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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금 그리고 미래에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 해야하는, 어떤 사회가 필요하며 그 사회를 위해서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나오게 되는 거죠." - P 150中에서 이 책을 선택하여 읽고자 한 내심의 동기같은 것이 있다. 서거하시기 직전까지 마음에 두셨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토론하며 사유하여 마련코자 했던 것이 바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땅의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세상을 꿈꾸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도달하기 위해서 벗어날 수 없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들이란 무엇이며, 그것들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물음들과 현실 세계에 대한 냉정한 성찰의 육성을 기록으로나마 감히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자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책은 주변의 학자들, 참모진과 함께 '진보의 미래'란 테마의 연구주제를 놓고 진행했던 비공개 모임을 위해 구상되었던 원고 구성안과 2008년 12월에서 시작하여 서거하시기 직전인 2009년 5월까지 모임에서의 육성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원고는 미완의 저작물로 남아있게 되어 어떤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과제의 본질을 헤아리게 되며, 육성 기록은 이를 보다 생생하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통렬하고 세찬 해결의지를 엿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제목이 우여곡절 끝에 '진보의 미래'가 되었지만, 그에게 '진보'는 민주주의의 내재 가치였기에 우리 사회가 지향하여야 할 궁극의 미래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으며, 또한 그것은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문제"로서의 '국가의 역할'에 귀속되기에 '한국사회의 미래'가 되어야 할 길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라하여도 그릇된 이해는 아닐 것이다. 그 사회란 바로 우리네의 일상을 지배하는 차별과 불평등, 빈곤과 배제, 불공정한 경쟁과 분배의 왜곡을 벗어나 사람의 자유와 평등의 불편(不偏)에 가닿으려 그침없이 지속하는 터전이다. "가능하지 않은 것은 현실이 될 수 없고,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은 공상일 뿐이다."라고 했듯이 대안을 마련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닌 현실적이고 행동가능한 지혜를 구하기 위한 실천적 사유의 치열함이다. 따라서 그의 첫 물음은 "당신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뭔가? 그들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나?" 하는 현실적 소망의 질문을 통해 개인 삶의 실질을 돌아보게 한다. 당신의 아이에게 위인전을 사주지 않았나? 고 묻는다. 거기에는 우리의 소망 - 빼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한편으론 자기 삶을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 이 담겨있는 것 아니냐고. 여기에는 현실적 경쟁, 살아남는 문제가 개입하고, 그것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를 낳는다. 이 화두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는 실패하고 성공또한 영원하지 않음에도 실패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잉태하는 그 불편한 관점 말이다. 그렇다면 경쟁이 공정한 사회로 가야한다는 추상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이것이 진짜 맞긴 하는건가? 하고 다시 묻는다. 이런 사례가 세계 어느 국가 혹은 특정 지역사회에 있는가? 만일 없다면 이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확인하고 진정 올바른 길을 찾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역설한다. 사람들의 삶을 사로잡아 꼼짝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고통스런 구조를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이처럼 그의 문제 제기와 해결방안을 위한 과정은 사람에 대한 깊은 보편적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권이 어디로 가더라도 시민의 생각이 딴 곳에 있으면 그 시대 가치관이 압도적 다수를 벗어날 수 없어요." - P 311 中에서 이와 같이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형편을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도록 하게하는 것, 그러한 삶이 가능토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당시 사람이 아닌 돈을 사회적 가치의 중심에 두고있는 보수주의 정권이 내세우는 성장과 이익의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겐 한낱 좌파 진보주의자의 이상론으로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해관계'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 '인과관계'를 좀 생각해 보세요, 경제를 살리는 정책의 실체가 진정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라는 요청은 공허한 울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이해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만큼만 시대의 가치가 갈 수 밖에 없음"의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근자에 들어 '깨시민'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깨어난 시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정말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맞는지,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제고하는 법의 제정인지, 그 세부 내용들이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인과관계까지 헤아리고 그에대한 견해를 주장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추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바라던 시민들의 싹이 오늘 이처럼 자라나고 있음을 보았다면 무어라 했을까? 여전히 그의 돌연한 죽음을 만들어냈던, 우리네 사회가 지녔던 그 한계의 안타까움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 아주 조금씩 변화해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성숙에 미소를 보냈을 것만 같다. "복지는 목적이다. 경제는왜 하는가? 복지를 위한 것이다." - P 63中에서 진보냐, 보수냐라는 이념적 분리의 물음은 사람들의 이맛살을 짜뿌리게 하는 편치 않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해갈 수 없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과 역사적 현실의 괴리가 비록 커다랗다 할 망정 삶의 일상에서 마주해야하는 무수한 현실들이 인간의 작은 소망을 좌절케 하고 있기에, 자기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식적 탐색과 탐구의 과정으로서 너무도 중대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주장하는 보수와 분배를 우선하는 진보,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와 이를 저지하려는 보수, 규제의 축소와 작은 정부를 요구하는 보수의 내 논에 물대기식 편의적 주장의 무책임성에 대해서, 그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분투의 과정들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보수주의의 가치에 대한 지난하고 통렬한 성찰의 기록이 빼곡하게 토로되고 있다. 오늘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제의 효율성 논리와 시장의 논리안에서 경제, 성장, 활력, 경쟁력의 논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즉 보수주의 주제에서 논쟁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 또한 우리의 시선과 인식의 전환의 필요를 생각케 하지 않는가? 금융위기, 거대 외국자본의 횡포, 사건적 재난 등등이 발생하면 규제의 미흡함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작은정부와 규제의 경감을 끊임없이 외치는자기 모순과 이익적 편의라는 기이한 이기주의를 반복한다. 보수언론은 대형 화재나 해양 선박사고등이 발생하면 규제가 없다고 난리를 떨어대며 언제 규제 경감을 외쳤느냐고 발뺌한다. 돈과 자기 이익을 핵심 가치로 하는 보수주의를 논의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삶, 바로 이것에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지니는 것, 부모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경쟁, 성공 할 수 있는 교육, 패자에게 가혹하지 않은 사회, 승자와 패자가 더불어사는 사회를 이루어내리라는 소망을 향한, 그 구체적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고군분투의 자취가 바로 이 책에 수록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국가의 정책이란 바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것 아니라면 그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이냐는 절절한 외침이다. 보수와 진보간에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핵심 쟁점이 있다. '분배와 복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획일적인 올바름을 주장하지 않는다.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이지, 항구적인 정책의 바름이 어디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여전히 색깔 공세가 통하는 나라, 보수주의 색채가 짙은 사회, 지역주의 장벽이 보수주의의 보루를 형성하는 사회, 돈에 의해 움직이는 언론이 여론을 조작하고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민, 학습하고 생각하는 시민, 지혜와 실천적 용기를 지닌 시민이 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삶의 주체자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기 요구와 생활상의 이익을 분명히 이해 할 줄 아는, 정책과 자기 이익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얘기 할 수 있는, 오늘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을 셈할 줄 아는 시민이 충분히 성장해 있으면 그 어떤 정권이 문제이겠는가." - P 140 中에서 이 육성의 울림은 오늘 자못 크게 들려온다. 깨시민이 많아지는 세상, 국가의 역할을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런 세상을 향한 고인의 바람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저술이다. 완성된 정치 경제 실천서로 전해지지 못하고 미완의 저작으로 전해지게 된 아픔, 그 미련과 애석함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이 책에서 제안되고 논의된 과제들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
| 노무현 전대통령을 존경하지만 그동안 이 분의 책 한권 읽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노무현 전대통령이 얼마나 열려있는 사고를 지닌 분이었으며 또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주옥같은 내용들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진보와 보수의 핵심가치에 대해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아직 봉하마을에 가본 적이 없는데 꼭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
|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노짱...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상과 철학을 삶 속에서 실천해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진보의 미래...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철학과 사상이 내몸 속에 더 깊이 각인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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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무엇을 위해, 보수는 무엇을 위하는가. 지금 첨예하게 대립하는 진보와 보수 수십년전에도 대립하고 투쟁하였다. 그들의 기득권을 위해 수많은 시민과 국민의 목숨까지도. 지금도 그 때 그들과 방식만 다를 뿐이지 여전히 후안무치한 모습은 그대로다. 정의롭지 않은자들이 더 당당하다. 왜? 그렇지 않으면 기득권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하니. 정치를 더럽고 추하게 만들어 그들만이 즐기는 아수라 판을 만든다. 정말 이번에는 끝내야 한다. 일본과 같이 50년을 자민당 지배를 받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 이번 선거는 정의롭지 않은 부패한 기득권이 더 이상 민주주의니 시장자유주의니 국민이니 거짓에 속으면 안된다. 이 땅은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다. 그들에게서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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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빠르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고 그렇다. 펑범한 인간은 참 어리석어서 무엇이든 가장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벌써 11년이라니.... 모든 것이 그저 엊그제 일만 같은데,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벌써, 이렇게나 많이 지나왔다. 우리에겐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제서야 정말 어렵게 제대로 된 나라,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또다시 팬데믹이라는 엄청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과연, 우리는 , 그리고 인류는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겨낼 수는 있을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지금 그는 우리에게 어떤 얘기를 해 줄까?
"진보의 미래"라고 하지만, 그가 염려 한 것은 결국 "인류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보수의 시대에 진보의 정신과 이념을 실현시켜 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 갔고, 그가 남긴 숙제를 정치권과 기업, 시민들이 이제 함께 풀어 내야 한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렇게 국민과 나라와 인류에대한 고민이 많았던 그가 그 뜻을 다 이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 지.... 그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만, 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생각 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해간다.
진보를 얘기 하자면 보수와 진보의 논쟁, 즉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장과 분배, 감세와 복지, 민영화 탈규제, 노동의 유연화, 개방, 작은 정부, 이런 논쟁이 전부 정부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다. 그러나, 그는 승자도 혼자 성공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가 안정되지 않으면 성공 할 수 없다. 격차는 갈등을 낳고, 갈등은 사회불안을 낳는다. 지나친 경쟁은 인간성을 황폐하게 하고 결국은 사회를 파괴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가 염려한 일이 현재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격차는 더 벌어졌고, 갈등은 심화되었으며, 지나친 경쟁으로 인간성이 황폐하게 되고, 결국 사회는 파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팬데믹이 덮치자, 그동안 소위 선진국이라 알려졌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고, 총기를 구입하고,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국가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거기다, 미국이란 패권국은 인종 갈등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파로 사회 파괴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이제 진보 보수의 개념조차 모호해진 사회가 되었다. 권력은 자본으로 이동했고, 그 권력은 이제 국가를 초월한다. 그 분의 진보적 이상, 더불어 사는 사회, 인권을 존중하고 더불어살고 미래도 준비하고... 그런 사회는 이제 더 요원해 진 것 같다. 그는 양극화의 원인은 결국 노등의 문제인데, 새로 등장한 계급, 창조적 지식 노동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국경도 없이 자본을 끌어 모으고, 심지어 그 자본조차 본인의 자본이 아니다. 그나마 "깨어 있는 자본"이라는 개념이 생겨서, 도덕적 자본, 환경젹 자본에 대해서 생태환경친화적 자본에 대해서 거기에만 투자하는 펀드등, 이런 것에 기대해 봄직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과연 그런 자본이 얼마나 모일지는 미지수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당시, 미국은 오바마라는 진보 대통령의 시대가 열려서 진보시대의 진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했으나, 결국 오바마는 반절의 성공만 거둔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은 다시 보수를 택했고, 트럼프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G2는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고,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우리나라의 처지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거기에 예상치도 못한 팬데믹의 쓰나미로, 세계인류는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결국,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에게 기본소득이 돌아 가고 있는데, 일시적이라해도, 어찌보면, 이것도 노무현이 말하던 복지, 재분배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이런 지경에서 보수,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가 말했던 것처럼 한 버스에 자리 좀 서로 서로 비켜서 모두 함께 타고 가야 결국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창의적인 교육으로 창의력 있는 인간을 만들어 내고, 보편적으로 생산성 높은 일 잘 하는 사람 만들어 내고, 그 사람들이 안정된 토대위에서 미래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구비해 주는 국가. 그것이 바로 복지이다. 교육의 기회균등, 그것을 위한 공공적인 투자, 인간에 대한 투자, 교육, 직업훈련, 또는 교욱과정에서 인격양성, 창의력 기르기... 사람에게 친화적인 것들...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인류는 AI와 일자리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세계 석학들은 모두 하나같이 인간성 회복을 외친다. 노무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 시민이란 것은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 자기와 정치, 자기와 권력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적어도 자기의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과 정치도 생각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일반화해서 정치적 사고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보는 것이죠. 민주주의가 진보다. 진보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 주체는 시민이어야 한다.
이제 국경도 무너지고, 노동의 의미도 바뀌고 시민의 의미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평범한 개인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일부 권력계층에 맞서려면, 깨어 있는, 행동하는 각각의 시민이 서로 연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고, 역사상 성공한 적도 없을지라도, 이제 인류는 가지 않은 길을 또 떠나야 할 채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중한 사람이 우리 곁에 남겨놓은 숙제를 버겁더라도 하나 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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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에 나왔던 소제목별 내용이 완성 된다면 어떠한 경제이론 보다 의미있는 있을 수 있다. 통수권자, 행정수반으로 탁월한 방향성(무엇을 가치있게볼것인가 라는 문제에 공감하기에)을 보여 준다. 불쑥 나오는 그의 토로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공감되는 방향 아래 미완의 방안은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당장 수년안에 이를 완성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세대에는 완성되리라는 기약과 희망을 함께 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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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고 하더니 엊그제 같이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올해로 11주기가 되었다. 사회 초년생시절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올해는 온라인 중계를 통해 함께 하게 되었다. 11주기 추모 행사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 슬로건에 맞춰 진행되었다.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2001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약속한 문구였다고 한다. 몇몇 인사들의 추도사들이 인상 깊었다.
이해찬 대표는 민주의 역사가 헌법에 당당히 새겨지고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그날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노 전 대통령께서 남겨놓은 가치를 남은 우리가 진정 사람 사는 세상으로 완성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또, 유시민 이사장은 “우리 사회 민주시민으로 곧게 자랐을 아이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친구 같은 대통령, 당당한 지도자, 새로운 시대의 앞선 시민으로 언제까지나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진보의 미래>는 서거직전에 남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메모와 육성들을 바탕으로 학자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진, 미완의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라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이 책에는 정치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노무현의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나는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 미완의 책을 읽고 우리가 조금씩 다듬고 완성해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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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구입하기에 내가 가장 말설였던건 이책이 의미가 있으까 였다 나도 솔직히 노무현을 좋아하지만 이책은 노무현의 미완의 책 이론이 였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만 모든 이론이 그럴테지만 이건 확실하다 도중에 서거라는 아픔이 말해준다 그러나 이책은 읽으면 읽을수로 미완이 아닌 의미 없음이 아님 을 알수 있다
서거 몇달전 부터 방문객의 접견을 피하고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에게 도움이 될만한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마음 얼마나 공부하고 생각 하였는지 아님 내가 보지 못한 점을 다른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완성된 이론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다행인건 책에 같이 연구하던 사람들이 이책은 끝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서 완성된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끝내지 못한 미완의 이론을 완성된 이론으로 책으로 보고싶은 마음 뿐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일께울 노무현의 유신이자 역작 다음 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