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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작가의 책을 나름 꽤 읽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그리고 이번에 <밤의 공항에서>를 읽었다.
각각의 책들이 특색이 있고 나름 주제가 있다. 그럼에도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다보면 보이는 게 있다.
최갑수 작가도 그렇다.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는 그만의 글 꼬리표다. 그것은 최갑수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대가 너무 쉽게 읽혀 다음 책이 나왔을 때 고민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의 책에는 아름다운 글들이 많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름답다와 상대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현실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글, 삶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꿈을 꾸고 비전을 가지는 낙관론보다는, 삶이란 원래 그래, 라고 하는 시니컬하고 심드렁한 관조형 글들도 많다.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고통에 점점 무뎌져 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때로는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어리광도 부려봤지만, 인생이 뭐 그런 걸 들어줄 정도로 만만한 녀석은 아니잖아요." (28쪽)
"스쳐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존재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어. 그냥 고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지 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하루하루 이렇게 저물고 우린 그 시간 속에 조용히 서 있다 어느 날 사라지는 거죠. 네, 그런 겁니다." (60쪽)
참 맥 빠지는 글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우슈비츠에 끔찍한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로고테라피 이론을 만든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요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관심하게 내팽개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치유를 받는다. 삶을 회복하고 그래, 하며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이 점이 바로 최갑수 작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면서 강점이다.
대부분 저자의 책은 이 두 관점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교차하며 편직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그가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 깔린다. 피사체는 사람이 많은데 참 잘 찍었다.
저런 심드렁한 글 옆에는 이렇게 예쁜 사진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편집이 바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비장무기다.
그는 처음부터 전문 여행작가는 아니었는데, 어찌하다 여행작가가 되었고, 지금은 그 삶을 사랑한다.
고독을 즐기고,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이 일이 되었을 때, 가기 싫은 곳을 가야할 때 그는 싫은 티를 낸다. 그리고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하는 일은 즐겁지 않다고 토로한다.
책 제목이 왜 <밤의 공항>일까, 하고 생각을 했다.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공항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딱 세 번 공항엘 가봤다. 결혼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갈 때 한 번, 그리고 회사에서 12일 동안 연수겸 유럽에 갔을 때 한 번, 그리고 일본에 업무차 혼자 출장을 갔을 때. 그래서 나는 밤 공항에 대한 추억이 없다.
밤의 공항,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책 표지와 함께 제목을 읽으며, 처음에는 밤의 공항이 다소 낭만적인 단어,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밤의 공항은 슬프고 외롭고 피곤한 공간이라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말은 밤의 공항이다." (80쪽)
저자는 자신이 던진 저 문장에 대해 더 이상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밤의 공항에서 할 일은 아침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침대도 없다. 따뜻한 커피도 없을 것이다. 피곤과 피로만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행의 환상, 여행의 낭만, 여행 작가에 대한 부러움따위는 모두 던져버리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짐을 싸고, 떠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따위는 해외여행을 즐긴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관문일 것이다.
저자는 여행의 피곤함, 여행 취재의 힘듦을 여러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말한다. (사실 이제 알겠으니까 그 말은 다른 책에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나는 프로페셔널 여행작가인데, 이 직업은 1년 내내 여행과 사진과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밥을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여행 콘텐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17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의 공항을 생각하노라면 지나치게 슬프다. 밤의 공항에서 홀로 가방을 껴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저자를 생각한다.
이 책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사진,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뼈때리는 교훈 같은 글들 속에서
저자는 여전히 고독하다. 어쩌면 이 책을 쓸 즈음에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그 사람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진다.
"다시 사진을 보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연민하고 있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쓰다듬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지금은 아무 상관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쉽지는 않다.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여전히 달콤하게 이 우주 속을 떠다니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끝까지 아름다울 것이고 나는 여행할 것이다. 아직 나에겐 많은 풍경이 남아있다." (311쪽. 책 마지막 문장)
저자는 아직 많은 풍경이 남아있다고, 호기롭게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풍경이 모두 빛바래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러니 얼른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가라고. 그를 붙잡으라고.
"결국 공항이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 나는 서 있다. 쓰고, 읽고, 떠나는 일이 내겐 다 참고 견디는 방식이다. 여행은 생을 잊는 가장 쉬운 방법, 나는 무심한 세계에 있고 싶다. 카페와 호텔을 전전하는 삶이고 싶다." (291쪽)
그러지 마라. 결국 밤의 공항이 아니길 빈다. 참고 견디기 위해, 잊기 위해 선택한 가장 쉬운 방법, 당신에게 여행인 그 방법을, 무심하게 살고 싶은 그 마음을, 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씩 양보해보길 권한다.
당신은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 여행도 끝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소유한 것이라고 생각한 풍경은 곧 빛이 바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랑, 그 아름다움도 같이 쇠락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그대여. 풍경은 이 책으로 남겨두고, 얼른 사랑을 향해 달려가길.
밤의 공항에서, 아침이 밝거든, 주저하지말고 달려나가 햇살을 맞이하길.
그의 책은 여행작가의 여행에세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행지에서 일어난 일을 재미나게, 아름답게 설명하는 글들은 별로 없다. 여행보다는 저자의 생각, 저자의 의식의 흐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고독과 삶과 이별과 사랑에 대한 일기, 화보집에 가깝다.
"세상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적당히 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적당한 것들은 딱 적당한 수준에만 그치게 된다. 지금에야 뒤돌아보니 너무 쉽게 타협한 것이 아닌가. 더 고집을 부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보냈던 시간들이다." (119쪽)
나는 당신의 사랑을 믿는다.
"당신의 잠든 등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가서 뼈처럼 눕고 싶었다.
거긴 따뜻할 것이고
당신의 숨소리로 고요할 것이고
한숨 자고 나오면 모든 일이
먼 옛날의 지나간 파도처럼 여겨질 테니."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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