇄가 전제되어 있다는 걸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상황을 하나만 바꾸는 식의 가정은 도대체가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이하인은 자신이 바닥에 나뒹군다고 생각한 짧은 순간, 그 길고도 가망 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121~22쪽)


이하인이 자동차 사고로 죽기 직전에 사유한 편린들이다. 여기에는 유령으로 전해오는 메시지가 감춰져 있다. 죽은 자의 시간이 다시 한 번 반복되고 호명되어지는 순간 이 끔찍한 악목의 시간은 다시 리플레이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주지 않았던 현실의 다른 말 환상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사운드의 실체. 그리고 수많은 증명하는 사례들.


“글쎄요, 부엉이가 운다는 거요. 나무가 달려든다는 얘기도 그렇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엄살 같네요,...저도 처음에 놀랐습니다. 숲에서는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려오니까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요. 숲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여긴 숲이니까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 당연해요. 낯선 소리가 아니라는 겁니다.”(41쪽)


“그는 계속해서 숲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털어놓았다. 모유진이 그저 새소리일 거라고 대꾸했는데, 박인수는 그 무신경한 대답을 계속 비난했다.”(165쪽)


“그러나 아내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숲은 아무런 현의가 없다는 것을, 숲에서 들리는 소리는 자연이 내는 무수한 소리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부인해야만 했다.”(329쪽)


4. 세계와 그의 변종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는 자본의 발전을 공간으로 시각화한다.


5. 내러티브의 멜랑콜리아


이야기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숲에서 사리진 이하인과 박인수는 어떻게 된 것일까?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냥 홀연히 사라져 버렸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진선생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편혜영은 친절하게 이러한 답변에 대해서 어떠한 독해 가능성이 있는 해답도 내놓지 않으며 그 퍼즐을 풀기위한 실마리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근래에 어떠한 소설들보다도 불가사의한 미스테리한 이야기 그 자체로 숨바꼭질을 부리며 모든 조건들이 난해한 구조 안에서 힘겹게 버티면서 물리적인 논리구조 하에서 결과가 원인을 뒤쫓는 왜곡된 구조 속에서 이야기의 그로테스함이라고 불리 말한 분열증을 창조해 내기 때문에 실재 안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환상이 아니라 환상 안에 적극적 실재로 느닷없이 이끌린다.


"이제 우리는 텅 비었다. 진을 봐주는 것은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어둠뿐이었다. 진은 천천히 뒤돌아섰다. 어디에서도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345쪽)


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시대의 현대인에게 종말을 알리는 경고장이며 증명서이며 독촉장의 이미지이다. 




n*****m 2012.10.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두려워도 마주해야 할 과거들
"두려워도 마주해야 할 과거들" 내용보기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멋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에 못지않은 멋진 여류 소설가가 또 하나의 남성적인 추리소설을 발표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많아 마치 여러명이 주인공인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고, 사건의 해결은 좀처럼 되지 않더니 결국 소설의 시작에서 등장한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의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두려워도 마주해야 할 과거들" 내용보기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멋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에 못지않은 멋진 여류 소설가가 또 하나의 남성적인 추리소설을 발표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많아 마치 여러명이 주인공인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고, 사건의 해결은 좀처럼 되지 않더니 결국 소설의 시작에서 등장한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의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채 마무리됐다.

 

소설은 숲의 관리인으로 일하다가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동생 이하인이 산골 마을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하인도 금새 마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이쯤되면 실종과 살인은 연쇄적이며 공범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는 생각이 들고 누군가 나서서 범인을 색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다음 얘기는 숲의 현재 관리인 박인수의 알콜 중독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되어 가는 모습, 정체 불명의 지하실에서 들리는 밝혀지지 않는 소리, 누군지 모르는 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다. 그리고 박인수가 숲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길을 잃기 십상인 무서운 숲을 향해 제발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한때 벌채꾼이었던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들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진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사건의 전개를 보면 이경인 형제의 실종과 살인, 박인수에 대한 폭행 등은 모두 진이 꾸미고, 최창기 등이 방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누가 범인이었다라고 밝혀주지 않는다.

책 뒤의 해설에 보면 이 소설은 '이방인의 방문과 함께 다시 한번 시작되는 숲의 악몽이라는 반복'을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어려운 얘기다.

 

나름대로 느낌을 얘기하자면

 

첫째 소설이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신선했다.

 

둘째 여성 작가이지만 힘이 느껴지고 묵직했다.

 

셋째 등장인물 다수는 숲으로 인해 생존하고 있지만 숲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숲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어두운, 그러나 오늘을 있게 한, 과거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벌채꾼이었던 세사람은 벌목이 금지되면서 마을에 내려와 세탁소나 서점, 술집을 차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경인이나 박인수는 숲의 관리인이었다. 그들은 숲의 관리인으로서 외로움에 괴로와했고 때로 미지의 숲에서 울리는 소리에 떨었다. 숲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자칫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해 그 안에서 죽기 싶상인 미로와 같은 곳이기도 했다. 또 과거에는 벌목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기도 한 장소였다.

 

그렇다면 숲은 개인적으로 과거의 실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실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실패, 혹은 어떤 직장이나 거대한 권력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실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실패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완전히 과거에서 떠나거나 그 과거와 맞서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떠나기도 맞서기도 어려운 어중간한 상태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잊혀졌다가도 누군가를 만나면 다시 떠오를 수 있는 아픈 과거. 그것이 관리인이 바뀌고 실종 사고가 반복되고, 이어 누군가 외지에서 사건에 대해 알기 위해 찾아오면 또 다시 떠오르는 아픈 기억...

 

먼저 실종된 이경인이나 나중에 실종의 조짐을 농후하게 보이면서 컴컴한 숲으로 들어가는 박인수가, 차라리 아픈 기억 때문에 삶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하루 하루 희망없이 연연하는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 보다 더 나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YES마니아 : 로얄 b*****g 2013.05.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편혜영 - 서쪽 숲에 갔다 (냉정하게 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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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혹은 부부의 문제들을 다룬 프로그램들을 가끔씩 본다.(심각하게 볼 것이 없을 때.) 불륜이 일어났거나, 어떤 문제로 인해서 계속해서 대치중인 부부들은 따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서로를 평가한다. 그런데 그 평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차갑다. 저 인간은 저래서 안 된다. 저 인간은 늘 그런 사람이다. 매일 그래왔는데 뭘. 이런 식으로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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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혹은 부부의 문제들을 다룬 프로그램들을 가끔씩 본다.(심각하게 볼 것이 없을 때.) 불륜이 일어났거나, 어떤 문제로 인해서 계속해서 대치중인 부부들은 따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서로를 평가한다. 그런데 그 평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차갑다. 저 인간은 저래서 안 된다. 저 인간은 늘 그런 사람이다. 매일 그래왔는데 뭘. 이런 식으로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들의 대화를 계속해서 듣고 있자면 시베리아 벌판에서 뾰족하게 서 있는 고드름으로 가득 찬 바닥에 앉아서 그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다.


편혜영은 차가운작가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201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애란의 작가론을 써줬던 편혜영이 어쩌면 다른 편혜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하니까. (대상 수상자를 위한 그녀의 글은 굉장히 인간적이고 위트있었다.) 이미 저녁의 구애라는 책을 읽어서 익히 알았지만, 정말로 차갑고 냉정한 필체를 가진 작가이다. 상황을 묘사하는 것도, 그 인물간의 대화도, 인물 심리 묘사마저 차갑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글은 굉장히 조금은 심하도록 차갑게만 느껴진다.


이번 소설 서쪽 숲에 갔다도 마찬가지이다. 한 숲의 관리자였던 친 형이 사라진 이후 친 동생이 친 형을 찾는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이 소설에서도 형을 보는 동생의 시선마저 매우 차갑다. 치통 때문에 고통이 느껴질 때면 특히 더욱더 많이 맞았던 동생이 형을 달갑게 볼 수만은 없다는 설정도 그 차가움에 일조한다. 주변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 또한 그러하며, 형을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 동생을 바라보는 그 마을 사람의 시선들이 극을 차갑고, 날카롭게 몰아간다.

동생은 형의 발자국을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가 술을 마신 뒤 길가에서 치이게 됨으로 1부가 끝이 난다. 나름 추리소설의 형태를 보일 즈음에서 갑자기 이 책은 나는 추리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작가는 현 숲 관리원인 박인수라는 사람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모유진과 그의 아들에게로 주된 시선이 돌아간다. 하지만, ‘박인수를 보는 모유진과 그의 아들의 시선마저 차갑기 그지없다. 알콜중독자였으며, 아들의 모델료로 학원을 등록하며, 환각증세로 인해서 아들을 벽에 던져버리는 행위등의 설정 또한 그의 아내와 아들이 그를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형성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결국은 그가 입산이 금지된 서쪽 숲에 들어가는 모습, 자신이 계속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서 걸어가는, 그래서 어쩌면 정말로 위험하게 비춰줘야 할 장면마저, 그의 의지대로 걷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는 씁쓸하고 차가운 위로를 던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나름 추론을 해보자면 기존 사람과 신규 사람 사이의 차가움 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같은 바보들을 위해서 작가는 마지막에 작가의 말 대신에 문학평론가의 분석을 걸어놓아 독자들의 아픈 뇌를 잠시 주물러준다. , 그 것까지 다 읽어도 그렇게 감흥이 확 오지는 않지만.



작가는 얄짤없이차갑다. 그런 차가운 작가가 들려주는 서쪽 숲 이야기도, 여러 짧은 단편들도 따라서 차갑다. 하지만, 이 작가만 차가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서쪽 숲 이야기가, 단지 서쪽 숲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날카로워지고 빨라진 우리 시대가 그만큼 차가워 진 것은 아닐까. 작가는 그 차가운 부분을 그저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동안 해본다.

(p.s. 2013 이상문학상작품집에서 써낸 편혜영의 밤의 마침 또한 걸출하다. 읽어보길 바란다.)

c**********g 2013.05.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관계의 심연을 벗어나고자 당도하였던 곳에서 맞닥뜨린 숲의 심연... 서쪽 숲에 갔다
"관계의 심연을 벗어나고자 당도하였던 곳에서 맞닥뜨린 숲의 심연... 서쪽 숲에 갔다" 내용보기
숲을 배경으로 한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읽은 것이 이달 초였다. 비슷하게 숲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숲이 가지고 있는 어떤 비밀스러움, 그리고 원래부터 숲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 숲과 이제 막 대변하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미아루 시온의 소설이
"관계의 심연을 벗어나고자 당도하였던 곳에서 맞닥뜨린 숲의 심연... 서쪽 숲에 갔다" 내용보기
숲을 배경으로 한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읽은 것이 이달 초였다. 비슷하게 숲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숲이 가지고 있는 어떤 비밀스러움, 그리고 원래부터 숲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 숲과 이제 막 대변하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미아루 시온의 소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고 있다면 편혜영의 소설은 어딘가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미스터리인 채로 사람들을 숲에 남겨 놓은 형국이다.


“숲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수동적이고 정태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숲은 살아 있었다.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가 하면 숨구멍을 꽉 조였고 나무 사이로 길을 내주는가 하면 나무를 내세워 길을 막았다...” (p.332)


소설은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사라진 형을 찾는 이하인의 이야기이다. 변호사인 이하인은 숲의 관리인으로 있다가 사라진 이경인의 흔적을 쫓아 숲에 당도한다. 사실 그저 시간상으로 자신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형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이경인에게 이하인은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실낱같은 인간적 도리에 대한 책무라는 생각으로 형을 찾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숲에 대한 연구소의 진선생의 태도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이하인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형 얘기를 하면서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형에게 남은 감정이 책임감이나 죄책감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하인은 폭력적이고 비열하며 걷잡을 수 없이 낙오한 형을 여전히 혐오하고 있었다. 형을 보지 못하는 동안 평화로웠고 형이 다시 나타나자 평화가 깨졌고 형이 미래의 평화까지 위협할까 봐 겁이 났다.” (p.37)


이어지는 2부에서는 이경인 이후 새로운 숲 관리인으로 들어온 박인수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알콜 중독자이면서 아내와 아들 세오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온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2분의 전부이다. 전체 소설에서 정확히 3분의 1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어찌보면 도시로부터 버림 받은 사람이라는 점, 진실에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에 숲으로 사라져야 했다는 점 등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라진 이경인을 대신하여 그 이경인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하게 늘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나한테는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 숲이에요. 박인수 씨한테 화가 나는 건 그거예요. 내게는 더없이 좋은 곳인데 박인수 씨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타락하고 부정한 곳이 되어버렸어요.” (p.325)


마지막 3부를 통해서 이제 이야기는 정리 단계에 들어간다. 한때 벌목꾼으로 일을 했다가 이제 진선생의 도움으로 마을에 정착하여 세탁소를 하는 최창기, 술집을 하는 이안남, 서점을 하는 한성수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들과 숲, 이들과 과거의 관리인과의 연결고리를 쥐고 있는 것이 진선생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데, 이미 소설의 전반부와 중반부에 워낙 많은 복선으로서의 뉘앙스를 뿌려 놓았으니 그 긴장감이 높지 않다.


“...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은 진과 이 숲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삶은 독립적이고 자립되어 있었으나 그들 모두의 삶의 삶은 숲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삶도 독립적이지 않았다.” (p.342)


소설에서 숲은 어떤 미로와도 같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이 간직하는 미로와도 같다. 숲의 미로는 그 출구를 모르기 때문에 어떠한 심연이기도 한 것이며, 그 심연은 우리들 인간의 어두운 속내가 드러내는 어두운 근성과 닮아 있다. 우리들이 제아무리 그 심연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여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도시를 떠나 숲에 당도하였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소설 속의 숲 (혹은 숲을 둘러싼 인간)은 도시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2.08.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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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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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책을 읽을 때면 책이 주는 어떤 불안함과 긴장감때문에 심장이 뛴다. 그래서인지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어서 긴장감과 불안이 더 강했던 책이다. 다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좀 어렵다. 결국 확실한 형태의 비밀이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읽는 동안에, 사람사이에 숨겨진 이면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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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혜영의 책을 읽을 때면 책이 주는 어떤 불안함과 긴장감때문에 심장이 뛴다. 그래서인지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어서 긴장감과 불안이 더 강했던 책이다. 다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좀 어렵다. 결국 확실한 형태의 비밀이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읽는 동안에, 사람사이에 숨겨진 이면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주체적인 '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결국 과거와,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들이 현재를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에게서도, 사람에게서도 초연한 나인 것처럼 굴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총집합인 셈일 뿐이다. 

읽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양할 것 같은 책이다. 

서사나 문장도 모두 다 만족스러웠다. 역시나 좋다.


 p122

 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들어온 말 중에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게 있었다. 어머니는 형의 편을 들기 위해 그 말을 편의적으로 사용했지만, 그는 어떤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의 연쇄가 전제되어 있다는 걸로 그 말을 받아들였따. 따라서 상황을 하나만 바꾸는 식의 가정은 도대체가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이하인은 자신이 바닥에 나뒹군다고 생각한 짧은 순간, 그 길고도 가망 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p208

  꿈이라니. 어린 시절 농구를 잘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이후로 뭔가를 절실히 바라본 적이 없고 이루고 싶다고 소망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따. 꿈이라는 말이 주는 진정성이나 순수한 울림에 속고 싶지 않았다. 꿈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시시하고 속된 것인지도 몰랐다. 

g*****2 2017.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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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 -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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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는 '선의 법칙'과 '홀'에 이어 세번째로 만나게 되는 '편혜영'작가님의 작품입니다.'선의 법칙'과 '홀' 둘다 무겁고 우울하게 스토리가 진행되어서..이 작품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는데요...그런데 앞에 읽은 두 작품이랑 전혀 다른 스타일이였습니다.성공한 변호사인 '이하인', 그는 어린시절 자신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던 '형'을 찾아 숲으로 옵니다..증오의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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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는 '선의 법칙'과 '홀'에 이어 세번째로 만나게 되는 '편혜영'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선의 법칙'과 '홀' 둘다 무겁고 우울하게 스토리가 진행되어서..

이 작품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는데요...그런데 앞에 읽은 두 작품이랑 전혀 다른 스타일이였습니다.


성공한 변호사인 '이하인',

그는 어린시절 자신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던 '형'을 찾아 숲으로 옵니다..

증오의 대상이지만,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라..

실종된 형인 '이경인'을 찾아오는데요..


관리인이 된지 2주된 '박인수'는 그를 모른다고 하고..

연구소 담당자인 '진하경'은 관리인은 4년동안 '김'이라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결국 ,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형에 대하여 탐문하는 '이하인'


그러나 '세탁소 주인','서점주인','술집주인' 그리고 '진'이라는 남자..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아는거 같았지만..

모두 '이경인'을 본적이 없다고 하며 냉정하게 그를 피합니다..


형을 계속 찾을 의리도 없는지라....

맡고 있는 사건때매 술집을 나와 서울로 돌아가려던 '이하인'

그러나...생각도 못하는 운명이 그를 맞이하는데요..


1부가 형을 찾는 '이하인'의 이야기라면..

2부와 3부는...관리인이 된지 2주가 된 신참 '박인수'의 이야기입니다.


'박인수'는 알콜중독자였지만, 하마터면 아들을 죽일뻔한 이후...술을 끊은 상태

그러나 아직도 아내와 아이는 그를 두려워하고..

그는 몰래 약을 복용합니다...그리고 숲에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가운데..

'이하인'의 사무장이 그를 찾아오는데요..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박인수'

그리고 그에게 찾아오는 이상한 환각들..

저는 어느게 환각이고 어느게 진실인지 모르겠던데 말입니다....

왠지 '진'이 모든것을 꾸미는게 아닌가? 싶었거든요..일부러 말이지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추리소설'이라면 실종사건과 그리고 그 뒤의 엄청난 음모나 진실이 있어야 할텐데..

이 작품에는 그런것이 없습니다..그리고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에 그는 상관없음이 드러나지요..


그래서 해설을 읽으면서 아 이렇구나 생각하게 될뿐이고 말입니다.

결국 '진실'은 더욱 '미궁'에 빠지지만..그 실체는 알리 없고...ㅋㅋㅋㅋ

중요한건 '진실'이 아니고 '숲'이였구나...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소설속은 '숲'은 우리안에 '두려움'을 나타냅다고 합니다..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와 그리고 '두려움'이 ....캄캄하고 어두운 '숲'으로 묘사되는데요..


숲으로 사라진 사람들....실제로 숲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두려움'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두려움'에 먹히면 주인공들 처럼 사라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역시 편혜영 작가님 책은 저랑 맞는듯 싶습니다...

가독성도 좋고 잘 읽히고...남은 작품들도 조만간 읽어보도록 해야겠어요

s*****o 2016.04.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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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비밀로 남아 있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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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은 인물 개개인의 삶을 읽기 쉬운 문장으로 깔끔하게 풀어나가는 작가다. 특히 '서쪽 숲'을 절대적인 미지와 공포의 공간으로 묘사한 결말부가 특히 좋았다.  모종의 사건을 감추기 위해 똘똘 뭉친 시골 마을 사람들과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이방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2부와 3부를 지나면서 그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숲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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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혜영은 인물 개개인의 삶을 읽기 쉬운 문장으로 깔끔하게 풀어나가는 작가다. 특히 '서쪽 숲'을 절대적인 미지와 공포의 공간으로 묘사한 결말부가 특히 좋았다.
  모종의 사건을 감추기 위해 똘똘 뭉친 시골 마을 사람들과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이방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2부와 3부를 지나면서 그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숲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소설. '부엉이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 이들이 실종되기만 할 뿐이다. 남은 것은 비밀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으며 숲에 묶여 있는 마을 사람들과 그들을 조종하는 진, 그뿐이다.
  그래서 결말을 읽었을 때 무척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서쪽 숲에 갔다>는 그러한 현실을 무척 상세하게 반영하고 있다. '서쪽 숲'은 거기에 존재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서쪽 숲에 가'는 것뿐이다.
p*****s 2025.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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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미스테리, 언제나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묵직한 미스테리, 언제나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내용보기
책을 읽는 내내, 작년 최고의 장르물이라 생각했던 정유정의 '7년 간의 밤'이 떠올랐다. 고립된 형태의 시골 마을, 삶을 포기하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댐'과 '숲'이라는 공간의 유사성. 다만 전자가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용광로이며, 절정을 향해 숨도 못 쉴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면 '서쪽 숲에 갔다'는 뭐랄까, 훨씬 마른 나뭇잎의 버석이는 느낌마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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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작년 최고의 장르물이라 생각했던 정유정의 '7년 간의 밤'이 떠올랐다.

고립된 형태의 시골 마을, 삶을 포기하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댐'과 '숲'이라는 공간의 유사성.

다만 전자가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용광로이며, 절정을 향해 숨도 못 쉴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면

'서쪽 숲에 갔다'는 뭐랄까, 훨씬 마른 나뭇잎의 버석이는 느낌마냥 이야기조차도 건조한 느낌의 연속이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다. 서쪽은 동쪽의 반대 개념이다. 서쪽은 밤을 부르는 곳이고, 서쪽은 외로움의 시간이며 서쪽은 하루가 가장 묵직한 때이다.

한때는 연구소까지 들어와 벌목과 벌채와 사람들의 왕래가 왁자지껄했던 이 마을은, 이제 삶에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가지 않고, 혹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두어 지내는 곳이다. 마치 실종자를 찾는 미스테리물인 듯 시작하던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인물의 삶을 끝내버린다. 그리고 그 죽음의 실체를 파헤쳐야만 할 것 같은 독자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한 채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의 한 부분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두꺼풀씩 벗겨낸다.

 범인은 없고, 범인이라 할 사람에겐 범인이라고 할 만한 위대한 동기가 없다.

 짐작은 하지만 짐작 자체가 더 어이없고, 사람이 만들어낸 마을의 분위기가 장을 넘길 수록 무섭고 을씨년스럽다.

 사건의 열쇠를 쥔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는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 숲이에요. 박인수 씨한테 화가 나는 건 그거예요. 내게는 더없이 좋은 곳인데 박인수 씨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타락하고 부정한 곳이 되어버렸어요.'

어느 공간이든 타인으로 인해 내 안으로부터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다.

 만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마리는 신이었지만 고작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 장치에 불과했다. 인 간 스스로의 질서를 위해 스스로 추앙하는 신을 만들어내다니. 숲에서는 숲의 질서가 있고, 숲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만들어낸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질서를 의심하거나 질서 밖을 갈망하는 사람일 터.

  한동안 숲보다 어두운 공간에서 살았던 듯 싶다. 처음엔 어두워서 무서웠는 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익숙해진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을 때 그 어둠의 무게는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걸어나오는 길도 더 길고 길었다. .. 그리고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YES마니아 : 로얄 s*****8 2012.08.13.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