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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리쳐지는 폭력의 지옥도,
오키나와의 미군 성폭행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선택했는데 이렇게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인 줄은 몰랐다.
평소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은 읽기도 보기도 힘들어서 일부러는 찾아 읽지 않는 편인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교훈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서평단을 신청했고 리뷰를 재깍재깍 올리는 블친님들의 리뷰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보지 않은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손에 잡자 마자 평일에는 새벽까지 책을 읽지 않는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밤을 거쳐 이른 새벽까지,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내용인데도 뭔가에 홀린 듯 꼼짝없이 이야기의 볼모로 잡혀버려 끝까지 읽고 말았다.
중학교때 선배 히가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난 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두려움에 그를 추종하는 가쓰야, 히가에게서 여성(소녀라고 하는게 맞겠다) 들을 건네받아 관리하고 소녀들의 성을 사는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 협박하면서 살아간다.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살아가던 가쓰야는 어느날 평소 소녀들과는 다른 마유를 맡게 되고, 약에 취해 흐리멍텅한 마유의 눈 깊은 곳에서 번쩍이는 다른 것을 발견한다. 히가라는 절대악당과는 다르게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을 꾹꾹 누르고 살아가던 가쓰야는 마유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굴종의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제대로 된 도발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 마유까지 히가의 잔인한 위협에 맞닥뜨린다.
히가와 가쓰야는 너무나 다르지만 미군을 직접적으로 처단해야지 겁을 먹고 물러나지, 물러가라는 구호나 외치는 평화시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은 동일하다. 폭력에 대응하여 똑같이 폭력으로 응징하는 소설의 마지막이 꼭 그래야 했는 지는 의문이다. 물론 작가가 폭력의 진면목을 직시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저자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아쿠타가와 문학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등을 받았고 현재는 오키나와 반전 평화 운동의 최전선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해상 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읽고 난 후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폭력의 강도가 너무나 무지막지하여 무서움이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에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오랜만에 끔찍하고 충격적인 소설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현재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과거 살인, 성 범죄, 사고가 많이 발생했음에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에 눌려 제대로 된 항변조차 못하고 살아왔던 과거가 있다.(물론 지금도 진행형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입해도 틀린 것이 아니라는 블친님들의 말에 동감하는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존재의 근원적인 의문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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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성매매산업과 유착된 폭력, 그리고 미군주둔지에서 주둔군의 폭력, 어찌보면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사회 역시 이 세가지 폭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들이 지금 핫뉴스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예전보다는 더 교묘해지고 은폐되어가면서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1995년 5월,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미군병사들의 소녀 성폭행사건은 미군기지 반대운동으로 이어져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미군폭력 사건은 대부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나마 국민들에게 알려졌던 대표적인 사건이 1992년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어난 윤금이 피살사건,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순이, 효순이 사건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가 죽었음에도 진실은 묻히고, 가해자 그 누구도 처벌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오키나와의 대표작가라는 메도루마 슌의 [무지개 새]를 읽다 보면 학원폭력, 성폭력 그리고 미군의 폭력이 서로 중첩되고 간섭하면서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미군의 오키나와 소녀 성폭행사건에 충격을 받은 당시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잔혹하고 섬뜩한 폭력을 통해 오키나와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폭력근절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성매매를 한 남자의 사진을 찍고 그걸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히가. 가쓰야는 히가가 보내주는 여자를 관리하면서 성매매 현장의 사진을 찍어 히가에게 주고, 자신은 여자가 성매매의 대가로 받아온 돈으로 생활한다. 히가는 전화방 업자에게서 전화를 자주거는 소녀의 정보를 입수하여 만난 후, 때로는 위협으로 때론 참을성 있게 소녀의 얘기를 들어주며 구워삶는다. 그리고 약물에 취하게 만들어 가쓰야나 다른 수하에게 맡겨 성관계를 하게 한다. 가쓰야는 그것이 결코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히가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동조자가 될 수밖에 없다. 17살 미성년자인 마유가 가쓰야 집으로 온다. 마유 역시 가쓰야에게 오기전 이미 약물과 성노예 상태에 빠져 있다. 가쓰야와 마유가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중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쓰야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폭력의 정점에 히가가 있었다. 아이들은 상습적으로 폭력에 휘둘리며 히가에게 상납을 한다. 학교도, 부모도, 사회도, 히가의 폭력에서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아이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다. 가쓰야 역시 자진해서 상납금 액수를 올려보는 등 어떻게든 히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방법만을 연구하며 보낸다. 히가가 졸업하면서 가쓰야는 아이들의 상납금을 모아 히가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된다. 히가는 학교에서 떠났지만 그의 폭력은 여전히 유효했다. 마유 역시 중학교 때는 뛰어난 성적과 활기찬 소녀였다. 3학년때 성폭행을 당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요양한다. 시간이 흐르고 안정을 되찾은 마유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지만, 어느 날 가해자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순간의 차이로 삶이 나락으로 빠기게 된 것이다.
마유의 등에 무지개 새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녀가 당해온 폭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얀바루 숲에는 베트남전쟁때 특수훈련을 하던 미군훈련장이 있는데, 그 숲에 살고 있는 환상의 새를 미군들은 무지개 새라 불렀다. 숲에서 그 새를 발견하면 아무리 격렬한 전쟁터에 있더라도 그 새를 본 사람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부대의 다른 동료들은 모두 전멸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새를 본 사람이 남에게 말하면 새가 불러오는 기적은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 새를 발견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가쓰야는 그 무지개 새가 보고 싶다. 당연히 그에게 부대는 히가와 그 일당이다.
마유는 말이 없고, 몸과 마음 모두가 쇠약해져 가고 있다. 간혹 눈에 알 수 없는 생기가 돌아오곤 하지만 이내 사라지며 무기력해진다. 어느 날, 남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마유가 남자를 모텔이 아닌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산남자를 상대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방식으로 성폭력을 가한다. 가쓰야는 사진을 찍었지만 모텔이 아닌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는 것 때문에 히가에게 건네 주지를 못한다. 이후 마유가 감기로 꼼짝을 하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가쓰야는 자신의 돈을 상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히가가 마쓰다와 함께 마유를 호텔로 끌고왔다. 마쓰다는 마유를 모델로 포르노를 찍고, 히가는 화장실로 가쓰야를 데리고 가서 폭행을 한다. 마유가 마쓰다를 살해하고 히가마저 살해한다. 가쓰야와 마유는 호텔을 나와 함께 도주길에 오른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가쓰야가 가게에 간 사이 마유는 미군병사의 어린 딸을 납치하여 죽인다. 가쓰야는 차를 몰아 얀바루 숲으로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지개 새를 볼 수 있을까
이처럼 작가는 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작품의 끝을 맺는다. 시작과 끝 사이에도 당연히 폭력이 존재한다. 그 묘사의 사실성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폭력구조는 단순하지가 않다. 작가는 작품 속 히가의 입을 빌어 ‘미군병사의 아이를 잡아다가 발가벗겨서 58호선 야자나무 아래에 철사로 매달아 놓으면 되지. 진짜로 미군을 쫓아버릴 생각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도주중에 마유가 미군병사의 어린 딸을 살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소녀 폭행사건에 대한 응징을 맞대응하는 보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미군병사들의 그것보다도 더 추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함유하는 의미는 간단치가 않다. 서사는 미군의 소녀 폭행사건과 히가의 학교폭력, 성매매폭력이 병행하여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그러한 폭력에 대한 섬주민들의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작가는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서사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벗어난다. 이는 역설적으로 작가가 그만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떠한지 생각해본다. 무관심, 은폐를 넘어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혹 용공, 종북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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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새 메도루마 슌/ 곽형덕 아시아/2019.5.10.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돈을 낳는 생물을 사육하는 거야.” 히가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마쓰다가 가쓰야에게 몇 번이고 했던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가출해서 히가에게 속고 있는 바보 같은 중학생이나 고교생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다만 마유가 지금과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된 계기를 히가가 데리고 있던 여자로부터 들었을 때, 마유에 대한 동정심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p.83 히가의 일당이 되어 나이 어린여자들을 데리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가쓰야의 마음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학교폭력 피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간의 양심이 동정심을 야기하고 있지만, 좁은 섬 안에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헤어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벗어날 희망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그들의 지시에 따라 생활하는 노예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간다.
히가의 일당의 하수인이 된 가쓰야는 어린 여자애들을 성매매 시키고 성을 산 남자를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여 먹고 산다. 미군부대에 땅을 빌려주게 되어 그 사용료를 받아 생활하는 부모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가쓰야는 중학교 때 히가 일당의 폭력 희생자가 되었다. 이번에 관리하게 된 여자 마유도 중학교 때 성폭력을 당해 학업을 중단했지만, 결국 가해자들의 이용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작은 체구의 마유 등에는 일곱 색깔이 선명한 무지개 새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새의 머리 부분이 담뱃불로 짖어진 흉터로 일그러져 흉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선명하다. 마유가 불문율을 깨고 집으로 끌어들인 첫 번째 남자는 중학교 교사다. 평소에는 힘없이 늘어져 잠만 자던 마유는 딴 사람이 되어 교사를 구타하고 뜨거운 물을 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한다. 그뿐 아니라 성폭력까지 행하고 그것을 가쓰야는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 사진을 히가에게는 숨겼다. 불문율을 어긴 체벌이 무서워서다. 그리고 약한 마유가 일을 못한 댓가로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려다 상납을 하고 히가의 폭력을 모면한다.
몸을 추스린 마유가 다시 성매매를 나섰지만 규칙대로 하지 않고 호텔에서 혼자 나온다. 이상히 여긴 가쓰야가 추궁을 하려하자 늘어져 있던 마유는 갑자기 돌변해 카터 칼로 가쓰야를 공격하여 얼굴에 칼자국을 남긴다. 가쓰야는 마유를 구타한 후 극진한 간호를 하지만, 일주일을 앓는 바람에 상납할 돈을 다시 엄마에게서 받아 오는데, 미군 셋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데모대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하게 된다. 히가는 가쓰야의 집에서 교사를 성폭행하는 사진을 찾아내 가쓰야를 사진 속 교사와 똑같이 폭행하게 되는데……
죽은 척 늘어져서 시키는 대로 하던 마유가 폭력단의 부두목인 마쓰다와 자기를 비웃은 작은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죽인다. 급기야는 가쓰야가 고문당하는 욕실로 들어와 히가까지 살해한다. 이들은 현장을 정리하고 도피를 하기 시작한다. 가쓰야는 중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전설 속의 무지개새가 산다는 숲을 향한다. 도피 물품을 구입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사이 마유는 미군의 어린 딸을 유괴하여 죽인다. 아이의 부모가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찾아 나오는 것을 보며 그들은 급히 차를 몰고 출발한다. 전설의 무지개 새가 살고 있는 오키나와 북쪽 얀바루 숲으로…….
<무지개 새>는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의 성폭력 문제와 오키나와에 만연한 폭력을 고발하고, 무능력한 경찰행정력을 비판하는 일환으로 집필되었다. 이 소설로 인해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귀속되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오키나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저자는 류큐대학 법문학부에 들어가 문학 활동 및 반기지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어군기>로 등단한 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2000년에 <혼 불어넣기>로 가와바다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오키나와 반전평화 운동의 최전선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해상 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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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오키나와에서 미군 셋이 13살의 오키나와 소녀를 성폭행한 일이 일어난다. 이 일은 오키나와 섬 전체에 큰 충격을 안긴다. 이 사건으로 오키나와의 희생을 담보로 한 미일안보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섬 전체의 투쟁’이 이어진다. 이 글은 이 일을 소재로 하여 쓰여 졌다. 저자가 사건이 일어난 공간을 출생지로 하고 있기에 이 일이 더욱 그의 마음을 움직인 듯하다. 이후 이 문제를 가지고 그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장갑차에 치여 죽은 미순, 효순의 일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저지르는 행패가 도를 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경우고,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로 진실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오키나와 소녀의 일은 오키나와에서 큰 반발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미군 기지를 북부 지역으로 옮기는 일로 일단락되는, 유야무야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나온 지 모르겠다. ‘이에는 이 눈에 눈’의 단죄를 통해 분풀이라도 하려는 마음을 보여주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가령 미군의 딸을 똑같이 만들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행해야 한다는? 물론 그것이 바른 일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의 무책임한, 정신병적인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을 선량한 다른 사람에게 앙갚음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정신병자들이나 할 짓이다.
그런데 이 글에선 그런 정신병자들을 등장인물로 많이 제시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조직폭력배 속에 들어가 학장 시절을 금품 갈취와 타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로 보낸 가쓰야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두머리가 되는 잔혹한 히가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면서 성 판매를 하는 자가 된다. 히가에게서 마유라는 소녀를 공급받고, 전화방 등을 통해 연락되는 사람들에게 성매매를 하도록 유도하면서 현장을 촬영한다. 그리고 그것을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인 히가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공갈협박을 해 돈을 갈취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미유는 학교시절은 공부도 잘 하고 예쁜 아이였다. 그것이 한 순간 히가에게 걸려들어 자신을 망치게 되고, 마약을 하면서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녀를 따라가는 모든 일들이 참혹함으로 인식된다.
이 미유의 등에서부터 하복부까지 선명한 무지개 색의 새가 문신으로 그려져 있다. 미유를 데리고 같은 집에 기거하면서 장사를 하는 가쓰야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직의 무서움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 그러면서 무지개 새의 전설을 마음에 담으면서 만나기를 희구한다. 무지개 새의 전설은 학교 사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을 무대로 소개하면서 얘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새의 효능도 얘기되고 성격도 말해 진다.
가쓰야는 마유가 병약하여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마유의 벌이를 대납해야 되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엄마의 도움을 받는다. 가쓰야가 히가를 만나러 가는 일은 심적인 고통이 대단하다. 그런데 그 길을 가면서 미군 부대와 입체적으로 미군을 반대하며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속에서 마유와 마이크를 들고 오키나와 소녀를 겁탈한 미군의 문제를 거론하는 여학생이 겹친다. 어느 한 순간의 일들이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로 만들어 놓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마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내면화해 나간다. 그것이 마유에게 혹독하게 대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마유를 대신해서 자신이 조직에 고통을 당하는 상황까지 연결된다.
마유가 손님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사건이 생긴다. 성매매에서 금기사항이다. 그것을 조직에서 알면 마유뿐만 아니라 관리하고 있는 가쓰야도 조직의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마유가 그것을 강행한다. 그것은 마유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 일을 가쓰야는 숨기면서 어떻게 하던 자신과 마유를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드러나게 되고, 히가의 조력자인 마쓰다가 관리하는 호텔에 마유의 일 값을 가쓰야가 지불하러 갔을 때, 마유도 거기에 잡혀와 있음을 보게 된다. 마쓰다는 히가를 도와 음란 비디오도 찍고, 소녀들에게 물리적인 위협도 가하는 인물이다.
이 날 히가와 마쓰다는 마유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이고, 육체적으로 강건한 상황이 아니라는 상황을 체크하고 우선은 쓸만 하니까 일을 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섹스비디오를 찍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일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옆에 히가도 있고, 가쓰야도 있다. 그때 TV는 오키나와의 미군에 대한 데모를 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히가는 말한다. 저렇게 해서 무슨 일을 이룰 수 이겠는가고. 일을 제대로 하려면 똑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길만이 해결하는 길이라고. 끔찍한 범죄의 말들을 거침없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유가 손님에게 자신의 정보를 주는 것을 저지하지 못한 가쓰야를 화장실로 유도해 린치를 가한다. 가쓰야는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반항하면 결과가 어떻다는 것이 학습된 결과다.
히가에게 당하고 있던 가쓰야 앞에 섹스비디오를 찍고 있던, 몽롱하게 보이던 마유가 나체로 서 있다. 그리고 그 손에는 기름과 불, 날카로운 물질이 들려있다. 기름은 히가의 몸에 뿌러 지고 불은 히가의 몸에 붙는다. 히가는 불타면서 욕탕 속에 쳐 박혀 죽어간다. 가쓰야가 밖에 나와 보니 마쓰다도 죽어 있고, 다른 여자 한 명도, 고통에 휩싸여 있다. 마유의 복수가 행해진 것이다. 가쓰야는 빠르게 주변을 수습하고 정신 줄을 놓은 마유을 데리고 호텔을 빠져 나온다. 그러면서 무지개 새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마유를 데리고 선생님이 말했던 얀바루 숲으로 들어가 새를 만나길 기원한다. 히가 일당에게 잡히거나, 경찰에 잡혀도 그들은 죽은 목숨이다. 도망가는 상황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이지만 꼼꼼하게 준비한다. 그 뒤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학교 폭력이 사회 폭력이 되고, 성폭력과 연결되면서 미군의 성폭력 문제까지 언급한다. 학교의 폭력이 만들어 나가는 상황을 사회적으로 까지 과대한 힘으로 나타나듯 표현하고 있지만, 폭력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타인을 도구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전쟁이라는 상황과 연결되면 더욱 심각해진다. 전쟁은 인격을 논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전후 미군의 진주와 기득권을 가진 그들의 범죄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참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다. 인간을 도구화하는 내용이 너무 끔찍하다. 이런 일들은 인간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가쓰야와 마유가 조금 이성을 찾아, 무지개 새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정복자, 지배자들의 횡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문제가 될 때,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의 격렬함과 함께 삶을 마비시키는 상황을 가져 온다. 그래서 옛날 위대한 정복자들이 타국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내리는 명령은 현지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래야 민심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을 동화시킬 수가 있다. 그런 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정복자, 지배자들은 미래를 담보받을 수가 없다. 등에 항상 칼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오키나와 정복자인 셈인 미국에 대한 윤리를 일깨우게 하고 있는 글이다. 참람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경각심을 가지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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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새 메도루마 슌/ 곽형덕 아시아/2019.5.10. sanbaram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돈을 낳는 생물을 사육하는 거야.” 히가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마쓰다가 가쓰야에게 몇 번이고 했던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가출해서 히가에게 속고 있는 바보 같은 중학생이나 고교생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다만 마유가 지금과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된 계기를 히가가 데리고 있던 여자로부터 들었을 때, 마유에 대한 동정심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p.83 히가의 일당이 되어 나이 어린여자들을 데리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가쓰야의 마음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학교폭력 피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간의 양심이 동정심을 야기하고 있지만, 좁은 섬 안에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헤어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벗어날 희망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그들의 지시에 따라 생활하는 노예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간다.
히가의 일당의 하수인이 된 가쓰야는 어린 여자애들을 성매매 시키고 성을 산 남자를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여 먹고 산다. 미군부대에 땅을 빌려주게 되어 그 사용료를 받아 생활하는 부모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가쓰야는 중학교 때 히가 일당의 폭력 희생자가 되었다. 이번에 관리하게 된 여자 마유도 중학교 때 성폭력을 당해 학업을 중단했지만, 결국 가해자들의 이용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작은 체구의 마유 등에는 일곱 색깔이 선명한 무지개 새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새의 머리 부분이 담뱃불로 짖어진 흉터로 일그러져 흉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선명하다. 마유가 불문율을 깨고 집으로 끌어들인 첫 번째 남자는 중학교 교사다. 평소에는 힘없이 늘어져 잠만 자던 마유는 딴 사람이 되어 교사를 구타하고 뜨거운 물을 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한다. 그뿐 아니라 성폭력까지 행하고 그것을 가쓰야는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 사진을 히가에게는 숨겼다. 불문율을 어긴 체벌이 무서워서다. 그리고 약한 마유가 일을 못한 댓가로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려다 상납을 하고 히가의 폭력을 모면한다.
몸을 추스린 마유가 다시 성매매를 나섰지만 규칙대로 하지 않고 호텔에서 혼자 나온다. 이상히 여긴 가쓰야가 추궁을 하려하자 늘어져 있던 마유는 갑자기 돌변해 카터 칼로 가쓰야를 공격하여 얼굴에 칼자국을 남긴다. 가쓰야는 마유를 구타한 후 극진한 간호를 하지만, 일주일을 앓는 바람에 상납할 돈을 다시 엄마에게서 받아 오는데, 미군 셋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데모대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하게 된다. 히가는 가쓰야의 집에서 교사를 성폭행하는 사진을 찾아내 가쓰야를 사진 속 교사와 똑같이 폭행하게 되는데……
죽은 척 늘어져서 시키는 대로 하던 마유가 폭력단의 부두목인 마쓰다와 자기를 비웃은 작은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죽인다. 급기야는 가쓰야가 고문당하는 욕실로 들어와 히가까지 살해한다. 이들은 현장을 정리하고 도피를 하기 시작한다. 가쓰야는 중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전설 속의 무지개새가 산다는 숲을 향한다. 도피 물품을 구입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사이 마유는 미군의 어린 딸을 유괴하여 죽인다. 아이의 부모가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찾아 나오는 것을 보며 그들은 급히 차를 몰고 출발한다. 전설의 무지개 새가 살고 있는 오키나와 북쪽 얀바루 숲으로…….
<무지개 새>는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의 성폭력 문제와 오키나와에 만연한 폭력을 고발하고, 무능력한 경찰행정력을 비판하는 일환으로 집필되었다. 이 소설로 인해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귀속되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오키나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저자는 류큐대학 법문학부에 들어가 문학 활동 및 반기지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어군기>로 등단한 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2000년에 <혼 불어넣기>로 가와바다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오키나와 반전평화 운동의 최전선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해상 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스24를 통해 아시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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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미지의 세계, 신비와 환상의 섬이라는 오키나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무참히 깨주는 작품이었다. 비교적 짧은 소설임에도 느낌은 강렬했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에 있던 『오키나와의 눈물』의 작가라는 것을 알았고 이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된 책이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현 출신으로 1983년 「어군기」로 등단한 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2000년에「혼 불어넣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5년은 메도루마 슌 문학의 전환점이 되는 해인데, 당시 오키나와 북부 나고에서 13살 소녀가 미군 세 명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이후 미군기지와 관련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 『무지개 새』를 시작으로『희망,』『기억의 숲』으로 이어진다. 특히 『무지개 새』는 구상에서부터 연재, 출판까지 총 9년이나 걸려 나왔다는데 그만큼 작품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잔혹하고 끔찍한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폭력의 당사자나 대상자에게 연민이나 응징의 말은 없다. 그저 피사체처럼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이것을 제대로 응시하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여지를 남겨주는 듯하다. 폭력조직의 절대적 권력자 히가, 히가의 명령에 순종하며 성매매 여성을 관리하며 상대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서 넘기는 가쓰야,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마유가 히가 그룹에 들어와 그야말로 ‘폭력의 지옥도’를 펼쳐나간다. 열일곱 살 왜소한 체구의 마유는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찍힌 사진을 되찾기 위해 히가에게 예속된다. 가쓰야는 중학교 시절부터 선배 히가의 ‘상납금’을 관리하면서 친구들과 멀어지고 더 많은 돈을 바치며 히가의 눈에 들어 ‘안전한 삶’을 유지해 간다. 폭력을 당하고 돈을 뺏기면서 왜 말하지 않는 걸까. 돈 걱정 없는 집안이지만 외도를 일삼는 아버지, 그것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자신의 가게를 갖는 꿈을 이루는 어머니, 거의 파친코에서 살아가며 자립 의지가 없는 두 형 등 소원한 가족의 분위기는 더욱 히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소통의 부재와 함께 무엇이 중요한 삶의 척도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족 중 가장 의지가 되는 누나 히토미에게라도 털어놓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히가의 절대적인 권력은 졸업을 하고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폭력, 상납금 근절을 위해 교사들이 나섰지만 교사의 어린 아이를 향해 자행한 폭력으로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만다. 결국 부모와 선생님 모두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건의 예가 되는 데모 장면이 나오는데 8만 5천명의 군중이 모여 미군 철수를 외친다. 무대에 선 여학생을 보고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마유를 떠올리는 가쓰야. ‘한 순간’의 차이로 다른 운명이 된 마유의 삶이 교차된다. 이전에 품지 못한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돈을 낳는 생물을 사육하는’일을 하는 거라고 했던 히가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가쓰야를 계속해서 보는 것은 답답했다. 사람의 굳어진 생각이나 습관을 깨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버지의 돈을 받아 도박으로 삶을 낭비하는 두 형들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해 주는 ‘돈’을 받는 것을 뿌리치지 못한다. 누나 히토미의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뿐이다. 그의 부모는 군용 용지 대여료를 받아 부유하게 살아간다.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군용지 대여료가 인상된다는 가쓰야의 아버지, 데모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엄마를 보며 소학교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딸 히토미, 한 울타리에 살아도 이렇게 모를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싸해졌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과 소통의 부재는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는지. 예의 외부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성매매 산업, 학교폭력 등 내부적인 폭력구조가 얽히고설켜 오키나와 전체에 만연해 있는 일상과 연계시켜 보여준다. 가쓰야는 뭔지 모를 약을 먹이는 등 히가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천천히 무너져가는 마유를 지켜본다. 결국 마유가 손님을 받지 못하자 가쓰야는 ‘상납금’을 마련하러 어머니 가게에 가는데... 네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누나의 진실 된 조언도 자신의 발등의 불을 끄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느 덧 미군 세 명에게 제압당한 소녀의 얼굴에서 소학생 시절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이르렀지만, 안타까움은 어쩌지 못한다. 얀바루 숲의 무지개 새를 떠올린다. 본 사람만 살아남고 다른 동료는 모두 죽게 된다는. 바뀌지 않는 현실을 누가 바꾸어주었으면 싶다. 자신의 성매매 대상인 교사에게 가한 마유의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는 보복이었을까. 가정과 사회가 막아주지 못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자신이 직접 응징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라도 해서 폭력의 가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 죽어가던 소녀 마유의 마지막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인과응보라더니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정당한 행위는 아니지만 폭력의 위험성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설의 새, 무지개 새 이야기를 내세워 마유와 가쓰야를 새 삶으로 꺼내주는 이야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무수한 동식물의 보고라는 얀바루 숲의 생명력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운 섬 제주가 많은 상처를 품고 있듯이 그와 닮은 섬 오키나와의 정치적 현실과 역사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만날 일이 정말 기대된다. 폭력으로 점철된 이야기였지만 여운이 ‘아름답게’ 남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삶을 파괴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 몸 깊숙한 곳에서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백미러에 비친 마유의 잠든 모습은 아름다웠다. 액셀을 더욱 세게 밟으며 가쓰야는 얀바루 숲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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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우리에게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지만, 주일 미군의 대부분이 주둔된 지역이기도 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된 국가였으나, 17세기에 사쓰마 번의 공격을 받아서 일본의 속령으로 전락하였으며, 1872년에는 일본 제국에 의하여 일개 번으로 사실상 일본에 편입되고 이후 오키나와 현으로 변경된다. 이후 본토의 가혹한 지배를 받으며, 태평양 전쟁 중에는 무려 12만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희생당하게 된다. 이러한 오키나와의 역사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메도루마 슌의 [무지개 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1995년 9월 4일 오키나와 북부 나고에서 발생한 주일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소녀에 대한 성폭행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은 베도루마 슌의 작품이라는 점은 이 작품이 단순히 문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은 꽤 충격적이다.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면서 오키나와의 성 매매와 관련된 소재가 뒤엉키면서 불편함마저 느끼게 되니 말이다. 주일 미군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사회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메도루마 슌의 약력을 감안한다면 [무지개 새]를 통하여 오키나와의 부당한 현재의 상황을 표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용의 전반적인 부분은 밑바닥 인생의 전형을 폭력과 선정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조직 폭력배의 일원으로서 히가가 보낸 마유에게 성 매매를 시키고, 히가가 성 매수자를 협박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는 것으로 살아가는 가쓰야가 과연 오키나와의 부조리한 현실을 담아내는 작품의 주인공으로 적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히가를 두려워하면서 그에 대한 철저한 복종으로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되려 오키나와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느껴진다.
그나마 작품 속에서 현실에서 발생했던 주일 미군의 소녀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폭력과 선정적인 이야기 속에서 메도루마 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작품 속에서 가쓰야의 누나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이슈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주일 미군에 대한 항의 시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마저 어렵지 않게 포착된다. 가쓰야의 집안이 바로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한 토지를 제공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군용지 대여료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부당한 현실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인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무지, 심지어 폭력과 성매매를 일삼는 무리들을 통하여 무거운 주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왠지 모순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오키나와의 부당한 현실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은 오히려 메도루마 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생각으로 변하게 된다.
데모대는 어디까지나 얌전하게 도로 끝을 다라 행진하고 있다. 잘 보니 빠른 걸음으로 육교 아래를 지나가는 데모대 안에는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분노를 표출하기는 하지만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기지이 철조망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온통 둘러쳐져 있다. - p. 114 中에서 - 데모대를 바라보는 가쓰야의 이러한 시선은 주일 미군에 대한 항의 시위의 한계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언뜻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이는 그러한 시위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가쓰야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히가 일행이 이러한 시위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도 미군 가족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뱉는 말은 메도루마 슌의 다소 과격한 저항 방법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가쓰야에게 오키나와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은 바로 얀바루 숲의 전설인 '무지개 새'에 대한 그의 믿음과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지개 새'를 보면 주변 동료는 죽더라도 본인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전설은 언뜻 가쓰야의 현실에 별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음을 전설이라는 환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유의 등에서 목격한 '무지개 새'의 형상은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유의 등에서 발견된 무지개 새는 상처로 인하여 마치 날아오르기를 봉쇄당한 형상이었고, 가쓰야에 대한 히가 일행의 협박은 더욱 심해졌기에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결국 좌절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무지개 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령 이 숲 어딘가에 정말로 무지개 새가 존재하더라도 내 눈에 보일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순식간에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 p. 168 中에서 -
이쯤되면 이 작품이 그저 폭력 조직원의 하류 인생을 담아낸 작품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가쓰야를 오키나와의 상징이라고 본다면 과한 확대 해석일까? 하지만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폭력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길들여지는 그의 상황은 오키나와의 어두운 근현대사와 함께 현재 처한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대입하여 보기에 별다른 무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그동안 서로 별개의 평행선과 같았던 오키나와의 현실과 가쓰야의 삶은 접점을 찾게 된다. 성매매와 히가 일당에 의하여 약물에 중독된 마유가 시위대 앞에서 연설하는 소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가쓰야의 모습이 바로 그 지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유만이 아니라 가쓰야나 히가, 마쓰다만 하더라도 근소한 차이로 무언가가 달라졌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을 텐데... - p. 201 中에서 - 가쓰야를 비롯한 자신이 만든 인물들에 대한 이러한 안타까움의 토로는 메도루마 슌의 자조적인 목소리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팔뚝으로 안은 마유의 등에서 무지개 새가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간 환각에 휩싸인 가쓰야는 물방울이 떠 있는 일곱 색깔의 색채를 응시했다. 무지개 새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 214 中에서 - 그간 무기력해 보였던 마유가 히가 일당에게 끔찍하게 복수를 하면서 가쓰야를 살려내는 이 장면은 가쓰야가 그토록 갈구하던 '무지개 새'가 바로 마유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가쓰야를 구원한 마유는 오키나와의 부조리하고 암담한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유의 그 구원 방법이 살인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마유는 미군 가족의 딸을 죽이는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이것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메도루마 슌이 평소 글을 통하여 주일 미군에 대한 보다 강경한 방법으로 항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마유의 살인은 결국 오키나와의 부당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력적이면서 강경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가쓰야와 마유의 도피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은 그러한 메도루마 슌의 생각이 완벽한 것이 아님을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02년 우리 역시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서 사망한 두 소녀의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하였다. 미군에 대한 시위가 반미로 연결되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무지개 새]는 폭력과 선정적인 표현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지명과 인물만 한국식으로 바꾼다면 그대로 우리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인물과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오히려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일본 본토의 무관심 내지는 소극적인 협조로 인하여 오키나와 스스로 그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은 사상 대립이 극명한 우리의 입장에서 주한 미군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 한국의 상황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메도루마 슌은 헤노코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미군 기지 반대를 위한 해상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그러한 시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미군과 일본 정부에 대한 저자의 울분, 그리고, 오키나와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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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다소 거칠고 사실적인 문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폭력적인 현실’을 온전히 그대로 드러내려는 작가의 표현수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 인해서 그에 반대하는 집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곳이다. 전근대시대에는 독립국이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에 대한 감정이 엇갈린다고 한다. 더욱이 대규모의 미군기지가 자리를 잡은 이후 이군과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서 각종 반미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문제가 정치인들의 주요 공약이 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주요 소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현지 여성들에 대한 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기도 한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조직의 우두머리인 히가에 의해 시달리다가, 마침내 그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는 ‘가쓰야’는 졸업 이후에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직에 의해 약물에 중독된 여성들을 관리하며 성매매를 유도하고, 성매매 장면을 사진을 찍어 성매수자인 남성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하수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맡겨진 여성 ‘마유’는 히가 일당에게 장악을 당해 평범한 학생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서, 마치내 성매매에 이용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가쓰야와 마유는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폭력배 우두머리인 히가에게 장악당해 그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가정환경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휘하에 가두는 히가의 수법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폭력조직인 히가 일당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가쓰야와 마유라는 존재들은, 어쩌면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미군기지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미군기지와 그들의 권력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히가의 존재와 그의 폭력 역시 벗어날 수 없는 막강한 힘으로 그려지고 있다. 가쓰야는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을 관리하고, 남는 시간 동안 비디오테이프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무기력한 생활이 지속할 뿐이다. 다만 약물에 취해 평소 무기력하던 마야는 성매수를 하려던 남성을 아파트로 데려와 잔인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는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동조하여 남성의 사진을 찍고 협박에 가담하는 가쓰야도 그녀의 행동이 당황스럽게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한 폭력과 무기력한 처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활에서, 폭력을 행사하려던 히가를 살해하고 가쓰야는 마유와 함께 차를 타고 탈출하게 된다. 여기에서 ‘무지개 새’의 이미지가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학창 시절 사회 교사로부터 들었던, 오키나와 얀바류 숲에 사는 환상의 새가 바로 ‘무지개 새’이다. 훈련을 하던 병사들이 숲 속에서 그 새를 발견한다면, 아무리 격렬한 전쟁터에 있더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새를 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부대의 다른 동료들은 전멸하고야 만다는 전설을 지닌 새인 것이다.
실상 처음부터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는 이러한 이야기에 맞춰진 복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폭력과 착취를 일삼던 히가 일당이 무지개 새의 문신을 한 마유에게 살해당하고, 그것을 본 가쓰야만이 마유와 함께 탈출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죄 없는 미군의 어린 딸이 마유에게 죽임을 당하는 화소가 삽입되어, 그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논란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미군기지로 인해서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당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그것과 대비시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그들의 최후는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견된다. 하지만 작자는 도피의 과정을 결말에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폭력을 가하는 내용들이 다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토대로 작성된 것임.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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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과 관련하여 주의 깊게 본 두 개의 뉴스가 있다. 하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이다. 아베 총리가 관광 가이드라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극진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모시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또 하나는 야스쿠니 신사에 2만 명 이상 함몰되어 있는 한국인 중 자신의 부모나 형제의 이름을 빼달라는 5년간의 한국인 가족들의 탄원을 일본 재판부가 2초 만에 거절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일본 법원은 5년간 피나게 노력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한 주의 문장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왜 이렇게 일본은 미국과 한국에 대해 두 개의 극단적인 태도를 보일까? 태평양 전쟁 패전과 원자폭탄 투하라는 끔찍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게 미국은 보기만 해도 움츠려드는 트라우마가 있는 강대국일 것이다. 반면 한국은 35년 동안 자신들이 철저하게 짓밟았던 경험이 있는 만만한 나라일 것이다. 강자에게는 철저하게 약하고, 약자는 철저히 짓밟는 속성은 다만 일본인 뿐만 아니라, 인간의 폭력성의 근원적 본성일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폭력성이 인간의 약육강식과 닮은 점이다.
오키나와 출신은 작가 메도루마 슌의 [무지개 새]는 바로 이런 인간의 폭력성을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독립국가였다가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고, 지금은 미군 기지가 있어서 일본에서도 가장 차별을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작가의 고향인 오키나와 북부는 오키나와에서도 더욱 차별을 받는 곳이다. 메도루마 슌은 바로 이런 오키나와의 문제점을 소설로 지적하는 작가이다.
[무지개 새]는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미군이나 미군 기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유라는 어린 여성과 그 어린 여성을 이용해 남성들을 갈취하는 포주 역할의 가쓰야의 이야기를 다룰 뿐이다. 마유가 당하는 성적 학대와 그런 마유를 관리하는 가쓰야의 내면의 갈등이 담담하게 그려질 뿐이다. 초반에는 너무 잔혹한 성적인 표현으로 인해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가쓰야는 마약에 취해 동물처럼 사육당하는 마유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지만, 그 감정에 끌려다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 역시 히가라는 남자에게 학대를 당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쓰야와 마유가 어렸을 때부터 당했던 폭력과 학대가 드러난다. 가쓰야는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선배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당하고 돈을 갈취당한다. 그리고 그 조직 위에 '히가'가 있었다. 히가는 특히 가쓰야에게 집중적으로 잔혹한 폭력을 행하고, 가쓰야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도 못 하고 하가의 폭력을 당해야 했다. 결국에는 히가의 심부름꾼이 되어 돈을 갈취해서 상납하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가쓰야는 동급생들에게도 배척을 당하게 된다. 마유가 당하는 폭력은 더 끔찍했다. 같은 여중생들에게 끌려다니며 성적인 학대까지 당하다가 결국 가쓰야에게 끌려와 마약에 중독되어 성적으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가쓰야와 마유에게 히가는 어릴 때 당한 폭력으로 인해 극한 트라우마를 느끼는 존재였다. 그러기에 그가 행하는 잔혹하고 끔찍한 폭력에도 소심한 반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벌벌 떨며 순응을 한다.
"그 후 3개월 동안 심호흡을 할 때마다 늑골이 아파 운동도 할 수 없었다. 뼈에 금이 간 것 같았지만, 폭력을 당한 사실을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꼭꼭 숨기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가쓰야는 그때 자신이 피하지 않았아도 히가가 정말로 얼굴에 돌을 떨어드렸을지 생각했다. 히가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이후 그와 계속 만나면서 그렇게 확신했다. 첫 대면에서부터 깊이 각인된 히가에 대한 공포심은 가쓰야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P 64)
소설 중반이 갈수록 가쓰야와 마유가 당하는 폭력과 함께 오키나와가 미군에게 당하는 폭력이 묘사된다. 미군 기지를 통해 생활을 이어가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에게 순응적이다. 미군이 어린 여자아이들을 강간하고 살해해도 그것에 데모만 할 뿐이지 격렬히 저항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유의 모습이 중첩이 된다.
"육교에서 바라보니 적어도 1000명은 넘어 보이는 데모대와 비교해 경찰의 기동대와 제복 경관은 다 해도 100명 정도뿐이다. 그런데도 데모대는 어디까지나 얌전하게 도로 끝을 따라 행진하고 있다. 잘 보니 빠른 걸음으로 육교 아래를 지나가는 데모대 안에는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분노를 표출하기는 하지만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기지의 철조망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온통 둘러쳐져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지를 철거해라, 범인인 미군 병사를 넘기라고 외치는 구호를 듣고 있자니 짜놓은 대본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여름 해변가에서 강제로 위를 보고 눕혀져 미군 병사 3명에게 팔 다리를 제압당한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얼굴 전체를 거의 뒤덮을 정도로 검고 커다란 손으로 입을 틀어 막힌 소녀의 눈이 공원에서 가쓰야를 보고 있던 소학생 시절 누나의 눈으로 바뀌었다. 온몸에 땀이 쏟았다. 부릅뜬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가쓰야의 가슴을 도려냈다. 응시하는 눈은 어느새 마유의 눈으로 바뀐다. 몸 깊숙한 곳에 비틀어 박힌 돌의 감촉에 가쓰야는 숨을 깊이 내뱉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P 114)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히가의 폭력은 더 잔혹해지고, 가쓰야와 마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그럼에도 가쓰야는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하기의 폭력을 그대로 감당한다. 이 정도이면 폭발할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 끔찍한 폭력과 학대에도 가쓰야는 빨리 그 폭력이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 사소한 반항 한 번 못해 본다. 폭발한 것은 가쓰야가 아니라 마유이다. 마유의 반항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들은 히가에게서 해방 아닌 해방을 맛본다.
이 소설의 제목인 '무지개 새'는 오키나와 전설에서 오키나와 숲속에 살고 있는 새라고 한다. 베트남 전이 한창일 때 미군들이 오키나와 숲속에서 극한 훈련을 하다가 무지개새를 만나면 그는 베트남에서 살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자신은 살아나오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가쓰야는 중학교 때 오키나와 숲을 여행하면서 무지개 새를 만나기를 빌었다. 자신이 하기의 폭력에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하기의 폭력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또 어떤 피해를 입을지 두려워 그 폭력에 묵묵히 순응해 갔다.
폭력이 무서운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폭력을 당하는 사람의 인격과 내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경험한 폭력은 가해자에 대한 공포와 함께 폭력에 대해 무기력하게 순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가쓰야나 마유가 당한 폭력을 통해 오키나와가 일본과 미국에 당하고 있는 폭력을 묘사한다. 그리고 폭력 앞에 무기력한 가쓰야와 마유의 모습을 통해 오키나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하기에, 두렵기에 잔혹한 폭력 앞에서도 순응하는 모습을 잔혹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런 모습을 떨쳐 버리고 일어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시끄러운 학교 폭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학교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얼마나 한 아이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해 방관하고 있는 우리 사회와 그 폭력에 대한 처벌에 너무나도 소심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어려서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그 폭력과 함께 철저하게 인격이 파괴되어 폭력 앞에 길들여지게 된다. 반대로 어려서 폭력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 아이들은 커서도 그 폭력을 이용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게 된다. 이것이 폭력 앞에 우리가 단호해져야 할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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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 날 이후에도 손님을 받으러 외출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잠만 잤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여자도 도망칠 염려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에 있던 두 여자도 히가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아서인지 도망칠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방에 있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고 일어나서도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거의 없었으며 스스로 나서서 하는 일이라고는 화장실에 가는 정도였다. - p.15
참 난감한 소설을 만났다. 분명, 폭력이 난무한 묘사가 가득한데, 이 소설을 욕해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그리고 내용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는…… 그래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2. "나중에 학교로 연락할 테니 기디려." 차키를 끼려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이든 들을 테니 학교에는 알리지 마세요." 남자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이상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쓰야를 바라보는 눈은 겁먹은 개와 똑같았다. 가쓰야는 고개를 돌리고서 엷은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모두 형씨 하기 나름이지." "잘 알겠어요. 부탁드립니다." 가쓰야는 남자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집 전화번호가 뭐야?" 한순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남자는 열자리 번호를 말했다. 명함에 적힌 번호와 대조해 일치하는지 확인한 가쓰야는 이제 그만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남자가 손을 떨며 좀처럼 차키를 끼지 못하자 가쓰야는 코웃음을 쳤다. 남자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출입구 벽돌을 긁었다 - pp.40~41
분명 나와는 맞지 않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폭력을 행한 당사자가 주인공인데, 결말도 뭔가 불만스럽다. 해설에는 학교폭력을 당한 당사자에 의한 복수극 정도로 표현된 듯 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복수극이라고 보기에도 좀 무리도 있고. 뭐, 내가 지금 읽고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얘기를 못하겠으나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문제가 있다는? 뭐, 그런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뭔 문제냐고? 그냥, 문제의식!
3. 만약 지금 내가 무지개 새를 직접 본다면 어떻게 될까? 돌아가는 길에 버스 사고가 나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게 될까? 좁은 산 정상에서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신록을 보고 찬탄하는 학생들과 두 선생님을 바라보며 가쓰야는 생각했다. 밀림에서 날아오른 무지개 새가 푸른 하늘에 커다란 반원을 그린다. 그건 상상에 불과했다. 무지개 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령 이 숲 어딘가에 정말로 무지개 새가 존재하더라도 내 눈에 보일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순식간에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 p.168
내가 지금 줄거리를 얘기하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뭔 줄거린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평단 리뷰가 이렇게 무성의해도 되냐고? 뭐, 한두번 이러는 것도 아닌데 뭘! 줄거리를 얘기하는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보다는 느낀 점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무지개 새라는 게 있나? 어딘가에 존재할 듯 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깊은 의식에 파고들어 정신들을 송두리째 갉아먹는. 그래서 나도 요즘 고민이다. 내 정신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이놈의 정신이 무엇인지. 무지개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새가 되는 걸까? 한번쯤은 제목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새겨보면 좋을 듯 싶다. 물론, 제목이 주는 의미에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
4. 한밤 숲속에 나체의 마유가 서 있다. 이슬에 젖은 나무와 풀잎, 부엽토, 숲에사는 생물들, 그 모든 것이 발하는 냄새가 숲의 냉기에 정화돼 마유를 감쌌다. 흰색 몸이 함초롬이 젖어 있다. 딱딱한 시가 갈라져 새싹이 싹트듯 화상 입은 상처가 사라지고 새로운 피부가 돋아난다. 청색이나 녹색, 깃털로 장식된 심홍색 얼굴. 금색 홍채와 칠흑의 눈동자가 한밤의 숲을 바라보고 있다. 날카로운 부리를 열고 새가 우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이 마유의 몸을 비추고 천천히 올라가는 좌우 팔의 움직임에 맞춰 어깨뼈 위에 날개가 홰를 치기 시직한다. 날개 치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마유의 등을 떠난 새가 일곱 색 빛을 발하며 한밤의 숲을 날아오른다. 마유의 뒤에 서서 무지개 새를 올려다보고 있는 가쓰야의 등 뒤로 숲의 어둠보다 더 깊은 그림자가 접근해 온다. 목에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닿은 감촉에 가쓰야는 눈을 감았다.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 몸 깊숙한 곳에서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백미러에 비친 마유의 잠든 모습은 아름다웠다. 액셀을 더욱 세게 밟으며 가쓰야는 얀바루 숲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염원했다. - p.231
다시 읽으면 이 모든 비유가 갖는 의미를 파악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 솟아나는 새로운 의미들에 감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지개 새를 처음 읽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럽고 문장들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아 그래서 슬프다~ 무지개 새를 저 멀리 날려버려야만 할까~ 아니면 나만의 무지개 새를 간직한 채, 새록새록 의미의 깨달음에 도전해야만 할까.
문득, 나에게 있는 무지개는 어떤 색깔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혹시 흑빛으로 변해 버린 무지개를 마치 7색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지개 새가 그런 나에게 꺠달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새롭게 솟아나는 삶에다 희망을 부여하기보다는 조금은 불안한 삶의 도전에 무게를 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 이 리뷰는 아시아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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