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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페미니즘 미술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성 미술가들이 만든 작품을 살펴보면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며 남성 미술가들이 만든 작품 속에 담긴 차별과 성적 물화의 실제를 둘러본다. 성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 안에 내려와 있는지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다. 책에는 총 127점의 미술 작품이 실려 있다. 도판 상태가 좋아서 도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 물론 글을 함께 읽음으로써 그 만족감은 더 커진다. (책 표지의 그림은 마리 드니즈 빌레르의 ‘드로잉하는 젊은 여인의 초상’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그리는 여성, 내가 화가다’를 주제로 실제 작품 활동을 했던 여성 미술가들이 등장한다. 두 번째 부분은 ‘그려진 여성, 내가 주인공이다’ 주제로 미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이야기한다. 모두 아홉 장 중 첫 번째 부분에 다섯 장, 두 번째 부분에 네 장이 할당되었다.
첫 주제에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을 드러낸 여성 미술가들의 모습을 대하면 마음이 더워진다. 시선 처리 하나, 붓질 하나에서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소리 내며 남성들과 다른 관점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만날 때에는 감탄이 나온다. 여성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깊이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물론 글쓴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여성이 그렸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작품의 세부는 알지 못한 채 지나쳤을 게 대부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워 가는 거라고 믿는다. 같은 이야기 소재로 나온 작품의 표현 방식이 여성과 남성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여 설명하는 장면들이 몇 군데 나온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남성 화가들은 유디트의 벗은 몸을 강조하거나 죽임의 순간에도 여전히 나약한 표정을 짓는 유디트를 표현하지만 여성 화가들은 강인하고 결의에 찬 유디트를 드러낸다. 비너스를 그린 그림에서도 비너스가 두는 시선이나 자세가 여성과 남성의 그림에서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다만 다루는 미술가나 미술 작품들이 많아서 미술가들의 삶을 아주 깊이 있게 소개하지 못한다. 이런 점이 불만인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프리다 칼로나 케테 콜비츠 등의 경우에는 그들을 소개하는 별도의 책이 나와 있고 젠틸레스키는 여러 책에서 소개하고 있어서 그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다른 미술가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들의 삶을 알면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책의 구성이 그런 방향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줄은 안다.
두 번째 주제는 미술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들이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부터 모네의 작품 속 카미유에 이르기까지 시대 순으로 작품의 모델과 그들을 표현한 미술가들의 의식을 다룬다. 첫 번째 주제에서도 일부 드러나지만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성적 물화(sexual objectification)― 성적 대상화라는 번역이 타인을 성적 매력이 있는 상대로 본다는 긍정 표현이라고 해서 성적 물화, 즉 사람을 성적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폭력 관점이 반영된 표현을 썼다 ―한 방식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예술 작품이라고 분류되는 것들에 들어간 포르노그라피 관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 물화가 아니더라도 여성을 낮추어보고 그들을 소비 대상으로만 대한 남성 미술가들의 모습을 볼 때에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는 예술의 세계에서도 여성은 구축의 대상이었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게 남성이 보는 기준에서 만들어졌으며 여성의 고통과 수난을 성적 판타지의 소재로 삼는 행위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글쓴이는 강조한다. 그런데 이 주제에서는 여성 미술가가 사라진다. 여성 미술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알려진 작품 수가 적기 때문일까? 남성 편향의 시각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적정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미술 작품도 감상하면서 그 속에 포함된 문제를 같이 살펴봄으로써 페미니즘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이점도 있고.
물론 이 책에도 약점은 있다. 화가든 그림이든 서양 미술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그런 약점으로 들 수 있겠다. 한국인이면서 유일한 동양인인 나혜석과 멕시코인 프리다 칼로가 나오지만 유럽인 화가와 유럽인들의 작품이 거의 모두를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작품의 배경도 유럽 지역, 유럽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약점이라고 한 내 얘기는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성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 의식 세계를 다룬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현대의 여성주의 미술은 <젠더, 몸, 미술>을 통해서 접한 바 있지만 더 다양한 글로 만나고도 싶다. 인종, 종교, 문화 등에 따라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가 발생하므로 다양한 관점을 대하고 싶은 것이다. 세부 내용에서도 좀 더 꼼꼼하게 손을 봤다면 좋았겠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책 초반부의 몇 군데에서 이상한 문장이나 어색한 문단 구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다음 쇄 등에서는 수정하기를 바란다. 라비니아 폰타나가 그린 ‘옷을 입는 미네르바’를 설명하는 137쪽에서 신들의 이름을 쓸 때 그리스 식 명칭과 로마 식 명칭을 섞어 쓰는 점은 다음 쇄에서 고쳐야 할 실수다. 그리스 식으로 쓰려면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로 해야 할 테고 로마 식이라면 유노, 미네르바, 비너스로 해야 할 텐 데 헤라, 미네르바, 비너스로 쓰고 있다. ![]() 사람의 이름을 앞쪽과 뒤쪽에서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남성의 글이므로 여성의 입장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나도 남성이므로 우려의 실체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생각한다-도 든다. 이 책을 읽은 여성의 관점을 만나보고 싶다. 그래도 여러 곳에서 의미 있는 시각을 만날 수 있다. 가령 ![]() ![]() 등인데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