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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화곡]의 작가 윤재성을 만난 때는 16년 늦가을이었다. 나는 윤재성을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6년 늦가을 벽제에 있는 의경 학교에서였다. 당시 의경학교에서는 특이하게 나이 순으로 생활실을 배정했다. 그는 스물 여섯, 나는 스물 일곱이었다. 나이가 많은 우리는 1생활실에 배정됐다. 1079기 450명 동기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터이지만, 나이 많은 이들은 더욱 그랬다. 1생활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동기들이 많았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각자 자리에 누웠다. 캄캄한 생활실에서 우리는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한창 어수선한 정국인 바깥 상황은 어떤지 이야기하며 자기 전 시간을 보냈다.(맞다 촛불이 한창이었다.)
누구는 통역을 했다. 누구는 헬스 트레이너였다. 누구는 배구 선수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것은 윤재성의 직업이었다. “저는 소설가입니다” 소설가. 말로만 듣고 직접 본 적은 없는 이다. 스스로를 소설가라 말하는 이를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내 머릿 속 그들은 고고한 학같은 이들이었다. 소설가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할까.
윤재성은 자신은 [외로움 살해자]라는 장편 소설을 썼으며 그것을 내고 막 입대를 했다고 했다. 길에서 글을 배운 그는 치열히도 살았다. 참 악착같이도 쓰고 읽었다. 이후 그와 나는 의경학교 3주동안 쓰는 것에 대해, 쓰는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날 그와 나는 언젠가 다시 만나 읽고 쓰기를 약속하며 각자의 자대로 실려갔다. 그 겨울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맞았다.
3년이 지났다. 소설가는 [화곡]으로 돌아왔다. 소설가는 그의 말처럼 돌아온 탕아가 되어 한 발 총성을 쏘았다. 나는 막 화곡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는 과연 3년전 말한대로 치열하게 시간의 밀도를 높였다. [화곡]을 읽다가 몇 번이고 읽기를 멈추었다. 잠시 책을 덮고 그가 보냈을 시간과 노고를 생각했다. 몇몇 장면에서 그가 보았을 광장과 거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방관’ 형진이 치열히 삶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소설가 역시 그랬을 것이었다. 윤재성은 과연 길에서 글을 배웠다. 소설 [화곡]에는 직접 마주하고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고민이 묻어있다. 사람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마주해야만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소설 [화곡]에는 있다. 밤이 선생이라 했던가. 윤재성에게 길은 선생이었다. 거리에서 마주한 사건과 사람들은 그의 글이 되고 말이 되었다.
[화곡]에서 나는 윤재성을 본다.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인 윤재성을. 치열히 길에서 글을 배운 한 사람을 본다. [화곡]을 꼭 읽어보시라. 여기 한 사람의 삶이 있다. 그 사람의 밀도 높은 시간이 있다. 스스로를 구한 한 사람의 삶과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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