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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이수호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노소년이 오늘을 살아가는 특별한 방식 배움은 정말 중요하고 그러므로 때에 맞아야 한다. 그리고 그침이 없어야 한다. 일흔 즈음 내 주변을 돌아봐도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마하는 분들이 늘 건강하다. 열정과 정신적 건강이 바로 이런한 배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p48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항상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 악기를 배우고 어학 공부를 하면서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부지런히 시간 관리를 하는 분들을 보면 그 열정과 집중하는 모습에서 배우는 바가 크다. 예전에 태교로 배웠던 홈패션 수업에서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손녀 옷을 손수 지어주고 싶다며 열심히 재봉을 하면서 수업을 빠지지 않고 오셔서 아주 꼼꼼히 멋스러운 결과물들을 완성하셨다. 같이 수업을 듣는 젊은 사람들과도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소통할 줄 알며, 할머니의 포근하고 인자한 배려와 겸손한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영어 공부도 한다면서 눈이 침침해 책을 보는 것에 애를 먹지만 참 재미나다며 꽤 신나하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배움의 열정을 그 분에게서 소탈하면서도 성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에서 배웠었다. 나이 들어 뭔가 배움에 지치지 않는 나이고 싶다. 돌아보면 부끄러움뿐이다.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조금은 있으나 부끄러움이 너무나 커 다른 것들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다. 누구와 말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봐도 내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되거나 용기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듣는 것조차 서툰데 무슨 쓸모 있는 말을 되돌려 주겠는가? 같이 어딜 가거나 함께 있는 것도 그렇다. 무슨 연륜의 은근한 향기라도 있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힘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염려와 부담이 될 뿐이다./p202 나역시 살아가면서 좋은 쉼터가 되어줄 그릇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란 생각이 든다. 미숙하고 내 부끄러움에 오히려 더 딴짓을 할 때가 많다. 시선을 돌려 회피하다가도 걸리는 것이 이 부분이다.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나란 사람이 누군가에게 숨 돌릴 좋은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걸까. 말이나 행동에 부끄러울 때가 많다. 특별히 신경을 써주진 못하지만 내가 해먹는 음식에 양을 좀 더 많이 해서 나눠 먹는 음식으로 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쉽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차린 반찬이 많진 않아도 와서 함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들 속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 받게 되면 좋겠다. 나이들면 지금보다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직도 멀었구나란 생각을 한참동안 한다. 꾸미지 않아도 멋짐으로 승부할 필요도 없는 소탈한 삶의 이야기가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많다. 가장 진솔하게 삶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글을 보며 살아갈수록 더 깊고 성숙한 향이 느껴진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고, 그런 삶을 사는 노인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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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년(老少年)이 바라본 세상…꼰대 탈출하기 [서평]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이수호 글, 최연택 그림, 걷는사람, 2019.4.16.)
자칭 ‘노소년(老少年)’의 에세이집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이 있다. 이를 읽으며 나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우선 책의 첫인상은 글이 너무 작고 빽빽하며 용지 위쪽으로 글자가 몰려있었다. ‘혹 잘못 찍힌 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꼰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들면서 고집 부리거나 독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60이면 모든 걸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며, 70이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으리라. 뭐 그렇게 살도록 하리라.” 저자는 나이 들면서 생기는 진중함이 노회함으로 나타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함이란 기본적으로 늙음을 내세워 자신과 남을 속이려는 속성이 있다. 늙음의 잘못된 발현인 것이다.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은 가난했다. 혼자 책을 읽거나 공책에 뭘 베껴 쓰기를 좋아한 저자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이 좋아 따로 공책에 교과서의 시와 새로 만나는 좋은 시를 옮겨서, 자신만의 시집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혼자 읽곤 했다. 취미로는 꽃 키우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원예과에 가야지 했지만 국문과에 가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국어 교사가 됐다.
교사였던 저자는 한 시간을 일찍 나와 글을 썼다. 10여 년 동안 교사 노릇하면서 느낀 점을 쓰기도 하고 서울에 와서 야학하던 얘기에 교육운동을 시작하며 느낀 점 등 생각나는 대로 볼펜 가는 대로 썼다. 그렇게 여러 책을 썼다. 이번 에세이집은 특히 어버이 연합, 청소노동자, 구직자, 노회찬, 전태일과 같이 한국의 현대사를 일기 형식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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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
일흔의 노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은 이렇다. “퇴근 시간 복잡한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가 나도 이제 일흔이니, 하며 임신 장애 노약자 자리에 엉덩이 들이미는데…. 하루 종일 얼마나 시달렸는지 지하철 손잡이에 알바생인지 구직잔지 한 청년의 삶의 지친 무게가 젖은 빨래처럼 걸쳐져 있다.”
“나도 이제는 음식이 나오면 맛있는 것부터 먹으리라 좋은 것 아끼고 남겨서 쌓아두거나 감춰둘 생각 접으리라.” 저자는 여전히 배움을 갈망한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봐도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마하는 분들이 늘 건강하다는 것에 자극을 받곤 한다. 저자는 늘 돌아보면 하루를 살았다. “내게는 오늘밖에 없다. 어제는 가버렸으니까 없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없다.” 몇 년 전 나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나의 모토에 담아 두었다. 남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신념인 것이다. 이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그렇다. 이는 저자의 책에서 본 말로 현실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다. 어떤 일을 당하든 어떤 경우든 저자는 그것을 가장 나에게 좋고 유리하도록 받아들이고 해석하고자 했다. 그래야 새로 출발한 의지와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은 청춘의 마음을 지닌, 그러나 많은 세월을 겪은 이의 눈으로 본 삶의 모습이 담긴 아련한 일기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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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SNS나 다른 매체에 썼던 글을 다듬어 모아 둔 것이다. 책으로 나오니 나 같은 사람도 읽어볼 수 있어서 좋다. 제목인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를 처음 봤을 때는 앞으로의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는 의미로 생각했는데 책을 다 보고 나서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인 오늘을 잘 살아가야겠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나는 올 초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일 투성이었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고 그 일들을 해내지 못한 마음 안에서는 앙금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 찌꺼기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어차피 못할 거 뭐 하러 계획을 세우고, 어차피 시도도 안 할 거 왜 생각하냐며 나를 채근하고 닦달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들을 하면 뭐 하고, 안 하면 뭐 하냐는 거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은 거고, 안 하거나 못하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안 하 거다. 어떤 감정이 들어갈 필요 없이 그저 못했다는 사실만 있는 거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의 책임을 오롯이 내가 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거다. 그동안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남 핑계 환경 탓만 줄곧 했었다. 다들 하는 쉬운 일을 나는 못하고 있으니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만 같았다. 안 하는 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은 남에게 지운 셈이다. 다행히 책임도 내가 진다는 이치를 이제라도 갖게 돼서 천만다행이다 싶다. 그렇지만 너무 안일하게 굳이 안 해도 된다고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저자는 말한다. 하루하루가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달라지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무엇을 탓하는 의미 없는 일을 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하루를 살아내라고 말이다. 저자가 좋아한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나도 좋아졌다. 삶은 하루하루가 이어져서 나아가는 것인데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힘든 하루가 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루를 축복하며 더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의 오늘, 오, 멋진 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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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너희들의 젊음이 너희들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오늘날 우리들의 나이듦이 우리들의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한 7~8년전쯤 보았던 영화 [은교]속에 나오는 남주 박해진의 대사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나이 많음은 약점이 되었다. 오랜 경험치에서 묻어나는 선배들의 지혜를 충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나이듦의 오만함으로 치부되는 꼰대들의 잔소리로 받아들인다. "꼰대"는 본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부르는 은어라 한다. 나는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은 아니지만 선생질을 하는 강사이니깐 그리고 아주 가끔은 "우리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가끔 하니깐 꼰대 오브 꼰대임이 틀림없다. 꼰대 인정.
한동안 나이 듦_늙음을 거부하였다. 뭐,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되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모른척하였다.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현상. 남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오판하고 나이 듦을 실패처럼 생각하지 말자.
나도 마흔 일곱의 오기가 아니라 마흔 일곱의 책임으로 오늘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동안 잘 살아왔던 어제의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바로 그날! 언제나 오늘! 내 인생의 오늘! 멋진 오늘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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