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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는 근래에 참 보기드문 영역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 동안 우리 산하에 산재해 있는 산성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게가 역사학적 관점이 아닌 레저 내지는 관광이 주 목적으로 부각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산성과 역사를 연계하는 시각도 미비해지고 그저 유적으로서의 눈요기거리에 지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중들 뇌리속에 잊혀졌던 것입니다. 비단 우리 주변에 말없이 고난의 세월을 지켜왔으나 정작 우리는 그 가치와 의미를 애써 외면해온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덕일, 김병기의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는 산성과 한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을 기회로 다가오네요.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심도 깊은 시각과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관광형식의 줄거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일반 대중에게 어필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사를 상고하면서 산성을 배제하고는 제대로된 한국사를 유추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사와 산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산성은 이민족의 침입이 많았던 한국사에 버팀목 역활도 수행했지만 평저성과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중세유럽처럼 일부 지배계층의 피난처가 아니라 거주자 전원의 항쟁지로서의 역활을 해왔기에 산성에 대한 연구가 바로 역사 연구에 직결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만큼 그냥 스쳐지났가던 우리 강토의 산성들의 제대로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이번 산성기행는 크게 현재 국내에 있는 산성과 옛 영토였던 중국땅과 일본땅에 있는 산성으로 구분해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우선 국내에 있는 산성의 경우 뭐 그동안 유명세를 탔던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성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일반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부분들(남한산성은 조선의 주성이다, 화앙산성은 신라성이다등등)을 심도깊게 정리해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 특히 울산을 포함한 남해안에 산재되어 있는 왜성입니다. 갑자기 느닷없이 한반도내에 왠 일본성이 있냐라고 하실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다름아닌 그럴만한 사연이 있죠. 1592년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임란전쟁사에서 언급 되었듯이 울산왜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조명연합군의 파상공세 맞서 지켜냈던 성으로 전란의 장기화에 대비한 포석으로 일본내에서도 축성의 달인으로 알려진 가토가 진두지휘하여 축성한 전형적인 일본성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이처럼 유리한 부분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일본내에 조선의 축성법(특히 백제의 축성법인 '판축공법')을 활용한 조선식 성들은 먼 옛날 백제 멸망과 관련 있는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서기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설과 삼국사기 초기 불실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황실과 지배계급의 시원이 다름아닌 백제였음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산성의 역사는 한국사 전반을 아우르는 기억의 각인체로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그 현장이 국내이든 중국 만주벌판이든 일본이든 어딜가나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편린을 그대로 간직한채 지금까지 많은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죠. 비단 문자로 기록되지 못한 흔적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흔적이 역사를 더 강하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는 산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한국사를 다시금 고찰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레저나 관광의 개념을 떠나 역사 한복판에서 살아 숨쉬는 산성으로 재조명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지루하게 느껴질 역사 이야기를 기행문 형식의 스토리텔링과 화보등을 통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한층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특히 남한산성, 화왕산성등 그동안 잘못 알았고 알려지지 않은 산성들에 대한 적확한 역사적 인식과 더불어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게끔 하는 나레이션등이 눈에 돋보이네요. 개인적으로는 국내의 왜성 그리고 일본내에 존치하는 조선성을 보면서 역사는 결코 한쪽의 면만을 보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더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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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당시 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철쭉의 짙붉은 빛이 전국을 수놓고 있던 무렵, 그리 높다고는 볼 수 없는 고창읍성의 외곽 성곽을 따라 걸었다. 일반적으로 3월부터는 봄으로 여긴다 하였건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불어대던 바람은 분명 겨울의 향을 띠고 있었다. 근육통을 일으킬 정도로 온몸이 잔뜩 움츠러들 정도의 추위. 그 날의 여행은 일종의 고행과도 같은 기억으로 내게 강렬히 남았다. 정세가 사나울 때마다 사람들은 한 때 만주대륙을 호령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역사의 기록이 파손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분노하기도 한다. 우스운 점은, 다가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해서는 그토록 강렬히 염원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곳의 일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성은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대한민국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수도인 서울만 해도 조선이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기도 훨씬 전 오래도록 백제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 아니었던가! 마구잡이로 파헤쳐가며 고층 건물을 짓기에 급급했던 시절, 그냥 놔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수많은 유적들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경제성장만으로 제 정당성을 인정받아야만 했던 군사독재 정권의 입장에서는 그 외의 것들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전국에 널려 있는 산성을 찾아 다녔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였음을 고려한다면 산성을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무언가라 하긴 사실 뭐하다. 하지만 우리의 산성에 깃든 역사까지 다른 나라와 닮은꼴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타인과의 어울림에 신통치 못한 나로서는 부인하고도 싶은 진실이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나라가 집단을 상당히 중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산성으로부터 집단주의를 읽어냈다. 일본의 경우, 전쟁 등이 발발했을 시에 오로지 지배계층만이 산성 안으로 들어가 방어태세를 구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안위요, 일반 민중들은 싸움의 결과에 따라 승전보를 울린 측에 세금을 납부하면 그 뿐이라는 식이다. 헌데 우리나라는 산성 안으로 모두가 이동했다고 한다. 직접 갑옷을 입고 왕명을 따르는 관군은 물론 자발적으로 군병을 일으킨 의병, 심지어 싸움에는 하등의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어린 아이와 노인까지 모조리 산성 내로 들어갔다. 적군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집단주의는 빛을 발했다. 불화살을 쏘아댔던 군사들의 노고 못지않은 것이 다듬어지지 않은 돌 따위를 던지며 극렬히 저항했던 이름 모를 민중들이었다. 많은 인원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 생활을 하는 만큼 산성 내부는 견고해야만 했다. 충분한 식량 그리고 물은 필수다. 전시 상황이 길어지면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외부로부터 이를 공수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산성 내에서 이를 조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게다. 많은 산성들이 물을 옆에 끼고 있고, 마냥 높기만 한 지역이 아니라 의외다 싶은 곳에 존재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계층의 무능력이 하늘을 찌르더라도, 그래서 민중이 그들의 지배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적 앞에서는 똘똘 뭉치고는 했던 무서운 집단주의가 바로 한국인의 저력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상세하게, 각 산성이 품고 있는 역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충북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은 지금도 어린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바보온달’의 기운이 서린 곳이다. 당장 끼니를 잇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온달이 실력을 뽐내며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고, 나아가 전쟁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는 모습은 서양식으로 표현하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고구려와 신라가 각각 남, 북진 정책을 추진하며 격렬히 대립했던 곳에 위치한 적성산성은 역사에서 외면 받는 가야계 군사들의 혼이 깃든 장소다. 자신이 속한 국가를 항복시킨 신라를 위해 전장에 나서야 했던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서러웠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가 않다. 이들 두 산성이 약자(?)의 설움과 맞닿아 있다면 (산성은 아니지만) 금성산성 인근의 면앙정에서는 조선 양반들의 풍류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훈구세력과의 권력투쟁에서 확고한 승리를 달성한 후 더는 거칠 것이 없었던 사림세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가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먹고 마시며 즐기기에 바빴음을 떠올린다면 처음에 들었던 낭만적인 생각은 이내 사라져버리고야 만다. 불안했던 마음은 남한산성에 이르러 고조된다. 강화도로 가는 길이 끊겨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그 곳에서 조선 지배층은 제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야 만다. 아, 서글픈 역사다. 그 역사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는 산성은 오늘날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역사적인 장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최근 붐이 일고 있는 걷기에 부합하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으며 자연스레 역사까지 섭렵할 수 있는 산성은 풍부한 스토리텔링 요소를 갖춘 곳이다. 아직 파괴되지 않은 시골 특유의 인심까지 더해진다면 여느 장소와 겨루어도 부족함이 없는 매력까지 지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국경의 개념은 모호해진다. 고구려와 발해가 만주에 드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백제의 경우 일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사실은 산성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만주-한반도-일본열도로, 자유로이 우리의 시야를 확장해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도래했으면 한다. 물론 당장 이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역사에 공을 들이는 게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원을 알고자 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인간이 나누어놓은 국경을 견고히 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욱 강렬한 일종의 본능이다. 산성에 깃든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은 ‘우리’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해당하는 역사의 발견을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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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대하니 산에 오를 때면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담 같은 걸 발견할 때마다 먼 옛날 무너져내린 성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주변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내 상상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위안과 함께...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고향의 산성, 힘겹게 걸어간 산자락에 남아있던 돌무더기들이 그저 지루하게만 여겨졌던 곳. 그런 가운데 '왜 동문, 서문이 있는데 산성이 또 있는 거지?' 하며 스쳐갔던 의문 하나가 이 책을 보며 새롭게 머리를 들었고 초반부에서 풀려나갔다.
책을 펼치며 고향의 산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부터 뒤적이며 책장을 넘겼다. 나의 극히 좁은 관심과 달리 책을 읽어가며 오랜 역사와 넓은 세상이 앞에 펼쳐졌다. 오천 년 역사와 고락을 같이 했던 산성을 통해 다른 나라와 달리 모든 백성이 동고동락했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산성이 축조된 과정과 그 주변 이야기들을 통해 지은이의 산성 행보를 따라갈 수 있었고 알토란 같이 엮어진 사진과 이야기들이 산속 동굴 어디쯤 용이 살고 있고 어디선가 다른 세상이 펼쳐질 성역과 같은 산성을 우리의 삶속으로 끌어오며 이 땅을 살다간 이들과 함께 호흡해가는 역사를 펴보여준다. 산성은 먼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할 걸음을 제시하고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책을 펼칠 때면 왠지 조심스럽고 겸허한 마음이 되곤 한다. 조금은 단정한 자세로 책을 대하게 되는데 이 책은 역사학자 이덕일이라는 지은이의 이름만으로 숙연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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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3권이 나와야 할 책. 역사는 기록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이미 역사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라도 후세에 의해 발굴되고, 재평가 된다면 이또한 새로운 역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선조의 피와 땀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는 흘러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역사학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책이다. 천년, 2천년 전의 산성을 현재의 시점으로 탐방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후세의 역사가들 또한 이러한 기록에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도 고려, 조선시대의 지리/역사서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어렵지 않은 해설과 주변 여행지와 역사이야기까지 곁들여져 꼭 한번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고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참 좋은 책이고, 기록이다. 2권, 3권...우리의 산성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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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 김병기 지음/예스위캔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한국은 산성의 나라다.’. 남쪽의 몇 몇 지역을 빼고는 넓은 평야지대를 찾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사람들은 산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산에 기대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 도시를 이루고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낮고 높은 산을 따라 산성이 형성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그렇게 쌓았던 산성들이 남한 지역에만 1200여 개가 남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성의 특징은 평지성과 산성으로 나누어 쌓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무사들만이 성에 살았고 중국은 산성이 거의 없고 평지에 성을 쌓았다. 우리나라는 평상시에는 평지성내에서 생활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과 관리들이 모두 성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싸우는 ‘농성’의 구조를 띈다고 한다. 관할내의 모든 백성과 운명을 같이 하려는 보민위주의 산성, 잦은 전쟁, 많지 않은 인구의 우리로써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각오로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은 백성과 생사를 함께 한 산성, 전망 좋은 가족 나들이 산성,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치열한 전장터가 되었던 중요한 산성들을 소개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곳은 기회가 되는 데로 가보리라 생각하며 읽다보니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만주의 고구려 산성과 일본의 조선식 성인 것 같다. 저자들은 그동안 식민사관을 반박하며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책 역시 산성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보게 한다. 사실 그동안 일본이나 중국에 우리의 산성이 남아있으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만주의 고구려 산성,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의 산성의 생생한 사진과 답사 자료를 보니 새삼 우리 고대사에 대한 자부심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던 산행 길, 오랜 세월의 흔적이 배인 것 같은 돌무더기를 보면 무심코 지나칠 수 없을 것 이다. 이곳이 혹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옛 선조들이 쌓은 산성이 아니었을까? 이곳이 군사적 중요한 요충지가 아니었을까?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이 아닐까? 멀리 바다, 강을 바라보며 혹시 적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군사들이 보초 서던 역사의 현장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서성거리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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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란곳은 부산이다. 바다와는 반대쪽에 있는 금정산 아래에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금정산 근처에 있었다. 고학년이 될 수록 소풍길은 조금씩 멀어진다. 그래도 주로 가는 곳은 금정산이었다. 금정산 중턱, 범어사, 금정산성,,, 학교에 가지 않고 논다는게 좋았던 어린 날, 산성이나 범어사는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내 또래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산 정상 평평한 곳에 넓게 돌담을 치고 들어앉은 마을 주변으로 우리는 소풍을 갔다. 돌담 위로 뛰어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큰 대청마루와 그 아래 엄청나게 큰 대문,,, 산성이라고 배웠지만 우리 눈엔 그저 그랬다,,, 마을을 품에 안고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 하나하나 지켜보며 세월을 견디던 성벽과 넉넉한 품으로 사람들을 반기던 성문. 말없이 그렇게 지켜보던 산성이 그 옛날 겪은 절절한 사연을 이 책을 통해 하나씩 들려주는 것 같았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산성이 제 구실을 했던 때는 고대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때는 산성에 의지해 수십배가 넘는 적을 물리쳤다. 그리고 고구려라는 이름을 주변국에 떨치며 동북아시아 강자로 부상했다. 백제와 신라 역시 산성을 근거로 이러한 고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대륙을 향한 기상이 꺽이기 시작했고 산성도 제 구실을 못했다. 신라가 반쪽짜리 통일을 하면서 만주를 잃어버렸고 고려때는 원나라에 침략당해 속국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고려는 산성에 의지하고 바다를 이용해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항전하며 쉽게 항복하지 않았다. 고려말 요동을 되찾을 실낱같은 희망마저 버린채 개국한 조선은 초심을 쉽게 잃고 급속히 부패하기 시작했다. 주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군사력은 고사하고 자체 방어마저 힘든 나약한 나라가 되어갔다. 이런 형편이니 방어거점이 되는 산성인들 제대로 관리가 되었을까.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크나큰 위기가 왔지만 문약한 나라를 강하게 만들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란을 겪으면서도 부패에 사욕에 빠져있던 사대부들은 사대라는 명분으로 강성해진 청나라를 배척하고 기울어가는 명나라만을 받들었다. 국제정세에 맞춰 외교를 펼치며 부국강병을 꿈꾸던 광해군을 폐위하고 들어선 인조정권은 청나라를 배척하면서도 그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이괄의 난을 거치면서 위기를 느낀 인조는 왕실 호위 군사만 늘었을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정묘호란이 발생했다. 조선군은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2달만에 항복했다. 인조정권이 친명배청 외교자세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대비는 하지 않았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한 후 결국 청나라 공격에 1년도 되지 않아 항복했다. 그 결과 인조는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남한산성이란 난공불락의 성을 들어 앉아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산이 많은 이 나라에서는 쭉 뻗은 길은 없다. 둘러서 가거나 넘어갈 길이 대부분이다. 이런 지형은 우리에게 급할수록 돌아가게 하는 여유를 가르쳐준다. 침입해온 적들에겐 장애물이 된다. 자연이 준 이점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곳을 지배한다. 광 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인은 기마민족으로 빠른 기동성을 발휘했다. 국경방어를 위해서 그 지역에 있는 험준한 산에 성을 쌓아 자연을 이용한 방어체계를 갖췄다. 그래서 900년이 넘는 세월을 동아시아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조선은 기마민족이 가지는 기상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연이 준 혜택마저 활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쉽사리 무너졌다. 바다와 남해지형이 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충무공의 활약으로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산이 많은 이 땅에서 산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려준다. 옛 모습과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역사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일상에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모습까지 드러내 보여준다. 언제나 멀리 있던 산성을 우리 가까이 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저 돌벽에 불과하던 산성이기에 그곳으로 나들이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산성으로 가는 여행길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못다 한 얘기는 내 손에서 다시 쓰여질 것이라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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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대장정이다. 우리의 역사를 산성의 역사라 말한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산이 많다는 말은 어찌보면 좋게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만큼 길을 내기 힘들어 더딘 문명의 길을 가야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역사속에서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장면중의 하나가 산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적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병자호란으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게 된 연유도 거기에 있다. 산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아걸고 기다렸지만 그들은 산성을 공격하지 않고 바로 도시로 들어갔다고하니 하는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같이 커다란 주제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기회가 닿을때마다 산성 하나씩은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잘 정리되어진 산성답사를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평소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의 글을 인상깊게 보아오던 터였기에 그의 산성역사학을 청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면서 산성에 얽힌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왠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마도 산성이라는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게다.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산성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가끔은 무너진 성벽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답사를 갔을 때 아주 작은 조각만으로 남겨진 산성의 역사를 마주칠 때가 있다. 잘 다듬어진 산성보다 더 짠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성벽과 함께 무너져 내렸을 우리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탓일게다. 죽음으로써 지켜내고자 했었던 오래된 이야기들이 지금에 와서도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그 안타까움 말이다.
살펴보니 당연히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산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맞게 소개해주고 있을 뿐이다. 역사 찾기라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찾아갈 수 있는 여행으로 산성답사를 권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울러 그 산성주변의 이야기들을 더듬어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금은 문화유적답사에 대한 테마가 대세인지라 한데 묶여진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성답사를 하다보면 산성을 따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풍경의 맛이 일품이다. 펼쳐진 그림도 그림이겠지만 얼굴에 와닿는 바람의 감촉은 더할 나위없이 좋다. 가까운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만해도 계절마다 맛볼 수 있는 그 색다름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 산성순례를 꿈꾸어볼 만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백성과 함께 생사를 같이한 산성, 전망 좋은 가족나들이 산성,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치열한 전장터, 만주의 고구려성과 일본의 조선식 성.. 크게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 찾아가보는 산성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아주 오래전 죽주산성을 찾았을 때, 그리고 얼마전 파사성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물론 주변의 유적답사도 함께 했었지만 산성을 따라 걸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고즈녁한 산성길을 품었던 정족산성은 또 어떻고? 글쓴이의 말처럼 여행코스로도 정말 좋은 주제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산성의 역사를 통해 중국과 일본에서 주장하는 비틀어진 이야기들을 바로 잡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 산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글도 보인다. 솔직히 시대별로 쌓는 방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나, 테뫼식이니 포곡식이니 독립구릉식이니 아무리 말해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알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자주 접해보는 방법밖에는 별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숙제가 쌓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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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이라고 말하지만 걷기 운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몇년정도 되었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다녔으나 어느새 그 감상에도 지루해질 무렵 만나게 된 책이 바로《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였다. 예전에는 안양천을 지금은 충주천변을 거닐고 있지만 주변 감상에 지루해지면서 가끔 남산을 목적으로 오르고 있으나 등산은 나에게는 힘들고 이제는 목적있는 걷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무렵 만난 책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온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역사소설로 익숙해져 있는 역사학자 이덕일의 역사 평설을 만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산성이 있었던가? 남한에만 1,200곳 이상의 산성이 남아있으며 한국은 산성의 나라라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산성을 주행로로 삼아 역사기행에 나서보는 것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의 출발점인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은 다행이도 내가 사는 충주에서 그다지 멀지않아 주말코스로 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역사소설가로 이덕일씨를 좋아하기에 그 이름자만 보고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역사현장인 산성으로 여행을 떠나며 아이들에게 역사지식을 심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려볼수 있다.
산성을 향한 행로는 '빨리빨리'가 아닌 느림의 미학을 배울수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산맥들이 주를 이루는 나라, 그러기에 산성은 우리 역사와 떼어놓고는 말 할수없고 가까이 하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말없이 지켜본 산증인이기도 하다. 산성의 역사를 살펴보다 내 고향인 충주시 신니면에는 어떤 성이 있나 살펴보니 이름 중에 학성이란 곳이 있어 그곳 또한 성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간 관심밖이라인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학성에 관해 알수 있었다.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에 위치한 견학리 토성(마을 이름이 학성이다)을 비롯 견학리 선사유적, 견학리 고인돌, 견학리 유물산포지 등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볼거리(배울거리)가 이토록 많았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다시 책속으로 돌아가서 인조반정의 주역들이자 광해군을 폐군으로 몰아 내쫓은 율곡 이이의 제자들인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은 '친명사대'였다. 자신들의 군주는 명나라 황제이니 조선의 군주는 그 신하인 제후에 불과하다는 것, 제후에 불과한 광해군이 명과 청(후금)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친 것은 명을 배신하는 것이니 내쫓고 명에 충성을 하는 새왕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숭명반청의 기치를 내걸고 자신들이 모시던 왕을 내쫓은 그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매번 역사서적을 대할때면 '만약'이란 말이 떠오르고 그것은 '광해군'이나 '소현세자'등 불운했던 인물들를 대할때면 더욱 강하게 생각나게 만들었다.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 왕위를 이어나갔다면 그의 중립외교 노력의 결과로서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는 불운은 피해갈수 있었겠지? 그랬다면 '환향녀(還鄕女)'라는 불운한 여인들 또한 생겨나지 않았을게다. (물론 이것은 저자가 아닌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했다는 평을 받는 임금인 선조와 인조, 그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보호해야 마땅한 백성들을 전란속에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인조는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을 사실을 말하지 않고 몰래 도성을 벗어났으며, 인조(선조의 손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주역(?)이 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또한 인조는 아들이자 다음 대 왕위계승자인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역활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만약 둘 중에 무능하다 못해 왕이 되지않으면 싶은 인물을 꼽는다면 인조가 첫 머리에 들어가겠지 싶다.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신하들에 의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반정은 인조 스스로 계획하고 왕위에 오른 반정이라고 역사는 말한다.
"도성이 무너지면 산성으로 들어가 농성하는 것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기본 방어정책이었다." (p.55) 그러하기에 강화도로의 피신에 실패한 인조가 남한산성을 두번째 피난처로 선택한 것, 남한산성은 굴욕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청군의 주력부대와 추위에 맞서가면서 45일간 치열하게 항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한양)을 대표하는 북한산성이 있다면 부산에는 금정산성(金井山城)이 있다. <웰빙·걷기·역사의 다목적 여행> 책속의 책인 산성 코스 가이드북이 있어 책에서 뜯어내어 여행길의동반자로 삼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수 있겠다.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을 시작으로 만주와 일본 열도까지, 산성순례를 통해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역사를 되집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백성과 함께 생사를 같이한 산성/ 전망 좋은 가족나들이 산성/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치열한 전장터/ 만주의 고구려 산성과 일본의 조선식 성 등 순서대로 읽어가는 것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가 실려있는 페이지를 찾아 읽어보고 가족나들이에 도움을 받는것도 괜찮지 싶다. 때는 여행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 우선 가까운 단양으로 가족 나들이를 떠나기로 하고 단양의 온달산성에 대해 읽어보았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나들이길로 생각없이 떠나기보다 가는곳에 대한 정보를 얻음으로서 제대로 된 여행길이 될 것이며 아이들에게 그곳에 관해 자신있게 설명할수 있는 자랑스런 엄마가 되어보자! 엄마도 공부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그래야 아이들 또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