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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과 똥파리! 영화 혹은 연기자, 그리고 사랑 혹은 폭력, 영화와 삼에 대한 이야기. 영화감독이라는 직업 그 속에서 연기자ㅇ의 생활 속에서 직접 겪은 영화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인생과 접점에 있던 인생 같은 영화이야기가 전개된다. 인터뷰집이라는 책의 형식에 걸맞게 지승호는 인터뷰의 질문을 맛깔스럽게 뽑아낸다. 양익준이 바라보는 폭력에 댜한 생각, 즉 그가 똥파리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폭력 그 폭력의 실체와 그 분노의 근원인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지 못한 나였기에 대략의 줄거리를 접하고, 예고편을 통해서 영호의 흐름과 감을 잡으려 하였다. 물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언젠가는 볼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복잡함을 떠나서 양익준의 분노와 폭력에 대한 생각은 남다르다. 극한 상황에 폭력을 접하는 계에 있어서 버릴 수 없는 굴레, 가족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서도 이 분노의 근원을 잡아내며, 자시이 생각하는 분노의 표줄 즉 폭력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양익준은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이 일반인과 남달랐읆을 생각할 때 그가 그린 폭력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배려가 없는 사회 특히 그가 가진 분노의 근원은 아버지와 이 시대의 권력자 아저씨들에 대한 생각이 아닌가 한다. 그 들도 역시 폭력의 피해자임을 생각할 때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그 속에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고민이 더 큰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나라 애비들은 참 좆같애. 밖에선 병신들 같은데 집에서는 아주 김일성 같이 굴라고 그래, 이 씨발놈들이, 니가 김일성이냐, 씨발놈아!” (51쪽) 사실 양익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에 그의 생은 소설 혹은 꾸며 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일념 하나 즐거운 일을 찾아 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영화와 연기는 그의 인생관이 영화와 접목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기를 잘하게끔 만들어 주는 스태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촬영장 분위기를 눈물이 나는 장면이면 눈물이 날 수 있도록, 억울한 심정이면 억울함을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연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연기를 잘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그의 감정을 잘 글어낼 수 있는 감독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좀 확대 해석을 한다면 한 연기자의 모습은 내가 되고 사회적 그리고 동질적 집단의 공조는 어쩌면 나의 행동과 생각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나리오, 감독, 연기자의 역할을 모두 행해야 하는 양익준의 생각은 그가 연기할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 같이 연기하는 사람이 자신의 시나리오 속의 숨겨진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감각적 환경을 만들어 놓고, 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라는 생각인 듯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환경에서 일탈된 한 사람의 행동 역시 그가 처한 환경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많은 감독이 있고, 흥행감독도 있고, 양익준처럼 독립영화와 같은 곳에서 저예산 영화로 다른 사람의 감성을 끌어내는 사람도 있다. 흥행성이라는 영화가 가진 상업적 속성을 버리진 못하더라도 아마 양익준은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영역을 연기할 것이며 자신만의 감성을 끌어낼 환경을 만들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지 못하고 이렇게 그의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많이 어리석음이 있음을 알기에 빠른 시일 안에 그의 영화를 접해야 할 것 같다. 제목 “똥파리” 작품과 사람이든, 사람과 사람이든 뭔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이 정돈되면 자연스럽게 되겠죠. 다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세상일이란 것이 인위적으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어요. 인위성이 가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운명이나 시즌이 있는 거죠. (19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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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파리>를 본 것이 언제던가. 영화 <똥파리>는 생각했던 것 만큼 폭력적이였고, 생각했던 것 만큼 처참했고,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양익준이란 사람이 괜찮은 배우, 감독으로 남았다는 것과 아프게 기억되는 몇몇 장면외에는 영화의 줄거리조차 벌써 가물가물해져 버렸는데, 참 오래도 울궈먹는 다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솔직한가. 양익준 스스로도 말하고 있다. 영화 <똥파리> 이후 인터뷰를 천번쯤 했던 것 같다고. 인터뷰를 천번쯤 하다보니 자신이 한말이라도 사실인지, 진심인지 모르게 되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변조된 인터뷰 글을 읽은 자신이, 다음 인터뷰에서 앞서 변조된 내용을 인용하고 있더라고. 결국 자신이 인터뷰에 중독되더라고.
영화가 상영되던 2009년 당시와 2012년 책에서 만난 양익준은 외모 면에서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2009년의 양익준이 투박하고, 모질며,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던 상훈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2012년 인터뷰집 속의 양익준은 표현은 다소 거칠지만, 자신이 해야할 말을 다듬어 할 줄 아는 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솔직함을 장점으로, 상업성 짙은 배우가 아님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더라도.
인터뷰를 읽다보니 <똥파리>로 양익준을 울궈먹고 있는 것은 정작 양익준이 아닌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강렬했던 영화 <똥파리>의 기억으로 이 책을 선택했으니까. 좋으면 하고, 아니면 아닌 거라고 생각한다는 양익준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사람이다. 인기에도, 돈에도, 걸리지 않으며 그렇게 자신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우리'가 배우 양익준에게 혹은 감독 양익준에게 우리에게 익숙한 역할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해 솔직하고, 사랑에 대해 솔직하며,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솔직한 양익준이 이제 그만 영화 <똥파리>로 부터 자유로워져 새로운 장면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도약하는 날개짓이되던, 그렇지 못하던, 인간 양익준의 아픔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영화 <똥파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라면, 포장되지 않은 그의 진정성을 들여다 보았던 사람이라면, 여전히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어는 거울과 같다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양익준의 이야기를 거울처럼 비추며 반사해 이야기를 끌고가는 재주를 이번 인터뷰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한때 인터뷰어들의 이런 재주를 자신의 주관을 그때그때 포장하는 매우 간사한 일이라고 비하해 생각한 일이 있는데, 새삼 반성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의 목적은 어떻든 인터뷰이들로 부터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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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문을 듣고 보게 된 영화 <똥파리>.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극장에 갔다가 영화 시작과 함께 뒤통수를 가격 당했다. 무차별 폭력과 파괴된 가족 구성원. <똥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쌍욕은 물론 폭력적인 장면이 수두록했다. 더 잔인하고 더 폭력적인 영화를 많이 접했지만 특히 이 영화가 기억에 남은 건, 무엇보다 '공감'되기 때문이 아닐까?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폭력성에 흥분하는 나를 발견하며 떨어야 했다. 뭐가 뭔지 기억속에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갔다. 두 번째 봤을 때는 주인공들을 유심히 살피며 봤고 세 번째는 영화 전체 흐름을 봤다. 세 번째 보게 되니 양익준 감독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의 분노는 연기가 맞는 것일까?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는 양익준 감독의 인터뷰집이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양익준 감독이 답하는.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 하나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국제적인 상도 받았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로 책까지 나오기에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조심스레 내다봤지만 나의 예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똥파리>로 나름 성공하긴 했지만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영화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영화같았다. 순탄치 않았던 가정환경과 가난, 그리고 방황. 그의 청춘은 어쩌면 겨울에 치는 파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군대를 마치고 연기를 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가 미친듯이 빠져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것도 어쩌면 하늘이 도운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 때 단편 몇 편을 찍고 연출도 하며 영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리곤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찍기로 결심. <똥파리> 시나리오도 직접 쓴다. 2년여 연출, 제작, 주연을 맡아 진행하는데 닥치는 문제들. 하지만 그에겐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남들과 달리 '무식한데 열정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한 번 꽂히면 죽을 때까지 밀고나가는 인간이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했던 양익준 감독. 드디어 영화를 완성하고 세상을 향해 '배설'한다. 하고 싶은 얘기를 그는 영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똥파리>는 한국 사회를 향한 반항심을 담은 영화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의 세상을 향한 '좆까'는 성공 조짐을 보이며 개봉관을 야금야금 늘려가더니 13만 명 정도 영화를 관람했다. 독립영화로 돌풍을 일으키는데 일조하며 <워낭소리>와 함께 당시 영화계의 화두가 됐다. <워낭소리>와 달리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관객 동원이 다소 떨어졌으나 그만큼 영화는 급속도로 퍼져만 갔고 양익준 감독은 유명해졌다. 유명세 탓인지 양익준 감독은 그 후 어떤 작품도 끌리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그의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만든 <똥파리>처럼 자신의 욕망이 끌리는 작품이 있을 때, 다시 영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지금은 잠시 몸과 마음을 충전 중이라 한다. 어느 정도 인기가 있을 때 몸값을 올리며 여러 작품에 출현하는 이런저런 배우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만의 철학이 있다고나 할까? 남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출실한 사람. 양익준 감독은 그정도로 배짱이 두둑했다. 하긴 <똥파리> 주연 상훈의 역할을 누가 소화하겠는가?^^
인간 양익준, 감독 양익준, 배우 양익준, 연출자 양익준. 우리가 알고 있는 양익준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양익준 감독이 언제 다시 영화 작업을 시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 기다릴 것이며 언제든 응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양익준에 단단히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양익준 감독답게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도 화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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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도 영화 '똥파리'를 보지 않았습니다. 웬지 그 영화는 불편한 느낌을 줄 것 같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 한 장르로서 액션물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아예 안 보는 편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액션 장르입니다. 그런데, 블록버스터의 폭력은 그 강도가 세긴 하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인 같아서 보는 순간이나 보고 나서나 별 다른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는 않지만, 한국 영화에서 나오는 폭력은 너무나 현실적(묘사가 잔인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이라 보고 나서 너무 불편했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현실에서 만연한 폭력에 대해 눈을 감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인터뷰 작가로 유명한 '지승호'씨가 영화 '똥파리'를 만든 '양익준'감독을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영화 '똥파리'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처음으로 만든 단 한 편의 장편 영화로 수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끌어낸 양익준 감독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에 자기의 삶과 경험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다고 말 합니다. '똥파리'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세상의 폭력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가정 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이 너무 심해서, 주먹이 오고 가는 폭력까지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어떤 위안을 얻거나 가정의 아늑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흉가'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 놓습니다. 점점 집을 멀리하게 된 그는 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본드 흡입까지 경험합니다. 숱하게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마치 불량학생의 표본과도 같은 시절을 보냅니다.
상고를 졸업하고 군대가지 전까지 그는 완구를 파는 영업사원 노릇도 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냉장고도 나르고 아현동 가구점에서 배달 일도 했고 공사판에서 일용 노동도 숱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배우가 되겠다는 열망을 키웠고, 열망의 깊이는 군 제대 후 지방의 전문대학에 입학하여 2년 내내 연극만 하다 보내면서 깊어집니다. 이후 수 많은 영화에서 단역을 전전하면서도 영화를 향한 열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단편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 작업도 하며 자기의 영화를 준비합니다.
책 속에서 양 감독은 말 합니다. "치부를 숨기고 겉으로 드러난 좋은 것들만 보여 주려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난 싫다. 두렵고 숨기고 싶지만 용기를 내어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영화 '똥파리'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꺼내 놓기는 불편한 그런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영화를 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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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
지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압박은 안 하세요? 양 부모님하고 몇 번 얘기해봤지만, 왜 결혼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익숙한 말씀만 반복하세요.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본인들이 조부모님께 들어왔던 습관화된 말만 되풀이하죠. 지금은 '사랑 안에서 결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넘어 '결혼 자체가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의식까지 뻗어나갔잖아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생존해야 되고, 대를 이어야 하는 환경하고는 다르죠. 한번은 부모님에게 잔인한 얘기를 했는데요. 화를 내면서 얘기한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얘기한 건데, 그 솔직함이 잔인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부모님이 행복했으면 자식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행복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전 그렇지 않았잖아요." 했는데 굉장한 충격을 받으셨죠. 직접적이긴 해도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87~88p.)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를 읽고 양익준 감독에 대해 한마로 말하자면 '솔직함'이라는 단어를 쓸 것이고, 몇 마디를 덧붙이자면, 날 것, 자연산, 꾸미지 않음,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등의 표현을 쓸 것이다. 그의 말대로 어쩔수 없이 잔인해지는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을 때도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경우, 말하자면 '어쩔수 없이 '너무' 잔인해지는 경우'라면 솔직함을 포기하는 편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솔직함을 포기하는 게 힘들다면 최소한 그걸 좀 미루는 쪽으로라도!
삶
지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뭘 공부하고, 어떤 경험을 쌓아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양 경험을 억지로 쌓을 수는 없어요. 자기가 살아온 것들이 자연스럽게 경험이 되는 거겠죠. 그런 부분에서 뭔가 모자라고 답답하고 아프고 화났던 경험이 많았던 사람, 뭔가 여러 가지 감정의 골들이 많았던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슬프게 살아야 되냐?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건 아니잖아요.(웃음) 굴곡들이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감정들이 크게 왔다 갔다 했다는 건데, 이때 발생한 어떤 요소들이 몸에 많이 쌓이죠. 한도 생기고, 절실한 것도 생기고.... 절실함 없이 이야기 구성만 하고 그냥 표현만 하다 보면, 자꾸만 아이디어나 소스에 매달리게 되겠죠. 충격적인 소스라든가 뭔가 겪지 않았던 새로운 소스들, 그런 소스가 오더라도 자기 삶에 대입해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해요. 독창적이어야 하죠. 그러니까 삶이 정말 중요해요.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영화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얘기하고 그러는데, 사실은 매번 하는 얘기지만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대화를 나눠야지만 영화 안에서도 할 얘기가 생겨요. 모든 이야기가 다 일상에서 얻는 소스인데, 모든 것이 일상에서 가져온 표현들인데 모두들 영화라는 것에만 너무 중독되어 있어요. 무슨 인생을 영화 안에서만 배워요? 열심히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인생도 영화도 배우는 거지.(221p.)
경험을 억지로 쌓을 수는 없다. 자기가 살아온 것들이 자연스럽게 경험이 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나 역시, 뭔가를 억지로 꾸미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쎈 편이구나, 느낀다.
무식함
양 (....)인터뷰어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세요? 지 그래도 비교적 확신을 가지고 온 편이죠. 막막할 때야 늘 있었지만 이상한 믿음이 있었어요.(웃음) 뭔가 씌어서 해온 것 같기도 하고. 양감독님도 그런 게 있었으니까 계속했을 텐데, 그 동력이 뭘까요? 양 무식함인 것 같아요. 아주 단순해요. 뭔가를 하는 와중에 의심을 품으면 힘들잖아요. 그런데 무식한데 열정까지 있는 놈들은 그냥 간다고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죠.(웃음) 무식하다는 말이 마냥 안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지 앞 뒤 재지 않는다는 얘기니까요. 양 천천히든, 뭐든 일단은 가는 친구들이죠. 소질이 없어도 계속하다 보면 소질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한동안 그 세계를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을 너무 빨리 해버려 가능성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133p.)
무식한데 열정까지 있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사람 유형, 요즘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 유형, 그래서 좀 더 반가운 사람, 양익준 감독 이야기..
독립
지 집에서 나와 혼자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들었어요. 양 집에서 독립한 건 제겐 중요한 일이었죠. 아마 독립하겠다고 말했을 때가 제 생애 최초로 부모님과 성인 대 성인으로 대화를 나눴던 순간인 것 같아요. 평상시 "엄마, 아빠" 이러던 아들이 "어머니, 아버지 좀 앉아보시죠." 하니까 이상했던 거지. 밥상에 둘러앉아서 물 한 잔씩만 올려놨어요. 아버지는 진지한 분위기에서는 술을 드시는데, 술을 하두 잔 주고받다 보면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잖아요. 집안에서 가족끼리 중요한 얘기를 하는 이 순간을 술이라든가 뭔가 다른 것들로 산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냉수만 한 잔씩 놓고 제가 독립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 같이 산 것 같습니다.(웃음) 이십 몇 년을 같이 살았고, 저는 독립을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나가서 살겠습니다!" 했죠. 그러니까 아버지가 "뭘 해서 벌어먹고 살 거냐" 하세요. 좀 당황해서 하신 말씀 같은데, 사실 딱히 어떻게 할진 몰랐지만 "저 하나 건사 못하겠어요? 돈은 없어도 됩니다. 친구네 집에서 같이 살 거니까요."라고 했죠. 그때 친구가 같이 살자고 얘길 했던 참이라 집에서 여윳돈도 안 받고 그냥 나왔죠.
지 어른이네요. 제 자식이 그렇게 나오면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요.(웃음) 양 제가 《인생기출문제집 2》라는 책에서 '부모님과 동등하게 얘기해본 적이 있나요'라는 주제로 얘기했는데요. 자식이 성인으로서 부모님하고 인생의 중대사에 대해서 얘기하는 자리가 한번쯤은 필요한 것 같아요. 일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좀더 확실한 자리를 만들어야 제대로 얘기가 진전되죠. <똥파리> 만드는 과정에서도 가족회의를 했다고 그랬잖아요. 아직도 아버지하고 어머니를 같이 만나면 버겁기는 하지만, 어느 한쪽을 개별적으로 따로 만날 때는 예전보다 훨씬 더 성인으로서 대화가 가능해진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부모님께 훈계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건 잘못된 겁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라고. 한번은 엄마한테 "내가 지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통화하는 것 자체도 힘들어요. 의미 없이 반복되는 전화는 하지 마세요." 하니까 삐쳐서 두 달 동안 전화도 안 하셨죠.(웃음)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로 엄마와 전화하면 좋더라고요. 싸울 때는 잘 싸우는 게 좋아요.
지 '잘 싸워서 문제를 풀어야겠다. 내가 힘든 것을 드러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생각이 가족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쳤나요? 양 그게 단초였죠. 사기꾼이라도 상대를 아예 완벽하게 속일 수 없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렇다면 내 안의 불만이나 불안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게 아니라 솔직해져야겠구나 생각했죠. 솔직하게 얘기하고, 싸워야 될 것 같으면 명확하고 건강하게 싸우는 것이 현명하죠. 어떻게 보면 <똥파리>도 결과 자체보다는 만드는 과정 안에서 어떻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느냐가 저한테 중요했던 것 같아요.(134~137p.)
양 사실 독립을 했다고는 하지만 부모님 지원이 없었다면 생계가 정말 더 막막했을 거예요. 집에 들를 때마다 엄마가 쥐어주던 돈이라든가, 아버지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거든요. 독립하고 1,2년 후인가 아버지가 저한테 카드를 주셨어요.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 달에 30만 원 정도씩 찾아 쓸 수 있게 해주셨어요. 제가 나중에 그걸 거부하긴 했지만, 고마운 일이었죠. 그리고 아버지가 영화 찍을 때 3,500만 원인가를 빌려주셨어요. 그렇게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니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영화에서 아버지를 그렇게 까고 욕을 날렸으니.(웃음) 아버지는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영화를 보러 오셨거든요. 일부러 가족영상축제라는 영화제에 모셨는데, 영화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영화를 보셨죠.
지 충격을 받으셨겠네요. 양 어느 정도 있으셨겠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이런 느낌은 아니었고, 뭐라고 말하기힘든 얼굴이었어요. 엄마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웃는 얼굴로 제 팔뚝을 때리면서 얘기하시더라고요. "야, 이 상놈의 새끼. 이런 걸 다 보여주면 어떻게 하냐."(웃음) (138~139p.)
독립. 이 단어도 점점 사라져가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부모 곁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스스로 '독립'을 해야 정말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텐데 말이다. 솔직하고 무식하고 열정적이고 독립한 인간, 양익준 감독 이야기.. 재미있다. 점점 더.
'그래도 절실하게, 미친듯이 만들면'
지 지금 한국에서는 스크린을 많이 걸지 않으면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알리기 힘든 상황이잖아요. 열 개 정도의 관을 잡기도 힘든데 대부분 교차 상영을 하거든요. 예술영화전용관은 다양한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없죠. 양 다른 얘기 같지만 절실하게, 미친 듯이 만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개별적인 시스템 안에서 만든 영화들이 CGV 무비꼴라쥬나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만 상여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절실하게 미친 듯이 만들면 관객들이 호응하게 되고, 그렇게 관객들이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면 일반 영화관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똥파리>같은 경우 많을 때 60~0군데까지 걸렸어요. <워낭소리>는 그 이상이었고요. 그리고 한국 안에서 잘 안 되었더라도 좋은 영화는 어디서든 가져가서 상영하고 싶어 해요. 그러려면 정말 영화가 좋아야죠. 한국에서 천만이 들었지만, 외국 가면 몇 만 명도 안 드는 경우들도 있어요. 저는 <똥파리>를 만들었던 비정상적인 시스템 자체에는 부정적입니다. 하지만 완성된 <똥파리>가 간 길은 굉장히 건강한 길이었다고 봐요. 국내에서 13만 명 가까이 봤는데, 상업영화권에서 봤을 때는 그게 관객이겠어요? 하지만 소규모로 만든 영화를 그만큼 본 건 의미가 크죠.
지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관객 만 명이 들면 만 명 기념파티를 하잖아요. 양 축하하고 응원하는 그 자체는 중요해요.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얘기하자면, 영화를 영화 자체로 인지해야 하는데 영화가 작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독립영화, 예술영화'라고 하나의 장르처럼 포지션닝하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영화는 영화인 거죠. 관객들도 어느새 교육이 되어버렸어요.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영화를 영화로서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수식이 있는, 뭔가 규정이 되어버린 거죠. 어쨌거나 뭔가 진심을 다하고 절실하게 만든 영화들은 모두가 갖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왜 다들 아이폰을 가지려고 하나요? 누가 미친 듯이 이상한 것을 만들어놨는데, 관객들이 처음에는 잘 모르겠지만 보니까 괜찮아, 좋아. 그러면 보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고요. 배급 같은 것이 용이하지 않아서 국내에서 흥행이 저조하더라도, 좋은 영화나 좋은 창작품은 인정받는 것 같아요. 단순한 말이지만, 세계가 너무 넓어요.
지 시야를 넓히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단 얘기죠? 양 <똥파리>도 60개 가까운 영화제에서 틀었잖아요. 그러면 영화제마다 두 번 정도씩은 상영을 하죠. 관객 수가 500명이라고 해봐요. 한 영화제에서 1,000명이 본단 말이죠. 60개 영화제를 가면 6만 명이 보는 거잖아요. 이미 그런 관객이 확보되는 거예요. 그리고 작지만 몇 군데에서 개봉이 될 수도 있단 말이죠. 또 배급이 되면 DVD가 만들어지잖아. 한국은 DVD가 만들어져봐야 의미가 없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계속 유통되면서 작품이 장기화된다고요. '작은 영화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가 아니라, '작은 영화가 어떻게 소개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에 모든 제작자가 500만, 1,000만을 바라니까 미친 거죠. 일본의 경우 인구가 1억 명이 넘는데, 200~300만 명 들면 성공한 거라고 해요. 1,000만 명 봤다고 자랑할 게 아닌 것 같아요. 한국은 일반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문화가 너무 협소하잖아요.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몇 가지나 있어요? 그러니까 정치에 관심을 돌리죠. 생계와 직결되어 있고, 삶과 직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지 여가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없으니까요. 양 제가 일본 추종자는 아니지만 일본만 가도 문화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스케이트보드도 엄청나게 타고, 서핑 인구도 엄청 많고, 걔네는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꼭 영화가 아니어도 되는 나라예요. 그런데 우리는 문화산업이 너무 발달하지 못하고 다양하지 못하다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영화 쪽으로 몰려요. 그건 신문처럼 얘끼하면 문화적인 기근 현상이죠. (웃음) 문화가 너무 없어요. 연애를 하더라도 뭘 할 게 없으니까 술 아니면 영화밖에 없잖아요. 5,000만 명 인구의 나라에서 그것도 성인으로만 따지면 3,500만 명 정도의 나라에서 한 영화를 1,000만 명이 본다는 건 이건 정말 매트릭스죠.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즐거움을 복제하고 있는 거예요. 한 작품을 대하는 의식 자체도 카피가 됩니다. 이제는 더 빠르게 규모에 휩쓸리고 자기의 주관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245~247p.)
솔직하고 무식하고 열정 넘치고 독립한데다가 절실하기까지! 그런 사람이 미친듯이 만든 영화 <똥파리>. 음.. 꼭 한 번 봐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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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똥파리> 시나리오를 쓸 때 야외에서, 대부분 이대 벤치에서 쓰셨지요? 양 오프닝 장면은 2006년 후쿠오카의 어느 호수 앞에 앉아서 썼어요. 전 그런 자연적인 공간이 시나리오 쓰기에 좋더라고요. 한적한 골목 있잖아요. 집 계단 이런 데 앉아서도 쓰고요. 뭔가 갇힌 공간에서는 잘 안 돼요. 기본적인 큰 소스나 시나리오 중간중간의 소스도 주로 길거리에서 발견하거든요. 예전에는 이유 없이 명동에 가서 사람 지나가는 것도 보고 그랬는데요. 그런 게 중요한 자산이 되는 거죠.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 많지 않아요. 그저 그러다 보니까 도움이 되는 거지. 관객들이나 평론가, 기자들이 "영화의 의도가 뭡니까"라고 묻는데, 사실은 잘 몰라요.(웃음) 저 같은 경우는 시작점에서 의도를 알고 쓰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완성하고 한참 후에야 제 마음의 의도를 알게 되죠.
지 연출도 짧게 공부하셨고, 글 쓰는 것도 정식으로 공부했다기보다는 느낌으로 써오신 걸 텐데요. 글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양 글쎄요. 글을 거의 써본 적이 없어요. 일기조차 안 쓰던 사람이었으니까. 초등학교 때 쓰던 소소한 일기 이후로는 아마도 첫 영화 시나리오 쓰던 때가 최초였던 것 같은데요?(218~219p.)
우와. 놀랍다. '글을 거의 써본 적이 없어요.' 라는 말을 듣게될 줄은.. 이 느낌, 생생하면서도 낯선 이 느낌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뭐냐 거시기 말 그대로 정말 '날 것'이기 때문에 온 것이었단 얘기로세! 올레~
솔직하고 무식하고 열정 넘치고 독립한데다가 절실하고 미친듯이 만들고, 소위 말하는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고, (좀 이상한 이유이긴 하지만 아무튼)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비껴간.. 아니 이런 말은 또 괜히 내가 넘겨짚는 건지도 몰라. 비껴갔다는 말 대신 거부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뭐 아무튼지간에! 남이 펼쳐놓은 판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자기 판을 짜면서 영화하는 이 사람, 양익준 감독의 다음 행보가 참으로 궁금하고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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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Cinema Party? 똥파리!
지승호, 양익준 지음 알마 언젠가 TV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신예 영화감독들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프로를 통해서 '양익준' 감독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잘 아는 줄 알고 덥썩 서평단 신청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책을 받아보니, 내 자신이 양익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잘 만들었다는 '똥파리'도 보지 못했고, 이미 여러 영화에 단여, 조연급으로 출연했다는데,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그저 낯이 익다는 것뿐!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영화 '똥파리'를 검색해서 영화의 내용과 양익준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양익준을 인터뷰하여 쓴 책인데, 인터뷰어인 지승호의 질문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양익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파악하고, 양익준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한 질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똥파리에 대해 살펴보자면,
그러나 당신을 울리는 이 남자 (똥파리) |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동료든 적이든 가리지 않고 욕하고 때리며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용역 깡패 상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상훈이지만, 그에게도 마음 속에 쉽게 떨쳐내지 못할 깊은 상처가 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남긴 슬픔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은 상훈. 자신에게 전혀 주눅들지 않고 대드는 깡 센 연희가 신기했던 그는 이후 연희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조금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15년 만에 출소하면서 상훈은 격한 감정에 휩싸이는데….
우리에게 보다는 외국에서 더 유명해진 감독이고, 그런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 참 묘하다. 나이가 지긋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평범하기 보다는 더 거칠고 막 산 것 같은 배경을 갖고 있고, 잘 생겼다기 보다는 평범하기에 가까운 사람이고, 끼가 넘친다기 보다는 조용해보이는 사람인데, 벌써 세상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제대로 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한다는 감독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설명이 술술 넘쳐나는 그는, 분명코, 똥파리를 넘어서는 진정한 삶을 그린 영화를 곧, 또 다시 선보이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양익준은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는 이야기와 정서 둘 다 좋으면 100퍼센트라고 말한다. 보통 시나리와의 지문은 어떤 행위에 대해서 쓰는데, 양익준은 작가로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감정 위주로 쓰는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감독으로서 스텝들을 선택할 때는 기술 좋고 짬밥 많은 스테프가 아니라 건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섭외한단다. 그나저나, 똥파리를 한 번 봐야할텐데...... 2012.7.14. 영화인의 세계를 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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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를 읽고 요즘 솔직히 영화를 통 보지 못하였다. 관심 부족도 물론 있지만 자천해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동료들과 함께 오래 만에 외국 영화 한 프로를 보았다. 모처럼 보아서 그런지 많은 감회가 있었다. 평소 가끔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고, 함께 시청하는 관객들의 분위기 등에서 역시 영화는 전문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끔은 좋은 영화는 보아야겠다는 마음속의 다짐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편의 좋은 영화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역시 감독과 주연이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준비하고 만드는 영화는 역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자신 솔직히 이 책을 대하기까지는 양익준 영화감독을 알지 못하였다. 더구나 대담을 진행한 지승호 님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두 분의 정열적인 활동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었고, 영화는 물론이고 그 밖의 폭넓은 내용까지 공부를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멋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자의 그리 길지 않은 생이었지만 자신만의 욕망을 표출하기까지의 결코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의 방황 속에서도 배우라는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과 성취, 배우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영화 작업을 하는 연출로 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들을 과감하게 돌파하는 용기를 통해서 멋진 결실로 만들어냈다. 영화만이 많은 관중들에게 줄 수 있는 멋진 자유와 치유의 힘임을 굳게 믿고 돌파해내는 의지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하여 만든 영화 <똥파리>는 자연스럽게 관심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워크숍을 개최할 정도로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의 60여 군데의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게 되고, 이 중 30여 군데의 영화제에 직접 참석해 스물네 개의 상을 받을 만큼 최고 작품이었다고 한다. 폭력 등 아직도 부조리한 사회 현상이 잔존하고 있는 이 세상에 분노로써 어퍼컷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힘차고 뜨거운 에너지가 물씬 느껴지는 감독과 주연, 연기자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일반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면 계속적으로 만들고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인데, 양감독은 그렇지가 않았다. 좀 쉬면서 삶을 좀 더 깊숙이 바라보며, 새로운 눈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하였다. 그래서 더욱 더 신선하면서 다음의 더 멋진 작품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모처럼 영화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보는 나름대로 멋진 최고의 시간이었기에 행복하였다.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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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긴 했었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였다. 입소문을 타고 있었고, 거의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던 인터뷰와 기사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도 이 영화의 평점은 과히 놀랄만했는데, 지금도 그렇더라. 9.22! 솔직히 이 평점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이 영화는 욕으로 시작해서, 계속 욕이 나오고...욕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폭력이 당연히 중요한 소재였다. 그래서 그 폭력도 계속 등장한다. 감독과 주연배우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았으므로. 감독님이 원래 배우였다고 한다. 출연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그 영화에서 배우로 출연한 이 분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똥파리’에서는 계속 나온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쭈욱. 마지막 장면에는 빠지지만. 영화에 대한 감상...시간이 조금 지났기에 희미해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단시간 안에 욕에 너무 많이 노출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스크린을 통해서 폭력의 순간을 많이 목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 무겁게 가라앉았던 그 기분을 얼핏 기억한다. 그랬던 그 영화 감독의 인터뷰 책이 나왔다. 책도 같은 제목이다. ‘똥파리’ 하지만 그 앞에 ‘let’s cinema party?‘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표지에 감독님의 사진도 있다. 똥파리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표정이다. 영화보다 어쩌면 이 책이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 ‘똥파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이 후에 감독이 들려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미래가 담겨있으니까. 배우로서는 어떤 시간들을 겪었으며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되었는지를 들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전까지도 기억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과 가정사에 대해서도 약간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최초의 폭력을 경험한 곳이 가정이라고 했었던가, 이 감독의 이야기였던걸로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영화의 어느 장면에는 본인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듯 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되게 되었고, 배우를 하다가 어쨌던 연출을 하게 되었는지, 연출 공부를 하는 과정을 어떠했는지.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어떤 배우를 꿈꾸는지, 어떤 영화를 지향하고 있는지...그런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인 듯 했다. 그 기간에 이 책에 나온 것이고. 감독 자신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이 책을 전부 읽고났을 때 이런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인터뷰어의 능력에 몹시 감탄했다고 해야하나. 이 책에는 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 편안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만화를 엄청 좋아하고, 배우이자 감독인 이 분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똥파리’만큼의 성공은 물론 힘들지 않을까? 그런 성공은 일생의 한 번이라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로또 1등이랑 비슷한 이미지랄까. 물론 로또 1등을 두 번! 이런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런 성공 말고,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이 감독의 영화에서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그가 연출하고 감독한 영화가 한 편, 또 한 편 쌓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다음에 그의 이력에서 ‘똥파리’가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기억되기를, 그보다 더 멋진 영화들이 먼저 떠올리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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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똥파리'라는 영화를 보았을때 나는 불쾌감을 느꼈다.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함지박으로 욕을 먹고 나온 기분이였고, 내가 내 돈을 내고 이러한 감정을 먹어야 한다는게 기분 나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의 감정을 그랬다. 점차 처음의 감정은 수그러지고, 영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다. 그리고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영화가 나온지 4년 가까이 되었고, 그 때의 기억은 흐려졌다. 하지만 인터뷰어 지승호씨와 영화감독 양익준의 인터뷰를 읽어나가면서 폭력에 대해서, 한국 영화판의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감독 양익준은 말한다. 이 세상에 폭력이 만연하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그 폭력에 적응되어 불감하고 있다고. 지나가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권력을 확인하고, 버스에서 발을 밟아도 사과를 하지않는 등 수 많은 폭력속에 있다. 그냥, 다 같은 사람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차별하고 구분지으면서 살아갈까? 이런 질문에서 감독 양익준은 '똥파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감독 양익준은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그러한 질문을 해소해 나간듯 보인다. 질문은 유연해졌고, 강렬한 질문에 그의 몸은 산화하여 한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고 말한다. 감독 그리고 배우로서의 강렬함이 영화에 그대로 느껴진 것이다. 그 당시 불쾌감의 근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책에는 감독 양익준으로서의 모습만이 아니라 자연인 양익준, 프로듀서 양익준, 배우 양익준으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영화 '똥파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 '양익준'의 모습까지 이해에 조금 다가갈 수 있다.어렸을 적 그가 느꼈던 폭력이라던가, 그가 어떻게 해서 영화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의 탁월한 질문에 쫄깃한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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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나는 이 책<똥파리> 영화를 본적은 없습니다. 인터뷰 전문 작가 지승호님이 양익준 감독을 인터뷰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영화를 보는 대신에 재미있는 그의 입담과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언제부터인지 폭력과 욕이 난무하는 주제로 하는 영화가 매우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흥행의 요소로 되고 있기에 <똥파리>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인 상훈의 가슴아픈 이야기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상황과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이 되는 듯하여 우리 사회가 반성을 해볼 수 있는 영화인 듯 합니다. 저 예산으로 영화감독들과 스텝들이 고전분투하고 있는 현실에 영화에 지망하는 수 많은 지망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양익준 감독과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봅니다. <똥파리>의 줄거리는 동료든 적이든 가리지 않고 욕하고 때리며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용역 깡패 상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상훈이지만, 그에게도 마음 속에 쉽게 떨쳐내지 못할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남긴 슬픔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은 상훈. 자신에게 전혀 주눅들지 않고 대드는 깡 센 연희가 신기했던 그는 이후 연희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조금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15년 만에 출소하면서 상훈은 격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자서전 적인 이 영화인 똥파리는 양익준 감독의 어릴적 이야기화 지금의 감독으로서 영화를 찍기위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억 오천여 만원으로 영화를 만들고 제작비가 모자랄 때 그의 전셋집을 빼서 영화를 완성했다고 하니 학창시절 학교는 거의 가지 않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거의 양아치 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해볼수 있는 그의 말은 거친 생활속에 얽힌 그의 가족사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상영하고 가족을 초대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때 오히려 더 슬픔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간의 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기자이고 연출가이기도 한 그가 배우들을 더욱 사랑하고 비록 금전적으로 여유있게 출연료를 주지 못하지만 그의 철학인 인본주의를 느끼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